감사히 잘 받았습니다.

작년 서재의 달인 선물로 받았던 미니 다이어리 은근히 유용했는데 올해는 둘 다 큰 사이즈라 놀랐네요^^

단청 다이어리 넘 예뻐서 특히 잘 사용할 것 같습니다. 물론 스누피 다이어리도 넘 좋아요.

연말마다 달력을 준다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작년에 이어 모두 정중히 사양했습니다. 괜히 종이 낭비면 안되니까요!

올해는 알라딘에서 준 다이어리 쓰다 말다 하긴 했어도 나름 유용하게 잘 썼답니다. 내년에는 더 유용하게 잘 써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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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3-12-13 20: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오 화가님 두세트! 다이어리1개랑 달력이 제 거랑 같네요^^ 축하드립니다~

거리의화가 2023-12-14 09:40   좋아요 1 | URL
올해도 다이어리, 달력 2개 야무지게 잘 사용할 것 같습니다. 작년처럼 한 권은 독서 요약노트로, 다른 한 권은 인용글 노트로 사용하려고요^^ 감사합니다.

건수하 2023-12-13 21: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단청과 스누피 중 뭘 쓸까 고민중입니당 ㅎㅎ 축하드려요~

거리의화가 2023-12-14 09:41   좋아요 0 | URL
저는 2권 다 사용하려고요! 어차피 옆지기는 줘봤자 안써서ㅎㅎ

건수하 2023-12-14 10:02   좋아요 0 | URL
집사2가 단청 좋아하지 않을까 했는데 단청이 문제가 아니고
‘다이어리‘ 라는게 자기 취향이 아니라며.... -_-;

전 일기도 잘 안 쓰지만.. 직장에 하나 집에 하나 두고 메모용으로 쓸까 합니다 ㅎㅎ

희선 2023-12-14 04: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거리의화가 님 축하합니다 일기장이 좋죠 2023년엔 일기 쓴 날보다 안 쓴 날이 더 많네요 다음해에는 거의 비슷한 말이어도 채워보고 싶기도 하네요 거리의화가 님은 잘 채우시겠지요


희선

거리의화가 2023-12-14 09:42   좋아요 1 | URL
일기장은 따로 사용하는 노트가 있어서 거기에 쓰고 알라딘에서 주는 것은 순수하게 책 기록용으로 사용해보려고 합니다. 비슷한 말이라도 채워나가는 기쁨이 있죠^^

그레이스 2023-12-14 07: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스누피 같은 색 받았어요
둘째가 자기 것인양 좋아하길래 줬습니다.ㅎㅎ
이번에도 저는 은행 달력 쓰겠죠 ㅋㅋ
북플도 열심히 해서 화가님처럼 두 세트 받아야 겠네요

거리의화가 2023-12-14 09:43   좋아요 1 | URL
ㅎㅎ 둘째 귀엽네요!
은행 달력 준다는 것을 저는 거절했습니다. 사용도 안할 것을 아깝더군요^^ 그레이스님도 서재 마니아 축하드립니다!

페크pek0501 2023-12-14 18: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거리의화가 님, 축하드립니다. 저도 알라딘 선물을 기다리고 있습니다.ㅋㅋ^^

거리의화가 2023-12-14 21:29   좋아요 0 | URL
페크님 아직 선물이 도착 안했군요. 마음에 꼭 드는 선물을 받으셨으면 좋겠네요^^ 서재의 달인 축하드립니다!
 



어떤 어머니에게, 내 어머니에게, 딸은 나눗셈이지만, 아들은 곱셈이다. 딸은 어머니를 줄어들게 하고, 쪼개고, 무언가를 떼어가지만, 아들은 뭔가 덧붙여 주고 늘려 주는 존재인 것이다. 모든 어머니들이 그렇다는 말은 아니다. 바로 나의 어머니에게는 그랬다. - P38


친가에 자손이 귀하여 아이가 태어나기를 무척 기다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첫째가 딸로 태어나자 어머니는 좌절하셨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손'이 귀한 집이라 아들을 원하셨던 것이다. 특히 할머니는 노골적으로 어머니를 압박하셨다고. 첫째가 딸이었는데 둘째마저 딸을 낳자 어머니의 심리적 압박은 무척 크셨다. 아마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억울함과 분함이 내게 미쳤을거라고 먈씀하셨었다. 그치만 그때는 내가 기어다닐 때라 기억에 없다. 어머니께서 셋째와 넷째를 아들을 낳자 그제서야 집안에 평화(?)가 찾아왔을 것이다. 어쨌든 어릴 적 기억이 나던 때부터는 많은 것들이 남동생들을 위주로 굴러갔다. 서운했지만 표현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러다 결국 감정이 쌓여 폭발했을 때가 있었는데 결론은 딸이 희생해야 하고 첫딸이어서 희생해야 하는 것으로 흘러갔다. 


왕비는 누구의 칭송을 필요로 하는가? 본인의 아름다움 때문에 고난을 겪어야 하는 백설공주는 무엇을 놓고 왕비와 경쟁하는가? 여성들이 펼치는 이 드라마 이면에 남성들이 있다. 왕비는 남성에게 아름다워 보이고 싶은 것이며, 가치의 유무를 결정하는 것은 그런 남성의 관심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었던 이유는, 내가 한 일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분노를 불러일으킨 건 나의 어떤 행동이 아니라, 그냥 나라는 존재, 나의 성별과 외모, 그리고 내가 어머니를 완성시켜 줄 기적이 되지 못하고 그녀를 분열시키는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P39


어머니께서 나와 내 동생들에게 본의 아니게 강요한 것들은 결국 남성에 의한 것, 가부장제 시스템에 의한 구조적인 문제라는 생각을 했다. 남동생들도 후에 이야기하기를 자신들은 버거워했노라고 넋두리를 했었다.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강박 관념이 없었다면 딸을 둘만 낳아 전념하여 키우지 않으셨을까. 

거울이 보여주는 상은 결코 내가 아니고 이미지일 뿐이다. 그런데 나는 그것에 맞추려고 했기에 탈이 난 적이 많았다.


거울은 모든 것을 보여 준다. 오로지 거울 자신만 빼고. 거울이 되는 일은 에코와 나르키소스의 신화에 나오는 에코 같은 존재가 되는 것이다. 당신 자신에 대한 것은 어떤 것도 들리지 않는 상태. 나르키소스의 이야기에서 자주 언급되는 것은 그가 산속 연못에 비친 자신의 이미지와 사랑에 빠졌다는 사실이지만, 더 중요한 사실은 그렇게 자신의 반영에만 빠진 그가 타인과의 관계를 잃어버리고 결국 굶어 죽고 말았다는 점이다. - P44


세상이 크다는 사실이 구원이 된다. 절망은 사람을 좁은 공간에 몰아넣고, 우울함은 말 그대로 푹 꺼진 웅덩이다. 자아를 깊이 파고들어 가는 일, 그렇게 땅 밑으로 들어가는 일도 가끔은 필요하지만, 자신만의 이야기나 문제를 가슴에 꼭 붙들고 있을 필요가 없는 탁 트인 곳으로, 더 큰 세상 속으로 나가는 반대 방향의 움직임도 마찬가지로 필요하다. 양쪽 방향 모두로 떠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며, 가끔은 밖으로 혹은 경계 너머로 나가는 일을 통해 붙잡고 있던 문제의 핵심으로 들어가는 일이 시작되기도 한다. 이것이야말로 말 그대로 풍경 안으로 들어온 광활함, 이야기로부터 당신을 끄집어내는 광활함이다. - P53


솔닛의 비치에서의 경험을 듣는 것은 놀라웠다. 모르는 사람들이 건넨 제안에 오케이 하고 진행할 수 있는 용기 말이다. 어떤 일을 계기로 이전에 갖고 있던 두려움을 떨쳐낼 수 있다면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사는 전환점이 될 것이다. 


도전에 대한 이야기를 볼 때마다 개인적인 경험이 떠오른다. 몇 년전 상해에 갔을 때 고층 빌딩에 올라간 적이 있었다. 꼭대기에 전망대가 있는데 아래는 투명 유리로 되어 있어 밑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곳이다. 사람들은 그 투명 바닥에 누워 인증샷을 찍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나는 발을 뗄 수조차 없었다. 너무 무서웠고 사람이 이러다 죽는 것 아닌가 두려움을 떨쳐내기가 어려웠다. 결국 인증샷은 커녕 엘리베이터 근처에서 서성대다가 내려왔다. 하지만 후회가 되었던지 나중에 두고 두고 생각이 났다. 그때 미쳤다 생각하고 사진을 찍고 내려왔어야 하는데… 도전했어야 하는데… 하는 마음. 결국 그 단계를 넘어서지 못한 나는 뒤이어서 여러 차례 나를 넘어설 도전의 기회가 있었으나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나는 나를 넘어설 수 있을까. 아직 번지점프도 무서워 도전하지 못한 나는 스카이다이빙을 보면서 ‘나도 할 수 있을까. 어떤 기분일까.’ 꿈꾸기는 하지만 여전히 가능보다는 불가능의 확률에 더 가까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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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목련 2023-12-12 17: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도 읽어야 하는 책인데...

거리의화가 2023-12-12 17:56   좋아요 1 | URL
이 책 갖고 계시는군요^^ 챕터마다 에피소드들이 달라서 독자를 환기시키네요. 관련 경험이 있으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더 많아질 것 같습니다.

그레이스 2023-12-14 07: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손이 귀한 집안이라는 말부터 무슨 얘기가 나올지 뻔히 알게되는 ptsd를 우리는 갖고 있죠ㅠㅠ

거리의화가 2023-12-14 09:44   좋아요 1 | URL
그쵸^^ 아들 때문에 4명씩이나ㅠㅠ 지금도 생각하면 어머니께서 억울함이 많으셨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이제는 좀 이런 일들에서 벗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살구 더미는 매우 풍성해 보이리라 기대했지만, 사실은 늘 불안을 던져 주었다. 그 자리를 지날 때마다 썩어 버린 것들을 적게는 열 개에서 많게는 20~30개까지 골라내야 했기 때문에, 그 앞에서는 존경의 마음 대신 신중한 눈길이 필요했다. 그 살구 더미는 이제는 더이상 어머니가 살지 않는 그 집에 있던 어머니의 나무에서, 새로운 소란이 한바탕 시작되려던 여름에 따온 것이었다. - P16


어제는 퇴근하고 나서 생각지도 않았던 전화를 받았다. 'xxx 여사'. 어머니였다. 

(저 이름은 누가 보면 그저 어떤 아는 어른을 존칭하여 적은 건가보다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나란 사람은 원래 그렇게 멋대가리가 없다. 주소록에 애칭이나 별칭으로 저장한 이름은 단 하나도 없는 것을 보면.) 


'뭔 일이지?' 하며 역시나 시큰둥하게 전화를 받았다. 

(늘 생각은 전화를 자주 하자 생각하지만 거의 잘 되지 않으며 전화를 받을 때 제발 상냥하게 대하자 생각하면서도 또 그게 잘 안 된다.)


어머니는 김치를 담갔다고 하셨다. 그제서야 "아..." 이 무렵이 김장 시즌임을 인식했다. 그리고는 불현듯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어머니께서 김치를 담갔다며 가져가라고 하셨던 일이 떠올랐다. 


"저희 김치 필요 없다고 했잖아요. 두 사람이라 김치를 많이 먹지도 못하는데..." 

이번엔 조금 담갔다며 극구 가져가라고 하신다. 아버지께서 꼭 가져갔으면 한다고 덧붙이셨다. 그러면서 여동생은 벌써 김장을 일부 가져갔다고 한다. 


"네. 알았어요." 일부러 담아 놓으시고 전화까지 하셨는데 안 가져가는 것은 아닌 것 같아서 그렇게 답했다.


오늘 옆지기가 퇴근하면서 김치를 친정집에 들렀다 가지고 왔다. 조금 담았다고 하더니 비닐 봉지에 한 가득이다. 문자로 답신을 했다. "잘 먹을게요." 


우리는 우리가 이야기한다고 생각하지만, 종종 이야기가 우리에게 말을 걸기도 한다. 사랑하라고, 미워하라고, 두 눈으로 보라고 혹은 눈을 감으라고. 종종, 아니 매우 자주, 이야기가 우리를 올라탄다. 그렇게 올라타서, 앞으로 나아가라고 채찍질을 하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알려 주면, 우리는 아무 의심 없이 그걸 따른다. 자유로운 상태가 되기 위해서는, 이야기를 듣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 이야기에 질문을 던지고, 잠시 멈추고, 침묵에 귀 기울이고, 이야기에 이름을 지어주고, 그런 다음 이야기꾼이 되어야 한다. - P15


1장 '살구' 편을 읽으며 아무래도 어머니를 생각했고 김치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내 어머니는 20 여년 전 뇌졸중이 와 몇 년을 고생하셨다. 투병 생활 이후 곱고 아름다웠던 어머니가 더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게 서글펐다. 그래도 살아 있음에 감사하기는 했지만...


어머니의 경험을 한 번 경험하고 나서 몇 년 뒤 아버지가 비슷한 상황이 되었을 때 나는 조금 더 담담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 그건 아마 내 머리가 더 자란 탓도 있지만 한 번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알츠하이머와 치매가 이제는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기억을 잃는다는 게 생각만 해도 무서워 저만치 뒤에 떼어 놓으며 살고 있다. 


동화의 상황은 극단적인 것이 많아 어릴 때 잘 읽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왜 계속 사람들에게 구전되고 읽힐까 궁금했다. 

동화는 문제에 관한 이야기, 문제에 휘말렸다가 그것에서 나오는 이야기다. 문제 상황은 무언가 되어 가는 여정에서 꼭 거쳐야만 하는 단계인 듯하다. 온갖 마법과 유리로 만든 산, 집채만 한 진주, 한낮처럼 아름다운 미녀, 말하는 새, 잠시 뱀이 되어 버린 왕은 부수적인 것일 뿐이다. 대부분의 이야기에 담긴 핵심은 역경에서 살아 남는 일, 세상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는 일, 자기 자신이 되는 일이다. 어려움은 늘 필수 사항이지만, 거기서 무언가를 배우는 건 선택 사항이다. - P27

세상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는 일, 자기 자신이 되는 일이라니 그렇게 생각하니 동화가 다르게 보인다. 

같은 상황을 마주하더라도 그 안에서 배울 수도, 배우지 못할 수도 있음을 인지해야 하겠다.


불안한 상태의 그 살구 더미는 내게 떨어진 임무인 동시에, 어린 시절부터 내게는 거의 아무것도 주지 않았던 어머니가 남긴 나의 상속권, 동화 속의 유산처럼 보였다. 그건 가족 나무에서 따낸 과일 더미이자 마지막 수확이었고, 동화에 등장하는 마법의 씨앗, 알 수 없는 방의 문을 여는 열쇠, 귀신을 불러내는 주문처럼 수수께끼 같은 선물이었다. 살구를 병이나 깡통에 담거나, 퇴비로 만들거나, 얼리거나, 그냥 먹어 버리거나, 술을 담그는 일은 동화에서 요구하는 임무와 거리가 멀긴 했다. 살구는 내가 풀어야 할 수수께끼, 거의 모든 일이 잘못 풀려나가던 이후의 열두 달 동안 내가 그 의미를 찾아야 할 이야기였다. - 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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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2-10 14: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던 시기가 저희 엄마가 많이 아프셨던 때라 갑자기 생생하네요. ㅜㅜ 엄마 김치 너무 소중한데... 화가님은 바보얏!!! 시큰둥하지 말고 호들갑 떨어야 합니다. 왜냐면 정말 너무 소중하고 맛있음.. (아.. 그런데 만약 맛이 없다면....?.. 그것은.... 저는 맛없는 엄마의 요리는 알지 못하나이다.....)

거리의화가 2023-12-10 17:03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저 바보 맞습니다. 감정 바보^^;;; 어머니께 김치를 받을 수 있는 때가 얼마나 남아 있을까 생각하면 소중히 받아야하는데 말이죠. 사실 그것보다는 저는 어머니의 건강 때문에 김치를 안하셨으면 하는 마음이 커서 그게 잔소리로ㅎㅎㅎ 어머니가 좋으셔서 하시는 건데 제 기준에서 생각하지 말자 다시 한번 다짐해봅니다. 저희 어머니 음식도 제 기준에서 맛있어요. 특히 콩나물무국 정말 좋아합니다. 친정집 갈때마다 끓여주시거든요. 남편이 끓여주는데 그 맛이 결코 안 나더라구요^^;
이 책 챕터 1부터 눈물 훔치며 읽었습니다. 뒷 챕터들도 소중하게 읽게 될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이번 에피소드들에도 여러 사건들이 있었다. 


특히 바지 사건은 Mia에게 유독 감정 이입이 되어 화도 나고 분해서 눈물도 찔끔 나왔다. 꼭 학교에 브랜드 옷을 입고 가야만 하는 걸까. 자본주의 사회라서 돈으로 외모를 꾸며야만 평가받을 수 있는 건가 싶어 기분이 나빴다. Mia 부모님 입장에서도 이 일을 들으면 얼마나 기분이 처참할 것인가. 누구는 사주고 싶지 않아서 안 사주는 것도 아닌데... 그런 면에서 Jason은 Yao씨와 마찬가지로 참 아닌 놈이다. 


수학 시험은 바지 사건에 이어 열폭을 터지게 했다. 중국인들은 계산을 잘 한다는 편견은 어디에서 오는 것이냐. Mia 말처럼 누구나 같은 시간을 투자해도 좋아하는 것에 공부를 더 하길 원하는 것은 마찬가지일거라는 생각을 한다. 엄마가 Mia를 위로해주었으면 좋았을텐데 좀 마음이 아팠다. 물론 엄마의 마음도 이해는 한다. Mia를 위로하기 위해 아빠가 사준 연필 세트로 그나마 Mia의 마음은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 CH29 ]

Douglas는 Jason이 계속 아픈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학교 강당에서의 일로 찜찜해하던 Mia는 Jason이 걱정이 되었는데 막상 학교에서 보니 다른 아이들이랑 장난을 치는 것을 보곤 마음이 놓였다.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는데 내가 입은 꽃무늬 바지에 눈길을 보내는 것을 느꼈다. 그 바지는 엄마가 자선 가게에서 6.99달러에 6개짜리 들어있는 옷 중 하나였다. Jason은 빈정거리며 니 엄마가 보기 드문 눈을 가졌다며 놀렸으나 Mia는 엄마가 사 주신 옷이 좋았고 그에게 꿇릴 것도 없었다.


[ CH30 ]

Yao씨는 Hank에게 그동안 밀린 모텔비를 내지 않으면 나가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하지만 캘리포니아 법에 따르면 30일 이상 집에 거주하는 경우 임대인의 자격이 부여되어 돈을 아무리 갚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막 쫓아낼 수는 없다. Hank는 나갈 수 없다 버텼고 열이 받은 Yao씨는 그 책임을 Mia 가족에게 전담시킨다(아니 무슨). Hank가 돈을 다 지불하지 않으면 그 돈을 우리에게 떠넘기기 위함이다. 


[ CH31 ]

학교에서 Jason은 계속 Mia 옷을 가지고 놀렸다. Mia는 무시하고 넘어가려했는데 소문이 6학년생들에게까지 퍼졌고 결정적으로 화장실에서 6학년 여자 둘이 하는 이야기에 더는 안되겠다 생각해서 편지를 보냈다. "Floral cotton trousers are way more comfy than jeans." 하지만 Mia는 편지를 간직하기만 하고 끝내 전달하지 않았고 여전히 학교에서는 계속 조롱을 당했다. 

어느 날 오후 font desk에 셰보레 한 대가 들어서더니 중국인 남자가 내렸다. Mia는 직감적으로 Aunt Ling의 친구일거라 생각했다. Uncle Zhu는 체켝이 컸고 하얼빈 억양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일정 기간 잠잘 곳이 필요하다 말하여 우리 가족은 3번 방을 주었다. 

몇 주 후 부모님은 140달러가 빠진 급여를 받았다. Hank가 갚을 돈 중 일간으로 20달러를 계산한 값이다. 아빠는 싸울 태세였다. 엄마는 부엌에서 tofu paste(아무래도 초두부를 말하는 듯)를 꺼내와 입 속에 우걱우걱 넣는데 아빠와 나는 그걸 보며 냄새가 사라지길 기다렸다. 


[ CH32 ]

수학 시험이 있었다. 팀 대항전이었는데 Mia는 하필 바지로 심하게 놀려댄 Bethany와 Joanne, Paula와 같은 팀이 되었다. 그들은 중국인이 계산을 잘한다라고 여기고 내심 다행이라 생각했는데 Mia가 막상 문제를 못 맞추자 비난했다. Mia는 자신이 금발에 파란 눈을 가진 사람이고 똑같은 상황이었다면 어떤 반응이 나왔을까 궁금해했다.


[ CH33 ]

Mia는 바나나를 먹은 후 껍질을 머리에 얹어 놓고 거울을 보며 "The blonde" 금발 머리의 자신을 그리고 있었다. 그 때 엄마가 들어왔고 대체 무슨 일이냐며 자초지종을 물었다. Mia는 수학 시험 이야기를 했는데 엄마는 그녀를 위로하기는 커녕 수학 시험을 틀린 일에 대해서만 질타하여 서러웠다. 엄마는 아빠에게 "당신 딸이 수학 문제를 틀렸대요." Mia는 화가 나서 소리쳤다. "I don't even like maths. I like English." 엄마는 자전거를 가진 것과 차를 가진 것에 비유하며 현실을 직시하라 말했다.


[ CH34 ]

Mrs.Q가 엄마의 입장을 이해하라며 Mia를 위로했다. 일요일에 빈 캔을 싣고 재활용 센터에 갔다가 6달러를 번 뒤 쇼핑 센터에 갔다. 아빠가 문구점에서 5.99 달러짜리 연필 세트를 사주셨다. 아빠는 "You're a fine story writer." 라며 매일 연필로 너의 모든 것을 쓰라고 말씀해주셨다.


[ CH35 ]

또 다른 중국 이민자인 Uncle Fung이 왔다. 중국에서 회계사를 했고 미국에서는 Riverside에서 웨이터로 일했다고 한다. Hank 일로 Yao씨가 돈을 제하고 주는 바람에 엄마는 그에게 양상추, 마늘에 간장 소스를 넣은 음식을 줄 수 밖에 없었다. Fung씨는 일하던 곳에서 손님이 그를 바닥에 내치길래 "Hey! baby"라고 외치기만 했는데 뭐가 잘못된 것이냐 물었다. Mia는 "Hey! baby"는 남친/여친에게 하는 인사라고 말해주었다. 그녀는 그동안 미국에 있으면서 정리해왔던 미국식 구어 표현을 그에게 알려주었다.

Lupe와 weeklies, Mia는 미이라 복장을 하고 Meadow Lane을 돌아다니며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었다.


[ CH36 ]

Mia는 엄마와 함께 쇼핑 센터에 갔다가 하필 Jason 모녀를 맞닥트렸다. Jason은 파자마 사러 왔냐며 Mia에게 빈정거리고 엄마는 Yao씨가 돈도 없는데 쇼핑 센터에 왔다고 생각할까 걱정한다. 


[ CH37 ]

Douglas 선생이 보는 앞에서 (자리를 깔고) Mia는 Jason 에게 Yao씨가 노동자 에게 행한 부당 대우에 대해서 항의했다. Jason은 그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주었으면 감사해야 하는 일 아니냐며 따진다. 잘못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반성할 기회도 없는 것이겠지.


[ CH38 ]

Jason이 Mia의 연필을 가져가서는 시치미를 떼며 돌려주지 않았다. Douglas 선생님은 보다 못해 연필을 반으로 나누어 하나씩 갖는 것이 어떠냐 했다. 당연히 Mia는 반발했다.


[ CH39 ]

Mia는 Jason에게 연필을 돌려달라는 이유를 담은 편지를 쓴다. 벨이 울려 전화를 받았는데 Yao씨였다. 그는 자기 가족이 라스 베가스에 가기로 되었다고 말하는데 Mia는 들을 기분이 아니었다. 결국 자기 없는 동안 모텔에 신경 쓰란 이야기였다. Lupe와 계획을 짜면서 가정부에게는 걸 스카우트 때문에 쿠키를 팔러 가야 한다 말하고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는지 말한 다음 Lupe가 화장실에 가 있는 동안 Mia가 Jason의 방에 몰래 들어가 연필을 가져오기로 하는 것이었다.  Lupe는 자신은 끼어들기 싫다 말했지만 Mia는 5분 안에 모든 일이 끝날 거라며 안심시켰다. 그럼에도 그녀는 주저했다. "You mnever stand up for me!" 나는 그녀에게 화를 냈다. 그녀도 화로 대응했다. "You can say all this crazy stuff to Jason because he likes you." 결국 Lupe는 Yao씨 집에 가는 계획은 동참할 수 없다며 거절했다. 하지만 그녀의 이유는 납득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것이었다. 자신의 아빠는 Yao씨 밑에서 일하기 때문이란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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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3-12-08 17: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아.. 앞으로도 마음 아픈 사건들이 많이 일어나는군요.. 이민자의 설움 ㅜㅜ

거리의화가 2023-12-08 19:40   좋아요 1 | URL
두 부자들이 Mia 가족의 속을 뒤집어놓습니다^^; 하지만 Mia가 그냥 당하기만 하지는 않는 아이라서 좋아요. 앞으로도 재밌게 읽어나가실 수 있을 겁니다^^
 


근대 시기 조선에 예술가였던 나혜석이 있었다면 일본에는 문학가였던 하야시 후미코가 있었다. 둘은 1920년대 말~1930년대 초 세계 여행을 했고 그 여행기를 책으로 출간했다. 나혜석은 1927년 여름부터 시작하여 1929년 3월까지 1년 반 정도의 시간이 흐를 때까지 여행한 뒤 구미 여행기란 이름으로 책을 펴냈다. 하야시 후미코는 1931년 11월부터 시작하여 1932년 6월 돌아와서 삼등 여행기란 이름으로 책을 펴냈다. 그녀의 여행 기간은 나혜석에 비해서 체류 기간이 길지는 않은 편인데 여행 동선이 짧고 들른 장소가 더 적기 때문이다. 어쨌든 지금도 세계 여행을 하려면 시간은 물론이고 비용 문제가 만만치 않은데 둘은 그 시절 세계 여행이라니 일단 놀라웠다. 


나혜석이 어떤 인물인가를 드러내는 질문이 있었다. 


내게 늘 불안을 주는 네 가지 문제가 있었다. 즉 첫째,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잘 사나? 둘째, 남녀 간 어떻게 살아야 평화스럽게 살까? 셋째, 여자의 지위는 어떠한 것인가? 넷째, 그림의 요점은 무엇인가?


인간 실존의 문제, 여성으로서의 고민, 화가로서의 위치성이 눈에 들어온다. 


하야시 후미코는 처음 알게 된 이름이라 아는 정보가 별로 없었는데 찾아보니 "방랑기"라는 여행기가 당시 60만부까지 팔리면서 베스트셀러 작가로 등극을 했다고 한다. 


둘은 공통점이 있지만 차이점이 더 많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일단 공통점부터 살펴본다면 여성 문제와 인간으로서의 고민의 문제가 있을 것이다.


나혜석은 여성 문제에 이전부터 천착해 있었고 지면이나 인터뷰 등을 통해서 소신을 밝혀왔다. 주체적인 여성으로 산다는 것이 쉽지 않았을 때 자기 주장을 표현하는 것만으로 따가운 시선을 받기 쉬운 시절이었다. 하물며 그는 유명한 화가였으니 그녀의 말과 행동이 모두의 관심 대상이 되기 쉬웠다. 관심을 받는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개인에게는 억압의 기제로 작용하지 않을까. 나는 그녀가 살아가면서 숨이 막힐 것 같은 순간을 여럿 경험했을거란 느낌을 받는다. 그녀의 예술 작품을 보거나 읽는 것만으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부녀의 의복은 자기 손으로도 해 입지만 그보다는 상점에서 만든 것을 많이 사서 입는다. 겨울철에는 여름철 옷에 외투만 입으면 그만이다. 여름이면 다림질, 겨울이면 다듬이질로 일생을 허비하는 조선 부인이 불쌍하다.


나는 전에 경성에서 어느 극장 앞을 지나면서 동행하던 친척에게 말한 적이 있다. 극장 경영을 하려면 근본 문제 즉 조선 부녀 생활을 급선무로 개량할 필요가 있다고. 실로 여자 생활에 여유가 없는 사회에서 오락 시설은 번영할 수 없다.


내가 런던에 체류할 동안 영어를 배우기 위해 여선생 한 명을 정했다. 방금 예순 살 된 처녀로 어느 소학교 교사요, 독신생활을 해가는 가장 원기 있는 좋은 할머니였다. 팽크허스트 여사 참정권운동자연맹 회원이요, 당시 시위운동 때 간부였다. 지금도 여자의 권리 주장이 나오면 열심이다. 그는 이런 말을 한다. "여자는 좋은 의복을 입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을 조절하여 은행에 저금을 하라. 이는 여자의 권리를 찾는 제1조가 된다." 나는 이 말이 늘 잊히지 않는다. 영국 여자들의 선각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에 보고서 여자의 힘이 강하고 약자가 아님을 확신했습니다. 여기서는 여자란 나부터도 할 수 없는 약자로만 생각되더니 거기 가서 보니 정치, 경제, 기타 모든 방면에 여자의 세력이 퍽 많습니다. 특히 외교상에 있어 남모르게 그 내면적 활동력이 굉장했습니다. 우리 조선 여자들도 그리해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녀가 여성 문제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면 눈여겨보지 않았을 지점이다. 나혜석의 극장 이야기를 보니 갑자기 떠오르는 일이 있다. 대학 친구들이 애를 낳고 돌보느라 극장에 가 본지 한참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그들은 결혼 전까지 직장을 다니다가 아이를 갖고 경단녀가 되었다. 극장에 가는 것조차 사치가 되어야 하는 일이 되다니 그때 들으면서도 내가 더 억울한 느낌이었다. 


하야시 후미코도 여성 문제와 관련되어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파리 주택은 거의 아파트라서 일본처럼 그렇게 널찍하고 틀에 박힌 부엌을 소유한 집은 별로 없다. 게다가 집 밖 레스토랑을 이용하는 가족이 많은 탓에 굳이 엄청난 부엌을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 일본에서 레스토랑을 여전히 사치스러운 존재로 여기는 동안에는 가정주부가 부엌에서 해방되는 일은 아주 먼 이야기겠지. 잠시 유럽에 살다 돌아오고 나서야 깨닫고 놀란 것은, 주변 여인들이 아침부터 밤까지 부엌에서 줄곧 일한다는 사실이다.


일본 여성도 그렇지만 조선 여성도 마찬가지다. 그 때는 가정주부가 육아와 살림을 하지 않으면 비도덕적이라고 난타당할 때였다. 지금은 일하는 여성들이 있으나 결국 가사 노동의 짐은 여성이 더 많이 가져간다. 현실적으로 제도적인 뒷받침이 너무나 부족한 것 같다. 


실존에 대한 고민은 상대적으로 하야시 후미코의 입장이 더 감정 이입이 잘 되었다. 영국에 가서는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심신이 무척 불안했던 것 같다. '삼등 여행기'라는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나혜석은 일등 칸 기차를 타고 좋은 호텔에서 묵는 등 비교적 여유로운 여행을 했지만 하야시 후미코는 삼등 칸 기차를 타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숙소에 묵으며 여행을 했다. 때문에 막판에는 여행 경비가 떨어져 오가지도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하는데 그런 상황에서도 나의 감정과 상황을 솔직히 직시하고 표현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좌절할 것 같은 순간에도 오뚝이처럼 긍정성이 발휘되기도 하는 모습이어서 인간적으로 연민이 가기도 했다.


어쨌든 어느 곳에 있더라도 죽는 건 매한가지라고


슈트케이스 안에는 차마 버리지 못한 파리의 찌꺼기들, 접시 한 장과 전골냄비, 포크와 스푼, 밥솥과 밥그릇 따위가 들어 있다. 그러니까 아직은 팔팔하다. 까짓것! 좀 낑낑거리기는 해도, 이따금 눈물이 한가득 고이긴 해도 말이다.


앞으로 사오일 후면 드디어 무일푼 신세가 된다. 물론 돈이 없다고 해서 죽어버리는 시시한 짓은 안 할 생각이다. 런던은 매일매일 안개가 자욱하다. 아, 진짜 좋은 일을 하고 싶다!


얼음 아래로 흘러내리듯 헤엄치는 물고기 냄새를 피부로 느끼며 이대로 아무렇지 않게 바다에 뛰어드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내 머릿속에는 절대로 죽고 싶지 않다는 감정이 허세를 부리고 있지만.... 이럴 때 위스키라도 갖고 있다면 한층 즐겁겠지. 나는 입술을 벌리고 진눈깨비를 혓바닥으로 받아봤다. 진눈깨비는 눈과 코, 입술과 어깨를 보슬보슬 두드리며 사라져갔다.


특히 마지막 표현은 정말 멋지다고 느꼈다. 그 풍경이 오롯이 연상됐고 나도 마치 진눈깨비를 맛보는 느낌이었다. 


여행에 대한 정보도 제법 상세하다. 나혜석이 여행 장소에 대한 묘사를 자세히 했다면 하야시 후미코는 여행 경비와 동선 등을 상세히 적어 둔 것이 눈에 띄었다. 


하얗게 내려 쌓인 눈이 천 길 골짜기에 묻혀 있고, 쳐다보니 융프라우의 맑고 깨끗한 설암이 눈앞 지척에 나타나 있다. 첩첩산중에 사계절 내내 눈이 쌓여 빙하가 되고, 빙하가 녹아 물이 되어 흘러 폭포로 떨어지고, 폭포가 시내가 되어 냇물로 흘러 곳곳에 호수가 되는 것이 스위스의 생명이다. 이것을 보러 각국 사람이 모여들고 이것을 팔아 스위스 국민이 살아간다.


스위스의 설산이 예전만큼 쌓이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겨울에도 눈이 예전만큼 내리지 않고 여름이 점점 길어져만 가고 빙하는 녹고 있다. 스위스의 아름다운 자연을 볼 날도 이제 정말 얼마 안 남은 것 같아 씁쓸해진다.


파리에서 유명한 것은 지하철이다. 땅 밑 사층으로 차가 놓여 있을 뿐 아니라 한 선은 센강 아래로 다닌다는 말을 들으면 누구든 곧이듣지 않을 것이다. 사기 조각으로 쌓은 원형 정류장은 깨끗도 하거니와 땅속 길은 찾을 수 없이 복잡하다.


지금은 한국 지하철도 제법 잘 되어 있지 않은가.


마드리드는 다른 도시와 같이 내놓을 만한 성당도 없고 역사적 전설도 없건만 이 도시를 찾아 세계인이 모여드는 이유는 오직 프라도미술관이 있는 까닭이다.


지금은 마드리드에 대성당이 들어섰지만 프라도미술관은 여전히 세계인을 불러 모은다.


여행 가이드북은 1~2년만 지나도 쓸모 없는 것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 생각보다 놀라웠던 것은 변화하는 것만큼이나 변하지 않는 것들이 여전히 많다는 사실이었다. 한국은 보존되어야할 가치를 등한시하고 그저 아파트, 빌딩 등을 짓는데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을 보면 씁쓸해진다. 반면 서양은 두 사람이 방문했던 여러 장소들이 여전히 지금도 운영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빠르게 바뀌는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지금의 세대들이 가고 나서 앞서 올 세대들에게 물려줄 것들이 남아 있지 않다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여행기의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은 마음으로만 그리던 것을 실제로 만나는 일이다. 이상과 현실은 같지 않더라도 직접 마주한 느낌은 상상만 할 때와는 분명 다르다. 길을 잃어버리기도 하고 처음 만나는 일에는 문화적 충격을 겪기도 하는데 그런 일들이 여행에서 얻는 값진 경험이라 믿는다.


한국인들이 여행 말미가 되면 김치나 라면을 찾는다는데 나혜석도 미국의 조선 예배당에서 먹은 시래기국으로 고향 생각이 났을까 싶었다. 여행을 하고 돌아 오면 가기 전의 나와 달라진 게 무엇인지 가장 먼저 그 생각부터 드는데 그녀도 다르지 않다는 것에 슬며시 미소가 지어졌다. 독일에 갔을 때 공원에서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잔디밭에 누워 일광욕을 하던 기억이 있다. 그 자유가 부럽기도 하다가 '쯔쯔가무시병' 걸리는 거 아냐 하는 생각부터 드는 것을 보니 '나도 참...' 했었다. 여행에 날씨가 좌우하는 힘이 제법 크다는 사실에 공감했고 어학을 좀 더 잘 했으면 하는 생각은 외국인이면 공통적으로 하는구나 싶어졌다.


하야시 후미코는 대도시보다는 소도시나 시골 등의 자연에서 편안함을 느꼈던 것 같다. 돈이 궁해서이기도 하겠지만 그녀는 왠만하면 교통 수단을 이용하지 않고 도보로 걸어다녔던 것 같다. 나도 걷기 예찬론자라 외국에 나가면 어디든 걷는 편이라 내적 친밀감이 생겼다. 


바르비종이여! 바르비종의 시골길이여! 너무 감미롭긴 해도 이 달콤함을 후회 없도록 다 써 없애고 싶다. 시골 공기를 잔뜩 들이마셨더니 핼쑥한 뺨에 붉은빛이 돌고 마음마저 차분하다. 런던에서 자살까지 생각했던 나도 이 신선한 풍경 앞에서는 그런 생각 따윈 "개나 줘버려"다.


나혜석은 여행에 가서 여러 사람들을 만난다. 1927년 6월부터 열린 제네바 군축회의로 인터라켄에서는 영친왕과 사이토 총독을 비롯한 각국의 대사, 공사 및 칙임관들을 만나 식사 자리를 가졌다. 관등으로는 감히 참석하지 못할 자리라고 표현하기는 했지만 외국에서 만난 것이기는 해도 그녀의 위치가 고위직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영친왕이 나혜석에게 그림을 그려달라 부탁하기도 했다는데 화가로서의 위치를 짐작하게 했다. 제네바 해군 군축회의는 1차 대전 이후 군비 축소 문제의 일환으로 1922년 열렸던 워싱턴 해군 군축 회담에서 전함과 항공모함에 대해서 합의를 본 이후 보조함에 대해서도 적용하기 위해 열린 회의다. 


미국에 가서는 장덕수와 윤홍섭, 김마리아 여사를 만나기도 했다. 장덕수와 윤홍섭은 후일 한민당의 주요 의원으로 활약하는 인물들이고 김마리아 여사는 독립 운동가, 교육가로서 많은 업적을 쌓은 분이다. 서재필을 병원에서 만났다는 것을 보니 장소가 그가 1929년 병리학 전문의를 따고 나서 개업한 병원이었던 것 같다. 그곳에서 조선 문제에 대해 의논했다는 것을 보면 여전히 고국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앞서 얘기했던 1922년 워싱턴 군축 회의에 서재필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표단의 한 명으로 이승만과 함께 참석하기도 했다. 귀국하는 길 일본에서 영친왕을 다시 만나고 그녀는 고국으로 돌아갔다.


헤이그에 가서는 이준의 무덤을 찾다가 결국 못 찾아서 이준의 지인들에게 그림엽서를 보내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기도 했던 것을 보면 그녀도 조선인이구나 하는 생각을 가젝 한다.


나혜석은 조선인이자 식민지 백성 중 하나였지만 내부 계급적으로는 높은 위치에 있었다. 때문에 그 당시만 해도 그녀 주변에는 상류층의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많았을 것이며 대중들과는 교류가 많이 없었을 것이기에 어떤 한계가 엿보였다.


출발과 동시에 갑판 위에서 관현악곡이 울린다. 태양빛이 흐르는 호수 위에 둥실둥실 떠서 음악 소리에 몸이 싸였을 때, 아! 행복스러운 운명에 감사를 아니 드릴 수 없었고 살에 허덕이는 고국 동포가 불쌍했다.


파초가 널브러진 가운데 여신 동상이 곳곳에 있고 기염 차게 물을 토하는 분숫가에는 웃통 벗은 노동자, 유아들이 한참 무르녹은 멜론을 벗겨 들고 앉아 맛있게 먹는다. 아직도 원시적 기분이 많고, 도로에 흙먼지가 많아 유럽에서는 보지 못한 동양적 색채가 있다. 마차가 많고 노동자가 많으며 걸인이 많다.


그에 반해 하야시 후미코는 일본인이자 피식민지민이면서 주로 프롤레타리아와 노동자 계급에 주목하는 모습이 엿보인다. 일본인으로서 일본을 걱정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다른 나라의 영토와 백성을 짓밟으며 나아가고 있는 것에서는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 눈에 띈다. 대부분의 일본인이 이와 비슷한 감정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언제나 진실한 것은 파묻혀 지나가고 다소 연극적인 것이, 으스대는 것이, 상스럽게 비하하는 자들이 어이없게도 어느 나라든 특권을 갖는구나. 프롤레타리아라는 하이칼라 언어를 쓰지 않아도 기나긴 삼등 열차 여행에서 굉장히 착하지만 가난한 사람을 수없이 봤다.


세계대전 이후 대체 어디에 평화가 왔나? 각국의 인민은 녹초가 됐다. 유럽을 걸어보면 지금도 베르됭의 피비린내가 난다. 발 없는 남자, 한 손 없는 남자, 한쪽 눈 없는 남자, 이런 베르됭의 유물이 무얼 하고 있냐면 대개 샌드위치맨이거나 걸인 또는 비올라 켜는 광대다. 과거 인기가 높던 어느 인간의 말로, 그 모습의 사람들이 유럽 각국에서 우글거리며 배출구를 찾고 있다. 파리 직업소개소도 그랬지만, 런던 직업 소개소도 시루에 콩나물 박히듯 어느 곳이나 매일 아침 실업자가 행렬을 짓고 차례를 기다린다. 전 세계가 굶주리고 있는 느낌이다. 옛날에는 일본에서도 평화박람회가 열렸는데, 대관절 누굴 위해 배를 주리고 저 긴 줄을 이루는 걸까?


런던의 일부 평화주의자는 대장 나라 일본이라고 낙인찍고 있건만, 청일전쟁부터 이노우에 장관 암살까지가 일본을 점점 대장 나라로 만드는 듯하다. 싫증 나는 이야기다. 억지 이론이 통하지 않으니 정치가도 인민도 검술을 배우나 보다.


나혜석도 분명 동양인이자 여성으로서 인종 차별을 겪었을 수도 있었을텐데 여행기에서는 그런 기록이 보이지는 않았다. 하야시 후미코는 그런 일화를 거침없이 적어 놓았다.


파리 카페에서 내게 말을 건 어떤 신사가 "마드무아젤, 당신은 인도차이나에서 왔나요? 요즘 식민지는 어떤가요?" 실크해트에 턱시도 차림의 남자는 절대 금물. 더군다나 단안경을 걸치고 내려다보는 모습이라니, 아무리 봐도 눈에 거슬렸다. "논, 논! 무슈. 나는 자포네제랍니다."


아침에는 근처 카페에 서서 커피를 마시는데 "일본이란 나라는 손톱을 30센티미터나 기른다면서?"라는 것밖에 일본 관련 지식이 없는 노인이 있었다. 그는 내 소매를 흔들며 하늘을 달리는 거야?" 하며 웃었다.


나혜석도 조선의 발전 방향에 대하여 고민을 많이 했던 것으로 보인다. 스위스가 자연을 가지고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것처럼 조선도 강원도, 금강산 등지를 잘 꾸미면 경쟁력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말이다. 금강산은 이제 가볼 수도 없게 되어 버린 슬픈 땅이 됐지만.  


나혜석은 화가로서 연구를 위해 파리에 더 체류하고 싶어했으나 결국 귀국했다. 그녀가 그곳에 남아 그림을 계속 공부했다면 이후 삶이 달라졌을까. 한국 현대화가인 이성자 선생님도 파리에서 공부를 하셨는데 그녀가 먼저 그 땅을 밟아 개인전도 하고 작품 활동을 계속 해줬으면 어땠을까. 그녀는 고야와 고야의 그림에서 특히 많은 인상을 받아 유독 감정 이입을 한 글을 남겨 놓았는데 보고서 독자인 나도 슬픔에 잠겼다. 그녀도 그런 화가가 되고 싶었구나 생각했다.


그는 죽었다. 그러나 살았다. 그는 없다. 그러나 그의 걸작은 무수히 있다. 나는 이 묘를 보고 그 위에 걸작을 볼 때 이상이 커졌다. 부러웠고 나도 가능성이 있을 듯했다. 처음이요, 또 최후로 보는 내 발길은 좀처럼 돌아서지를 않았다. 내가 이같이 감응해보기는 전후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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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3-12-06 15: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천경자 화백이 그 시기에 해외여행 다닌 것을 보고 놀랐었는데 이 두 사람은 그가 태어날 때 이미 많은곳을 경험했네요. 앞선 여성들의 용기있는 발자취가 후배들에게 영감을 준다는 생각이 들어요. ^^

거리의화가 2023-12-07 09:51   좋아요 1 | URL
그러네요 천경자 선생님도^^ 나혜석은 진짜 지금 봐도 놀라움으로 보게 되는 부분이 있어요. 특히 용기와 추진력, 당당한 태도. 저도 세계 여행이 늘 꿈 리스트에 있었는데 이제는 체력적으로 힘들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그치만 요즘은 50~60세에도 세계 곳곳을 누비는 분들이 많다고 하니 아직은 꿈으로만 그쳐서는 안되겠죠?ㅎㅎ

독서괭 2023-12-08 17: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두 사람의 차이점이 흥미롭네요. 일제강점기 조선인이지만 부유한 지식인계층이었던 나혜석, 일본인이지만 부유하지 않았던 후미코. 각자 보는 것과 느끼는 것이 달랐을 것 같아요. 그래도 공통적으로 여성들이 집안일에 갇혀 있으면 안 된다고 외치는군요^^

거리의화가 2023-12-08 19:43   좋아요 1 | URL
그쵸^^ 나혜석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여행기에서 생각보다 꽤나 쏠쏠한 정보를 얻었고요. 후미코란 사람도 새롭게 알았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분에게 감정 이입이 더 되었습니다. 저는 고위층이 아니니까요!?ㅋㅋ 서양인이 일본인을 바라보는 관점을 보면서 대부분의 서양인들이 동양인을 바라보는 편견이 느껴지면서 오리엔탈리즘이 자동적으로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금방 읽히고 꽤나 재밌게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