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에 와 있다
어제 비행기가 연착이 되고 길도 좀 헤매서 호텔에 도착하니 이미 해가 넘어갈 무렵이었다.

대만은 10여 년 만에 방문이지만 전에는 타이베이를 왔다면 이번은 가오슝에 왔다.
호텔이 해변가에서 가까워 큰 배들을 보고 트램선도 바로 앞에 있어서 트램은 벌써 3차례 이상 탔다.

오늘은 시립역사박물관에 갔다가 하미센 철도 박물관을 구경하고 철도 타기 체험도 했다.
가족 단위의 손님이 많은데 아이들은 특히나 신나하는 모습이. 하지만 나도 즐거움을 숨길 수가 없었다. 밑에 레일이 바로 있고 정말 옛날 열차를 타는 느낌이라 즐거웠다.

아침에 잠깐 비가 오고 날이 개었는데 지금은 다시 바람이 많이 불고 추워서 경량패딩을 입으러 호텔에 잠시 들렀다.
아… 날이 따뜻할 줄 알았더니 역시 날씨는 변수가 많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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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4-03-01 16: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화가님 대만 가셨군요! 저도 애들 데리고 가보고 싶어요. 근데 춥다니.. 내일은 따뜻하면 좋겠네요~!

거리의화가 2024-03-04 09:46   좋아요 1 | URL
풀로 놀 수 있었던 금, 토일이 다 추워서 아쉬웠어요. 떠나는 날이 되어서야 해가 반짝 나더라고요!ㅋㅋ
괭님 나중에 아이들 데려오면 즐길 거리가 다양할 것 같습니다. 가족 단위 관광객이 특히나 많더라고요^^

페크pek0501 2024-03-01 16: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거리의화가 님의 닉네임답게 여행자이시네요.. 많이 즐기십시오.^^

거리의화가 2024-03-04 09:47   좋아요 0 | URL
ㅎㅎ 페크님 감사합니다. 즐겁게 잘 놀다 왔어요.

페넬로페 2024-03-01 18: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만 가셨군요.
평소에 연마한 중국어를 잘 사용하고 계실 것 같아요.
즐거운 여행하고 오세요^^

거리의화가 2024-03-04 09:48   좋아요 1 | URL
어떨 때는 명사만 생각나고 어떨 때는 동사만 생각나더라고요. 그리고 말하는 것과 들리는 것은 또 다른 영역이고요. 역시 실전은 다른 것 같습니다. 그래도 최대한 중국어로 말해보려고 노력은 했어요ㅋㅋㅋ

책읽는나무 2024-03-01 22: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
이번 여행지는 국외군요.
많이 구경하셔서 풍경과 추억 많이 담고 오세요.^^

거리의화가 2024-03-04 09:50   좋아요 1 | URL
나무님. 서재에 다시 컴백하셔서 정말 기쁩니다^^
여행 너무 잘 놀아서 피곤은 하지만 재밌었어요.

다락방 2024-03-03 15: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오 저도 조만간 대만 가보고 싶은데 거리의화가 님 대만 가셨군요!! 즐겁게 보내고 오세요. 맛있는 것도 많이 드시고요!!

거리의화가 2024-03-04 09:52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은 베트남도 여러 번 다녀오신 경험이 있으니 대만 잘 즐기실 수 있을 것 같아요. 맛난 것도 먹고 재미나게 잘 놀다 왔습니다.

희선 2024-03-04 00: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만에 가셨군요 역사박물관에서 철도도 탈 수 있다니... 저기 글자가 보이네요 대만철도관... 한국에도 있는 편의점이 보이네요 어느새 4일입니다 시간이 이렇게 흐르다니 주말은 참 빨리 갑니다 좋은 시간 보내셨겠지요


희선

거리의화가 2024-03-04 09:55   좋아요 1 | URL
편의점은 상권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아주 많았어요. 우리 나라는 너무 편의점과 카페들이 우후죽순 붙어 있는 경우가 있는데 여긴 그렇지가 않는 듯 보였습니다.
역사박물관과 철도박물관은 각각 다른 곳이에요. 철도박물관에서 철도 탈 수 있는 체험 코스가 있습니다^^ 한 8분 정도? 타는 것 같은데 레일 위를 지나가서 울퉁불퉁한 느낌을 느낄 수가 있었어요. 희선님 감사합니다.

자목련 2024-03-04 15: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립역사박물관! 역시 화가 님은 역사를 좋아하시는군요. 철도 타는 체험 재미있었을 것 같아요.
맛있는 이야기도 곧 들려주시겠죠?

거리의화가 2024-03-04 17:27   좋아요 0 | URL
둘째 날에만 저런 코스였고 나머지는 계속 사람, 거리 구경하는 재미로 다녔습니다^^ 철도 체험 재밌었어요. 직원분들이 너무 해맑게 손을 흔들어주실 때 현타가 오기는 했는데 재미난 경험이었어요. 음식 사진 몇 장 올렸습니다. 알라딘 사진 업로드가 너무 오래 걸려서 매번 올릴 때마다 힘드네요!ㅎㅎ
 

하루가 더 늘어나기는 했어도 2월은 설 연휴도 끼어 있어서인지 빨리 흘러갔다.


결산 페이퍼를 간단하게 올린다.

이번 달 읽은 책 중에는 집사 시리즈 중 <칸의 후예들>과 도스토옙스키의 중단편 <백야>, <가난한 사람들>이 좋았다. 


<칸의 후예들>은 칭기스칸 이후 아들과 손자 대 계보와 대칸 경쟁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칭기스칸보다 후대의 뭉케, 쿠빌라이가 우리와 관련이 더 있다보니 더 흥미롭게 읽을 수가 있었다. 


<백야>와 <가난한 사람들>은 같은 사람이 쓴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다른 느낌이었다. 도스토옙스키는 특히 인물에 대한 묘사가 뛰어나다는 생각을 했다. 게다가 자칫 무거울 수도 있는 이야기를 풍자와 해학으로 그려내는 것이 놀라웠다. 앞으로도 남은 전집을 읽어보려고 한다. 




3월 읽을 예정인 책들은 다음과 같다. 





내일부터 거의 4~5년 만에 해외로 여행을 떠난다. 이번 여행은 정말 준비를 거의 하지 않았다. 장소 몇 개만 적어둔 상태인데 너무 준비 없이 가나 싶지만 구글맵이 되는 곳이니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옆사람 컨디션 봐 가면서 놀멍 쉬멍하고 오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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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4-02-28 11: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 다녀오세요~! 맛난 거 많이 드시고!

거리의화가 2024-02-28 14:07   좋아요 0 | URL
미식가가 있어서 잘 먹고 다닐 것 같아요!ㅎㅎ

새파랑 2024-02-28 12: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도스토예프스키 작품 정말 좋습니다 ㅋ 읽다보면 웃음이 난다는 ㅋㅋ

해외여행 부럽습니다 ㅜㅜ 잘 다녀오세요~!!

거리의화가 2024-02-28 14:09   좋아요 1 | URL
도스토옙스키 작품 아직 세 개밖에 안 읽었는데도 참 좋더라구요. 남은 장편들도 기대가 됩니다.

해외여행은 너무 오랜만이라 아직 감이 안오네요. 잘 다녀오겠습니다^^

자목련 2024-02-28 15: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알찬 책읽기, 즐거운 여행!!
재미있게 보내시고 편안하게 다녀오세요^^

거리의화가 2024-02-28 17:27   좋아요 0 | URL
즐거운 여행하고 올게요. 감사합니다^^

그레이스 2024-02-28 16: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행 행복한 기억 많이 안고 오세요~~~

거리의화가 2024-02-28 17:28   좋아요 1 | URL
오랜만에 나가니 떨리기도 합니다. 내일 공항에 사람이 좀 덜해야 할텐데ㅎㅎ 감사합니다.

다락방 2024-02-29 10: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오 여행 잘 다녀오세요, 거리의화가 님! 여행 이야기도 들려주시고요!!

거리의화가 2024-02-29 12:39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비행기 기다리는 중이에요. 잘 다녀오겠습니다.

얄라알라 2024-02-29 22: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단 2월에 읽으신 책의 양과 장르 다양함에 입이 떡 벌어지고요

오랜만에 나가시는 거니, 먼 해외이실거 같아요.

행복한 여행 다녀오시어요 거리의 화가님^^

거리의화가 2024-03-04 09:44   좋아요 1 | URL
지난 달은 다양하게 읽었습니다^^ 멀리 가고 싶지만 직장인이라 아주 먼 곳은 가기가 어렵네요^^; 그래도 즐겁게 잘 다녀왔습니다. 감사합니다.

희선 2024-03-01 01: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금은 다른 나라겠습니다 거리의화가 님 즐거운 시간 보내시고 오시기 바랍니다


희선

거리의화가 2024-03-04 09:44   좋아요 0 | URL
희선님 잘 다녀왔어요. 감사합니다^^

독서괭 2024-03-01 10: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화가님 오랜만에 나가는 해외여행 마음껏 즐기고 오세요!!^^

거리의화가 2024-03-04 09:44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괭님 즐겁게 다녀왔지만 역시 너무 피곤합니다!ㅎㅎㅎ
 

원래 어제 쓰려고 했던 글이었는데 글을 쓰다가 일에 붙잡혀 타이밍을 놓쳤다. 


주말에는 읽고 있던 책을 마무리하고 이후에는 쌓아두었던 학술지를 읽었다.


역사문제연구 52호는 이전과 출판사가 달라진 탓인지 알라딘에 검색해봐도 나오지 않는다. 이전 호들은 그래도 나왔는데 이제는 아쉽지만 글로만 언급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번 호 특집에서는 냉전사 중 미국에 의해 이루어진 대반란전에 대해서 다루었다.


대반란전은 냉전 시기 미국에서 저개발국가의 정부가 전복되지 않도록 한 다양한 조치와 작전을 일컫는다. 


냉전시기 미국은 소련과의 대결에서 승리하는 것이 중요했다. 미국은 제3세계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하면서 공산군의 게릴라전에 어떻게 맞서야 하는지 경험할 수 있었다. 1954년 미국의 사회학자인 밀리칸과 로스토우는 CIA 국장 덜레스(Allen Dulles)에게 ‘공산주의에 대응하기 위해 군사적 개입이 단기적으로 필요하지만, 장기간에 걸친 개발과 협력이 궁극적인 대응책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이것이 근대화론이다. 대반란전은 앞선 군사작전과 개발에 의한 ‘재건’ 프레임을 결합한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1960년대 케네디 정부는 제3세계에 적극적인 개발정책을 대외정책으로 삼고, 베트남에서는 대게릴라 작전을 전투에 적용하였다.


1961년 4월의 쿠바 침공은 아이젠하워의 후임자인 존 F. 케네디 대통령 아래에서 수행되었다. CIA는 1400명의 망명 쿠바인을 무장시키고 훈련시켰지만, 그들은 과테말라에서와는 달리 성공하지 못했다. 카스트로는 이미 쿠바군을 전면적으로 재건했고, 10만 명의 반정부 인사를 미리 구금했다. 게다가 기대했던 민중 봉기도 일어나지 않았다. 침략자들은 사흘 만에 비참하게 항복했다. 미국은 카스트로를 무너뜨리기는 커녕 오히려 그의 입지를 강화했다. 여러 남미 국가에서는 쿠바 혁명을 본받아 혁명 투사들이 게릴라 투쟁으로 넘어갔다. 미국의 대게릴라 작전 전문가에게 배우고 미국의 군사 지원금에서 재정 지원을 받기도 한 경찰과 군부대들이 게릴라들을 패퇴시켰다. 미국은 유럽 제국주의가 몰락한 후 그것을 대신해 제국주의 세계열강이 되었다는 비난을 들었다. [ 하버드 C.H.베크 세계사 1945 이후 - P81 ]


대반란전은 대한민국에도 영향을 주었다. 박정희는 1.21사태(김신조 청와대 습격 사건) 후 북한에 강력한 보복조치를 취하기를 원했다. 이를 위해 군사력 증강을 요청했으나 미국은 이 요청은 들어주지 않고 대신 간첩 작전을 진행할 조직을 지원했다. 그 결과 특전사와 전투경찰대 등의 대간첩작전 부대들이 전폭적으로 확대되었다. 이후 북의 남한 공격이 줄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유신체제가 선포되고 나서 이 부대는 시위 진압 부대로 변모했다. 미국은 북한에 대한 공격을 허락하지 않았지만 부대를 지원함으로써 오히려 정부가 시민들을 무차별하게 잡아들이는 근거를 만들었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다.


앞서 읽었던 역사비평 145호에서는 새로운 냉전사의 유형의 글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그 중 미국의 기독교들인이 냉전을 이용해 국가를 강력하게 결집시키면서 지금의 기독교 보수주의적 흐름이 만들어졌다고 했다. 그들은 정부를 압박하기도 했지만 자신들의 이익을 채우기도 했다. 


얼마 전 정부의 필수의료 정책과 의과대학 정원 증원 발표 이후 의료계가 반발하며 들고 일어섰다. 사실 필수의료 정책이 근본적인 문제라고 보는데 의대 정원 규모의 문제가 더 부각되는 측면도 없지 않아 있는 것 같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22513060001797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4022715511158723


과거 1971년에도 인턴과 레지던트의 파업 사태가 있었다. 당시 파업은 의료인력을 ‘해외여행 제한’으로 강력히 묶어두려는 국가의 통제에 대한 인력들의 전면적인 반발로 전국적인 연대 파업을 야기했다. 정부는 국가 인력 유출을 걱정했던 것이다. 해방 후 의학교육의 급진적인 변화와 졸업 후 교육 제도의 정착은 단기간에 이루어졌지만 양성된 전문 인력이 활동할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을 마련하는 데는 부족했다고 볼 수 있다. 


과거와는 파업의 이유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지만 고령화되는 한국 사회를 생각하면 이 문제는 잘 정리되어야할텐데… 걱정이 크다. 


오늘 아침에는 '한국형 귀신고래'에 대한 기사를 보고 불과 이틀 전 읽은 내용이었음을 확인했다. 오래 전이었다면 놓치고 넘어갔겠지만 아니어서 놓치지 않고 읽을 수 있었다. 귀신고래는 우리 학명이 붙은 전 세계 유일한 고래다. 1977년 한반도 바다에서 더 이상 볼 수 없어졌는데 여전히 이 고래를 수소문해서 찾고 계시는 분이 있다는 이야기였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22611130004818


100여 년 전에 고래를 한반도에서 발견하고 전신뼈를 미국에 가져간 이가 있다. 뉴욕의 미국자연사박물관(American Museum of Natural History, AMNH) 소속 보조 큐레이터(assistant curator)였던 로이 채프먼 앤드류스(Roy Chapman Andrews, 1884~1960)다. 그는 1912년 1월 한국의 울산 장생포에 있는 동양포경주식회사의 포경기지를 방문했다. 그는 이곳에서 약 7주 간 머물며 캘리포니아 연안에서는 자취를 감추어버린 회색고래가 있는지 조사했다. 앤드류스는 이 연구를 바탕으로 1914년에 “캘리포니아 회색고래(THECALIFORNIA GRAY WHALE)”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한국 해역의 회색고래가 캘리포니아 회색고래와 같은 종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그의 논문상에는 '한국계 귀신고래'와 직접 연결될만한 표현이나 내용이 등장하지 않는다고 한다. 

2011년 5월에 울산 남구청은 장생포에 앤드류스 흉상을 설치한다. 비문에는 그가 회색고래를 ‘한국계 귀신고래(Korean Stock of gray whales)’라 명명하고 그 존재를 전 세계로 알렸다고 되어있다. 그러나 앞서 이야기했듯 이는 사실과는 거리가 있다. 


책을 읽고 공부를 하다가 연결되는 지점을 찾을 때 반갑다. 같지는 않더라도 비슷한 상황이 과거에 있었다는 것, 여기에서 어떤 단서들을 발견할 때 위안이 되기도 한다. 더 나아가 이것이 후속 공부로 이어진다면 더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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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4-02-28 02: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귀신고래라는 말을 보니 예전에 나온 우표가 생각났습니다 두 가지나 나왔군요 두번째는 기억나는데 첫번째는 예전에 썼는지 안 썼는지 생각나지 않네요 위에 건 전지고 밑에 건 낱장으로 된 거예요


희선



http://image.epost.go.kr/stamp/data_img/sg/up20161028160612315.jpg
http://image.epost.go.kr/stamp/data_img/sg/up20120112094507252.gif

https://img.khan.co.kr/newsmaker/961/20110906_961_46a.jpg

거리의화가 2024-02-28 08:58   좋아요 1 | URL
희선님 예전에 우표 모으신다고 했던 것 기억합니다. 올려주신 이미지를 확인해보니 굉장하네요! 우표 3가지 디자인이 저마다 특징이 있습니다. 덕분에 더 잘 기억할 수 있겠어요. 감사합니다.
 




[CH37] The New Universe

코페르니쿠스(Copernicus)는 지금의 폴란드 크라쿠프에서 태어나 천문학을 공부했다. 그는 프톨레마이오스(Ptolemy)가 주장한 천동설을 반박하고 지동설을 주장했다. 사실 그가 주장한 개념은 과거 그리스의 천문학자였던 아리스타르코스(Aristarchus)가 설파한 것이었으나 이론화하여 책으로 출판한 것은 그가 처음이었다. 천동설과 지동설은 상반된 개념이었기 때문에 당시의 많은 사람들은 그의 학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한다. 그는 가톨릭 교인이었는데 가톨릭계에서 지동설을 부정하고 나섰다고. 

갈릴레이는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샹들리에가 매달려 있고, 기울어져 있는 피사의 탑을 보면서 의문을 품고 '중력'이란 개념을 생각해 낸다. 그는 세계를 구성하는 개념을 만들어냈기 때문에 최초의 근대 과학자라는 타이틀을 갖게 되었다. 그는 이어서 사물을 확대하는 기능을 가진 망원경을 개발하기도 했다. 그는 Two Sciences를 출판하고 얼마 안 되 사망했다. 거기에는 오늘날 물리학 연구의 기반이 되는 근본 개념이 들어 있었다. 때문에 그는 근대 물리학의 아버지로 명명되었다.


[CH38] England’s Greatest Queen

에드워드 왕자가 헨리 8세에 이어 불과 9살 때 영국 왕으로 등극했다. 그러나 그는 건강이 좋지 않았고 16살이 되자 몸져눕게 되었다. 의사는 온갖 치료법을 강구했으나(과학적으로 검증이 전혀 안 된 방법들) 효과를 보지 못했다. 에드워드에게는 여자 형제들이 있었는데 메리와 엘리자베스였다. 둘은 왕위를 놓고 경쟁한 끝에 메리가 승리했다. 메리는 엘리자베스를 런던탑에 가두었고 가톨릭으로 국교를 회귀하면서 프로테스탄트를 강력하게 탄압해서 원성을 쌓았다(300명이 넘는 사람을 화형에 처했다고). 엘리자베스는 몇 달간 런던탑에 갇혀 있다가 메리가 사망하면서 영국 여왕으로 등극한다. 그는 원래대로 프로테스탄트로 국교를 복귀시켰으나 종교를 가지고 탄압하지는 않았다. 의회는 그녀에게 결혼을 종용했다. 그러나 엘리자베스는 메리가 스페인 왕자와 결혼해서 영국군이 스페인을 위한 전쟁에 투입되어야 해서 문제가 된 점을 생각했고 결혼을 하게 되면 그에게 권력이 주어질 것을 생각하여 하지 않기로 한다. 엘리자베스의 치세는 태평 성세였다. 때문에 그녀의 별명은 Good Queen Bess였다고.


[CH39] England’s Greatest Playwright

엘리자베스 여왕은 예술도 사랑했던 모양이다. 특히 셰익스피어의 연극을 무척 좋아했다고. 셰익스피어는 엘리자베스가 왕이 된 뒤 6년 뒤에 태어났다. 그는 40개가 넘는 극을 썼고 450년 넘게 공연되었다. 대부분의 언어로 번역이 되고 영화화되었으며 책, 학교 교재로 나오기도 했다. 

멕베스는 3명의 여성으로부터 왕의 아버지가 된다는 예언을 듣는다. 왕은 던컨이었으니 예언대로라면 자신이 던컨을 죽이고 반역자가 된다는 의미였기 때문에 애써 부인했다. 그러나 레이디 멕베스는 당신이 왕위를 받을 운명이라며 종용한다. 멕베스는 던컨을 죽이고 죽이지 않은 척 연기한다. 그러나 멕베스 부부는 이후 죄책감에 들어 악몽에 쫓긴다. 둘은 다시 예언자들을 찾아가지만 레이디 멕베스는 죽고 던컨의 사람들이 그를 공격하기 위해 오면서 자신의 종말이 왔음을 깨닫는다. 멕베스는 반역의 종말은 좋지 않음을 보여주는 연극이다.


[CH40] New Ventures to the Americas

스페인 제국은 미국 땅으로 판도를 넓혀가려 하고 있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영국보다 스페인이 더 영향력이 있는 국가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영국 해적이 스페인 배들을 공격하는 것을 묵인했다. 영국인 월터 롤리는 미국에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기 위해 107명의 사람들과 함께 탐험을 나선다. 도착한 땅에 그는 버지니아라는 이름을 붙인다. 다만 버지니아는 무척 추운 곳이라 비옥한 땅이 아니었기 때문에 다른 곳을 찾으려 했다. 그러나 그 시도도 실패했다. 그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하녀 중 하나인 Bess Throckmorton과 사랑에 빠진다. Bess가 아이를 가지면서 분노한 여왕은 그들을 런던탑에 가둔다. 엘리자베스의 뒤를 이은 영국왕이 그들을 풀어주는 조건으로 남아메리카에서 금을 찾아오라 했지만 빈손으로 오자 롤리는 참수형에 처해졌다.

버지니아를 발견한 영국인들은 Roanoke Island(로어노크 섬)에 정착하려했는데 현지인들의 위협으로 영국으로 돌아가고 15명의 사람이 남았다. 롤리의 두 번째 버지니아행은 the Chesapeake Bay(체사피크만)으로 결정되었으나 갑작스런 돌풍으로 배에 있던 15명의 사람은 사라진다. 선장인 John White는 로어노크 섬을 떠나 영국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열악한 환경을 타개하기 위해 현지인들과 친해지며 고기를 잡고 곡식을 기르는 법을 전수받고 그곳에 정착하여 마침내 그들은 살아남는다. 그러나 John White는 자손들이 그곳에서 정착하기를 원치 않아 1587년 출발하여 3달 만에 런던에 도착한다. 하지만 영국과 스페인에 전쟁이 벌어지는 바람에 롤리는 남아메리카로 출발하여 어느 무인도에 도착한다. 나무에 새겨진 표식인 “Croatoan”이라는 단서를 보고 섬을 찾아 나서려했으나 허리케인으로 배에 있던 모든 이가 사망한다. 롤리는 영국으로 돌아왔고 그 이후에도 수많은 영국인들이 그곳을 향했으나 제대로 성공하지 못했다. 


[CH41] Explorations in the North

상인 John Cabot이 영국에서 출발하여 Newfoundland(뉴펀들랜드)에 도착한다. “I claim this land for England!” 그는 아시아로 가는 가장 짧은 항로를 발견했다고 생각했다. 영국 어부들은 Cabot이 뉴펀들랜드에 대해 한 이야기를 기반으로 그곳에 오두막을 짓고 여름 내내 머물렀다. 소식을 들은 미국인 세인트 존스는 봄과 여름에만 뉴펀들랜드에 머무르며 고기를 잡고 생활했는데 겨울이 되면 물이 얼기 때문이다. 

프랑스 왕은 자크 카르티에에게 새로운 섬을 찾아내라는 명을 내린다. 그는 중국으로 바로 향하는 항로를 알고 싶어 했다. 현재 the Gulf of St.Lawrence(세인트 로렌스 만)이라고 불리는 곳에 갔고 현지인 Micmacs를 비롯한 친구들을 만난다. 이곳을 뭐라 부르냐는 말에 “cthe village”라는 대답을 들었고 이것은 캐나다라는 소리였다. 그래서 오늘날 이곳이 캐나다가 되었다. 카르티에는 원하던 중국에는 가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캐나다를 발견했고 70년 뒤가 되면 프랑스는 캐나다를 년 안에 왕복할 수 있게 된다. 오늘날 캐나다에서 프랑스어를 말하는 이가 많은 이유도 정착 인구들이 이 때문이다.


[CH42] Empires Colide

스페인 왕 필립은 영국 함선들이 스페인을 향하는 것에 불만을 가지고 영국에 선전 포고를 하려 했다. 평화를 원한 엘리자베스 여왕은 협상으로 무마했으나 필립은 이것이 눈속임인 것을 알아차린다. 필립은 마침내 130척의 함선에 Spanish Armada 군을 대동하고 전투에 나선다. 엘리자베스는 사촌인 Lord Howard을 해군 사령관으로, Sir Francis Drake를 부사령관으로 하여 영국군을 플리모스에 정박시킨 채 스페인 배를 기다린다. 스페인 배는 대규모 함선이라 컸지만 영국 배는 작지만 빨랐고 이동하며 총으로 공격하자 스페인 배는 구멍이 나기 시작한다. 영국군의 2배 규모였던 스페인군은 패배했고 이 전투 이후 영국은 스페인에 패권을 서서히 내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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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31] Exploring New Worlds

당시 인도로 향하는 것은 트렌드였다(음식이 빨리 부패하는 것을 막기 위해 후추 등의 향신료가 중요했기 때문).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남들이 남쪽으로 내려가는 생각을 바꾸어 서쪽으로 향하는 것으로 하고 지도까지 제작한다. 콜럼버스는 포르투갈 왕, 프랑스와 영국 왕을 만나 투자 유치를 요청하지만 설득에 실패하고 마지막 스페인에서 페르디난드와 이사벨라에게서 허락을 받아 배를 살 돈을 마련한다. 그러나 오랜 선상 생활로 음식이 부족해지자 선원들은 괴혈병으로 상당수가 사망한다. 집에 돌아가자는 선원들의 아우성에 3일 동안 육지가 보이지 않으면 집에 돌아가기로 하는데 다행히 2틀째 육지에 당도했다. 그곳은 금도, 후추도 없이 목화와 감자 같은 식물만 보이는 땅이었다. 그들이 도착한 땅은 인도가 아닌 플로리다였다. 5년 뒤 포르투갈 항해사인 바스코 다 가마가 아프리카를 지나 인도에 도착하는 주인공이 되었다. 아메리고 베스푸치는 콜럼버스를 질투해 스스로 항해를 떠났다(돈이 많은 귀족). 그는 콜럼버스처럼 아메리카 대륙에 닿았는데 이곳이 신대륙임을 확신했다. 유명 지리학자가 새로 발견한 땅의 이름을 그의 이름을 따 'America'가 되었다. 페르디난드 마젤란은 콜럼버스의 항로를 그대로 따랐으나 폭풍우를 만나 한달 이상을 표류하다 갑자기 고요해진 너른 바다를 마주하며 편안해짐을 느낀다. 그곳이 태평양이었다. 마젤란과 선원들은 3달 이상의 항해 후 마리아나 제도에 닿았다가 물과 식량을 얻기 위해 필리핀까지 이른다. 그러나 마젤란은 현지 부족민에게 붙잡혀 사망하고 만다. 이후 남은 선원들이 배를 타고 인도에 닿으면서 마젤란은 인도까지 간 최초의 타이틀을 가진 사람이 되었다.


[CH32] The American Kingdoms

중앙 아메리카에 최초의 거대 제국은 마야였다. 오늘날 멕시코의 유카탄 반도에 해당하는 곳이다. 마야의 왕은 권력이 무척 컸다고 한다. 부족 간 전쟁이 잦았는데 전투가 있기 전에 왕은 온몸을 뚫어 피를 내는 것으로 신에 대한 신념을 표시했다. 마야의 도시는 몇 백년간 잘 유지되었으나 거주민들이 늘어나며 음식이 부족해졌고 잦은 지진과 허리케인의 발생, 왕의 가혹한 정치 등 때문에 시민들의 이탈률이 급증하면서 도시가 정글화된다. 

아즈텍은 넓은 호숫가에 자리를 잡아서 땅을 건조하게 오랫동안 만드는 일에 공을 들였다. 그렇게 테노치틀란이란 도시가 건설되었다고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이곳에 유입되며 도시의 규모가 커졌다. 운하가 건설되며 오가기가 편해졌고 호숫가라 도마뱀, 도롱뇽, 개구리, 생선알들을 요리해 먹기도 했다. 그들은 카카오를 초콜릿으로 만들어 최초로 브랜드화시킨 장본인들이다. 

남아메리카에는 잉카 제국이 있었다. 오늘날 페루 지역이 이에 해당한다. 쿠스코는 제국의 수도였다. 잉카인들은 자신들의 역사를 남기지 않았는데 역설적으로 콜럼버스가 방문했던 해에 왕이였던 Huayna Capac은 기록에 남아 있다. 당시 잉카 제국은 상품 무역으로 활발한 교류를 했다. 하지만 Huayna Capac이 죽자 쪼개진 왕권은 합쳐지지 못한채 제국의 힘은 약화되었다. 


[CH33] Spain, Portugal, and the New World

신대륙을 둘러싸고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대서양에 앞다투어 배를 보내게 된다. 그들은 그곳에 새 도시를 건설하고자 콩키스타도르(conquistadores)를 보내 원주민들과 전투를 벌이게 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협상을 벌여 중앙 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를 분할하는데 합의했다(자기들 맘대로 좌표 찍듯이 찍으면 자기 땅이 되는 참!). 이들은 효율적인 도시 건설을 위해 노예를 데려오는 것을 생각하여 처음에는 서아프리카에 있던 이슬람 상인으로부터 노예를 사서 보내다가 나중에는 직접 노예를 끌고 갔다(일부 모집도 있었겠지만 문제는 일방적으로 끌고 간 경우도 허다했다). 열악한 선상에서 그들은 햇빛도 보지 못하고 제대로 먹지도 못한 채 신대륙에 도착하기도 전에 많은 노예들이 목숨을 잃었고 도착한 노예들 앞에는 가혹한 노동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즈텍 제국에 코르테스를 비롯한 스페인 사람들이 도착했을 때 아즈텍 사람들은 그들을 방문자라고 여기고 환영했다(아즈텍인들은 말을 처음 보고 놀랐다고). 스페인 사람들은 8개월동안 호화로운 대접을 받다가 그마저도 지루해진 이들은 아즈텍인들과 싸움을 벌여 학살하는 만행을 저지른다. 아즈텍 인들은 분노에 차서 왕인 Montezuma에게 항의했고 그 과정에서 왕은 살해당한다. 아즈텍인은 스페인 사람들을 감금하고 얼마 후 시간이 지난 뒤 스페인인들이 주변이 조용해진 것을 확인하고 도망을 감행한다. 갑작스런 아즈텍인의 공격에 배에 마구 실은 금덩어리 때문에 무거워진 배는 가라앉고 코르테스와 몇 명의 스페인만 살아 남아 돌아간다. 하지만 코르테스는 포기하지 않고 새 사람들과 새 말을 준비한 후 테노치틀란으로 진군한다. 12개의 군함을 이용하여 드디어는 수도를 포위한다. 3개월 간의 전투 끝에 1519년 코르테스는 테노치틀란을 접수하고 중앙 아메리카에서 스페인 식민지의 역사가 시작된다.


[CH34] Martin Luther’s New Ideas

마틴 루터는 가톨릭 교회의 교리에 따라 교회가 원하는 것을 충실히 지키는 수도승이었다. 그는 수도승 생활을 한 지 5년이 지나 비템부르크 신학 대학에서 교수 역할을 하러 가게 되었는데 <the book of Romans>를 기반으로 학생들과 함께 연구를 하다가 기존에 자신이 가졌던 신에 대한 생각이 변화되는 경험을 한다. 그는 가톨릭 교회에서 신에게 죄를 용서하면 면죄부를 주는 행위가 잘못되었음을 비판한다. 그는 복음만이 답이다라고 이야기하며 1517년 10월 31일 95개의 면죄부 비판 목록을 내놓는다. 이는 가톨릭 교회가 옳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을 사람들에게 퍼지게 한다. 

1485년 헨리 튜더가 삼촌인 리차드를 죽이고 헨리 7세로 왕이 된 이후 그는 평화로운 왕위 계승을 위해 2살인 아더와 3살인 스페인 왕의 딸(캐서린)과 가상 결혼을 시켰다(진짜 결혼식은 각자가 16살, 17살이 되었을 때). 그러나 아서가 결혼한 지 6개월 만에 고열이 나 사망하여 남동생인 해리가 17살에 헨리 8세로 왕위를 잇는다. 헨리 8세는 왕위를 위해 캐서린과 결혼을 감행한다. 하지만 캐서린은 딸만 있었고 헨리 8세는 그녀와 이혼하기를 원했다. 이 때 헨리 8세에게 들어온 것이 마틴 루터의 교회 개혁이었다. 마침 귀족들도 헨리 편을 들면서 그는 캐서린을 보내 버리고 앤 불린과 결혼하고 영국 신교회를 만든다. 그런데 앤 불린도 딸(엘리자베스)만 낳아서 그녀를 참수시키고 Jane Seymour과 결혼하여 아들(에드워드)를 낳는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독일 공주인 Anne of Cleves 사진을 보고 그녀를 데려오게 한다. 그러나 사진과 실제 모습이 다르다는 이유로 고함을 친다. 여기에 어린 여성인 Catherine Howard와 결혼했지만 그녀 역시 참수시켰고 마지막으로 간호사인 Catherine Parr와 결혼한다. 나이든 헨리 8세를 돌보기에 적합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왕이라지만 이렇게 마구 갈아치워도 되는 것인가, 죽은 이들은 무슨 죄인가. 


[CH35] The Renaissance

고대 그리스와 로마를 재탄생시키는 시기, 르네상스가 도래한다. 대항해 시대가 시작되면서 사람들은 새로운 이론과 학설을 곳곳에서 받아들이게 되었고 신이 세계를 창조했다는 물음에도 회의론이 일면서 인간 중심의 사고, 과학적 검증 방법이 흐름을 타게 되었다.

르네상스는 인쇄술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작업이었다. 구텐 베르크는 금판을 만들어 글자들을 맞추어 넣고 잉크에 찍어내는 기술을 만들어낸다. 그는 더 나아가 포도의 압착 기술에서 착안하여 tin, lead, antimony를 조합하여 글자들을 만들고 유성 잉크를 제작하여 1년에 450개의 성경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한다. 그는 영어로 된 역사와 시를 인쇄했고 체스 게임 메뉴얼을 최초로 인쇄하였다.


[CH36] Reformation and Counter Reformation

마틴 루터의 가톨릭 비판 이후 사람들은 성경에서 직접 성경에서 가르침을 얻을 수 있다 생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가톨릭 측은 이에 공포를 느꼈는데 진리는 보편성을 띄어야 하며(기준은 하나) 잘못된 번역으로 인해 잘못 전달되는 가르침들이 있다 생각하여 경계한 것이다. 가톨릭은 루터파를 이단으로 선언하였다. 하지만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Augsburg Confession)이라는 문서가 나오자 일부 개혁파들은 기독교인의 신앙에 대한 교리로 생각하며 이를 받아들인다. 이들을 프로테스탄트라고 한다. 프로테스탄트는 모든 사람들이 성경을 읽고 스스로 이해해야 한다고 여겼다. 몇 백년이 지나는 동안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는 신을 이해하고 숭배하는 방식을 놓고 계속 논쟁했다.

교황은 주교들을 이탈리아의 트렌트에 소집하여 1545년부터 18년 간 가톨릭 교회에 대한 대책 회의를 갖는다. 그들은 결과물인 트렌트 공의회 선언문을 발표하고 가톨릭 공식 독트린으로 삼았다. 이제부터는 주교가 되려면 신학교에 들어가 가톨릭 독트린에 따라 학습하고 훈련해야 했다. 여기에 맞서 루터파도 선언을 내놓으니 the Counter Reformation(반개혁)이다.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는 이후에도 싸움이 그치지를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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