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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각자의 영화관 (총33편)
구스 반 산트 외 감독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극장에서 개봉했을 때는 보지 못하고 며칠 전 집에서 '쿡'을 통해 챙겨본 영화가
<그들 각자의 영화관>이었다.
칸영화제 60주년을 기념하여 , 황금종려상 수상 감독 35명이 스케치한
33편의 '극장' 혹은 '영화'에 관한 3분짜리 에피소드.
신기한 건 3분짜리 짧은 단편에 그것을 만든 감독의 체취와 입김이 진하게 뿜어져 나왔다는 점.
테오 앙겔로폴로스 감독 편에 나온 잔느 모로는
나를 충격에 빠트렸고, 늙어서 더욱 빛나는 여배우의 또다른 아우라에 관해
잠시 생각을 해보았다.
역시 기타노 다케시구나, 이키 아우리스마키구나, 차이밍량이구나,
라스 폰 트리에구나......(10여 편 정도 영화와 감독을 대강 알아맞혔다.)
제일 웃겼던 건 역시, 켄 로치였다.
표를 끊으려고 사람들이 줄을 선 극장 로비에서 아버지와 10대 아들이
함께 볼 영화를 고르고 있다.
그들 뒤에 줄을 선 사람들은 불평을 늘어놓는데 부자는 좀처럼 영화를 고르지 못한다.
볼멘소리가 나오고, 또, 그들 부자를 옹호하는 중년여성의 대꾸가 이어진다.
결국 그 부자는 영화를 고르지 못하고 축구나 하자며 극장을 빠져나간다.('해피엔딩')
영화나 극장과 관련해 최근에 가장 인상적인 게 무엇이었는지 생각해 봤다.
두어 달 전 광화문 미로 스페이스에 <요시노 이발관>을 보러 갔다.
<카모메 식당>의 감독 작품인데도 이상하게 이 영화는 별로 땡기지 않았고
고개를 갸우뚱하며 영화를 보러 간 것이다.
결국은 미련이 문제다.
좋은 일은 잘 모르겠는데, 나쁜 일은 예감이 '백발구십중'이다!
영화는 하품이 나올 만큼 내용이 너무 빤해서 당혹스러울 지경이었다.
아침 일찍 집을 빠져나오느라 부랴부랴 샤워를 하고 방과후 아이들이 먹을
간식을 챙기고 메모를 남기고 동네 버스정류장에서 시계를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고 한
그 모든 행동들이 무색하기 짝이 없었다.
도무지 극장 로비에서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던 나는
30분쯤 뒤 연이어 상영되는 최민식 주연의<히말라야, 바람이 머무는 곳> 티켓을 끊고 말았다.
빈속에 김밥이라도 한 줄 먹으려고 영화관을 잠시 빠져나왔더니
알렉스와 호란 등 클레지콰이 멤버들이 지나갔다.
(그 얼마 전 안국동 모 극장에서 <걸어도 걸어도>를 조조로 보던 날에는
삼청동수제비집 앞에서 이를 쑤시고 있는 이동관 딴나라당 대변인을 봤다.)
라스폰 트리에 감독 편 에피소드도 무지 웃겼다.
시사회 때 영화는 보지 않고 귓속말로 자기 자랑만 늘어놓는 한 영화 평론가의
면상을 망치로 후려갈기는 영화감독의 이야기였다.
망치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살다보면 때때로 흉폭한 감정에 휩싸일 때가 있다.
기타노 다케시 편이었던가, <그들 각자의 영화관>에도 잠시 화면이 나왔는데
남양주 살 때 대학로의 '하이퍼텍 나다'에 <키즈 리턴>을 보러 갔다가
10분 늦었다고 입장을 안 시켜줘 허탕을 치고 나왔다.
돌아나오는 길, 눈물이 찔끔 나올 뻔했다.
좀 뜬금없지만, <그들 각자의 영화관>을 보면서 든 생각이다.
관객이 조금 늦게 와도 입장을 시켜줬으면 좋겠고 김밥이나 샌드위치 정도는
먹게 해줬으면 좋겠다.
(맥주도 팔면 더 좋고.)
배에서 쪼르륵 소리가 나는데도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눈을 부릅뜨고
자리를 뜨지 않는 예술영화 관객 노릇도 더이상 못할 짓이라는 생각.
어느 날 오후, 낙원상가의 극장에 <바흐, 이전의 침묵>이라는 영화를 보러 갔더니
나 같은 인간들이 수십 명, 끝까지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었다.
미동도 없이......
'어느 좋은 날', 기타노 다케시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