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사는 법 그림책은 내 친구 22
콜린 톰슨 글.그림, 이지원 옮김 / 논장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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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이 천 개나 되는 도서관의 낭하를 걸으며 기웃기웃 서가를 구경하는 재미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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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에서 춤추다>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경계에서 춤추다 - 서울-베를린, 언어의 집을 부수고 떠난 유랑자들
서경식 & 타와다 요오꼬 지음. 서은혜 옮김 / 창비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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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번에 오셨을 때는 동독 시절부터 있었던 '차이꼽스끼 에크'에
모두 함께 갔었죠? 이번에 오시면 꼭 '까페 마야꼽스끼'에 갑시다.
여기는 내부장식이 아름답고 값은 조금 비싸지만 음식이 정말 맛있습니다.
(...)메뉴에 있는 마야꼽스끼의 얼굴은 어쩐지 화가 나 있는 듯이
보이긴 합니다만
.(2007년 2월 14일 타와다 요오꼬의 답신)

2006년 7월, 독일 쾰른에서 열린 '디아스포라와 예술' 강연회장에서
처음 만난 두 디아스포라 서경식과 타와다 요오꼬는 명함을 교환한다.
타와다 요오꼬의 주소는 '베를린 마야꼽스끼 링크 xx번지'.
좋아하는 시인 이름의 그 주소에 온통 마음을 빼앗긴 서경식은 며칠 후
기세좋게 그 집을 방문하는데......

두 사람의 서신 왕래는 그렇게 이루어졌다.
'지명에 매혹된 일 없으셨나요?'
하는 서경식의 첫 편지에
타와다 요오꼬는 이렇게 재치있는 인사로 마무리한다.
'이번에 오시면 까페 마야꼽스끼에서 저녁을......'

광주 충로 뒷골목의
경양식집 '브레히트와 노신'이 아직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광주 비엔날레에 빠지지 않고 오는 그인만큼, 그런 이름의 식당이 있는 걸 안다면
한 번은 꼭 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
(비엔날레나 망월동 묘역을 혼자 찾았다는 서경식의 다른 저서에 실린 글이
참 인상적이었다. 광주에 몇 번 가보지 않았지만 나도 언제나 혼자였고
'브레히트와 노신'에서 돈가스와 맥주를 먹는 것으로 짧은 여행을 마무리하곤 했다.)

브레히트는 잘 모르겠지만 노신은 서경식이 몇 번인가 이야기한 작가다.
'당신의 고향은 어디입니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는 이 책 아홉번째 편지에도
노신의 글을 소개하고 있다.

집 이름 여행 놀이 빛 목소리 번역 등등 열 개의 주제로 나누어
두 사람이 나누는 이야기는 종횡무진, 전혀 막힘이 없고 도무지 경계가 없다.

일도 언어도 예술도 너무 근엄하고 진지하게만 말고, 놀이처럼 가볍고 쉽게 접근하자는
견해에서는 일치를 이루기도 하지만 두 사람이 제각각 딴청을 부리는 듯 보일 때도 있다.
그것이야말로 남의 편지를 몰래 훔쳐 읽는 듯한 묘미가 아닐까.

'번역'에 대한 이야기 중 타와다 요오꼬 여사의 다음과 같은 묘사에
나도 모르게 무릎을 쳤다.

- 하쯔(hearts)와 모쯔(닭 소 돼지등의 내장을 뜻하는 일본어 준말)는 운이 같지만
후자는 영어가 아니라 한자어입니다.
내장보다는 창자 쪽이 무섭죠? 오래된 낱말의 주름은 깊고 매력적입니다.(167쪽)

보통 입담이 아니다.
다음 글을 읽으며 아꾸다가와 상을 받았다는 그녀의 소설을 꼭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 일본이 주변 나라들을 상대로 침략전쟁을 일으켜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지만
그것을 지적당하면 오히려 뻔뻔해지는 이유는 '지면 바로 죽어버릴 작정이었으니
나 자신이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가 된 것은 우연이다'라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내가 죽으면 되니까'라든가 '나 역시 죽을 각오로 하고 있으니까' 식의 사고방식은
실은 몹시도 잔혹한 것이지만 어느샌가 그것이 달콤한 자기도취가 되어가는 것이죠.(176쪽)

서경식이 소개하는 빈 외곽의 정신치료 요양소 '예술가의 집' 내의
작은 미술관 이야기도 빠트릴 수 없다.
그 시설을 취재중인 유명한 아나운서가 어느 날 식당 구석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한 사람에게 다가가 뭘 그리고 있냐고 물었다. 
"방해하지 말고 저리 가!"가 그녀에게 돌아온 대답이었다.
그 단호한 대답이야말로 예술가의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치료를 위해 그림을 그리는 환자'가 아니라 '환자이기도 한 예술가'들의
적나라한 예술이라는 뜻으로 '아르뷔르 쎈터'(아르뷔르 Art Brut : 프랑스어)
이름이 바뀌었다는 이야기도 무척 흥미로웠다.
미로나 에곤 쉴레 등 화가의 그림과 정신질환을 앓는 환자의 그림이 무엇이 다른가,
'누가 광인이고 누가 광인이 아닌가?' 하는 인간의 '경계'에 대한 질문은
언제 들어도 깊은 울림이 있다.

식당 이름 이야기를 앞에서 너무 길게 하다보니 리뷰가 길어졌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마디 덧붙이고 싶은 것이 있다.
메뉴판의 '어쩐지 화가 나 있는 듯이 보이는 마야꼽스끼 시인'의 사진이
명함판 크기의 흑백사진으로(타와다 요오꼬의 답신 옆 페이지에)
떠억하니 실려 있다는 사실.
그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번쩍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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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27 20: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3-28 12: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3-28 18: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4-01 13: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Phantomlady 2010-04-01 1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뉴판의 '어쩐지 화가 나 있는 듯이 보이는 마야꼽스끼 시인'의 사진이
명함판 크기의 흑백사진으로 떠억하니 실려 있다는...
마야코프스키 카페.
책보다 그 사진이 더 보고 싶네요. 혹시 기회되면 올려주세요 ^^

로드무비 2010-04-01 22:19   좋아요 0 | URL
snowdrop 님, 아글씨, 제가 그 사진을 찾아봤는데
제 재주로는 찾을 수가 없더라고요.
그리고 그게 명함판인지 반명함판인지도 헷갈립니다.
책으로 직접 보시는 게 빠를 듯.^^

(나중에라도 발견하면 이 리뷰에 꼭 올릴게요.)
 
키친 Kitchien 2
조주희 글 그림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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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한갓진 주말 오후, 한 통 가득 세탁기에 빨래를 돌려놓고  
오랜만에 빌려온 두 권의 요리만화를 읽었다.
요시나가 후미의 <어제 뭐 먹었어?> 3권과 조주희의 <키친> 2권.

'장보기는 사냥과 비슷하다.'

<어제 뭐 먹었어?> 에피소드 22는 이렇게 의미심장한 말로 시작된다.
40대 중반의 잘생긴 변호사 시로는 '게이'로 미용사 애인 겐지와 동거 중인데
퇴근길에 시장을 봐와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게 유일한 취미이다.
마지막 남은 세일 채소봉지를 누가 먼저 움켜쥐느냐,
그런 의미에서 장보기는 '사냥' 맞다.
그의 애인 겐지는 그날 오후 퍼머를 하는 동안 세상 어디에도 하소연할 수 없었던
손님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한 명의 지명손님을 새로 확보한다.
'각자의 사냥을 끝마친 하루', 둘은 사이좋게 마주앉아 시로의 요리를 먹는다.
에피소드 22의 마지막 장면이다.
깔끔하게 잘 맞아떨어지는 이야기와 구성과 다양한 음식 레시피가 세련된 만환데
'파드득나물'이니 '양하'니 모르는 재료들이 많아 건성건성 보아넘기게 되는 게 단점.

조주희의 <키친>은 아베 야로의 <심야식당>을 능가하는 요리만화다.
'어제의 카레'라든지 '비엔나소시지'라든지 먹다 남은 카레나 소시지 하나를 가지고도
이야기를 풀어가는 솜씨는 훌륭하지만, 5권까지 끌고 오면서 너무 작위적인 설정이
많아졌다는 것이 <심야식당>에 대한 내 생각이라면,
<키친>은 한 편 한 편의 에피소드가 구체적인 요리와 함께 생생하게 살아 숨쉰다.

<키친>2의 에피소드 23 '채식 철판구이' 스토리는 다음과 같다.

성공한 여성 CEO나 인기배우, 앵커 등의 인터뷰를 전담하다가 
난생처음 요리 파트를 맡게 된 야심찬 젊은 여성 기자.
카메라 기자를 대동하고 그녀가 취재하러 간 곳은 프랑스 유학에서 막 돌아와
농사를 지으며 전원생활을 하는 한 푸드 스타일리스트의 집과 텃밭.
그녀의 머릿속에는 이런 제목의 기사가 펼쳐진다.

- 웰빙이 대세! 마지막 남은 블루오션은 농촌이다.
귀농 젊은이의 성공신화, 그녀가 꿈꾸는 세계.

그러나 이 푸드 스타일리스트는 다음과 같은 대답으로 기자의 야심찬 기대와 구상을
마구 헝클어 놓는다.

"채식 철판구이를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으시겠죠? 채식의 철학이 반영되었다거나..."

"그냥 맛있으니까요. 제일 좋아하는 메뉴예요.
버섯, 브로콜리, 양배추, 가지, 호박(그리고 감자와 고구마는 따로 살짝 익혀서...)
재료마다 냄새가 다 다르죠? 대부분의 요리들은 재료가 섞여지는데
이건 각자의 목소리를 내는 것 같아 좋아요.(88쪽)

다른 사람의 칭찬을 기대하고 만드는 요리들에 질려 자신을 위한 음식을
만들고 싶다는 게 그녀의 유일한 꿈.

에피소드 26 '산사의 크리스마스'는 한 행자의 이런 독백으로 시작된다.

-불교에서는 다른 사람을 위해 밥을 차려주는 만큼 좋은 공덕도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난 행자 시절에 평생 할 공덕을 쌓은 셈이다.(133쪽)

비보이 출신의 행자 친구는 어느 날 스님 독경 소리에 몸이 움찔거려 춤을 추고 싶어
견딜 수 없다고 고백하는데.....

'삼라만상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 최소한의 밥으로 나를 만드는 것'
'다른 사람을 위해 밥을 짓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공덕이라는 깨달음을 뒤로 하고
어느 날 그는 선물 받은 누룽지를 들고 산문山門을 나선다.

이야기가 아무리 재밌고 그럴듯해도 그림으로 보는 요리가 신통찮으면
요리만화는 황이다.
그런데 2권의 첫 에피소드 '나이 드는 음식(떡국)'부터 국그릇 속의 떡과 만두과
얼마나 리얼한지 절로 침을 삼키게 된다.
(쏘가리탕에 둥둥 뜬 고추기름은 진짜 고추기름 같다. 영화로 비유하면 '3D' 요리만화!)
소재도 대단한 요리들이 아니라 생활 속 소박한 음식들이라 더 정감이 간다.

에피소드가 끝날 때마다 실린 작가의 이야기도 무지 웃기고, 요리 팁도 알차다.
<키친>은 올컬러에, 책값이 만 원이나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딸아이의 책꽂이에 꽂아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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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trash 2010-03-14 1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간만에 사람 많은 시내를 돌아다니다가 '주먹 고기'를 먹었어요.
오랜만에 고기를 먹어서인지, 시내를 돌아다녀서인지
어제 밤새도록 속도 아프고 머리도 아파서 고생 또 고생

그래도 배는 또 고파오고, 먹을 건 없고, 속은 여전히 안좋고... 츄륙-ㅠ-

로드무비 2010-03-14 22:53   좋아요 0 | URL
주먹고기라 하시면 소금구이 말씀이십니까?ㅎㅎ
본래 과식이나 과음한 다음 날이 배가 더 고픈 법이지요.
지금은 뭘 좀 챙겨 드셨는지...

어제 지난해 담근 매실원액을 큰 병으로 두 병 내렸는데
좀 나눠드리고 싶네요.=3=3=3

마노아 2010-03-14 2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백배 공감이에요. 심야식당은 3편까지 읽고는 중고샵에 되팔았어요, 전 키친이 훨씬 감동적이었답니다.^^

로드무비 2010-03-14 22:54   좋아요 0 | URL
키친 1권 읽고 깜짝 놀랐는데 어제 오후 대여점 책꽂이에 있더라고요.
두 권의 만화가 나란히 꽂혀 있어 운명이라 생각하고 빌려왔습니다.ㅎㅎ

2010-03-14 22: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3-14 22: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nada 2010-03-14 2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야, 독경 소리에 몸이 움찔거리는 전직 비보이라.
굉장한데요.^^

..요즘 '공덕'이란 단어가 참 좋은 울림으로 다가와요.

2010-03-15 11: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림으로 읽는 국화와 칼 Picture Life Classic 4
루스 베네딕트 지음, 김진근 옮김 / 봄풀출판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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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화는 본래 만세일계(萬歲一系)라 불리는 일본 황실을 상징하는 꽃이고,
칼은 일본 사무라이 계층과 그 정신적 지주인 무사도의 상징이다.
저자는 일본 민족의 영혼 깊숙이 숨어 있는 전혀 다른 특징 두 가지를 표현하기 위해
국화와 칼이라는 상반되는 이미지의 사물을 제시했다.
저자가 말한 것처럼 일본인은 온순하고 예의 바르고 겸허하지만
또한 거칠고 야만스러우며,국화를 재배하는 일에 깊이 심취하는 것처럼
아름다움을 추구하지만, 폭력적이며 무사도와 칼의 명예에 집착한다.(서문 중에서)

리뷰에 마음놓고 딴소리를 하기 위해 서문을 좀 길게 인용했다.
최근 일본과 관련하여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이번 동계올림픽 때
김연아 선수가 금메달을 목에 걸고 아사다 마오가 은메달에 머물게 되자
선수와 일본 네티즌이 보여주었던 신경질적인 반응이었다.

또 하나는 지난주 MBC의 시사 프로그램('후, 플러스')에서 본 양심적인 일본인들.
1945년 9월 배를 타고 해협을 건너다 폭풍 속에 사라진 우리 나라 노동자(미쓰비시 징용공) 
246명 중 수습이 된 유골을 보관하고 있는 일본 스님과 주민들의 얼굴이었다.
자국 국민의 유골을 몇십 년째 방치하고 진상조사조차 외면하는 한국 정부의 무신경과
몰지각한 처사를 생각하니 위패를 세우고 보관해 주는 일본 스님들과 주민들에
감읍할 뻔했는데... 금방 제정신이 들었다.
(일본이야말로 이 비극적인 사건의 원인 제공자가 아닌가.)

일본인들은 진심으로 그렇게 믿었다고 한다.
자신들이 앞장서서 낙후된 이웃 나라들을 도와주고 이끌어야 한다고.
그것이 이른바 침략의 이유가 되었던 '대동아 공영권'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렇게도 뻔뻔한 얼굴로 "우리는 당신들을 도와주려고 했는데
왜 고마워하지 않느냐고" 종군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엉뚱한 이야기를
늘어놓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생각의 저변에는 천황제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깔려 있다.

지난해 후지와라 신야의 야심찬 논픽션 <황천의 개>릃 읽으며 일본이라는 나라와
일본인에 대한 궁금증이 두 배 이상 증폭되었다.
세상에서 점점 잊혀져 가는 '옴 진리교'의 교주 아사하라 쇼코의 고향을 찾아
그의 정신의 뿌리를 뒤쫓는 긴 글이 책 뒤에 실렸는데,
후지와라 신야의 치밀하고 집요한 접근 방식이 인상 깊었던 것이다.
그는 직관을 무기로 오랜 시간 그의 뒤를 밟아 사람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아사하라 쇼코의 새로운 면모를 밝혀낸다.

루스 베네딕트의 <그림으로 읽는 국화와 칼>을 읽으며 다소 신기한 체험을 했다.
위에 소개한 <황천의 개>처럼,  다자이 오사무의 <사양>이나 그동안 까맣게 잊고 있던 
일본 문학의 한 장면 장면들이 저절로 떠올랐던 것이다.
마음의 상처를 입었으나 이를 내색하지 않는, 나른하고 퇴폐적인 정조가
일본 소설에는 눈에 많이 띄는데 이 책에는 일본인들의 과도한 '부채의식'이나 집요한 성정,
탐미의식 등이 일본의 역사와 함께 유기적으로 얽혀 있다.

히라시노 게이고의 <사명과 영혼의 경계>나, 비교적 최근에 읽은 미나토 가나에의
<고백>, 텐도 아라타의 <애도하는 사람> 등도 예외는 아니다.

"우유를 다 마셨으면 차례대로 자기 번호가 적힌 케이스에 종이팩을 갖다놓고
자리에 앉아요. 다들 마신 것 같군요. '종업식 날까지 우유?'라는 소리도 들리던데
우유시간도 오늘로 끝입니다. 고생 많았어요."

'세상에서 가장 차가운 고백'이라는 부제가 붙은 소설 <고백>의 첫머리다.
상냥한 미소에 다정다감한 목소리의 젊은 여교사는 종업식에서 우유 이야기를 시작으로
자신의 어린딸이 살해되던 날과 자신의 전인생을 학생들 앞에서 털어놓는다.
좋은 것은 좋은 것대로, 나쁜 것은 나쁜 것대로 받은 것을 그대로 되돌려준다는
일본의 부채 의식과 복수 심리가 소설 속에 잘 녹아들었다.

'인간은 그 사람이 아니고는 해낼 수 없는 사명이라는 걸 갖고 태어난다'고 강변하는
히라시노 게이고의 의학 스릴러 <사명과 영혼의 경계>.
그리고 인간 각자의 죽음은  노천에서 얼어죽은 거지나 심지어 살인자의 죽음이라도
각자 고유한 죽음이고 그들을 구체적으로 기억하며 애도해야 한다며 타인이 죽은 자리를
찾아 떠도는 <애도하는 사람>.
물질적인 것보다 정신적인 것을 우위에 두고 명예와 의리를 추구하는 일본인의 속성이
어느 작품보다 잘 나타나 있다.
이 책의 저자 루스 베네딕트 여사는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봇짱(도련님)> 중
빙수 한 그릇을 얻어먹고 앙앙불락하는 주인공을 '일본인의 과도한 보은정신'의 예로
들고 있다. 빙수 한 그릇 가지고 난리 치는 주인공이 그렇게 이상하다면, 
그보다 더한 다른 숱한 소설의 주인공들은 어쩌란 말인가!
구체적인 범죄보다도, 개인에 가해지는'수치와 모욕'을 더욱 견딜 수 없어하는
일본 소설 속 인물들은 소심하면서도 또 굉장히 강하고 단호한 태도를 보여서 
어리둥절하면서도 흥미를 유발하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주목했던 부분은 일본인의 '이중성'이다.
천황의 명령이라면 죽음의 불바다도 뛰어들었던 그들이 천황의 항복 선언과 함께
깨끗이 패전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나라 건설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는 부분.
좋게 보면 합리적이고 쿨한 태도인 것 같으나 어쩐지 무시무시한 데가 있다.
'죽음을 불사하는' 일본인의 생사관은 '사무라이 정신'과 맞닿아 있다는데......

영화감독 기타노 다케시의 생사관을 볼 수 있는 <죽기 위해 사는 법>에는
가난한 집안 형편을 염두에 두지 않고 온전히 자신만을 위한 새로운 인생을 살기로
결심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자신의 욕망을 위해 '죽을 자리'를 궁극적으로 떠올리며
이제까지의 자신과 깨끗이 결별하는 청년 기타노 다케시의 얼굴은 바로
<국화와 칼>에서  보여주는 일본인의 초상에 가장 가까운 것 같다.
(일본 문학작품 속에는 평소 예의 바르고 소심하며 의리에 목숨을 걸다가
어떤 상황에서 갑자기 화산처럼 폭발하는 인물들이 자주 등장한다.)

<그림으로 읽는 국화와 칼>을 읽으며 문득 떠오른 몇몇 문학작품과 
나의 소소한  생각들을 가볍게 연결시켜 보았다.
일본인의 특성뿐 아니라 역사도 개관하는 등 무게감이 상당히 있는 책인데도
우키요에 그림과 사진, 삽화들이 풍성하게 실려 있어서 재밌게 읽힌다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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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0-03-08 2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국화와 칼을 통속적으로 풀어 쓴 책이 전여옥<일본은 없다>입니다.이 두 책을 연속해서 읽어보면서 여러가지가 떠오르더군요.혹시 관심 있으면 시도해 보시기 바랍니다.

로드무비 2010-03-08 22:38   좋아요 0 | URL
일본은 없다가 처음 나왔을 때 읽고 뭔지 꽤 그럴듯하다고 여겨져
다음에 나온 두어 권의 책(간절하라 어쩌고 하는 책까지)도 챙겨 읽었는데요.
딱, 거기까지였습니다.
노이에자이트 님, 반갑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03-09 16:36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국화와 칼'을 보면 우리나라에도 있는 관습을 일본 특유의 것으로 알고 있는 것도 있더군요.베네딕트가 우리나라도 연구했다면 책 내용이 달라졌을 겁니다.역시 그녀는 일본어를 전혀 몰랐다는 것이 큰 약점이지요.깊은 정글이나 외딴 섬의 부족을 연구하기 위해 그곳 언어를 직접 공부해서 낸 연구서와 비교해서 아무래도 그런 점을 많이 지적받는 것 같습니다.
재밌는 것은 주한 외국인들은 한국인들이 이중성이 강하다고 한다는 거죠.제가 아는 외국인도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구요.

로드무비 2010-03-09 22:45   좋아요 0 | URL
미국 내 일본 포로들의 생활모습과 인터뷰에 많이 기대어 쓴 글이라더군요.
말씀하신 것처럼 일본보다 도리어 우리나라를 떠올리게 하는 부분들도
꽤 있었습니다.
얼마나 정확한 연구서냐 하는 건 사실 제 관심 밖의 일이고
일본인의 특성들 중 매치가 되는 문학작품들을 떠올리니
더 재밌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한국인의 '이중성'이 그렇게 강한가요?
잘 모르겠지만 일본인의 이중성과는 또 다른 종류 같은데요.^^

노이에자이트 2010-03-09 23:27   좋아요 0 | URL
결국은 보편성 특수성 문제로 귀결되는 것 같아요.그리고 이중성 문제인데 생소하고 이질적인 대상에게 이중적이라고 하는 것 같아요.로드무비 님 말처럼 이 세상 사람 모두 이중적인 데가 있지요.그 이중성 자체가 좀 다양하게 나타나는 게 아닐까요...

릴케 현상 2010-03-08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 잘읽었습니당...로드무비님 독서의 폭을 여지없이 보여주시는군요, 전 여지껏 국화와 칼도 안 읽었다눙

로드무비 2010-03-08 23:53   좋아요 0 | URL
제 알량한 독서의 폭을 보여주기 위해 용을 좀 썼습니다요.^^
산책님, <국화와 칼> 꽤 재밌어요.

2010-03-08 23: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3-08 23: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瑚璉 2010-03-09 0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본인과 천황"이라는 책도 퍽 흥미로운 책입니다. 한 번 읽어보세요.

로드무비 2010-03-09 12:20   좋아요 0 | URL
<맛의 달인> 저자네요.
언제 꼭 읽어보겠습니다.^^

rainy 2010-03-09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구성이 골고루고, 맛있고, 영양까지 알찬 식사를 만끽한 것같은 리뷰에요 ^^

로드무비 2010-03-09 12:39   좋아요 0 | URL
좀 횡설수설인데... 그렇게 봐주셔서 얼마나 고마운지요.^^

지혜네 2010-04-22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여길 이제사 들어와 봤네요. 3,4월 계속 바쁘더라구요. 이것저것 읽어보는 재미가 쏠쏠해서 시간가는줄 모르겠네요.^^ 추천해주시는 책들 열씸히 읽을께요. 건강하세요.

2010-04-26 14: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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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 혁명 - 세상을 바꾸는 21세기 생존 프로젝트
강양구.강이현 지음 / 살림터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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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 우리 집 식탁에는 내가 만든 해물찜이 올랐다.
냉동실의 새우 한 팩과 뚱뚱한 콩나물 천 원어치와 미나리 한 주먹거리를 이용한 일품요리.
3천 원어치의 생굴이 들어갔으니 고춧가루까지 재료비를 모두 합하면 8천 원 정도?
큰 접시에 수북 놓으니 배달요리 저리가라였는데  맛도 맛이지만
무엇보다 냉장고 속의 재료를 알뜰하게 활용했다는 점이 흡족했다.
콩나물을 살짝 삶아낸 물에 구운 생김을 부스러뜨려 끓인 김국도 시원하고 맛있었다.
“이번 주는 시장 안 보고 냉장고 속에 있는 걸로 버텨볼 거야.”
언제부턴가 이런 말을 자주 하게 되었는데 지구 환경을 생각해서인지
가정 경제를 생각해서인지 알뜰주부의 면모를 과시하기 위함인지 잘 모르겠다.
아무튼 대형마트엔 가급적 가지 않고 집에서 가장 가까운 작은 가게나
일주일에 한 번 서는 알뜰장터를 이용하려고 한다.
그런데 카레 한 봉지를 사러 가게에 가서 이것저것 집어들다 보면
1만 원 정도는 우습다.
카레를 사러 갔으면 카레만 사오는 그런 습관을 길들여야 하는데......

최근 가장 어이없었던 쇼핑 품목은 고가의 핸드크림.
창 넓은 동네 도서관 정기 간행물실에서 각종 잡지들을 읽다가 문득
책장을 넘기는 거칠고 메마른 나의 손을 발견한 것이다.
나는 집에 오자마자 컴 앞에 앉아 가장 좋은 핸드크림을 검색한 뒤 록xx이라는  
화장품을 가장 큰 용량으로 주문했다. 
도서관에 책 읽으러 갔다가도 꼭 사야 하는 상품이 발견되는 식이니 난감하기 짝이 없다.
(이거야, 원, MBC 모 드라마 엄지원의 "남자도 없는데 구두도 없어야 해?"하는 대사처럼,
"나이도 많은데 핸드크림 하나 없어야 돼!? 하고 절규하는 것과 마찬가지.)

<밥상혁명>의 부제는 ‘세상을 바꾸는 21세기 생존 프로젝터’이다.
’농업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블루오션‘인데 우리나라는 물론 유럽의 소농들도
무서운 속도로 사라지고 있다.(유럽의 작은 농장들은 하루에 1000개 정도씩 사라지고 있단다.)
’세계화‘라는 미명하에 마음대로 품종을 개량(말이 좋아 개량)하고
생산자와 소비자를 노략질하는 다국적 기업들.
우리나라는 식량 자급률이 30퍼센트에도  미치지 못하는데(OECD 국가 중 거의 꼴찌)
'식량주권'의 중요성을 아직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식량확보‘에만 급급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

건강과도 직결된 ’제철에 난, 신선한, 지속가능한 먹을거리‘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깊어지고 있다.
지역에서 난 농작물 등의 먹을거리를 지역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건 
밥상혁명  중에서도  기본의 기본 아닌가!
경기도 이천시 율면의 두 농가와 긴밀한 협력관계를 맺고 있는 전국 각지 100여 회원 가구들의
’콩 세 알‘ 모임의 경우를 보면,  생산자와 소비자의 농산물 직거래가 그리 요원한 일로
보이지는 않는다.
책 속의 소제목처럼 ’지역 먹을거리는 더 이상 유행이 아니라 생존‘이다.
이웃 일본에서는 빨간색 등 대신 초록색 등을 내거는 식당들이 늘어나고
외식을 하러 온 손님들도 그 초록색 등에 별이 몇 개인지(지역 먹을거리를 90% 이상 사용하면
최고 별 다섯 개, 그 다음은 네 개...) 살펴보고 식당을 고른단다.

파국으로 치닫는 현대문명의 대안은 농촌공동체를 살리는 일에서 시작된다.
시장이 강요하는 쓰레기와 다름없는 먹을거리를 양처럼 순한 얼굴로 받아먹고 있는 우리들,
멀리 갈것 없이 농산물을 직거래로 구입해 먹는 방법부터 찾아보아야겠다.
어차피 이 모양이라면, 어리석은 세상의 부드럽고 강한 시민이 되어주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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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19 20: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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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19 22: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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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20 08: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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