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상한 슬픔의 원더랜드
정미경 지음 / 현대문학 / 2005년 6월
평점 :
품절
오늘 아침, 정미경의 신작 장편소설 <이상한 슬픔의 원더랜드> 리뷰를 한 시간 넘게 공들여 썼다가
갑자기 컴퓨터가 다운되는 바람에 몽땅 날려먹었다.
올스톱된 컴퓨터 화면에는 몇 줄의 문장이 턱걸이하듯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었다.
---주인공들의 알 수 없는 매력에 대해 제발 설명 좀 해달란 말이오! 작가들이여!
그리고 그 밑의 몇 줄을 읽어보니 컴퓨터 다운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무모한 일이지만 나는 달랑 이 한 줄을 가지고 리뷰를 새로 써보기로 한다.
<이상한 슬픔의 원더랜드>는 1987년 6월항쟁 당시 명문대생이고 야학교사였던 최한석, 김동주,
유지원과 당시 공장 근로자로 야학에 다녔던 오윤자(나중에 여배우가 되면서 오윤희로 이름을 바꿈)가
주인공이다.
이야기가 시작되는 시점은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월드컵의 함성과 열기가 뜨거운 2002년 6월!
이 두 유월을 가지고 작가는 무슨 이야기가 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들 외 또 한 명의 주인공 이중호는 정치가로 변모한 최한석의 비밀금고 역할을 맡으며,
최한석이 그렇게도 여자들을 갈아치우면서도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사랑하는 여성이라고 믿고 있는
유지원을 어느 화랑에서 우연히 만난 후 알 수 없는 그녀의 매력에 빠져 허우적댄다.
돈밖에 모르던 냉혈한 인간인데......
자본주의 사회의 폐해, 혹은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주려고 장치된 것처럼 보이는 이중호의 직업과
관련하여 작가가 끌어온 낯선 경제용어와 상황 설명들도 드라마 속에 충분히 녹아들지 못해
지루하고 어색하기는 마찬가지.
또 한 명의 주인공, 대학 다닐 때부터 같은 미술학도였던 유지원을 사랑하지만 내색하지 않고
언제까지나 그녀의 좋은 친구로 남는 선량하고 쓸쓸한 사내 김동주도 소설이나 드라마에서 너무 많이
본 진부한 캐릭터가 아닐 수 없다.
친한 친구 동주의 권유로 마지못해 야학에 한 발을 걸치고, 그곳에서 만난 최한석에게
매료되어 6월항쟁 당시 시위현장 곳곳에 내걸렸던 대형 걸개그림 그리는 일에 뛰어들고,
15년 후 화가가 되어서도 그림 구입을 미끼로 접근하는 수상한 남자 이중호를 거부하지도,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잡아끌지도 않으면서 자기 집에 드나들도록 허용하는, 한마디로 자기의
의견이라곤 하나도 없는 것 같은 무색무취한 지원에게 세 남자가 그토록 목을 매는 이유는 뭘까?
사정없이 내뿜는 최한석의 카리스마에 보는 족족 넘어가는 여성들, 그리고 그 잘난 세 남자를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간단하게 장악하는 유지원, 두 주인공의 그 알 수 없는 카리스마와 매력을
작가가 좀 자세히, 알기 쉽게 설명해 주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 세상 어느 구석엔가 시퍼렇게 살아 있을 듯싶던, 이 작가의 전작 <나의 피투성이 연인>의 미옥이나
비소 여인 같은 생생한 캐릭터의 등장인물을 <이상한 슬픔의 원더랜드>에서는 만나볼 수 없었다.
아이들을 잠재워놓고 술을 마시는 게 유일한 낙인 양평 보육원 원장 신부님 한 분이 인상적이었을 뿐.
여공이며 야학 학생에서 나중에 여배우로 화려하게 변신하는 윤희의 이야기도 양념이 잘 배어들지
않은 겉절이처럼 짜고 맵기만 하고 서걱서걱 겉돌기는 마찬가지.
적어도 막 무친 겉절이라면 싱싱하여 아삭아삭 씹는 맛이라도 있어야 할 텐데 내 입맛에 이도저도 아닌
맛이었다는 게 아쉬움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