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자정 무렵 배철수가 진행하는 7080을 잠시 보는데 '도시의 그림자'가 나와서
한때 내가 무지 좋아했던 노래 '이 어둠의 이 슬픔'을 불러주었다.
김화란이라는 여성 보컬의 실력이 빼어났던 걸로 기억하는데 아쉽게도 촉새같이 생긴
바다새의 한 멤버가 나와서 대신 불렀다.
그때가 몇 년도였던가?
기억도 안 난다.
부산 광복동에는 '무아無我'라는 음악실이 있었다.
내가 취직이 되어 서울로 올라온 것이 1988년이니까 아마 방황이 가장 극심하던
그 전 해쯤 되지 않을까?
시립도서관을 드나들다가 그곳 사서 한 명과 눈이 맞아 더러 밖에서 만나기도 하고 했는데
어느 날 그녀가 나를 무아로 데리고 갔다.
나는 영화를 보는 것 외에는 음악이나 연극 등 문화의 세례를 거의 받지 못했는데 그녀는 꾼이었다.
그녀 덕분에 떼아뜨르니 뭐니 하는 이상한 곳으로 끌려가 전성환 씨의 1인극을 관람하기도 했다.
그날 무아에는 도시의 그림자가 나왔다.
나는 여성 보컬 김화란에게 그날 뿅 갔다.
나의 여성 취향은 어디까지나 '선머슴 같은 외모의 실력자'라는 걸 그날 알았다.
오늘아침에는 또 뜬금없이 부산 조방앞 부근 보림극장 뒤 여로다방이 떠오른다.
어느 소설가와 한 팀을 이뤄 작고문인이나 원로문인들의 유족 혹은 가족을 찾아다니며
친필원고나 일기장, 편지, 안경 등의 귀중한 자료를 모으고 다닐 때
어느 날 부산에 함께 출장을 가 소설가 요산 김정한 선생을 뵈온 적이 있다.
그 이야기는 언제 다음에 기회 있으면 하기로 하고 오늘은 어디까지나 여로다방 이야기다.
부산에 간 김에 그 소설가의 친구를 만나 밥을 먹었는데 그는 모 신문사 논설위원으로
40대 중반의 독신여성이었다.
그 소설가는 바쁜 일이 있어 먼저 서울로 가고, 나는 다음날 소설가의 친구분을 만나러 신문사에 놀러갔다.
그런데 마침 그 무렵 그분이 오십견을 심하게 앓고 계셨던 거다.
조방앞 보림극장 뒷골목 무슨 약국이 오십견에 정통한 처방으로 유명하다고 해서
물어물어 함께 그곳을 찾아갔다.
오른쪽 어깨였는지 왼쪽 어깨였는지 기억이 안 나는데 아무튼 무지 아파서 밤에 잠도 못 잔다고
얼굴을 찡그리며 고통을 호소하신 장소가 바로 그 골목에 있던 '여로다방' 이었던 것이다.
대학에 강의도 나가고 유수의 신문사 논설위원 정도면 객관적으로 봤을 때 꽤 잘 나가는 사람 아닌가!
그런데 내게 그녀는 오십견의 고통과 독신의 외로움을 하소연하던 연약한 여성의 이미지로 남아 있다.
여로다방은 그 약국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어서 우리가 잠시 궁둥이를 걸친
거리의 벤치 같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참으로 허름하고 촌스럽고 커피맛은 그저그랬다.
그런데 내게는 왜 다방, 하면 여로다방이 떠오르는 것일까!
2,3년 뒤 그 소설가와 무슨 일로 부산을 다시 찾았을 때 함께 송도에 가서 회를 먹는데,
그 논설위원 친구분과 우연히 딱 마주쳤다.
그렇게 먼 바닷가에서 약속도 없이 마주친다는 건 예사 일이 아니다.
그런데 두 분은 얼굴이 굳어지더니 서로를 외면하는 것이다.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진 않았지만 나는 그때 너무 젊어서 두 분이 그러시는 걸 이해할 수 없었다.
오늘 아침 어깨가 뻑적지근하여 혹시 오십견이 오는 건가, 고개를 갸웃하다가
먼 옛날 여로다방을 떠올렸다.
그 사람들은 이제 모두 내 곁에 없다.
무아에 함께 갔던 친구도 몇 년 전 무슨 일론가 나랑 틀어져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