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머릿속에 떠오른 건 간장게장이 아니고 간장게장 국물이었다.
어제 저녁 우리 가족이 일산까지 가서 먹은 한정식 반찬 중의 하나.
먹는 걸 무지 밝히는 나이지만, 요즘 우리 나라 사람들 이렇게 맛난 음식을 밝히는지 몰랐다.
처음 우리가 가기로 한 곳은 일산 시내의 한 씨푸드 레스토랑이었다.
나도 텔레비전 음식 소개 프로그램에서 보고 한 번 꼭 가봤으면 하던 집이었는데 해산물 뷔페로,
세상에나, 각양각색의 회초밥과 길쭉하고 넙적한 연어살을 몇 접시나 갖다먹어도 된다는 거였다.
며칠 전 마침 남편도 어디서 그 이야기를 듣고 와 동생네와 함께 가자고 했다.
자기 용돈으로 쏜다고.
그리하여 드디어 어제 저녁 우리 가족은 부푼 가슴을 안고 두 시간 걸려 일산까지 진출했다.
점심은 거의 거르다시피 하고 일곱 시 무렵 도착했는데, 이게 웬일?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한 로비가 따로 있었고, 내가 보기에 7,80명의 사람들이 바글바글 앉아 있었다.
어여쁜 여성 둘이 데스크에 앉아 전화를 받고 예약 손님들을 안내하고 있었다.
얼마나 기다려야 하느냐고 물으니 두 시간, 평일에는 일주일 전, 주말에는 2주 전에
예약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그곳을 빠져나와 구 백마역 부근에 조성되었다는 먹자골목으로
차를 달렸다.
결국 두 바퀴나 뺑뺑이를 돈 끝에 우리가 안착한 곳은 고급 한정식집이었다.
평소 우리 가족의 외식비라야 동생네와 함께 움직여도 3, 4만 원 내외.
마이 도러와 동주가 환장하는 동네의 댓잎돼지갈비집이 고작이었는데, 어제는 차를 타고
두 시간 가까이 달린 데다 예상 경비도 그 세 배였으니 말을 안해서 그렇지 모두 엄청 흥분해 있었다.
한정식집이 부디 우리 기대를 배반하지 않아야 하는데......
1인당 2만 원짜리 한정식 2인분과 2만 원짜리 갈비찜 정식을 2인분 시켜 먹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종업원 왈, 3만 원짜리 한정식 3인분을 시키는 것이 훨씬 낫다는 것이다.
그렇게 시키면 갈비찜에 게장까지 한 마리 통째 나온다니, 우리는 그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주위를 살펴보니 그 집은 20년 전통의 한정식집으로 방송에 소개된 것만도 여러 차례, 특히
간장게장으로 유명한 집인 듯했다.
음식은 정말 맛있었다, 전복죽부터 시작해 구절판에 조기구이에 갈비찜에 잡채에 장어구이에
다섯 가지 나물에 각종 쌈과 젓갈에 된장찌개에 돌솥밥까지 정말 한 가지도 맛없는 것이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양이 너무 부족하다는 것.
갈비찜은 딱 네다섯 조각이 나왔는데 주하가 배고프다고 난리 부르스를 쳐가지고설랑
한 조각 가지고 쪼개어 맛만 보고 전부 주하의 뱃속으로 들어갔다.
입에 넣자마자 슬슬 녹는 장어구이도 한 점 집어먹으니 끝, 간장게장은 국물까지 짜지 않고 맛있었다.
돌솥밥에 미리 부어둔 물로 숭늉까지 깨끗이 바닥을 내고 나자, 흥건하게 남은 간장게장 국물에
자꾸 눈이 갔다.
"저 국물 가져가면 밥을 다섯 공기는 비벼 아이들 먹이겠는데 싸달라고 하면 안될까?"
책장수님은 물론 우리 올케는 그렇다 치고 짜기로 유명한 남동생까지 고개를 흔들었다.
"그게 그렇게 탐나면 1인분 사가지고 갈까? "
책장수님의 말에 나는 완강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1인분 한 마리에 16,000원 하는 간장게장 한 마리를 누구 코에 붙이려고. 어림도 없는 소리!"
아무리 미련이 남기로서니 간장국물을 싸달라고 하는 건 좀 쪽팔리는 것 같아서 그 집을 나왔는데,
올케가 카운터에서 뭐라고 뭐라고 이야기를 나누며 지갑을 꺼내는 모습이 보인다.
'시누이의 게장국물에 너무 집착하는 모습을 보고 안쓰러워서 한 마리 싸고 있는 건가?'
나는 은근슬쩍 그런 기대를 품었다.
그런데 어럽쇼, 달랑달랑 지갑을 흔들며 빈손으로 나오는 게 아닌가!
뭐 했냐고 물었더니 우리 올케 대답.
"부산(우리 부모님 집)에 네 마리 택배로 보내기로 했어요. 너무 맛있어서!"
내가 본 중 최고로 유능하고 멋진 올케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나는 왜 오늘아침 눈을 뜨자마자 간장게장도 아니고 그 간장게장 국물이 눈앞에 삼삼하지?
이런 제길, 인생이 초라하기 짝이 없구나!
**먹느라고 정신없어서 사진은 못 찍고 이미지는 구글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