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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살개 아버지 하지홍
허은순 지음 / 청어람미디어 / 2005년 12월
평점 :
품절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위인전이나 어떤 유명한 인물의 전기에 대해 선입견이 있다.
그것은 순전히 어린 시절 내가 읽었던 위인전과 전기들에 대한 유쾌하지 않은 기억 때문이다.
그 책들에 의하면 위인들의 어머니는, 용이 승천했다든지 어쨌다든지 하나같이 어마무쌍한
태몽을 꾸고 있었다. 태몽에서부터 사람 야코를 팍 죽이고 들어간다는 말이다.
위인전이나 전기를 읽으며 꿈과 원대한 희망을 품기는커녕, 그나마 가지고 있던 꿈도 피시시식,
바람이 빠져나가기 일쑤였으니.
<삽살개 아버지 하지홍>을 읽었다.
어느 한 길에만 매진, 그 분야의 독보적인 존재가 된 사람들에게는 나도 평소 경외감을 품고 있다.
은행나무 박사라든가, 식충식물 연구가, 심지어는 폐품 이용 설치 미술가, 쌀알에 조각을 하는 사람 등
분야도 대상도 참으로 다양하다.
어느 한 분야를 열심히 연구하여 없어서는 안 되는, 독보적인 사람이 된다는 것은 내가 생각할 때
인간이 이를 수 있는 최고의 경지 중 하나이다.
멸종의 위기에 처한 우리 토종개 삽사리를 보존하기 위해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인 끝에
우리 곁으로 삽살개를 돌려보내주었을 뿐만 아니라, 당당하게 천연기념물 368호로 우리 문화유산에
포함시킨 삽살개 아버지 하지홍.
경북대에서 해마다 열리는 삽살개 전람회에 해빈이라는 소녀가 자신의 개 누리를 데리고 참여하는데
그곳에서 어떤 아저씨를 만났으니 그가 바로 삽살개 아버지 하지홍이라는 설정이다.
전람회장에서 우연히 소녀를 만난 아저씨가 자신의 살아온 이야기를 모두 털어놓는다는 것이
좀 부자연스럽게 느껴진다.(플롯은 그게 끝이다!)
그런데 그 이야기의 전개며 내용이 당황할 정도로 사실적이다.
유전공학 쪽 공부보다는 희귀한 개 삽사리를 연구하는 것이 이름을 남길 공산이 크다고 본 것,
삽살개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면 사료값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지 않겠나 궁리한 것......
그런데 이런 솔직하고 담담한 이야기 기술 방식은 내가 무척 좋아하는 것인데 뭔지 아쉬움이 남는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책인만큼, 사실을 전달하더라도 이야기의 묘미를 좀 살릴 수는 없었을까?
삽사리에 대한 몰랐던 지식을 얻기 위해 이 책을 골라드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삽사리가 귀신을 쫓는 영물이었다든가, 자폐아동이 키울 경우 심리치료의 효과가 탁월하다는 것 등은
아주 흥미로운 사실이었지만...)
어느 날 왕검이라는 이름의, 아저씨가 아주 아끼는 삽사리가 다른 수컷과 싸움이 붙는
장면이 나오는데, 동화를 읽을 때처럼 가슴이 조마조마하고 생동감이 있었다.
이처럼 삽사리와 그가 함께 뒹구는 구체적인 일상이 좀더 소개되었다면 훨씬 책이 풍성하고
재미있을 뻔했다.
아이들이 기대하는 건 삽살개 아버지와 삽사리들이 함께 웃고 울고 뒹굴었던 구체적인 장면이지,
기자나 공무원이랑 어떤 갈등을 겪었고 하는 어른들의 지리멸렬한 세계는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