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거리 점방 느림보 청소년 1
선안나 글, 고광삼 그림 / 느림보 / 2005년 8월
평점 :
절판


제목과 표지에 끌려 찜했다.
'느림보'라는 출판사 이름도 마음에 들었고.
순전히 느낌에 끌려 책을 사고 영화를 보러 가고
마음속에 친구로 점찍기도 한다.
대부분 기대를 배반하는 법이 없다.

삼거리 점방 앞에는 낡은 나무 평상이 하나 있다.
가족도 직업도 없고 팔도 하나밖에 없는 을수 아재가
점방 주인 아지매의 구박을 받아가며
동네 온갖 일에 참견하고 나서며 낮이고 밤이고 술을 마시는 곳이다.

그 평상에는 또 가수 현철이 골목을 쓸러 나왔다가 눈 마주친 동네 사람이랑
궁둥이를 걸치고 멸치와 새우깡을 안주로 맥주를 마시기도 한다.
(어느 프로그램에 가수 현철이 나와 일 없는 날은 골목을 직접 쓸고 동네사람들이랑
가게 평상에서 술을 마신다는 소리가 그렇게 듣기 좋았다.)

태어날 때부터 무릎 아래가 정상적으로 자라지 않아 기어다니는 붙들이를 보고
"뿔뿔이"라고 부르는 을수 아재가 붙들이는 영 밥맛이다.

"엄마, 내 다리는 와 이렇노? 와 딴 아들하고 다르노?"

"그런 사람도 있는 기제.(...) 세상에 똑같은 사람이 어딨노?
큰 사람이 있으머 작은 사람도 있고, 기운 센 사람이 있으머 약한 사람도 있제.
그거맨치로, 걸어 댕기는 사람이 있으머 못 걷는 사람도 있는 기라.
그래도 니는 걷지는 몬해도, 맘대로 돌아댕길 수 안 있나."(8~9쪽)

중학교를 간신히 졸업하고 손재주가 좋은 붙들이는 도장 기술도 배우고
새로 생긴 오복만물수리점에 가서 어깨 너머로 기술을 배운다.
"벌어묵어야제, 빌어묵으머 되나."라는 말이 입에 붙은 엄마의 교육 덕분에
자립심 하나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소년으로 자랐다.

비가 내리면 비를 맞고 눈이 내리면 눈을 맞는 삼거리 점방 앞의 평상처럼
흐르는 세월 따라 조금씩 낡고 거무튀튀해지는 사람들.
그 정경이 눈에 선하고 붙들이가 세상 한 구석에 간신히 마음을 붙이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가슴 한켠이 뻐근하지만 그것은 동정과는 거리가 멀다.

어린이책으로는 오랜만에 재미와 감동을 함께 선사한 <삼거리 점방>.
그 평상에 잠시 앉아보실 생각이 없으신지?



**뒤늦게 생각난 건데 내가 찜한 이책을 산사춘님이 선물해 주셨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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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6-23 11: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건우와 연우 2006-06-23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기꺼이 그 평상에 앉겠습니다.^^

mong 2006-06-23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초딩2학년부터 5학년까지 살았던 바로 그 집이
삼거리 점방이었지요, 평상도 물론 있구요
버드나무 한 그루도 서 있는 집
갑자기 그집이 그리워 지네요 ^^

치니 2006-06-23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저도 기꺼이.

로드무비 2006-06-23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니님, 뭐 좀 드실래요?^-^

mong님, 님의 정서가 우짠지 좋더라니!
점방 집 아이가 어릴 땐 그렇게 부러웠어요.
중국집 딸도 되고 싶었고.;^^;

건우와 연우님, 요즘 자주 와주셔서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평상에 앉기 전에 님, 가볼게요. 후다닥.^^

검둥개 2006-06-25 0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평상 한 구석에 엉뎅이를 붙여볼려유. ^^

로드무비 2006-06-25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검둥개님, '처음처럼' 한 병 깔까요?
두부찌개 한 냄비 끓일게요.^^
 
내 마음대로 할 거야! 생각의 힘을 키우는 꼬마 시민 학교 2
마띠유 드 로비에 지음, 까뜨린느 프로또 그림, 김태희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우리 집 아홉 살 딸아이가 한사코 제 마음대로 하는 것이 있다.
2년째 한 갈래로 질끈 묶는 헤어 스타일 고수와,  치마 절대 안 입기,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 오는 학습지 젊은 남자 선생님께 반말하는 것.

아이가 낯을 많이 가려서 어른이 묻는 말에 입을 떼 제대로 대답만 해도 다행이다 했더니,
학습지 선생님에게는 그것이 나름의 애정 표현인지 무조건 반말이다.
어른에게 왜 반말을 하느냐고 아무리 말해도 소용없다.
아이들은 어느 날 갑자기 자신만의 원칙이라는 것이 마음속에 저절로 생기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왜 이렇게 하면 안 돼?" 하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어른이야말로 원칙 같은 게 좀 확고하게 있어서 아이가 물어올 때마다 자신있게
대답해 줄 수 있으면 좋겠는데, 나 역시 그렇지 못하다.

"넌 왜 항상 그 머리만 고집해? 어느 날은 짧게 단발도 하고 땋기도 하고 그러면 예쁘잖아?"

내가 이렇게 말하면 아이의 입에서는,

"그러면서 엄마는  왜 항상 그 머리야?"

라는 말이 튀어나온다.

치마 문제도 마찬가지.  엄마가 생활 속에서 직접 실천해 보여주지 않는 한,
아이를 100프로 설득할 순 없을 것 같다.

-- 늘 내가 하고 싶은 대로만 하고 살 순 없어요.

그것이 "생각의 힘을 키우는 꼬마 시민학교" 두 번째 권인 이 책의 큰 주제이다.
지금이야 나도 아이가 친구와 놀다가 사소한 잘못을 달려와 고자질해 바치면 
그러면 안된다고 점잖게 말한다.
하지만 간혹 텔레비전에서 왕따나 친구들의 폭력으로 온몸이 멍투성이가 되어
흐느끼는 아이들을 보면 가슴이 철렁하면서......

"친구가 이유없이 때리거나 괴롭히면 숨기지 말고 엄마에게 이야기 해 줘야 해!"

아이가 고학년이 되고 그런 당부를 해야 할 날이 그리 멀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면
가슴이 답답하다.

<내 마음대로 할 거야>는 가스똥이라는 꼬마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따라가며
코믹한 그림과 함께 어떤 주제별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왜 어른들은 항상 이래라 저래라 해요?

어서 가서 자라는 엄마의 말에 아빠의 손에 끌려가며 가스똥이 묻는다.
아빠의 대답은 다음과 같다.

--아빠 엄마 같은 어른들은 너희보다 오래 살았고, 그만큼 세상에 대해 잘 아니까.
아빠랑 엄마가 너희한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는 건
너희가 잘 자랄 수 있도록  도와주려는 거야.

아이의 모든 질문에 나의 대답도 이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부모로서 미처 모르고 있던 현명한 대답이나 대화의 기술을 가르쳐준다기보다는,
솔직한 자세로 인내심을 가지고 아이의 질문에 성심성의껏 대답하라는 것이다.

아이가 재미있게 읽는 것도 읽는 거지만, 다정하고 코믹한 일러스트에
한 장면 한 장면의 내용이 꽤나 구체적이어서 아이의 질문에 대답을 못하고 쩔쩔매는
예비, 혹은 초보 학부모에게는 좋은 지침서가 될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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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뽀스 2006-06-08 15: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딩때 올빽 포니테일이 제 트레이드마크였습니다.
ㅋㅋ

로드무비 2006-06-08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DJ뽀스님, ㅎㅎ 그랬군요.^^

nada 2006-06-08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똘똘한 주하.. "그러면서 엄마는 왜 항상 그 머리야?" ㅎㅎ

아이 키우자면 생각을 많이 해야 할 것 같아요.^^

로드무비 2006-06-08 15: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마는 왜 항상 그 머리야? = 엄마는 왜 항상 그 모양이야?

제 귀에는 그렇게 메아리 칩니다.;;

치니 2006-06-08 15: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경우에는 그냥 '모르겠어'라고 한 적도 꽤 많은거 같아요.
그게 더 안 좋으려나...

Mephistopheles 2006-06-08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기회에 머리모양에 많은 변화를 한번 줘보세요..^^

플레져 2006-06-08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테고리 이름 '어린이책'이 유난히 마음에 들어요 ^^
저도 가끔은 어린애...ㅎㅎ
너무 순종적인, 얌전한 아이였던 것 같아요.
아, 그래도 패션만큼은 내맘대로 했습니다 ^^
형제들이 많아서 저 하나쯤은 뜻대로 하게 두신것 같아요 ㅎㅎ

검둥개 2006-06-08 1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하와 같은 헤어스타일이라니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어요.
실없기는 ^^;;;

얼룩말 2006-06-08 1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이렇게 하면 안돼?' 순간 경직됩니다. 주하 넘 맘에 들어요^.^

프레이야 2006-06-08 1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당차고 똑똑한 주하네요~~ 님과의 말싸움이 늘 재미나게 들려요.

건우와 연우 2006-06-09 1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똑똑한 주하..아이들이 가끔 어른 말문을 턱 막지요. ^^

로드무비 2006-06-10 0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건우와 연우님, 마이 도러는 아주 가끔 드물게 똑똑해 보여서...^^

배혜경님, 저한테만 당차니 그게 문제지요.ㅎㅎ

얼룩말님, 왠지 님과 마이 도러 죽이 맞을 듯.^^

검둥개님, 그 헤어스탈이 사실 제일로 편하죠?
게으른 사람에게는?=3=3=3

플레져님, 패션 하나만은 마음대로 하셨다니!
그것만 해도 어디예요?
전 매력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순둥이였디요.^^

메피스토님, 많은 변화라 하시믄, 삭발 내지는 뽀글이 빠마?=3=3=3

치니님, 저도 모른다고 자주 합니다.
모를 때는 모른다고 하는 게 낫겠죠, 뭐.^^
 
로쿠베, 조금만 기다려
하이타니 겐지로 지음, 초 신타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 양철북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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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캄캄한 구덩이 속에 개가 빠졌습니다.

"로쿠베, 바보!"

짖는 소리로 로쿠베인 줄 알게 된 아이들은 속이 상해 개를 욕합니다.

손전등을 가져와 구덩이 속의 개가 로쿠베임을  확인하고, 아이들은 힘을 내라고 외칩니다.
로쿠베도 큰 소리로 짖어서 아이들에게 화답해 줍니다.

아이들의 손에 이끌려온 엄마들은 와글와글 시끌시끌 떠들기만 하다가
남자가 없어서 안되겠다면서 그냥 집으로 돌아가 버립니다.
칸이 구덩이 밑으로 내려가 보겠다고 하자 칸의 엄마는 위험하다며 눈을 부라립니다.
아니, 무슨 엄마들이 그럴까요?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골프채를 든 아저씨는 그 부근을 지나가다가 아이들이 도와달라고 하자,

"사람이었으면 큰일날 뻔했네!"

한마디 하고는 그냥 가버립니다.

아이들은 과연 어떻게 로쿠베를 구했을까요? 혹은 구하지 못했을까요?
이야기가 자못 흥미진진합니다.

궁둥이를 하늘 높이 들어올리고 구덩이 앞에서 얼굴을 찡그리고 있는
아이들과 엄마들의 표정이 생생하게 살아 있습니다.
와글와글, 시끌시끌, 후우후우,  등 의성어와 의태어를 사용하여 아이들의 동작을 
그대로 전달함으로써, 책을 읽어내려 가는 이도 바로 그 구덩이 앞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됩니다.
그뿐인가요,  바구니가 구덩이에 내려가는 장면에서,

                     
                        우
                            뚱

이라고 정말 활자를 기울여서 읽는 이로 하여금 가슴을 철렁하게 하는 센스라니!

상냥하고 어른보다 현명한 아이들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호떡집에 불난 것처럼 떠들기만 하다가, 남자가 없어서 안되겠다고 그냥 가버린 엄마들이
마음에 영 걸리긴 하지만요.
오래 전 하이타니 겐지로의 책들을  읽으며 이상하게 우리나라의 동화작가 권정생을 떠올렸는데,
이런 대목에서는 글쓴 이의 시각이 확실히 차이가 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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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져 2006-04-01 1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저 기우뚱에 마음이 기우뚱 흔들렸어요...ㅎㅎ
로드무비님의 센스도 하이타니 겐지로 못지 않으셔요 ^^

mong 2006-04-01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떡집에 불난 것처럼 떠들기만 하다가, 남자가 없어서 안되겠다고 그냥 가버린
엄마들이 저도 마음에 걸려요~우씨이-

히피드림~ 2006-04-01 1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1069461

원래는 100에서 잡았어야 했는데,,, 아쉽네요.^^

(저 여태까지 알라딘 이벤트 가짜상품 찾기 하다 왔어요. 기진맥진~)

그러잖아도 이 책 서원이 사주려고 곰곰히 생각 중이었는데,,, 혹시 글씨가 많지 않으면 사고 싶네요.^^ 어떤가여?


로드무비 2006-04-01 1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펑크님, 엄마들이 내뺀 것 빼곤 그림도 내용도 괜찮았어요.
글자수도 많지 않고요.
알라딘 이벤트 가짜상품은 뭡니까?
기진맥진하셨다니......^^
(토요일 치고 방문객이 많네요.ㅎㅎ)

몽님, 마음에 걸리는 정도가 아니라 이해를 못하겠어요.
일본 엄마들은 저런가? 그럴 리가 없는데......

플레져님, 기우뚱 글자가 제맘대로 안됐어요.
제가 가끔 센스가 좀 있는 편이긴 하죠? 음화화화~=3=3=3



페일레스 2006-04-02 0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화책 리뷰는 처음 해봐서 좀 거시기했는데, 원문과 대조해보니 생각보다 재미있더군요. 번역하면서 뺀 부분도 있는 것 같고... 자세한 건 제 서재에 있사와요 ^_^

kleinsusun 2006-04-02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호떡 집에 불난 것처럼"이란 표현을 보고 호떡이 먹고 싶다니....
아...어제, 오늘 하루 종일 잠만 자고, 호떡이 먹고 싶은건 또 뭘까요?ㅎㅎㅎ

로드무비 2006-04-02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선님, 저도 책이나 드라마 보다가 먹는 장면 보면 꼭 침을 삼킵니다.
어떤 때는 당장 사러 나가기도 하고요.ㅎㅎ
잠만 자는 것 을매나 피곤한 일인 줄 아세요?
제가 수선님의 그 피로를 알지요. 흑.

페일레스님, 님의 하루키 번역 참 좋던데 그쪽 방면
욕심 내는 건 어떨까요?
다른 원대한 뜻이 있는지도 모르는 분께.ㅎㅎ
안 그래도 님 리뷰 읽고는 아차, 해갖고 부랴부랴 책 읽고 쓴 거랍니다.
고마웠어요. 까먹고 있었는데.^^
 
엘리베이터 여행 풀빛 그림 아이 3
파울 마르 지음, 니콜라우스 하이델바하 그림, 김경연 옮김 / 풀빛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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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층이라 엘리베이터를 잘 타지 않지만 시장바구니가 무거울 때 엘리베이터를 탄다. 그리고 거울을 보고 머리를 헤집어 눈에 띄는 새치(!)를 뽑기 시작한다. 잡힐 듯 자꾸 손에서 빠져나가는 새치 두 개를 뽑으려다 맨 꼭대기 층까지 그냥 올라갔다 내려온 적도 있다.

빨간 머리 소녀 로자, 넙데데한 얼굴에 찌푸둥한 표정이 아주 눈에 익다. 학교가 그리 즐거운 곳도 아닌데 나는 어느 해인가 독감에 걸렸던 사흘을 제외하고 졸업할 때까지 결석 한 번 해본 적 없는 성실한 소녀였다. 아니 성실하다기보다 너무 수수하고 무던한......그런 내가 내심 지겨웠던가?

부모님이 외출하신 어느 날 로자는 밤늦도록 잠 못 이루다가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고 문을 열고 복도를 내다본다. 엘리베이터가 멈춰 있고 꽃무늬 벽지의 방 속에는 대머리 땅딸보 아저씨가 아주 천연덕스런 표정으로 앉아 있다.

멋진 왕자님이 짠~하고 나타나지 앉은 것이 마음에 쏙 든다.
엘리베이터 방의 소박하고 쾌적한 인테리어도.


"드디어 왔구나. 이제 여행을 떠나도 되겠다. 이리 와서 앉으렴."
로자가 7층을 누르고 소파에 앉자 땅딸보 아저씨는 케이크를 자기 것은 아주 두툼하게, 로자의 것은 얇게 자른다.
이 대목도 마음에 든다. 나라도 그렇게 했을 테니까......내것은 아주 두툼하게, 다른 사람 것은 아주 얇게!

케이크와 딸기주스를 다 먹고 나자 희한하게도 엘리베이터는 7층에 딱 멈췄어.그리고 문이 열리자 펼쳐진 건 벨러스호프 씨네 집이 아니라 일곱 마리 까마귀, 일곱 마리 아기 염소, 그리고 삽과 곡괭이를 걸쳐맨 여섯 명의 난쟁이.(한 명은 어디 갔을까요?)

"요 게으름뱅이야, 이리 나와! 우린 일하는데 넌 빈둥거리다니!"

여섯 난쟁이가 로자와 땅딸보를 발견하고 달려와 소리쳤다나 어쨌다나.

그 다음주 저녁에는 또 엘리베이터로 3층을 여행했어. 세 쌍둥이가 3차선도로 위에서 세발자전거를 타고 있는 풍경이 펼쳐졌지.

아니 우리 아파트 엘리베이트에는 그런 땅딸보 아자씨가 안 계신가? 로자처럼 누르지 마라는 지하층(U)은 안 누르고 그와 더불어 언제까지나 먹고 마시며 신기한 구경을 하고 인생 이야기를 나눴을 텐데......



"아니 로자야, 너 여기서 뭐 하고 있니?"
외출에서 돌아온 엄마아빠의 눈에 띄어 집으로 돌아가는 로자.

어느 날 엘리베이터 안에서 새치(!)를 뽑느라 낑낑거리다가 그런 나를 보며 킬킬거리는 땅딸보 아자씨와 거울 속에서 눈이 딱 마주칠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이렇게 말해야지.

"아자씨, 나도 좀 데려가 주면 안 될랑가요? 그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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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g 2006-03-11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저도 흰머리 많아요 ㅡㅡ;;;

로드무비 2006-03-11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mong님, 흰머리가 아니고 새치!('' )(.. )

Mephistopheles 2006-03-11 1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머리에 새치는 안나는데 코털로 간간히 보이는 흰털은 대체 뭔가요...??

로드무비 2006-03-11 1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넘으 코털 사정까지는 모르겠어라. 메피스토님!=3=3=3

sudan 2006-03-11 1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엘리베이터 방 아늑하고 좋네요. 케이크는 자기것을 두껍게 자를때 자르더라도, 좀 덜 티나게 해야하는거 아니에요? 저건 너무. 크크.

로드무비 2006-03-11 1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단님, 너무 표가 나는가요? ㅋㅋ

2006-03-11 17: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플레져 2006-03-11 1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넘넘 귀엽고 사랑스러운 그림과 이야기!
조카한테 줄 책 선물 야금야금 모으고 있는 중인데,
요것도 넣을래요! (세 권 모았음 ^^)
로드무비님, 제가 새치 엄청 잘 뽑아요.
이왕이면 엘리베이터에서 절 만나주세요 ^^
 
씁쓸한 초콜릿
미리암 프레슬러 지음, 정지현 옮김 / 낭기열라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이틀 전 모처럼 영화를 보러 나가며 차 안에서 읽으려고 이 책을 가방 속에 집어넣었다.
(영화의 제목은 '미 앤 유 앤 에브리원. 이 리뷰의 제목을 가져왔다.)
마을버스 안에서 책을 펼치는데 몇 장 읽지 않아 호흡이 가빠졌다.

교실에서도 체육시간에도 샤워실에서도 자신의 뚱뚱한 몸이 거추장스러워
어쩔 줄 몰라하는 소녀가 나오는데 그건 바로 나의,  모습이 아닌가.

'자연스럽고 당당하게'가 삶의 기치이건만, 웬일인지 나는 항상 자신이 쩔쩔매며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은 깨닫는다.
'쩔쩔매는 병'은 나의 지병이라고.
이 책의 주인공 에바는 너무 뚱뚱해서 이 병에 걸렸다.
소녀는 사람들의 눈에 안 띄었으면 싶다.
그래서 친구들과도 어울리지 않고 하교길에 혼자 으슥한 덤불숲에 숨는다.
학교 앞 분식집에서 산 연어샐러드를 몰래 먹기 위해.

사실 알고보면 에바는 좀 퉁퉁한 것일 뿐, 스쳐 지나는 사람이 뒤돌아볼 정도로는 뚱뚱하지 않다.
머리숱도 풍성하고 얼굴은 자세히 보면 귀염성스럽다.
남자친구도 한 명 생겼다. 미헬.
공부도 잘하고, 부모도 만족스럽진 않지만 봐줄 만하고.
그 정도면 양호하지 않나?!

그러나 감수성 예민한 청소년기에는 자신의 사소한 문제가 세상의 어떤 기막힌 문제보다
더 큰 것으로 해일처럼 덮쳐온다.
어느 순간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감탄하고,  어느 순간 절망한다.
종잡을 수가 없다.
소심한 성격이나 부족한 재능, 성적 문제도 마찬가지다.
 어떤 열등감은 나이 몇 살에 이르렀다고, 결혼을 했다고 해서, 아이를 낳았다고 해서
 "안녕!"하며 감쪽같이 사라져 주지 않는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한두 가지씩 열등감이 있고,  평생 자신만이 아는  열등감 속에서 괴로워하며
살아가야 하는지 모른다.

야밤이나 새벽에 냉장고 앞에서 문짝도 씹어 삼킬 기세로 아구아구 음식을 먹어치우고 나서
극심한 자기 혐오에 빠져보지 못한 이라면 에바의 슬픔이, 괴로움이 잘 전달되지 않을 것이다.
에바가 남자친구와 첫 데이트를 할 때, 플로어에 나가 춤을 출 때 해방감을 느꼈다.
나 또한 오죽하면 결혼식을 마치고 나서 신혼여행 길에 오르며  만세삼창을 외쳤겠는가!

난생 처음 연분홍 셔츠를 입고 거울 앞에 섰을 때 자기 자신도 깜짝 놀라버릴 정도로
잘 어울렸다는 에바가 조금 부러웠다.

소설이라기보다 텔레비전에서 한 편의 세미 다큐 프로그램을 보고 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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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2006-02-15 1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이 책 리뷰가 계속해서 올라오는군요..^^
평들이 대체로 좋으네요..

blowup 2006-02-15 1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의 리뷰를 네 개쯤 보았는데, 읽지 않은 채 이런 말 하는 거 조심스럽지만, 조금 안이한 결말이라는 느낌도 들어요. 열일곱, 여덟 아이들이 이런 결말에 수긍할까요? 이런 긍정이 그애들을 위로할까요?
그런데, 로드무비 님의 결혼은 도대체 어떤 사연을 품고 있는 걸까요? 서재 어딘가에 그 사연이 공개되어 있나요?

로드무비 2006-02-15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namu 님 그렇게 느끼실 수 있겠어요.
사실 에바의 문제는 그리 크지도 않고(본인은 너무도 괴로워 하지만)
대오각성 같은 게 있는 것도 아니고 잔잔하게 펼쳐지거든요.
그렇지만 안이한 결말과는 좀 거리가 있는 듯.
현실을 그대로 이야기한달까.^^

날개님, 효주 나중에 읽게 빌려드릴까요?
몇 권 있었죠?^^

로드무비 2006-02-15 2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namu 님, 아참, 그리고 별다른 사연 같은 거 없어요.
저렇게 쓰면 좋아들 하셔서 그냥 한 번 더 썼을뿐.^^

blowup 2006-02-15 2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오각성은 믿지도 않아요. 그 나이에 무얼 크게 깨닫는다고!(이런 말을 내가 할 줄이야~) 현실을 그대로 이야기한다니, 오히려 믿음직하네요. 제가 읽지도 않고 저 이야기에 너무 익숙해졌나봐요. ㅋㅋ

하이드 2006-02-15 2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기서 슬쩍 얘기합니다만, 엠아이 블루와 같은 청소년 소설은 굉장히 와 닿았어요. 뭔가 제가 모르는 세계를 이야기해줬거든요. 근데, 이 세계는 글쎄요. 이야기가 나쁜게 아니라, 제가 너무 나이들었단 느낌 들었어요.

로드무비 2006-02-15 2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드님, 님이 그렇게 느끼셨다면 저는 어땠겠습니까.ㅎㅎ
너무 평이하고 무난한 감이 없잖아 있죠?^^

namu 님, 에바가 약간 자신감을 회복하는 과정이 꽤 설득력 있어요.
대오각성은 이 나이에도 한 번 못해 봤는데!ㅎㅎ

Mephistopheles 2006-02-15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반대의 경우로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한달동안 식음을 전폐함으로써
오는 자학도 만만치 않더라구요..열등감...하니씩은..품고 있겠죠..^^

하루(春) 2006-02-15 2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리뷰만으로도 재밌고, 끄덕끄덕 하고 갑니다.

mong 2006-02-16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아니 제가 리뷰에 쓸 얘기들을 댓글에 쓰시면
어쩌시자는 거여요~~엉엉
리뷰 어찌 쓸까요 로드무비님~
독자의 취향을 고려하시는 로드무비님의 서비스 문장
오늘도 마음에 들어요 ㅎㅎㅎ

로드무비 2006-02-16 0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mong님, 어떤 책에서도 리뷰의 실마리를 잘 뽑아내시는 분께서
엄살은!!
그런데 솔직히 리뷰 쓰기 조금 곤란한 책이었어요.^^;

하루님, 끄덕끄덕하신 부분이 어딘지?
혹 냉장고 문짝?^^

메피스토님, 식음을 전폐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을 말씀하시는군요.^^


플레져 2006-02-16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바처럼 저도 열다섯살에는 살 찌는 걸 두려워했어요.
특별한 기억은 없지만 사춘기를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요...
에바 로드무비님!

비로그인 2006-02-16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몸을 둘러싼 이야기라면 그게 사회가 주는 부당한 편견이든, 구질구질한 그 무엇이 되든 저도 에바에게 심리적으로 공감하는 건 사실이네요. 가끔 제 벗은 몸을 볼 때 심한 징그러움을 느낄 때가 있거든요. 흐흐.

로드무비 2006-02-16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돌이님, 그러니까요.
특히 여성의 몸에 대한 우리들의 시각 자체가
얼마나 이상하게 굴절되고 세뇌되었는지!
자신의 벗은 몸은 어떤 때 보면 귀엽고, 어떤 때 보면
님 말마따나 징그럽지요.ㅎㅎ

플레져님, 사춘기 자체가 먹먹하고 막막한 거니까요.^^
(님이야, 뭐, 그렇게 말씀은 하시지만 사실은
살이 붙어본 적 없지요? 흥=3)

검둥개 2006-02-17 0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윽, 공감이 너무 잘 되어서 책을 읽기가 두렵나이다, 로드무비님. ^^ "'자연스럽고 당당하게'가 삶의 기치이건만," (저두 그래요) "'쩔쩔매는 병'은 나의 지병이라고." (그러니까 기치만 높이 세우는 건 해결책이 아닌가봐요. 흑. )

로드무비 2006-02-17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검둥개님은 가만 보면 이상한 부분에서 저와 일치하더라?!
얼마나 그 부분이 잘 안 되면 저런 기치를 세웠겠냐고요. 흑.

로드무비 2006-02-20 1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우님, 그 무렵 읽었다면 물론 더 좋았겠죠?
따라서 만세삼창을 해주시다니, 고마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