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오전 알라딘에는 '구운가지무침'이라는 엉뚱한 제목의 영화 페이퍼가

잠시 떠올랐는지도 모른다.

 xx 인터넷슈퍼에 들렀다가 접시에 담긴 가지요리 사진과 레시피가
하도 먹음직하여 알라딘 창고에 옮겨놓는다는 것이 그만 열린 페이퍼 카테고리였다.

지난번에도 그 비슷한 일이 한 번 있어서 건망증이 정점을 찍고 있는 요즘

페이퍼 하나 쓰는 것도 무서울 정도다.

다행히 5분 만에 발각되어  '구운가지무침'은 창고로 옮겨졌다.

그런데 갑자기 뭔가 하나 쓰고 싶어 손이 근질근질해진 것이다.

 

오늘 아침 반찬 이야기나 해볼까?

단연코 고구마줄기볶음이다.

어젯밤 우리집 강아지와 산보 겸 동네 쇼핑에 나섰다가 노점에서 사들게 된

고구마줄기다.

양도 많고 어찌나 굵고 싱싱한지 3천원이라는 할머니의 말이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밤에 삶아놓았던 고구마줄기를 절반만 덜어 우묵한 프라이팬에 볶았다.

간장, 고추장과 함께 양파, 청양고추를 썰어 넣어 매콤했다.

아침에 책장수님을 위한 도시락을 만들고 나면 하루의 일과가 끝나는 기분이다.

어떤 날은 도시락을 위해 만든 반찬과 국이 저녁까지 일용할 양식이 되기도 한다.

 

최근에는 김치도 직접 담근다.

배추고 열무고 알타리고 간에 딱 한두 포기(단)만 하는데

'이렇게 맛있게 될 줄 알았으면 좀 더 할 걸!' 하는 후회를 하면서도
딱 그만큼만 한다.

우리 동네에는 없는 채소가 없는 '장터'라는 이름의 가게가 있는데

몇 주 전 얼갈이를 사면서 잎부분이 좀 시들시들하다고

한마디 했다가 경을 쳤다.

주인 아저씨가 주먹으로 자기 가슴을 치는데, 도망치듯 집으로 돌아와

얼갈이를 다듬다가 그 이유를 깨달았다.

달팽이가 한 마리 유유히 기어 나온 것이다.

농약을 안 치거나 덜 뿌린, 나름 최상의 상품을 가져다 팔고 있는데

그걸 다른 사람도 아니고 단골이 몰라주니 억울했던 것.

 

지지난 해인가?

고구마줄기를 벗기느라 몇 시간을 낑낑거렸던 적이 있다.

그 이후 고구마줄기볶음은 우리집 밥상에서 퇴출됐다.

고구마줄기 껍질 까는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했다.

누렇게 물들고 비누로 씻어도 끈끈한 손이 불쾌했다.

그런데 할머니는 그렇게 말끔하게 손질한 한 무더기의 고구마줄기를  건네며

한마디의 공치사도 하지 않으셨다.

 

오늘아침 고구마줄기볶음이 얼마나 맛있던지,

새로운 메뉴를 개발한 것만큼이나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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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21 16: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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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21 17: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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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14-07-21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러워요. 게으르고 나태한 저는 나물요리가 세상에서 제일 어려워요. 로드무비님의 밥상에 초대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부비부비. 잘 지내셨죠?

로드무비 2014-07-21 18:03   좋아요 0 | URL
조선인님 반갑습니다.
게으르고 나태한 거는 제 앞에서 명함도 못 내미십니다.
'허름한 밥상' 카테고리 새로 열까요?
반찬에 대한 욕망이 갑자기 스멀스멀...ㅎㅎ

프레이야 2014-07-21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이게 얼마만인가요^^ 허름한밥상, 다시 열어주세요ㅎㅎ 게으르고 나태하기론 따를 자가 없을 듯한 사람 여기 또 있어요.

로드무비 2014-07-21 21:23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무신 말씀을!
얼마나 바지런하고 야물딱진 분인지 이미 알고 있는데요.

허름한밥상은 제가 가장 아끼던 겁니다.
마이도러와 함께...
그때가 그립네요.ㅎㅎ

하늘바람 2014-07-21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부러워요 하는 족족 맛없어서리

로드무비 2014-07-22 10:19   좋아요 0 | URL
하늘바람님, 하는 족족 맛없기도 쉽지 않은데!=3=3=3
ㅎㅎ 농담이시죠?
반갑습니다.

조선인 2014-07-22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름한 밥상, 원해요, 원해요!!!

로드무비 2014-07-22 22:21   좋아요 0 | URL
솔깃하네요.^^

2014-08-28 12:3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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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29 17: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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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30 14: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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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02 19: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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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04 18: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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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소식은 다음주부터 다시 보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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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 전인가?

광화문 인디스페이스에서 잠깐 개봉된 영화

장률의 첫 다큐 <풍경>을 보러 갔을 때

어찌나 피곤했던지 영화를 보며 졸다 말다 했다.

장률 감독의 영화를 보다 졸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인데 실제로 일어났다.

 

영화를 보고 나왔더니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허무하기도 하고 망연자실해서 잠깐 서있는데

극장 마당, 저만큼 뒤쪽에

혼자 서있는 늙수그레한 남성이 아무래도 장률 감독 같았다.

 

자신의 영화 첫 개봉일,

열 명 남짓한 관객 중 머리통을 찧으며 졸고 있는 아줌마 관객을

그는 아마도 풍경으로 바라봤을 것이다.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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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10 21: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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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11 11: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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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11 00: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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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11 11: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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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15 11:3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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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16 22: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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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17 02: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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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24 17: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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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25 13: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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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나에게서 온 편지>라는 제목이 눈에 띄어 검색해 봤더니
바로 내가 열광해 마지않는 종류의 영화였다.

광화문이나 안국동 아니라 전라도 광주라도 바로 달려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럴 수가, 우리 동네 극장에 오늘내일 딱 이틀 상영 일정이 잡혀 있는 거다.

 

냉커피를 타고 싶었는데 시간에 쫓겨 냉동실 생수병에 꽝꽝 얼려 두었던
양파 끓인 물을 가방에 던져넣었다.

급한 마음에 무단횡단도 불사하고 싶을 정도인데
아뿔싸, 건널목도 아닌 곳에서 흔들흔들 몸을 흔들며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걸어오고 있는
그녀와 마주쳤다.

비교적 젊은 나이(60대 초반?)에 풍을 맞은 것으로 짐작되는 우리동네 주민이다.
냅다  달려가 팔짱을 끼고 그녀를 아파트 쪽 인도로 안내하는데,
반가운 빛을 숨기지 않고 묻는다.
자신은 치료차 D대 병원에 다녀오는데 이 더운 날씨에
어디에 가느냐고......

"극장에 갑니다" 했더니 영화 제목을 묻길래 "프랑스 영화"라고 얼버무렸더니,

차들이 씽씽 다니는 차도 한가운데서 "나도 프랑스 영화 봤는데!" 하는 것이다.
궁금해서  "제목이 뭔데요?' 물었더니, <아무르>라고 했다.

그리곤 묻지도 않았는데  인도영화도 봤다고 덧붙이는 것이다. 
<어느 예술가의 마지막 일주일>이라는 제목이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내가 아무리 외롭다곤 하나, 또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영화 취향이 같은 친구를 만났다곤 하나,  
차들이 씽씽 다니는 도로 위에서 계속 이야기를 나눌 수는 없지 않은가!
사실 두 영화 모두 개봉을 손꼽아 기다렸다가 바로 달려가  보았다.

<아무르>는 개봉 몇 주 전 , 광화문의 한 극장에서 무슨 행사의 일환으로 봤는데
영화가 끝난 후, 표를 구하지 못한 60대 초중반의 여성이 
로비에서 우리 일행을 붙잡고 간절한 얼굴로 물었다.
'영화 어때요?" 라고.

그 얼굴에는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 같은  절박함이 흘렀다.


영화 시작 전 자리를  잡고 앉아 꽁꽁 언 생수병을 꺼내 한 모금 마셨더니
이상하게 건건찝질하다.
한참 생각해 보니 멸치와 무와 다시마와 대파와 표고를 넣고 끓인 육수 얼린 물.

나는 냉커피 대신 조금씩 녹는 육수를 감질나게 마시며 영화를 보았다.

 

사는 게 황송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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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13-08-12 2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나 진하게 육수를 끓이셨으면....커피색이 나올까요...??

로드무비 2013-08-13 11:41   좋아요 0 | URL
메피스토님, 반갑슴돠.
이상하게 님만 보면 어깨가 올라가면서 말투가 불량해져요.ㅎㅎ
육수가 하도 맛있어서 몇 병 만들어 내다팔아볼까 생각중입니다.

Mephistopheles 2013-08-13 11:46   좋아요 0 | URL
ㅋㅋㅋ 껌도 씹고 침도 뱉으면서...가 붙으면 완벽한 불량빙의...ㅋㅋㅋ

로드무비 2013-08-13 12:07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

프레이야 2013-08-12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흐ᆞᆢ 전 내일 이 영화 볼 생각이에요. 뭔가 감동받고 훈훈해지고 싶은 간절함^^

로드무비 2013-08-13 11:43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도 이 영화 보고 나면 뭔가 끄적이고 싶어
손이 근질근질할 것입니다. 저처럼요.^^

2013-08-13 00:3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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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13 11: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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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14 01:1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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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13-08-13 0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육수를 마시며 영화를 보다니... 왠지 흐믓합니다.

로드무비 2013-08-13 11:51   좋아요 0 | URL
조선인님,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보냉병에 맥주는 어떨까요?^^

조선인 2013-08-15 08:15   좋아요 0 | URL
꺄아아 좋아요 좋아요. 다음번에 저도 도전을. 응??

로드무비 2013-08-19 01:16   좋아요 0 | URL
옛날에 강남의 모 극장에서 <일 포스티노>를 맥주 마시며 봤거든요.
캔맥주를 까만 비닐봉다리에 숨겨서...

지금도 생각납니다.
그 좋은 걸 왜 잊고 있었을까요?ㅎㅎ

2013-08-13 10: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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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13 12: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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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13-08-13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로드무비 님 반가버서,, 글렁글렁(*.*)해요.
육아 치여 개봉관 영화는 지브리, 디즈니, 픽사, 드림웍스 제작류뿐인 와중에도
이 영화 예고편을 우연히 보고,, 저건 하늘이 두쪽나도 당장 봐야지 했었는데 찌찌봉요~~~ ㅋㅋ
일단 보고 나서 다시 ㅋㅋ
ㅠㅠ 로드무비 님 이 영화 개봉관이 이렇게 없을수가요

로드무비 2013-08-13 15:07   좋아요 0 | URL
이카루님, 이게 을마만입니까?
그런데 부근에 상영하는 극장이 없어요?
가까운 거리지만 저도 버스를 두 번 갈아타야 했는데
어제는 정류장 불볕 속에서도 기분이 좋았습니다.
이카루님도 꼭 그 기쁨을 맛보시길!^^

건우와 연우 2013-08-16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는게 답답해 부아가 나는 날은 껄렁거리며 햇빛쏟아지는 거리를 홀로 가로질러 영화관에라도 가면 기분이 좀 나아질까요?

.
.

아, 영화관에 가고 싶어요, 무얼 보고싶은지는 그 다음에 생각해 볼 일이고...

로드무비 2013-08-19 01:12   좋아요 0 | URL
건우와 연우님, 멋진 영화 발견하면 알려드릴게요.
극장 가서 좋은 영화 보면 기분이 나아집니다.
어떤 영화는 그 기분이 사나흘 가기도 해요.^^

2013-08-20 14: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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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21 00: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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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21 13: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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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22 19: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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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08 01: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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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10 17: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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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11 15: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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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11 15:3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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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16 23: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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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07 15: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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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09 01: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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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10 18: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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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11 10: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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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03 00: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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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22 01: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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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22 11: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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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22 01: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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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22 11: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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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충무로의 한 극장에서 더스틴 호프만이 직접 연출한 영화
<콰르텟>을 보았다.

은퇴한 오페라 가수들이 모여 사는 '비첨 하우스'가 배경이었는데
 나는 처음 영화 소개 글을 읽을 때 '비첨'을  '비참'으로 읽었다.

영화 중간에 자막이 통째 사라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나를 포함, 이삼십여 명의 관객은 휘파람을 불지도 않고 야유를 퍼붓지도 않고
점잖게 자리에 앉아 자막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어쩌다 아는 단어가 한 개씩 귀에 걸리면  대사를 눈치로 때려잡으며 흐뭇했다. 
그 재미가 얼마나 좋았는지 이렇게 영화가 끝나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5분이 지나도 자막이 돌아오지 않자 성질 급한 누군가가 달려 나가고

안내원이 나타나고 또 5분쯤 지나서야 겨우 사태가 수습되었다.

 

<콰르텟>은 엔딩 크레딧이 아주 중요한 영화다.

음악과 함께 매기 스미스를 비롯한 주인공 역할의  배우들 외에
영화 속에 등장하는 비첨하우스 속 실제인물(은퇴한 오페라 가수들)을
한 명 한 명 젊은 날의 사진과 함께 보여준다.
멋을 부리지 않아도 반짝반짝 빛나는 젊은 날의 사진과

몇십 년 뒤 현재의 모습을 대비하는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이상하게 영화 속 그런 장면에 환장했는데

지금은 오죽하겠는가!

그런데 누군가 나타나 화면을 가로막고 뭐라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영사기사(?)였다.

사람들이 비로소 항의를 하기 시작했다. 좀 비켜달라고.

그는 그 큰 몸으로 화면을 가로막고 고개를 주억거리며 사과를 계속했다.

 

그는 마지막 관객이 모두 극장을 빠져나갈 때까지 굳건하게 자리에 서서

한 명 한 명에게 고개를 숙이고 사죄할 작정인 듯했다.

그의 앞을 지날 때 눈을 맞추거나 괜찮다고 말해주는 관객은 한 사람도 없었다.
나는 그를 쳐다보며 뭐라고 뭐라고 입속으로만 달싹였다.

내 뒤의 시인 언니가 큰 목소리로 괜찮다고 그를 격려했다.

 

우리 일행은 경복궁앞의 한 식당에 늦은 저녁으로 도다리쑥국을 먹으러 갔다.

아직 차가운 봄밤에 도다리쑥국은 정말 시원하고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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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07 23:0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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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08 00: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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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08 00: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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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13-04-08 0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이에요. 부비부비.

로드무비 2013-04-08 13:58   좋아요 0 | URL
조선인님 아그들 많이 컸겠어요.
그나저나 부비부비~라고 쓰려니 어색하네요.헤헤

Mephistopheles 2013-04-08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콰르텟에서 도다리 쑥국으로 점프를 해도 전혀 거부감이 없다니...이히히히히.

로드무비 2013-04-08 13:56   좋아요 0 | URL
메피스토님, 그게 저의 특기잖아요. 헤헤헤~

2013-07-14 01: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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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24 00: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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