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전 점심으로 봉지에 한 조각씩 남은 라면들을 모아
넙적한 어묵을 한 장 잘라 넣고
양파를 듬뿍 썰어 넣어 라볶이를 만들어 먹었다.
고추장도 병에 여기저기 조금 붙은 걸 싹싹 긁었으니
알뜰한 주부로서의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 흡족스러웠다.
그럼에도 맛은 또 어쩜 그리 훌륭하더란 말이냐.
제인 구달 여사의 책도 그렇고 몇 권의 환경밥상 관련 책을 읽은 여파가 있어
음식물 구입에도 신경을 좀 쓰게 됐다.
특히 혼자 먹는 아침과 점심은 남은 반찬과 채소를 이용하여
쌈밥이나 이리저리 비빔밥을 잘 만들어 먹는 편이다.
식당에서도, 아이들이 먹다 남긴 공기밥이나 반찬 등속, 풋고추를
비닐을 달라고 하여 싸오는 건 기본.
그런데 어떤 날은 그 맛에 깜짝 놀란다.
이건 잔반처리 수준이 아니다.
하나의 버젓한 새로운 메뉴로 손색이 없다.(제가 '자뻑파'인 것 다 아시죠?ㅎㅎ)
문제는, 남은 걸 활용하다 보니 음식 양이 좀 많아진 것.
음식국물이 흘러간 하수가 맑게 바뀌는 데 엄청난 양의 새 물이 필요하단 걸 알고
김치찌개든 된장찌개든 남은 국물도 홀라당 마셔 버릇을 했더니......
금요일 밤 모처럼(?) 동네 술집에 진출,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술이 기분좋게 올라서 생활 속에서의 구체적인 환경보호 실천사례로
최근 몇 달 간 달라진 나의 아침점심 식습관 내용 전말을 털어놓았다.
그런데 칭찬은커녕 책장수님과 남동생이 제발 그러지 말라고 정색을 하며 만류한다.
그 눈빛이 너무나 간절하다.
"아니, 뭐야, 지금! 인격보다는 뱃살이란 말이야?"
"자기는, 인격은 너무너무 훌륭해. 지금도 충분해. 그런데 문제는 뱃살이야!"
책장수님의 말은 애원에 가까웠다.
최근 나의 인격을 의심하기 시작한 남동생도 뱃살에 방점이 찍혀 매형의 말에 끄덕끄덕.
환경을 좀 보호하려고 했더니, 환경이 영 안 받쳐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