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어 특대(35000원)를 시키면 어른 둘이 실컷 먹는다.
묵밥을 시키면 나오는 푸짐한 묵. 내가 먹어본 중 최고!
우리 동네 앞산 기슭, 개천가에는 언덕바지에 대형 천막을 치고 손님을 받는
노천 장어구이 식당이 있다.
주인은 장년층의 형제인데 형은 왠지 소설가 염상섭을 떠올리게 하는 풍모로
토요일 밤에 갔을 때는 반팔 러닝셔츠 바람이었다.
달포 전 중국에서 모처럼 반가운 이가 찾아왔을 때도 우리 부부가 안내한 곳이
바로 이 허름한 식당이었다.
오후 세 시쯤인가 갔는데 주인은 손님들과 한 테이블에 죽치고 앉아
맥주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아무리 손님이 많고 정신이 없을 때라도 그의 잘생긴 동생은 얼굴 찌푸리는 일 없이
장어 손질이며 숯불 피우는 거며 자신의 일만 묵묵히 수행한다.
무뚝뚝한 이 아저씨, 마이 도러는 꽤 예뻐하는 눈친데, 알고보니 이 지역의 터줏대감으로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를 졸업했다니, 이후 우리는 갈 때마다 마이 도러에게
"선배님께 깍듯이 인사해야지!"하고 바람을 잡는다.
그런데 부추무침이랑, 생강 채썬 것, 마늘, 총각김치, 된장 등속을 기본으로 주는데
이 김치 맛이 장난이 아니다.
한결같은 맛에 삼삼한 듯하면서 감칠맛이 나고 깔끔하고 깊고.
시키면 따로 나오는 2천 원짜리 맑은 된장찌개도 맛본 것 중 우리 동네에서는 최고!
(어흠, 두 번째가 내가 끓인 된장찌개다.)
묵밥은 최근에야 먹어봤는데 이 또한 예사롭지가 않았다.
서빙을 하는 이는 중국에서 온 것 같은 우리 조선족 여성이 두어 명.
숯불 전담 총각 한 명.
손을 씻으러 가서 주방을 염탐했더니 할머니 한 분이 총지휘를 하고 계셨다.
된장이며 총각김치며 묵이며 누가 만드는지 궁금하다고 석쇠 위의 장어를 뒤집으러 온
주인에게 물어봤더니 "늙으신 어머님"이란다.
그 솜씨를 누가 배우고 있냐고 조심스레 물었더니
"물려줄 며느리도 없으니...원" 하면서 한숨을 쉰다.
지난주 토요일 모처럼 남편과 단 둘만의 데이트, 묵밥을 먹으며 이런 이야길 나눴다.
--내가 이 식당에 취직해서 열심히 일하여 자질을 인정받은 후에
할머니의 솜씨를 전수받는 건 어떨까?
남편은 말도 안 된다며 고개를 내저었는데 도무지 그 속은 알 수 없는 일이고......
즐거울 일도 보람 있는 일도 따로이 없다.
가족 중 누구도 아프지 않고 책이나 사볼 형편이 되는 것만 감지덕지하며
책 읽다가 문득 땡기는 게 있으면 알라딘과 접속한다.
장어구이집 할머니의 된장과 총각김치, 묵 비법을 넘보는 건 주제넘은 일일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