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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이상하게 왼쪽 손목이 뻐근하여 고개를 갸웃거렸더니

잠자리에 드는 순간, 한 시간 후 저절로 불이 꺼지는 침대맡의 독서등을 켜는 순간, 깨달았다.

김문경의 <구스타프 말러>가 원인이었다.

한 시간 남짓 누워서 이 두껍고 무거운 책을 읽다보니 책을 잡은 왼손에 무리가 왔던 것이다.

언젠가부터 침대 옆 두 칸짜리 작은 책꽂이엔 평전이나 회고록, 자서전 비슷한 책들이 꽂혀 있다.

 

잠자리에서 읽는 책으로는 평전이나 자서전 만한 게 없다.

미구에 닥칠지도 모르는 가난과 병고와 노년의 고독 등에 대처하기 위해 나는

세상에 용감하게 뛰어드는 대신 한 인간의 적나라한 삶이 한 권에 담긴 

평전이나 자서전 류의 책을 택한 것이다.

 

올해 초 연달아 읽은 건 <케테 콜비츠>와 <펄벅 평전>이다.

평소에 관심이 없었던 펄벅 여사에게 갑자기 꽂힌 건 파란만장한 인생과 함께

진정한 평등주의자로서의 그녀의 면모를 어디서 주워 듣고서이다.

중국을 떠나온 펄벅이 미국에서 케테 콜비츠와 노신의 열렬한 전도사가 되는 것도 인상깊었다.

나이 마흔에 자신이 너무 늙었다고 탄식하는 케테 콜비츠도 귀여웠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모시며 더욱 커진 늙음에 대한 두려움도 절절이 공감했다.

평전이나 자서전에서는 어떤 인간의 성취나 영광보다 끔찍한 실수와 수치가 더 눈에 들어온다.

곤경에서 빠져나오는 인간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큼 가슴 졸이는 일도 없을 것이다.

 

 

<구스타프 말러>는 2011년에 선물받았는데 웬일인지 조금 읽다 말았다.

처음에 소개되는 다소 이기적이고 완벽주의자로서의 모습에 실망이라도 했던 것일까?

어제는 아주 재미있는 대목을 만났다.

1905년 메이데이 오후에 말러의 아내 알마에게 애인 피츠너와 남편이 

아슬아슬한 시간차로 나타난다.

피츠너는 길에서 시위하는 노동자들을 보고는 그 누추하고 천한 모습에 몸서리를 치고,

말러는 그들과 함께 잠시 발을 맞춰 행진하고서는 돌아와 싱글벙글이다.

 

내 마음에 쏙 드는 책은 완독 후에도 두 칸의 책꽂이에 그대로 자리를 잡는다.

<이탁오 평전>과 <레이먼드 카버>가 대표적이다.

언젠가 꼭 리뷰를 쓰겠다는 생각이 있는 듯한데 그날이 과연 언제 올지...

다음은 <이탁오 평전>에 소개된 명나라 신종 황제 주익균에 대한 묘사다.

 

- 아무리 백성의 원성이 들끓고 변고를 알리는 급박한 격문이 잇달아 들이닥쳐도

황제는 전혀 마음의 동요 없이 이미 정한 방략을 그대로 밀고 나갔다.

그는 세상 무슨 일에도 눈 하나 깜박하지 않았다. 그는 나름대로 비책이 있었다.

말로 하는 것이야 무슨 말이든 맘대로 해라, 나는 그저 흘려들으면 그뿐 아니냐,

자기들끼리 그러다 말겠지.(20~21쪽)

 

몇백 년 전 중국 황제가 우리 나라에 대통령으로 환생한 것은 아닌지 참으로 신기해 하면서

이상하게도 그게 위안이 되어 신나게 밑줄을 그었던 기억이 난다.

이탁오는 고희에도 시력이 좋아 독서를 계속 즐기는 것을 천행으로 여겼다고 한다.

 

한편 레이먼드 카버는 찌질하기 짝이 없는 그의 사는 모습에 갑갑하고 속에 천불이 나지만

다 읽고 나면 인생의 전모를 슬쩍 본 듯한 느낌이다.

소설가 박완서가 어느 글에서 가장 인상 깊게 읽은 카버의 작품으로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을 꼽아서 얼마나 반가웠는지!

 

<리흐테르>는 최근 김희애와 유아인이 주인공인 드라마 <밀회>에 나오는 것을 보고

간사하게도 가까운 책꽂이로 옮겨졌다.

회고담과 음악수첩인데 주변 인간들에 대해 꼬일 대로 고인 리흐테르의

심사를 읽는 재미도 각별하고, 말러처럼 늘 책을 끼고 산 독서가로서의 책 이야기도

흥미롭다.

 

'책과 혁명에 관한 닷새간의 기록'이라는 부제가 붙은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도

최근 가까운 책꽂이에 떠억하니 입성했다.

사사키 아타루는 밤마다 자기 전 평전을 읽던 습관에서 얼마 전 벗어났다고 한다.

그도 혹시 나처럼 책상에 앉지 않고 침대에 누워서 그 두꺼운 책들을 읽어대다가

손목에 탈이라도 났던 것일까?

('기도'에 '독서'를 대입해도 어색하지 않다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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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14-04-03 1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령=책 이군요.

로드무비 2014-04-03 17:41   좋아요 0 | URL
<구스타프 말러>는 1.5킬로그램입니다.^^
 

사과 하나를 먹는 행위도 따지고 보면 사실 엄청나게 복잡한 과정이다.
소화작용에 필요한 각종효소들을 합성하는 일과 음식에서 에너지를 얻는
일련의 화학반응들을 의식적으로 하나하나 챙겨서 수행해야 한다면,
나는 결국 굶어죽고 말 것이다.
그렇지만 박테리아같이 보잘것없는 존재도
산소가 없는 곳에서 당을 자동으로 분해할  줄 안다.
이것이 사과가 썩는 이유다.
                                                     
                                           - 칼 세이건 <코스모스> 445쪽


먼지떨이를 들고 모처럼 청소를 하려다 책꽂이를 한 칸 한 칸 살피니 
읽지 않은 책이 태반이다.
웃긴 건 그 책들을 대부분 읽었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
이런 식의 자기기만은 사실 애교에 속한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가 눈에 들어와 무작위로 펼쳤더니
위의 구절에 연필로 밑줄이 쳐져 있다.
언젠가 내가 쳐놓은 밑줄 부분을 읽는 건
점쟁이가 건네준 내 점괘를 읽는 것만큼이나 흥미롭다.

'수행遂行'의 遂는 굳이 찾아보니 '드디어 수'이다.
보잘것없는 일상의 작은 행동들을 하나하나 해나가는 것이
'수행修行'이라고 마음 깊이 받아들인 건 사실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수행'을 생각하니 왠지 <일상 예찬>이라는 책 제목이 떠올랐다.
그림들이 재밌어서 가끔 꺼내 보는 책이라 바로 찾아 페이지를 펼쳤다.
몇 장 넘기니 '불행이나 행복 앞에서 날뛰지 않았다는 스토아 철학풍의 현자'
스피노자의 한마디와 함께 꽤 마음에 드는 구절에 밑줄이 쳐져 있다.

"현실과 완벽, 나는 이 두 가지를 같은 뜻으로 여긴다."
일상생활을 그린 네덜란드 화가들은 도덕의 존재를 순순히 수긍하면서도,
매우 자발적인 행위라 할 수 있는 삶에 대한 강렬한 애착을 통해
그 도덕을 초월하는 것이다.
(...)
네덜란드 회화는 미덕도 악덕도 부정하지 않으며,
그것들을 존재하는 세계 앞에서의 충일한 기쁨으로 초월시킨다.
(...)
화가들은 아름다움이 가장 무의미한 오브제,
가장 평범한 행위 속에 깃들일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 츠베탕 토도로프 <일상 예찬>(165~167쪽)


책들이 일제히 말을 걸어오는 날이 있다.
뻔히 아는 사실이나 미루어 짐작할 뿐인 어떤 이치도
활자로, 눈으로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는 날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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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31 20: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1-31 20: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1-31 21: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1-31 23: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2-01 15: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2-02 15: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icaru 2012-02-02 0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는 언제고 꼭 읽고 싶다. 아직은 나와 멀어, 일단 책부터 사야하고! 했는데, 집에 있는 책이었네요 ㅎ 일단 읽는 일부터 해야겠는데, 청소는 언제 할겨??!!
로드무비 님의 이 글을 읽고, 앉은 자리에서 쉼표(,) 찍으며 생각해요~
그래 천천히 살자, 책들이 일제히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날..! 만끽하고 싶어요..

로드무비 2012-02-02 15:38   좋아요 0 | URL
icaru님 저도 그런 책이 꽤 되더군요.
<사람들은 자가 집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른다>라는 제목의
이승우 소설집도 있는데...
심지어는 이 소설집이 어떻게 우리 집에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청소 작파하고 책 읽는 재미가 그저그만이었습니다.
덕분에 페이퍼도 하나 건지고.ㅎㅎ
 

- 겨울 무논에는 떨어진 볍씨도 있지만 풀씨도 많다.
이런 것들은 물에 뜨면 새들에게 좋은 먹이가 된다.
가을걷이 끝난 논에 '올미'라는 다년생 풀의 알뿌리가 있는데
청둥오리와 큰기러기가 이것을 아주 좋아한다.
겨울철새들이 무논 상태에서 잡초의 씨앗과 뿌리를 제거하는 것이다.
물이 있으면 풀이 자란다.
먹을 것을 찾아 새들이 부지런히 자맥질한다.
새들이 똥을 싸면 천연비료가 된다.
자연의 순환이 힘을 쓰면 화학비료를 쓰지 않아도 된다.
논습지는 평생을 두고 연구할 가치가 있는 프로젝트였다.

                                       - 노무현 자서전 <운명이다> 315쪽, 돌베개 刊




집 앞에도 나가지 못하고 칩거에 들어갔을 때 노 대통령은 사람이 없는 새벽에
잠깐씩 무논에 나가보았나 보다.
람사르 환경재단 지원을 받아 논습지 체험캠프를  스무 차례 넘게 열었다고 한다.
그는 자연생태계가 복원된 농촌에 아이들이 찾아와 할아버지 할머니와
지내다 가는 날을 꿈꾸었다.
'볍씨' '풀씨' '올미' '자맥질' 같은 단어들이 어울려서 
한 편의 시 같기도 하고 잠언 같기도 한데  이상하게 '4대 강'이 자꾸 떠올라서 
나도 모르게 고개를 흔들며 몇 번이고 되풀이해  읽었다.

또 하나 인상적인 것.
책 뒤에 실린 연보 중  눈에 띄었던 게 1966년 부산상고를 졸업하고
어망회사 삼해공업에 입사한 사실.

어제 오후 아이가 학교에서 빌려온 책(<마사코의 질문>)을 읽는데
윤동주 시인 이야기('잎새에 이는 바람')에 시인이 어망을 짜는 장면이 나온다.
감옥 안의 노역이 다름아닌 한 올 한 올 어망을 짜는 것.

"푸른 바다에 사는 물고기들아,
너희는 이 투망에 한 마리도 잡히지 말거라."
시인은 방금 뜬 투망을 풀어버립니다.
                         (손연자 동화집 <마사코의 질문> 118쪽)

윤동주 시인의 시들도 다시 읽어보고 싶다.
동화 속에서 사무치게 다가온 그의 삶과 시 몇 편...

시詩든 경치든 사람이든 좋은 것들을 볼 때마다 자꾸 '그'의 얼굴을 떠올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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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05-03 2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제가 가진 <마사코의 질문>은 122쪽에 저 시가 나옵니다.
저도 밑줄 긋고 별표까지 붙여 둔 구절입니다.
같은 곳에 주목했다는 게 반가워서 댓글 남깁니다.

로드무비 2010-05-04 09:14   좋아요 0 | URL
순오기 님 저도 반갑습니다.
학교 다니는 아이가 있으니 또 얻어걸리는 책이 있네요.
<마사코의 질문> 대단하던데요?!
한 편 한 편 읽으며 깜짝 놀랐습니다.
윤동주 시인의 시들은 이상하게 설렁설렁 읽고 지나게 돼요.
(모르면서도 다 안다는 착각!)
인용된 시들이 마치 처음 본 시처럼 가슴에 들어오더라고요.^^

순오기 2010-05-04 11:46   좋아요 0 | URL
음~ 저는 8월 15일이면 <마사코의 질문>을 다시 읽으려고 노력합니다.
읽을 때마다 울컥하고요~
저도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기실 파고 들면 제대로 아는 게 없더라고요.ㅜㅜ

로드무비 2010-05-04 14:14   좋아요 0 | URL
헤헤, 우리 너무 깊이 파고 들지 맙시다요, 순오기 님.^^
(정신건강을 위하여...)

blanca 2010-05-05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망뜨는 시인 얘기.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 얘기. 다 가슴이 저미네요. 마사코의 질문을 읽어봐야 할까봐요.

로드무비 2010-05-06 12:24   좋아요 0 | URL
blanca 님, <마사코의 질문> 꼭 읽어보세요.
'긴 하루'라는 동화는 영화 <작은 연못>을 왠지 떠올리게 하고요.
한 편 한 편이 애닯고 아름답습니다.
 



책을 살 때도 인터넷으로 사기보단 역시 서점에 가서 사야 제맛이다.
서점에는 시시한 책이나 사고 싶지 않은 책도 진열되어 있다.
그 사이를 어슬렁어슬렁 걸어다니는 것이 중요하다.
사고 싶은 책이 있어서 서점에 갔다가 전혀 다른 책을 사는 경우도 있다.
그런 책이 의외로 도움이 되기도 한다.

하루는 책을 뒤지고 있는데, 어떤 아주머니가 어깨를 두드렸다.
"다케시 씨, 한 달 만이네요, 여기 오신 거."
그분은 작은 목소리로 "당신하고 나만의 비밀입니다"하는 느낌으로,
"전 책도둑 감시 담당이에요"하고 가르쳐주었다.
비가 오는 날이었는데, 그 아주머니는 우산까지 들고 평범한 손님 같은 얼굴로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1년 조금 지나 더운 계절에 갔을 때였다.
또 같은 아주머니가 스윽 옆으로 다가오더니,"오랜만이네요"하고 말을 걸어온다.
이번에도 장바구니 같은 걸 들고 가볍게 서점에 들른 아주머니 차림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세 번째. 아주머니는 쓸쓸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다케시 씨, 이번 달로 그만두게 되었어요. 여러모로 고마웠습니다."
뭐가 고맙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3년 동안 세 번밖에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책도둑 감시 담당"이라고 인사를 건네온 도입과,
"오랜만이네요"하는 전개와, "이번에 그만두게 됐어요"하는 결말이 갖추어져서
한 편의드라마가 되었다.
이것이 영화 소재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 했다.
길게 찍을 것도 없다.
15초짜리 신 3회로, 그 아주머니의 인생을 단편영화로 그릴 수 있으리라.
인터넷서점에서는 그런 경험도 할 수 없다.
별것 아닌 사건이지만, 의외로 이런 일이 인생의 맛이 아닐까.
컴퓨터 앞에 앉아서는 절대 그런 경험을 할 수 없다.

(<기타노 다케시의 생각 노트>  160쪽 중에서)




<그들 각자의 영화관>처럼 <그들 각자의 책방>이라는 제목의 옴니버스 단편영화가
만들어졌다면 기타노 다케시는 '책도둑 감시 담당 아주머니'를 주인공으로 내세웠을 것이다.
우리는 책방에서 어슬렁어슬렁거리며 직접 책을 고르는 즐거움을,
인터넷서점이 주는 편리성과 몇 푼의 적립금과 맞바꿔 버렸다.
소중한 것을 너무 헐값에 처분한 것 아닐까?
생각해 보면 그런 게 한두 가지가 아닐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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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09-11-13 15: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이 다케시인줄 알았어요;;; ㅋㅋ

로드무비 2009-11-13 15:30   좋아요 0 | URL
라주미힌 님, 저 좀 다케시 풍이잖아요.
건들건들.=3=3=3

Arch 2009-11-13 15: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얼마 전에 동네 서점에서 빛깔있는 책들에서 나온 '전통주'에 입맛을 다시다가 도서관에서 빌려봐야겠단 생각에 안 샀거든요. 검색해봤더니 도서관에 없어서 꼭 그 서점에서 사려구요. 적립금은 물론 저처럼 전통주 취향인 지역민을 알아봐줄리 없는(안 웃기다.^^) 서점이지만 저도 그렇게 어슬렁거리는게 좋아요.

소중한걸 잃은 후에 안타까워하면 정말 안 되니까, 베스트셀러 1위가 해커스 토익인 우리 동네 서점이지만, 부지런히 다니려구요. (서점 비꼬는게 아니라 안타까워선데 댓글이 뭐 이렇담!)

로드무비 2009-11-13 15:32   좋아요 0 | URL
서점에서 사야 꼭 완성되는(기분에!!) 책이 있습니다.
전통주도 왠지 그럴 것 같네요.^^

걸음걸이도 그렇고 생각도 그렇고
어슬렁어슬렁거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책도 너무 엄선할 것 없고
닥치는 대로 읽는 여유가 좋은데
나이 때문인지 신종 플루 때문인지
언제 세상을 하직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서
영화 하나 책 한 권도 야박한 시선으로 보게 되더라고요.

2009-11-13 15: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1-13 15: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1-13 16: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울보 2009-11-13 15: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님이 글을 읽네요,
저도 서점에서어슬렁 거리는것 좋아하는데 책만 열심히 구경한다지요,,ㅎㅎ

로드무비 2009-11-13 16:25   좋아요 0 | URL
저는 오랜만에 서점에 갔을 때도 책을 들었다 놨다 하다가
마일리지며 적립금 생각에 아예 내려놓는 경우가 많습니다.

울보 님, 류 정말 많이 컸네요.^^

무해한모리군 2009-11-13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러고 싶은데 집근처엔 체인화된 대형서점 밖에 없는데, 이 대형서점은 인터넷 서점이랑 똑같아서 최신간만 배치되어 있는데다, 심지어 알라딘 1면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이 대형서점 프런트에도 똑같은 책들이 깔려 있어요. 그래도 자주 놀러 가서 책냄새를 맡곤해요.

풀무질 같은 사회과학서점에 이메일이나 전화로 주문하고, 택배로 받는는 건 어떨까 생각중입니다.

슬슬 걸어다니며 나를 유혹하는 낯선 녀석들과 눈이 맞고 싶은데 말이죠.

로드무비 2009-11-13 16:35   좋아요 0 | URL
휘모리 님, 유혹하는 낯선 녀석들을 처음에는 진짜 사내들로
읽었습니다.
눈이 맞았다고 쓰셔서 말이죠.ㅎㅎ

알라딘도 그렇고 전 무조건 한번 마음 준 곳을 고수하는 편인데
책도 어떻게 사는 게 현명한 것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그냥 편하다고 눌러붙는 것보다는.

동네 조그만 책방 주인을 꿈꾸는 사람 이제는 없겠죠?

2009-11-13 18: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1-13 22: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개인주의 2009-11-14 0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점 구경하며 고르는 맛은 인터넷질로 고르는거랑 또 틀리지요.
ㅎㅎ.
그런데 작은 책방 꿈꾸는 사람도 잘 없고
학교앞에서 참고서를 중점적으로 취급하는 곳 같은데는
왠지 불편하더군요.

얼마전에 퇴근한 짝지님하가 얼굴을 찡그리며
이런 말을 했습니다.(장비기사라서 먼지랑 좀 친함.)
작업하는데 근처에 서점이 있어서
들어가서 책을 물었더니 제대로 듣지도 않고
손사래를 치면서 나가라고 다른데가보라고 하더라고..
(무척 서운한 얼굴이었습니다)
이런 서점은 사람 끌어들이는 서점이 되기 힘들겠지요?

로드무비 2009-11-15 01:14   좋아요 0 | URL
전 아주 어릴 때 꿈이 책방 점원이었어요.
나중엔 간이 커져서 작은 책방 주인을 꿈꾸기도 했지만...

스누피 님, '짝지님하'라는 호칭이 참 다정하네요.
장비기사라니, 정말 유능한 기능인이십니다.
중장비 기사의 준말 맞지요?(혹 아닐지도...)

책을 정말 좋아해서 손실을 각오하고 동네에 조그만 서점을 열었다고 한들
교과서와 잡지만 사러 온다면 김이 빠질 것이고
설령 좋은 책만 귀신같이 골라내는 단골이 몇 있다고 한들
뭐가 또 크게 다르겠습니까.

나 자신 믿음직한 고객이 될 자신은 없으면서 주인에게 바라는 건
또 많을지도 모릅니다.
스누피 님 댓글을 보니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네요.^^

 

-- 나는 쉰 살이 넘어가면서 50년 묵은 내 우울을 떨쳐버렸는데,
그건 대단한 경험이 아니에요. 애인한테서 전화가 안 와서 짜증 내다
전화가 오는 것, 인생은 그런 건줄로만 알았어요.
그런데 어느 날 그 전화라는 게 원래 없는 거라는 걸
안 거예요. 언젠가는 전화가 오는 게 아니라...
그걸 알고 나서 우울을 벗어버렸죠.

(<행복이 가득한 집> 2008,12월, 가수 김창완 인터뷰)


비디오대여점에서 아이가 만화를 고르는 동안 잡지를 펼쳤는데
김창완의 인터뷰 기사가 딱 눈에 띄었다.
대강 읽어내려 가는데 김창완의 저 말이 시선을 붙잡고 안 놓아주었다.
애인에게서 오다말다하는 전화 정도로 인생을 비유하는 솜씨라니!

맛있는 음식이라면 아무리 먼 곳이라도 찾아다니며 먹었는데
이제는 밥과 김치만 있어도 맛있고 만족한다는 그다.

얼마 전 집 근처 극장에서 영화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를 봤다.
맛있는 케이크라면 환장하는 유괴범 '흰수염' 역을 맡았는데
그 모습이 정말 섬뜩하고 기괴했다.
마성의 게이나, 야성의 소년 꽃미남이나, 심지어 가게 진열장 속의
화려한 케이크들이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아 하품을 참고 있었는데
극 중 김창완은 유괴범이라기보다 '늙은 은둔형 외톨이'의 모습으로
단번에 내 시선을 빼앗았다.
그는 내가 미처 생각지도 못한 또다른 얼굴을 보여주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무슨 역할을 맡건 기다렸다는 듯
필요한 마스크를 꺼내어 쓰는 그에게도 아쉬움이 남는 작품은 있다.
죽음의 형식을 다룬 영화 <굿'바이>와 비교해 볼 때
<행복한 장의사>(1999년)가 그렇다.

1990년대 중반에 나온 <집에 가는 길> 이후 그는 <이제야 보이네>라는
제목으로 두 번째 산문집을 냈다.
두 번째 산문집이 나온 무렵에 그는 북새통과의 인터뷰(2005년)에서
이런 말을 했다.(궁금해서 찾아봤다.)

북새통(박종호) : 책에서 ‘나는 실제로 자유로운 사람도 아니고,
자유로운 사람이 되기를 원치도 않는다’고 하셨는데
어떤 의미입니까?

김창완 : 우리가 자유라고 하는 것은 현재로부터 얼마만큼 떨어져 있느냐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자유라는 것은
나에게 필요치 않다는 것이죠.
왜냐하면 전 현재, 지금 이 순간에 있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현재 자체가 자유롭지 않다면 거기서부터 벗어남으로써 얻어지는
도피적 자유로움도 알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제야 보이네> 출간 후 북새통과의 인터뷰에서 자유에 대해
피력한 지 3년이 흘렀다.

그런데, 그는, 정말로, 뭐가, 보이긴 보이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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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08-12-07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창완씨의 글을 여기저기서 읽어보고 항상 감탄해왔는데, 이렇게 버젓이 책이 두권이나 나왔는지는 몰랐네요. 으 게으름이 항상 문제.
덕분에 보관함에 넣고 기분이 헤벌쭉 좋아졌어요.
무슨 역할을 해도, 무슨 노래를 해도, 무슨 말을 해도, 그건 다른 누구도 아니고 김창완이면서 그 자리에서 원하고 있는 딱 그만큼을 정확히 해내는 이 아저씨, 아무래도 천재 중 하나가 아닐까 늘 생각해요.

참, 행복이가득한집 아직도 발간 중이군요. 오래전 엄마가 몇년을 사모으던 유일한잡지였는데... 왠지 기특하네요.

로드무비 2008-12-08 11:52   좋아요 0 | URL
치니 님, 그냥 그런가보다 하다가도 잡지 등에 인터뷰하는 장면이나
텔레비전에 모습이 나오면 꼭 시선을 고정하게 되지요.
그만큼 사람을 끄는 힘이 있는 것 같아요.

요즘 여성잡지들은 기사 내용도 내용이지만 광고 지면들이 더러워서
도저히 봐줄 수가 없던데 <행복이 가득한 집>은 조금 나은 것 같아요.
고품격을 과시하는 게 좀 거시기하지만......

참, 저는 <집에 가는 길>을 오오래 전 아주 재밌게 읽었는데
<이제야 보이네>는 수첩에 메모해 놓고 까먹고 있었습니다.

무해한모리군 2008-12-08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창완씨는 제 마음의 가수예요.
정말 저도 책을 두권이나 내셨는지는 몰랐네요.
그 솔직함이 정말 마음에 들어요. 어눌한 말투도 ^^

로드무비 2008-12-19 18:21   좋아요 0 | URL
어눌함 속에 희미하게 보이는 교활함(!)도 마음에 듭니다.^^

2008-12-19 09: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2-19 18: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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