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의 숲 8
이시키 마코토 지음, 유은영 옮김 / 삼양출판사(만화)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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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피아노가 있었던가?


날개님의 이벤트로 ‘피아노의 숲’을 8권까지 선물 받게 되었다. 곧 10권이 나올 예정이고 현재까지는 9권까지 나와 있다. 그러나 성급한 나는, 나머지 편들을 제켜두고 지금 리뷰를 쓰려한다. 책 읽은 후 기억이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이 주 이유고, 이 리뷰에 책 내용보다 내 피아노 이야기가 더 많이 첨가 될 것이 그 다음 이유다.


나는 5학년 때까지, 체르니 30권을 쳤다. 그러나 체르니 30은 실력에 의해 쌓은 수준이 아니라, 학원비만 꼬박꼬박 잘 낸 지독히도 눈치 없는 아이의 피아노책일 뿐이다. 피아노를 좋아하는 척 했지만, 기실은 피아노 치는 사람들의 이미지를 좋아했었다. 원래 실력도 없는데다 연습하는 걸 무척 싫어해서, 저주받고 게으른 손가락으로써 학원을 다녔다. 내 별명은 작곡가였다. 악보대로 치지 않고 자기 곡을 연주하는 것이 별명의 연유다.


그런데도 그만두고 싶다고 말하지 못한 이유는 내가 배우는 것이 피아노였기 때문이다. 내가 소실 없는 것이 아니라 ‘원래 피아노는 어려운 거다.’라며 애써 합리화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피아니스트의 꿈은 단 한번도 꾼 적 없으면서, 뭐하러 그 고생을 했는지 안타깝기 그지없다. 같이 시작한 대다수의 친구가 내 진도를 훨씬 뛰어넘어버렸을 때 무슨 생각을 하며 계속 다녔던 것인지, 돌아보니 한심스럽다.


이런 피아노 강습의 씁쓸한 추억은 카이를 동경하게 한다. 몇 번 듣고 곡 전체를 외우고, 배워서 한 것이 아니라 재미있어서 한 거라니 멋지기까지 하다. 그러나 난 그런 놈들을 실제 주변에서 한번도 본 적이 없다. 오히려 쇼우헤이 같이 노력으로 실력을 다진 사람들을 에세이 책으로 만나 볼 수는 있었다.


쇼우헤이가 피아노 칠 때와 카이가 피아노 칠 때 이시키 마코토 작가는 약간 다르게 그린다. 카이는 우아하게 속눈썹을 내리깔고 통통 튀는 느낌이 드는 반면, 쇼우헤이는 그냥 열심히만 친다. 열심히 쳐본 적도 없는 나로써는 낯선 표정들이다. 좋아서 치는 피아노는 절대 이길 수 없다는 말, 콩쿠르는 콩쿠르로 올라가야 한다는 인식, 그래야 내 라이벌로 어울린다고 읊조리는 쇼우헤이는 참 야무지다. 마리아로 변신한 카이의 스토리는 어디까지 이어질지 궁금하다.


피아노를 다시 배우고 싶다는 동기부여의 책으로 기대했는데, 이 점에선 꽝이다. 그냥 편하게 카이와 쇼우헤이의 피아노 음률에 몸 맞춰 따라가 본 걸로 만족하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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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리코박터를 위한 변명
서민 지음 / 다밋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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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다 읽기도 전에, 이 책의 리뷰는 천천히 쓰겠노라고 다짐했다.

첫째 이유가 내 돈 주고 산책이 아니었다. 공짜로 받은 책은 리뷰쓰기 껄끄러울 거라는 지인들의 말을 쌩까고, 직접 저자를 압박했다. 내 이름까지 써준 싸인 본으로 뜯어냈 것 만, 힘들긴 매 한가지다. 저자가 아닌 친구로부터 받은 선물이라고 생각하면 리뷰쓰기가 쉬워질까? 아닌 것 같다.

 

다른 리뷰들이 너무 잘나주셔 버렸다. 원래 내 리뷰들은 뭘 그리고 쓰는 것이 아니다. 나도 읽었다는 기록일 뿐 그 이하도 그 이상도 아니다. 콩쿠르쯤으로 여긴 것은 아니므로 욕먹는다 해도 크게 맘 쓰진 않겠지만, 조금 주눅 든 건 사실이다.


세 번째 이유, 좋은 리뷰까지는 좋은데 나는 그들의 리뷰에 별반 동의 하지 않는 것이 더 문제다. 이럴 땐 일종의 비평리뷰라고 우겨야 한다. 그리고 출판시일이 오래 지난 후, 적들이 조용할 때 기습적으로 뿌리리라.


그럼에도 쓰는 이유는 끝까지 읽었다는 기록이 필요하고, 여전히 성실하다는 기록을 남기고 싶기 때문이다. 오래전에 썼던 나의 잡설스런 리뷰가 누군가에게 60원어치 Thanks to 된 적이 있었다. 막 쓰는 리뷰지만 사실은 성실한 독자임을 아시고 하느님께서 적립해 주신 거라 믿는다. 찌질 하지만 성실한 독자, 악의 없이 나불대는 리뷰라고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다.


외국인 의사 책에서 읽은 적이 있는 내용인데, 의사는 본질적으로 절대적 권위를 가질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이유인 즉, ‘내 앞에서 옷 벗어봐’라고 말할 수 있는 직업은 의사뿐이라는 것이다. 부모 앞에서는 보여주지 못하던 부위도, 의사 앞에서는 보여줘야 살 수가 있다. 그게 자의든, 타의든 누군가에게 나의 맨 속살을 보여 준다는 것은 상당한 낮춤이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이 분, 품위까지 날려 버리셨다. 먼저 속살을 보여주시면 어쩌자는 말인가. 대중을 위해 쓴 글임을 알고 있지만 안위가 조금은 걱정된다. 깊이 생각한 얘기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의 권위는 있어야 하지 않을 까 싶다. 너무 쉽게 전달하려다 보니, 힘이 너무 빠져 버렸다. 잘못된 의료지식에 옳은 대안을 말해주시는 것까지는 좋지만, 이렇게 왔다갔다 해서야 중심이 없어 보인다. 인용된 책 들을 다 읽어보고 참고한 것이겠지만, 여러 책에서 조금씩 떼어 와서 자기 책으로 얽어 만들었다는 의혹을 받지 않을 까 염려된다. 다른 분들은 가식 없이 쉽게 썼다고 좋다고 하시는데, 난 물 타듯이 쓴 거 아니냐고 충고 해주고 싶다. 전체적으로 밍숭밍숭하게 읽힌다는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유를 생각해 보니, 책이 출판되기 전에 블로그를 통해 글의 대부분을 봤기 때문인 것 같다.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을 막상 사서 보았을 때 감동이 덜했던 것처럼 말이다.

 

저자의 방대한 데이터베이스에 비해, 책에는 좀 얇게 실린 것 같다. 유머까지 촘촘히 박아 두셨는데, 딱 2% 부족하다.

 이렇게 맘먹고 못난 척하고 리뷰 써서 그렇지 사실, 이 책 좋은 책이다. 너무 쉬워서 독자를 우롱하는 수준의 책을 쓴 거 아니냐는 시덥잖은 항의는 나 혼자만 하겠다. 읽어보면 유익한 부분을 많이 찾으시리라 생각한다.


ps. 쓸 권리 주장하며 뻔뻔스럽게 리뷰를 올리는 이 얍삽한 독자도 있습니다. 그러니, 부끄러워하시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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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9-24 00: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모과양 2005-09-24 0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겸손도 하셔라. 혹시 이렇게 썼다고 뭐라 하실까봐 걱정했답니다. (비상시 비평리뷰라는 허울을 ....)
 
괴짜경제학 - 상식과 통념을 깨는 천재 경제학자의 세상 읽기
스티븐 레빗 외 지음, 안진환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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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학이 우리가 원하는 이상적인 세상을 대표한다면 경제학은 실제로 존재하는 현실적인 세상을 의미한다. (p.30) 경제학자 스티븐 레빗과 저널리스트 스티븐 더브너는 광활한 데이터 해(海)를 들어가, 질 좋은 조가비를 건져준다. 아무도 손질하지 않으려했던 조가비를 경제학이란 융통성 좋은 도구를 가지고 먹기 좋게 요리해 놓았다.


그 내용이란 이것이다. 성적을 조작하는 교사와 승률을 조작하는 스모선수는 ‘인센티브’라는 곳에서 만난다. 인센티브는 현대의 삶을 지탱하는 초석이다. 그리고 인센티브를 이해하는 것, 혹은 탐색하는 것이야말로 폭력범죄에서 스포츠 부정행위, 온라인 데이트에 이르기까지 일상의 모든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다. (p.30)


KKK단의 흥망성쇄가 부동산 중개업자와 얽혀, ‘정보의 비대칭’에 대해 알려준다. 그리고 마약 판매의 진실도 소근댄다. 마약 판매상과 맥도널드사가 같은 모습을 띄고 있다는 것을 책에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교외 백인 사회가 랩으로 대표되는 흑인 빈민가 문화를 흉내 내는 데 열중하고 있을 때, 빈민가의 흑인 범죄자들은 부유한 백인 아버지들이 기업정신을 모방하고 있었던 것이다. (p.133) 책장을 넘기면서, 쿡쿡거리며 웃지 않은 장이 없었다.


낙태허용과 범죄률 하강 그래프와 완벽한 부모에 대한 이야기는 신선하고도 놀랍다. 당신이 부모로서 '무엇을 하는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다시 강조하지만, 중요한 것은 당신이 어떤 사람인가 하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위압적인 부모는, 선거에서 승리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돈이라고 믿는 후보와 아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세상의 모든 돈을 다 가졌어도 유권자들이 원래부터 그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그 후보는 당선될 수 없는데로 말이다. (p.231)


그동안 내가 가진 경제학의 이미지란, 눈을 부라리며 A4종이를 날리던 장시의 주식업계 사람들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경제학이 이렇게 세상 뒤집어 볼 수도 있다니, 매력적이다. (검은 갱스터 JT의 경영학도 위험했지만 매력적이었다.) 스미스가 발표한 최초의 저서 <도덕감 정론>은 인간이 선천적으로 정직하다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인간이 아무리 이기적이라 해도, 그의 본성에는 특정 원칙이 존재하고 있어 타인의 행운에 관심을 가지고 타인에게 행복을 안겨주고 싶어한다. 비록 자신은 타인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해도 말이다."(p.75) 그리고 애덤 스미스가 굉장한 사람이라는 것도 새삼 느낀다. 경제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교과서에 주워들은 ‘보이지 않는 손’이 끝이라, 리뷰는 여기서 끝이다. 

 

시간이 되면 더 많은 경제학 책들을 읽어봐야겠다. 다들 이 정도의 센스를 갖추어 주신다면 무식한 나도, 충분히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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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가족
공선옥 지음 / 실천문학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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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가까운 겨울


착실하고 성실케 살면 나도 부자가 될 수 있을 거라 믿던 시절이 있었다. 이젠 안 믿는다.  산타클로스 따위는 지여낸 거라고 말하는 것처럼, 부자도 성실케만 살아선 될 수없다고 한다. 가족이니까 가난도 함께 할 수 있다는 건, 성탄 트리의 꼬마전구만큼이나 예쁘다. 그러나 전기가 흐리지 못할 때, 꺼져있는 차가운 유리알도 봐둘 필요는 있다.


찢어지게 가난한 가족들을 만났다.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을 만큼 가난에 시꺼멓게 그을린 사람들을 봤다. 더 이상 회상하고 싶지 않다.


내가 중. 고등학생 때만 해도 책장에 두산 동아의 ‘한국소설문학대계’ 시리즈가 꽂혀 있었다. ‘흙’의 이광수부터, 조정래, 박완서의 현대소설까지 한국문학이란 문학은 모두 담긴, 말 그대로 대계 시리즈를 가지고 있었다. 그 책 모두 읽으면 언어영역에 나올 수 있는 한국문학은 모두 다 읽은 거다. 장편이고 단편이고 가릴 것 없이 무요약, 무삭제 판이었는데, 항시 사전두께를 유지했었다.


그런 연유로, 문학사를 일찍 가깝게 느낄 수 있었다. 근대에서 현대문학 쪽으로 읽는 건 좋아했었다. 문제는 1930~40년대 소설들이다. 시대상이 그랬다는 것도 인정하지만, 읽으면서도 부아가 났다. 지지리 궁상, 강점기 가난의 압박, 불편한 연민이 뒤섞여 착잡하게 읽히면서도 재미는 있는 묘한 상태였다. 내게 너무나 먼, 일제 때의 가난했던 이야기였으니까.


이젠 대계시리즈가 없다. 그 자리에 김영하가 있고, 박민규가 있다. 확실히 변했다. 유쾌하지 않은 가난 문학 따위는 수능 언어영역 답안지 낼 때 같이 내버렸다.


그런데, ‘유랑가족’ 때문에 30~40년대 그 소설들이 생각나 버렸다. 너무나 가까운 가난한 우리 이야기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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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이야기 1 - 충격과 공포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5
김태권 지음 / 길찾기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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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에서부터 이라크 전까지 연결되는 중세역사에 심하게 놀랐다. 그동안 나는, 십자군 원정이 로드무비 스토리와 비슷한 이야기 인줄 알았다. 중세 기사들이 예루살렘을 향해 길을 떠나고, 중간에 등장하는 난관 때문에 전쟁을 하는 스토리인 줄 알았다. 성지순례를 하는 그리스도인들을 이슬람교인들이 박해를 해서 시작된 줄로만 알고 있었다.


무식해서 미안한 밤이었다.


본래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는 서로 공존하는 문명이었다. “쿠란에 따르면 무함마드가 더 오래된 종교들을 없애기 위해서 이 땅에 온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의 메시지는 아브라함, 모세, 솔로몬, 예수 등의 메시지와 동일하다.(p.66)” 11세기 들어, 이슬람 문명은 갑자기 사악한 악마 취급을 받기 시작했다. 거기에 유대인들도 덩달아 학대를 받게 된다.


여기에는 여러 요인들이 함께한다. 그동안 가난한 농노들은 귀족과 기사들에게 엄청난 노역을 당하고 있었다. 교황과 서유럽 귀족들은 하층민들의 불만을 잠식시키는 방향으로 전쟁을 이용하고, 농노들의 잠재된 분노는 경제적, 사회적 인센티브와 만나 십자군에 참여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은자 피에르가 나타나 본격적 코미디 무비가 된다.


귀족에게 학살당하던 농민들이 유대인을 학살한 것과 마찬가지로 십자군에게 학살당하던 유대인들이 이제 아랍인들을 학살하고 있다. (p.146) 폭력과 전쟁이라는 것은 참으로 무서운 일이다. 이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폭력이란 것이 얼마나 끈질긴 감정이라는 것을 모를 뻔 했다. 작가가 대단히 큰 공을 들여 만든 것 같다. 책에는 꼼꼼한 주역과 설명이 따라온다. 로마제국의 흥망에서 동방과, 이슬람 문화까지 세세히 연결되어 있다.


퇴색한 명분, 숨겨진 의도, 무지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게 얼마나 무서운 일이지 역사는 말해주고 있다. 생각해보니, 고등학생 때 세계사를 배우지 않았다. 중3 때 일년 배운 게 마지막이었다. 그래도 미안했다. 그리고 창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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