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남자를 노크하다
윤용인 지음 / 청림출판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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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에세이일 뿐인데 과대포장 했다. 심리학을 붙이지 않았다면 별 3개는 줄 수 있었을 텐데, 제목 탓에 별 1개다. 요즘 남성 심리학이 대세라고는 하나, 이건 아니다. 윤용인의 전작 <어른의 발견>을 좋게 봤던 탓에 리뷰확인도 안하고 산 내 잘못이 크다.

제목을 ‘폼 나는 중년으로 사는 법’이라고 했다면 이리 실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저자의 장난기 가득한 문장과 솔직한 글발을 높이 사는 편이었는데, 오늘 부로 취소다. 딴지에서 다져진 그의 글발도 실은 별 것 아니었다는 쪽으로 기울었다. 전작 <어른의 발견>에서 누드 심리학을 주장하며, 이웃집 아저씨 같이 설파하던 심리학은 어설펐지만 귀여웠었다.

그런데 이건 아니다. 이런 토막상식에도 못 미치는 심리이론 몇 개를 경험담과 섞는다고 독자들에게 지식전달이나 위로가 될 거라고 생각했나. 독자를 우롱하는 처사다.

그럼에도 몇 가지 흥미로운 점은 있다. 저자는 여행사 사장인데, 자신의 에피소드에 등장시킨 지인들의 말이 참 멋지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경영난에 고민이 될 때, 만났던 지인은 ‘50명의 조직에서 50등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존재가치가 없는 것이냐? 그가 있기에 49등이 있는 것이고 리더란 오히려 50등을 낙오자가 되지 않게 훈련시키고 동기부여 해주는 것이다.’라고 말해 준다. 또 다른 지인은 ‘개인으로서는 훌륭하지만 사장으로선 형은 자격미달’이라는 독설도 해준다.

참, 그 인복이 부럽다. 책 속에서 밝히듯 사람을 좋아하는 성향이 그를 이리 만든 것 같다.  사람과 대화하는 걸 좋아하고 나와 다른 사람을 보는 걸 귀찮음보다 경이감으로 느낀다고 했다. 그래서 심리학에 관심이 많았는지 모르겠다. 어찌됐든, 심리학이든 뭐든 사람과의 관계를 잘 풀어나가려고 노력하는 모습은 훌륭했다. 비슷한 것은 서로를 끌어당긴다는 격언을 생각해보면 저자도 꽤나 달변가이고 상담을 잘 할 것 같은데, 이것저것 고민하는 모습을 보니 조금 위안이 된다. 

여행사 직원에서 딴지일보 기자, 다시 여행사 사장으로 변태한 그 성미. 자기가 하고 싶은 건 하고야 마는 성깔까지는 좋은 데, 그 성질을 지켜보는 아내에 대한 이야기는 왜 없을 까에서 좀 애석하다. 중년 남성도 위로해달라가 책의 주제지만 말이다. 아저씨가 불리게 된 중년 남자도 힘들겠지만, 그런 남자를 보는 아줌마들도 힘들다. 이제 나올 만큼 나온 중년남성의 심리 말고, 중년의 여성 심리책도 나올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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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자, 정조의 마음을 분석하다 - 심리학자가 만난 조선의 문제적 인물들
김태형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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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심리학 책 읽기는 재미있다. 심리학 책은 나도 몰랐던 내 맘을 들여다보게 해주고, 주변인들까지 이해 정리하게 해준다. 그래서 인간관계로 힘들 때나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와 부딪혀야 할 때 심리학 책을 찾곤 했다. 생계에 상관없이 공부할 기회가 생긴다면 심리학을  배워보고 싶다.

여기 한 심리학자가 있다. 심리학 도구로 역사사료를 분석해 우리가 흥미 있어 할 인물 몇을 세상에 내놓은 이다. 분석당한 이는 정조, 이이, 허균, 연산군이다. 타고 나길, 정조와 이이는 감수성이 뛰어난 ‘전략가’(INTJ)였고, 허균은 ‘지도자’(ENFJ), 연산군은 ‘어린아이’(ENFP)였다. 그런데 여기서 정조와 이이는 건강한 양육자에게서 길러졌고, 허균과 연산군은 심리적 병을 앓는 양육자에게서 자란다. 결과론적으로 이 문제적 인물들에게 영향을 미친 양육자들도 그들의 환경과 타고난 성향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하는데 여기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나 잘났다고 나 혼자 사는 게 아니구나. 열심히 살아야지. 다음 세대를 위해서라도 함부로 살아서는 안 되겠구나.” 이런 결의까지 들게 된다.

심리적으로 건강한 사도세자와 정조가 일찍 죽은 반면, 심리적으로 병든 영조나 혜경궁이 장수했으니 그런 얘기를 할 만하다. (중략) 만일 영조나 혜경궁이 권력을 쥔 사회집단에 속하지 않고 평범한 백성 중 하나였다면 어땠을까? 아마 그들이 긴긴 세월 동안 계속 나쁜 짓을 했다면 동네사람들에게 돌팔매질을 당했을 것이다. 또한 권력과 재물이 없는 상황에서는 그들의 병든 심리가 타인에게 그렇게 큰 해악을 끼치지도 못했을 것이다. 왜냐면 사람들은 그들이 건강하지 못하면 상대해주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심리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이들이 권력과 재력을 소유하게 될 때는 얘기가 달라진다. 그들 주위에는 병든 인간들이 기생충처럼 달라붙어 병든 마음과 행동을 더 부추겨 댄다. 또한 그들에게는 힘이 있기 때문에 그들의 병든 마음과 행동에 제동이 걸리지도 않는다. (중략) 물론 그것을 막는 방법은 그들 개개인에 대한 심리치료가 아니라 심리적으로 건강한 사람들, 사심이 없는 깨끗한 사람들이 집권하는 길 외에는 없다. (p.135~136)

책을 읽는 내내 흥분했다. 조선의 시대적 상황과 문제적 인물의 심리과정을 따라가는 게 무척 신선하고 재미있다. 사도세자와 정조의 관계설명에서는 눈물까지 글썽였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그 혈의 동맹을 보고 아들을 낳아야겠다는 다소 엉뚱한 생각까지 했다.

책 머리에 저자는 이렇게 써놓았다.

나는 이 작업을 진행하면서 우리 역사야말로 인류의 미래를 밝게 비춰주는 이정표이며, 심리학적 연구를 위한 거대한 보물고임을 절감했다. 또한 내가 생각하는 올바른 심리학 이론이 현재의 사람들만이 아니라 조선시대를 살아갔던 사람들 속에서도 의연히 작동하고 있음을 확인한 것도 하나의 수확이었다. (p.8)

참고문헌을 보니 열심히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다음 작에서도 이런 숨겨진 보물들을 또 발굴 해주셨으면 한다. 고생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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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매지 2009-07-17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새 한중록 원고를 보고 있는데,
정말 정조는 그런 환경 속에서 용케 잘 자랐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 책도 빨리 봐야겠어요~~
 
밑줄 긋는 여자 - 떠남과 돌아옴, 출장길에서 마주친 책이야기
성수선 지음 / 엘도라도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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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긋는 여자>를 다 읽었을 쯤, 인터넷 북 카페로 부터 자기소개 글을 써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난감했다. 시간이 없어 정말 재미있게 읽은 책들도 리뷰를 못 쓰고 있는데, 언제 봐도 ‘나’인 나를 굳이 소개 할 필요가 있나 싶었다. 하지만 곧 생각을 고쳐먹고 자기소개서를 쓰기로 했다. 동호인의 의리라는 것도 있으니까.

동호인의 의리를 배운 건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 서재를 가지면서 부터였다. 그리고 직접 뵙지는 못했지만, 다재다능한 서재인을 접하면서 현재까지도 반성과 각성을 한다. 그 중 한 분이 이번에 신간을 낸 성수선씨다.

첫 책 <나는 오늘도 유럽 출장간다>를 읽었을 때, 참 그녀다운 책이라고 생각했다. 해외 영업이라는 낯선영역을, 그녀처럼 명랑하게 바꿔놓았다. 물론 일이니까 서로 날카로워질 때도 있겠지만 해외 바이어들과 수다 떨고 사진 찍는 모습은 멋지지 않을 수 없었다. 통통거리는 에너지와 스스로가 말한 상처 잘 받는 성향, 약간의 강박, 끊임없는 호기심은 어울리지 않는 듯하면서도 잘 어울렸다. 해외영업을 하려면 그녀의 이런 성향을 다 갖추고 있어야 된다는 생각이 들 받을 만큼.

<나는 오늘도 유럽 출장간다>, <밑줄 긋는 여자> 속에 드러난 모습은 그녀의 일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충분히 진솔하고 유익한 책들이다. 해외영업과 독서로 다져진 그녀의 경험치와 사색능력이 부러울 뿐이다. 잦은 해외출장으로 체력이 고갈될 것도 같은데도 그녀는 책을 놓지 않는다. 책을 통해서 너덜거리는 마음을 다잡고 다시 체력을 보강하는 모습은 가히 귀감이다. 이 귀감엔 힘든 직장생활을 책으로 버텨낸 내 모습이 겹쳐져 있기도 하다.  

<밑줄 긋는 여자>는 외형부터 신경을 많이 썼다. 부드러운 파스텔톤의 표지와 일러스트가 마음에 든다. 도전적으로 보이던 오렌지색의 전 책에 대비해 훨 부드럽다. 보랏빛 속지에 쓰인 'No rain No rainbow'이란 문장은 다이어리에 옮겨 적기까지 했다.

태반이 읽어보지 못한 책들이지만, 충분히 이해가게끔 써놓았다. 개인의 일상과 책 내용이 연결되어 이해하기 쉽다. 어렸을 때부터 책을 좋아했다는 애서가의 독서에세이답게, 많은 퇴고를 거쳤을 거다. 그래서 눈물까지 쏟았다니, 독자의 입장에서 충분히 눈물의 가치를 느꼈다고 전해주고 싶다. 읽는 내내 즐거웠다.

‘책 참 잘썼어요. 다음 에세이도 기대해요.’ 이 말 전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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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20 19: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좋은 결혼 나쁜 결혼 이상한 결혼 - 결혼에 대한 환상을 뒤집는 기막힌 인터뷰
신은자.신진아 지음 / 애플북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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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만해도 일찍 결혼하고 싶었다. 어짜피 할 결혼이라면, 일찍 자리 잡아 안정적으로 살고 싶었다. 음습하고 좁은 자취방에 누워있으려니 화려한 싱글이 아니라 우울증 환자일 뿐이었다. 자취방에 대해 체념해서인지, 전보다 덜 외로워서인지 결혼생각이 많이 옅어졌다. 그리고 최근엔 내년 결혼을 앞둔 직장동료 앞에서 이런 이야기까지 해버렸다.

“애만 늦게 나아도 건강하다면 결혼은 최대한 미루고 싶다.” 

내가 이렇게 변했을 줄이야! 나 자신도 놀랐다. 결혼해서 안정적으로 사는 동료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지만, 그런 커플은 손에 꼽혔다. 결혼 전이나 후나 원래 잘 살고 있던 동료가 결혼을 잘했고, 원래 못났던 동료는 결혼해도 모자라 보였다. 중요한 건 결혼여부가 아니라 사람 자체란 생각을 가진 탓이다.

그런데 못나보이던 그 동료들이 나보고, 결혼하란다. 결혼하고 보니 남편이 더 좋단다. ‘그래, 너 같은 사람이랑 살려면 마음 넓은 남자여야겠지’라고 툭 던지고 싶지만 참았다. 그 들의 2세를 위해서. 아이를 생각하다면 일찍 결혼해야 한다. 난자는 하루하루 늙어가고 있다. 그러나 내 생각만 한다면 늦게 결혼하는 편이 낫다. 뭐하러 일찍 결혼해서 나중에 해도 될 고생을 당겨서 하고, 혼자 사색할 시간을 반납해야 하나.

그런데 커플이 되고나니 알겠더라. ‘함께함’의 의미를 말이다. 이젠 때 되면 결혼하자 주의로 바뀌었는데, 그 때를 대비해서 읽었다. 좋은 결혼, 나쁜 결혼, 이상한 결혼에 대해서 말이다. 책은 조건 좋은 남자와 사랑해서 택한 남자의 이야기로 시작했다가 시트콤 같은 결혼생활에 대해 이야기한다. 잠자리 뒷담화를 털어놓다가 육아고민을 쏟아내고 시가와의 문화차이에 대해서도 써 놓았다. 결혼생활의 큰 줄기는 다 짚은 셈이다. 외도이야기까지 가볍게 하는데 책에서 얻은 인상은 결혼이란 참 우습고, 무섭다. 잘 살아보겠다고 했을 결혼인데, 혼수문제부터 살림분담까지 쉬이 넘어가는 게 없었다.

이 책의 특징은 수다 떠는 것처럼 가볍지만, 결혼생활의 고비에 대해 인지하게 만든다는 거다. 시집과의 갈등부분에선 착한 며느리 되지 말라고 충고한다. 며느리로 살다가 자신의 삶을 잃지 말라고 한다. 이건 나의 결혼 철학과 닮은 부분인데, 시집을 가서도 못하는 건 못한다고 말하는 게 나의 목표다. 과연 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모진 시집살이에 남은 건 상처뿐인 엄마와 할머니를 보니 꼭 해야겠다는 사명까지 든다. 물론 양보할 건 하고 시댁과의 문화차이를 인정 할 꺼다. 남편에 대한 절대적 신뢰 있어야 가능하겠다. 책에는 적은 혼수에 불만을 품은 시어머니에게 문짝을 부수고 화를 내준 남편이야기가 나온다.

아버지가 한번 화끈하게 대응한 행동에는 아내가 된 여자에 대한 진심어린 배려가 있었다. 엄마는 그 것을 느끼고 평생 신랑의 가족에게 의리를 지키는 것으로 보답했다. (p.213)

책은, 시댁문제 외에도 부부는 전우라고 하면서 이런 이야기 하나를 들려준다.

남편은 사업을 일으켜 몇 번의 고비를 넘기고 현재 대한민국 상위 1퍼센트로 진입했다. 아이 셋은 미국, 영국에서 유학 중이다. 그녀는 서른일곱 살에 자기 사업을 시작해서 성공했다. (중략)

“먼저, ‘이혼은 하지 않는다’라는 목표가 있었다. 그건 부모님뿐만 아니라 나와의 약속이었다. 그 목표가 정해지니 그다음은 내가 해야 할 행동의 목록이 나왔다.” (p.263)

난, 벌어진 사이라면 구질구질하게 서로 헐뜯을 바에 깨끗이 갈라서는게 낫다 주의다. 그런데 저 여성을 보니, 다부지고 강단이 있어 멋지다. 위기에도 이혼하지 않겠다는 목표가 있었다는 건 여자로서 행복한 위치에 서있다는 거다. 자기 확신과 삶에 대한 믿음, 남편에 대한 신뢰가 전제되어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거기다 위기에도 목표를 잃지 않고 행동한 추진력에 박수를 보낸다. 그녀가 말한다.

“만약 내가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가공 안 된 보석’이라는 느낌이 오면 마다하지 말고 뛰어들라고 권유하고 싶다. 또 그 모든 악조건과도 남자를 바꾸고 싶지 않다면 선택해야 하지않겠는가?” (p. 265)

앞으로 몇 년 뒷면 결혼을 하긴 할 거다. 대박 결혼을 할지, 쪽박 결혼을 할진 모르겠다. 그  박터질 결혼생활을 위해 조금씩 이런 책을 읽어두는 것 외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까. 결혼에 대한 지나친 욕심을 버리는 게 남은 것 같다.

“다 가질 수 없다. 혼자서 다 가지라는 법도 없지만 그러면 다른 큰 탈이 생긴다. 너희는 젊은 나이에 남들이 쉽게 못 가지는 부를 가졌고, 아이들도 건강하고 공부를 잘한다. 게다가 너나 신랑 둘 다 많이 배운 사람들이다. 이미 남들보다 차고 넘칠 많큼 많이 가졌다. 돈도 있고 자식 복도 있으니 부부금슬도 좋아야 한다..... 그러면 좋겠지. 하지만 모든 게 좋다면 분명히 다른 데서 덜 가지게 해서 균현이 맞게 되어 있는 게 세상 이치다. 건강을 놓칠래? 아이들을 놓칠래? 신랑이 바람을 피우는 것도 아니고, 단지 네가 원하는 만큼 안 따라준다는 건데 거기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으면 네가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사람인 거리. 네 동생 보라. 신랑이 그렇게 좋다고 따라다니건만 돈이 없잖느냐. 그 집도 돈만 있으면 만사형통이겠지. 돈 생겨봐라. 또 바라는 게 안 생길 것 같니? 다 좋기를 바라는 마음을 애초에 가지지 마라. 그래야 병이 안 생긴다.”
45년 결혼생활의 내공인지, 65년 인생 선배의 내공인지는 몰라도 엄마의 논리는 그녀에게 머리를 땅 하고 치는 깨우침을 주었다. 사실 자신의 집착이 아이에게도 가면 아이가 행복해하지 않았고 남편에게로 가면 남편이 답답해했다. (p. 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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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주나무 2009-06-20 1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 없음

안녕하세요. 승주나무입니다.
알라딘 서재지기와 네티즌들이 함께 시국선언 의견광고를 하려고 합니다.
알라디너 분들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참여의사를 댓글로 밝혀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강요는 아닙니다^^;;

즐찾 서재들을 다니면서 댓글을 남기고 있습니다. 난생 처음으로 남기는 스팸성 댓글이지만 어여삐 봐주세요~~~

http://blog.aladdin.co.kr/booknamu/2916466

 
인턴일기 - 초보의사의 서울대병원 생존기
홍순범 지음 / 글항아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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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은 어떻게 일하는지 모르겠지만, 내 직업을 내켜하지 않는 사람 중 하나가 나였다. 욕을 뿜어대던 예전에 비하면 지금은 많이 순화됐다. 그리하여 아직도 자부심이 라던가 소명의식은 없다. 밥벌이 그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희생이니, 봉사니 하는 말은 노동착취의 다른 말일 뿐 병원에 들어선 순간 신경이 곤두선다. 직장이 어딘지,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에 따라 개인의 정체성이 부여된다는 말엔 동의한다. 그러나 내 직업엔 동의 못하겠다.

만약 지금이 경제호황기라면 다른 일을 하고 있었을까. 호황기라 상상해도 딱히 하고 싶은 일이 떠오르지 않는다. 이 대책 없음, 상상력 고갈에 나도 놀랍다. 그래서 어릴 때, 하고자했던 일을 이루게 된 사람들을 보면 부럽다. 어린 시절의 상상을 현실로 품어낸 그 인내와 집념에 탄복한다. 그런 복된 집단 중 한 집단이 내가 매일 보게 되는 의사 들이다. 수능점수 남아서 의대 갔다는 Dr. K를 제외하곤 대부분 어릴 때부터 선명하게든, 막연히든 의사를 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그런지, 자신을 잘 가꾸어 온 의사들의 이야기를 좋아했다. 거기다 내가 병원에서 일 해야 하는 이유를 찾아야만 했던 그 시절엔, 배경이 병원이면 수기든 소설이든 마구 읽어댔었다. 오늘 아주 오랜만에 병원이야기를 읽었다. 서울대병원에서 인턴을 하던 시절의 메모로 쓴 <인턴일기>다. 제목 그대로 진짜 일기다. 바쁜 병원수련 속에 빛나는 찰라의 생각들이 신선하고 재밌다. 환자와 겪는 에피소드도 재밌다. 그 중 마음이 짠한 에피소드는 소아 흉부외과에서 소독하다가 겪는 이야기다. 저자의 다감한 성격과 바쁜 수련생활이 동시에 보였다.

세 살짜리 어느 여자 아이는 항상 남달랐다. 다가갈 때마다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곧이어 상처를 덮고 있는 반창고에 조심스레 손을 대면 너무나 고통스런 표정을 짓곤 했다. (중략) 그래서 하루는 소독하다가 살며시 물어보았다.
“선생님 얼굴을 왜 그렇게 쳐다보니?”
아이는 나를 쳐다보던 까만 눈동자를 톡 튕겨 천장으로 향했다.
“괜찮아. 쳐다봐도 돼.”

그러자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다시 나의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았다. 까만 두 눈동자가 내 눈 안으로 빨려 들어올 것만 같았다. (중략)
“선생님을 아주 옛날에 본 것 같아. 아니면 최근에 본 것 같아?”
무슨 말을 하려는 것 같았다. 그러나 입 모양을 가까스로 뻐끔거릴 뿐이었다.
“아주 옛날에?”
그러자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더 물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지나치게 엉뚱한 짓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때 간호사가 우리 쪽으로 왔다. 묵묵히 소독을 마치고 자리를 떴다. (p.76~77)

나도 신규 간호사시절에 메모들을 해두었다면 간호사 노트정도는 쓸 수 있었지 않을까? 글쎄, 데스노트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인턴일기> 자기를 세우지도 비하하지도 않고 묵묵히 과장 없이 참 잘 썼다. 병원생활 오래한 사람들이 보면 귀엽게 느껴지고, 의대를 지망하거나 의대를 갓 졸업한 학생들이 보면 신나게 읽을 수 있을 거다. 난 귀엽게 본 쪽이다. 단편 이상의 완결성을 지닌 박경철의<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정도의 수준을 기대한다면 실망한다. 이 책은 말 그대로 인턴시절의 기록이다. 진료실에 앉아 환자에 대해 오래 생각하고 사색할 여유가 있는 글이 질이 같겠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훌륭하다. 사회에서 비춰지는 의사에 대한 편견을 초보의사로써 관찰하고 고쳐보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혀 어렵지 않다. 병원이야기라고 아프고 복잡한 이야기만 할 거란 편견은 버려라. 어린 의사의 고군분투 블로그를 본 느낌이다.

인턴일기를 쓰던 저자가 이제 정신과전문의가 됐단다. 어떻게 변해있을지 궁금하다. 이분, 10년 뒤 쯤에 또 책을 낼 것 같다. 그게 정신과 에세이 책이든 소설이든, 문장 생각하는 싹수가 보인다. 그 때 쯤이면 나는 어떤 눈으로 읽을 까.

문득, 더 이상 병원 쪽 책은 더 이상 읽지 않을 것 같단 생각이 든다. 이젠 병원에 대한 고민이 없어졌단 뜻이다. 예전부터 읽어왔던 책들이 나를 담금질 해줬는데, <인턴일기>가 마침표를 찍어줬다고 할까. 이젠 병원이 편하다. 가끔은 불합리한 일에 열 받을 때도 있지만 병원만 이러냐, 다른 곳도 마찬가지란 생각이다. 그리고 신규 때는 그렇게 높아만 보이던 수 선생 자리도 해보고 싶어졌다. 수 선생자리가 쉽다는 건 아니다. 나와 먼 사람일 것 같던 수 선생님들도 가끔은 실수하고 후임들에게 욕도 먹고 윗 상사을 비난하는 걸 보니, 같은 사람이구나 싶어진 것이다. 어리버리 신규였던 나도 병원사람이 다 됐다.  


ps. 위클리 조선 인터뷰의 한 꼭지

홍순범씨는 “처음에는 의사에 대한 오해를 벗기고 싶어 책을 쓰기 시작했지만 이제는 또 다른 목표가 생겼다”고 했다. “시행착오를 겪고 있는 우리 사회의 모든 초년생들에게 위로를 건네고 싶다”는 것이다.

사회 초년생들은 모두 비밀과 두려움을 안고 시작합니다. 제가 처음 인턴을 시작할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무언가 시작하는 사람들의 내적 갈등과 고민은 보편적인 숙제라고 할 수 있죠. 제가 서울대 병원 인턴에 선발돼 오리엔테이션을 받던 날, 강당에는 ‘인턴, 잔치는 끝났다’는 현수막이 걸려있었습니다. 정말 멋없죠. 인턴 생활 힘들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저는 반대로 ‘인턴, 잔치는 시작이다’라는 희망을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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