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내가 집에서 논다고 말했다
최윤아 지음 / 마음의숲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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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아 작가님에게

 

왜 지금에야 써주셨어요? 당신의 결혼과 퇴사, 전업주부의 시간이 그 때쯤 시작되어 그랬겠지요. 책장을 넘기는 동안 기시감과 위로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브런치를 찾아 구독신청을 했네요.

 

저는 책읽기 좋아하는 워킹맘입니다. 아이들을 어린이집과 유치원으로 몰아낸후, 글자 그대로 아껴서 읽었습니다. 한 문장씩 꼭꼭씹고, 고개를 주억거리며 읽었어요. 퇴사 전후의 번 아웃, 전업주부의 그림자를 저도 똑같이 경험했습니다. 공감이 많이 갔습니다.

(조금 다른점이 있다면 사표는 쓰지 못했고, 육아휴직을 걸치고 전업주부 생활을 했습니다.)

 

퇴사하지 않기 위해서 서점에서 자기계발서와 심리학 코너를 서성였다니, 저의 모습과 겹쳐서 놀랐습니다. 아무도 초보주부의 당혹스러움을 풀어낸 책이 없어서 작가님이 직접 쓰기로 하셨다는 부분에서 두손을 마주 잡았습니다. 오랫동안 이런 글이 고팠거든요. 

 

막연하게 전업주부가 된 친구들을 부러워했는데, 그녀들은 말하고 있지 않았던 겁니다.

 

지켜보는 상사가 없어서 자유롭기는 했습니다. 그런데 휘발되는 가사 노동덕에 넘칠 줄 알았던 여윳시간은 성과표보다 냉정하더군요. 아이들은 자라는 데, 저는 무력감이 자랐습니다. 아이나 잘 키우라는 모호한 간섭에 화가 많이 났습니다. 힘들긴 한데 뭐라고 표현할 수도 없었어요. 작가님처럼 자기 감정에 솔직하고, 세밀하게 표현 할 수 있었더라만 좋았을 텐데요. 그러질 못했네요.   

 

전업주부가 제 길이 아니라는 건 금방 깨달았습니다. 역할 변화에 적응하지 못했고, 지독히 우울했거든요. 전생에 무슨일을 해서 나는 이런 노역을 해야만 하냐며 원망했었습니다. 그런데 집에만 있는건 더 망하는 길인 것 같아 워킹맘으로 나왔습니다.

 

제 자존감의 팔할이 직장에서 수혈되고 있다는 걸 압니다. 마음껏 책을 질러도 눈치 보지않습니다. 소소하게 행복하네요. 앞으로도 당신의 느슨한것 같으면서도 팽팽한 문장들을  읽을 수 있기를... 진짜 책 너무 잘 쓰셨습니다.   

 

 

      

p.45 그림자는 전업주부로 살아보니 모습을 드러냈다. 그럴듯해 보이는 음식 사진 한 장을 위해 얼마나 많은 조리도구와 그릇을 동원했을지, 탄성을 자아내는 인테리어 사진을 건지기 위해 얼마나 많은 물건을 집었다 놓고 얼마나 자주 청소기를 돌렸을지. 예전엔 보이지 않던 것들이 그렇게 내 눈에 들어왔다.
완벽한 살림을 담은 SNS사진, 잡지, TV프로그램을 미국에서는 ‘도메스틱 포르노 Demestic pornography’라고 한다는 사실도 나중에야 알게 됐다. 나처럼 신문사에서 일하다 지쳐 집으로 돌아간 작가 에밀리 맷차는 저서 <하우스와이프 2.0>에서 "진짜 포르노만큼이나 중독성이 강한 도메스틱 포르노가 직장생활에 환멸을 느낀 워킹우먼을 집으로 돌아오게 만드는 데 한 몫을 해내고 있다"고 했다. 보다 보면 하고 싶어지는 포르노처럼, 도메스틱 포르노도 자꾸 보다 보면 살림을 하고 싶어졌다.

p.66 "회사 그만둔 거, 후회 안해?"
퇴사하고 전업주부가 된 내가 가장 많이 받는 단골 질문이다. 나는 이렇게 답한다.
"요가를 해 보지 않고 사표를 냈던 건 좀 후회돼."
요가를 했다면, 그래서 요가가 자책과 불평에 브레이크를 걸어 주었다면 어쩌면 다른 결정을 내렸을지 모른다. (중략) 그래서인지 친구들이 퇴사 상담을 해달라고 찾아오면 ‘운동을 하고 있는지’부터 확인한다. 그러면 열에 아홉은 ‘운동 같은 한가한 소리하고 있네’라는 눈빛으로 나를 보며 고개를 가로젓는다. 나는 단호하게 말한다.
"일단 운동부터 등록하고, 그래도 불행하면 그때 다시 얘기하자."
(중략)
불행은 내게 없는 것을 헤아릴 때 가장 손쉽게 찾아온다. 운동은 여태 많은 걸 잃었지만 최소한 ‘건강’만큼은 내게 남아 있다는 걸 확인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그렇기에 운동은 가장 즉각적인 불행 백신이다. 퇴사를 망설이는 워킹우먼이나, 떠나온 회사를 자꾸만 돌아보는 전업주부. 저마다의 이유로 한껏 웅크린 그녀들을 헬스장, 요가원, 수영장으로 등 떠미는 이유다.

p.100 페이스북 최고운영자 셰릴 샌드버그는 저서 <린인>에서 벌써부터 육아 걱정을 하는 다섯 살 딸 때문에 속상해하는 여성 저널리스트 페기 오렌슈타인의 사연을 소개한다. 하루는 페기의 딸이 방과 후 프로그램을 마치고 수심에 가득 찬 얼굴로 돌아왔다. "엄마, 내가 좋아하는 남자아이도 나처럼 우주비행사가 되고 싶대요." "도대체 그게 뭐가 문제니?" 페기가 묻자 꼬마 숙녀는 답한다. "우리 둘 다 우주에 나가면 아이들은 누가 돌봐요?"

나이를 불문하고 여자는 ‘육아’를 의식한다. 이 말은 일과 육아 사이를 진자 운동하듯 오가는 여성의 방황이 아주 어린 나이부터 시작된다는 의미도 있다. 그렇게 ‘엄마’(정확히는 전업주부 엄마)는 일찌감치 여자의 인생에 플랜B로 자리 잡는다.

p.120 남자의 재력을 따지면 한순간에 된장녀로 낙인찍히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도 꿋꿋하게 "남자 돈 본다"고 밝혀왔던 친구였다. 내가 퇴사와 입사를 반복하며 사람 구실 못하던 시절 결혼한 그녀와 수년 만에 재회했다. SNS로 훔쳐 본 결혼사진은 예상대로 호텔이 배경이었다. 당연히 재력가를 만나 결혼했겠거니 했는데 웬걸. 그녀의 입에선 신선한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아직도 학자금 대출을 갚을 정도로 가난한 남자와 결혼하면서 돈 많은 남자와 편하게 살려는 마음은 완전히 접었어. 대신 한가지 결심을 했지. 이렇게 된 이상 내가 잘 돼야겠다."

결혼 후 B는 기업의 핵심 부서(라고 쓰고 빡센 부서라고 읽는)에 자원했다. 여성 임원이 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선 사원 때부터 커리어를 관리했다. 야근을 밥 먹듯이 한다고 푸념하는 그녀에게서 피로의 흔적대신 광채가 났다. 자기의 선택 대로 인생을 밀고 나가는 자만이 가진 당당함인 듯했다. (중략)

B는 결혼 적령기에 안정적으로 일을 하고 있었고, 스스로 밥벌이를 책임 질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덕분에 ‘돈’말고 다른 것을 살펴볼 여유가 생겼다. 돈이 있어야 돈 말고 다른 걸 볼 수 있었다.

p.129 사랑에 관한 한 가장 신뢰받는 사회학자 에리히 프롬은 ‘사랑은 상대를 위해 노동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의존은 무언가를 나서서 하는 적극적인 행위라기보다는 상대의 행동을 기다리는 수동적인 태도다. 때문에 의존한다는 건 사랑이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뜻도 된다. 20대 초반에 잠깐 만났던 한 남자는 시험 때마다 매번 자신의 리포트를 대신 싸달라고 요구했다. 그리고 얼마 안돼 나를 떠났다. 에리히 프롬은 말한다. 사랑의 핵심은 받는 게 아니라 주는 데 있기 때문에 기대로 싶은 마음을 이겨내고 자립을 이뤄낸 사람이야 말로 제대로 사랑을 할 수 있다고.


p.166 내 시간은 내 거라고. 돈을 벌지 않는다고 해서 그 사실까지 달라지는 건 아니라고. 이 부탁 저 부탁 들어주다 정작 ‘시간 빈곤층’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 시간이 속절없이 흘러간 자리에 작은 알맹이라도 남기기 위해서.

요즘 좀 바쁘다. 새로 나온 책 홍보 때문에 약속도 일정도 많다. 그런데 오랜만에 느끼는 이 분주함이 오히려 반갑다. 오롯이 나를 위해 시간을 쓰는 일만이 줄 수 있는 달콤한 피로의 맛을 이제야 음미하고 있다.

p.188 가까스로 무기력을 떨치고 개과천선하여 다시 열정적이고 성실하던 예전의 나로 돌아갔다고 이 글을 끝맺고 싶지만 솔직히 그러지는 못했다. 무기력은 생각보다 관성이 셌다. 출간 계약을 맺고도 나는 자주 침대에서 뭉그적거렸고, 재미도 없는 특선영화를 틀어주는 TV앞에서 몇 시간이고 머뭇거렸다. 한 번에 바뀌지 않는 스스로에게 실망도 자책도 많이 했다. 이뤄내고 싶은 일이 있는데도 왜 여전히 무기력한지 실체를 알지 못해 답답했다. 그러나 지금은 무기력과 게으름이 다르다는 걸 알기에 조바심을 내진 않는다. 잘 살아내고 싶은 의지가 있는 한 그건 무기력이 아니라 게으름이다. 게으름은 무기력만큼 질긴 놈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쉽게 떨쳐낼 수 있다. ‘게으름 피우고 싶은 나’는 결국 ‘잘되고 싶은 나’에게 지게 되어 있다.

p.189 이제는 나는 안다. 무엇이 없는 상태가 자유가 아니라, 무언가 간절히 되고 싶은 상태가 진짜 자유라는 사실을. 무기력에 맞서는 유일한 방법은 내 안에 남은 쌀알만 한 의미라도 정성껏 붙드는 일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p.208 버지니아 울프가 글쓰는 여성에게 필요한 두 가지 중 하나로 왜 하필 ‘자기만의 방’을 골랐는지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됐다. (나머지 하나는 연간 500파운드의 수입이다.) 타인의 목소리가 차단된 공간만이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시간을 확보해주기 때문이다. (중략) 분명 바다 같던 시간이었는데 정신 차리고 보면 내 인생엔 수영장만큼의 시간도 고여 있지 않다. 전업주부에게 ‘자기만의 방’은 그래서 필요하다. 속절없이 가족들에게 흘러 들어가 버리는 시간을 벽과 방문을 ‘둑’ 삼아 내게 고이게 하는 것. 그렇게 확보한 고독을 오롯이 내 인생의 방향을 점검하고, 내가 성장하는 데만 투자하는 것. 그것이 결국 전업주부를 웃게 하고, 종국에는 방 밖으로 이끌기 때문이다.

p.221 요즘도 일을 하다 보면 욱하고 ‘꿈 같은 게’ 생길 때가 있다. 글을 쓰다 보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싶고, 강의를 하다 보면 김미경같은 스타강사가 되고 싶다. 이것들을 새로운 꿈 삼아 다시 전속력으로 질주하고픈 마음까지 든다. 그러나 이내 마음을 다잡는다. 어떤 명확한 ‘지점’이 있다면 그건 제대로 된 꿈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꿈은 어느 단계에서 달성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그 자체로 방향이어야 한다. 명사형으로 종결되어 버리는 꿈 말고, 동사형으로 진행되는 꿈이어야 한다. 그래야 빨리 꿈에 ‘도달’하겠다고 기를 쓰고 과속하다 다치지 않고, 꿈을 이루고 난 후에도 길을 잃지 않는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한다. 꿈보다 중요한 건 ‘나’라는 사실을. ‘꿈’이라는 단어는 언뜻 핑크빛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검붉은 핏빛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강박성과 중독성을 품고 있어서다. 꿈에는 ‘꼭 이뤄야 한다’ ‘꼭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자연스러우면서도 끈질지게 엉겨 붙는다. 그래서 자칫하면 본인도 모르는 사이 자신보다 꿈을 더 위에 두는 ‘꿈 근본주의자’가 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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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19 17: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7-19 23: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렇다면 정상입니다
하지현 지음 / 푸른숲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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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히 책을 읽어 왔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내 삶의 변화를 기대한다. 기대하는 인생은 언제 오려는지, 아직 크게 변한 건 없다. 그런데 책장을 넘길 때마다 마음의 위로나 지혜는 얻어간다. 특히 심리책에서 많이 얻어 갔다. 덕분에 신간 출판된 심리학책을 죄다 읽은 해도 있었다.

 

리뷰를 쓰려고 검색을 하다 보니, 하지현 교수를 꽤나 좋아했나보다. 전작을 거의 다봤다. 가장 마지막에 본 책은 올해 본 <엄마의 빈틈>이었다.

 

p.293 부모들은 흔히 아이들과 놀아줬다고 말한다. 특히 아이가 어릴수록 이런 표현을 자주 쓴다. 그런데 사실 부모들이 인생에서 가장 즐겁고 행복한 시기는 친구들과 커피를 마시거나 수다를 떨 때가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때가 아닐까. 아이들과 놀아준것이 아니라 부모와 아이가 함께놀았던 것이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크고 나면 놀 시간을 내는 것도 힘들지만, 그나마 여유가 생길 때도 부모와 시간을 보내려 하진 않는다. 영화를 보거나 쇼핑을 할 때도 친구와 함께하는 것을 선호한다. 그러니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가족이 함께하는 자리를 많이 만들어둬야 나중에 외로워지지 않는다. 지금도, 앞으로도 가족은 함께 놀아야 한다.

 

좋은 책이었는데, 리뷰는 쓰질 못했다.

 

올해 초 하지현교수의 벙커 샘플강의를 들었다. 강의 때도 유용한 팁이 많아서 두 번 청취를 했었는데, <그렇다면 정상입니다>로 나온 것이다. 개인적으로 구어체 책은 좋아하지 않는다. 가독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읽었다. 이유는 사연에 대해 너무 몰아세우지 않고 해결책을 부드럽게 제시하기 때문이다. 덕분에 나도 몇 가지를 얻었다. 예전엔 무례하다고 생각했던 그녀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고, 점점 사람 챙김이 싫어지는 메커니즘도 찾았다.

 

p.174 김현의 <행복한 책 읽기>에 보면 이런 말이 있습니다. ‘제일 좋은 친구는 서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데도 편안한 사람, 그런 친구가 난 진짜 친구라고 생각한다.’ 참 공감이 가요. 정말 편한 친구를 만나면 얘기 좀 하다가 각자 핸드폰 보고, 한 살마은 저기서 야구 중계 보다가, 그런데 말이야 하면서 얘기하고, 그래도 전혀 어색하거나 서로 배려받지 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30분쯤 그거 알아?’하고 얘기하다가 또 잠깐 맥주 한 잔 하기도 하고, 핸드폰 들여다보기도 하고, ‘나 노트북 꺼내서 일 좀 할게하다가 또 얘기하고...... 그렇게 두세 시간 같이 있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친구도 있죠. 근데 그런 친구를 만나기가 참 어려워요. 이분도 그런 친구를 못 만나보신 것 같아요. 그리고 그런 친구 사이도 있을 거라는 걸 상상을 못하시는 것 같아요. (중략) 두 번째, 대화가 끊어지는 걸 두려워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대화가 끊어지면 저 사람이 나와 더 이상 얘기하고 싶지 않은가?’라는 생각을 하기 쉬워요. ‘내가 재미없나?’ 근데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대화가 끊어지고 잠깐 침묵하는 순간은 사실 언제나 있을 수 있는 거고, 친구 사이에서는 그걸 인정하자는 겁니다. 비즈니스 미팅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면요. 대개 비즈니스 미팅에서는 20초 정도 얘기가 끊어지면 서로 털고 일어나자는 사인이죠. 핸드폰 꺼내면서 다음에 또 봅시다, 연락드릴께요이게 딱 돼요. 근데 친구 사이에서 생기는 침묵의 순간을 견디는 능력은 사실 내가 지루해서 그런게 아니라는 걸 인정하고 이해해야 가능하죠. 저 친구가 조용히 있어도 그냥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p.188 [자기 레퍼토리를 던지는 사람은 조심하는 게 좋다] 이런 친구가 있어요. 두어 번쯤 만났는데 우리 엄마 아빠 이혼했어. 나 입양됐어. 사실 내가 2년 전에 애를 지웠거든? 이런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아주 친하거나 정말 가족끼리고 얘기 잘 안 할 것 같은 이야기들을 하는 사람들. 어떻게 보면 퍼스널 시크릿(personal secret)이라고 할 만할 이야기를 나한테 던지는 사람이 있어요. 그러면 나는 무척 부담스러워지죠. (중략) 쟤가 매번 스테이크를 사주면 나도 가끔 돈가스는 사줘야 될 것 같아요. 왜냐하면 내 마음 안에 부채가 있는 게 싫거든요. 저 사람이 자꾸 나한테 선물하고 밥을 사주면 나도 뭐 하나 해주지 않으면 너무 불편한 거예요. 좋은 게 아니고. 우리 마음은 항상 동등하고 싶거든요. 그걸 마음의 빚을 지고 싶어하지 않는다라고 해요. 문제는 그걸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자기 레퍼토리가 있는 사람들이죠. 자기가 엄청 고생했고 괴롭게 살아왔다는 레퍼토리를 만들어요. 두세 번 만났는데 그 얘길 해요. 이 사람은 별로 상처가 아니에요. 그 얘길 공개하는 게. 그리고 알고 보면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어요. 다만 꽤 수위가 높아서 나만 알겠지하고 다들 얘길 안 하고 있을 뿐이죠. 그럼 이걸 통해서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이 사람의 정보를 알게 되겠죠. 그러면 이 사람의 감정이나 비밀을 통해 자기랑 엮을 수가 있어요. 그런 방식으로 인간관계를 풀어가는 사람들도 있어요. 물론 그건 좋은 방법은 아니죠. 하지만 그런 게 익숙한 사람도 있어요. 이런 분들이 그런 사람을 만나면 굉장히 부담스러울 수 있죠. 마음을 열었다는 게 별 게 아니라 남한텐 별로 얘기하고 싶지 않은 시크릿들이 몇 개 방출된 거예요. 근데 저쪽에서는 뭐 이거 가지고? 별 것도 아니구만. , 이런 건 지나가는 개한테 얘기해도 되겠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거죠. (중략) 나도 뭔가 비밀을 얘기해줘야 될 것 같은 욕망이 생기거든요? 그걸 참아야 돼요. 안 참으면 진짜 후회해요! 집에 가서 잠이 안 올 거예요. 큰일 나는 거예요. 그걸 공유하게 되면 관계가 끊어지는 순간 이 사람을 통제 할 수 없게 되잖아요. 그럼 얘가 그 비밀을 언제 어디다가 어떤 식으로 폭로할지 아무도 모르거든요.

 

오랜 임상경험에서 오는 실제 예시들도 좋았다. 업으로 삼는 일로, 책도 쓰고 강연도 하다니 하지현이란 사람 참 좋아 보인다. 이게 정신과 의사의 부수적 즐거움인지 모르겠다. 타과 의사 중 책 잘 쓰는 사람이 딱 두 사람 떠오르는 것에 비하면 정신과 의사 책은 많이 떠오른다.

나도 내공이 쌓이고, 이 길에서 벗어나지만 않는다면 쓸 수 있지 않을까. 그러려면 열심히 읽고 쓰는 수 밖에.

 

 

 

Ps. 두 분, 외과 의사 박경철과 기생충학 서민교수 모두 내가 대학생때 부터 뵜던 분들이라 그들의 글은 무조건 만점이다. 그런데 예전만큼 그 분들의 책을 출간 때에 맞춰 읽지 못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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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로잉 자전거 여행 - 네덜란드, 벨기에, 제주, 오키나와에서 드로잉 여행 2
김혜원 지음 / 씨네21북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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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같이 자전거를 타보겠다고, 유모차형 자전거에서부터 유아안장을 열심히 검색했었다. 가족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유아안장을 구입했지만, 아이와 라이딩한 횟수는 10개월동안 1시간도 되지 않는다.

 

며칠 전 서점을 어슬렁거리다가 <드로잉 자전거 여행>를 발견했다. 여행은 물론 동네 라이딩도 못하고 있으니, 제목부터 반가울 수 밖에 없었다. 천천히 봐야하는 일러스트 책인데 단숨에 봤다. 그림도 귀엽고, 내용도 무겁지 않다.

 

네덜란드와 벨기에, 제주, 오키나와를 자전거로 여행하겠다는 생각을 어찌했는지, 너무 멋있고 깜찍하다자전거여행을 하려면 일단 체력이 좋아야 한다. 자전거를 좋아하면 자연히 체력은 따라오는 것이겠지만, 숙소의 하룻밤으로 다시 라이딩하는 저자 체력에 경탄했다. 둘째, 해박한 자전거 상식이 필요하다. 타다보면 자연스럽게 더 알고 싶어지는 법인데, 난 너무 인색했던 것 같다. 나이 때문에 호기심과 지적욕구가 떨어졌다고 말하고 싶지만 나도 핑계임을 안다. 가십 검색은 왜 하냔 말인가! 타협하지 말아야겠다. 셋째는 삶에 대한 긍정과 실천력이 있어야 한다. 자전거를 타면 세상을 보는 시선이 긍정적이지 않을 수 없다. 책 속에 자전거는 내가 지나는 풍경을 멋지게 만들어준다.’라고 적었다. 공감한다. 그래서 여행을 시작 할 수 있었을 것이고, 신나게 페달을 밟았을 것이다.

 

삶에 대한 긍정, 이게 자전거의 매력이다. 좋아하면 잘 할 수밖에 없고, 잘 하면 더 넓은 세상으로 갈 수 있다. 자전거 타기 좋은 계절이 며칠 남지 않았다. 아이를 데리고 나가볼까 한다. 틈틈이 책도 꾸준히 읽어야 겠다.

 

저자 블로그

http://navhoo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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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딩파워 - 여자의 인생을 바꿔준
설연희 지음 / 명진출판사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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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 옛 동료 H를 만난다. 같이 일할 때 본 그녀는 관계 맺기 좋아하고, 업무 파악이 빠른 똑순이었다. H는 행동가였는데, 책에서 본 게 많아 말만 모험적인 나와도 잘 어울려주었다. 그녀는 나와 대화하고 나면 긍정적 기운이 솟아서 좋다고 했다. 이타심인지, 칭찬의 힘인지 그녀를 만날 때면 책 속 명문들을 더 주워 놓곤 했다.

 

몇 번의 이직 끝에 찾은 그녀의 명함은 보험설계사, 암웨이 세일즈 우먼이다. 얼굴을 맞댔을 땐 반갑기도 하지만 싫기도 하다. 암웨이 물품 얘기만 하지 않으면 더 좋을 관계가 될 텐데, 이해가 맞지 않으니 그 점이 아쉽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경제적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나또한 같은 불안감을 가지고 있기에 매번 거절할 수 밖에 없다. 이럴 땐 책이 약이다.

 

마음 준비를 위해 인간관계책을 읽거나 그녀를 위해 세일즈 책을 읽을 참이었는데, 오늘 집어든 책 [리딩파워]책 읽으라는 책이다. 저자의 독서습관과 직업성취가 어떤식으로 같이 성장했는지 부드러운 문체로 정리해 놓았다.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와 독서법은 오래 전부터 알고 있던 내용이라 가볍게 읽었다.  

 

p.231 서너 권 정도 읽는다면 취미독서에 해당하는데, 이 역시 독맹일 가능성이 높다. 한 달에 열 권 이상의 책을 읽어야 독맹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나는 이 정도 독서량은 되어야 내 삶을 바꾸는 전략적 독서를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중략) 시간 나면 심심풀이로 하는 취미독서로는 변화는커녕 교양도 쌓기 힘들다. 오직 전략적 독서만이 지금의 나에서 더 나은 나로 성장시켜줄 것이다.

 

책 읽는 걸 좋아했던 평범한 주부가 책으로 힘을 얻고, 높은 직위의 파워 여성으로 변하는 여정을 전업주부 독자들은 어떻게 볼까 궁금해졌다. 저자는 손에서 반찬냄새가 나는 아줌마였다고 했지만, 어린 시절부터 교직에 뜻이 있었고 책과 신문을 통해 오랬동안 단련해왔던 사람이었음이 나온다. 그래서 박상무의 끈질긴 제의를 받을 만큼 숨은 인재였음이 살짝 드러난다. 오랜 시간 책을 읽고, 적성도 꾸준히 들춰 봐야 성공한다

 

p.124 나 같은 초보 세일러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일은 내가 이 일을 하고 있다는 걸 주위에 알리는 것이다 내가 이 제품을 팔고 있다는 걸 알리는 건 나 자신과 제품을 함께 홍보하는 일이다. 내가 이 일을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으면, 이 제품을 사려고 마음먹은 사람은 다른 세일러가 아닌 나와 계약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또한 혹시 주위에서 이 제품을 사려는 사람이 있다면 내게 소개해줄 수도 있는 것이다. 이 점을 깨닫고 나서 나도 나를 홍보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전화를 걸었다. (중략) 내 자랑 같지만 이게 바로 세일러의 신뢰도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특히 학습지 같은 제품은 세일러의 환경이 판매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나는 남편이 고등학교 선생님이고, 남동생 내외가 서울대학교를 나온 박사에다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고, 또 아이들이 공부를 잘하고 책을 많이 읽는다는 걸 주위 사람들이 다 알고 있다. 그래서 평소에도 아이들의 학습방법에 대해 조언을 구하거나 책을 추천해달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에 내가 추천하는 학습지에 대해 사람들은 더 많은 신뢰를 보내준 것이다. 때로는 나에게 아이들의 학습에 대해 조언을 구하던 사람들이 내가 이 일을 시작했다는 소식을 듣고 먼저 문의를 해오기도 했다.

 

웅진 씽크빅 세일러로 시작해 본부장으로 퇴직하면서 얻은 세일즈 경험과 리더십도 좋은 간접체험이었다. 지금 깜냥으로만 책을 쓴다면 나도 [리딩파워]와 똑같은 주제로 쓸 것같다. 밥벌이의 어려움과 나와 같이 밥먹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부끄러운 독서편력과 뒤섞여 나올 것 같다. 아직 갈 길이 멀다. 좀 더 깊고 다양한 책을 읽고, 글을 많이 써야 겠다. 올해는 다독, 다작의 해로 만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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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가 붙잡는 여자들의 1% 비밀 - 10년차 워킹맘이 욕심 있는 후배들에게
권경민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1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회사가 붙잡는 사람들의 1% 비밀]를 나름 좋게 봤던 터라 [회사가 붙잡는 여자들의 1% 비밀]도 나쁘지 않을 줄 알았다. 이 책을 다 읽고 느낀 것이 뭔 줄 아는가?
 

1. 충동적으로 책 사지 말것
2. 검증된 리뷰보고 책 살 것, 특히 신간매대에 제일 위험 (교보, 반디엔루이스, 영풍에서 특히 조심)
3. 출판사 믿지 말 것, 대형 출판사일수록 마케팅힘이 세다. 
 

인터넷 서점에서 샀더라면 리뷰 때문이라도 걸러졌을 것이다. 교보문고에서 충동적으로 골랐다. 당시 가벼운 우울감과 시험압박으로 쉬운 걸 읽고 싶었다. 워킹맘의 자기계발이라는 말이 공부의 당위성도 살려줄 것 같아서 골랐다. 그 후 자책감에 스트레스만 더 받았다. 
 

워킹맘이란 키워드로 보고 싶다면 레슬리 베네츠의 [여자에게 일이란 무엇인가], 김미경의 [언니의 독설]이 훨씬 낫다. [회사가 붙잡는 여자들의 1% 비밀]은 너무 허술하다. 저자 프로필은 화려하다만, 사진이 없다. 저자 이름으로 인터넷 검색을 해봐도 책 이름 외에는 나오는 게 없으니, 이 저자가 누군지 출판사에 항의하고 싶다. 
 

이 책의 허술점  

1. 사례가 난무하고, 난잡하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스토리 텔링하는 건 이해할 수 있다. 인터뷰를 한다거나, 상황에 맞춰 픽션을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책에 등장시킨 사례들은 제목과의 연관성도 떨어진다. 상황묘사도 잘 맞지 않다. 잦은 사례 활용을 보면서 날로 낱장 채웠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2. 책에 인용되는 자료 출처가 불명확하다.
 

처음에 깜짝 놀랐던 것이, 임신의 입덧 이야기였다. p. 192 어쩌면 입덧이라는 증상도 건강한 임신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위험한 음식물을 함부로 섭취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어작용이 아닐까? 
그건 의문문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서술문으로 끝나야 한다. 사실이기 때문이다. 책에 동생이 의사라고 나와 있던데, ‘좀 물어보지 그랬어요?’라고 묻고 싶다. 문장실수라고 이해하더라고, 미비점은 더 많다. p. 286의 삼각표는 어디서 만든 도구인지 궁금하다. 0~5점을 보니, 체크표가 있는 듯 한데 그건 언급조차 없다. 저자 본인 기술에 그친다. 이 외에도 출처미상의 내용이 수시로 짜깁기 등장한다.

3. 교정 안한 같다. 

p. 230 공교롭게도 당시 내가 담당하던 비즈니스가 갑자기 어려워져서 사업을 접느냐 마느냐 존폐 위기에 처했을 때였다. 그런 상황에서 알게 된 임신 사실을 알았은 나에게 당혹감을 안겨 주었다. -->알게 된 임신 사실은 나에게

4. 워킹맘의 고민만 늘어 놓았을 뿐, 솔루션이 부실하다.  

차라리 인터넷 커뮤니케이션에서 해결책을 찾는 게 더 나을 것 같다. 솔루션보다 자기자랑이 더 많고 개인적인 경험과 감상에 그친다. 차라리 워킹 맘의 애환을 에세이로 썼으면 더 나았을 것이다. 그리고 워킹맘의 당당함이라던지 필요성을 주장해야 중심이 섰을 텐데, 그 점이 아쉽다. 가족을 지키는 것도 가치 있다는 말은 한 번이면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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