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럼독 밀리어네어 - Q & A
비카스 스와루프 지음, 강주헌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Q&A>가 <슬럼독밀리어네어>로 영화화 되어 나왔다. 그 영화를 볼 기회가 생겨 지인과 영화관에 갔다. 대기실에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지인이 말했다.

“요즘 세상에 누가 노냐? 아무나 할 수 있는 말단경리 여직원도 퇴근하면 자기계발하려고 바쁜데, 너는 그냥 놀려고만 해. 너는 전문직이잖아. 자신의 커리어를 더 쌓고 있어야지.”

노는 것도 중요하다고 반박을 하거나 공부 중이라고 뻥이라도 쳤어야했다. 난 아무 말도 못했다. 영화 상영만 기다려야 했다. 지인의 말이 가슴에 콕 박혔다. 영화보기에 앞서 <Q&A>를 다 읽었었다. 마지막 장을 넘겼을 때, 갑자기 공부해야겠단 생각이 들었었다. 한량하게 사는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주인공이 보여준 험난한 인생교훈들에 동화된 탓이다. 이런 빈민가의 자식도 살아보려 발버둥을 치는데, 따뜻한 밥 먹고 자란 나는 뭐하고 살았나 싶어 얼굴이 화끈했었다. 이제부터라도 뜨겁게 공부하리요 했다. 그러나 뜨거운 결심은 한 때요, 본래의 우유부단한 모습으로 금방 돌아왔다.

주인공 람 모하마드 토머스(이하 토머스)는 일자무식의 고아였다. 그러다 누가 십억의 주인이 될 것인가란 퀴즈쇼프로에서 최종 우승을 한다. 그로 인해 주인공은 경찰서에서 고문을 받는다. 억대 상금을 지급할 돈이 없는 프로그램 제작자가 그를 사기죄로 고발한 것이다. 어떻게 빈민가의 바텐더가 퀴즈를 다 맞출 수 있었는가를 따라가는 것이 이 소설의 큰 줄기다. 퀴즈 순서대로 정답 도출과정이 나오기 때문에 시간 순서대로 쓰여 있지가 않다. 사건마다 잘라서 시간 순서에 맞게 이해해야한다. 거기다 주변인물들이 퍼즐같이 맞물리는 구조라 추리의 재미도 있었다.

토머스는 입양과정부터 불운했고, 추한 현실을 많이 본다. 우상으로 생각하던 영화배우의 추행, 앵벌이 생활, 지식을 버리는 비정한 모정등 많은 사건을 겪는다. 그래서 그럴까 ‘내면의 믿음과 행운’이라는 참으로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하면서도 시니컬한 면도 가끔씩 보여준다.

꿈은 오직 정신만을 지배한다는 사실을 나는 오래전에 깨달았다. 그러나 돈이 있으면 다른 사람의 정신까지 지배할 수 있었다. p.446

빈민가가 배경이다 보니 살인청부, 폭력과 근친상간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인도라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소재인가 싶어 좀 안된 생각도 들었다. 아프리카의 에이즈, 태국의 마약처럼 말이다. 우리나라판 <Q&A>는 어떨까. 그렇다고 더 나은 소재 거리가 있을 거란 생각도 안 든다. 청년실업에 인터넷 중독, 청소년 폭력, 경제 파산에 대한 이야기 더 추가 되겠다. 황금만능주의는 당연하고.

그러고 보니, 재작년에 본 김영하의<퀴즈쇼>가 <Q&A>와 비교될 수 있다. <Q&A>주인공이 빈민가의 17세 고아라면, <퀴즈쇼>의 주인공 민수는 지극히 평범한 20대고,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Q&A>가 토머스가 퀴즈 정답을 풀어간 경위를 쫒는 형식이라면 <퀴즈쇼>는 민수가 퀴즈어 양성소에서 겪는 이야기다. <Q&A>가 현실적이라면 <퀴즈쇼>는 비현실적이고 몽환적이다. <Q&A>가 인도의 빈민층과 상류층을 다 무대로 썼다면 <퀴즈쇼>는 한국 이태백층의 좁은 무대를 썼다. 그 넓은 무대 덕에 <Q&A>는 영화로 찍히고 영화는 오스카상까지 받을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퀴즈쇼>도 영화화 되면 좋겠지만 비디오가게로 직행할 까 걱정된다. 기묘한 스토리 좋아하고 원작 각색을 잘하는 감독을 만나면 다르겠지만.

<Q&A> 읽는 동안 즐거웠다. 영화에, 원작에, 원작과 대비되는 소설까지 3중으로 비교해 보니 썩 재밌다. 나도 오버랩하면서 읽게 되다니, 놀랍다. 그동안 책이라는 문화산업 속에 잘 놀아온 증거가 아니겠는가. 노는 것도 중요하다. 열심히 놀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 - 공지영 에세이
공지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09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안티 많기로 유명한 소설가 공지영. 그녀 이해하기 시작한 때는 <괜찮다, 다 괜찮다>를 읽은 후였다. 그 전엔 <봉순이 언니>가 내가 아는 전부였고, 각각 성이 다른 아이를 키우는 이혼녀에 지나지 않았다. <괜찮다, 다 괜찮다>는 그녀의 개인적 아픔과 그것을 견디고 얻은 것을 괜찮게 엮은 인터뷰 집이었다. 이후 <즐거운 나의 집>을 찾아 읽고 위로의 문장들을 잔득 베껴놓았다. 처절한 1년 전에.

아직도 가끔 <즐거운 나의 집>에서 얻은 이 문구를 들춰 본다. 

 

   
  “그래, 사는 것는 어렵지, 아주 어려운 일이야. 스님도 어려웠으니까 깨달음을 찾았겠지... 그런데 말이야. 위녕, 사는 게 어려운 일이다. 이걸 한 번 받아들이고 나면, 진심으로 그것을 받아들이고 나면, 사는 게 더 이상 어려워 지지 않아. 왜냐면 어려운 삶과 내가 하나가 되니까.” p. 226  
   


<즐거운 나의 집>에서 보여 준 작가의 캐릭터는 명랑한 캐릭터였다. 낮술하며 울기도 하지만, 결국엔 웃는 명랑한 소녀였다. 그녀가 깃털처럼 가벼운 이야기만 썼다며 에세이집을 냈다. 책은 깃털처럼 가볍고 부드럽다.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와 재미난 캐릭터의 친구들, 짧게 드러난 깊은 사유들이 인상남는다.

공지영씨의 다른 에세이집은 읽어본 적이 없어 어떤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다음 에세이집도 가벼울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녀는 명랑한 게 어울리는 작가다. 그리고 이제는 맹랑하게 쫑알댈 수도 있을 거다. 그녀의 연륜과 인세, 그리고 자신을 인정하는 태도가 든든한 배경이 될 거다. 오해하는 대중과 에고이스트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새침하게 “난 늬 들을 이해 못하겠거든.”이라고 쏘아 붙이는 공지영의 모습을 상상해보니 웃음이난다.

개인적으로 공지영 작품들이 내게 위로를 많이 줬다. 그래서 너무 감사하지만, ‘공지영=위로 작가’란 틀에 갇히지 않을까 우려된다. 이번 작품 <아주 가벼운 깃털>에서도 조금씩 묻어난다. 가벼운 에세이에서 굳이 위로 점을 끄집어내는 내가, 아직 여물지 못한 지도 모르겠지만. 

 

   
  “새싹과 낙엽에 손톱자국을 내본다면 누가 더 상처를 많이 받을 까. 아기의 볼을 꼬집어 보고 노인의 볼을 꼬집어보면 누구의 볼에 상처가 더 깊이 남을 까” 생명이라는 것은 언제나 더 나은 것을 위해 몸을 바꾸어야 하는 본질을 가졌기에 자신을 굳혀버리지 않고 불완전하게 놓아둔다. 이 틈으로 상처는 파고든다. (중략) 상처받고 있다는 사실이 그 만큼 살아있다는 징표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하면, 싫지만 하는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상처를 딛고 그 것을 껴안고 또 넘어서면 분명 다른 세계가 있기는 하다. 누군가의 말대로 상처는 내가 무엇에 집착하고 있는지 정면으로 보여주는 거울이니까 말이다. p.171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비돌이 2009-03-09 0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다음에서 연재하는 '도가니'는 꽤 무거운 주제의 소설이라던데요. 다음 댓글을 보니 글 쓰다가 우울증이 생겼다는 얘기도 있구요.

모과양 2009-03-09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시비돌이님. 공지영씨가 어떤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 할지 궁금해지네요. 무거운 소설이라니, 시간내서 읽어야겠는데요. 너무 어려운 소설로 쓰신다면 안티로 돌아서버리겠습니다.ㅋㅋ

마법천자문 2009-03-10 0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문학쪽을 잘 몰라서 그러는데요. 공지영 작가는 왜 안티가 많은가요?

모과양 2009-03-10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Prelude님 미인에겐 안티가 많잖아요ㅋㅋㅋ
저도 공지영님이 왜 안티가 많은지 이해가 잘 안가요.^^
 
막스 티볼리의 고백
앤드루 손 그리어 지음, 윤희기 옮김 / 시공사 / 2008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막스 티볼리의 고백>을 다 읽었다. 최근에 읽은 소설 중 가장 흡인력 있었다. 어린 아이에게 달래 듯 써내려간 글이었는데, 청자인 그 아이는 이해하기 힘들 반전에 반전이 숨겨져 있다. 소설 속에서 화자는 주인공인 막스 티볼리이고 청자는 어린 새미와 여러분으로 지칭되는 독자다. 흥분과 차분이 교차되어 자신의 일생에 대해 들려주는데, 다 읽고 나니 어린 새미를 위한다기 보단 기막힌 자신을 위한 것일 수도 있겠다싶다.

주인공 막스는 일흔 살 늙은이의 외모로 태어나, 나이를 거꾸로 먹는다. 부유한 집안 덕에, 이 기형적 회춘(?)에 크게 개의치 않고 자란다. 그러나 집밖으로 나갈 나이가 되었을 때 부모님으로부터 약속을 하나 받는다. 실제 나이완 상관없이 남들이 보는 나이대로 행동해야 한다가 그것이다. 하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어야 말이지.

막스가 16살 때 생부 아르가르가 미스테리하게 사라진다. 아비의 부재로 가세가 기울자  아랫집에 세를 놓는데, 거기서 평생의 사랑 14살의 앨리스를 만난다. 하지만 중년의 모습을 한 17살의 막스는 앨리스의 엄마 레비 부인과 통하게 된다. 정작 열망하는 앨리스에겐 제 나이를 고백하는 바람에 첫사랑은 황망히 막을 내린다.

2부에선 이혼녀로 돌아온 앨리스가 막스와 우연히 같은 사고를 목격하면서 시작된다. 우연한 만남을 운명의 만남으로 돌리려 막스의 노력은 눈물겹다. 서로에게 나이가 자연스레 맞춰진 때, 둘은 결혼하고 큰 행복에 다다른다.

내가 누릴 수 있었던 유일한 호사는 당신의 미소, 상쾌함을 주는 당신의 그 미소를 구매하는 일이었소. p.266

그러나 막스의 결혼은 오래 가지 못한다. 막스는 결혼을 위해 실종된 아버지로 신분위조를 했었고, 점점 젊어지고 있었다. 늙어보이도록 머리염색을 하고 옷을 구식으로 신경 써 차려입었지만 앨리스의 애정은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중이었다. 숨겨둔 펜던트가 발견되면서 비밀탄로가 난 막스는 자기고백을 앨리스에게 또 하고 만다. 사랑을 붙잡기 위해 한 고백이었지만 돌아오는 건 냉담함 뿐이었다. 참 처절했다. 시간을 거스르는 천형은. 

막스는 죽기를 마음먹고 입대했으나 전쟁영웅만 됐고, 부상으로 실려 간 병원에서 자기의 이야기를 하다가 정신병원에서 요양한다. 폐인 삶을 살다 친구 휴이가 전해주는 소식으로 여행을 떠나는데, 바로 앨리스와 자신의 아들을 찾기 위한 여행이었다. 할아버지가 된 휴이와 꼬마가 된 막스는 같이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당도한 곳엔 4번째 결혼으로 들뜬 앨리스와 개구진 새미가 있었다. 막스와 휴이의 결론은 좀 충격적이다. 그리고 휴이의 궤적이 이해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읽는 내내, 작가 앤드루 손 그리어의 상상에 감탄하고 뜨거운 필력에 감복했다. 주인공 혼자만 나이를 거꾸로 먹는 설정은 신선함을 넘어 서늘했다. (소설을 읽을 당시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를 몰랐다.) 평범한 성장과정도 생과의 전투였고, 어린 마음에 겪을 남들과 다른 고통이 걱정 됐다. 거기에 역순회하는 일생을 걸고 사랑을 쫒는 막스의 행동은 읽는 이를 뜨겁게 한다. 책의 첫 페이지에 막스가 이런 문장이 써놓는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다.”

막스는 누군가의 삶에서 소중한 존재가 됐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비틀어 보자면 앨리스의 존재로 자신의 소중함을 알게 된 사람인 것 같다. 막스 스스로의 삶에서, 자신을 가장 소중히 했다면 결론이 다를 거란 생각이 든다. 막스의 사랑, 앨리스는? 자신의 삶을 가장 소중히 생각하는 영특한 여성이셨다.

막스가 6살 때, 우드워즈 가든스로 가족 소풍을 간다. 그 곳에서 재주부리는 곰과 처녀 비행하는 열기구도 보고, 평생의 친구 휴이도 본다. 공원장소만 쓰일 줄 알았던 우드워즈 가든스는 계속 나온다. 휴이를 짝사랑한 앨리스가 고백의 장소로 쓰고, 세 남녀의 재회 장소로 활용 된다. 소설은 공원의 퇴락까지 보여주는데, 열기구 비행은 사고가 나고 늙은 동물들은 사살된다. 공원이 쇠락이 시간의 덧없음을 보여주고, 셋이 만남으로써 보이는 긴장의 장소로만 생각했다. 그런데, 마지막 장을 읽으면서 공원의 흥망성쇄가 복선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ps 1. ‘자연스레 맞춰진 때’라, 내가 쓰고도 왜 이 문장에서 놀랐다. 사랑하더라도 서로의 ‘때’가 맞지 않으면 헤어진다는 ‘시절 연인’이라는 말, 결혼은 사랑하는 사람과 하는 것이 아니라 할 ‘때’가 된 사람끼리 한다는 격언과 통하는 것 같다. 이놈의 ‘때’를 기다리느라 나는 조금씩 늙어가고 있다.

ps 2. 난 아직도 팬던트 목걸이에 새겨진 1941의 의미를 모르겠다.

ps 3. 이 책과는 약간 다르지만,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를 보고 왔다. 젊어지는 브래드 피트를 보면서 감탄하고 왔다. 그러다 오늘 <벤자민 버튼..> 원작 소설에 당첨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알라딘에 감탄한다.     비교하면서 읽어봐야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생중계 심리학 라디오 - 사랑.가족.시대에 상처받은 이들의 리얼스토리
권문수 지음 / 글항아리 / 2008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난, 의사소통에 능하지 못하다. 그 덕에 인간관계에 실수와 상처가 많다. 직장 내 인간관계는 그 정점이며, 내 주름의 원흉이다. 아직까지 칼을 품고 있는 이도 있다면 말 다했다. 억울해서라도 수간호사까지 해버리고야 말겠다는 게, 내 자위의 전부다. 진급을 위해 준비한 건 없고, 독을 뿜어봤자 다시 돌아올 독이 무서워 아무것도 하질 못했다. 책으로 스트레스 상황을 벗어나곤 했는데, 그 책에서 해독제를 찾게 될 줄이야. 해독제는 이렇게 생겨먹은 걸 인정해버리기 였다. 맞지 않는 사람한테 억지로 잘 보이려 애쓸 필요 없고, 그 시간에 나한테 잘하기로 마음먹으니 한결 가벼워졌다.  

이곳에서 일한지, 4년이 되어간다. 이제는 후임의 직장생활 고민에 조언을 해줄 정도가 됐다. 조언의 바탕은 그동안 읽은 심리학책이다. 매년 읽어본 통에 이젠 다 아는 내용이 돼버렸는데도 매년 새 책을 사게 된다.

오늘 읽은 책은 권문수의 <생중계 심리학 라디오>다. 전작<그들에게 무슨 일 있었던 걸까>를 재미있게 읽어 이번에도 보게 되었다. 저자는 미국에서 임상상담학을 전공한 테라피스트이다. 병원과 자신의 개인 클리닉에서 만난 내담자에 대한 내용이 주다. 이상행동과 치료경과, 저자의 생각이 중간 중간 섞여 흥미롭게 읽었다.

그동안 읽어 온 심리학책의 다수는 에세이와 치료책이었다. 비교를 하자면 에세이는 ‘나도 그런데’라며 공감을 얻는다. 반면, 이런 임상적 내용이 든 심리 치료책에선 ‘그래도 난 미치지 않았어’라는 위로를 받는다. 이 책은 임상 심리치료책이지만, 공감까지 같이 끌어낸다. 저자의 트라우마 고백 때문이다. <유리로 만든 가슴을 가진 아이>편에서 자신의 정체성 장애와 강박증, 불안장애를 고백한다. 이 내용에서 피식 웃음이 났다.

성공한 듯 보이고, 자기 분야로 책도 내고, 미국인을 상대로 상담업무를 하는 게 부러웠나보다. 미국 안착 성공배경엔 그의 강박증이 한 몫 하지 않았나 싶다. 저자는 청소년기를 넘어서면서 부터 트라우마를 극복했고, 이런 경험이 환자 이해에 도움이 됐다. 많은 전공 중에 임상상담학을 전공한건 이런 극복경험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강박증을 긍정적인 강박증으로 대체하는 내용, 자살할 마음이 드는 순간 테라피스트에게 전화하게끔 하는 내용 등이 흥미로웠다. 자살할 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 되기 때문에  상담원에게 전화를 하게 되고, 그로인해 자살이 예방된다니 놀랍다. 저자가 일하는 병원엔 이 프로그램 때문에 아무도 자살이 하지 않았다고 하니 감탄할 뿐이다. 우리나라에 노인 자살율이 세계1위로 해마다 증가한다고 하는데, 현 노인정신보건 시스템에도 접목할 수 있을까? 글쎄, 그쪽에서 일해보진 않아서 잘은 모르겠지만 회의적이다. 올 7월에 시행될 노인 장기요양보험도 이해 부족인 사람이 더 많다. 복지부가 노인의 정신건강까지 챙길 여력이 있을까 싶다.

미국의 정신 장애자 지원 시스템이 부러웠다. 주변에 정신장애로 힘들어 하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지, 미국의 시스템이 지나치게 과하다는 생각도 순간 들었는데, 정초의 핫 이슈 ‘사이코패스 강호순’을 생각하니 암담하다. 정신과엔 일해 본 적이 없어서 가볍게 읽었는데, 이쪽으로 관심이 있는 사람이 읽으면 좋은 책일 듯 하다. 그리고 환자의 환상까지 그대로 이해해준다는 것에서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한때 데니스에게는 자신만의 세상이 있었다. 환상 속에서 신디라는 이름의 애인과 사귀었고, 잠을 잤으며, 프러포즈를 했고 두 명의 딸과 한 명의 아들을 두었다. 데니스는 그렇게 자신의 가족이 있어서 외롭지 않다고 했다. (중략) 증세가 좋아지면서 그의 환상도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데니스는 혼신의 힘을 다해서 환상 속의 아내인 신디와 세 명의 아이들을 불러들였다. 마지막 작별을 고하기 위해서였다. 바로 세션 중에 일어난던 일이다. (중략)

“무슨 말을 해야 해요?”
“그냥 사랑했다고 말해줘.”
“신디, 사랑해. 아이들아, 사랑해 사랑해......”


젠장, 이게 뭐야. 나는 괜스레 눈물이 나는 걸 참느라 고생했다. 유리로 만든 가슴의 소유자인 데니스는 사무실이 떠나가라 통곡을 했다.  (p.280~28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달을 먹다 - 제13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김진규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영화<미인도>는 연기력 없는 배우들, 옷 벗기는데 용 다 써버린 영화였다. 뒷맛은 쓰고, 오랫동안 헛헛했다. 그런데 그 저질 영화를 보던 중, 눈물을 흘렸다. 극장을 나오면서 얼굴이 상기됐던 사람은 나뿐이었다. 동행했던 이에게 왜 울었는지 이야기하지 않고선 오해받기 쉬웠다. 내가 운 이유는 딱 하나, 서로 사랑하는 걸 알면서도 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중에야 서로를 인정하긴 하지만, 그 전의 상황은 안타까웠다.

<달을 먹다>를 읽다가, 이 부분에서 울었다.

-향아!
내 색시가 되길 소망했다고, 하지만 늙고 불쌍한 어머니를 거역할 용기가 없었다고, 아버지 최약국을 죽인 건 너를 자유롭게 해주고 싶어서였다고, 그렇다고 어미까지 잘못될 줄은 몰랐다고, 혼자이게 해서 미안하다고, 나도 너처럼 다리를 절고 싶다고, 그리고 힘들고 어렵겠지만 앞으로도 계속 얼굴을 보게 해달라고. 그렇게 말을 했어야 했다.
- 향아!
(p. 111)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달을 먹다>는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는 연인들이 대거 등장한다. 여문과 향이를 비롯해 희우와 난이, 나중엔 스님이 된 제현과 하연까지 거슬러 오른다. 문학동네 수상작인 <달을 먹다>와 저급 영화<미인도>가 연관됐던 건 순전히,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하는 애달음 때문이었다. 덧붙여 추가한다면 영 정조시대로 같은 시대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내간체 소설이라 담백하게 쓰인 것 같지만, 속은 짜고 맵고 쓰다. 단맛이 나는 곳은 딱 두군데 뿐이다. 태겸이 아내 묘연의 말없음을 심심해하며 아내 방을 뒤지는 장면과 여훤이 소박맞은 아내, 설희를 데리고 오는 장면뿐이다. 그 외에는 근친상간을 건드려 죄다 불안하다. 후인과 최약국도 불편하다. 아내를 귀이 여기면서도 냉담함 속에 방치했던 최약국은 딸로 인해 살해당한다. 마지막에 희우와 난이가 만날 것임을 예고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쯤에서 소설이 적당히 끝을 맺어준다.

뒷 표지를 덮고 나니 ‘사랑이 왜들 이러냐? 좀 편안 사랑들도 많을 텐데, 왜 하필 그 놈이냐고!’ 버럭 소리치고 싶어졌다.

ps 등장인물 각각의 시선 속에 조합되는 이야기라 복잡하게 읽힐 수도 있지만, 그래서 더 좋았던 소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