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내가 서 있는 곳을 묻다 (얼음장수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rlawnduf3</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쓰지 않는 것에 대한 모든 핑계에도 불구하고.</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Sat, 27 Jun 2026 09:02:53 +0900</lastBuildDate><image><title>얼음장수</titl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myface/pt_770501133.jpg</url><link>https://blog.aladin.co.kr/rlawnduf3</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얼음장수</description></image><item><author>얼음장수</author><category>아직, 제목을 못 정함.    </category><title>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겠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rlawnduf3/17351200</link><pubDate>Tue, 23 Jun 2026 17:2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lawnduf3/17351200</guid><description><![CDATA[<br><br><br><br><br><br><br><br><br><br><br><br>&nbsp;만약 내 묘비명 같은 것이 있다고 하면, 그리고 그 문구를 내가 선택하는 게 가능하다면, 이렇게 써넣고 싶다.&nbsp;<br>&nbsp;무리카미 하루키&nbsp;작가(그리고 러너)&nbsp;1949~20**&nbsp;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259쪽<br>&nbsp;풀 마라톤 완주 25회, 울트라 마라톤(100km 달리기. 오타 아니다. 100km가 맞다.)을 걷지 않고 완주한 러너가 남긴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라는 문장이 어찌나 폼나던지, 풀 마라톤은 고사하고 하프 마라톤 경험도 없는 일천한 러너인 나도 항상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겠다'라는 생각으로 달려 왔다. 물론, 그 다짐을 지키기 위해 10km를 달리려던 계획이 7km나 5km로 줄어든 적도 제법 있었지만. 어쩌겠는가. 멈출지언정 다짐을 어길 수는 없다는 심정이었다. 풀 마라톤 경험이 없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러닝을 시작할 때 두 가지 결심한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br>&nbsp;첫째, 풀마라톤 완주 같은 목표는 애시당초 세우지 않는다. 나 자신과의 싸움은 이미 충분할뿐더러, 왜 굳이 풀코스를 뛰어야 하는지 동의가 안 되기도 했다. 건강을 위해 뛰는 건데, 무리하다 건강을 해칠 것 같기도 했고. 마라톤 풀코스가 100km였으면 거기에 맞춰 뛰어야 되는 거야라는 못난 심보였던 것 같다. 뭐, 요는 러닝만큼은 어떤 목표나 구속 없이 마음 내키는 대로 달리고 싶을 때 뛰고 싶은 거리만큼 낼 수 있는 속도로 해 보자, 나는 나의 러닝을 하겠다는 마음이었다. 사람은 참 안 변하지만 사람 마음은 쉽게 바뀌는 것인지, 올해 11월 하프 마라톤을 완주하는 것이 목표가 되었다. 그것도 1시간 50분이라는 시간 내에 들어오는 걸로. 지금의 나는 이런 목표를 가진 러너가 된 것이다. 계기는 없다. 그냥 달리다 보면 그런 마음이 생기기도 하는 건가 보다.&nbsp;<br>둘째, 장비에 돈을 쓰지 않는다.&nbsp;안전과 관련된 신발을 제외하고는 장비에 투자할 마음이 없었다. 절약하고자 하는 마음이기도 했지만, 그게 러닝만의 매력이라 생각하고, 진정한 러너의 자세라고 생각했다. 고성능의 시계 차고 이런저런 액세서리 달고, 겉멋이라 치부했다. 그런 내가 가민을 샀다. 가장 기본 모델이긴 하지만 나로서는 놀라운 일이다. 아무래도 하프 마라톤을 준비하기 위한 체계적인 훈련을 위해 필요하겠더라.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가 이해할 수 없는 러너가 된 것이다. 시계 하나 차는 게 뭐라고 의욕이 더 생기기는 한다. 구비했으면 허투로 쓰지는 않는 게 또 나라는 사람이기도 하다.<br>&nbsp;가민에 적응할 겸 슬슬 달려보았다. 실시간으로 페이스와 심박수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게 가장 도움이 된다. 기존의 런데이 어플을 쓸 때의 불편함이 싹 해소되었다. 목표한 하프 1시간 50분을 이 녀석과 함께 잘 준비해 봐야겠다.<br><br>&nbsp;처음 결심했던 풀코스 마라톤 도전하지 않기는 끝까지 지킬 수 있을까? 지금 마음으로는 그렇다, 이지만 자신은 없다. 내일의 나를 오늘의 나는 알 수 없다는 걸 이미 배웠으니까. 어쩌면 42.195km를 뛰겠다고 보스턴이나 베를린이나 시즈오카로 떠나는 날이 올지도 모르는 거다. 아니면 당장 하프 마라톤 완주도 목표한 기록을 못 낼 수도 있는 거다.&nbsp;다만, 끝까지 걷지는 않을 생각이다. 그 생각은 한번도 변하지 않았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02/5/cover150/8970128336_3.jpg</url><link>https://blog.aladin.co.kr/rlawnduf3/17351200</link></image></item><item><author>얼음장수</author><category>아직, 제목을 못 정함.    </category><title>에세이의 미덕</title><link>https://blog.aladin.co.kr/rlawnduf3/17243694</link><pubDate>Tue, 28 Apr 2026 15:0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lawnduf3/17243694</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4830302&TPaperId=1724369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3178/93/coveroff/8974830302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 &nbsp;&lt;올드걸의 시집&gt;은 몇 년 전에 읽고 두 번째 읽는 것 같다. 문학 전공자들의 비평집보다 훨씬 더 독자를 끌어당기는 다양한 매력이 있는데, 그 중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는 건 솔직함 내지 정직함이다. 꾸며서는 한 권 분량의 에세이를 쓸 수는 없을 터이기에, 에세이의 매력은 결국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 보이는 데 있다는 생각이다. 물론,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드러낸 솔직한 모습이 매력적이어야 할 텐데, 그런 점에서 좋은 삶을 살지 않고서는, 깊이 있게 생각하지 않고서는 울림이 있는 에세이는 나올 수 없는 거겠지.<br>"우리 엄마는 한때는 소녀인 적이 있었답니다."를 "우리 엄마는 지금도 소녀일 때가 있답니다."로 고쳐주고 싶었다는 일화(그래서 '올드걸의 시집'이라는 제목이 나온 것)에서 시직하는 이 에세이집은 주어진 인생의 국면들에서 물러서거나 도망가지 않고 최선을 다해 마주해 온 사람의 목소리로 가득하다.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읽기에도 좋지만, 아무래도 위스키나 와인 한 잔 따라놓고 읽기에 더 좋다고나 할까.<br><br>사랑하는 일을 왜 사과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영화에서 그런 설정이 많이 나온다. 다른 사람을 사랑해놓고 배우자 혹은 애인에게 눈물 흘리며 속죄의 발언을 한다. 난 그것이 못마땅하다. 사랑을 하지 않을 수 있었는데도 사랑했다는 것인가? 이것은 사랑에 대한 모독이다. 사랑의 자유의지를 전제하는 것이다. (중략)&nbsp; 이런 얘길 하면 묻는다. "니 남편이 그래도?"라고. 마음 같아선 그의 사랑을 존중해주고 싶다. 한때나마 뜨겁게 사랑했던 남자가 남편이다. 그에게, 다시는 사랑은 가능하지 않다고 전제하는 게 나로서는 더 쓸쓸하다.(24쪽)&nbsp;&nbsp; '한때나마' 뜨겁게 사랑했던 고백이야 심상한 것이라 해도, 남편에게 다시는 사랑이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더 '쓸쓸하다'는 선언은 처연하게 읽힌다. 물론, 백날 이렇게 말하고 적어봤자 자칭 도덕주의자들은 끄덕도 하지 않겠지. &lt;헤어질 결심&gt;이 불륜을 예찬하는 영화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도처에 널려 있지 않은가. &lt;헤어질 결심&gt;에서 두 주인공의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사람이 이 영화를 불륜 예찬이라고 핏대 세우는 사람보다 불륜을 저지를 확률이 더 낮을 것이고, 남편이 다른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아내가 그 가능성을 원천봉쇄하는 아내보다 적어도 자신의 (한때나마 뜨거웠던) 사랑에 더 충실한 것이 아니겠는가.&nbsp;<br>&nbsp;그건 그렇고 나는 이런 말을 내 이름과 얼굴을 공개하고 쓸 자신이 없다. 그래서 이렇게 비겁하게 좋은 글을 빌려서 한 마디 보탤 뿐이다.&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3178/93/cover150/897483030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31789371</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