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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실력이 밥 먹여준다: 낱말편 1 국어실력이 밥 먹여준다
김경원.김철호 지음, 최진혁 그림 / 유토피아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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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쓰기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몇 해 전부터 이공계 대학생들의 글쓰기 문제가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대입에서 논술 비중을 늘이겠다는 교육부의 발표로 전국의 중고등학생들(이보다는, 중고등학생을 자녀로 든 일부 학부모들)도 글쓰기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서점에 즐비하게 자리한 각종 글쓰기 관련 책들은 글쓰기의 달라진 위상을 여실히 보여주는 광경이다.

 흔히 좋은 글을 쓰기 위한 3대 조건으로 다독, 다작, 다상량을 꼽곤 한다. 다른 사람이 쓴 좋은 글을 많이 읽고, 스스로 글을 많이 써보고, 평소에 글쓰기와 관련해 깊이 생각하는 습관을 가지라는 것이다. 이 세가지가 좋은 글을 쓰기 위한 가장 근본적이고 중요한 요소임에는 틀림없지만 막상 글을 쓰려고 하면, 뜬구름잡는 이야기만 같다. 실제로 글을 써보면 서론-본론-결론은 어떻게 구성할지, 맞춤법은 맞는지, 어떤 단어를 선택해야 의미를 잘 드러낼 수 있는지부터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국어실력이 밥 먹여준다"는 이 중에서도 문장에서 단어 선택의 문제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는 책이다. 글쓰기 전략에 관한 책이나 맞춤법에 관한 책은 쉽게 구해 볼 수 있지만 어휘 문제에 관한 책은 드물었다는 점에서 이 책은 반가운 책이다. 개인적으로는 글을 쓸수록 적절한 어휘 사용에 대한 압박이 커져가고 있음을 느끼기에(마음에 꼭 드는 표현을 골라냈을 때의 기쁨이란 것도 있지만) 한 번 더 반가운 책이다.

 "국어실력이 밥 먹여준다"는 일종의 한국어 뉘앙스 사전이라 일컬을 만하다. '속과 안'. '궁둥이와 엉덩이', '참다와 견디다' 등 실제 언어 생활에서는 직관적으로 꽤 정확하게 구분해서 쓰는 말이지만 어감의 차이를 쉬이 설명할 수 없는 짝낱말들의 차이를 어원 분석이나 다양한 용례를 통해 잘 드러내준다. 재치 넘치는 삽화와 깔끔한 설명은 독자로 하여금 자칫 지루해질 수도 있는 내용을 재미있게 받아들이게끔 도와준다. '입말'. '글말', '본디말' 등 우리말 표현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점도 이 책의 돋보이는 부분이다.

 두 명의 공동 저자가 현재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책 곳곳에 번역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거니와 번역 작업이야 말로 언어의 섬세한 뉘앙스까지 포착해야 하는 작업이 아닌가. 이들이 국문학을 전공한 번역가라는 점도 이 책의 집필 과정에서 상당 부분 기여했을 듯하다.

  앞서 말했듯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대부분의 말들을 우리는 일상 언어생활에서는 꽤나 적확하게 구사한다. 그러니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단순히 헷갈리는 어휘들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에서 그치치 않는다. 비슷한 뉘앙스를 가진 짝낱말을 보면서 책의 설명을 읽기 전에 혼자서 나름의 답도 구해보고, 설명을 읽으면서 자신의 나름 짐작했던 것과 어떤 부분에서 어떻게 갈리는지를 파악하면서 읽는다면 어휘 몇 개에 대한 지식을 늘리는 것 이상의 언어에 대한 기본사고력을 배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머릿말에서 저자들이 궁극적으로 의도한 바이기도 하니, 이 책은 적극적인 독법으로 임해야 건질수 있는 것이 많을 것 같다. 저자들의 부단한 노력과 정성이 돋보이는 책, "국어실력이 밥 먹여준다"는 곁에 두고서 필요할 때마다 꺼내볼 만한 한국어 참고서로 손색이 없다.

덧) 뉘앙스 사전이라 칭한 책을 읽고도 뉘앙스를 제대로 살려내지 못한 표현을 수두룩하게 써놓고 보니 리뷰쓴 손이 참 민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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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비닛 - 제12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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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니 나도 토포러?

 
 오랜만에 만난 친구 녀석과 술 한 잔 하다 자연스레 군대 이야기가 나왔다. 친구 왈, "이야~ 가마히 생각해보면 군대에서의 2년하고도 2주(본보기로 잘못 걸려서 영창 갔다왔단다)가 꼭  하룻밤 꿈만 같다." 부러움에 몸을 떨며 내가 대답했다. "난 내 군생활이 하룻밤 꿈으로 끝날 수 있는 거면 소원이 없다. 잠에 푹 빠져가 길다란 꿈 꾸고 일났는데 제대하라고 해주면 얼마나 좋겠노."
 
 자주 그런 생각을 한다. 아주 긴 잠을, 잠에서 깨어나는 시간은 내가 제대하는 날인, 그런 긴 잠을 자면 얼마나 행복할까. 그럴 때면 스트레스나 받지 말고 꾸역꾸역 살아가자며 스스로를 다독이곤 했다. 이러다 내가 정말 이상해지는 건 아닐까 조금은 두려워하며.
 
정신병동에서 심토너를 구출하다.
 
 그래서, "캐비닛"이, 반가웠다. 토포러들의 이야기를 읽는 순간 반가운 나머지 존재하지도 않는 그들이 왠지 가깝게 느껴졌다. 얼마나 현실이 팍팍하고 고통스러웠으면 자버렸을까. 아니 깨어나지 않아버렸을까. 걸쭉한 입담탓에 웃으면서 읽었지만, 그래서 내내 웃을 수 만은 없었던 토포러들의 이야기였다. 토포러 외에도 시간을 잃어버리는 타임 스키퍼들, 손가락에서 은행나무가 자라는 남자, 사랑하는 여자의 곁에 있기 위해 고양이가 되고 싶어하는 남자, 기억을 조작하는 메모리 모자이커, 자신이 온 별과 통신을 하기 위해 생업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외계행성과의 통신에 투자하는 사람들 등 이 도시의 어딘가에 존재할 법한 기이한 심토너들의 이야기가 13호 캐비닛에 차곡차곡 정리돼 있다. 이들은 정상성이라는 범주에 의해 낙인찍힌 현대의 낙오자들이다. 이들은 체제의 안정적인 유지를 위해 변두리에 위치 지워진 군상들이며, 현실에서는 대개 '정신병동'이라는 특수한 공간에 수용되는 존재들이다. 작가는 현실의 정신병동에 있는 심토너들을 13호 캐비닛을 통해 바깥으로 끌어온다.
 
심토너를 인정하는 한가지 방법, 나
 
 백칠십팔 일 동안 사백오십 박스의 캔맥주를 마신 사람이 있다. 조사를 하나 바꾸는 게 좋겠다. 백칠십팔 일 동안 사백오십 박스의 캔맥주'만' 마신 사람이 있다. 할부로 찾아오지 않는 불행에 이 남자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캔맥주를 마시고 깡통을 찌그러뜨리는 일 뿐이었다. 이 남자, 다시는 찾아오기 힘든 운 덕에 모 공기업의 연구소에 입사하게 된다. 입사의 기쁨도 잠시,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 것 말곤 할 일이 없던 무료함 때문에 회사의 구석구석을 살피다 권박사의 연구실을 발견하게 된다. 우연히 13호 캐비닛을 발견하고 순전히 무료함 때문에 1에서 9999까지의 숫자를 돌리는 무모함으로 13호 캐비닛을 열고 심토너들의 기록을 보던 나는 권박사에게 발각돼 그의 조수로 일하게 된다. 권박사의 조수로 일하며 수많은 심토너들을 겪으면서 심토너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묘한 애정을 보여주는 나의 모습을 통해 작가는 독자에게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게끔 한다. 권박사가 나를 후계자로 삼으려는 데서 알 수 있듯이 나란 심토너들을 따뜻하게 보관하고 기록할 수 있는 면모를 가진 인물이다. 또 하나의 심토너라 볼 수 있는 손정은을 대하는 태도나, 중간에 잠깐 드러나는 나의 학창 시절 때의 모습은 심토너를 인정하는데 필요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각자의 시계를 차고 함께 지하철을 타기
 
 이제, 심토너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라는 문제가 남는다. 작품 곳곳에 드러나는 작가의 따뜻한 시선은 기본적으로 심토너들이 현대문명의 부산물이며 따라서 우리모두가 함께 끌고 가야 할 존재임을 암시한다. 어쨌든, 우리는 같은 지하철을 타고 있으니 말이다. 동시에 작가는 섣불리 심토너들을 이해하겠다는 태도는 경계한다. 결국, 세계란 각자의 시계를 찬 사람들이 각자의 시계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라고. 그러니, 우리가 고작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각자의 시계를 존중해주는 일, 각자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밖엔 없다.  내가 요새와도 같은 섬에 가서 13호 캐비닛의 보관자이자 기록자로 남게 된다는 결말은 이러한 작가의 태도를 드러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김언수가 생각하는 문학의 알파와 오메가는 기록일까. 기발한 상상력을 걸쭉한 입담으로 문학적으로 형상화시킨 김언수라면 뭔가 더 있을 것 같다. 왠지 정이 가는 김언수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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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장수 2007-01-25 0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목재 가공업을 정밀 목재 가공업으로 바꾸는 선생님의 대사에 두손두발 다 들었습니다. 얼마만에 이렇게 배꼽 잡으며 책을 읽었는지 모르겠네요

얼음장수 2007-02-03 0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캐비닛을 읽으며 유머란 어디에서 오는 걸까. 뭐 이런 생각을 많이 해봤습니다.
삶에 대한 여유에서 오는 건지 발랄한 상상력에서 오는 건지 아직까지 감은 못 잡겠습니다만. 뭐, 어쨌든 유머라면 환영입니다^^
 
이현의 연애
심윤경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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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윤경은 보통 심지를 가진 작가가 아닌 것 같다. 전작(前作)의 작가의 말이나 각종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드러난 그녀의 확고한 소설관을 통해, 내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이현의 연애"를 통해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사실 뜻밖이었다. 요즘 한국 문단에 유행하는 문학과는 다른 문학을 써보겠다고 힘줘 발언하던 심윤경이, "달의 제단" 출간 후 인터뷰에서 "달의 제단에서는 전통이 소멸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니, 전통이 살아남는 소설을 한 번 써보고 싶다"라고 말한 심윤경이, 연애라는 단어가 제목에 포함된 소설을 출간했다는 소식은 내게 이런저런 생각의 꼬리를 물게 헀다. '아무래도 연애 이야기로는 한계가 있지 않을까'  풀지 못한 의구심과 함께 "이현의 연애"를 집어들었다. 그래도, 심윤경이라면, 뭔가, 다를 거라고 믿으며. 혹은 자위하며.

 결국 연애라는 타이틀을 걸고 사랑이라는 이야기를 했지만(이현의 입장에서 보면) 콕 끄집어내기는 힘들지만 뭔가 다르게 그녀만의 방식으로 풀어냈다는 느낌이 든다.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신비로운 사랑" 이야기 한 편을 알게 된 느낌이랄까. 그리하여 예술의 가장 고전적인 주제인 사랑은 이 책에서 새로운 색채를 덧입는다. 영혼을 기록하는 여자와 사랑에 빠진 남자의 비극적인 이야기. 사랑이라는 감정을 품을 수 없는 여자를 사랑한 남자가 어떠해야했는지를, 이세 공과 이현을 통해 만날 수 있다. 진실되고 순수하게 아름다웠지만, 결코 아름답게 끝날 수는 없는 비극을 심윤경은 치밀한 이야기 배치와 정교한 심리 묘사를 통해 극적으로 드러낸다. 적어도, 무얼 써도 다르게 쓰겠다는 심윤경의 의지만큼은 이번에도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이 이현의 입장에서 보면 사랑 이야기이지만, 이진의 입장에서 읽으면 기록에 대한 이야기다. (이진이 한 번도 이현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품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 작품 후반부에 드러나며, 이는 앞부분부터 지속적으로 암시된다) 태어나면서 기록하는 사람의 운명을 타고 난 여자, 이진을 주인공 중 한 명으로 등장시킨 건 어떤 의도일까. 소설가란 직업도 기록한다는 행위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이는 심윤경의 글쓰기와 관련한 어떤 면모를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되짚어보면, 심윤경의 세 편의 작품을 기록이라는 테마로 연결할 수도 있지 않을까? "나의 아름다운 정원" 의 동구가 글을 배워나가는 건 기록에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수단을 획득하는 것이고, "달의 제단" 의 상룡이 소산 할매의 언간 해독작업을 하는 것은 옛 기록에 대한 복원을 보여주는 것이고, "이현의 연애" 의 이진이 영혼을 기록하는 것은 기록 그 자체에 대한 작가의 고민을 보여주는 것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잠깐이지만 기록 행위에 대한 심윤경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대목도 나온다.

 이진은 표정 없이 사각사각 기록했다. 부총리는 어이없어서 웃었고 나는 통쾌해서 웃었다. 내가 처해 있는 이 어이없는 상황, 이 여자기 휘두르는 무소불위의 권력, 무엇으로도 피해갈 수 없는 이 처절한 수모의 경험이 현실 속에서는 얼마나 말도 안 되고 우스꽝스러운 것인지 - p. 268

 기록하는 자가 휘두르는 무소불위의 권력. 나는 이 대목을 통해 심윤경이 기록하는 행위(글쓰기)의 윤리적 문제에 대해 예민하게 인식하는 작가라고 느꼈다. 그리고 이는 소설을 업으로 삼는 사람에게 큰 미덕이 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현실에서는 말도 안 되는 일이 기록에서는 가능하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글쓰기가 가질 수 있는 여러 효용들에 대해서도 동시에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런 맥락에서 약속을 어기고 이진의 기록을 훔쳐본 이현이 맞게 되는 파국은 기록을 모멸한 자에게 작가가 내리는 벌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가져 보았다.

  "이현의 연애"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은 이진의 기록이라는 이름 아래 중간중간 삽입된 4편의 이야기들이다. 억압받고, 욕망하고, 고뇌하는 영혼들을 기록한 이 4편의 이야기를 통해 작가는 경계에 선 듯 아슬아슬한 인생들을 드러내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 표현해내기 힘든 경계 위에서 아슬아슬한 관계를 유지했던 이현과 이진처럼. 언어화시키기는 힘들지만, 4편의 이야기는 이현과 이진의 기본 서사와 묘하게 맞물리면서 기본 서사에 어떤 암시를 주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더 상세한 분석은 내 능력 밖의 일로 느껴지니 안타깝다. 4편의 이야기는 짤막한 단편을 읽는다는 느낌을 주기도 했는데, 심윤경 소설에서 볼 수 없었던 1인칭 화자의 등장이나 심윤경 소설에서는 볼 수 없을 것만 같은 이야기(특히, '라 캄파넬라')를 만날 수 있어서 인상적이었다.  혹시 다음번엔 단편소설로 돌아오는 것은 아닐까.

  매혹적이고 독특한 분위기의 흥미로운 소설이었는데 의문점도 몇 가지 남는다. 특히, 천상계에나 존재할 법한 이진의 아름다운 외모에 대한 지나친 강조는 조금 거슬렸다. 결국 이진이라는 인물은 현실에서는 결코 존재할 수 없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까. 작가의 의도는 짐작하기 힘들지만, 이진의 아름다움에 대한 반복적인 묘사는 내게 이진이라는 인물에 대한 현실감을 거세시키는 작용을 했다. 동시에 약간의 지루함을 안겨다주기도 했다.

  결말은 급작스럽다는 느낌을 주기도, 예정된 길이라는 느낌을 주기도 하는 그런 결말이었다. 한가지 분명한 건 작가가 강렬하고 임팩트있는 결말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달의 제단"에 이어 "이현의 연애"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 이진에 대해서 이현이 기록한 부분은 그 강렬함을 천천히 녹여주면서 적적한 여운을 남김과 동시에 가슴 먹먹해짐을 니낄 수 있게 해주는 아름다운 문장이었다.                                                        

 "나는 이진, 영혼을 기록하는 여자입니다"로 시작해 " 나의 이름은 이현, 영혼을 기록하는 여자를 사랑했던 남자"로 끝나는 독특한 사랑이야기, 이현의 기막힌 연애담을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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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장수 2007-01-18 0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심윤경씨는, 이야기 구성에 많은 고민을 하는 것 같고 그만큼 빼어난 구성의 맛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상룡이에 이어 이현도 꽃미남으로 등장하는데, 아하, 우리네 훈남의 이야기는
언제 구경시켜주실지.

얼음장수 2007-02-03 0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지도 못한 상(?)을 받았네요.
왠지 애정이 많이 갔던 책이었는데, 글에서도 그게 드러났나 봅니다.
지금은, 좀 쑥스럽습니다. 하하.

프레이야 2007-02-04 2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선 축하드립니다. 좋은 리뷰를 읽으면 예상치 못한 기쁨이지요.^^
읽고 싶어지는 책입니다. 평도 모두 좋더군요.

마늘빵 2007-02-05 0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합니다. ^^

얼음장수 2007-02-05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두 감사합니다. 읽는 내내 참 행복했습니다.

다락방 2007-02-06 0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이주의 마이리뷰 당선이요 :)

얼음장수 2007-02-06 1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감사합니다. 좋은 작가, 좋은 책 덕분입니다.
 
달의 제단 - 개정판
심윤경 지음 / 문이당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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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교 교양으로 수강한 한국 근대사 강의를 맡으신 강사분은 내가 강한 인상을 받았던 몇 안 되는 교수, 강사 중 한 명이다. 강의 방식이나 글을 쓰는 방법이 대개의 분들과 많이 달랐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강의 첫 시간에 들은 그분의 독특한 이력의 영향이 컸다. 식물학을 전공해 석사학위까지 취득하고서, 진로를 틀어 사학을 전공하고 계셨기 때문이다. 워낙에 관련이 없어 보이는 전공이기도 했고, 왠지 그 식물학 석사 학위가 아깝기도 해서(이런 게 바로 그 오지랖 넓다는 걸까) 그 강사는 내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심윤경도 대학에서 분자생물학을 전공하고 전업작가로 급격히 방향을 튼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앞서 말한 강사분이 90도 정도 방향을 틀었다면 심윤경은 180도 정도 되지 않을까 싶다. 그 강사의 강의 방식이나 글을 쓰는 방법, 강의중 곁말들을 통해 드러나는 인생관들이 기존의 교수, 강사들과는 상당히 궤를 달리 했던 것처럼, 심윤경의 작품이나 그녀가 작가로서 보여주는 행보 또한 기존 작가들과는 차별성을 드러낸다. 최근작인 "이현의 연애"는 아직 읽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처녀작인 "나의 아름다운 정원"과 차기작인 "달의 제단"은 2000년대 한국 문단의 주류적인 경향에서 벗어나 있는 작품이다. 그리고 아직까지는 한국 문단의 중심이 단편 소설인 상황에서 심윤경은 연속 3편의 장편만을 발표하고 있다. 작가 개인적으로 단편도 습작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발표된 단편은 아직 없다. - 이 부분에 관해서는 2007년 이상문학상 수상자인 전경린씨의 수상 인터뷰가 생각난다. 단편 중심의 한국 문단이 개별 작가들의 사회경제적 환경과 맞물려 있다는 그녀의 발언은 곱씹어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장편소설에 대한 문학상의 비중을 늘린다던가 하는 제도적 장치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고, 문학계의 자체적 논의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  심윤경이 꼭 단편을 써야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장편에서 이렇게 훌륭한 능력을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달의 제단"은 잘 읽힌다. 소재도 어찌 보면 고답적이고 이야기 전개가 크게 긴장감을 유발시키는 것도 아닌데 이 소설은 잘 읽힌다. 이는 기본적으로 심윤경의 문장이 군더더기 없이 매끄럽기 때문이다. 불필요한 문장이 잘 보이지 않고,묘사는 깔끔하고 정교하다. 언간에 사용되는 고문도 친절한 주석 덕분에 해석이 크게 힘들지 않다. 주인공 상룡의 복합적인 내면에 연민과 불가해를 동시에 느끼다 보면 어느새 소설속에 빠져버린다.

 

  언간의 결말에서 드러나는 대로 끔찍한 치부를 가진 가문의 위신을 위해 한평생을 바치신 할아버지와 할아버지의 눈에 차지 않는 종손 조상룡의 갈등이 소설의 기본축이다. 그리고 소설을 떠받치는 나머지 축 하나는 상룡의 10대 조모인 소산 할매가 그녀의 친할머니와 주고 받은 언간이다. 이 두 축의 교차 반복으로 소설은 짜임새있는 구성을 이룬다.

 

  책을 다 읽고 멍하니 생각을 해보니, 어쩌면 이 소설의 핵심은 조상룡의 이야기가 아니라 소산 할매의 언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엔 고문에 대한 까닭모를 거부감으로 언간 부분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언간 부분이 결국 조상룡 이야기의 결말과도 맞물려 돌아가고 있고 이 작품에서 작가가 드러내고자 했던 것이 희생된 여인네들의 복원이라고 본다면 언간이야말로 작가의 의도가 잘 드러난 부분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언간의 진실이 드러나면서 효계당이 푸른 달빛 속으로 불타 사그라지는 장면은, 결국 달의 제단에 바쳐진 건 효계당과 효계당으로 상징되는 남근중심주의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그럼으로써 결국 복원되는 건 소산할매와 그녀로 대표되는 희생된 여인네들의 삶이라고 내멋대로 정리를 해보았다.

 

  작가가 서문에서 밝힌 대로 뜨거운 작품 하나 써냈다. - 개인적으로 달의 제단 서문을 너무너무 좋아한다. -  서문과 작품에서 보여주는 그녀의 강단으로 보건대, 심윤경은 끈덕지게 뜨거운 작품들을 발표할 것 같다. 자신만의 길을 뚜벅뚜벅 힘차게 걷고 있는 심윤경의 행보를 게속 주목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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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장수 2007-01-14 0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심윤경씨의 작품은 '참 공을 들여 쓰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읽고 나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뒤늦게 소설가의 길을 걸어서 그런 걸까요. 소설에 대한 열정도 큰 것 같고, 쓰고자 하는 주제도 분명한 것 같아 부쩍 관심이 갑니다.
 
백년여관
임철우 지음 / 한겨레출판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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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교 새내기 시절에, 과방 한 구석에 낡은 서가가 하나 있었다. 책을 읽는 것보다 책을 구경하는 것을 즐겼던 내게 그 문고는 또 하나의 친구였다. 맑스주의, 소련과 중국의 공산당사, 자본주의, 한국 현대사, 대하 소설들이 주를 이루고 몇몇 교양도서들이 자리를 함께 하고 있던, 2003년도의 대학가 분위기와는 분명 차이기 있는 문고였다. 그 중 유난히 눈에 띠었던 책 중 하나가 임철우의 "봄날"이었다. 왠지 모를 공포를 주는 책표지에, 80년 광주라는 소재에 궁금해서 틈틈이 책을 집어 여기저기를 발췌독했던 기억이 난다. 어떤 이유에선지 온전히 책을 다 읽어내지는 못했지만, 그 당시의 느낌만큼은 지금까지도 꽤 또렷하다. 내게 그 책을 읽기를 권한 이가 없어 아쉽지만, 그 책을 읽기를 권하지 않았던 선배들을 탓하기에 2003년의 대학은 너무나도 '쿨'했다. '쿨', 해야만 했다.

  이제와서, 느닷없이 그 임철우의 "백년여관"을 읽었다. 이번에는 제주 4.3, 한국 전쟁, 베트남 전쟁, 5.18 광주민주화 운동으로 역사의 외연을 해방 이후의 한반도 전체로 확장시키는 작가적 의식의 변모를 보여준다. 단행본 한 권 분량에 담아내기엔 다소 버거운 듯하고, 실제로 책을 읽으면서도 부분부분 뭔가 디테일에 부족하다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애초에 "백년여관"은 역사서가 아니라 소설책이다. 디테일이 부족하다고 느꼈으면, 역사책으로 부족한 부분을 메꾸는 건 독자의 몫일 수밖에.

  어쩔 수 없이, 왜 "백년여관"을 쓰게 됐는지에 대한 의문을 떨칠 수 없었다. 진지함이 비웃음거리가 되고, 지난 역사는 무관심의 세례를 받는 지금에 왜 이 작가는 끈질기게 과거를 붙들고 늘어지는건지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친절하게도 "해묵은 역사나 지나간 사건 따위를 얘기하려는 게 아니라, 사람들을 기억하고 싶었을 뿐이다." 라고 작가 후기를 통해 속시원히 밝히고 있기는 하지만 속내는 그 사람들과 함께 역사도 기억하고 싶어했음은 쉽게 어림할 수 있다. 임철우에게 '광주'로 대변되는 한국의 처절한 현대사는 쓰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것이라고 나름대로 정리를 했다. 누구에게나, 절박하게 써야 하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임철우에게는 그것이 우리의 현대사이지 않을까라고. 그것이 의무감 때문이든 죄책감 때문이든. 여기에 대해서 쓰지 않고서는 다른 작품으로 도저히 나아갈 수 없는 그 절박함이 좋은 작품을 가능하게 하고 독자들에게 진솔한 울림을 주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다시, 어쩔 수 없이, "백년여관"은 묵직한 슬픔과 역사에 대한 회환을 불러일으킨다. 동시에 "역사는 기억과의 전쟁이다"라는 금언의 책임감을 독자의 품에다가 안겨버린다. 그 책임감의 무게는 납덩이처럼 무겁다. 누구라도 그 무게를 피해, 도망치고픈 욕망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작중 진우(여러 정황상 진우는 임철우 자신으로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가 광주 항쟁 때 마지막 순간에 머뭇거리며 그랬듯, K 역시 결전의 날 새벽에 그러했듯, 역사에 정면으로 마주선다는 건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진우가 그리고 K가 그 부채감으로 평생을 살아가듯, 역사를 망각하고 살아 가는 우리 또한 죄없는 희생자들에게 빚을 지고 살아가는 것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단지, '광주'를 '제주 4.3'을 기억하자고 공부하자고 말하고 싶다. 물론 나는 이 말을 주변의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고 그럴 자격도 없다. 비겁하지만 온라인의 익명성에 기대 그렇게 하면 어떻겠냐고 한 번 말해보고 싶은 것이다. 꼭 어려운 일만은 아니지 않은가. 임철우의 "봄날"을 "백년여관"을 현기영의 "순이 삼촌"을 조정래의 "태백 산맥"을, 책이 아니라도 각종 TV 다규멘터리를 보는 것으로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조금의 관심만 있으면 mbc의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중 관심가는 것부터 골라보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땅에서 불과 수십 년전에 어떤 잔인한 벌어졌는지, 아무 죄도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왜 죽어야 했는지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고 공부를 하는 일은 - 이런 말은 나도 싫어하지만 - 얼마간은 우리의 책무일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싶다.

  나는 문학이 다양할 수밖에 없고 당연히 그래야만 한다고 믿는다. 김영하는 김영하가 잘 쓸 수 있는 이야기를 쓰고 박민규는 박민규식으로 계속 쓰고 임철우는 또 임철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써야 된다고 믿는다. 내가 역사를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러번 말하고 있다고 해서 모든 작가들이 임철우처럼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결코 아니다. 자기가 쓰고 싶고 잘 쓸 수 있는 이야기를 쓰는 게 중요한데, 문제는 이제 임철우나 공선옥처럼 쓰는 작가가 거의 등장하는 않는다는 점이다. 모더니즘이니 리얼리즘이니 하는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문학이 가지는 기능 중 하나는 분명 '사회적 메세지'라는 점을 기억하고 싶다. 어느 쪽으로건 간에 쏠림 현상이 발생하는 것은 해롭다. 그 무대가 예술계나 문학판이라면 더욱더. 그래서 임철우의 "백년여관"이 더욱 반가웠는지도 모르겠다. 대학교 2학년 땐가 읽었던 방현석의 "랍스터를 먹는 시간"이후로 실로 오랜만에 읽은 무거운 소설이었다. 읽고 나서의 생각이나 느낌도 무겁지만 같이 읽고서 같이 무게를 감당한다면 조금은 가벼워질 수도 있을 것 같다. 함께 무게를 감당할 사람들을 부르고 싶다. 그림자의 섬 영도로. 그 영도의 백년여관으로.

덧) 내가 말할 수 있는 것 이상을 쏟아낸 것 같아서 멋쩍고 영 개운치 않은 느낌이다.  그 개운치 못한 느낌은 앞으로 더 열심히 공부하는 것으로 지워나가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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