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코레아니쿠스 - 미학자 진중권의 한국인 낯설게 읽기
진중권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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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호모 코레아니쿠스”에서 진중권의 최대 화두는 신체다. 독일에서는 독일의 습속에 따라 주조되고, 한국에 돌아와서는 곧바로 한국식으로 변형되어 적응한 진중권의 몸은 저자의 말마따나 간사하기 짝이 없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같은 맥락에서 무엇보다 정직하기도 한 것이다. 따라서 이 몸에 새겨진 흔적을 통해 압축 근대화로 인해 전근대, 근대, 탈근대의 3가지 층위가 혼재한 한국인을(한국사회를) 분석해보겠다는 이 책의 분석 방법 역시 조금 낯설 수는 있을지언정 꾸밈은 없을 거라는 기대를 가지게끔 한다. 사실, 뭐가 더 필요하겠는가. 진중권, 이름 석 자만으로도 읽고 볼 일이다.

 책은 한국의 근대화를 다룬 1부, 근대화 속에 내재된 전근대성을 해부하는 2부, 전근대성이라는 모순적인 토대를 바탕으로 생겨난 탈근대성을 분석하는 3부로 크게 나뉜다. 낯선 시각으로 한국인의 습속을 냉정하게 분석하겠다고 하는데, 그 시각이 얼마나 낯선지, 분석은 얼마나 정교한지 얼마간의 기대감과 또 얼마간의 의심을 가지고 읽어보기로 했다.

 1부의 주요 텍스트는 신문 기사이다. 현재 한국의 근대성을 탐구하는 것이 목표이니 만큼, 한국사회의 현재적 징후를 미시적으로 드러내는 신문기사를 주 텍스트로 삼은 것 같다. 진중권에 따르면 한국의 근대화는 곧 군대화다. 이는 당연히 군인들이 정권을 잡았던 박정희 시대의 강력한 유산이다. 신입사원 연수 프로그램에 100km 산악 행군, 해병대 극기 훈련 체험을 의무사항으로 포함시키는 기업문화가 한국이 아니면 어디에서 가능하겠는가. 농경사회의 시간 관념과 노동 문화에 익숙했던 한국인들의 몸이 국가권력의 ‘인간개조’에 의해 세계에서 가장 부지런한 자본주의적인 신체가 되었다는 저자의 분석은 뼈아픈 진실이다. 정말로 평균적 한국인은 박정희가 만들어낸 프랑케슈타인이란 말인가. 

 2부의 주요 텍스트는 엘리아스의 “문명화 과정”이다. 한국의 전근대성을 해부하는 부분에서 서구 사회의 문명화를 다룬 책을 주요 텍스트로 삼았다는 것은, 서구에서 이뤄졌던 근대화 과정이 한국에서는 제대로 수행되지 않아 전근대성이 상당 부분 잔존해있다라는 분석이 뒤따를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진중권이 서구 중심주의적인 시각으로 한국사회를 바라본다라는 비판을 받는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는 선뜻 동의하기 힘들다. 어차피 한국의 근대화라는 것이 자의든 타이든 간에 서구의 근대화를 모델로 설정해서 따라간 것이니 만큼, 근대화된 서구를 기준으로 한국의 전근대성을 파헤치는 것은 논리적으로 합당해 보인다. 차라리 조금 더 나아가 서구적 근대화 자체를 비판하거나, 한국이 서구를 모델로 근대화를 진척시켜야만 했나에 대해 의문을 품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 아닐까 한다. 더구나 진중권이 낯선 시각(독일에서의 유학경험)으로 한국사회를 읽어보겠다고 한 만큼 얼마간 서구중심주의적이라고 느껴지는 것은 불가피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건 마치 홍세화를 읽으면 프랑스가 민주주의의 천국 같고, 박노자를 읽으면 북유럽이 지상의 파라다이스로 느껴지는 것과 비슷한 것 아닐까.

 3부는 월터 옹의 “문자문화와 구술문화”를 바닥에 깐다. 이에 따르면 한국은 해방직후만 해도 전국민의 문맹률이 90%에 달하는 사회였고 사정이 많이 나아진 지금도 실질적인 문서 해독능력이 OECD 국가 중 최하위를 달리는 구술문화적 특성을 가진 사회이다. 이 구술문화의 특성을 영상문화의 차원으로 구현시켰기에 한국이 디지털 강국, 게임 강국으로 성장했다는 분석은 흥미롭다. 더 흥미로운 부분은 신세대의 보수성을 분석하는 진중권의 시각이다. 요즘 세대는 이미지의 세대, 이미지는 곧 비선형적인 시간의식을 의미한다. 이 비선형적인 시간의식이 선형적 시간의식을 근간으로 하는 역사의식의 결여를 낳아 신세대의 보수성이 비롯되었다는 접근은 날카롭다. 3부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또 하나의 핵심 주제는 디지털 시대의 복제문화에 관한 것이다. 원본을 대신하는 복제, 원본 없는 복제, 원본보다 더 원본 같은 복제를 뜻하는 ‘시뮬라크르’로 설명할 수 있는 디지털 복제 시대에서 짝퉁은 진품을 만들어내고, 아우라의 전면적인 파괴가 발생한다는 저자의 설명은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이 책의 집필동기에는 아무래도 ‘황우석 사태’가 깊이 자리하는 것 같다. 프롤로그의 시작도 “황우석 사태”와 관련한 이야기로 시작하고 책 전반에 걸쳐 ‘황우석 사태’를 다양하게 분석하고 거침없이 비판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최대 텍스트는 ‘황우석 사태“일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읽기에 진중권의 시선은 신선했고, 특유의 글빨 역시 여전했으며, 상대를 가리지 않고 내리꽃는 그의 비수가 선사하는 카타르시스는 짜릿했다. 저자의 말대로 앞으로 한국인의 신체를 어떻게 만들어 나갈 것인지, 새로운 존재미학에 대해서 고민을 해봐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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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장수 2007-03-09 2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휴, 책에서도 그렇게 창의성이 중요하다는데, 실컷 읽고서도 어설픈 요약으로 일관하는 리뷰를 쓰다니. 으헉.

클리오 2007-03-09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어요. 번번히 진지한 리뷰를 조용히 읽고만 가기가 죄송해서 흔적 남겨요. 이 책, 읽어봐야겠군요....

얼음장수 2007-03-09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클리오님/ 제 병입니다. 별로 진지하지도 않은 놈이 뭐 좀 쓸라치면 소심해져서 진지해지거든요. 소프트하게 써야지 하면서도 몇 줄만 써놓고 보면 벌써 드라이해져 있으니 이거야 원. 전 많이 배울 수 있어서 좋았답니다^^

2007-03-10 12: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얼음장수 2007-03-10 1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담감님/ 제가 읽을 정도인데 뭐 어렵겠어요? 내일부터 4박5일 휴가라 주말 잘 보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ㅎㅎ. 좋은 주말 되셔용^^

비로그인 2007-03-18 1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뒤늦게 보고 추천.

얼음장수 2007-03-19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난책님/ 고맙습니다. 헤헤.
 
철학 콘서트 1 - 노자의 <도덕경>에서 마르크스의 <자본론>까지 위대한 사상가 10인과 함께하는 철학의 대향연 철학 콘서트 1
황광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6월
평점 :
절판


 정재승의 "과학 콘서트"가 엄청난 히트를 친 이후로 "~ 콘서트"라는 제목의 책들이 여러권 나오는 것 같다. 물론, "과학 콘서트"가 많이 팔린 이유는 제목에 붙은 콘서트라는 세글자 때문은 아니다. 충실하고도 재미있는 내용, 그리고 저자의 빼어난 글쓰기 실력이 독자들로 하여금 마치 콘서트의 관객이 된 듯한 재미와 정보를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느낌표"의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의 파급력 역시 한 몫 했겠지만) 출판계의 극심한 불황탓일까. 개인적으로 "과학 콘서트"이래로 "~ 콘서트"라는 제목으로 나온 책들을 보면서 무리해서라도 '콘서트'라는 제목을 갖다 붙여야 했을 출판인들의 고뇌를 떠올렸다. 다행히 "~ 콘서트"로 나온 책들이 대체로 많이 팔린 것으로 알고 있다. 그게 알찬 책내용 덕분인지, '콘서트'의 힘인지, 양자의 절묘한 결합으로 인한 것인지는 나로서는 잘 모르겠다.

 "과학 콘서트"는 목차만 봐도 제목에 '콘서트'를 붙인 이유가 한 눈에 들어온다. 다른 "콘서트"들은 내가 아는 바로는 굳이 '콘서트'라는 제목을 붙일 만한 이유를 찾기 힘들었다. 황광우의 "철학 콘서트" 역시 좋은 내용에도 불구하고 제목은 썩 적당해 보이지는 않는다. 책 제목 짓는 건 출판사 마음이고, 제목도 마케팅의 일환이라고 주장한다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책 제목으로도 딴지 걸고 비문 하나로도 시비걸 수 있는 게 리뷰어의 권리라고 한다면 저자나 출판사도 과히 불쾌하게 여기지는 않을 것이다.

 "철학 콘서트"는 쉽다. 저자가 옆에서 개인강의해주는 듯 문체도 편안하고(로빈슨 크루소와 "동물농장"으로 마르크스를 설명하는 친절함), 책 내용도 '철학'이라는 제목이 무색하게 어렵지 않다. 저자는 동서양 대표 사상가 10인을 선정해 그들의 삶과 대표저술을 통해 그들의 철학을 가감없이 드러낸다. 이 책의 돋보이는 부분은 그들의 저술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뤄져온 그들의 삶을 드러내준다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논어"에서 공자왈 하는 죽은 공자가 아닌, 너무 뛰어난 능력으로 인해 오히려 관직에는 진출하지 못 해 제자들과 밥벌이를 걱정해야만 했던 살아있는 공자를 만날 수 있다. "성서"의 존엄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 저 낮은 곳에서 버려진 이들을 위해 사랑과 봉사를 실천한 평화주의자 예수와 마주칠 수 있다. 

  개인적으로 토머스 모어를 가장 많은 생각을 하면서, 가장 많이 옮겨 적으면서 읽었다. 유토피아의 의미를 '어디에서 없는 장소'에서 '이상향'으로 바꿔 놓았다는 그의 책 "유토피아". 모어가 꿈 꾼 유토피아의 많은 부분들이 현실이 되었다. 참정권과 교육권에서의 남녀 평등이 이루어졌고, 그 당시에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던 주민 자치제는 대부분의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뤄지고 있다. 물론, 모어 이전에도 유토피아를 꿈꾼 이가 있으니 바로 플라톤이다. 그 유명한 이상국가. 하지만 모어는 '철인'의 자리를 '대중'으로 대체시킴으로써 정치사상사에서 하나의 획을 그을 수 있었다. 모어의 최종 목표였던 노동시간 단축으로 인한 여가시간의 증가만큼은 자본의 강한 저항으로 아직까지 온전히 실현되지는 못 하고 있으나 계속 꿈 꿔 볼 일이다. "내 목이 짧으니 자를 때 유의해주게"라는 말을 남기며 떠난 모어가 우리에게 가르쳐 준 것 역시 옳다면 불가능해 보이더라도 꿈을 꾸라는 것 아닐까.

 모어가 특히 인상적이라 따로 한 단락을 맡겼지만, 다른 사상가들도 꽤 흥미로웠다. 소크라테스나 공자를 읽으면서 지금 이 시대에 필요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이황을 읽으면서는 이황보다는 그의 학문적 라이벌이자 나이를 떠난 우정을 나눈 철저한 반권위주의자 기대승이 궁금하다는 생각을, 마르크스를 읽으면서는 저자가 여전히 마르크스주의자이구나 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한가지 내 의견과 배치되는 부분은 노동에 대한 저자의 견해였다. 노동이 신성하고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수불가결하다는 말을 하는 것은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겠지만, "인간의 본질은 노동에 있다. -p. 219" 는 다분히 논쟁적인 발언이다. 나는 인간이란 놀 때 본성이 드러난다고 생가하고 노동은 유희하는 인간에겐 굴레라고 생각한다. 노동에 관해서라면 김훈의 말에 동의를 한다. "기자를 보면 기자 같고, 형사를 보면 형사 같고, 검사를 보면 검사같이 보이는 자들은 노동 때문에 망가진 것이다. 뭘 해먹고 사는지 감이 안 와야 그 인간이 온전한 인간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한국사회에는 김훈식의 온전한 인간이 많은 것 같지는 않다.

 제목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긴 했지만 알찬 책이다. 소개된 원전을 읽어 봐야겠다는 의지도 다지게 해주고(어디까지나 의지!) 작금의 현실과 관련해서 고민하게 해주는 부분도 많다. 철학이라면 손사래부터 치는 사람도 빠져들게 할만큼 재미있기도 하다. 무엇보다 왜 고전을 읽어야되는지 그 필요성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여전히, 앞으로도 살아서 생명력을 더해갈 고전, 그 문으로 가는 친절한 안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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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장수 2007-03-07 0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부 좀 하신 분이라면 바로 원전에 도전하는 것이 나을 듯 합니다. 콘서트라는 제목에 딴지를 걸었지만 생각해 보니 철학이라는 제목도 그다지 적합해 보이지는 않는 것 같기도 하네요. 나날이 공부할 게 쌓여만 가네요.

2007-03-07 11: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07-03-07 1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콘서트 시리즈(?)는 대체로 평이 좋군요 ^^
조곤조곤히 적어주신 리뷰 감사합니다. 철학에는 문외한이지만...

얼음장수 2007-03-07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했헸님/ 고쳤습니다요. 이젠 팔도 다 나아가니 팔 때문에 오타가 많다는 핑계도 못 대겠어요. 책 재미나요. 저자의 폭넓은 지식 덕분이겠죠.

체셔고양이님/ 읽어보시면 왜 좋은 평을 받는지 알 수 있을 거에요. 하긴, 저는 책 10권 읽으면 9권 이상은 그저 좋다고 헤벌레하는 편이긴 해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책은 아주 쉽고 과하게 친절합니다.

프레이야 2007-03-20 1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명료한 글로 책을 읽고 싶게 하시네요.
팔이 많이 나아지셨다니 다행입니다. ^^

얼음장수 2007-03-20 2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혜경님/ 걱정해신 덕분에 빠르게 호전되고 있습니다.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남자의 탄생 - 한 아이의 유년기를 통해 보는 한국 남자의 정체성 형성 과정
전인권 지음 / 푸른숲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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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전에 전인권 씨는 대학 강단에서 수강생들에게 꼬박꼬박 '~씨'라는 말을 붙여서 호명했다고 한다. 나아가, 학생이 선생에게 "전인권 씨, 질문이 있는데요!"라고 말하거나, 신문기자가 대통령에게 "노무현 씨!"라고 부르며 자유롭게 토론하는 날이 오길 기대했다고도 한다.(p.12) 그런 날이 언제 올지는 가늠하기 힘들지만, 그가 얼마만큼  평등한 커뮤니케이션을 열망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러면서도 그의 이러한 비권위주의적인 태도가 그가 태생적으로 권위주의적이라는 더 큰 진실을 가릴지도 모른다고 경계하는 양심적이고 건강한 사람이기도 하다. 어찌 이런 선생님을, 아니 이 저자에게 애정을 주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그가 태생적으로 권위주의적일 수 있을지는 몰라도(그 역시 한국의 전형적 가정에서 성장한 '동굴 속 황제'이기에) 그가 권위주의를 싫어하긴 싫어하는 모양이다. 책을 마무리하는 부분에 이르러 이런 말까지 덧붙이는 걸 보니 말이다. "당신이 다니고 있는 학교, 직장, 단체 등이 권위적인가 아닌가를 알아보고 싶다면, 그곳에서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따져보면 된다. 한 사람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거나, 구성원 중 누군가 할 말을 못하고 있는 분위기라면 분명 문제가 있는 곳이다." (p. 297) 뻔한 이야기지만 이 발언의 의미를 새기며 생활하는 이는 몇이나 될까? 머릿말을 통해 파악한 저자의 면모는 저자에 대한, 나아가 책에 대한 기대와 신뢰를 심어주기에 충분하다.

  전인권 씨는 지독하리만치 솔직하고 적나라하게 자신의 유년기를 복기해 낸다. 그의 이 처절한 솔직함에 적응이 안 된 상태에서는 '아니, 이 사람 이렇게까지 말하면 가족 생활, 사회 생활에 지장 생기는 것 아닌가' 하고 주제넘은 걱정까지 들게 할 정도이다. 그의 솔직함은 여태까지의 자신의 인생이 실패였다는 것을 자각하고 그 실패의 원인을 한국 가정에서의 그의 성장과정에서 찾는 것이 일환이기에 단순히 유년기를 회상하고 추억하는 수준을 넘어설 수 있게 된다. 지루하게 반복된다는 인상도 종종 풍기지만, 대체로 공감할 수 있다. 나아가, 나 자신의 유년기를 돌아보고 나의 정체성 형성에 대해 반성해 볼 기회를 제공해 준다는 점에서 이 책은 참 고맙다.

  '오이디푸스 컴플렉스'가 한국의 남자 아이에게는 적용하기 힘들다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어머니를 사랑한 남아가 아버지를 강력한 경쟁자로 여겨야 '오이디푸스 컴플렉스'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인데, 애초에 한국의 가정에서는 경쟁자로서의 아버지가 부재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들은 꽤 오랫동안 어머니와의 동침권을 확보하고 목욕탕도 시장도 함께 간다. 아버지는 아버지만의 공간에 머무르며 어머니와는 내외할 뿐이니 아들이 아버지를 경쟁자로 여길 건수가 도통 없을 수밖에 없다. 내 경우만 보더라도 난 초등학교 고학년 때까지 엄마 옆에서 엄마의 젖가슴을 주무르면서 동침하며, 원래 엄마와 아빠는 떨어져 자는구나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지금의 가정이야 또 어떻게 다른지는 모르겠지만 정설로 여겨지던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를 정면으로 반박한 부분은 나의 동의를 이끌어 내기에 충분했다.

  또 하나 흥미로웠던 대목은 아버지(가족)-선생님(학교)-대통령(국가)로 이어지는 수직적 위계에 대한 분석이었다. '군사부일체'를 빌리지 않더라도, 아버지 말씀 잘 듣고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하며 대통령을 존경하라는 말은 어린 시절 귀에 못 박히도록 듣지 않았는가. 결국 위에 열거한 3가지 공간 모두 '아버지의 언어'가 지배하는 공간, 아버지(선생님, 대통령)을 매개하지 않고는 다가갈 수 없는 공간이라는 공통 분모를 가진다. 동시에 가족-학교-국가라는 공고한 카르텔을 구축해 개인의 자아를 옭아매는 것이다. 여기서 파생하는 문제는 역시 '정당하게 아버지를 살해하기'를 통해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 문제의 근원을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아버지 살해'란 내 안에 존재하는 아버지, 내가 가정에서 동굴 속 황제로 자라면서 만들어낸 이상적인(실재로는 지독하게 권위적인) 아버지상을 되돌아보고 제거하자는 것이다. 그것은 어느새 아버지를 닮아버린 자신을 구하는 길이며, 결국 내가 행복해지는 방법임을 저자는 거듭 강조한다. 이 글을 읽는 남성들이여. 그리고 나여. 그렇게 솔직해질 각오가 되었는가?

  한 아이의 유년기에서 아버지, 어머니 못지 않게 중요한 존재가 형제, 자매다. 그리고 전인권 씨는 실제로 형제, 자매가 4명이나 있었다. 허나, 책에서는 자신의 유년기에 영향을 끼친 형제, 자매와의 일화는 소홀히 다루어졌다. 물론 이 책의 기본 구도가 나-아버지-어머니로 이루어진 삼각형이었겠지만, 특히 한국에서 동기간의 관계가 갖는 중요성을 생각한다면 그 부분은 좀 아쉬움이 남는다.

  저자는 이 책을 쓴 동기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 자신이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실패했고 불행하기 때문에 행복해지기 위해 이 책을 쓴 것이라고. 이 책을 읽고 행복해질 수 있는지는 뭐라고 말하기 힘들다. 독서의 효용은 어차피 개인차가 있는 거니까. 이 책이 최소한 자신이 누구인지 더 잘 알 수 있게 해주는 책임에는 틀림없다. 시간이 부족하다면 머릿말과 맺음말이라도 읽어보기를 권한다. 본문을 읽어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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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장수 2007-03-05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은 지 2주정도되니 복기가 힘드네요. 전인권 씨의 글은 솔직했지만 제 글은 그렇지가 못 하네요. 책 읽을 때 좀 더 의미있게 메모하는 습관을 들여야 겠다라는 다짐을 해봅니다.

나비80 2007-03-05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훌륭한 서평인걸요. 익숙한 내용이지만 전인권 씨에 대한 소개까지 함께 접하니 읽고 싶네요. 좋은 책 소개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얼음장수 2007-03-05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이부답님/ 소이부답님의 반이라도 따라갈려면 아직 많이 노력해야 합니다. 자기 계발서 읽느니 이 책 읽으면서 의미있게 자신을 한 번 돌아보는 게 훨 나을 거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나저나 소이부답님의 글의 자주 접하게 해주시는 건 어떨는지요.

파란여우 2007-03-06 2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때로는 책보다 서평이 더 근사하게 표출되는 경우를 발견하죠.
이 리뷰도 그런 경우에 해당됩니다.
설마, 책은 그저그런데 얼음장수님의 서평이 너무 촘촘하고 성실한거 아니겠죠?^^

얼음장수 2007-03-07 0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란여우님/ 과찬아십니다. 좋은 책이었습니다. 더 좋은 책도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는 이미 가버렸네요. 항상 힘을 주시는 여우님. 고마워요^^
 
미학 오디세이 1 미학 오디세이 20주년 기념판 3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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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는 문자를 모르는 사람이 문맹이었다면, 21세기의 문맹은 그림을 못 읽는 사람을 뜻할 것입니다." 어느 지면을 통해서였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진중권의 이 도발적인 발언을 들었을 때 솔직히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내가 글자는 웬만큼 읽는데 그림 좀 모른다고 문맹이라는 딱지까지 붙이고 살아야 되는 건가. 돌이켜 보면 그림에 대한 나의 콤플렉스는 길고도 깊은 것이긴 하다. 학창시절 미술성적만큼은 항상 최하위권을 유지했고 지금은 그림을 그리지도 않지만 그린다고 해봤자 중학생 수준에도 못 미칠 것이다. 내 주변에 포진해있는 일군의 미학도들은 나의 컴플렉스에 불을 지폈으며, 왕따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림과 미학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정도는 갖춰야겠다고 마음을 먹곤 했다. 그리고 그 미학도들의 추천에 따라 시작은 "미학 오디세이"로 하겠노라고 말이다.

  입문서로 "미학 오디세이"는 장단점이 있다. 우선 적당한 두께에 깔끔한 편집은 초심자로 하여금 최소한 지레 겁먹어서 도망치게 만들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좋다. 고대 이집트부터 근대 미학에 이르기까지 자칫 지리해질 수도 있을 법한 미학사 여정은 다양한 컬러 삽화와 판화 예술가 에셔의 도움으로 생명력을 얻는다. 무엇보다 이 책의 미덕은 진중권이 공을 들인 내용을 전달하는 형식이다. "폭력과 상스러움"에서 기존의 권위에 대한 도전은 "광대의 글쓰기"로 가능함을 설파했던 그답게 이번 책에서도 그의 미학강의가 독자들의 뇌로 사르르 녹아들 수 있게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이 책에서의 핵심은 심할 정도로 자연스러운 능수능란한 구어체의 구사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문답법을 들 수 있겠다.  "원래 말할 가치가 있는 것은 내용으로 첨부되는 게 아니라 형식 속에 침전되는 법이다."라는 패기만만한 발언을 하더라도 잰 채 한다는 비판에서 그는 얼마간 자유로울 수 있다.

  고대부터 근대까지의 유구한 미학사를 책 한권에 포개다 보니 아무래도 곳곳에서 힘이 달린다. 특히 고전주의 이후의 미학사 부분은 내용이 조금 어렵기도 하거니와 설명도 조금 부족해 미학 입문으로 애 책에 도전하는 사람이라면 조금 버겁지 않을까 싶다. 다행인 것은 장이 끝날 때마다 참고문헌 목록을 충실히 달아놓았기 때문에 더 공부하고픈 사람은 알아서 찾아가며 할 수 있게끔 배려를 해놓았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사막의 막연한 공간에 대한 공포를 없애기 위해 피라미드까지 세웠다는데 방대한 미학에 두려움을 느낀다면 참고문헌을 찾아서 읽는 노력 정도는 독자들이 해주는게 인류의 조상들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이 책을 읽은 솔직한 평은 꽤 재미있게 미학사 전반에 대한 윤곽을 잡을 수 있게 되었다 정도가 될 것이다. 태초의 주술이 고대에 예술로, 중세에는 종교로, 근대에는 철학으로 모습을 바꾸었다는 설명은 날카롭고, 루벤스와 푸생에 대한 당시 사람들의 엇갈린 평을 통해 예술의 다양함을 이끌어내는 부분은 깔끔했다. 태초에 존재했다는 아름다움이 인류사를 관통하며 어떤 양상을 띠게 되었는지가 궁금하다면 기꺼운 마음으로 진중권의 미학사 여정에 동참할 수 있으리라.  여자친구가 미술관 가자고 할 때마다 핑계대며 안 가서 미안했는데 진중권의 도움도 얻고 했으니 다음엔 내가 먼저 제안해봐야겠다. "시립 미술관에 꽤 흥미로운 작품전 하던데"하고 말이다. 여전히 자신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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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장수 2007-03-03 1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전히 어려운 미학이지만 처음으로 공부 좀 해보고싶다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프레이야 2007-03-03 1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갑자기 오래전 이 책 사두고 다 못 읽고 꽂아둔 게 생각나요.
조만간 읽어야겠습니다.^^

얼음장수 2007-03-03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환영합니다. 하지만 저도 2권을 사야 되나 말아야 되나 고민하고 있으니 쉽게 "강추" 하지는 못 하겠네요. ㅠㅠ

로드무비 2007-03-04 0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마이 도러의 그림에 메모 남겨주신 데는 다 이유가 있었군요.
진중권 씨 글은 무엇보다 재밌게 술술 읽혀서 좋아요.^^

얼음장수 2007-03-04 1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제가 맘에 없는 말은 할 줄도 모르고 하지도 않습니다만, 군생활하다보니 가끔 유혹에 빠지곤 합니다. 저는 그림 못 그리는 게 한입니다. 가끔 뭔가 떠오를 때 글보다는 이미지로 남기고 싶을 욕구가 생기는데 그림으론 절대 표현이 안 된단 말이죠ㅠㅠ
 
대한민국사 4 - 386세대에서 한미FTA까지 한홍구의 역사이야기 4
한홍구 지음 / 한겨레출판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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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걸 다 기억하는 역사학자' 한홍구의 네번째 역사이야기가 출간되었다. 이번에도 한홍구는 FTA, 국가보안법, 사학개정법, 병역제도 등 다분히 논쟁적인 이야깃거리를 들고 나왔다. 저 어디 역사문서 보관함에나 들어있을 법한 죽은 역사이야기가 아니라, 오늘 한국에서 가장 뜨거운 이야기 속으로 독자들을 초대한다.(이 뜨거운 이야기를 하기 위해 저자는 또 얼마나 많은 자료를 뒤졌을지 가늠하기 힘들다.) 이 책이 한겨레 21에 연재했던 글을 묶었다는 것만 생각해봐도한홍구가 펼치는 역사이야기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한 때 역사에 제법 관심이 있다고 생각했다. 사학을 전공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한 것은 아니었지만 진지하게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 정도는 품었던 것 같다. 브루스 커밍스의 책부터 해서 몇 권의 한국현대사 서적을 겨우겨우 읽었다. 대한민국사 1, 2권도 이 때 읽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국 현대사의 이해'라는 학교 강좌도 찾아서 듣고 세미나도 할려고 했지만 사정이 닿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역사란 단지 사료의 집합일 뿐이라는 생각이 불쑥 튀어나왔다. 사관이니 뭐니 하는 것도 사료없이는 어떤 설득력도 가지지 못할 것이라고. 사관에 대한 사료의 절대우위를 선언해버렸다고 해야 될까. 왜 그런 비겁한 결론에 이르게 되었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한 번 그런 생각을 하게 된 이상 역사에 대한 흥미를 잃게 된 것은 정해진 길이었다.

  그러니, 이 책을 읽게 된 이유에 대해서도 답하기 어렵다. 그 무섭다는 시간의 힘인 건지, 오랜만에 발견한 대한민국사라는 이름의 책이 그냥 반가웠던건지, 아님 또 다른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분명한 건 예의 그 비겁한 결론에서는 조금이나마 멀어지고 있다는 징표정도는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오랜만에 읽은 역사책으로 "대한민국사"는 썩 훌륭한 벗이었다. '지금' '한국'에 대한 관심을 거두지 않고 있는 그의 글은 역사에 대한 공부가 결국 오늘 우리(사회)에 대한 이해와 반성과 결코 무관하지 않음을 일관되게 보여주기에 나약한 내게 다시금 힘을 준다. 주관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태도나, 쉽고 재미있는 문체를 위한 노력은 비전공자들에게도 쉽게 접근할 수 있게끔 해주는 이 책만의 미덕이다.

  책에서 다루는 대부분의 주제에 대해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거나 아예 몰랐기에 오히려 편하게 읽을 수 있었다. 3부의 마지막 꼭지인 '국립묘지를 보면 숨이 막힌다'와 5부의 '최일병, 김일병, 그 다음은'은 특히 기억에 남는다.

  민족이 근대의 산물인 이상, 민족국가간의 전쟁이 만들어낸 국립묘지 또한 근대의 발명품일 수밖에 없다. 전쟁 희생자를 기린다는 미명 하에 전쟁을 치르기 위한 국가동원의 선전물로 이용되는 국립묘지의 태생도 서글프지만, 생존시의 계급과 성명에 따라 묘역의 크기까지 구분짓는 한국적 상황은 서글프다 못 해 서럽기까지 하다. 죽음마저도 구분짓는 비인간적인 발상에 잠시 머릿속이 깜깜해졌다.

  한홍구만큼 병역과 군대문제에 지속적으로 발언하고, 또 그에 걸맞는 활동을 보여준 이도 드물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번에는 한층 더 나아가 병역 문제에 대한 근본적 재검토의 필요성을 설파한다. 구체적인 논의는 책에 잘 설명되어 있고 내 눈길을 끈 부분은 "군대문제를 개선하고 바꿀 수 있는 힘과 역량은 예비역들에게 있는 것인데 예비역들이 이 문제에 관심이 없다"라는 한 여학생의 지적이었다. 어디 관심만 없는 정도인가. 군대문화를 확대재생산하는 가장 큰 주체야말로 예비역들이 아닌가. 예비역들 반성해야 한다. 더불어 입대하기 전에 비해 군대문제에 관심도 줄고 감각도 둔해진 현역인 나도 반성해야 한다. 안에 갇힌 자는 더욱 경계해야하거늘 많이 게을렀다. 오랜만에 읽은 이 한 권의 역사책을 계기로 다시 역사에 관심도 가지고 자주자주 나를 돌아보겠다고 다짐해본다.

 덧) 이런 어설픈 자기 고백은 좋아하지도 하지도 않는 편이지만, 앞으로 좀 더 멋진 인간이 되자라는 자기 다짐으로 한 번 써봤다. 

덧2) 아무리 생각해도 유시민에 대한 글은 일기로나 쓰는 게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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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03 00: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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