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에는 장맛비처럼 강한 바람과 함께 비가 내렸다. 창문을 두드리는 바람의 손길이 너무 커서 조금 무섭기까지 했다. 따뜻한 겨울은 차가운 겨울을 준비하고 기다려온 이들에게 걱정을 안겨준다. 뉴스를 통해 마주한 겨울철 축제의 현장은 속상함 그 자체였다. 얼마나 많은 시간 계획하고 공을 들였을까 싶은 마음에 괜히 나도 속이 상했다. 지역마다 계절에 따라 축제를 연다. 그 축제를 위해 떠난 기억과 현재의 간극은 크기를 잴 수 없을 만큼 크다. 먼 기억 속에는 행사의 첫 회를 즐겼던 순간이 아련하게 남았다.

그제부터 어제까지 내렸던 겨울비는 그쳤고 하늘은 여전히 뿌옇다. 미세먼지 때문일까 생각하다 겨울이니 그런가 하고 여긴다. 새해의 인사를 나누면서 건강에 대한 안부를 묻는 일이 많아졌다. 즐겁고 복된 새해라는 것보다는 무탈한 새해를 맞으라는 바람을 전한다.

새로운 세계로의 진입을 앞둔 이들을 곁에서 지켜보는 일은 뿌듯하면서도 불안한 것 같다. 부모라는 이유로, 가족이라는 이유로 뭔가 도움이 되고자 하면서도 그 도움을 전할 방법을 찾기 못해서 그저 안타까운 마음을 붙잡고 있다. 구체적으로 도움을 청하지 않을 때는 그저 곁에 가만히 머무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인지도 모른다.

지난 연말에는 친구를 만났다. 크리스마스에 만난 친구는 친구의 남편도 함께였다. 부모님의 건강으로 인해 분주한 마음을 잠시 내려놓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빵을 먹었지만 그들의 마음이 마냥 무겁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언젠가 이별할 거라는 걸 알면서도 우리는 그 이별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모른다. 모든 것은 후회로 남는다. 크리스마스 다음 날에 바쁜 시간을 쪼개 길을 달려온 친구를 통해 듣은 이야기도 마찬가지로 이별에 관한 것이었다. 가족의 죽음을 감당하는 일은 충분한 애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충분하다는 말은 적절하지 않다. 상실과 애도 사이에서 무너지지 않고 일상을 지키는 일은 위대한 일이다. 우리의 삶은 그런 위대함의 조각들이 모여 완성된다. 담담하게 죽음을 말하는 친구 앞에서 울고 있는 건 나였다. 몇 년 전 우리의 위치는 반대였다. 같은 자리에서 죽음을 말하는 일이 삶이었다.

 

 

 

 

2020년에도 보통의 날이 이어지고 몇 권의 책을 검색한다. 시인으로 등단한 장혜령의 자전적 소설과 윤이형의 소설, 제목이 주는 울림 때문인지 그 고독에 닿고 싶은 소설이 눈에 들어온다. 흐린 날에는 햇빛이 더욱 간절하다. 길게 늘어나는 그림자가 보고 싶다. 하늘의 해를 향해 고개를 들고 눈이 시리도록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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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산책 - 이탈리아 문학가와 함께 걷는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가와시마 히데아키 지음, 김효진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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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는 경이와 매혹이 가득한 도시이다. 세부적인 아름다움에 이끌리기 전에 켜켜이 쌓인 시대 전체를 바라보자. 붐비는 거리를 뒤로하고 오르막길을 오른다. 이윽고 태고에는 신역(神域)이었던 캄피돌리오 언덕에 서면 소용돌이치며 지나가는 고대와 근대의 바람이 뼛속 깊이 느껴질 것이다. (10쪽)

 

로마는 많은 이들이 여행지로 손꼽는 도시다. 그만큼 로마를 다룬 책도 많다. 단순 여행서를 시작으로 로마의 역사와 신들의 이야기까지 다양하다. 나는 로마를 여행한 적이 없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니 이렇게 한 권의 책을 다라 로마를 거닐어 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이 책은 평생을 이탈리아 문학 연구를 한 가와시마 히데아키가 말 그대로 로마를 산책하며 그곳에 대해 소개하는 안내서라 할 수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은 무려 20년 전에 나온 책이라서 그 시간에 달라진 부분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점이다. 물론 큰 변하 없이 작은 변화만 있거나 그대로 유지가 되었을 수도 있지만 말이다.

 

 

 

걷는 일을 즐거운 일이다. 천천히 걸으면서 로마의 유명 장소를 둘러보고 그곳이 간직한 이야기를 듣는다면 더욱 그렇다. 독자는 저자가 이끄는 대로 로마를 걷는다. 책 속 지도를 보면서 저자가 걸었을 방향과 경로를 상상한다. 도시의 설계도라고 할까, 책 속 지도를 보면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누군가는 이 책의 지도를 따라 로마를 산책할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고대 로마가 탄생한 일곱 언덕을 중심으로 성당, 다리, 건축물에 대해 알려준다.

 

로마의 원점이라 할 수 있는 캄피돌리오 언덕을 오르는 것을 시작으로 스페인 계단을 내려다본다. 영화나 방송을 통해 볼 수 있었던 스페인 과장의 계단에 대해 저자는 스페인 계단의 설계안에 대해 설명한다. 미적 감각뿐만 아니라 보행자의 편의까지 고려한 설계라니. 그 시대 하나의 건축물을 완성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는지 알 수 있다. 역시 로마는 달랐다고 할까.

 

 

 

 

근대국가의 형성과 함께 급증한 수도 로마의 인구와 테베레강 오른쪽 기슭에 펼쳐진 황야의 개발, 그에 따라 급격히 늘어난 다리의 수, 그리고 도시계획을 표방한 파괴와 일찍이 테베레 강의 홍수로 겪게 된 재해가 ‘영원의 도시’의 과거와 미래를 검토하는 데 중요한 요인이 될 것이다. (85쪽) ​

 

지금도 로마는 고대의 아우렐리아누스 황제가 건설한 성벽에 의해 도시로 규정되고 있다. 황제와 교황들이 두려워한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한 성벽의 전력상의 역할은 끝났다. 이제 성벽은 무용지물일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실제 북이탈리아의 도시 밀라노처럼 성벽 대부분을 허물어버린 곳도 있는가 하면 페라라처럼 성벽의 구실을 하던 수로 대부분을 메워버린 도시도 있다. (104~105쪽)

 

성벽에 대한 부분을 읽노라니 우리나라의 성벽이 생각난다. 침입과 침략, 그리고 전쟁을 견뎌내고 삶을 지속한 인류의 역사는 그곳이 어디든 이렇게 닮아있다. 후손인 우리에게는 그저 유적지로 남았지만 그 시대에는 얼마나 치열한 생존의 현장이었을까. 로마의 성벽이야말로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고 증명하는 유산이 아닐까 싶다. 고대 이집트에서 태양 숭배의 상징으로 세웠던 오벨리스크를 따라가는 여정으로 로마에 있는 14개의 위치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부분과 안데르센과 즉흥시인 벨리가 노래한 로마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롭다.

 

 

지평선 끝에 걸린 산과 ‘영원의 도시’의 전경뿐 아니라 자신이 걸어온 길을 내려다본다면 발아래 펼쳐진 장원형 회랑을 설계한 베르니니를 비롯한 수많은 예술가와 장신들이 힘을 합쳐 완성한 이 대성당의 구조가 천국으로 가는 거대한 ‘열쇠’모양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다시 한번 거대한 돔 위의, 천국의 입구에 선 행복과 기쁨이 절절히 느껴질 것이다. (295쪽)

 

한 권의 책을 따라 산책하기에 로마는 너무도 화려하고 웅장한 도시다. 아마도 실제로 로마를 산책한다면 아름다운 건축물을 바라보느라 속도를 내는 일은 어려울 것이다. 저자의 말대로 책엔 3000년 가까운 로마의 역사가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책 속 사진이 흑백이 아니었다면, 좀 더 크고 선명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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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0-01-08 0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마에는 아주 오래된 것도 아직 남아 있겠지요 옛날 모습 그대로는 아니라 해도... 책에 3000년의 역사가 흐른다니, 엄청나게 긴 시간이네요 이탈리아는 건물 마음대로 짓지 못한다니 이 책이 스무해 전에 나왔다 해도 그때랑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지도 모르죠 조금은 바뀌었을까요

새해가 오고 여드레째네요 자목련 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하고 싶은 거 만나고 싶은 책 자주 만나시기 바랍니다 웃을 일도 많이 생겼으면 좋겠네요


희선

자목련 2020-01-08 14:15   좋아요 1 | URL
희선 님의 말씀처럼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것들도 많이 있겠지 싶어요.
보내주신 마음을 항상 받기만 하네요.
희선 님도 2020년 건강하시고 평온한 일상이 이어지기를 바라요.
 

 

동생이 고장 난 시계를 집에 두는 게 아니라고 말했다. 고장이 났다는 건 건전지를 제때 끼워도 시계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시계가 많다는 건 그만큼 시간에 대한 강박이 강한 건 아닐까. 손목에 시계를 찼던 게 언제였던가. 휴대폰이 나오면서 시계는 멀어졌다. 직업적 특성 때문에 유독 시간에 민감했던 큰언니는 시계가 많았다. 어쩌면 시계를 좋아했는지도 모르겠다. 집안에 둔 시계의 시각도 제각각이었다. 5분이 빠르게 가는 시계, 10분이 빠르게 가는 시계. 모두 정시보다는 조금씩 빨랐다. 이사를 하면서 장식용으로 내가 권했던 건 양면 시계였다. 마음에 드는 시계를 찾지 못했던 탓일까. 양면 시계는 두 개가 있다. 그러니까 벽에 걸려있는 시계는 모두 네 개였다. 그중 하나를 버렸다. 고장의 여부는 상관없이 버렸다. 동생의 말 때문도 아니었다. 멈춰 있는 시간을 소유한다는 게 부담스러웠다고 할까. 탁상용 시계의 건전지는 모두 뺐다. 시계는 오직 양면 시계, 두 개만 작동한다. 두 개의 시간이 흐른다고 해야 할까. 나 역시 시간을 조금 빠르게 설정했다. 휴대폰 알람의 경우도 기상이나 약속 시간보다 일찍 설정해 울린다. 시간을 붙잡고 싶었던 걸까. 글쎄 모르겠다.

 

12월 24일에 붙잡고 싶은 건 무엇일까. 딱히 그런 건 없다. 이제 일주일 후면 새로운 시간과 마주한다. 그것은 새로운 시간일까. 투명했던 시간은 언제였고, 미세먼지처럼 불투명했던 시간은 언제였을까. 누군가와 함께 보낸 기억을 선명하게 떠올리는 순간의 시간은 투명한 것일까. 자신의 전부를 드러내는 이런 잎맥처럼 환한 시간을 쌓고 싶다. 천천히 읽고 있는 서보 머그더의 소설 『도어』속 에메렌츠의 시간이 그러한 듯하다. 올해의 끝에는 그 문을 열고 그 안으로 들어갈 것이다. 좋은 소설과 보내는 시간은 빠르게 채워진다. 메리 올리버의 산문 『긴 호흡』도 좋을 것 같다. 외국 작가의 소설과 산문에 이어 한국작가의 소설과 시인의 에세이도 있다.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인 『최단경로』와 박연준의 산문집 『인생은 이상하게 흐른다』.

 

 

 

사람들은 마음이 아플 때 건강하고 강하게 이겨낼 수 있는 방법으로 슬픔이 자신을 비껴가도록 내버려 둬야 한다고 착각하곤 하는데, 이는 건강한 방법이 아니다. 멍울진 감정이나 체한 슬픔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슬픔에게도 기회를 주어야 한다. 슬플 기회를! 무언가 때문에 상심해 있다면 자신에게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슬픔을 피하지 말고, 같이 여행을 가자. 상처가 나를 데리고 떠나는 여행이 끝날 무렵, 딱지 앉은 상처를 이제 내가, 데리고, 돌아오면 된다. 그렇다. 다시 관성의 법칙이다. 떠났으니 돌아오는 것, 피 흘렸으니 아물기를 기다리는 것. (​『인생은 이상하게 흐른다』, 중에서)

 

스스로에게 충분하게 슬플 기회를 주는 일, 충분하게 웃는 기회를 주는 일. 맘껏 웃고, 맘껏 울어도 좋겠다. 후련한 마음으로 새로운 시간 속으로 걸어간다면 그 발걸음은 얼마나 경쾌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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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4 13: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2-27 11: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19-12-24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2019년 서재의 달인 북플마니아 축하드립니다.
올해도 좋은 이웃이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크리스마스 되세요.^^

자목련 2019-12-27 11:07   좋아요 1 | URL
언제나 축하 인사를 건네주시는 서니데이 님, 감사해요.
저야말로 서니데이 님의 이웃이라 행복했습니다.
내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서니데이 2019-12-31 2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새해인사 드리러 왔습니다.
조금 있으면 2020년 경자년이 됩니다.
새해에도 항상 건강하시고 가정에 평안 있으시기를 기원합니다.
행복과 행운 가득하시면 좋겠습니다.
새해복많이 받으세요.^^

자목련 2020-01-03 11:10   좋아요 1 | URL
2020년, 건강하고 즐거운 일들이 가득하기를 바라요.
서니데이 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침묵하지 않는 사람들 - 감시, 조종, 거짓에 맞서 싸운 디지털 미디어 시대의 영웅들
매슈 대니얼스 지음, 최이현 옮김 / 포레스트북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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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혼자여서는 안 되며, 타인의 고통은 우리 자신의 고통만큼이나 중요하다.” (25쪽)

 

누군가를 돕는 일에는 특별한 사명감이 필요하다고 여긴다. 대단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재해나 사고가 났을 때 ​ARS 자동 전화를 통한 기부와 정기적으로 소액을 송금하는 정도만 익숙하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그 작은 행위를 뭐라도 하고 있다고 위안을 삼는 것이다. 나와는 다른 삶을 사는 이들의 고통에 마음 아파하면서도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에 대해 적극적으로 다가가지 않았다. 마실 물이 없어서 아이들이 병에 걸리고 가족의 생계를 위해 어린아이가 가장 역할을 한다는 이야기를 도네이션 프로를 통해 접하면서도 행동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나는 침묵하는 사람들 속에 있었다. 법학박사이자 인권 운동가인 매슈 대니얼스의 『침묵하지 않는 사람들』​은 나에게 침묵하지 않은 사람들 속으로 움직이게 하는 책이다. 우리가 그동안 무엇을 침묵하고 살았는지 생각하고 반성하게 만든다. 침묵을 깨고 목소리를 내는 일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 자세하게 알려준다.

 

매슈 대니얼스는 불안과 공포의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안전이 보장되지 않은 뉴욕의 할렘에서 그의 어머니는 퇴근길에 괴한에게 폭행을 당했고 고통 끝에 세상을 떠났다. 그 지역은 모두에게 위험한 공간이었다. 언제 어디서나 누군가의 죽음을 목격하고 자신이 그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악몽에 시달렸다. 삶 그 자체가 죽음과 가장 가까운 곳이었다. 그곳을 떠나 다른 곳에서도 악몽은 그를 괴롭혔다. 반복된 악몽, 그는 그것을 고통을 받는 사람들을 살피라는 소명으로 받아들였다. 과연 그것은 가능할까. 불가능하다고 믿는 나에게 이 책은 그 가능의 증거였다. 책은 우리가 어떻게 하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지 여러 사례를 통해 알려준다. 지금 접속하고 있는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를 통해 보편적인 기술이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가 전해주는 이야기는 먹먹한 감동을 안겨준다. 우리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사소한 행동이 불러온 나비효과는 위대하고 놀라웠다. 교회에서 목사님의 설교를 통해 아프리카 어린이들이 마음껏 물을 마실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아홉 살 소녀 레이철은 자신의 생일 선물로 기부금을 부탁한다. 부모님의 SNS를 통해 홍보하고 목표를 세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레이철 가족은 사고를 당하고 아홉 살 소녀 레이철은 하늘로 떠났다. 하지만 레이철이 시작한 모금은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의 143개 마을에 우물을 선물했다.

 

우리에게는 당연하고 보편적이 일들이 누군가에게는 범죄로 이어진다면 어떨까?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여성이 자동차를 운전하는 일이 그러했다. 불법이 아닌데 운전을 못하는가. 도대체 왜? 이런 의구심을 적극적으로 해결하려 했던 여성이 있다. 알 샤리프는 20011년 5월 급하게 볼 일이 있어 운전을 했야 했고 그 모습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놀랍게도 그녀는 9일 동안 구금당했다. 그리고 결국은 고국에서 추방당했다. 그러나 차별에 반대하는 여성들의 움직임은 더욱 활발해졌다. ‘우먼 투 드라이브(#Women2Drive)’란 캠페인에 수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운전 영상을 올린 것이다. 7년간의 해시태그(#)는 결국 2018년 6월 24일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여성 운전 금지 정책을 폐지한다.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과 감시를 당했던 일은 또 있다. 바로 히잡이 그것이다. 이란의 열여덟 살 소녀 호자브리라는 체조선수는 히잡을 쓰지 않고 춤을 추는 영상을 올렸다는 이유로 체포되었다. TV에 출연해 자신의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또래 소녀를 생각하면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호자브리의 모습을 본 사람들은 소녀를 지지하는 ‘댄싱 이즈 낫어 크라잉#DancingIsNotaCrime’ 로 지지한다. 호자브리의 사연을 읽으면서 축구장이 입장하려다 체포된 여성이 떠올랐다. 이란에서 여성들은 공공장소에서 노래를 부를 수도 없고 스포츠 행사에도 참가할 수 없다고 한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니. 이란 여성들은 스스로 조금씩 세상을 바꾸기 시작한다. 히잡 착용 반대 시위로 모바헤드란 여성이 테헤란 도심의 전기 설비 박스에 올라가 자신의 히잡을 막대기에 걸고 흔들었다. 예상대로 그녀는 체포되었고 영상은 확대되었다 이란에서 여성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소셜미디어가 전부다. 그러나 우리는 그 소셜미디어를 통해 그들을 응원하고 지지할 수 있다. 해시태그(#동참합니다)로 충분하다. 세계 곳곳의 굶주린 아이들을 살리고 모기장이 없어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리는 일도 디지털 미디어로 가능하다.

 

『침묵하지 않는 사람들』에서 만난 이들은 자신의 선한 영향력이 선순환 되는 기적을 예상하지 못했다. 그저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표현하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도음을 주고자 하는 작은 마음을 전했을 뿐이다. 아마도 그 마음은 ​‘타인의 죽음을 간과할 때 우리의 품격은 손상된다.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는 일은 자신의 인간성을 상실하는 것과 같다.’란 저자의 말과 같을 것이다. 인터넷의 보급이 활발하지 않았던 시대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기적이다. 인터넷으로 사람들은 연대하고 공감하고 모두가 좋은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협력한다. 반대로 인터넷은 누군가를 감시하고 사생활을 침범하고 권력을 위해 악용된다. 테러집단, 사이버범죄의 온상이 되기도 쉽다.

 

인터넷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인터넷에 접속할 때마다 우리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더 나쁜 쪽이 아닌 더 나은 쪽으로의 변화 말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어렵지 않다. 책 표지가 알려주듯 지금 당신이 있는 그곳에서 클릭하고, 복사하고, 알리고, 좋아요를 누르면서도 가능하다. 당신이 하던 대로 #withyou, #동참합니다, #침묵하지않겠습니다, 하면 된다. 그것이 침묵하지 않는 사람들 속으로 이동해 살아가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그 아름다운 변화를『침묵하지 않는 사람들』과 함께한다면 더욱 근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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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어하우스
베스 올리리 지음, 문은실 옮김 / 살림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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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로맨스 소설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없다. 오래전에 사랑의 설렘에 들뜨는 나이를 지나왔고 뻔한 결말로 가는 식상한 과정에 싫증이 났기 때문이다. 현실적이면서도 신선한 이야기를 원했다. 사랑은 환상이 아니고 현실이니까. 은근한 밀당과 자존심을 내세우는 로맨스 소설은 너무도 흔하다. 색다른 느낌을 건네면서도 사랑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뜨거운 감동을 바란다면 나의 욕심이 과한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베스 올리리의 『셰어하우스』는 내가 원하는 그런 소설이었다.

 

소설은 제목 그대로 집을 나누어 사용하는 이야기다. 은밀하고 정확하게 말하자면 침대를 공유하는 일이다. 여주인공 티피는 실용 서적을 만드는 출판사의 편집자다. 함께 지냈던 남자친구 저스틴과 헤어지고 새로운 거주지를 찾아야 한다. 세상 어디나 나만의 공간을 ​구하는 일은 어려운 법. 그런 티피가 발견한 광고는 정말 기발하고도 놀라웠다. 평일 낮을 제외하고 나머지 시간은 티피의 공간이 될 수 있다는 호스피스 병동에서 야간 근무를 하는 간호사의 광고였다. 그가 스물일곱 살의 남자라는 조건을 따질 필요도 없다. 티피와의 면접도 그의 여자친구 케이가 했으니 마주칠 필요도 없다고 여겼다. 광고를 낸 리언도 마찬가지였다.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간 동생 리치의 항소심 준비로 ​돈이 필요했다. 생활 패턴이 다르니 조심할 일도 없고 리언의 사정을 아는 여자친구도 동의했다.

 

티피와 리언의 시선이 교차로 서로에 대한 생각과 일상을 보여준다. 나와는 완벽하게 취향이 다른 이가 남긴 흔적을 발견하는 일은 당황스러운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동거 아닌 동거를 하는 티피와 리언은 서로의 일상에 조금씩 눈길이 간다. 리언이 읽은 책, 티피가 만든 음식이 그러했다. 활동 시간이 다른 티피와 리언은 통화가 아닌 포스트잇에 메모를 남기면서 의견을 교환한다. 통화 버튼만 누르며 영상 통화를 할 수 있는 시대에 이처럼 아날로그적 소통이라니. 고백하자면 나는 작가의 이런 설정이 좋았다. 정해진 공간이 아닌 집 안 곳곳에 필요할 때마다 메모를 남긴다. 밤 근무를 하고 힘들었을 리언에게 티피가 남긴 메모와 음식은 훌륭했다. 필요한 질문이나 조율할 일도 모두 포스트잇 하나면 충분했다. 아주 사소한 것들에 대한 알림을 시작으로 한 메모는 서로의 안부를 묻고 응원하는 마음으로 이어졌다. 포스트잇을 쓰면서 답장을 기다리고 또 그에 대한 답을 쓰는 짧은 순간에 서로를 생각하며 미소를 짓는 일. 가장 로맨틱하고 아름다운 장면이 아닐까.

 

냉장고 문에 이마를 잠시 얹었다가 종이 쪼가리와 포스트잇 쪽지들을 손가락으로 훑어본다. 엄청난 양이었다. 농담, 비밀, 이야기, 두 사람의 인생이 천천히 펼쳐지고 있는 광경. 두 사람의 인생이 바뀌어가는 광경. 아니면 뭐랄까. 동시에 똑같이 바뀌는 장면이랄까. 다른 시간대, 같은 장소에서. (251쪽)

 

처음부터 티피와 리언이 얼굴을 마주하는 사이였다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일면식도 없는 사이, 말 그대로 낯선 타인이었던 티피와 리언이 서로를 걱정하는 사이로 변화할 수 있었던 건 무엇 때문일까. 솔직하게 모든 걸 말할 수 있어서 가능했다. 우연처럼 리치의 일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케이와 이별해서? 아니다. 그건 용기 그 이상의 것이었다. 둘 사이에 오간 포스트잇의 개수만큼 서로에 대해 많은 걸 알게 된 것이다. 리언은 리치에게 벌어진 일들을 들려주고 티피는 전 남자친구 저스틴과의 관계에 대해 말했다. 상대에게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랐다. 마음이 움직이는 건 아주 작은 것에서 시작한다. 교도소에서 걸려온 리치의 전화를 받고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일, 티피가 편집하는 책에 대해 관심을 갖고 말을 건네는 일. 대단한 무언가가 아니었다. 사랑하는 일도 그러했다. 상대의 주변을 살피고 새롭게 확장된 관계를 맞이하는 일이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사랑의 힘이 그것들을 가능하게 만든다.

 

사랑한다는 건 행동하는 것이다. 마음에 담아두었던 감정을 꺼내는 것이고, 상대를 위해 움직이는 일이다. 오해했던 마음을 사과하기 위해 전화를 거는 사소한 행동부터 티피의 친구들이 리치를 도우려는 행동, 저스틴의 폭력과 집착에 단호하게 대처하는 일, 호스피스 병동의 환자를 위해 그의 친구를 찾아 나서는 리언의 행동, 이 모두가 사랑이 있기에 가능하다.

 

티피와 리언의 사랑만이 특별한 게 아니다.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행동한다는 걸 우리는 안다. 두려움이나 걱정 따위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랑은 때로 놀라운 능력을 발휘한다. 베스 올리리의 『셰어하우스』가 전해주는 사랑의 의미도 마찬가지다. 모든 세대가 공감할 이야기로 사랑에 대해 말한다. 잠들었던 사랑의 감각을 자극해 깨우는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이들에겐 자신의 사랑을 점검할 수 있는 시간이며 사랑을 꿈꾸는 이들에겐 좋은 사랑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일회적이고 소모적인 사랑이 아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사랑에 대해서 말이다. 서로를 움직이는 원동력, 그 아름다운 힘으로 만드는 눈부신 사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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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9-12-22 1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 님 겨울 건강히 지내고 계신지요. 이 책을 시각장애인 녹음도서로 낭독하고 싶어져요. 재미있어 하실 것 같아요. 점자도서관에 추천해 보겠습니다. 사랑은 행동하는 것. 상대를 위해 몸을 움직이는 일이란 문장이 새삼 들어와요. 맞다맞아 이러면서요.

자목련 2019-12-22 13:11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프레이야 님. 그동안 글을 쓰고 책을 내시느라 바쁘셨군요. 출간 축하드려요. 이 책, 좋아요. 재미와 감동, 그리고 즐거움까지 안겨줄 거라 생각해요. 남은 12월 일정이 많으시겠지만 평온하고 포근하게 보내시길 바라요.

2019-12-22 19: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2-24 10:4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