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스트 키딩 마음산책 짧은 소설
정용준 지음, 이영리 그림 / 마음산책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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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잊고 싶을 때 선명한 기억을 지우고 싶을 때 나는 잠으로 도피했다. 자고 자도 또 잘 수 있었다. 머리가 멍해지고 잠에 취에 입맛이 사라질 때까지 잤다. 그러나 잠은 묘약이 아니었다. 무기력하게 그저 시간을 흘려보내는 방법이었다. 효과가 아주 없었던 건 아니다. 잠들어 있는 동안 나는 내가 아닐 수 있었고 깨어나서도 다시 잠으로 도망갈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꿈을 꾸는 일은 좋지 않았다. 악몽이나 흉몽, 길몽을 따지기 전에 나는 꿈을 꾸는 게 싫었다. 끊어진 인연이 등장하는 꿈, 가족이나 지인이 무작위로 등장하는 이상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기분이 별로였다. 혹여 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 아닐까, 걱정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정용준의 짧은 소설 『저스트 키딩』은 그런 꿈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이건 꿈이니까 괜찮아, 그런 의미가 아니라 현실이라는 걸 알지만 잠시라도 현실이 아니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할까. 다른 내가 되어 도달하고 싶은 어떤 상상의 공간 같은 것, 꿈꿀 수 있는 미래, 잔혹하면서도 아름다운 동화, 소설이기에 맘껏 소리 지르고 화를 표출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기고 그 모든 게 허용되어 후련해지는 느낌. 설령 그것이 한낱 망상이나 환상일지라도.


그러나 이야기의 시작이 마냥 허무맹랑한 게 아니라서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이라서 마냥 농담이나 잠깐의 소동으로 치부할 수 없다. 세신사로 일하는 신 씨의 일상으로 시작하는 「돌멩이」 속 소년의 일도 그렇다. 평일에 목욕탕 온 소년을 주목하는 신 씨. 학교에 가야야 할 시간에 목욕탕에 온 아이에게 공짜로 때를 밀어주며 몸을 살핀다. 멍이 든 몸, 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는 게 분명했다. 신 씨의 아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먹고사는 일에 급급해 학교 가기 싫다는 아들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지 못했다. 학교에 가지 말라고 했다면 좋았을 텐데, 후회가 될 뿐이다. 가방 가득 돌멩이를 채워 학교에 간 마음을, 창문을 깨고 자신을 괴롭혔던 아이의 머리를 내리쳤던 그 분노를 말이다. 아들을 전학시키고 적금을 깨고 이사를 했야 했다. 신 씨가 목욕탕에 온 아이에게 마사지 값에 대한 제안을 한다. 돌멩이를 들고 만 있으라고, 내리치지 말라고 했는데 소년은 유리창을 깼다. 소년의 행동은 옳지 않지만 나는 이상하게 기분이 좋아졌다. 소설에서라도 그렇게 할 수 있어서 시원했다. 목욕탕을 다시 찾은 아이가 신 씨에게 조폭이냐고 물었을 때 신 씨의 답변은 명확하게 아름답다.


“세신사. 씻을 세洗. 몸 신身. 몸을 깨끗하게 만들어주는 사람.” (「돌멩이」, 31쪽)


거창하게 정의 구현을 가르치고 그것에 대해 말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어려움과 상처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현실적인 방법도 필요하다. 그저 돌멩이를 들고만 있으라고 알려주는 어른도 있어야 할 세상이다. 더 나쁜 쪽으로 가지 않도록 도움을 주고 손을 내밀어 주는 어른은 「세상의 모든 바다」에서도 등장한다. 세상의 전부였던 엄마와 아빠를 차례로 잃고 혼자 남은 ‘소산’은 엄마와 아빠의 죽음을 인지하지 못한다. 엄마를 찾으러 떠난 아빠를 기다릴 뿐이다. 그런 소산에게 톨게이트 요금소 정산원은 요금소에 앉아 있으면 아빠를 제일 먼저 볼 수 있다고 말한다. 돌봄과 안정이 필요한 소산을 이용한 것이다. 톨게이트를 지나던 트럭 운전사 여성 주윤만이 소산에게 관심을 갖는다. 그리고 아빠를 찾으러 가자고, 먼바다로 가자고 말하며 함께 떠난다.


저는 세상의 모든 바다를 갈 수 있어요. 바다로 향하는 모든 톨게이트를 알고 있지요. 이 톨게이트를 지나 저 톨게이트를 통과하면 이 세상은 저 세상으로 변한답니다. (「세상의 모든 바다」, 142쪽)





사회적 약자를 위한 시스템의 부재를 생각한다. 개인과 개인의 연대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 사회적 울타리는 언제쯤 가능할까. 그런 기대를 품지 않는 사회에 익숙해지만 우리는 스스로 자신을 방어하고 보호하는 힘을 키운다. 표제작 「저스트 리딩」속 인물 ‘모자’처럼 말이다. 그는 편의점에 들어가 직원에게 자신이 몇 시간 전에 물건을 훔쳤다고 말한다. 직원은 물건을 돌려주면 되지 않냐고 하지만 모자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점장이 알면 귀찮아질 게 뻔한 직원은 모자와 잘 해결하려 하지만 쉽지 않다. 모자는 편의점에 있는 두 명의 남자가 강도라고 직원에게 알려준다.


모자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 직원. 경찰이 출동하지만 강도가 아니라는 사실일 밝혀진다. 모자는 화가 난 직원을 도발하고 직원은 모자를 폭행한다. 합의를 위해 병원에 찾아간 직원은 모자가 자신의 유튜버 콘텐츠로 피해를 입은 사람의 지인이라는 걸 알게 된다. 그 모든 과정을 모자가 계획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통쾌하면서 마냥 산뜻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피해자의 삶이 회복될 수 없다는 걸 알기에 그렇다. 그냥 장난이었다는 것으로 무마하는 가해자와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평생 그 꼬리표를 달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를 증명해야 하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닿을 수 없는 꿈을 좇는 사람, 그런 사람을 사랑하는 안타까운 마음을 들려주는 「시간 도둑」, 애잔하고 자신은 과거를 지불해 얻은 영원한 꿈속에서 사는 삶이 행복하기만 한 게 아니라 얼마나 지루한가 보여주는 「너무 아름다운 날」, 유령이 나오는 펜션에서 생을 끝내려고 했다가 죽은 동생을 만나는 「브라운 펜션」 은 인간의 욕망과 죽음을 보여준다. 모든 게 꿈이라면 괜찮을까. 죽음이 있기에 생은 고귀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고통 속에서도 살아갈 이유를 찾는지 모른다.


한 마디 툭 내던졌을 때 누구 하나 상처받지 않고 모두가 유쾌할 때 농담은 빛이 난다. 정용준은 그걸 아는 작가인 것 같다. 그래서 단지 농담에 불과한 이야기가 아닌 농담에 담긴 의미를 찾아내려 애쓰는 것 같기도 하다. 꿈을 꾸는 것 같기도 하고 꿈속을 헤매는 것 같기도 하지만 결국 꿈에서 깨어 현실을 마주해야 한다는 걸 알려주는 것 같다고 할까. 그래서 조금은 우울하고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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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인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11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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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복잡하다. 알고 있다. 그래서 마음을 얻기 어렵고 알기는 더욱 어렵다. 마음을 보여줄 수 있다면 우리는 상대를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럴 수 없기에 다양한 방법으로 마음을 공부한다. 소설 읽기도 그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지난달에 읽은 『마음』에 이어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행인』을 읽으면서 마음을 알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새삼 확인한다. 어려워서 포기하고 모른 척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것도.


사실 『행인』은 다른 소설에 비해 무척 재미있게 읽힌다. 여름을 배경으로 시작해서 그런지 소설 속 더위가 익숙하게 다가오고 화자인 ‘지로’도 친근하게 느껴졌다. 대학을 졸업하고 학문에 열중하지만 번듯한 직장에 다니지 않았던 인물들과 다르게 이번에는 직장에 취직했기 때문이다. 물론 소설 초입에 지로는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생활하는 한량이라 할 수 있지만 말이다.


소설 초반은 지로와 친구 ‘미사와’의 대화에 등장하는 ‘그 여자’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온다. 과연 그 여자와 지로가 만나게 될까, 혹은 지로도 미사와처럼 그 여자에게 끌리는 건 아닐까 싶었다. 그러나 그건 소세키가 심어 둔 마음에 대한 복선이자 키워드였다. 그러니까 그 여자가 아니라 미친 그 여자, ‘미친’이 중요했다. ‘미친’ 마음에 대한 이야기, 혹은 그 미친의 기준과 그것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까. 아니, 그보다 훨씬 복잡하고 ‘우울증’이라는 것보다 한 수 위의 단어가 필요하다.


『행인』은 지로의 마음이 아니라 지로의 형 ‘이치로’의 마음에 관한 이야기다. 그건 결국 이치로란 인물을 통해 우리가 나 아닌 타인을 알고자 하는 이야기라 볼 수 있다. 소설 속 이치로는 학자로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아내 ‘나오’ 사이에 딸을 하나 둔 가장이다. 형수와 사이가 좋지 않다. 지로의 어머니는 나오를 탓하지만 지로가 보기에는 둘 사이에 별문제가 없어 보인다. 어머니의 부탁으로 이치로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면서도 형이 학자라 더 예민한 거라고 여긴다. 사실, 지로는 귀찮고 피곤할 뿐이다. 이치로의 마음을 모른척하고 싶다.


“형님한테 제가 이런 말을 하면 무척 실례가 될지도 모르겠지만, 남의 마음 같은 건 아무리 학문을 한다고 해도, 연구를 한다고 해도 이해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형님은 저보다 뛰어난 학자니까 물론 그걸 알고 있겠지만, 아무리 가까운 부모 자식이라고 해도, 형제라도 해도 마음과 마음은 그냥 통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뿐이고, 실제로 상대와 자신의 몸이 떨어져 있는 것처럼 마음도 떨어져 있는 거니까 어쩔 도리가 없는 일 아닐까요?” (139쪽)


하지만 이치로가 자신과 나오 사이를 의심하며 둘 사이를 증명해달라고 부탁하자 지로는 마음이 복잡해진다. 세상에나, 어떤 형이 시동생과 형수의 관계를 의심한단 말인가. 그러나 지로는 거절할 수 없다. 거절하는 순간 형수와의 관계를 인정하게 되니 어쩔 수 없이 형의 부탁을 들어준다. 형수와 여행을 다녀오라는 제안이다. 물론 형수와 지로 사이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둘이 여행을 떠난 날 폭우로 인해 계획과 다르게 하룻밤이 지나고 돌아온다. 이 밤이 이치로의 마음을 더 힘들게 만든 결정적인 계기라 생각한다. 의심하는 마음에 짐작이 더해서 이치로를 괴롭혔을 게 분명하니까.


지로는 그런 형을 보는 게 불편하기도 하고 혼자 지내고 싶어 하숙을 구해 독립한다. 직장을 구하고 미사와를 만나며 시간을 보낸다. 본가를 방문하는 일도 줄어든다. 그러나 이치로에 대한 생각이 사라진 건 아니다. 여전히 가족 모두가 형을 걱정하고 있어 지로는 미사와의 지인 H를 통해 형의 근황을 살핀다. 그리고 H에게 형과 함께 여행을 떠나기를 부탁한다. H의 제안이라면 형이 여행을 갈 것 같아서다. 형의 여행이 결정되고 지로는 H를 만나 여행 기간 동안 이치로를 관찰해 줄 것을 부탁한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은 이치로와 여행을 떠난 H가 지로에게 보낸 편지로 이 내용이 이 책의 핵심이 아닐까 싶다. H와 이치로가 나눈 대화, 이치로가 자신의 생각을 설명하고 들려준다고 볼 수 있다. 자신의 존재에 대한 물음, 가족(특히 아내와의 관계), 우울감, 신경쇠약, 종교, 죽음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진다. 내게 이 부분은 무척 어려웠다. 이치로가 안쓰럽게 여겨지면서도 그의 마음을 채운 고독과 허무의 실체를 이해할 수가 없다고 느껴졌다. 기질적인 이유가 아닐까 싶었다. 환경적으로 바뀔 수도 있지만 고유한 기질을 무시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결국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태도와 노력이 중요하다 것을 말이다.


구름이 하늘을 아득하게 덮었을 때 비가 내리는 일도 있을 거고 또 비가 내리지 않는 일도 있을 거네. 다만 구름이 하늘에 있는 동안 햇빛을 보지 못하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네. 자네나 어르신들은 형님이 곁에 있는 사람을 불쾌하게 한다며 딱한 형님에게 다소 비난의 의미를 돌리고 있는 모양이네만 자신이 행복하지 않은 사람에게 남을 행복하게 할 힘이 있을 리 없네. 구름에 싸인 태양을 보고 왜 따뜻한 빛을 주지 않느냐고 다그치는 것은 그렇게 다그치는 쪽이 억지일 걸세. 나는 이렇게 함께 있는 동안 가능한 한 형님을 위해 그 구름을 걷어내려고 하고 있네. 자네나 어르신들도 형님에게 따뜻한 빛을 바라기 전에 우선 형님의 머리를 에워싸고 있는 구름을 걷어내주는 게 좋을 걸세. 만약 그걸 걷어낼 수 없다면 가족과 자네나 어르신들에게 슬픈 일이 생길지도 모르네. 형님 자신에게도 슬픈 결과가 되겠지. 나도 슬플 거네. (413쪽)


H의 편지처럼 이치로에게는 태양보다 구름이 더 많은 것이다. 그러니 우선 구름을 인정하고 그것을 걷어낼 수 있도록 이치로를 도와야 한다는 것. 어디 이치로의 마음뿐일까.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구름을 갖고 있다. 다만 어떤 이는 구름을 숨기는데 탁월한 반면 어떤 이는 구름을 걷어내는 걸 도와달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누군가 어떤 구름을 보고 ‘미친’ 것이라 말할지도 모른다. 상대의 구름을 보면서 구름에 관심을 갖는 일은 어렵고도 조심스럽다. 그러니 마음과 마음이 통한다는 건 말처럼 쉬운 게 아닐 것이다. 온 맘 다해 정성으로 노력해야만 알 수 있는 게 마음이다. 일방적인 노력이 아니라 협력해야 그나마 조금이라도 가능한 일이다.


지로가 H의 편지를 통해 이치로의 구름에 대해 알게 된 것처럼 소세키의 소설을 통해 우리는 나의 구름과 저마다의 구름의 존재를 인식한다. 구름이라 이름 붙이고 설명해도 마음은 복잡하다. 그런 복잡한 마음을 소세키는 연구하고 분석한다. 왜 마음에 이토록 집중하다 못해 집착했던 것일까. 그가 알고 싶었던 마음은 누구의 마음일까. 아마도 그 역시 자신의 마음을 알고자 마음에 관한 소설을 썼던 건 아닐까. 사람과 사람 사이를 놓는 다리가 되어 줄 그런 소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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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 평전 - 음악, 사랑, 자유에 바치다
이채훈 지음 / 혜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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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평전을 쓴다는 건 그 사람에 대한 무한 애정이 있다고 해도 어려운 일이다. 모두가 아는 유명한 예술가라면 더욱 그렇다. 한 사람의 일대기를 기록하는 차원에서 벗어나 예술과 삶에 대한 평가도 빼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인 처음으로 모차르트 전기를 쓴 저자 이채훈은 그만큼 모차르트에 대한 애정이 크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저자는 모차르트를 사랑하는 건 단순히 개인 취향이 아니라는 걸 명확히 한다.


첫째, 모차르트는 피와 살의 인간이었다. 그는 하늘에서 떨어진 천재가 아니라 부지런히 노력한 음악가였다. 둘째, 모차르트의 음악이 35년 짧은 생애에서 끊임없이 무르익어 갔다는 점에 주모해야 한다. 그가 어린 시절 부터 경이로운 재능을 보인 것은 물론 놀랍다. 그러나 해가 갈수록 그의 음악이 깊이를 더해 가는 모습을 발견하는 것은 진정 놀랍다. 셋째, 모차르트는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이었다. 넷째, 모차르트는 자유 없이 살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자유로운 예술혼을 억압하는 잘츠부르크 통치자 히에로니무스 콜로레도 대주교와 정면충돌했고, 결국 최초의 프리랜서 음악가의 새로운 길을 걸었다. 귀족과 성직자가 지배하는 신분사회에서 그는 모든 사람이 존중받는 유토피아의 꿈을 노래했다. (16~17쪽)


저자는 『모차르트 평전』은 모차르트의 일생을 순차적으로 기록하여 들려준다. 어린 나이의 음악 신동으로 알려졌고 살리에리의 질투를 받은 인물 정도로만 알고 있었던 모차르트.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돈 조반니>, <마술피리>의 작곡가로 영화 <아마데우스>의 삶을 모차르트의 진짜 삶이라고 착각한 내게 『모차르트 평전』은 모차르트의 35년 인생을 자세히 안내한다.


책을 읽을 때에는 모차르트의 곡을 찾아 듣지 않았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고 어쩌다 보니 책만 읽게 되었는데 지금 은 조성진이 연주하는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3번>을 들으며 이 글을 쓰고 있다. 어떻게 이런 선율을 작곡할 수 있었을까 놀라고 감탄하는 중이다. 이처럼 음악에 문외한인 나 같은 독자에게 『모차르트 평전』은 모차르트의 곡과 연결시키는 가교가 된다. 오페라를 관람하는 일은 없겠지만 그의 음악을 가까이 조금 더 많이 듣게 될 것이다.


아들의 음악적 재능을 발견한 아버지 레오폴트는 1763년 가족을 데리고 가족 연주 여행을 시작한다. 1756년생인 모차르트는 겨우 7살이다. 레오폴트는 모차르트의 실력을 세상에 선보이고 인정받고 싶었던 모양이다. 마차를 타고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연주를 하는 모차르트를 생각하면 안쓰럽다. 하지만 부모 마음을 생각하면 일정 부분 이해되기도 한다. 잘츠부르크가 아닌 더 넓은 세계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컸을 것이다. 황실과 귀족 출신이 아닌 모차르트에게 그의 재능은 신의 선물인 동시에 평생의 업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든든한 배후가 없다는 건 서글픈 일이다. 18세기 유럽에서 피아노 연주와 작곡만 할 수 있도록 그를 지원하는 이가 없는 예술가의 삶은 쉬운 게 아니었으니까.


아버지가 연주와 작곡을 위한 나머지 모든 일을 처리해 주었기에 나중에 혼자 연주 여행을 떠났을 때 어려움을 해결하는 방법이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하나하나 아버지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세부적인 사항을 조율하는 부분에 있어 갈등이 생기는 건 당연하다. 레오폴트에게 모차르트는 세상 물정을 모르는 아이였고 모차르트에게 아버지는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답답한 어른이었던 것이다. 그런 이유로 모차르트는 현실적인 문제, 이를테면 연주 일정이나 작곡을 의뢰받은 비용에 대해 기준이 없고 계획보다는 충동적인 부분이 많았다. 물론 책을 읽으며 느낀 나의 생각이다. 안타까운 부분도 많았다. 아버지 대신 모차르트를 따라나선 어머니가 파리 여행에서 죽음을 맞이한 일이 그러했다. 모차르트가 나가고 나면 혼자 숙소에서 아들을 하루 종일 아들을 기다려야 했을 어머니,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모차르트의 마음과 편지로 아내와 어머니의 죽음을 맞이해야 했던 아버지와 누나.


『모차르트 평전』은 모차르트가 작곡한 작품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하고 어떻게 그 작품을 작곡하게 되었는지 배경도 알려준다. 당시에는 귀족들이 주최하는 음악회가 빈번했고 백작이나 황실의 대소사(결혼, 취임)을 위한 음악을 따로 의뢰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의 실력을 믿지 못하고 시험한 이들도 있었다. 모차르트의 명성은 이미 잘 알려졌지만 좀처럼 운은 따르지 않았던 것 같다. <빈 음악협회> 정회원으로 등록하지 못했고 대주교의 궁정 악사였지만 궁정 악장의 기회도 얻기 못했다.


황제의 초청으로 궁정에서 연주를 할 기회를 얻었을 때에도 피아노 경연이었다. 무치오 클레멘티와 모차르트의 피아노 경연은 무승부로 끝났다. 클레멘트는 모차르트의 즉흥 연주에 열광했지만 모차르트는 그의 연주를 혹평했다.


“클레멘티는 훌륭한 피아니스트입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죠. 그의 오른손은 무척 훌륭하고 특히 3도, 6도, 진행은 완벽합니다. 하지만, 기교를 제외하면 그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단 한 푼의 취향도, 느낌도 없습니다. 그는 단순한 기계공일 뿐입니다.” (320쪽)


모차르트가 유명해지면서 자신의 작품 목록을 작성하기 시작한다. 저작권을 분명히 해두자는 것. 저작권을 무시하는 당시의 관행을 생각하면 모차르트의 이런 행동은 자신의 곡에 대한 자부심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런 자부심은 음악의 작곡에도 나타난다. 물론 저자의 해석이지만 <피가로의 결혼>에 대한 이런 설명에 공감하고 동의하지 않을 이는 없을 것이다.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소중한 희망을 간직하는 거야말로 인간의 마지막 존엄성이라는 사실, 모차르트는 <피가로의 결혼>은 이 점을 우리에게 힘주어 말하고 있다.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처럼 견고해 보이는 중세 신분사회의 벽, 그 어둠 속에서도 모차르트는 자유와 평등의 꿈을 잃지 않았고, 이에 따르는 대가를 마다하지 않았다. (463쪽)


모차르트의 이런 사고는 그가 '프리메이슨' 단원으로 활동한 것과 연결된다. 사실 이 책을 통해 세계 민주주의, 인도주의적 우애를 목적으로 한 비밀조직이라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음악적 활동뿐 아니라 모차르트의 유머, 사교와 연애, 결혼에 대한 부분도 많다. 아버지를 비롯한 아내와 나눈 편지를 보면 유머스러운 글귀가 많다. 아내 콘스탄체와 떨어져 지내는 동안 보낸 편지에 아내를 향한 애정이 가득하지만 첫사랑이지만 처형이 된 알로이지아를 잊지 못한 것 같기도 하고.


이채훈의 『모차르트 평전』에서 주목할 점은 모차르트의 작품에 대한 소개도 빼놓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오페라의 줄거리나 배우들에 대한 설명, 시대적 상황이 어떻게 녹아흐르는지 풍부하게 설명한다. 모차르트의 곡을 좋아하고 오페라도 익숙한 이들에게는 글로 오페라를 관람하는 시간이라고 할까. 반대로 오페라를 감사한 적 없는 나 같은 독자에게는 기대와 상상을 갖게 만든다.


마지막 <레퀴엠>을 작곡하다 죽음에 이른 모차르트의 사망에는 여전히 의구심이 남는다. 시신을 찾을 수 없어 빈 묘지만 남은 그의 죽음은 독살설에도 무게를 두게 만든다. 작곡에만 자신의 쏟아부은 결과라는 생각도 지울 수 없다. 전부를 걸 정도로 좋아하고 사랑했던 음악 때문에 너무 이른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서른다섯이라는 나이라니, 아깝고도 아깝다.


주석과 사진을 포함한 800쪽에 가까운 책이지만 어렵거나 난해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많은 자료를 찾아 모으고 진실을 놓치지 않으려는 저자의 노력이 대단하다. 그 덕분에 모차르트와 그의 음악에 대해 더 알게 된 시간이었다. 피아노를 칠 수 있었다면 더 즐겁고 깊이 이해할 수 있겠다 싶었다. 이 책의 내용을 제대로 소개하지 못하는 점은 많이 아쉽다. 모차르트를 좋아하고 더 알기를 원한다면 이 책이 충분한 즐거움을 안겨줄 것이다.


모차르트 음악은 사랑이 가득하다. 어린 모차르트는 자기에게 연주를 청하는 사람에게 묻곤 했다. “저를 사랑하시나요?” 아무 대가 없이 그의 음악을 즐기는 우리는 진정 그를 사랑하고 있을까? 모차르트는 아내 콘스탄체에게 썼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절반만큼이라도 나를 사랑해 주면 얼마나 좋을까?” 모차르트가 아낌없이 준 음악을 우리는 절반이라도 이해하며 감사할 줄 아는 걸까? (7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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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3-08-18 1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에 클래식에 입문할 적에
라벨의 <볼레로>와 모짜르트의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뮤직>
을 그야말로 마르고 닳도록 읽은
... 아니 들은 기억입니다.

나중에 발터가 지휘한 모짜르트
심포니를 들으면서 정말 대단하
다 싶었습니다.

달래, 천재냐 !!!

800쪽, 분량이 어마무시합니다.

자목련 2023-08-20 17:59   좋아요 0 | URL
아주 세세하게 모차르트의 작곡에 대해 말해주고 있어요.
음악을 하는 일, 예술가가 얼마나 위대한 사람인지 생각했어요.
그래서 더 고맙게 듣어야지 싶었어요 ㅎ
 

태풍이 지나고 나면 더위가 한풀 꺾길 거라 기대하지 말았어야 했다. 낮의 뜨거운 열기는 밤에도 쉬이 식지 않는다. 그래도 밤에 잠들 때 침대를 내려오는 일은 없다. 대신 잠드는 시간이 늦어진다. 이미 다 본 드라마를 다시 보고 있다. 3~4년에 방영된 드라마, 여름에 걸맞은 스릴러 쪽인데 분명 봤는데 줄거리가 정확하게 떠오르지 않아 처음 본처럼 집중해서 보느라 새벽까지 시청하는 중이다. 그러니까 넷플릭스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중이다. 다른 채널을 구독하지 않은 걸 나름 다행이라 생각한다.


알림은 받지 않기, 이게 중요하다. 배달 앱도 자꾸 쿠폰을 준다는 알림에 그 쿠폰이 아까워서 자꾸 뭔가 배달시킨 음식을 찾게 된다. 이러려고 앱을 설치한 게 아닌데. 지금도 어느 앱에서 알림이 왔다. 이 기회에 알람 설정 정리를 해야겠다. 알림을 받아야 할 것과 받지 말아야 할 것을 정리하기. 언제나 좋아하는 것들에서 주저한다. 온라인 서점의 알림이다. 알림을 받지 않으니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도 놓치고.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을 모두 구매하는 건 아니지만 어떤 책이 나왔는지 알아야 그 책에 대해서 살펴보고 내가 읽고 싶은지, 아닌지 판단한다.


알림과 상관없이 그냥 산 책들은 이렇다. 정은 작가의 에세이 『커피와 담배』는 중고로 샀다. 중고 알림을 설정한 덕분에 구매한 것이므로 알림 받기를 유지해야 하는 쪽으로 기운다. 아, 이런. 알림을 받아야 하는 거 아냐? 아, 이런 생각은 멈춰야 한다. M 과의 통화에 생각난 박시하의 시집은 무려 제목이 『8월의 빛』이다. 표제와 같은 제목의 시는 아버지의 기일에 관한 것으로 공교롭게 오늘은 큰언니의 기일이다.





마지막 그냥 산 책은 김화진의 연작소설 『공룡의 이동경로』다. 신춘문예 등단작이었던 「나주에 대하여」가 좋았다. 편집자로 소설을 쓰는 작가, 등단 이후 활발하게 활동한다. 이 책을 구매한 결정적인 계기는 이 문장 때문이다. “사람은 주머니 같다. 나는 그 안이 궁금해.” 아직 소설을 읽기 전이라 어떤 문장인지 알 수 없다. 편집자, 마케팅 담당자, 누군가 이 문장을 선택했고 그 문장에 나 같은 독자는 소설을 선택했다.


그냥 책을 사고 그냥 살고 있다. 그냥 사는 게 이상한가. 그냥 사는 게 좋다. 요즘은 그런 날들이다. 그냥 사는 날들, 이 여름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면서도 여름이 지나면 더 이상 더위를 핑계 삼을 수 없으 조금 더 이어졌으면 하는 이상한 마음이다. 그냥 산 책을 그냥 읽어야 하고 그냥 사는 날도 이렇게 쓰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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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3-08-17 16: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넷플릭스에 한 번 빠지면 헤어나올 수가 없지요.저는 넷플릭스 끊고 왓챠를 구독하는데 넷플릭스에 비해 볼 게 별로 없어 시간이 좀 절약되더라고요.
날씨가 너무 더워요.
그래도 자목련님의 책읽기는 끝이 없으시네요~~

자목련 2023-08-18 13:32   좋아요 1 | URL
<더 글로리>때문에 가입했는데 떠나지 못하고 있어요. 오늘도 고현정 드라마 오픈한다고 알림이 ㅋㅋ
막바지 더위의 날들, 시원하고 건강하게 보내세요!

blanca 2023-08-17 1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큰언니의 기일이었군요. 얼마나 그리우실지...그냥 사는 게 좋다,는 말씀이 그냥 좋네요. 저도 요새 스마트폰, 유튜브 중독이라 걱정이에요.

자목련 2023-08-18 13:31   좋아요 0 | URL
작은언니가 있지만, 큰언니라 부를 일이 없다는 게 가끔 슬퍼요. 작은언니에게는 언니가 없다는 것도.
여름은 그래서 좀 복잡한 감정이 밀려오기도 해요. 저는 유튜브 중독은 아니라 다행이네요 ㅎ

독서괭 2023-08-17 2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냥 산 책이 그냥 좋기를!^^ 자목련님, 언니분 기일이군요.. 8월의 빛 시가 위로가 되셨기를요!

자목련 2023-08-18 13:29   좋아요 1 | URL
그냥 좋은 책, 그냥 좋은 날!
독서괭 님께도 그러하기를 바라요~

그레이스 2023-08-18 0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냥 사는 것만으로 족한 때가 있죠.
이유 없이 힘든 시간들도 있구요. 근데 다 이유가 있더라구요. 시원한 계절이 와서 밖으로 걸어다녔으면 좋겠습니다.

자목련 2023-08-18 13:29   좋아요 0 | URL
맞아요,돌아보고 살펴보면 분명한 이유가 있지요.
곧 시원한 계절이 우리를 감싸고 이 여름이 그립기도 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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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3-08-17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감사합니다 ㅎㅎ 저도 그정도 바빠서가 아니라 편하게 먹으려고 ㅋㅋㅋ 매달 살 것 같아요.

잠자냥 2023-08-17 15:00   좋아요 0 | URL
칭찬을 거든다를 순간 칭찬을 거른다로 읽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자목련 2023-08-17 15:08   좋아요 0 | URL
잠자냥 님 업무로 피곤하시군요, 커피 한 잔!

독서괭 2023-08-17 15:24   좋아요 1 | URL
잠자냥님, 바빠도 커피 거르지 마시고..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