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전집 6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 민음사 / 201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 번뿐인 생을 생각하면 모든 게 의미 있고 소중하게 여겨진다. 순간에 충실하라는 '카르페 디엠'을 외치지 않더라도 말이다. 그러나 살다 보면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하는 순간에 직면한다. 절실하게 매달렸던 것들이 무너지고 믿고 사랑했던 이가 배신하는 건 다반사다. 삶이라는 무거운 짐을 벗어던지고 날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그러다 죽고 사는 게 아니라면 삶에 얽매일 필요 없이 단순하게 살는 게 제일 현명하다는 결론을 맺는다. 단순하게 사는 게 가능한가 싶지만 말이다.


지난 7월 사망한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으면서 인간은 복잡한 존재이며 관계에 얽매여 사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시작된 관계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존재,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확인하려 애쓰다 생을 마감하는 존재. 소설의 제목처럼 참을 수 없는 존재에 대한 갈망으로 때로 무겁게 때로 가볍게 생을 살아간다. 아니, 영영 알지 못한 채 번민 속에서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 사람과의 만남을 운명이라 여기며 다른 삶에 대해서는 돌아보지 않고 직진하여 길을 잃는 사람들, 사실 잘 모르겠다. 밀란 쿤데라가 말하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 소설에 등장하는 네 남녀의 사랑이 닿고자 하는 인생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우선 토마시와 테레자의 사랑을 보면 둘 사이 관계의 주도권은 의사인 토마시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 사람에게 정착하지 못하고 여러 여자들을 자유롭게 만나는 토마시는 우연한 만남으로 그를 찾아온 테레자를 특별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토마시와 떨어지지 않으려는 테레자가 승자라 할 수 있다. 토마시의 특별한 여자 친구 사비나를 통해 출판사에서 사진을 찍게 된 테레자는 끝내 토마시와 결혼에 성공한다.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는 둘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소련의 침공으로 체코를 떠나 스위스로 간다.


스위스에서 테레사는 자신의 사진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사실에 회의를 느낀다. 체코에서 전쟁의 현실과 참상을 다루었지만 스위스에서는 선인장이나 장미를 찍어야 한다니. 테레사는 토마시와 상의 없이 프라하로 돌아오고 토마시는 그녀를 찾아온다. 토마시에게 테레사의 부재는 자유 그 자체여야 하지 않을까. 더없이 가볍고 가볍게 날아오를 수 있었을 텐데. 토마시는 병원 일을 하면서 공산주의에 대한 생각을 신문에 기고하게 된다. 이념이나 정치를 떠나 그저 순수한 의견이었다. 그 일로 토마시는 감시와 회유의 대상이 되었고 테레사와 시골로 향한다. 의사가 아닌 창문을 닦고 나중에는 트럭 운전사가 된다. 테레사와 반려견 카레닌과 함께 살아간다. 마냥 가벼울 수는 없었다. 누군가 그들을 감시한다는 걸 알았기에. 자유롭고 여유로운 시골 생활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나머지 두 남녀는 어떤가? 토마시의 오랜 연인이었던 화가 사비나는 그와 헤어지고 스위스에서 교수 프란츠를 만난다. 프란츠 역시 아내가 있는 유부남이었다. 둘 사이의 사랑도 평탄하지 않다. 사비나는 헤어졌지만 토마시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난 건 아니었다. 동시에 그녀를 붙잡는 건 역사였다. 그렇다고 그 무게에 짓눌리지는 않았다. 토마시와 마찬가지로 그녀는 가벼움을 누렸다. 그녀는 자신의 그림으로 공산주의를 미학적으로 저항했다. 그녀가 좋아하는 말로 표현하면 배신이었다. 그녀는 최선을 다해 조국을 배신했다. 그런 사비나를 프란츠는 이해할 수 없었다. 파리에서 공부하고 교수가 되고 과학자로 평탄하게 살아가는 프란츠는 사비나의 조국인 체코를 향한 동정심이 있었다. 아마도 그는 모든 것을 책과 이론으로 접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거리에서의 투쟁이나 시위, 자유를 외치는 모든 것들이 그에게는 이상적인 존재로 다가왔던 것이다.


네 남녀에게 삶의 변곡점은 작게는 서로를 만난 것이고 크게는 외부 작용인 역사의 소용돌이로 볼 수 있다. 우연을 가장한 필연으로 마침내 토마시와 살게 된 테레자에게는 부단한 노력이 있었고 토마시는 그래야만 한다는 운명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토마시가 테레사를 거부하고 하던 대로 가벼운 삶을 선택했다면 어땠을까. 소설을 이끄는 건 토마시와 테레자의 사랑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1960년대 체코란 역사를 떼어놓을 수 없다. 그 두 가지를 실존이라는 철학적 사유를 통해 묘사하기에 어려운 소설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나 무거움을 따지기 이전에 존재 그 자체를 참을 수 없는 게 아닐까 싶다. 존재, 그것은 사랑, 이념, 역사,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우리 모두는 사랑이란 뭔가 가벼운 것, 전혀 무게가 나가지 않는 무엇이라고는 생각조차 할 수 없다고 믿는다. 우리는 우리의 사랑이 반드시 이런 것이어야만 한다고 상상한다. 또한 사랑이 없으면 우리의 삶도 더 이상 삶이 아닐 거라고 믿는다. (63~64쪽)


소설에서 화자인 ‘나’는 네 사람의 사랑과 삶을 끊임없이 가벼움과 무거움을 저울질하면서도 한쪽으로 기울기를 거부한다. 마치 독자에게 어느 것을 선택할 거냐고, 어떤 게 더 나은 삶이냐고 묻는 것처럼 말이다. 소설의 시작부터 화자는 내게 너무도 궁금한 존재였다. 네 명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했지만 나는 작가 밀란 쿤데라라는 결론을 내렸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우리의 인생은 단 한 번뿐이라는 걸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 속 인물은 저마다 자신의 생을 사랑하고 나름 최선을 다해 살았을 것이다. 그 과정이나 결과가 타인의 시선에 어떻게 보일지는 중요한 게 아니다. 어디에 의미를 두냐에 따라 그 삶은 지나치게 가벼울 수 있고 걷잡을 수 없이 무거울 수 있을 뿐이다.


영원한 회귀가 주장하는 바는, 인생이란 한번 사라지면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한낱 그림자 같은 것이고, 그래서 산다는 것에는 아무런 무게도 없고 우리는 처음부터 죽은 것과 다름없어서, 삶이 아무리 잔혹하고 아름답고 혹은 찬란하다 할지라도 그 잔혹함과 아름다움과 찬란함조차도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9쪽)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단 한 번뿐이라는 것, 영속성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반복되는 역사를 마주할 때 안타까움을 어찌할 수 없다. 1960년대 프라하를 떠올리지 않아도 종교와 이념을 포기하지 못해 일어난 전쟁의 무게는 얼마일지. 우리가 한 번만 살 수 있다는, 그 분명하고 명확한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존재의 경중을 떠나 존재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다. 설령 우리의 존재가 참을 수 없이 가볍다 하더라도 말이다. 살아 있는 동안, 존재 그 자체는 위대하다는 사실에 감동해야 하지 않을까.


역사란 개인의 삶만큼이나 가벼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가벼운, 깃털처럼 가벼운, 바람에 날리는 먼지처럼 가벼운, 내일이면 사라질 그 무엇처럼 가벼운 것이다. (358쪽)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망고 2023-10-21 1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읽어야지읽어야지 하면서 수년째 안 읽고 있어요 자목련님 글 읽고 또다시 읽어야지 하고 다짐하고 갑니다ㅋㅋㅋㅋ

자목련 2023-10-24 14:52   좋아요 1 | URL
저도 대학 때부터 시도했다가 멈추기를 반복, 이제서야 겨우 읽었습니다.
망고 님도 곧 만나시길 바라요^^
 
세계는 이렇게 바뀐다 - 제3회 박지리문학상 수상작
단요 지음 / 사계절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혼돈의 세상을 살고 있다. 삶의 기준은 무너지고 당장 오늘만 버티겠다는 생각이 만연하다. 혼란의 시대를 구원할 무언가를 기다린다. 구원자의 등장이거나 신의 계시가 있다면 믿고 따를 기세다. 그것이 무엇이든 상관하지 않을 것 같다. 단요의 장편소설 『세계는 이렇게 바뀐다』의 수레바퀴처럼. 그것은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다. 인간의 정수리에 동그란 수레바퀴가 떠올라 정의를 상징하는 청색과 반대의 부덕을 상징하는 적색 영역으로 이분된다. 모두가 각자의 정의와 부덕을 보여줄 수 있다. 청색을 지닌 채 죽음을 맞이하면 천국, 반대는 지옥이 결정된다.


수레바퀴의 등장으로 사람들은 변한다. 덜 쓰고 나누고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려고 한다. 그것은 진정한 마음일까. 아닐 것이다. 종교와 철학에 대한 관심은 늘어나고 수레바퀴의 지배를 받는다. 정의와 부덕을 누가 결정하는지 모른 채 사람들은 자신의 머리 위 수레바퀴에서 벗어날 수 없다. 보편적인 개념의 도덕과 정의는 시시때때로 바뀌고 범죄 이력이 없는 이의 수레바퀴에도 적색이 존재한다. 혼란을 기회로 삼은 이들은 곧 등장한다. 수레바퀴 컨설팅 회사다. 대학 입시처럼 정의와 부덕을 컨설팅하는 세상이라니.


‘나’는 수레바퀴가 출현한지 1년 되는 시점에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인터뷰하는 르포작가로 수레바퀴를 대하는 태도와 생각을 들려준다. 수레바퀴의 등장을 반기는 윤리학자, 수레바퀴에 적대적인 수학과 교수, 수레바퀴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불법 도박업체를 운영하는 재력가. 죄를 지은 이를 변호해야 하는 변호사는 직업을 포기해야 하는가. 작가는 소설의 형식을 빌린 토론의 장에 독자를 참여시킨다. 당신의 머리 위에 수레바퀴가 등장한다면 어떻게 행동할 거냐고. 이런 시대에 아이를 낳고 기를 수 있겠냐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소설과 어떻게 다르냐고.


자신이 정한 기준에 따라 살다가 지옥에 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가, 수레바퀴를 따라 청색을 유지하려 애쓰다 천국에 갈 것인가. 그렇다면 천국은 존재하는가. 여러 가지 생각이 몰려온다. 이 시대의 정의는 무엇이며 우리에게 정의를 구현할 의지가 있는가. 수치와 테이터로 모든 걸 표현하는 세상, 인간적인 감성이나 인간의 존엄성을 상실하는 시대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돌아갈 수 없는 과거를 추억하며 살 수도 없고 다가올 미래의 불안을 껴안고 사는 인간 군상의 모습.


우리는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시간이 완전히 잘려나간 시대에 살게 되었다고. 어쩔 수 없이 존재하는 사람들은 시간과 함께 서서히 사위어가는 중이라고. 음울하지만 조금은 낭만적이다. (169쪽)


내일은 오늘보다 초라할 것이고 모래는 다시 내일보다 볼품없을 것이다. (186쪽)


신선하고 기발한 발상이라고 감탄하고 치부할 수 없다. 극단적인 상상이라고 말하지도 모른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좋아질 거라는 믿음 대신 모든 게 망해가고 있다는 걸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작가는 살고 싶은 세계가 있다면 우리는 변화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저 상상을 조금 더해 우리 사회의 민낯을 보여주고 스스로 느끼고 깨우치기를 바란다. 정의와 도덕이 사라지는 시대, 청색과 적색 이분법적인 색의 등장은 아닐지라도 뭔가 바뀌어야 한다. 어쩌면 우리는 수레바퀴 같은 존재의 등장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의 미래가 유토피아는 아닐지라도 유토피아를 꿈꿀 수 있는 디스토피아이기를 말이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거리의화가 2023-10-18 11: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작년에 작가의 다른 소설 ‘다이브‘를 읽어본 적이 있어요. 오늘날 기후위기와 죽음, 의료에 대한 생각을 떠올리게 했는데 이 소설도 현재의 위기를 작가의 방식으로 보여준다 싶네요.

자목련 2023-10-20 18:01   좋아요 0 | URL
언급하신 기후, 죽음, 의료가 작가가 관심을 갖는 분야인 것 같아요.
작가의 시선 끝에 닿은 삶이 결코 소설에 국한 된 게 아니라는 게 서글프고요.

레삭매냐 2023-10-18 1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의와 도덕이 실종되었다는 말에
왜 이렇게 공감이 가는지요...

오늘보다 나을 내일 혹은 모레를 기대
하기가 난망하다는 현실이 오늘을 사는
이들의 비애가 아닌가 싶습니다.

아주 조금이라도...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이 필요한 시절
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자목련 2023-10-20 17:59   좋아요 0 | URL
소통은 단절되고 불통으로 향하는 미래가 무섭습니다.
어디선가 다른 형태의 수레바퀴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난주에는 노벨문학상 발표가 났다. '욘 포세', 처음 듣는 작가였다. 당연 그가 어떤 소설을 썼는지 몰랐고 검색을 하니 몇 권의 책이 나왔지만 그게 다였다. 나에게는 그랬다. 대형 출판사에서 곧 그의 작품이 출간될 것 같다. 해마다 10월이면 노벨문학상의 수상자가 누굴까 궁금하고 온라인 서점의 투표 이벤트에 참여하곤 했지만 어느 해부터 시들해졌다. 기회가 닿으면 나와 만날 것이고 그렇지 않아도 괜찮다는 생각이다. 세상에 작가는 많고 그만큼 소설도 많고 내 책장에도 적지 않는 책들이 많다.


그렇다고 책을 안 산 건 아니다. 단출하게, 두 권. 10월에 세계적으로는 노벨문학상 발표가 있지만 지난 8월에는 김승옥문학상 수상 발표가 있었다. 올해의 수상자는 권여선. 내 일처럼은 아니지만 좋아하는 작가의 수상 소식을 듣고 나는 맘껏 기뻐했다.


소설집 『각각의 계절』에 만났던 「사슴벌레식 문답」이다. 읽었지만 다시 읽으면 더 반갑고 좋을 것이다. 거기다 작가노트가 있으니까. 권여선의 단편뿐 아니라, 손보미, 백수린, 최은미를 비롯한 여러 작가의 단편과 작가노트, 문학평론가의 리뷰도 만날 수 있다. 좋아하는 작가의 단편을 읽는 가을,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단요의 소설은 처음이다. 『세계는 이렇게 바뀐다』는 박지리 문학상 수상작이다. 작가 검색을 해보니 2022녀부터 활동을 시작한 작가로 앞서 『개의 설계사』로 2023 문윤성 SF 문학상 장편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잠깐 장강명이 떠올랐다. 단요란 이름을 자주 볼 수 있겠구나 싶다.


쓸 때에도, 살 때에도 나는 희망이 행복과는 별 관계가 없다고 느낀다. 희망은 오로지 시간과 관계하며 그리하여 결국 의미와만 관계한다. 의미의 그물이 성기거나 찢겨 아무 내용도 건져올리지 못할 때 나는 절망한다. 그렇게 내가 절망하고 있을 때 뒤집힌 사슴벌레가 결정적인 그물코를 내놓았고, 나는 그걸 받아 미친듯이 들락날락 우왕좌왕하며 한 코 한 코 기워나갔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이 소설에서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 알 수가 없다. 다행히 그건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 (권여선, 작가노트 중에서)


가을은 깊어가고 차가운 공기에 몸이 반응한다. 친구는 독감예방접종을 하지만 나는 독서 주사를 맞아야겠다. 긴 연휴의 탓인지 책은 뒷전이었던 날들, 이제는 단편의 즐거움에 빠져보리라. 작가노트 대신 리뷰를 쓰려면 얼른 읽어야지. 어서!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4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독서괭 2023-10-12 15: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독서주사!! 좋은데요 ㅋㅋ 저도 딱히 노벨문학상 수상했다고 읽게 되지 않는 것 같아요. 더구나 이번 작가는 취향이 아니라는 분들이 여럿 보여서..

자목련 2023-10-14 11:29   좋아요 2 | URL
노벨문학상은 인연이 되어야 읽게 되는 것 같아요. 책장에 읽지 않은 수상작도....
건강하고 즐거운 독서주사, 맞아보아요!

페넬로페 2023-10-12 17: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권여선 작가 좋아하는데 읽고 싶어져요.
좋아하는 작가가 수상해서 기분이 좋아요.

노벨문학상을 받았다는 것은 그만큼 또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서 한 권정도는 읽어보려해요.
재작년에 새로 만난 구르나 작가의 작품이 좋았거든요^^

자목련 2023-10-14 11:30   좋아요 2 | URL
저도 권여선 작가의 수상이 정말 반갑고 좋았어요.
수상 발표 후 바로 읽으신 분들도 많더라고요. 저도 기회가 되면 만날 수 있겠지요^^

망고 2023-10-12 17: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각각의 계절 사놓고 아직 안 읽었는데 얼른 읽어야 겠어요ㅜㅜ 나름 아껴 읽고 싶은 마음에^^ 책장에 잘 모셔두고 있었는데 벌써 가을이 왔네요ㅋㅋㅋㅋ

자목련 2023-10-14 11:31   좋아요 1 | URL
나름 아껴 읽고 싶은 마음, 알아요!
리뷰 잘 쓰고 싶어 결국은 쓰지 못하는 ㅎㅎ
이 가을, 권여선의 단편과 즐겁게 보내세요^^

책읽는나무 2023-10-12 21: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권여선 작가님이 받으셨군요?
권작가님 축하드립니다.
보시려나요?ㅋㅋㅋ
독서주사! 오....미리 건강해지는 느낌입니다^^

자목련 2023-10-14 11:32   좋아요 2 | URL
아프지 않은 독서주사, 마음의 양식을 맘껏 취할 수 있기를 바라는데..
여전히 소파에서 뒹굴거립니다. ㅎㅎ

yamoo 2023-10-13 17: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욘 포세...저도 첨 듣는 작가라 어떤 작품일지 대표작은 일어봐야 겠다싶어 주문을 했는데 기다려야 하네요..ㅎㅎ

권여선 작가가 받았군요. 근데 박지리 작가는 누군지...이름을 딴 상까지 있네요..2010년 무렵부터 한국소설은 안 읽는지라 누가 무슨 상을 받고...화제의 책이 뭔지 전혀 몰라요. 문학의 경우 외국 작가들의 검증된 책을 읽기도 너무 벅차요. <나는 고백한다>와 같은 작품을 읽으면 한국 작품 읽는 건 정말 시간 낭비 돈 낭비처럼 여겨져요...문학에서는 한국은 여전히 아프리카 문학보다 못하다는 생각이에요. 미술과 문학은 정말 세계의 주변부를 벗어나지 못하는 듯해요. 안타깝지만 어쩔 수가 없어요..^^;;

자목련 2023-10-14 11:38   좋아요 0 | URL
욘 포세의 대표작, 주문하셨군요. 즐겁게 만나시길 바라요.
박지리 작가는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난 작가로 팬들이 많은 것 같아요. 박지리 작가의 소설을 아직이에요. 언급해주신 <나는 고백한다>는 서재를 통해 읽어봐야지 하는 소설입니다. 말씀처럼 어떤 소설은 책값이 아깝기도 하지요. 다양한 문학의 세계를 경험하는 일이 필요한 것 같아요.

은오 2023-10-13 20: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번에 민음사에서 욘 포세 작품이 바로 나왔더라고요. 어쩜 타이밍도 ㅋㅋㅋㅋㅋ
사슴벌레식 문답! 각각의 계절 읽었는데 반갑네요. ㅎㅎ
독서주사 ㅋㅋㅋㅋㅋ 좋네요!! 저도 그럼 자목련님 따라서 독서의 계절에 독서 주사 1차 2차 5차 10차 열심히 맞겠습니다 ㅋㅋㅋㅋ 😆

자목련 2023-10-14 11:39   좋아요 2 | URL
민음사의 타이밍^^
어떤 부작용도 없는 독서주사, 열심히 맞은 은오 님의 독서기록 기대하겠습니다!!
 
지구 파괴의 역사 - 과학자의 시선으로 본
김병민 지음 / 포르체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매일 소비를 한다. 물을 마시고 커피를 마시고 스마트폰을 쓰고 TV를 시청한다. 따지고 보면 부족한 게 없는 삶이다. 그런데도 좀 더 편한 삶, 좀 더 안락한 삶을 원한다. 불편했던 과거에 대한 그리움은 잊지만 정작 돌아갈 수 있다고 한다면 돌아감을 선택하는 이는 얼마나 될까. 나 역시도 선뜻 그렇다고 답을 할 수 없다. 나의 삶이, 거창할 것 업는 나의 소비가 지구를 파괴하는 게 크게 일조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큰 차는 물론이고 명품도 없으니까. 과연 그럴까?


화학공학자 김병민의 『지구 파괴의 역사』를 읽으며 확인했다. 지구에 사는 우리 모두는 날마다 지구를 파괴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오래전 인류가 시작되면서 성장하고 발전하는 내내 그러했다는 것을 말이다. 그저 외면하고 아직은 괜찮다고 여기며 살다가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게 현재 인류의 모습이라는걸. 그러니까 '지구 파괴의 역사'는 인류가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며 살아온 역사이자 욕망의 결과라는 것이다.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기업은 ESG(친환경, 사회적 책임 경영)을 외친다. 소비자도 착한 소비를 하려고 노력한다. 지속 가능한 삶에 동참하고자 재활용품을 위한 분리수거를 한다. 입지 않는 옷은 의류 수거함에 넣으면서 그 옷이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거라 여기며 안도한다. 쓰레기가 아니니 괜찮다는 생각은 괜찮을 걸까. 우리나라가 헌 옷 수출국 5위라는 사실에 놀랐다. 개발도상국에서 그 옷이 모두 주인을 찾는 게 아니라는 것, 낡아서 버리는 게 아니라 많아서, 마음에 들지 않아서 버리는 일상.


눈앞에 쌓이는 게 보이면 괴롭고 불편하지만 녹색 의류 수거함에 고민과 의식을 같이 넣는 것은 주저하지 않는다. 몸에 들어오는 미세 플라스틱은 걱정하면서 그 주범이 우리 자신임은 인식하지 않는다. 우리가 깨끗해지면 지구는 더러워진다. (62쪽)


올여름 폭염의 대가는 전기세 폭탄이었다. 어쩌겠는가 당장 더운데 당장 시원한 바람이 필요한 것을. 저장할 수 없는 전기. 대체 에너지로 적합한 것은 무엇일까. 지구 표면 절반을 덮고 있는 물에서 얻을 수 있는 수소, 저자의 언급대로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많지 않으니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놀랍고도 흥미로운 점은 인류 역사가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기술과 과학을 발전으로 더 좋은 쪽으로 가야 하는데 전쟁은 멈추지 않고 원인을 찾을 수 없는 질병으로 발생하는 인명 피해. 과학을 발달로 인해 밝혀낸 로마의 멸망 원인이 기후 변화와 신종 감염병으로 인한 결과라는 것. 로마의 도시화와 개발이 전염병을 확산시키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했을 정도니 얼마나 많은 이들이 로마로 모여들었을지.


우리는 이미 메시지를 충분히 받고 있다. 메신저는 지속적으로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우리가 무시할 뿐이다. 깨닫지 못할 인간을 위해 자연이 메신저로 직접 나서고 있지 않은가. 절대 자연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그 메신저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자연에서 인류가 사라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201쪽)


자연과 함께 공생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 우리는 왜 자꾸만 자연을 파괴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환경을 지킬 수 있는 과학 발전은 가능한 것일까. 과학자가 아닌 나는 잘 모르겠다. 다만 우리가 개발한 플라스틱은 세제에 남아 우리 몸에 흡수되고 바다에 흘러 생명체(물고기를 비롯한)에게 고통을 남기고 생명체는 인간에게 돌아온다. 지난 8월 24일 일본이 방류를 시작한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도 그렇지 않은가.


인간은 자신이 그저 지구라는 행성에 속한 여러 부족 중 생명체, 그리고 그 안에서도 일부 종에 지나지 않는다는 인식을 해야 한다. (311쪽)


나의 하루를 생각한다. 나의 소비를 돌아본다. 잠시 멈춤으로 살아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소유한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걸 인정하고 살아야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 인생은 훨씬 크고 장엄하고 고귀한 것이다. 나 하나는 세계의 최소 단위이자 세계의 모든 것이기도 한 존재다. 희망의 단서端緖인 나 하나를 지켜내야 한다. 그렇게 서로를 알아보고 경외하고 함께 걸어가는 용기를 내야 할 때이다. 척박한 광야에서도 작은 올리브나무 하나가 스스로 뿌리를 내리고 살아남으면, 그러면, 나무는 나무를 부르고 숲은 숲을 부르며, 다시 천 년의 사랑이 시작된다. 이런 시대에 작은 올리브나무 같은 나 하나로부터 우리 삶을 지키는 푸른 방패가 되고 소리 없이 세상을 지탱하는 푸른 기둥이 되어갈 것이니. 여기 천 년의 올리브나무 아래 기대어 그대 안의 신성한 빛과 강인한 빛을 길어 올리기를. (11쪽, 「서문」 중에서)


오래된 나무를 보면 경건해진다. 그 나무가 품은 시간을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그냥 거기 나무가 있구나, 꽃을 피우면 예쁘고 열매를 맺으면 고마웠다. 언제부터였을까. 한자리에서 뿌리를 내리고 움직일 수 없는 시간을 살아내는 일의 고단함과 위대함을 깨닫게 된 게. 거대한 자연 곁에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그들이 인간을 지켜보고 있다고 느끼면서다.


박노해의 포토 에세이 『올리브나무 아래』에서 그런 마음이 쌓여 인간을 어루만지는 사진을 만났다. 팔레스타인,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 등에서 담은 37장의 사진. 제목 그대로 이 사진집은 올리브나무를 만날 수 있다. 아름다운 풍경은 아니다. 눈물과 고단함을 품은 나무와 삶이 있다. 올리브나무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 올리브나무의 그늘에서 휴식을 취하고 올리브나무를 사랑하고 섬기는 사람들. 어쩌면 토속 신앙처럼 보이기도 하는 몸짓들, 그러나 그 안에 담긴 간절한 바람과 기도를 생각하면 그게 무엇이든 상관없다는 걸 알게 된다.





사진집을 펼치며 마주한 첫 번째 사진. 올리브나무가 품은 시간은 과연 얼마일까. 그 시간은 어떻게 흘러갔을까. 나무와 인간의 시간은 과연 같은 것일까. 자꾸만 질문이 생긴다. 그러면서 가만히 사진을 매만진다. 마치 올리브나무의 숨결을 느낄 수 있을 것처럼. 그러데 올리브나무뿐일까. 인간 곁에서 인간과 공존하며 살아가는 식물과 동물은 얼마나 많은가. 어리석은 인간만이 그 놀랍고도 귀한 사실을 잊은 채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나는 올리브나무가 바라본 풍경을 알지 못한다. 올리브나무가 어떻게 자랐는지 알지 못한다. 어떤 바람과 어떤 고난과 함께 성장하고 살아가는지 알지 못한다. 그저 시인의 글귀를 따라 올리브 나무와 사람들을 생각할 뿐이다. 올리브나무처럼 남은 사람들, 올리브나무처럼 서로가 서로를 떠받치는 사람들을 말이다.


한때는 올리브 숲이었으나, 세월이 흘렀다. 거친 바위 산에서 살아남은 올리브나무 세 그루. 누가 보아주지 않아도 자신의 자리에서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서 있는 저 나무들은 세상을 떠받치는 기둥처럼 굳건하다. 사람은 나무와 같아서, 자신이 그런 줄도 모른 채 하나의 비밀스러운 기둥이 되어 이 세상을 지탱하고 있는 그런 사람들이 있다. (30쪽)


인간의 잔혹한 손길에 잘려나가고 파괴되고 무너졌을 모든 것. 시인이 마주한 풍경은 그런 것이었다. 그러나 그 안에서도 시인의 시선을 붙잡은 건 올리브나무 가지에 담긴 애도였다. 전쟁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전쟁이 끝나는 순간에도 삶은 이어진다.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그렇게 살아남고 살아간다. 처절하게 소리치고 울부짖는 대신 기도를 경전을 읽고 기도하는 사람들. 그들의 죽음을 누가 허락했단 말인가. 이 한 장의 사진을 전쟁을 끝내지 못하는 이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당신들에게 전쟁은 무엇이냐고 묻고 싶다. 누구를 위한 전쟁이냐고. 그 죽음은 누구를 위한 것이냐고.


전쟁보다 더 무서운 것은 전쟁 그 후이다. 파괴는 한순간이지만 재건은 긴 가난과 노동이고, 죽은 자는 산 자의 가슴에서 매일 다시 죽는다. 살아남은 이들은 마을 묘지를 조성해 올리브나무 가지를 바치며 경전을 읽고 기도한다.

“죄 없이 죽은 자는 높은 자리에 있으리라.”

신의 손길을 대신하듯 올리브나무 가지가 차가운 묘지를 푸른 숨결로 어루만진다. (80쪽)





그럼에도 주어진 삶을 감사하며 살아가는 이들.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사람들. 그들이 바치는 감사와 기도 앞에 나도 두 손을 모은다. 항상 부족하다고 불평하며 살았기에 부끄럽다. 하루를 마치고 내일을 맞이하는 일을 당연하게 여기는 우리는 감사를 잃어버린 사람들이다. 하나하나 따지지 않아도 모든 것이 감사한 일뿐이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알 자지라 신화에서 창세기로 전해진 노아의 방주 이야기. 노아는 비둘기가 올리브 새잎을 물로 오는 것을 보고 홍수의 시대는 끝났으며 새로운 삶을 시작할 때임을 알았다. 이로부터 올리브 가지를 문 비둘기는 평화의 상징이 되었다. 전란의 땅에 노을이 물들고 오늘도 긴 아잔 소리가 울릴 때 하루 일을 마친 농부는 올리브나무 사이에서 기도를 바친다. 파괴된 대지에 가장 먼저 피어났던 저 올리브 새싹처럼. 사무치는 마음으로 삶에 대한 감사를 드린다. (92쪽)





어떤 이들은 그들의 삶은 그들에게 속한 것이니 자신과는 상관없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분쟁과 전쟁은 우리의 일이 아니라고. 반복되는 역사 앞에서 재생되는 삶의 폐허, 우리는 무엇을 바라보며 살아야 할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축소되고 세상과의 단절은 더욱 확대되는 세상.


박노해 시인은 사진을 통해 묻는다. 편리함이 모든 걸 지배하는 세상 속에서 우리가 붙잡아야 할 것은 무엇이냐고. 우리가 스스로 나무가 되어야 한다고 말이다. 내 안의 나무가 들려주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라고. 올리브나무 하나가 내게로 와 가만히 옆에 선 느낌이다. 눈과 마음을 보는 사진들, 오래 담아두고 싶다.





이 가을, 박노해 시인의 에세이를 읽으며 올해 남은 날들을 헤아려도 좋겠다. 바쁘면서도 뭔가 이루지 못해 늘 아쉽고 불안한 시간, 정작 무얼 위해 살고 있는지 생각한다. 멈추지 않는 전쟁, 나는 괜찮다는 부끄러운 안도, 삶은 무엇으로 채워지는지 누군가 내게 알려주면 좋겠다. 인간이 인간을 파괴하는 세상, 희망은어디에 있을까. 그럼에도 우리가 기댈 존재는 내 곁에 있는 인간인 것일까.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얄라알라 2023-11-20 0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늦게 읽었네요^^;;
자목련님 축하드립니다

저도 마침 어제 벵갈고무나무가 10m는 크게 가로수로 서 있는, 비현실적인 꿈을 꾸었던 터인지라 자목련님 말씀하신 ‘경건함‘이 뭔지 조금 알 것 같습니다. 꿈 속에서 저도 그 나무가 너무나 신기해서 계속 봤거든요

자목련 2023-11-20 11:38   좋아요 1 | URL
얄라 님, 감사합니다.
크고 웅장한 나무가 가로수로 있는 길, 그 길에서는 경건하고 신비로운 삶을 마주할 것 같아요.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상상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