튜브, 힘낼지 말지는 내가 결정해 카카오프렌즈 시리즈
하상욱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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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쾌지수가 최고다. 더위를 제법 잘 견딘다고 생각했던 나는 어제의 나일뿐이다. 오늘의 나는 더위가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고 바란다. 읽는 일도 힘들다. 그래도 읽어야 한다면 무슨 책을 펼쳐야 할까? 아무 생각 없이 웃을 수 있는 그런 책, 만화책도 좋고 그림책도 좋고 화가 나면 미친 오리로 변신하는 튜브가 등장하는 카카오 프렌즈 시리즈『튜브, 힘낼지 말지는 내가 결정해』란 제목의 책도 좋겠다. 읽는 일에 방점을 찍지 말고 순간적으로 꽂히는 부분에 방점을 찍는다고 하면 맞을까?

 

신기하게도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그림도 보고 아주 하상욱의 짧은 글을 읽다 보니 마음이 좀 누그러지는 듯하다. 마음이란 건 이처럼 변덕이 심하다. 다 아는 말, 한 번쯤 경험했던 감정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다르게 다가오는 것처럼 말이다. 말장난이나 언어유희로 여겨지는 부분도 있지만 하상욱의 기발함이 마음을 휘두르는 부분도 많았다. 하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다르니까. 이 책에서 중점적으로 다루는 타인과의 관계, 갈등에 대한 조언도 그러하다.

 

누군가의 비밀을 지키는 이유는

비밀을 지키고 싶어서가 아니지.

그 사람을 지키고 싶기 때문이지. (38쪽)

 

비밀을 나누는 사이는 굳건한 믿음이 전제조건이 되어야 한다. 비밀이라면서 말을 건네는 쪽은 상대를 믿기에 그럴 수 있고 그 말을 받은 이는 사실 그 비밀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그러니 어느 순간 지킬 수 없는 마음으로 변해버릴 수도 있다. 비밀이라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중요하다는 사실. 나를 지키고 싶어 하는 이는 얼마나 될까? 반대로 내가 지키고 싶은 이는 누구일까?. 비밀이라면서 말을 건네는 쪽은 상대를 믿기에 그럴 수 있고 그 말을 받은 이는 사실 그 비밀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그러니 어느 순간 지킬 수 없는 마음으로 변해버릴 수도 있다. 비밀이라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중요하다는 사실. 나를 지키고 싶어하는 이는 얼마나 될까? 반대로 내가 지키고 싶은 이는 누구일까?

 

 

나와 이어진 이들을 떠올린다. 친구, 이웃, 동료. 관계를 맺는 일은 어렵다. 아니, 관계를 지속하는 게 더 어렵다. 나이가 들수록 조심스러워지는 부분이다. 휴대전화에 저장한 이름이 줄어드는 게 이상하지 않다. 싫은 사람과 관계를 이어가면서 감정을 소모하는 일은 상대에게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하상욱의 말처럼 싫은 사람과 잘 지내는 일은 서로 안 보고 사는 것이다. 싫은데 그걸 감추고 좋은 척하면서 만날 필요는 없다.  좋아하는 사람만 보고 살아도 충분하니까. 지키고 싶은 사람만 말이다.

 

좋은 말을 들었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좋은 방향으로

바뀌지는 않더라구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더 좋은 사람이 되려고 행동했다면,

 

당신이 좋은 사람이기 때문이겠죠. (145쪽)

 

어디선가 이런 말을 들을 적이 있다. 나를 움직이게 하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고. 좋아하는 이가 싫어하는 일을 하지 않는 일, 그게 뭐 어렵냐고 하겠지만 나를 변화시키는 일이기에 어려운 것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좋은 사람(좋은 엄마, 좋은 상사, 좋은 친구, 좋은 사람)의 틀에 갇힐 필요는 없다. 단 사람만을 위한 변화만으로도 괜찮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소망처럼 어리석은 게 있을까?

 

당신이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

 

당신이 모든 사람을

실망시킬 수도 없다. (240쪽)

 

관계의 시작과 끝을 결정하는 건 바로 자신이다. 세상을 사는 일이 다 그렇듯 말이다. 누군가의 질책, 조언을 어떻게 흡수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그러니 함부로 충고나 위로의 말을 하지 말고 넣어두었다가 상대가 도움을 청할 때, 의견을 구할 때 말해도 늦지 않다. 마음이 급하다면 슬그머니 이 책을 내밀어도 괜찮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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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로 보는 세계사 - 문명.기근.전쟁
야마모토 노리오 지음, 김효진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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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를 좋아한다. 은은한 보랏빛의 꽃을 피우는 것도 좋고 캄캄한 땅속에서 열매를 맺고 키우는 일도 대견하다. 어디 그뿐인가. 감자는 맛도 훌륭하다. 감자와 당근과 양파만 넣어도 맛있는 카레를 만들 수 있다. 사실 나는 감자튀김과 찐 감자도 잘 먹는다. 그런데 한 단 번도 감자가 어디서 왔는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내가 즐겨 먹고 쉽게 구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의 근원에 대해서 그러했듯이 말이다. 감자에는 솔라닌이라는 독이 있어 조심해야 한다는 정도만 기억할 뿐이다. 감자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된다면 감자를 더욱 소중하게 다룰 것 같다.

​야마모토 노리오의 『감자로 보는 세계사』는 제목 그대로 감자와 함께 살아온 인류에 대한 이야기할 할 수 있다. 책에 의하면 감자는 역사학자나 고고학자에게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고 한다. 인류의 생존은 곡류를 중심으로 이뤄졌다고 여긴 것이다. 감자를 먹기 시작한 곳은 어디일까? 가짓과 가지 속 식물인 감자(사실 처음 알았다)는 안데스산맥이 고향이라고 한다. 중앙 안데스 고지가 감자가 탄생할 수 있는 환경 조건(비가 자주 오는 우기와 비가 거의 오지 않는 건기)이 충분했다. 하지만 감자에 독이 있어 먹을 수 있게 만들어야 했다. 널어놓고 수일간 방치한 감자를 짓이겨 수분이 나오지 않을 정도가 되면 다시 수일간 방치한다. 이 과정에서 독이 없어지는 것이다. 말린 감자 ‘추뇨’는 감자 재배를 통해 먹거리를 만들었다는 증거가 된다.

안데스에서 시작된 감자는 스페인에서 최초 기록으로 등장한다. 이를 통해 유럽에 전해진 건 1565부터 1572년 사이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감자에 대한 편견으로 프랑스에서는 하층 계급의 음식이었다. 이 부분에서 고흐의 <감자 먹는 사람들>이 떠오른다. 기근으로 인해 감자가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하자 재배 보급을 힘을 썼고 감자밭에 보초를 세워 감자가 귀한 것이라는 인식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래서 유럽에서는 전쟁이 일어날 때마다 감자가 전파되었다. 감자와 전쟁의 조합이 쓸쓸하지만 영국의 대표 음식이 피스 앤드 칩스인 걸 생각하며 감자의 영향력이 대단했음을 인정하게 된다. 아일랜드의 경우도 흥미롭다. 영국의 식민지나 다름없는 상태였기에 보리를 재배했던 소작 농가는 지대를 지불해야 했지만 감자는 아니었다. 그래서 쉽게 감자를 재배할 수 있었고 주식처럼 감자를 먹었다. 아일랜드의 힘든 시절을 감자와 함께 견딘 것이다.

유럽을 지나 감자는 네팔 히말라야의 셰르파의 식생활에 주요 식자재가 되었고 중국, 러시아, 인도는 주요 생산국이다. 에도 시대에 감자가 전래된 일본은 마, 토란 같은 덩이줄기의 식물이 익숙했기에 편견 없이 정착하였다. 일본에서는 감자를 보존하는 특이한 방법을 소개한다. 감자녹말의 생산과 얼린 감자로 보존하는 것이다. 추뇨를 만들 때처럼 감자를 노지에 내놓고 이리저리 뒤집어 얼린다. 언 감자의 껍질을 벗긴 후 흐르는 강물에 2~3일 담근 후 꼬챙이에 꿴다. 충분히 말려서 일주일 정도 물에 담갔다가 언 상태로 3개월 방치 후 자연 건조한다. 시간과 정성이 놀랍다. 그 감자로 만든 요리의 맛은 어떨까.

​감자가 지닌 독과 녹말 성분 외에는 다른 영양소가 없다는 편견에 저자는 밥과 파스타류와 찐 감자의 영양가를 비교할 정도다. 열랑도 충분하고 비타민C와 칼륨도 충분하다는 설명을 더한다. 남겨지는 음식이 많은 시대를 살아가지만 과거 역사 속 기근은 지구 곳곳에서 마주하는 현실이기도 하다. 그러니 저자가 감자를 통해 세계 식량 문제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밀, 옥수수 등의 곡물 가격 급등으로 식량 공급에 불안이 커진 지금이야말로 과거의 교훈을 되새겨 식량원으로서 커다란 가능성을 지닌 감자류의 장점을 돌아보고 미래를 대비해야 할 시기가 아닐까. (233쪽) ​

​책을 읽으면서 감자의 고단한 여정을 느낀다. 고향인 안데스를 떠나 우리 곁으로 와 줘서 고맙고 이렇게 맛있는 감자를 먹을 수 있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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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19-08-04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션에서 마크 와트니도 감자를 심잖아요 한국도 예전에 먹을 게 없을 때 많이 먹지 않았을까 싶어요 한국에는 감자가 언제 들어왔을까요 꽤 오래전일지도 모르겠네요 한국 땅에 맞는 감자가 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희선

자목련 2019-08-08 10:16   좋아요 1 | URL
네, 영화 생각도 났어요. 토양에 맞게 변화하는 감자, 모든 게 그러하겠지만요. ㅎ
 

 

어제 새벽부터 폭우가 내렸다. 빗소리에 잠에서 깨어 창문을 닫았다가 열기를 반복했다. 제대로 잠을 잤다고 할 수 없으니 하루가 몽롱하고 기운이 없다. 예상했던 장맛비는 예상대로 흠뻑 내렸다. 아니, 흠뻑이 아니라 쏟아부었다. 입맛도 살짝 사라졌는지 도통 떠오르는 음식이 없다. 식은 카레의 노란색은 더 이상 빛나지 않고 냉커피만 연식 마신다. 일기예보가 맞는다면 내일이나 모레까지 비는 계속 내릴 것이다. 나의 몽롱함도 그때까지 지속될지도 모른다.

배롱나무의 꽃이 피기 시작했다. 언제 어느 가지에서 먼저 꽃이 시작되었는지 몰랐는데 사진으로 보니 오른쪽부터 피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올해는 작년보다 빨리 꽃을 보여주는 것 같다. 하긴 자귀나무의 화려한 꽃은 한참 전에 사라졌으니 배롱나무의 꽃이 눈에 들어오는 게 당연한 걸까. 봄에 만난 친구는 배롱나무꽃이 필 때 다시 만나자 했는데 우리의 만남은 아직 미정이다. 하나의 계절이 꽃으로 연결되고 누군가와의 만남이 꽃 필 무렵으로 이어지는 건 참 낭만적이다. 우리의 현실이 낭만적이지 않기에 그럴지도 모르고.

 

 

경비실의 지붕이라고 해야 맞을까. 지붕 위에 농구공은 언제 주인과 이별한 걸까. 바람이 빠져서 홀로 외롭게 있는 걸까. 언제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걸까. ​문득 외롭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의지로 구르지 못하는 공이라니. 그러다 화분을 집으로 알고 온전히 그 안에서 성장하고 살아가는 나무를 생각한다. 내가 한 번씩 안녕이라는 말을 건넬 뿐 다정한 말은 들려주지 않고 비정기적으로 물을 주는데도 해마다 꽃을 피우고 잎을 키우고 자란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모습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그러다 한계를 느끼고 성장을 멈추고 소멸하는 나무도 있다. 자신의 의지로 할 수 있는 일과 그렇지 않을 일 사이에서 고민하지 않고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는 나무.

7월에는 읽는 일에 최선을 다하지 않고 있다. 어디 읽는 일뿐이랴. 날씨와 저질 체력을 핑계로 삼다가 지금 읽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나중에 읽으면 왜 안 되는가, 묻기까지 한다. 나의 물음을 들은 책이 나를 가소롭게 여기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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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7-26 1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7월에는 역시 배롱나무죠.

자목련 2019-08-02 15:53   좋아요 0 | URL
레삭매냐 님의 이런 댓글 좋아요!!
연분홍과 연보라 꽃을 피운 배롱나무를 보는 8월, 건강하게 보내세요^^*
 
광대하고 게으르게
문소영 지음 / 민음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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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으로 향하는 통로는 다양하다. 누군가는 언론을 선택하고 누군가는 영화를 선택하고 누군가는 개인 블로그를 선택하며 내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통로로 세상을 읽고 말한다. 누군가는 통로를 차단하는 방법을 선택한다. 어떤 것이 좋고 나쁨을 떠나 그것은 취향의 문제라 말한다. 통로를 통해 접하는 것들이 하나의 삶을 완성시키는 것은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가장 크고 넓은 통로는 책이다. 책을 통해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고 사회현상을 관찰하고 나의 감정을 진단한다. 알지 못했던 진실과 방관하고 싶었던 이슈를 향해 마음이 이동한다. 문소영의 『광대하고 게으르게』는 닫혔던 통로를 열게 만들고 더 앞으로 나가게 만드는 힘을 지녔다. 적어도 내게는 말이다. 사실 예술, 문화, 사회에 대해 자신의 일상과 사유를 접목시키는 글은 많다. 문소영의 글이 특별하게 다가오는 건 자신의 의견과 생각의 바탕이 되는 근거를 정확하게 설명하면서 어떻게 하면 상대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는지 아는 영리함이라고 할까.

 

저자는 ‘게으르게’, ‘불편하게’, ‘엉뚱하게’, ‘자유롭게’, ‘광대하게’, ‘행복하게’, 6개의 주제로 나누어 42개의 글을 통해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주제부터 읽어도 상관없다. 어쩌면 6개의 키워드는 우리 사회에 가장 필요한 게 아닐까 싶다. 빨리빨리를 외치며 획일적인 사고를 강요하는 사회임을 부정할 수 없으니까. 그래서 조금 느리고 천천히 나를 발견한 예술가(윤석남, 박완서, 에드워드 호퍼, 세잔)의 이야기는 왠지 모르게 서글프면서도 용기를 불러온다. 내 안의 뭔가를 깨워도 괜찮다는 생각, 게으르면 어때?

 

게으름에 대한 새로운 해석으로 들리기까지 하니 나는 부지런보다는 게으름을 택할지도 모르겠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백배 천배 낫잖아. 그런 의미에서 불편하게나 엉뚱하게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주변에서 일어난 사건 사고에 분노한다. 그러나 뉴스와 기사를 클릭할 뿐 댓글을 다는 이는 소수에 불과하다. 불편하다는 이유로 그 불편함에서 멀어지려 한다. 저자는 아름답고 평화로운 도시를 유지하기 위해 무고한 아이가 끔찍한 불행 속에 살아야 하는 이야기, 어슐러 르 권의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를 통해 우리의 현실을 투영한다. 조직과 나라의 위상을 위해 누군가(피해자)의 희생을 강요하는 일은 정말 사라져야 할 일이다. 불편함을 바로잡기 위해 불편함을 수면 위로 드러내는 것, 변화를 위해 우리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사회적 통념이라는 틀안에 갇힌 것들에 대한 저자의 시선은 유연하면서도 완고하다. 최근 심각하게 증가하는 청소년 문제와 스토킹과 데이트 폭력, 왕따를 영화로 접목시켜 들려주는데 뜨겁게 다가온다. 범죄자의 엄마로서 그 책임을 다하면서도 맹목적이 사랑을 전하지는 않는 영화 「케빈에 대하여」에서는 모성의 다양성을 언급한다. 일방적인 사랑을 무조건 아름답다 여겼던 과거에서 벗어나 그것이 주는 비뚤어진 욕망을 「돈키호테」속 에피소드로 연결해 현실을 직시할 수 있도록 설명한다. 세상이 변함에 따라 통념도 바뀌어야 한다는 걸 현실에서 체감하지 않았냐고 묻는 것이다.

 

엄마와 자식의 관계는 가장 원초적인 인간관계다. 설령 미래에 결혼제도가 사라진다 해도 존속될 것이다. 그래서 모성의 진화와 그에 대한 탐구는 계속되어야 한다. (117쪽)

 

그러니 하나의 기준만을 고집하지 말아야 한다. 편협한 사고에서 벗어나야 하고 시선을 확장시켜야 한다는 말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고 집을 장만하는 게 보편적인 인생이라 여기고 강요하지 말라는 거다. 언제 강요했냐고 따지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가만 생각하면 옆집 누구, 엄마 친구 누구, 친척 누구로 시작해서 명절이면 어른이라는 쓸데없는 귄위를 내세워 강요를 쌓아가는 모습이 떠오른다. 상대의 생각을 존중하는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으니 그냥 있는 그대로만 바라보라고 말하는 말은 그동안의 나를 부끄럽게 만든다.

 

그냥 다 같이 나대고 다 같이 잘난 척하면 안 될까? 서로의 나댐, 서로의 잘난 척을 관용하면서 ‘나도 잘나고 너도 잘났어.’. ‘아, 나 특이해. 어, 너도 특이해.’의 마인드로 산다면 우리 사회는 훨씬 열려 있고 다양하고 여유로운 사회가 되지 않을까? (166쪽)

 

우리는 한 번씩 쉽게 내뱉는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아이들에게 진로를 결정하는 청년들에게 용기와 격려라는 말로 뭐든 할 수 있다고 말이다. 그런 말들이 당사자에게는 얼마나 부담스러운 멍에로 남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을까? 좋은 의도라고 해서 무조건 수용하고 받아들여야 할 의무는 없다. 사회 곳곳의 고민과 어려움을 자상하게 들여다보는 저자의 따뜻하면서도 날카로운 시선을 느낀다. 그 시선이 궁극적으로 전하고 싶은 건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자신이 추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말이다. 산다는 건 불편하고 힘든 일 투성이며 자주 무너진다는 걸 알면서도 힘을 내자는 거다. 진심으로 사랑하며 지켜봐 주고 아름답게 기억되기를 바라는 작은 소망처럼.

 

기억되는 것, 그건 결국 사심 없는 사랑만이 받을 수 있는 사랑의 보답일지도 모른다. (275쪽)

 

나의 시선은 책을 읽기 전과 달라졌을까? 당당하게 답할 수 없지만 조금은 그렇다 말하겠다. 그리고 상상한다. 세상을 향한 통로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세상을 향했으니 세상이겠지만 그 길에는 다채로운 삶이 가득하다. 다양한 삶이 어우러져 만드는 다채로운 삶을 그린다. 나의 시선이 닿는 그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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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기 좋은 이름
김애란 지음 / 열림원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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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문장을 읽다 보면 이상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글쓴이와 일면식도 없는데 문장을 읽는 것만으로 아는 사이가 된 것 같은 착각 말이다. 비슷한 세대라서 글에서 나온 일상이 내가 겪은 그것과 같을 때, 같은 장소나 같은 물건에 애정을 드러냈을 때 친근하게 느껴진다. 전혀 공감을 얻을 수 없는 공통점을 발견하고 기뻐하기도 한다. 이 경우는 글쓴이에 대한 애정이 과한 경우다. 그러니까 김애란 작가가 쌍둥이라는 걸 알았을 때 쌍둥이 조카를 생각하며 흐뭇했던 이유도 설명이 된다.

 

김애란 작가의 첫 산문집『잊기 쉬운 이름』을 읽으면서 반가운 마음이 먼저 나를 찾아왔다. 작가의 소설을 좋아해서라는 단순한 이유가 아닌 소설이 아닌 그의 글을 읽고 싶은 마음이 컸다. 작가 김애란이 아닌 보통의 김애란의 글이 궁금했다고 할까. 하지만 그건 불가능하다. 이미 김애란은 유명한 소설가이기에 우리에게 김애란의 글을 특별하고 대단한 존재가 되었으니까. 산문집에서 김애란만이 쓸 수 있는 문장을 만나는 일은 좋았고 소설가 뒷면에 가려진 그녀의 소소한 일상을 상상할 수 있어 즐거웠다.

​작가의 단편을 읽으면서 혼자 상상했던 이미지를 실체를 발견한 것만 같은 기분은 나만 느낀 건 아닐 거다. 초기 단편집에서 등장하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델이 그녀의 부모라는 사실이 나는 좋았다. 시골에서 나고 자랐다는 것, 그녀의 수상 소식을 동네에서 전부 알고 함께 내일처럼 기뻐했다는 게 친근했다. 어머니가 운영한 칼국수집 ‘맛나당’의 구조를 알 것 같았고 바쁘게 칼질을 하는 어머니의 뒷모습에 묻어 있는 흥을 느낄 수 있었다. 문장에서 전해지는 체온이랄까. 하루하루 정신없이 돌아가는 일상을 잠시 내려놓고 종이컵에 믹스커피를 마시는 누군가를 생각할 수 있어 마음이 뭉클했다. 그 시절을 돌아보며 작가처럼 글을 쓸 수는 없지만 같은 표정을 짓을 수 있다는 게 말이다.

​나는 우리 삶에 생존만 있는 게 아니라 사치와 허영과 아름다움이 깃드는 게 좋았다. 때론 그렇게 반짝이는 것들을 밟고 건너야만 하는 시절도 있는 법이니까. (13쪽)

한때 아이들이 시끄럽게 뛰어놀던 거실에는 어둠과 침묵이 짙게 깔리고 이제는 미움도 사랑도 희석된 채 이따금 서로를 연민으로 바라보는 두 사람만이 오도카니 남았다. (111쪽)

지나온 시절에 대한 과대 포장이 아닌 간결하면서도 담백한 표현이 그리움을 잘 드러내는 법이다. 노년의 부모가 특별한 놀이가 없는 저녁에 화투를 치는 일상도 마찬가지다. 개인적인 추억인데 어느 순간 그 추억의 주인이 나로 바뀌는 걸 느낀다. 어디에서나 삶은 비슷하게 닮아 서로에게서 위안을 얻는 것처럼.

그래서 이런 재미있는 고백엔 맞장구를 치고 만다. 아마도 한 번은 부사에 대한 고민을 말하고 싶었나 보다. 부사의 도움을 조금만 받으면 안 되는 것일까, 부사는 왜 이런 대우를 받는 존재가 되었을까, 혼자 부사를 안쓰럽게 생각하면서. 소설을 쓰면서 좋을 글을 써야 한다는 부담과 부사에 대한 압박(?)이 얼마나 컸을까 상상하는 것이다. 작가와 부사 사이에 놓인 팽팽한 긴장을 눈앞에서 지켜본 것 같다. 나는 소설을 쓰는 작가도 아니고 부사를 적게 사용해야 한다는 의무도 없고 그냥 읽는 독자라서 다행이라 여기면서 말이다.

 

나는 부사가 걸린다. 나는 부사가 불편하다. 아무래도 나는 부사를 좋아하는 것 같다. 나는 이 말을 아주 조그맣게 한다. 글 짓는 사람이 이런 말을 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나는 부사를 ‘꽤’ 좋아한다. 나는 부사를 ‘아주’ 좋아한다. 나는 부사를 ‘매우’ 좋아하며, 절대, 제일, 가장, 과연, 진짜, 왠지, 퍽, 무척 좋아한다. 등단한 뒤로 이렇게 한 문장 안에 많은 부사를 마음껏 써보기는 처음이다. 기분이 ‘참’ 좋다. (87쪽)

특정한 장소, 좋아하는 책, 친하게 지내는 동료 작가에 대한 이야기도 산문집에서 만날 수 있는 유일한 맛이다. 김연수, 편혜영, 윤성희, 박완서를 향한 글에서 친밀감이 전해진다. 사적인 관계이며 개인적인 취향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들의 친목과 만남이 궁금한 건 독자만이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니까. 반대로 우리 사회의 아픔과 고통에 대한 글에서는 작가의 위치와 역할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같은 시대를 사는 작가의 글을 읽고 공감하며 살아갈 힘을 얻는 이들 속에 내가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누군가의 문장을 읽는다는 건 그 문장 안에 살아오는 거라 생각한 적이 있다. 문장 안에 시선이 머물 때 그 ‘머묾’은 ‘잠시 산다’라는 말과 같을 테니까. 살아 있는 사람이 사는 동안 읽는 글이 그렇고, 글에 담긴 시간을 함께 ‘살아낸’ 거니 그럴 거다. (141쪽)

 

읽으면서 설레고 감탄했던 문장은 많다. 하지만 그 여운이 오래가는 문장은 많지 않다. 발랄하면서도 달콤했던 문장은 김애란의 것이었다. 잊지 않고 기억하고 싶은 문장에도 이름이 있다면 김애란의 문장이겠다. 지나친 감상이라도 지금 이 순간엔 괜찮다. 여름을 말하는 게 아닌데도 여름이면 생각나는 문장, 여름을 닮은 싱그러움을 읽는다. 여름이니까.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부는 것은 나무들이 제일 잘 안다. 먼저 알고 가지로 손을 흔들면 안도하고 계절이 뒤따라온다. 봄이 되고 싶은 봄. 여름이 하고 싶은 여름. 가을 혹은 겨울도 마찬가지다. 바람이 ‘봄’하기로 마음먹으면 나머지는 나무가 알아서 한다. 자연은 해마다 같은 문제지를 받고, 정답을 모르면서 정답을 쓴다. 계절을 계절이게 하는 건 바람의 가장 좋은 습관 중 하나다. (『두근두근 내 인생』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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