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프 미 시스터
이서수 지음 / 은행나무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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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서 여성으로 사는 게 두렵기 시작한 때는 언제일까. 뉴스나 언론 보도를 통해 피해자로 등장하는 여성들이 남 같지 않다고 느낄 때. 택배나 배달 주문을 할 때 이름을 남자 이름으로 입력한다는 글을 보고 나도 이렇게 해야지 싶을 때. 돌이켜보면 학창 시절 공중 화장실에 가를 걸 주저하던 때가 아닐까 싶다. 모든 남성을 잠재적 범죄자로 여겨지는 않지만 그래도 한 번씩 무서울 때가 있다. 어쩌다 우리는 이런 사회에 살게 되었을까.


이서수의 장편소설 『헬프 미 시스터』 속 주인공 수경도 자신이 성범죄를 당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직장동료가 건넨 음료수를 마시고 위험한 일을 당한 뻔했다. 다행스럽게 피해를 면했지만 수경은 그 일로 직장을 그만두어야 했다.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가 직장을 그만두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지만 나라도 그 동료를 계속 볼 수 없을 것이다. 수경은 한동안 집 밖에 나갈 수 없었고 그 누구도 믿을 수 없었다. 


그러나 수경이 마냥 집에서 쉴 수만은 없었다. 15평 빌라에 여섯 명의 가장 역할을 하던 수경이었다. 남편은 투자 전문가지만 수익을 낸 적이 없고 아버지가 사기를 당해 부모님은 수경의 집으로 왔다. 엄마는 큰일을 당한 수경을 돌보려 청소 일을 그만둔 상태다. 거기다 남편의 조카 둘까지. 조금 색다른 가족 구성원이다.


수경은 다시 세상으로 나가야 했다. 예전처럼 직장에 나가 동료들과 일할 자신은 없었다. 수경에게는 사람이 제일 무서운 존재였고 그래서 선택한 일이 택배였다. 택배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노동자인데 소속된 곳이 없어 노동자의 대우를 받지 못했고 이상한 사업자 신분이 되었다. 수경의 택배 일을 엄마가 도왔고 남편과 아버지도 일을 찾았다. 가족이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수경과 같이 플랫폼 노동자였다. 수경의 일을 계기로 가족은 조금 더 단단해졌다. 아무리 가족이라 해도 수경 자신이 시간을 견디고 앞으로 나가는 동안의 마음을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수경의 다짐을 응원하면서도 속상한 마음을 감추기가 어렵다.


스스로 일어서는 것. 상처를 지닌 채로 걸어가는 것. 다시 사회에 뛰어들어 생계와 보람을 위해 살아가는, 사회와 가족의 일원이 되는 것. 그러게 해보고 싶었다. (256쪽)


소설의 제목 ‘헬프 미 시스터’는 아마도 수경의 마음일지도 모른다. 소설 속 서비스 앱 ‘헬프 미 시스터’는 일을 구하는 이도 일을 의뢰하는 이도 모두 여자다. 수경은 엄마 여숙과 함께 택배 배송을 그만두고 이 앱에 등록하여 일을 시작한다. 여성이 사용하는 앱이므로 여성의 마음을 대면하고 도와주는 일이 많았다. 동성 연인과의 결혼식을 축제처럼 즐기고 참석하는 일, 제사 음식을 대신하는 자리에서 이제는 음식 하러 오지 않겠다고 말하는 일은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그 외에도 다양한 의뢰가 많았고 수경과 여숙은 흔쾌히 즐겁게 일할 수 있었다. 


‘헬프 미 시스터’에서 요구사항은 다양하다. 그 모든 것의 핵심은 남편 우재의 말처럼 “나는 누군가 필요합니다”이다. 그 누군가가 절실히 필요함을 수경은 누구보다 잘 알았다. 반드시 여자여야만 하는 절박함을 말이다. 어쩌면 수많은 앱 가운데 이런 앱이 곧 등장할지도 모른다. 아니 이미 사용자가 있을지도. 그만큼 무서운 세상이라는 게 안타깝지만 한편으로는 마음 놓고 모든 걸 부탁할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게 든든하다.


설 속 수경의 가족은 어려움에 처했지만 그것에 굴복하지 않는다. ‘헬프 미 시스터’처럼 서로가 돕는다. 그게 참 좋았다. 그러니까 유머와 격려를 잃지 않는 것. 끝없이 무겁게 빠져들 수도 있는 상황을 타개하는 힘을 키운다. 서로가 서로에게 구원이 될 수 있는 가족, 도움이 필요한 이들의 서툴지만 따뜻한 연대가 만들어내는 작은 변화가 불러온 기적. 이서수 작가의 특징이 아닐까 싶다.


그들 모두 이렇게 한마음으로 함께 있다는 것이 기적. 그들 모두 포기하지 않고 다시 해보기로 결심했다는 것이 기적. 그들 모두 웃고 있다는 것이 기적. 기적이라고 생각하면 정말로 모든 게 기적이 되는 건지도 모른다. (338쪽)


상처와 아픔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서도 부정이 아닌 긍정을 선택하는 일. 어렵고 힘든 현실을 바꿀 수 있는 시작이 바로 그런 것이라고 말한다. 어쩌다 이런 세상이 되었나 하는 한탄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픈 마음을 공감하고 연대하며 나가는 일이 중요하다. 소설이 아닌 현실이 아름다운 기적으로 채워질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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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은 제목부터 호기심을 자극한다. 김수정의 『감정을 파는 소년』이 그러하다. 감정을 팔다니, 그게 가능할까.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감정이 풍부해서 판다는 걸까, 필요 없다고 느끼는 감정을 판다는 걸까. 만약 이 모든 게 가능하다면 나는 어떤 감정을 팔고 어떤 감정을 사고 싶을까. 감정을 산다면 어떻게 사는 걸까. 가격 책정은 적당할까. 책을 읽기도 전에 이런저런 생각으로 꽉 차있다. 


소설은 제목 그대로 감정을 사고파는 가게의 이야기다. 감정을 팔러 온 이들의 저마다의 특별한 사연과 그것을 어떻게 관리하는지 들려준다. 후미진 곳에 자리한 가게의 사장은 ‘정우’, 하지만 감정을 매입하는 이는 ‘민성’이란 이름의 소년이다. 사장은 정우지만 가게의 모든 일은 민성의 몫이다. 


가정 먼저 만나는 감정은 사랑이다. 책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가게 사장을 사랑하는 여자는 혼자만의 사랑이라고 여겨 그 감정을 판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중에 사장도 자신과 같은 마음이라는 걸 알게 되지만 사랑을 팔아버려서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니까 감정을 팔아버리면 감정은 사라진다는 말이다. 반대로 사랑이란 감정이 필요하면 민성의 가게에서 사랑을 구입할 수 있다. 


집안을 돌보지 않고 가정폭력을 일삼으며 결국에는 도박에 빠진 아버지를 향한 ‘증오’로 가득한 삶에서 벗어나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 증오를 팔기로 한 손님에게 정우는 누가 증오를 사겠냐며 거부하지만 민성은 달랐다. 증오라는 감정 역시 누군가에게는 필요하다며 구매한다. 그리고 얼마 후 증오를 사겠다고 온 이가 있었다. 7년 동안 사귄 남자친구와 헤어지지 못하는 여자에게는 증오가 필요했다. 증오를 사러 온 여자의 사연이 그렇다. 여자는 처음에는 남자를 사랑하는 마음이 커서 헤어지지 못한다고 여겨 가게에 와서 사랑을 팔고자 했다. 그러나 민성은 여자에게 남자를 사랑하는 감정이 없다고 말한다. 그동안 7년이라는 시간의 정에 붙들려 살았지만 이제는 끝을 내야 했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는 떨쳐버리고 싶은 감정이 누군가에게는 간절하게 필요하다. 정말 신기하게도 그렇다. 세상에는 완벽한 사람이 없는 것처럼 완벽한 감정이란 없다. 노량진 고시촌에서 함께 공부를 하는 정우와 종현에게도 마찬가지. 경제적인 지원이 어려워 고시촌 총무를 하는 정우에게는 열등감이 심했고 반대로 너무 편안하게 공부하는 종현에게는 자극이 될 열등감이 필요했다. 처음에는 서로를 격려하며 공부하던 사이였지만 정우는 종현을 의식했고 결국 자신의 열등감을 팔았다. 그렇다면 내 안에 있는 감정은 어떻게 사라질 수 있을까? 바로 그것이 민성의 능력이다. 민성이 손님의 손에서 그 감정을 추출하는 것이다.


“슬픔과 사랑은 떼어낼 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 상대방에 대한 사랑 또는 나 자신에 대한 연민, 세상의 모든 슬픔은 누군가를 사랑해서 생기는 감정이니까.” (141쪽)


민성의 말처럼 슬픔과 사랑은 한 몸처럼 붙어있어 누군가 사랑하는 일에는 때때로 큰 슬픔이 동반하는지도 모르겠다. 사랑이 시작될 때 이별은 생각할 수 없기에 이별을 감당하기 어렵다. 사랑 때문에 슬프고 사랑 때문에 아파도 우리는 사랑을 놓지 못하는 게 아닐까. 연인을 향한 사랑뿐 아니라 가족, 친구, 세상을 향한 사랑까지도. 


감정이란 참 이상하다. 자신의 감정은 자신이 가장 잘 안다고 여기지만 사실은 객관적이지 못한 게 감정이다. 이처럼 내 안의 감정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일은 어렵고 그 과정을 알아가며 성장하는 것이다. ‘사랑’, ‘증오, ‘열등감’, ‘슬픔’, ‘기쁨’, ‘행복’등 다양한 감정을 잘 표현하고 스스로 다스릴 수 있다면 상대의 감정에 의해 다치지 않고 잘 지낼 수 있다. 친구와의 관계, 정체성, 여러 가지 감정과 맞닥뜨리는 청소년들에게 이 소설이 자신의 감정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싶다. 감정을 분류하고 정리한다는 소재가 독특하면서도 좋다. 세상에 쓸모없는 감정이 없는 것처럼 우리는 저마다 소중하다는 걸 알려준다고 할까. 


“사랑은 플라스틱 통에 담아서 따뜻하게, 증오는 캔에 담아서 차갑게, 열등감은 나무 그릇에 미지근하게, 슬픔은 머그에 담아 실온보다 조금 따뜻하게.” (141쪽)


따뜻한 사랑과 슬픔, 차가운 증오, 미지근한 열등감, 차별적인 감정을 상상한다. 그리고 현재 나의 감정 상태는 어떤지 생각한다. 넘치는 감정은 무엇일까. 다채로운 감정 이야기, 그 안에서 솔직한 자신의 감정과 마주하는 순간, 조금 편안해지는 쪽으로 감정을 다스리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한다. 


미래에는 정말 이런 소설처럼 감정을 파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소설 적 상상으로는 흥미롭고 재미있지만 구체적으로 따져보면 무섭다. 필요에 의해 직접 경험하지 않는 감정을 사고 파는 일, 불필요하다고 느끼는 감정을 구매해서 대체해도 괜찮다는 생각을 갖는 것이다. 공감이 사라진 시대라고 하면 맞을지도 모른다. 타인의 아픔이나 상처를 알지 못하고 위험에 빠진 이를 구하려면 그 경험을 구매한 사람만이 가능한 시대. 「감정을 할인가에 판매합니다」란 제목이 쓸쓸하게 다가온다. 우리가 앞으로 살아갈 미래가 정녕 감정이 사라진 무미건조한 그런 미래가 될까 두렵다. 감정만 파는 게 아니라 도덕, 사랑도 파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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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고양이의 이름은 길다
이주혜 지음 / 창비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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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읽을 때 어느 순간 글에 나를 대입하고 있다는 걸 발견할 때가 있다. 소설이든 에세이든 상관없이 공감하기 때문이다. 인물이 처한 상황과 쉽게 바꿀 수 없는 환경을 경험했을 때 모든 이야기는 내 이야기가 된다. 소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그것에 가려 다른 것은 제대로 보지 못할 수도 있다. 물론 독자는 비평가가 아니기에 그저 작가가 원하는 바를 읽지 않아도 상관없다. 어쩌면 그게 더 나은 독서 일지도 모른다. 모든 책의 마지막에는 독자가 있으니까.


이주혜의 단편집 『그 고양이의 이름은 길다』를 읽으면서 여성 독자이기에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의 입장에서 소설 속 인물이 놓인 어려움이 고스란히 내 것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주혜는 장편소설 『자두』에서도 간병이라는 소재를 통해 그림자 노동의 현실을 보여주고 돌봄의 주체인 여성이 얼마나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지 여전히 차별적인 여성의 지위에 대해 들려준다. 첫 단편집에서 수록된 9편의 단편에서도 여성의 삶을 다룬다.


가족 안에서 딸, 아내, 어머니라는 자격을 부여받은 여성의 위치와 감당해야 하는 역할은 여전히 불편하다. 세 자매가 아버지의 사십구재를 치르고 모인 「오늘의 할 일」에서 자매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아버지를 기억한다. 그 기억은 세 딸을 둔 아버지가 밖에서 낳아 온 아들로 이어진다. 어린 동생을 향한 자매의 감정을 충분히 알 것 같은 건 오빠를 두고고 아들 하나를 더 낳기 위해 딸 셋을 낳은 엄마가 생각나서다. 엄마는 내 밑으로 남동생을 낳았다. 우리 자매에게도 남동생을 돌봄과 동시에 미움의 대상이었다. 아들만 대우를 받았던 시대는 지났지만 많은 여성이 그 상처와 함께 살아간다. 


여성은 결혼과 동시에 엄마 되기를 강요받는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해부학자 ‘녕’과 결혼한 산부인과 의사 ‘규’도 다르지 않다. 산부인과 의사이기에 낙태를 선택할 수 없었다. ‘규’는‘원’을 출산 후 엄마라는 자신의 존재와 역할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집을 떠나 아프리카 난민 봉사활동에 전념한다. 친정엄마가 있었기에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열여섯 ‘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렸을 때에도 곁에 없었다. ‘원’의 죽음을 두고 ‘녕’이 ‘규’를 비난하는 건 옳은 것일까. 누가 엄마의 역할을 규정할 수 있는가. 


「우리가 파주에 가면 꼭 날이 흐리지」에서 한 번 더 묻는 질문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시작된 시점, 아이들을 통해 맺어진 세 엄마의 우정이 흔들리는 과정을 통해 엄마란 무엇인가 생각한다. ‘나’,‘수라 언니’,‘미예’는 엄마라는 이유로 친해졌다. 기혼 여성이 학부모로 만나 이어지는 유대관계는 친밀 그 이상을 지닌다. 셋 역시 그러했다. 팬데믹의 상황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미예를 위로하는 자리가 코로나 확진으로 이어졌다. ‘수라 언니’의 확진으로 밀접 접촉자인 나’와 ‘미예’는 물론 가족까지 검사를 받는다. 가족 일부가 확진되고 치료를 위해 생활치료센터로 떠나거나 자가 격리를 한다. 코로나 확진의 모든 책임은 엄마에게도 쏟아진다. 아이를 키우는 고충에 대해 알지도 못하는 이들에게 ‘맘충’이나 ‘유한부인’이라 비난을 받아야 했다. 3년 차인 현재 그건 어쩔 수 없는 상황이고, 누구나 걸릴 수 있다는 걸 알지만 3년 전으로 돌아가면 사회 전반의 시선이 소설과 다르지 않다.


무엇이 자꾸 우리를 겁쟁이로 만들까? 우릴 자꾸 고립시키고, 왜 저러고 사나 싶게 만들고, 경멸하기 좋은 얼굴로 변모시키고, 끊임없는 자기 증명의 압박을 가하는 이 병의 이름은 무엇일까? 우리는 언제부터 재난의 한복판에서 천근만근이 되어버린 아이를 업고 달리는 (그러나 달리지 못하는) 꿈을 반복해서 꾸는 걸까? 이 바이러스의 진짜 이름은 무엇일까? ( 「우리가 파주에 가면 꼭 날이 흐리지」, 120~121쪽)


우리 사회에서 여성은 엄마의 역할뿐 아니라 가장의 역할도 맡았다. 표제작인 「그 고양이의 이름은 길다」 속 주인공 ‘은정’이 그러했다. 자궁 적출을 위한 수술대 위에 오른 몸에서 유체이탈한 영혼이 지난 삶을 돌아보는 이야기는 쓸쓸하다. 결혼하지 않은 않고 일하는 여성을 향한 온간 소문과 추문은 한결같다는 게 창피할 정도다. 


이주혜가 보여준 소설 속 인물은 허구가 아니다. 우리 주변에 실재하기에 생생하게 담을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새로운 엄마와 다양한 가족 형태에 대해 제시하는 「봄의 왈츠」는 가까운 미래에 만날 수 있을 것 같아 반갑다. 봄이 여자친구인 ‘나’에게 세 명의 엄마를 소개한다. 혼자 봄이를 낳은 ‘선남’, 선남의 오랜 친구 ‘리온’, 리온의 연인 ‘미호’는 모두 봄의 엄마다. 그들은 각자 딸이라는 이유로 제대로 된 사랑을 받지 못했고 무시와 학대를 받았다. 선남, 리온 , 미호는 봄의 가족으로 자신이 잘 하는 일로 봄을 돌보며 봄의 엄마가 된다.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을 보고 싶어한,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들. 오래전 한 어린 사람을 이 세상에 환대해주어 내가 사랑할 수 있게 해준 여자들을 만나서, 내가 오히려 고마웠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 다만 봄을 한번 와락 안아주었다. (「봄의 왈츠」, 243쪽)


「그 시계는 밤새 한번 윙크한다」 속 ‘나’와 ‘온’과 ‘율’도 다르지 않다. 이혼한 ‘나’가 딸인 ‘율’에게 미처 챙기지 못하고 알려주지 못하는 부분을 나의 친구인 ‘온’이 채워준다. 과거 ‘나’와 ‘온’이 각자의 엄마에게서 받지 못하 애정과 사랑을 ‘율’에게 전하는 것이다. 그리고 엄마가 되어서야 자신이 알지 못한 엄마의 상실과 외로움을 알게 된다. 


이주혜의 단편집은 여성의 이야기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엄마나 아내가 아닌 여성으로 사는 일은 결국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이야기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상관없이 우리 사회에 필요한 따뜻한 배려와 연대에 대해 말한다. 다양한 가족 형태, 과거의 상처를 안아줄 수 있는 다정한 시선, 나가 아닌 우리가 살아가야 할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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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친구와 나눈 전화 통화에서 가을이니까 책을 더 많이 읽냐는 질문을 받았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는 말 때문이겠지만 실은 요즘 나의 읽기와 쓰기는 그저 그렇다. 아주 멋진 소설을 읽었지만 아직 리뷰를 쓰지 못했다. 이러다 쓰지 못하는 게 아닐까 싶다. 읽고 있는 책에 집중하지 못해 다시 앞으로 나가기도 한다. 


책을 구매하는 일도 충동이 아니 신중함으로 한 번 생각하려고 한다. 다른 물건들은 한 번 더, 장바구니에 담아두고 시간을 갖고 생각하는데 책은 그게 잘 안된다. 그러니 끌리는 대로 사는 편이다. 최소한으로 구매하고 책장의 책을 읽거나 정리하는 게 항상 주된 목표지만 목표는 목표에 그친다.






단편집 한 권과 시집 한 권, 딱 좋다고 여긴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단편집 『지고 말 것을』의 제목처럼 결국 또 지고 말았다. 진은영의 이번 시집은 제목이 나를 붙잡는다.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란 제목에서 오래된 거리를 떠올리고 저마다의 너를 찾을 듯하다. 10년 만에 나온 시집이라서 기사도 많고 여기저기 언급도 많다. 그러니 시를 소개하는 일은 하지 않겠다. 대신  『지고 말 것을』 속 이런 문장만 살짝 소개할까 한다.


그 밤에 달이 너무나도 밝았던 게 문제였을까요. 모래가 너무나도 하얬던 게 문제였을까요. 보름달은 흰 모래밭을 공기가 없는 색처럼 맑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달빛이 물방울처럼 똑바로 떨어질 만큼 조용했던 탓인지 공기가 움직이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습니다. 내 그림자는 흰 종이에 떨어진 먹처럼 쌔까맸습니다. 내 몸은 흰 모래에 세워놓은 하나의 날카로운 선이었습니다. 모래사장이 사방에서 흰 헝겊처럼 빙글빙글 말려올라왔습니다. (「푸른 바다 검은 바다」 중에서)


아무튼 가을이니 소설도 좋고 시집도 좋다. 나쁠 게 없다. 나쁜 건 나의 태도, 읽는 즐거움을 미루고 사들이는 즐거움에 기대는 나의 태도다. 끌리는 대로 읽어야지. 문제는 끌리는 책이 아주 많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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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2-09-26 12: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들이는 즐거움에 더 끌리는 저도 반성하며 ㅎㅎ 자목련 님 저도 요즘 뭔가 집중이 안 되고 중구난방입니다. 가을탓이라고 해둘까요. 가을에도 좋은 시집과 선별하신 독서로 행복한 시간 보내세요 ~^^

자목련 2022-09-27 19:18   좋아요 2 | URL
가을이니 가을탓을 해도 괜찮겠지요. 프레이야 님이 포스팅 하신 김연수 신간도 조만간 사들이는 즐거움에 속할 것 같아요~~

scott 2022-09-26 12: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진은영 시집 자목련님도 ^^

이번에 첫판 완판!
1만권 팔렸다고 합니다
우리 사회 여전히 시를 읽고 사릉하는 이들이 많은 것 같아서

저도 시집 찾아 ~~@@

자목련 2022-09-27 19:17   좋아요 2 | URL
1만권이 팔렸다니 대단하네요.
아마도 10년 만에 나온 시집이라 마케팅이 더 성공한 것 같기도 해요. ㅎ

책읽는나무 2022-09-26 12: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늘 궁금한 자목련님 책장 속 시집들은 꼭 자목련님 글 분위기와 많이 닮은 듯 합니다.
정갈하네요~
선택하신 두 권의 책들 제목.
가을에 잘 어울려 보입니다.^^

자목련 2022-09-27 19:16   좋아요 3 | URL
시집에 어울리는 분위기로 애써보겠습니다. (정갈함과 거리가 멀지만, ㅎ)
이 두 권으로 가을을 잘 버티고 싶습니다!!

거리의화가 2022-09-26 12: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리뷰 써야 할 것이 있는데 계속 미뤄지네요. 벌써 2주가 넘었는데 흑흑.
두 책도 아름답지만 뒤쪽에 가지런히 정리된 책들이 눈에 띕니다!^^
가을은 시의 계절이지요. 시를 잘 읽지는 않는데 사둔 시집이나 좀 읽어야겠다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자목련 2022-09-27 19:14   좋아요 2 | URL
사진은 위장인 거 아시지요? 책장은 가장 어수선한 곳입니다. 화가 님이 사둔 시집, 궁금합니다!

mini74 2022-09-26 17: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읽는 즐거움을 미루고 사들이는 즐거움 ㅠㅠㅠ 저 막 찔립니다 자목련님 ㅎㅎ 시집들 보니 오랜만에 시집 읽고싶어집니다 *^^*

자목련 2022-09-27 19:13   좋아요 2 | URL
사들이는 즐거움도 필요합니다. 사실, 요즘 제일 간절합니다. ㅎㅎ
가을을 핑계 삼아 시집을 읽어볼까요?
 
방어가 제철 트리플 14
안윤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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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여 있는 슬픔을 덜어낼 수 있는 가장 큰 그릇은 존재할까.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저 그 슬픔이 다 마르거나 증발해버려서 덜어낼 필요가 없는 순간을 기다리는 일이 현명하다. 애도도 마찬가지다. 정해진 시간은 없다. 일정 기간이 지났다고 해서 상실과 애도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것들과 함께 살아갈 뿐이다. 처음 만나는 작가 안윤의 『방어가 제철』 은 그런 애도의 기록이다. 그래서 수록된 세 편의 소설에 등장하는 죽음은 낯설지 않다. 


우리 생에는 발작처럼 대응할 수 없는 죽음이 찾아온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은 후회를 몰고 온다. 뭔가 나의 잘못으로 기인한 일이 아닐까 싶은 마음과 상대를 향한 애정이 부족했다는 안타까움에 책망의 시간이 시작된다. 화자가 ‘소애’의 생일상을 차리는 장면을 천천히 묘사하면서 그 모든 과정을 ‘은주’ 언니에게 들려주는 형식의 「달밤」 속에서 그녀의 부재를 직감할 수 있다. ‘소애’의 생일과 ‘은주’의 기일이 같은 날이라는 게 애석하지만 누군가 죽는 날 누군가 태어나는 게 삶이라는 자명한 사실이다. ‘은주’의 장례식장에서 돌아와 화자가 수첩에 쓴 것처럼 결국 남겨진 이들의 몫은 살아가는 일이다.


살아 있는, 살아 있으니 살아. 살아서 기억해. 네 몫의 삶이 실은 다른 삶의 여분이라는 걸 똑똑히 기억해. 그렇다고 너무 아끼지도 말고 너무 아까워도 말고, 살아 있는 나를 아끼지 말고 살아. (「달밤」, 30쪽)


알고 있지만 나를 아끼지 말고 살아가는 게 불가항력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오빠의 친구인 ‘정오’를 만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방어가 제철」 속 ‘나’가 그러하다. 미대에 가고 싶어 하던 나를 위해, 학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대학에 들어간 오빠가 아르바이트를 하던 공사 현장에서 사고를 당했기 때문이다. 삼십 대가 된 ‘나’는 지병으로 돌아가신 엄마의 반찬가게를 하고 있다.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던 ‘정오’는 엄마의 죽음을 통해 재회했다. 그리고 방어가 제철인 계절에 둘은 만난다. 오빠 ‘재영’과 ‘정오’, 화자까지 셋이서 하나처럼 지냈던 시절, 이제는 남은 둘이 의식처럼 ‘재영’을 기억한다. 그러나 시시콜콜 일상을 나누면서도 ‘재영’을 언급하는 일은 없다. 서로를 통해 ‘재영’의 부재를 확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것을 모른 척 위장하며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나는 더는 내게 묻지 않는다. 언제부터 묻지 않게 되었는지조차 묻지 않는다. (「방어가 제철」, 70쪽)


「달밤」과 「방어가 제철」이 가까운 이를 애도하는 기록이라면 「만화경」은 우리 주변의 고독사에 대한 애도라 할 수 있다. 이혼 후 한 빌라의 세입자로 들어온 ‘나경’은 집주인 ‘숙분’ 때문에 불편하다. ‘나경’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기 때문이다. 이상한 할머니라 여기고 거리를 두었는데 ‘숙분’의 친구 ‘단심’이 빌라로 이사를 오면서 오해가 풀렸다. ‘나경’이 살던 집의 전 세입자가 혼자 외롭게 생을 마감한 일이 있어 ‘숙분’이 그렇게 살폈던 것이다. ‘미리내’란 이름을 알게 된 후 그녀를 애도한다. 


나와는 전혀 상관없다고 여겼던 사람의 죽음과 그 이름을 알게 되었을 때 일상에서 스치듯 그 이름과 마주했을 때 그 이름이 갖는 슬픔까지 마주할 수밖에 없다. 알게 된 이상 그 이전으로 돌이킬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불행한 사고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모든 이들을 애도하는 방식이다. 소설은 우리를 그 죽음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한다. 차오르는 분노와 함께 신당역 역무원의 죽음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소설에 등장하는 화자처럼 저마다 담담하면서도 차분하게 일상을 살아가면서 죽음을 기억하고 애도하며 살아가려고 애쓴다. 때로는 그리움에 울부짖고 때로는 부정하며 곁에 있는 것처럼 행동하고 생활한다. 특정한 물건을 볼 때,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선명하게 확보된 부재에 절망한다. 하나같이 차분한 안윤의 소설은 에세이까지 한결같다. 나는 소설보다 에세이에 마음이 기운다. 애도는 구멍이 뚫린 가슴으로 살아가는 일이다. 걷잡을 수 없이 점점 커지는 구멍을 그저 내버려 두는 일인지도 모른다. 한없이 쓸쓸하고도 다정한 애도가 나를 떠난 이들의 이름을 불러온다.


당신에게는 더는 대답을 들을 수 없는 이름들이 있다. 서서히 멀어졌거나 뒤돌아 떠났거나, 결코 돌아올 수 없는 이름들. 대답을 들을 수 없다고 부르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당신은 자주 그 이름들을 부른다. 묵독을 할 때처럼,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을 때처럼 호명한다. 그 이름들은 아무런 대답이 없지만 당신은 선명하게 듣는다. 고유한 말투, 희미한 미소, 가만가만히 고갯짓을 본다. 때때로 그 이름들이 당신들의 일상에 출몰하기도 한다. (「없는 것들이 있는 자리」, 1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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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9-23 19:2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한없이 쓸끌하고 다정한 애도가 나를 떠난 이들의 이름을 불러온다. ㅠㅠ 자목련님이 소개해주시는 책내용도 좋지만 자목련님이 쓰신 문장에 눈시울이 붉어지네요. 쓸쓸하고 다정한 이름들을 가끔 꺼내보고 쓰다듬으며 그렇게 사는거겠지요.

자목련 2022-09-25 15:39   좋아요 2 | URL
나도 어떤 이들에게 그런 이름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미니 님, 맑고 빛나는 오후 보내세요^^*

그레이스 2022-09-24 08: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방어회 맛있지...
하고 보다가, 다시 방어가 제철이란 제목에 쓸쓸함으로 다가오네요

자목련 2022-09-25 15:38   좋아요 2 | URL
전체적으로 쓸쓸한 소설이었는데 이상하게도 그 쓸쓸함이 좋았습니다.
그레이스 님, 맛있는 가을 이어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