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에 만나는 책 제목이 『일요일의 철학』이다. 조경란의 신간 소설집이다. 일요일을 어떻게 보내는 게 철학적일까. 저마다의 일요일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까. 궁금하다. 기다렸다고 말할 수 없지만 반가웠다. 그러니까 조경란은 신간 알림 문자를 설정하지 않는 작가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소설집을 구매할 것이고 읽게 될 것이다.  내 책장에는 그녀의 소설들이 있다. 『불란서 안경원』, 『나의 자줏빛 소파』, 『국자 이야기』, 『움직임』, 『혀』, 『풍선을 샀어』, 『복어』. 『복어』는 언니 집 책장에 있다.

 

 

 

 

 

 

 

 

 

 

 

 

 

나는 조경란의 소설을 좋아하는 걸까? 좋아한다는 쪽에 속하지만 그 크기는 얼마나 될까? 좋아한다고 정말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권여선의 소설집 『비자나무 숲』도 곧 나올 것이다. 장편이 아닌 단편이라 더 기대가 크다. 고백하지면 나는 그녀의 장편 『레가토』를 읽지 못했다. 읽기 시작했지만 그게 끝이었다는 말이다. 나는 권여선의 장편 보다 내 정원의 붉은 열매『분홍 리본의 시절』을 더 좋아한다.

 

 

 

 

 

 

 

 

 

 

 

 

 

 

 

 

 

 좋아하는 한국 문학을 알라딘에서 3월에 주목해줘서 좋다. (12달 내내 주목했는데 나만 몰랐더라도.) 조경란, 권여선, 정미경의 소설을 차례로 만나는 봄날이면 좋겠다. 짧은 봄이 사라지기 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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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3-03-25 2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작가의 소설집이 출간되면 항상 문예지를 구독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따끈따끈할 때 읽었으면 좋았을텐데 싶어서요. 예전에는 자주 서점에서 단행본으로 사읽었는데 구독은 너무 벅찼던 것 같아요. 받는데에 의의를 스스로 두게 될까봐, 청개구리라서 뭐 시키면 잘 안하거든요-_- 그나마 하는 게 유일하게 서평도서 서평쓰는 일 같아요. 국내소설은 읽더라도 리뷰 안썼었는데 써야할 경우에는 온갖 것들을 끌어올리게 돼요. 작가가 보면 창피할 것 같아서요. 조경란 소설 중에 뭐가 제일 좋았어요? 사실 요즘에는 여작가중에 누가 제일 좋다고 말할 수가 없게 되어버린 것 같아요. 읽지를 않았으니 앞으로 열심히 읽어서 자목련님 따라잡아볼게요!

자목련 2013-04-05 13:15   좋아요 0 | URL
늦어도 너무 늦은 답글이네요.
문예지를 구독해도 나중에 책으로 나오면 읽어야지 하는 마음이 커요, ㅎ
조경란의 소설은 초기 소설집<나의 자줏빛 소파>, <불란서 안경원>이 좋았어요. 장편으로는 <복어>가 좋았구요.

아이님이 올려주실 한국소설의 리뷰, 궁금해요...
 
하루 - 박영택의 마음으로 읽는 그림 에세이
박영택 지음 / 지식채널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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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이라는 하루는 같은 듯 다르다. 반복된 시간을 살지만 같은 하루는 단 하루도 없다는 말이다. 누구에게는 생의 마지막 하루가 되기도 하고, 누구에게는 생의 첫 하루가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하루는 평범하고도 특별한 것이다. 박영택의 『하루』는 그런 우리네 일상을 그림으로 말한다. 그러니까 하루라는 제한된 시간을 50편의 그림을 통해 보여주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주어지지 않는 새벽이란 시각을 시작으로 깊은 잠으로 빠져들지 못하는 밤까지의 다양한 삶을 모습을 그림, 사진, 조각 등 예술 작품으로 만날 수 있다. 조금은 특별한 하루 여행이라 해도 좋겠다.

 

 책은 하루라는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고 어떻게 채워지고 어떤 감정들로 새겨지는지 날카로우면서도 섬세하게 담아 낸다. 시간의 흐름으로 소개하는 예술 작품은 놀랍게도 우리의 삶과 너무도 비슷하다. 아니, 똑같다고 해도 좋을 정도다. 어떤 그림은 따뜻하고, 어떤 그림은 유쾌하고, 어떤 그림은 외롭고, 어떤 사진은 아프다. 감각적인 그림으로 들려주는 이야기, 한 장의 사진에 포착된 생생한 삶의 단면은 수많은 나의 하루와 오버랩 된다. 특히 이런 작품들이 그렇다.  

 

 

 

 김경덕, <일상 - 보물> 32쪽

 

좌혜선, <부엌, 여자> 190쪽

 

 

서상익, <엄마의 정원>196쪽

 

 

 ‘일상은 늘 오늘이다. 그것은 매일매일 다소 지루하게 반복된다. 그러나 그 반복된 과정 속에 미세한 펀치를 만들어놓는 것이 또한 일상이기도하다. 겉으로는 하등의 변화가 없어 보이지만 유심히 그리고 섬세하게 들여다보면 그 안에서는 경이로운 차이들이 연쇄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다.’ 36쪽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내 주변의 풍경, 내 손길이 닿는 사물들, 내가 매일 보고 사용하는 것들에 대한 고마운 마음이 든다. 어디 사물 뿐인가. 언제나 곁에 있다는 이유로 소홀하게 대해는 가족들에 대한 애틋함도 함께 몰려온다. 한결같은 반복이 주는 고마움을 생각한다.

 

 

박강원, <서울 37> 116쪽

 

 

 ‘삶은 이렇게 찰나의 우연적인 것들로 응집되어 있고 신기루처럼 허망하게 되어 있다. 매일 반복되지만 이 장면은 다시는 반복될 수 없다는 것이 공존하는 것이 일상이다. 매일매일 이 길을 지나다니는 사람도 있겠고 또는 처음으로 이 길을 오가는 사람도 있겠지만 다시는 이곳에 이들이 이렇게 모여 있을 수는 결코 없다. 그래서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치는 매 순간순간의 장면은 단 한 번뿐인 마지막 ‘씬’이다. 유일무이한 장면인 것이다.’ 120쪽

 

 

 

이동환, <문득 깨어 있는 밤> 296쪽

 

 

 ‘잠이란 스스로의 몸으로 시작해서 끝을 함께하는 신비한 여정이다. 그것은 그 누구와도 동행할 수 없고 공유할 수도 없으며 삶과 죽음과 마찬가지로 페쇄적이고 고립된 한 인간의 육체가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영역이다. 그래서 잠들기는 평화롭고 행복하고 편안한 일임과 동시에 예측할 수 없고 장담할 수 없으며 불안하기도 한 일이다.’  298쪽

 

 잠들지 못하는 밤을 경험한 이라면 이 그림 속에 그대로 스며들지도 모른다. 내일이 온다는 당연한 사실이 잔인하게 느껴질 지도 모를 누군가에게도 마찬가지다. 숨가쁘게 지나온 하루를 끝내고 내일을 위해 잠자리에 들었지만 잠들지 못하는 밤, 뒤척이다 불을 켜기도 할 것이다. 

 

 하루라는 시간을 이처럼 다양한 시선으로 마주할 수 있다니 놀랍지 않은가. 가장 편안 공간이 주는 휴식, 먹고 치워야 하는 일상, 치열할 수밖에 없는 현실, 고독하고도 허무한 순간, 숨기고 싶었던 내면의 불안과 슬픔까지 잘 전달하고 있다. 그림 속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작품들이 조금 더 크게 실렸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안다. 현재의 순간, 이 하루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하루라는 걸 말이다. 하지만 하루를 가만히 돌아볼 만큼의 여유는 없다. 그런 이들에게 이 책은 말을 건다. 나만의 하루를 어떻게 채우고 있는지 묻는 것이다. 그리고 살포시 손을 내민다. 얼마나 바쁘게 보냈는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따뜻하게 어루만진다. 반복되는 일상으로 지나치고 있었던 삶의 풍경들을 들여다보게 만든다. 바쁘게 돌아가는 하루, 그 하루로 이어진 삶의 조각들을 통해 현재의 나를 생각한다. 어제였던 오늘을 어떻게 보냈는지, 내일은 또 어떻게 보낼지 말이다. 이제 나는 당신에게 묻는다. 당신의 하루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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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이 되었고 추위는 사라지고 있다. 그런데도 아직 전기장판의 뜨거움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내 몸과 마음에 봄과 겨울이 동거를 하는 것이다. 3월은 괜히 분주하고 복잡하다. 작년 3월에도 그랬다. 마치 3월을 잃어버릴까 두려운 마음처럼 기억을 되살린다. 그래도 봄날은 따뜻하다. 어제 오후에 잠깐 외출을 했는데 투명하지 않은 하늘과 달리 바람은 투명했다.

 

 책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읽기에 대해서다. 읽지 못하면서 책을 받고 사는 일을 멈춰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멈춰야 할 때를 안다는 건 얼마나 현명한 일인가. 유명한 책의 제목처럼 멈추면 무언가 확실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책들이 궁금한 건 어찌해야 할까. 어떤 책은 읽지 못해서, 어떤 책은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라서 그렇다. 모든 게 나를 위한 변명일 테지만 말이다.

 

 주원규의 이름은 익숙하다. 하지만 소설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광신자들』을 읽었는데도 그렇다. 그러니까 나는 그를 알지 못한다. 놀이기구를 타고 높이 날고 싶은 소망을 가졌던 적이 있었다. 너머의 세상을 보자 그 시절이 떠오른다. 로맹가리의 유럽의 교육과 이응준의 느릅나무 아래 숨긴 천국은 개정판이라고 한다. 『내 여자친구의 장례식』의 느낌을 줄 것 같아 읽고 싶은 소설이다. 신경숙의 동화같은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의 표지 속 고양이의 뒷모습처럼 사랑스러울 것이다. 이웃의 글에서 김숨의 백치들을 보았다. 왜 이 책을 잊고 있었을까. 지금이 아닌 과거의 김숨을 읽고 싶다. 좋아하는 지인이 추천한 슬픔의 위안과 봄의 뒷모습처럼 노란 케빈 파워스의 『노란새좋아하는 출판사 책읽는수요일에서 나온 설, 여자의 인생에 답하다몽환적인 이야기라 단정하고 싶은 사폰의 마리나는 서늘하고 시원한 여름의 맛을 떠올리는 표지다.

 

 

 

 

 

 

 

 

 

 

 

 

 

 

 

 

 

 

 

 

 

 

 

 

 

 

 

 이 책들을 사게 될지, 읽게 될지 아직은 알 수 없다. 알 수 없기에 매력적이다.  알 수 없기에 어떤 계획을 세우고 기대한다. 알 수 없기에 꿈꾸고 알 수 없기에 오해하고 착각한다. 우리의 삶이 그러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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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커와 나 창비청소년문학 48
김중미 지음 / 창비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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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부터인지 학교는 무서운 곳이 되버렸다. 함께 하는 세상을 위해 필요한 도덕이나 정의를 배우는 곳이 아니라 좋은 고등학교나 대학교를 가기 위해 거쳐가는 곳으로 인식되고 있다. 친구라는 이름은 경쟁자 뒤로 가려지고 스승과 제자라는 관계를 말하기도 어려워졌다. 학교 폭력에 대해서도 나만, 내 아이만 아니라면 괜찮다는 게 솔직한 심정일 것이다. 때문에 심각한 사회 문제라는 걸 알면서도 직접 맞서는 이가 적은 것이다.

 

 표제작 「조커와 나」는 근육이 마비되는 희귀병을 앓는 정우와 짝 선규의 이야기다. 정우의 도우미가 된 선규는 말 그대로 도우미 역할만 한다. 정우의 휠체어를 밀어주거나 특수반과 화장실에 데려다 주는 게 전부다. 하지만 정우는 선규를 좋아하고 진짜 친구가 되기를 바란다. 소설은 조커라는 별명을 가진 조혁을 필두로 정우를 따돌리고 폭언을 일삼는 모습을 통해 중학교 남자 아이들의 학교 생활을 보여준다. 선규는 그런 아이들이 못마땅하지만 적극적으로 나서지는 않는다.  

 

 ‘나는 정우에게 친구라 말해 놓고도 왠지 모르게 찜찜했다. 정우가 일기에 쓴 것처럼 나는 정우에게 절실히 필요한 존재였는지 모르나 내게 정우는 그저 도움을 줄 수 있는, 기꺼이 내 것을 나눠 줄 수 있는 대상일 뿐이었다. 서로 편해졌다 해도 그것이 우정이라고까지는 생각지 못했다. 정우가 나에게 갖는 기대가 크다는 걸 느끼면 느낄수록 나는 뭔지 모를 부담을 느끼게 되었다.’ 「49쪽, 조커와 나」

 

 선규는 보통의 아이들을 대표한다. 조커가 가해자, 선규가 피해자를 대표하듯 말이다. 하지만 조커에게도 사정이 있었다. 집을 나간 엄마 대신 외할머니와 지내다 보육원에서 힘든 시간을 보냈던 것이다. 정우가 죽고 남긴 일기장을 통해 선규는 그 간의 모든 일을 알게 된다. 선규에게 진짜 친구가 되주지 못한 점, 혁이에게 편견을 가졌던 점을 후회한다. 김중미는 폭력 뒤에 가려진 아이들의 상처를 보려 한다. 그러니까 어른들의 세심한 보살핌과 관심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 외에 모든 게 벌점으로 이어지는 학교를 꼬집는 「불편한 진실」, 학교의 입장만 앞세워 성적으로 아이들을 상, 중, 하로 나누고 입시만을 강요하는 교육 현실을 고발하는 「꿈을 지키는 카메라」,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렸지만 그대로 답습하는 안타까운 모습의 「주먹은 거짓말이다」, 오랜 시간 심각한 따돌림으로 인해 자살한 친구를 기억하며 폭력에 맞서기 위해 용기를 내는 소녀의 이야기 「내게도 날개가 있었다」를 통해 김중미는 책을 빌려 학교 폭력과 따돌림에 대해 직구를 던진다. 허구가 아니라 실제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소재를 현실감있게 그려내고 있다. 해서 생생한 고통과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책을 읽으면서 이 사회가 청소년을 청소년이 아닌 어른으로 보고 책임과 의무를 강요하고 있었다는 게 부끄럽다. 학교라는 공간에서 보호 받아야 할 아이들, 올바른 길로 나갈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는 걸 잊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과연 이 같은 현실에서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갖으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이들의 상처가 얼마나 깊은지 얼마나 아파하는지 어른들은 너무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라도 우리 어른들이 바뀌고 변해야 한다. 아이들이 멋진 날개를 펼칠 수 있는 세상을 위해, 작가의 말처럼 말이다.

 

 ‘학교 폭력을 막는 것은 가치의 전환부터 시작해야 한다. 열등과 우등을 가르지 않고, 일등과 꼴등을 차별하지 않고, 불의에 눈감고 정의를 외면하는 현실을 비판하고, 부끄러움과 염치가 무엇인지 알게 해야만 한다. 그러려면 세상이 바뀌어야 하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사회와 세상을 탓하며 그 폭력에 무릎 끓거나 모르는 척할 수는 없다. 거대한 집단에서 겨우 몇 사람의 회심이나 용기가 폭력의 고리를 끊을 수는 없다. 그러나 한 사람, 또 한 사람의 작은 용기와 회심이 모이면 언제가는 바뀔 수 있다.’ <267쪽, 작가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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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바퀴 아래서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02
헤르만 헤세 지음, 한미희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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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이 자기 자리를 찾아야만 완성되는 퍼즐이라면 그 과정을 견디기만 하면 될 것이다. 그것은 자리의 존재 여부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러니까 인생은 그 자리에 대한 확신을 찾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그 자리를 스스로 찾아 나서고 누군가는 정해진 자리에 만족하기도 한다. 과연, 어떤 삶이 행복한 것일까?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는 한스의 짧은 생을 통해 무척 어려운 질문을 던진다.

 

 주인공 한스는 정해진 자리가 아닌 자신의 자리를 찾으려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왜냐하면 한스의 생은 한스가 아닌 주변 어른들에 의해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목사님, 교장 선생님은 그가 신학교에 입학하여 목사나 교사가 되어야 한다고 강요했다. 물론 한스에게는 충분한 재능이 있었다. 주변의 높은 기대와 관심이 한스를 짓눌렀지만 단 한 번도 표현할 수 없었다. 그들이 정해준 자리에 자신을 맞춰야만 했다.

 

 신학교에 입학하여 친구 하일너를 만나면서 한스는 조금씩 변화한다. 무엇이든 당당하고 자유로운 하일너와 단단한 우정을 키운다. 하지만 제도와 관습에 반하는 행동을 보인 하일너가 징계를 받았을 때 한스는 그를 옹호할 수 없었다. 한스의 마음에는 언제나 아버지와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닿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건 날품팔이꾼이나 하는 짓이야. 너는 모든 공부를 좋아서 자발적으로 하는 게 아니야. 단지 선생님들이나 아버지가 무서워서 하는 거라고. 1등이나 2등이면 뭐해? 나는 20등이지만 성적에 목을 매는 너희 공부벌레들보다 멍청하지 않아.” 95쪽

 

 성적과 대학 입시에 얽매였던 시간을 돌아보면 하일너의 말은 전적으로 옳다. 그러나 학생으로 공부에 주력하는 한스도 이해할 수 있다. 이처럼 십 대라는 시기는 애매하다. 어떤 신념이나 자아가 확립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니라는 말이다. 하지만 그 시기를 보낸 어른들에게는 한스만이 옳았다. 하일너는 그 틀을 스스로 벗어던졌고 그곳에 남은 한스는 학업에 매진하지만 신경쇠약으로 집으로 돌아온다.

 

 아무도 그의 마음을 위로하거나 달래주지 않았다. 한스에게 기대를 갖는 이는 없었다. 이제 그는 마을의 희망이 아니었다. 거기다 사랑의 아픔까지 겪어야만 했다. 왜 그를 안아주는 이가 없었을까. 잠깐의 꾀도 부리지 않고 공부만 했던 한스에게 필요했던 건 서기나 기계공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괜찮다는 말이었다. 아니, 서기나 기계공이 얼마나 즐겁고 행복한 일인지 알려줘야 했다. 기계공이 되기로 하고 수습공의 길을 걷는 한스가 힘든 그 과정을 이겨 나갈 수 있도록 말이다. 한스는 어떤 것에도 삶의 의미를 찾지 못했다. 자연이 주는 평온만이 유일한 행복이었다.

 

 ‘겨울이 오기 전에 과일주스의 이 향기를 마시는 건 좋은 일이다. 이 향기를 마시면서 헤아릴 수 없이 많았던 멋지고 좋은 일을 감사한 마음으로 기억하기 때문이다. 소리 없이 내리는 5월의 이슬비와 좍좍 쏟아지는 여름비, 서늘한 가을 아침이슬과 봄날의 포근한 햇볕과 여름의 뜨거운 뙤약볕, 하얗게 또는 장밋빛으로 빛나는 꽃들, 수확을 앞둔 잘 익은 과일나무의 적갈색 윤기, 그리고 그 사이사이 한 해가 주는 갖가지 아름다운 일과 즐거운 일들을 말이다.’ 164쪽

 

 어쩌면 이토록 평범한 것들이 주는 즐거움을 너무 빨리 알게된 게 한스의 불행인지도 모른다. 아등바등하며 살아가는 것들이 허무하게 여겨졌을 테니 말이다. 한스에게 좋은 집과 높은 지위와 명예를 얻기 위한 삶이 아니라 하일너처럼 느끼는 대로 원하는 대로 살아야 하다고 말해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아버지나 목사, 교장 선생님 중 누구라도 한스에게 원하는 만큼 낚시를 해도 좋다고, 신학교에 떨어져도 괜찮다고 말을 해줬더라면 그는 그토록 불안해하지 않았을 것이다. 인생이라는 자신만의 퍼즐을 잘 맞춰가고 있을 것이다. 아니 퍼즐 한 조각 잃어버렸다고 좌절하지 않을 것이다. 계절이 바뀌는 게 당연한 것처럼 분명 한스의 절망과 고뇌는 다른 이름이 되어 빛났을 것이다. 자신의 자리를 찾고자 방황하는 수많은 한스와 그들에게 걱정스런 시선을 걷어내지 못하는 어른들이 이 책을 읽기를 바란다. 우리는 더이상 또다른 이름의 한스를 잃어서는 안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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