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 - 이윤기가 말하는 쓰고 옮긴다는 것
이윤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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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에 대한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글쓰기란 제목을 지닌 책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어떤 목표를 향해 나가고 있지 않더라도 말이다. 목차를 훑어 내고 저자를 확인할 것이다. 그런 이유로 고 이윤기의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 는 당연 읽어야 할 책으로 분류될 것이다. 번역가, 소설가, 신화전문가 이윤기가 들려주는 글쓰기의 노하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번역과 글쓰기에 대한 39편의 에세이를 통해 이윤기의 생생한 말과 글을 마주할 수 있다.  그가 쓴 소설과 번역한 작품을 접한 이라면 더욱 반갑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고백하자면 나는 그의 작품을 세 네 권 읽었고 읽지 않은 소설과 산문집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그의 열혈 독자라 할 수 없다. 이 책을 통해 그가 신화에 대해 깊은 애정을 소설에 녹여내고 있다는 걸 알았다. 더불어 문학, 번역, 언어에 대한 생각도 만날 수 있다. 문학에 대한 그의 글에서 단호함이 전해진다. 새로운 무언가를 창작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말이 숨어 있다.

 

 ‘나는 문학을, ‘이름 붙일 수 없는 것’ 에다 이름을 지어 붙이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이름 붙일 수 없는 것’ 에다 이름을 붙이는 행위이지 ‘저 자신’ 에게 이름을 지어 붙이는 행위는 아닌 것이다. 학문은 나날이 쌓아야 하고, 도는 나날이 비워야 하듯이 ‘이름 붙일 수 없는 것’ 에다 지어 붙이는 이름은 나날이 늘려야 하고 ‘제 이름’ 에 붙는 이름은 나날이 지워가야 하는 것이다. 남의 얼굴 보고 이름을 지어야지 제 얼굴 보고 이름 지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67~68쪽, <얼굴 보고 이름 짓기> 중에서)

 

 뿐만 아니라 번역에 대해서도 그가 얼마나 단어, 문장에 본 뜻을 전하려 애썼는지 알 수 있다.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오역에 대한 사례도 들려준다. 그는 자신을 가장 행복하게 만들고 비참하게 만들어준 책으로 『장미의 이름』을 꼽으면서 오역에 대한 부분을 솔직하게 개정판의 글을 통해 인정한다. 그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는 철저하게 반성한다. 자유로운 영혼인 ‘그리스인 조르바’ 의 생생한 모습을 만날 수 있는 건 이런 그의 노력 덕분인 것이다. 정말 멋진 작가다.

 

 이 책은 비단 문학이나 번역처럼 전문적인 글쓰기에 대한 책만은 아니다. 이윤기의 글을 통해 우리는 말과 글을 제대로 사용하고 쓰고 있는지, 말이 지닌 의미를 올바르게 전달하고 있는지 묻기 때문이다. 속어, 비어, 줄임말을 많이 사용하는 현실을 돌아보게 만든다.

 

 ‘내가 부리는 말, 내가 부릴 말은, 되도록 많은 사람이, 되도록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말이다. 필요하다고 느껴지면 한자나 영어를 병기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극소수의 독자에게나마 정확한 의미를 전달할 필요를 느낄 때만 그렇게 한다. 하지만 한글 표기만으로도 의미가 정확하게 전달되는 경우가 굉장히 많아져서 그럴 필요를 느낄 때가 점점 줄어가고 있다.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272~273쪽, <내가 부리는 말> 중에서)

 

 많은 말을 하고 싶은 책이다. 그만큼 강렬하다. 다만 그대로 전하지 못해 안타까울 뿐이다. 단언컨대 이 책을 읽은 많은 이가 그의 책을 펼칠 것이다. 글을 통해 여전히 살아 있어 조르바처럼 춤추는 이윤기를 만날 것이다. 생각만으로도 설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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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여행자들 오늘의 젊은 작가 3
윤고은 지음 / 민음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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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난은 우울증 같은 거라 어디에든 잠재했다. 자극이 임계점을 넘으면 그 우울증이 곪아 터지기도 하지만, 용케 숨어 한평생을 마무리하는 경우도 있다.’ 12쪽

 

 예기치 못한 사고, 질병은 예외도 없이 모두에게 닥칠 수 있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 앞에 내가 아닌 남에게만 일어나는 일이라고 위무하며 살아갈 뿐이다. 그러니 타자의 시선에서 누군가의 불행은 안타까운 감정, 그 범주를 벗어날 수 없다. 미약하나마 성금이나 자원봉사라는 행위를 통하여 할 일을 다했다고 자부한다. 그것이 우리의 모습이다. 윤고은의 『밤의 여행자들』도 다르지 않다. 재난을 바라보는 시선을 통해 진짜 재난이 무엇인지 묻는다.  

 

 주인공 요나는 정글이란 여행사에 근무한다. 정글에서 요나가 기획하는 여행상품은 재난 여행이다. 말 그대로 지진, 태풍, 가뭄, 화산, 쓰나미, 해일 이 발생한 재난 지역을 여행하는 것이다. 10년 동안 근무한 요나는 정글에서 퇴출 대상으로 상사 김으로부터 성추행까지 당한다. 정글에서 최대 위기에 처한 요나에게 김은 휴가 겸 출장을 권한다. 기획자가 아니라 여행자가 되어 재난 상품을 검토해보라는 것이다.

 

 ‘재난이 한 세계를 뚝 끊어서 단층처럼 만든다면, 카메라는 그런 단층을 실감하도록 돕는 도구였다. 카메라가 찰칵, 하는 순간 그 앞에 찍힌 것은 이미 인물이나 풍경이 아니다. 시간의 공백이다. 때로는 지금 살고 있는 시간보다 짧은 공백이 우리 삶에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있었다. 요나는 생각했다. 어쩌면 모든 여행은 시작되기 전에 이미 출발선을 넘은 게 아닐까, 하고. 여행은 이미 시작된 행보를 확인하는 일일 뿐.’ 35쪽

 

 요나가 선택한 여행지는 ‘사막의 싱크홀’ 란 상품으로 베트남 남부의 무이라는 섬이다. 5박 6일의 일정으로 섬의 사막에 위치한 싱크홀을 둘러보고 홈스테이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곳은 더 이상 재난 지역이 아니었다. 재난을 이용해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불편할 뿐이다. 요나는 일정을 마치고 공항으로 향하는 기차에서 그만 일행과 헤어지고 만다. 신분증과 여권도 없이 무이로 돌아온다. 리조트 매니저는 요나가 정글의 직원임을 확인하고 무이를 위한 새로운 프로젝트를 부탁한다. 더불어 리조트와 무이를 지배하는 폴에 대해 들려준다. 요나가 여권도 역시 폴에게 있다는 사실이 그것을 증명해주었다.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요나는 새로운 재난 시나리오를 만드는 제안을 받아들인다.

 

 ‘재난 여행을 준비할 때는 어느 각도로 칼을 들이대도, 누구나 감동하고 슬퍼할 만한 재난의 단면들이 나타나도록 고심해야 한다. 사람들의 동공을 움직이는 것은 결국 강렬한 이미지다.’ 145쪽

 

 요나는 새로운 재난 상품을 만들고 한국으로 돌아가기를 원했다. 럭이라는 청년의 도움을 받아 무이 곳곳을 둘러보던 요나는 그곳의 진짜 삶과 마주한다. 어디든 폴의 그늘에 있었다. 폴이 기획한 시나리오는 끔직했다. 무이의 개발을 위해 허위 재난을 만들면서 걸림돌이 되는 가난한 하층민인 수상 가옥 사람들을 이용하고 있었다. 사막에 거대한 구멍을 파는 도구이자 재난으로 발생할  갖가지 사연의 희생자로 말이다. 누군가는 폴의 계획대로 이미 재난을 위해 죽었고, 곧 죽을 것이었다.

 

 ‘사람들은 과거형이 된 재난 앞에서 한없이 반듯해지고 용감해진다. 그러나 현재형 재나 앞에서는 조금 다르다. 이것이 재난임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인식해도 방관하거나, 인식하면서도 조장한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싱크홀은 저편 사막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 있었다.’ 175쪽

 

 무이에서 재난은 곧 현실이었다. 어디 무이 뿐일까? 소설 속 직장이 정글이듯 우리네 삶도 마찬가지다. 때문에 작가는 우리의 삶을 정글이라 단정하고 이야기를 풀어낸 건 아닐까.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재난은 이미 현실에서 발생하고 있다. 긴 불황으로 이어진 청년 실업, 불안한 직장 생활, 거대 권력 앞에서 무너지는 소시민의 삶, 우리가 사는 곳이 무이와 다르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재난 여행이라는 독특하고 기발한 설정을 통해 윤고은이 말하고 싶었던 건 결국 우리 현실이 재난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재난을 극복하는 일은 현실을 이겨내는 것이고, 재난으로부터 소중한 이들을 지켜는 일이다. 그것이 매우 어렵고 힘들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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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은 깊어가고 아침은 느리게 온다. 가장 춥다는 아침을 맞았다. 이제 점점 추워지는 날들만 남은 것일까. 찐 고구마를 먹는 날들이 많아졌다. 이유는 밥이 먹기 싫어서다. 고구마와 커피, 스카프를 두르는 아침, 열어 놓은 창문을 통해 날카로운 바람의 움직임이 들려온다.

 

 어제는 계획적이면서 충동적인 한 권의 책을 주문했고, 리스트는 우선은, 갖고 싶은 책이다. 1913 세기의 여름은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100년 전의 여름, 우리가 알고 있다고 믿는 여름이 존재하는 책일까. 여하튼 갖고 싶다. 하성란의 웃는 얼굴을 표지로 쓴 황순원 문학상 수상작품집 『카레 온 더 보더』, 영화로 화제가 된 코맥 매카시의 카운슬러, 김경집의 『인문학은 밥이다』, 조해진, 신해욱, 김미월의 여행기로 기대만발인『누구나, 이방인,많은 이들이 기다렸을 황정은의 두 번째 장편소설『야만적인 앨리스씨,가와이 간지의 데드맨매력적인 표지와 독특한 제목으로 내용이 더 궁금한 『하품은 맛있다,지인이 강력 추천한 『모든 것은 빛난다』를 담는다.

 

리스트는, 계속 이어질 것이다. 소설가 한강의 시집, 김 숨의 단편집.

 

 

 

 

 

 

 

 

 

 

 

 

 

 

 

 

 

 

 

 

 

 

 

 

 그리고, 이런 시들을 옮긴다.

 

 

 옛 가을의 빛 - 허수경 

 

 개들은 불안한 고독의 날개를 가진 나비를 쫓아다녔다

 저수지에 고인 물의 살 속으로 깊이 침입하던 바람은

 수초를 기슭으로 자꾸 보냈고

 하여 저수지 기슭에는 붉은 물풀들이 행려거지처럼 누워 있었다

 

 고추가 마르던 집 앞에서 빛은 고독한 매운내를 풍기며 앉아

있었다

 가지가 마르던 마당에 보라빛으로 고여들던 어둠은

 할머니가 피우는 담배연기 속으로 들어가 해맑은 죽음의 빛으

로 살아났다

 

 병아리가 종종거리는

 맨드라미가 붉은 손을 자꾸 흔드는

 그 마당에 가만히 앉아서 김칫거리를 다듬던 새댁의 눈 안에 고

인 눈물빛

 

 벙어리 소녀는 낡은 거울 앞에서

 낡은 결혼예복을 입어보았다

 결혼예복 속에는 원앙 두 마리가 낡은 금빛 자수에 안겨 있었다

 낡아가는 빛을 보면서 말을 할 줄 모르는 소녀가  수음을 했다

 

 우물에 기대어 먼 빛만 바라보았다

 묵직한 우울함이 우물에 가라앉은 빛이 될 때

 먼 산숲에서 핀 버섯이 가만가만 공기 속으로 돋아났고

 흙은 아렸다

 

 얼마나 무료한 나날들이 빛 속에 있는가

 그날 죽을 것 같은 무료함이 우리를 살게 했지, 아주 어린 짐승

의 눈빛 같은

 나날이었다

 

 

 갈색의 책 - 이제니 

 

 나 혹은 너는 나무숲에서 오래된 책 한 건을 발굴했다

 나무숲은 꼭 갈색일 필요는 없다 아주 희미한 갈색의 암

시 정도만

 먼지와 빛의 깊이를 지닌 고고학적인 아름다움이라고 해

두자

 

 누군가 경건한 얼굴로 문장을 읽어내려갔다

 행간과 행간은 지독히도 넓었고 침묵 또한 꼭 그만큼 벌

어졌다

 

 정말 가슴 아프게도 들리지 않습니까

 무엇이 말입니까

 소리내어 말할리 없잖아

 

 꿈에서 깼을 땐 단 하나의 단어밖에 기억나지 않았다

 

 어머니,

 흔들리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내가 기억하는 얼룩과 네가 기억하는 얼룩

 흰 것 위에는 검은 것, 검은 것과 흰 것

 

 벌레 먹은 나뭇잎 구멍 사이로 오후 네시의 햇빛이 스러

지듯이

 보도블록 깨진 틈 사이로 모래알들이 쓸여들어가듯이

 

 누구든 좋으니 단 한 사람이라도

 나를 아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떨어져나간 겉장, 제목도 없는 책

 나는 일평생 나라는 책을 읽어내려고 안간힘 썼습니다

 

 갈색의 갈색의 갈색의 책

 

 무슨 말이든지 하세요 그러면 좀 나아질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완전히 침묵하는 법을 배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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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이
최진영 지음 / 창비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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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정적 사고보다는 긍정적 사고가 낫다는 걸 모르는 이는 없다. 하지만 그것조차 버거운 삶이 있다는 걸 모르는 이는 많다. 내 말은 우리의 현실이 의지대로 살 수 있는 삶이 아니라는 거다. 죽을 만큼 노력해도 한 발짝 앞으로 나가기가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땐 어떻게 해야 할까. 누구에게 도움의 손을 내밀고, 누구에게 너덜너덜 찢긴 가슴은 보여줘야 할까. 자유 자재로 슬픔을 표현한 최진영의 소설집 『팽이』를 읽으면서 마음이 답답해졌다. 소설이면서 동시에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책에 수록된 10편의 소설은 평범한 일상의 편린처럼 보인다. 평범이라는 말을 써도 좋다면 말이다. 우선, 표제작 <팽이>의 화자 재이는 단칸 방에서 오빠와 둘이서 산다. 처음엔 엄마도 함께 살았다. 그러다 어느 날 엄마는 엄마의 집을 찾아 미국으로 떠났다. 그러니까 엄마가 아닌 자신의 삶을 찾아 떠난 것이다. 재이는 좀 느린 편이다. 열살이 될 때까지 글자를 다 읽지 못 해서 오빠에게 한글을 배우고 기다리고 책임지는 법을 배운다. 하지만 혼자 사는 법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오빠도 자신의 세상으로 떠나고 어른이 되어서도 혼자 살아간다. 자신이 도는 그 자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팽이처럼 말이다. 누군가 옮겨주지 않으면 멈추고 마는 삶인 것이다.

 

 ‘우리가 허락된 크기만큼 자라는 동안 무너지지도 부서지지도 않고, 우리의 숨과 비밀과 유년을 덧바르며 거듭 견고해진 방. 까만 그곳에서, 야광 팽이가 팽팽 돌고 있었다. 가장 빨리 돌 때의 팽이는 거꾸로 도는 것도 같았고, 꼿꼿이 서서 움직이지 않는 것도 같았다. 나는 거꾸로 돌거나 가만히 서 있는 것인지도 모를 팽이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가만히 지켜봤다.’ (285~286쪽, 팽이 중에서)

 

 <팽이> 속 재이처럼 혼자서야 하는 삶이 당연한 듯 보인다. 하지만 자립은 쉽지 않다. 그러니 꿈을 꾼다는 건 그 자체로 사치라 할 수 있다. 함께 사는 코끼리 앨리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사랑, 믿음, 꿈에 대해 말하는 <앨리> 속 화자도 마찬가지다. 그가 하는 이야기를 진심으로 받아주지 않는다. 그러니 화자가 키우는 코끼리 앨리를 누구에게도 소개할 수 없다. 사랑한다고 믿는 애인은 결혼이란 현실적 문제 앞에 이별로 변하고, 영화를 만들고 싶은 꿈에 대해 형은 정신 차리라 말한다.

 

 ‘불행을 피하겠다는 게 아니다. 진짜로 불행해지는 그때 그 순간 피하지 않고 받아들이면 되지 않나. 하지만 언제 올지도 모를 불행 때문에 현재를 망치고 싶진 않다. 형이 정말 어른이라면, 나를 사랑하고 걱정하는 가족이라면, 내게 미리 불행을 주입하는 대신 내가 진짜 불행해지는 바로 그날 나를 위로하고 쓰다듬어줘야 한다. 위로와 걱정은 일이 일어난 다음에 해도 늦지 않으니까.’ (134쪽, 엘리 중에서)

 

 정확한 이름을 알려주지 않은 채 아버지가 준 장소를 찾지 못하는 이야기 <어디쯤>, 엄마가 죽고 남겨진 빌라에서 혼자 살아가는 <월드빌 401호>속 종철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세상과 단절한 상황에서 불안하고 두려운 삶을 살아간다. 그런가 하면 <창>의 주인공은 비정규직 여성으로 직장에서 왕따를 당한다. 동료들은 한결같이 그녀를 험담하고 상사는 무시한다. 무슨 이유인지 알려주지 않는다. 사회는 그녀를 더욱 외롭게 만드는 존재인 것이다.

 

 모두가 적이 될 수 있는 사회, 불안과 불신이 팽배한 세상, 사랑한다고 믿는 이들조차 나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부모님의 산소에서 갑자기 나타난 3억 돈 가방을 둘러싼 남편과 아내의 갈등을 다룬 <돈가방>이나 출근한 남편이 여고생 강간살인 피의자로 조사를 받는 <남편> 은 믿음에 대해 묻는다. 내 편이라 믿고 모든 걸 다 안다고 믿은 가족을 우리는 진짜 믿고 있을까.

 

 누구도 불행하고자 애쓰지 않는다.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남들보다 더 행복해지려는 욕망을 꿈꾸지 않는다. 다만, 불행이라는 늪을 건너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최진영의 소설 속 인물들이 그렇듯 여전히 불행의 늪에 있다. 그래서 해답이 아닌 문제만 제시한 그녀의 소설이 더 아름답고 더 애틋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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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아침
파스칼 키냐르 지음, 류재화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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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을 알지 못하는 그림을 떠올린다. 어떤 음악을 붙잡는다. 키냐르의 짧은 소설을 덮고 가만히 그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의 떨림과 평안함을 생각한다. 분노와 절규를 내려놓고 울게 만든 음악이다. 그 후로 그 음악은 존재만으로도 위로가 되었다. 음악을 이야기하려는 게 아니다. 어쩌면 키냐르는 그랬을지도 모른다. 태초의 음악에 대해, 음악 이전의 음악에 대해 말이다. 예술가로서 음악의 가치를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17세기 비올라 다 감바의 거장 생트 콜롱브는 사랑하는 아내를 잃는다. 여섯 살과 두 살 난 딸을 키우며 그는 음악에 몰두한다. 오직 음악의 테두리 안에서 생활한다. 두 딸에게 음악을 가르치며 작곡과 연주를 이어가고 왕실의 부름을 거절한다. 자신만의 오두막에서 죽은 아내를 그리워하며 활을 켠다. 콜롱브가 존재 자체로의 음악가였다면 그의 제자 마레는 놀라운 기교의 기술자였다. 마레는 자신의 음악을 통해 명예를 얻고 싶었다. 때문에 스승이 작곡한 곡이 궁금했고 왕실 음악가로 입궁이 자랑스러웠다. 콜롱브와 마레는 음악에 대한 견해와 욕망이 달랐다.

 

 “활을 켤 때 내가 찢는 것은 살아 있는 내 작은 심장 조각이네. 내가 하는 건 어떤 공휴일도 없이 그저 내 할 일을 하는 거네. 그렇게 내 운명을 완성하는 거지.” 75쪽

 

 스승은 음악의 본질에 다가가므로 자신의 생을 이어갈 수 있다고 믿었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마레는 스승의 큰딸과 사랑을 나누지만 둘째 딸의 유혹을 마다하지 않는다. 반면 콜롱브에게 아내는 죽은 이가 아니었다. 12년이 지났지만 아내와 함께했던 침대에서 여전히 온기를 느낀다. 때문에 콜롱브가 그토록 원했던 아내 역시 음악을 연주하는 동안 환영(幻影)으로 마주할 수 있었다. 말이 아닌 음악으로 아내를 불러온 것이다. 수척하게 여윈 검버섯이 핀 손을 보며 아내에게 가까이 가고 있다고 믿는 남자. 다정한 말 한 마디를 전하지 못한 아내를 위한 연주라고 하면 맞을까. 그런 남편에게 아내의 환영은 어디에나 음악이 존재함을 전한다. 음악이 이승과 저승을 연결해주는 통로이자 묘약인 것처럼.

 

 “바람이 되면 고통이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가끔 이 바람은 우리에게까지 약간의 음악 조작들을 실어 나른답니다. 가끔 빛은 당신의 눈빛에까지 우리 모습의 조각들을 던진답니다.” 92쪽

 

 아내를 이어 큰딸을 잃은 콜롱브는 오랜 시간 연주를 하지 않는다. 들려주기 위한 연주가 아니었지만 함께 공유하지 못하는 연주는 의미가 없었던 것이다. 스승의 연주를 들을 수 없을지도 생각에 마레는 3년 동안 밤마다 오두막을 드나들다 드디어 그의 연주를 듣는다. 늙은 스승이 딸들과 함께 연주했던 곡을 연주한다. 마레는 스승에게 마지막 수업을 청한다. 평생을 서로 다른 길을 간 스승과 제자는 결국 마지막에서야 비로소 함께 연주하고 음악으로 하나가 된다.

 

 음악은 어디에서 시작된 것이며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것일까. 콜롱브의 말처럼 ‘말이 말할 수 없는 것들을 말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일까. 역사 속 기록으로 남은 위대한 예술가의 삶을 반추한 소설을 통해 우리는 음악이 존재만으로도 그 가치를 스스로 증명하고 있음을 확인한다. 비단 음악뿐일까.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우리가 모르는 신비한 비밀을 갖고 있을 것이다.

 

 “음악은 말이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기 위해 그저 거기 있는 거라네. 그런 의미에서 음악은 반드시 인간의 것이라고 할 수 없지” 118쪽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나는 음악을 듣는다. 침묵만큼 적요하게 흐르는 음악, 말이 말할 수 없는 것들을 들려주는 음악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가. 내가 닿지 않는 세계에도 분명 음악은 존재하는 것이다. 그 세계가 과거이든 미래이든 우리를 위로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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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3-10-02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악이 없는 세상은 상상하기 어려울 것 같아요. 멋진 글 잘 읽었습니다.

자목련 2013-10-03 11:07   좋아요 0 | URL
음악이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확인했다고 할까요. 파스칼 키냐르를 더 알고 싶게 만든 책이었어요. 남들은 다 아는 걸 저는 이제서야,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