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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라이프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3
앨리스 먼로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2월
평점 :
소설을 읽는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것은 사실일 수도 있고 거짓일 수도 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누군가에서 나로 바뀔 수 있다. 때문에 우리는 소설을 읽는 건 아닐까. 소설이야말로 꾸며진 이야기라는 완벽한 신뢰를 바탕으로 가장 내밀한 우리네 삶과 대면할 수 있는 최고의 통로다. 앨리스 먼로의 『디어 라이프』를 통해 그 확신에 한 발 다가선다.
열네 편의 소설은 고스란히 우리의 이야기다. 그러니까 때로 평범함에서 특별함을 꿈꾸는 일탈의 조각들, 아득한 기억 속에 숨 쉬는 어떤 기억들, 하나의 사건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들로 채워진 소설집이다. 하여 어떤 단편은 지루하게 읽히기도 하고, 어떤 단편은 조미료 맛이 그리운 음식처럼 무미건조했고, 어떤 단편은 고즈넉했고, 어떤 단편은 은밀하게 다가온다. 우리 삶이 특정한 감정으로 말하여질 수 없듯 말이다. 놀라운 건 앨리스 먼로의 삶에 대한 통찰력이다. 그것은 여든을 넘은 작가만이 보여줄 수 있는 최고로 아름다운 산물이다.
단편마다 나의 이야기처럼 소름이 돋고 빠져드는 이유가 그 증거다. 한 남자의 아내로 딸의 엄마로 살아가면서 시인이라는 완벽한 자아까지 갖춘 한 여성의 일탈과 마주하는 <일본에 가 닿기를>는 어떤 특별함을 꿈꾸는 이들에게 묘한 충만을 안겨주기도 한다. 남편이 아닌 남자를 향한 욕망에 충실하려는 뜨거운 열망이 끝나 뒤에 남겨진 죄의식이 현실을 지배하게 만들지만 말이다. ‘죄. 그녀는 다른 것에 관심을 기울였었다. 결연하고 탐닉적인 관심을 아이가 아닌 다른 것에 기울였었다. 죄.’ (일본에 가 닿기를, 39쪽)
정말 그것은 죄일까. 다른 어떤 말로는 표현될 수 없는 마음일까. 앨리스 먼로는 이처럼 판단은 독자의 몫으로 돌린다. 다른 소설에서도 마찬가지다. 아마도 그건 누구나 그런 상황과 마주할 수 있다는 암시인지도 모른다. <아문센>은 계획된 대로 모든 게 흘러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보여준다. 시골 요양원의 권위적인 의사와 도시에서 그곳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여교사. 둘은 그 자체로 주변인의 관심과 수다의 주인공이 된다. 여교사와 의사는 사랑을 나누고 결혼식을 하러 떠난다. 하지만 그들은 결혼하지 않는다. 무엇이 그들이 결별해야 하는지, 자세히 알려주지 않는다. 그저 그들이 헤어지는 장면과 몇 년 후 다시 조우하는 모습을 통해 설명할 수 없는 어떤 통증으로 짐작할 뿐이다. ‘여전히, 우리가 그 무리에서 빠져나오면 금방이라도 다시 함께 할 수 있을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각자 가는 길을 계속 갈 것이라는 사실 또한 그만큼 확신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했다.’ (아문센, 87쪽)
우리 생엔 이처럼 명확하게 이름을 붙일 수 없는 시절도 있다. 슬프도록 아름답거나 가혹하게 잔인한 시절이 그러하다. 어머니가 아버지가 아닌 닐이라는 다른 사랑을 선택해 원하지 않는 변화를 겪어야 하는 아이의 이야기<자갈>에서 어른이 아닌 아이들에게 생은 더욱 잔인하다. 유치원에도 다니지 않았을 나이인 나는 가족처럼 기르던 개를 물에서 구하기 위해 죽은 언니 카로를 평생 가슴에 담고 살고 있다. 왜 그런 상황이 일어났는지 그 과경을 목격한 나의 상처를 돌아봐 줄 이는 왜 없었을까. 여전하게 트라우마로 따라다니는 장면, 어른이 되어 만난 닐의 말은 슬픔의 크기를 줄어들게 만든다.
“중요한 건 행복해지는 거야. 뭐가 어떻든 간에, 그냥 그러려고 해봐. 넌 할 수 있어. 하다보면 점점 쉬워질 거야. 주변 상황과는 아무 상관없어. 그게 얼마나 좋은 건지 넌 모를 거야. 모든 걸 받아들이면 비극은 사라져. 혹은 가벼워지지. 어쨌든 그러면 그저 그 자리에서 편하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게 돼.” (자갈, 142쪽)
그럴지도 모른다. 모든 걸 받아들이면 비극이 희극이 되지는 않겠지만 옅어질 것이다. 그런 지혜를 배울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하는 게 우리 삶이라고 앨리스 먼로는 말한다. 고요하고 나직한 목소리로 말이다. 누구나 늙고 죽는다. 늙는다는 건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 아무도 알지 못하는 나만의 비밀 하나쯤 품었다면 서글픔이 사라질까. 부유한 아버지를 둔 소아마비를 앓는 여자 코리와 유부남인 젊은 건축가의 밀회를 다룬 <코리>는 그런 비밀이다. 둘의 관계를 알고 협박하는 이가 있지만 개의치 않고 오랜 시간 만남을 유지한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 숨 막히고 떨리는 생의 한 장면을 떠올리며 행복할 수 있다면 삶은 찬란할 것이다.
모든 삶이 그럴 수 있을까. 당신 혹은 나의 삶도 <호수가 보이는 풍경>처럼 머리에서 맴도는 기억들이 어지럽게 존재할 수 있다. 사랑하는 이는 모두 먼저 떠나고 요양원에서 나를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삶. 거부할 수 없는 생의 진실이다. 앨리스 먼로는 현재형인 삶이 과거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과 사라졌다고 믿는 과거가 현재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고 말한다. 자전적 소설인 어린 시절 동생들의 태어남을 통해 탄생을 경험하고 친밀했던 이의 죽음으로 처음 시체를 발견하는 <시선>, 알 수 없는 충동과 불안으로 잠들지 못하는 밤의 감정을 정교하게 묘사한 <밤>, 교사였던 어머니와 동행한 댄스파티에서 성에 대해 눈 뜨는 이야기 <목소리들>, 내가 아닌 타자他者가 되어 가족, 특히 어머니에 대해 담담하게 들려주는 <디어 라이프> 를 통해 말이다. 그것은 단순한 진리이자 대단한 발견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어떤 일들은 용서받을 수 없다고, 혹은 우리 자신을 결코 용서할 수 없다고. 하지만 우리는 용서한다. 언제나 그런다.’ (디어 라이프, 416쪽)
일기를 다시 써야겠다. 사라질 시간에 대한 기록, 내가 모르고 지나온 삶의 기척을 모을 수 있도록 말이다. 어제가 되는 오늘을 가만히 꺼내볼 시간을 기약할 수 없지만, 어쩌면 사라질지 모르는 일상이라는 찰나를 몇 줄의 메모로 붙잡고만 싶어진다. 모든 게 앨리스 먼로 때문이다. 고백하자면 노벨문학상 수상을 통해 앨리스 먼로를 알게 되었다. 그러니 아무런 기대나 설렘 없이 그녀의 글과 만났다. 열네 편의 단편은 시냇물이 흐르고 흘러 생이라는 바다에 닿는 여행 같았다. 그 물길은 때로 요란하게 요동치기도 하고 어디선가 날아온 부유물과 함께 흘러간다. 긴 시간 흘러 바다에 닿았을 때 우리는 비로소 충만해진다. 누군가의 이야기가 나의 그것이라는 명백한 진실과 맞닿는 순간 소설이 아닌 현실에서도 다르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