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나는 없었다 애거사 크리스티 스페셜 컬렉션 1
애거사 크리스티 지음, 공경희 옮김 / 포레 / 201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누가 봐도 행복한 한 여자가 있다. 조앤, 그녀는 남편과 아이들을 사랑하며 돌보는 삶이 최고라고 믿는다. 변호사라는 멋진 직업이 아닌 농부가 되겠다는 남편의 간절한 꿈을 아무렇지 않게 접어버린다. 자신이 그려놓은 그림처럼 남편과 아이들이 움직여주기를 바란다. 첫 딸의 불같은 사랑으로 그녀의 인생 계획이 수정되나 싶었지만 조앤의 뜻대로 이뤄졌다. 조앤은 언제나 타인을 의식하며 살아왔다. 그리고 그런 삶이 성공이라 자부한다.

 

 정말 행복은 그런 것일까? 막내딸의 병간호를 끝내고 런던으로 돌아오던 중 여고 동창 블란치를 만난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반가움보다 불편함이 더 컸다. 블란치가 내뱉은 조앤의 딸에 관한 이야기 때문이다. 조앤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말투였다. 공교롭게 폭우로 인해 기차는 오지 않고 사막의 숙소에서 머문다. 기차가 언제 도착할지 모르는 상황, 사막에서 조앤은 묘한 시간을 경험한다. 오직 자신만의 시간이라 여기지만 블란치의 말이 계속 맴돈다.

 

  조앤은 자식들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로드니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몰랐다. 그들을 사랑했지만 알지는 못했다. 알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사람들을 사랑하면 그들에 대해 알아야 하는 건데. 참된 진실보다도 유쾌하고 편안한 것들을 사실이라고 믿는 편이 훨씬 수월하기 때문에, 그래야 자신이 아프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에 대해 몰랐다.’ (201~202쪽)

 

 남편 로드니와 아이들과 보냈던 지난 삶이 떠오른다. 엄마의 방문을 반기지 않았던 막내딸 내외, 마찬가지로 아내가 먼 길을 떠나는데 전혀 아쉬워하지 않았던 남편. 엄마 때문에 아빠가 농장 생활을 포기했다던 아들 토니의 말이 불현듯 살아난다. 조앤의 결정은 모두 남편과 아이들을 위한 것이었다. 뜨거운 사막의 열기 속에서 혼자가 된 조앤은 모든 게 혼란스럽다. 남편이 자신에게 했던 말과 행동은 진심이었을까. 아니면, 남편은 조앤이 모르는 진실을 감추고 있는 건 아닐까. 완벽하게 위장된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하고 초조하다.

 

 ‘사막에 온 건 그것 때문이다. 이 맑고 무지막지한 빛줄기가 그녀에게 자신의 본래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그동안 외면했던 모든 진실을 보여줄 것이다. 사실은 그녀도 다 알고 있었던 모든 것을 보여줄 것이다.’ (213쪽)

 

 사막에서 조앤은 자신의 내면을 들킨 것만 같다. 런던으로 돌아가면 달라질 것이라 다짐한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강요했던 감정이 아닌 남편과 아이들이 원하는 감정을 받아들이겠다고 말이다. 하지만 변화가 그리 쉽던가. 사막의 조앤은 사라지고 예전 그 모습의 조앤만 존재할 뿐이다.

 

 ‘로드니는 지쳤지만 친절한 눈빛으로 아내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밝고 유능하고 분주한, 자신에게 만족하는, 성공한 사람의 모습이었다. 이 여자는 스물여덟 살로부터 하루도 늙지 않은 것 같군. 그는 생각했다.’ (260쪽)

 

 부족함이 없는 중년 여인 조앤을 통해 오정희 소설 「어둠의 집」속 주인공이 떠올랐다. 자신의 품을 떠나버린 자식들, 텅 빈 집 안에 혼자 남은 중년의 삶은 닮은 듯 다르다. 적어도 조앤은 외롭거나 쓸쓸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어쩌면 그것은 로드니의 생각처럼 조앤만의 착각인지도 모른다. 조앤은 여전히 당당한데 그 황망한 사막에 혼자 서 있는 듯 허전한 기분을 감출 수 없는 건 왜 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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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은 딸이다 애거사 크리스티 스페셜 컬렉션 2
애거사 크리스티 지음, 공경희 옮김 / 포레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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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놀랍도록 섬세한 내면 묘사에 감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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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 나는 없었다 애거사 크리스티 스페셜 컬렉션 1
애거사 크리스티 지음, 공경희 옮김 / 포레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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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내가 사라진 봄을 마주하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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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를 읽으면서 감정이입이 되는 건 좋은 일일까, 아니면 나쁜 일일까. 하나의 사건으로 삶의 방향이 달라지는 소설 속 인물을 따라 능동적으로 감정이 변화하는 것과 달리 시는 어떤 상황을 상상하게 만든다. 그러니까 내게 시는 조금 더 복합적인 이미지를 안겨준다. 나희덕의 시를 많이 읽지 않았기에 섣불리 좋아한다고 말할 수 없었다. 한데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을 읽으면서 나는 이 시집 좋아서, 지인에게 좋다고 말했다. 어쩌면 이런 시를 읽으면서 내가 견디는 시간을 누군가도 견디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문들 뜯고 네가 살던 집에 들어갔다

 문을 열어줄 네가 없기에

 

 네 삶의 비밀번호는 무엇이었을까

 더 이상 세상에 세 들어 살지 않는 너는 대답이 없고

 열쇠공의 손을 빌려 너의 집에 들어갔다

 

 금방이라도 걸어 나갈 것 같은 신발들

 식탁 위에 흩어져 있는 접시들

 건조대에 널려 있는 빨래들

 화분 속 말라버린 화초들

 책상 위에 놓인 책과 노트들

 

 다시 더러워질 수도 깨끗해질 수도 없는,

 무릎 끓고 있는 물건들

 

 다시, 너를 앉힐 수 없는 의자

 다시, 너를 눕힐 수 없는 침대

 다시, 너를 덮을 수 없는 담요

 다시, 너를 비출 수 없는 거울

 다시, 너를 가둘 수 없는 열쇠

 다시, 우체통에 던져질 수 없는, 쓰다 만 편지

 

 다시, 다시는, 이 말만이 무력하게 허공을 맴돌았다

 

 무엇보다고 네가 없는 이 일요일은

 다시,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저 말라버린 화초가 다시, 꽃을 피운다 해도

 ―「다시, 다시는」전문, 46~47쪽

 

 이곳에서 나는 남아돈다

 너의 시간 속에 더 이상 내가 살지 않기에

 

 오후 네 시의 빛이

 무너진 집터에 한 살림 차리고 있듯

 빛이 남아돌고 날아다니는 민들레 씨앗이 남아돌고

 여기저기 돋아나는 풀이 남아돈다

 

 벽 대신 벽이 있던 자리에

 천장 대신 천장이 있던 자리에

 바닥 대신 바닥이 있던 자리에

 지붕 대신 지붕이 있던 자리에

 알 수 없는 감정의 살림살이가 늘어간다

 

 잉여의 시간 속으로

 예고 없이 흘러드는 기억의 강물 또한 남아돈다

 

 기억으로도 한 채의 집을 이룰 수 있음을

 가뭇없이 물 위에 떠다니는 물새 둥지가 말해준다

 

 너무도 많은 내가 강물 위로 떠오르고

 두고온 집이 떠오르고

 너의 시간 속에 있던 내가 떠오르는데

 

 이 남아도는 나를 어찌해야 할까

 더 이상 너의 시간 속에 살지 않게 된 나를

 

 마흔일곱, 오후 네 시,

 주문하지 않았으나 오늘 내게로 배달된 이 시간을

 ―「잉여의 시간」전문, 101~102쪽

 

 사랑하는 이의 부재를 마주하는 일은 온몸의 피가 모두 증발해버릴 것만 같은 고통을 견디는 것이다. 다시 만질 수 없는 사람, 나의 부름에 다시는 대답을 들려줄 수 없는 사람, 선명하게 떠오르지 않는 얼굴을 가진 사람을 생각한다.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의도가 내가 느끼는 그것이 아니더라도 괜찮다. 어쩌면 ‘너’는 의미 없는 대상이며 단어일지도 모른다. 그저 잠시라도 슬픔의 조각을 잘라버릴 수 있으면 된다.

 

 말들이 돌아오고 있다

 물방울을 흩뿌리며 모래알을 일을키며

 바다 저편에서 세계 저편에서

 

 흰 갈기와 검은 발굽이

 시간의 등을 후려치는 채찍처럼

 밀려오고 부서지고 밀려오고 부서지고 밀려오고

 

 나는 물거품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이 해변에 이르러서야

 히히히히힝, 내 안에서 말 한 마리 풀려나온다

 

 말의 눈동자,

 나를 잠시 바라보다더나 파도 속으로 사라진다

 

 가라, 가서 돌아오지 마라

 이 비좁은 몸으로는

 

 지금은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수만의 말들이 돌아와 한 마리 말이 되어 사라지는 시간

 흰 물거품으로 허공에 흩어지는 시간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전문, 18~19쪽

 

 과연 소멸하지 않는 존재가 있을까? 그럼에도 우리는 사라지는 것들로 인해 아파한다. 때로 그로 인한 슬픔은 말을 잃게 만든다. 싸매두었던 말들이 터져 나올 때 힘차게 달리는 말(馬)과 같을 것이다. 그리고 파도 속으로 사라진 말(言)은 말이 되어 나오지 못한 말들일 것이다. 다시 말이 되어 나오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할 거라는 걸 알지만 말을 잃은 슬픔을 곁에서 지켜보기란 힘들다. 시인은 눈물로 흐르는 말들, 몸짓으로 전해지는 말들이 돌아는 시간을 간절히 바랐던 건 아닐까. 그래서 고마운 것이다.

 

 너는 혀가 아프구나,

 어디선가 아득히 정신을 놓을 때

 자기도 모르게 깨문 것이 혀였다니

 아, 너의 말이 많이 아프구나

 

 무의식중에라도 하고 싶었던,

 그러나 강물처럼 흐르고 또 흘러가버린,

 그 말을 이제야 듣게 되는구나

 고단한 날이면 내 혀에도 혓바늘처럼 돋던 그 말이

 오늘은 화살로 돌아와 박히는구나

 

 얼마나 수많은 어리석음을 지나야

 얼마나 뼈저린 비참을 지나야

 우리는 서로의 혀에 대해 이해하게 될까

 

 혀의 뿌리와 맞닿은 목젖에서는

 작고 검고 둥글고 고요한 목구멍에서는

 이제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다

 말이 말이 아니다

 

 독백도 대화도 될 수 없는 것

 비명이나 신음, 또는 주문이나 기도에 가까운 것

 

 혀와 입술 대신

 눈이 젖은 말을 흘려 보내는 밤

 손이 마른 말을 만지며 부스럭거리는 밤

 

 너에게 할 말이 있어

 아니, 더 이상 할 수 있는 말이 없어

 이생에서 우리가 주고받을 말은 이미 끝났으니까

 

 그러니 네 혀가 돌아오더라도

 끝내 아픈 말은 들려주지 말기를

 

 그래도 슬퍼하지 말기를,

 끝내 하지 못한 말은 별처럼 박혀 있을 테니까

 ―「상처 입은 혀」전문, 52~53쪽

 

 이 시집에서 누군가는 죽음을 보고 누군가는 슬픔을 보고 누군가는 삶의 뿌리를 볼 것이다. 짐작했겠지만 나는 죽음을 보았다. 그것은 곧 삶이었다. 왜냐하면 이제는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는 게 변하지 않는 진리라는 걸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꾸 이런 시가 눈에 밟힌다. 어떤 기대도 절망도 없이 살아지는 수많은 삶이 떠오른다.‘삶은 발명이 아니라 발견에 가깝다는 것을’,‘동작은 동작을 낳고 동작은 절망을 낳고 절망은 춤을 낳고 춤은 허공을 낳고’를 따라 읊으며 지속되는 삶의 고단함에 숙여해진다.

 

 

 물방울들은 얼마나 멀리 가는가

 새들은 어떻게 점호도 없이 날아오르는가

 

 그러나 그녀의 발은 알고 있다

 삶은 도약이 아니라 회전이라는 것을

 구멍을 만들며 도는 팽이처럼

 결국 돌아오고 또 돌아올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러나 그녀의 손은 알고 있다

 삶은 발명이 아니라 발견에 가깝다는 것을

 가슴에 손을 얹고 몇 시간째 서 있으면

 어떤 움직임이 문득 손끝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동작은 그렇게 발견된다는 것을

 

 동작은 동작을 낳고 동작은 절망을 낳고 절망은 춤을 낳고 춤은 허공을 낳고

 그녀의 몸에서 흘러나온 길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그녀는 아는가

 돌면서 쓰러지는 팽이의 낙법을

 동작의 발견은 그때야 비로소 완성된다는 것을 

 ―「동작의 발견」전문, 118~119쪽

 

 

 상실과 부재는 익숙해질 수 없는 감정이다. 그러니 슬픔이 지속되는 삶도 존재할 것이다. 문장의 마침표(.)처럼 슬픔을 끝낼 수 없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쉼표(,)처럼 슬픔과 고통에도 쉼표는 필요하다. 나희덕의 시가 그런 역할을 해주는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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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문장은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게 만드는 힘을 지녔다. 어떻게 이런 문장을 쓸 수 있을까, 감탄하면서 읽게 된다. 그게 좋은 문장이냐고 묻는다면 뭐라 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식상한 표현이지만 훔치고 싶고 빠져드는 문장이다.

 

 권여선의 『내 정원의 붉은 열매』에 수록된 단편은 정말 최고의 문장이 아닐까 싶다. 인물의 심리 묘사뿐 아니라 상황을 비유한 문장들은 단연 최고다. 밥을 먹을 때마다 혹은 커피를 마시려고 컵을 고를 때에도 나는 이 문장을 떠올린다. 화분이라는 말에 숨겨진 어떤 의도를 생각하기도 한다. 작가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말이다.

 

 ‘찻잔이나 술잔, 밥공기 같은 것이 결코 화분이 될 수 없던 시절에도, 한쪽 모서리가 기운 사다리꼴의 그 방은 내게 충분히 훌륭한 화분이었다.’

 

 김훈의 장편소설 『내 젊은 날의 숲』과 에세이 『바다의 기별』도 빛나는 문장이 많다. 계절의 변화를 섬세하게 포착한 『내 젊은 날의 숲』은 청랑한 기운이 가득하다. 정제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맛이라고 할까. 아무 곳이나 펼쳐도 숲의 가운데 서 있는 기분이 든다.  

 

 조만간 두 번째 책으로 다시 만날 메리 올리버의 『완벽한 날들』도 그렇다. 특별한 일상이 아닌 평범한 삶의 기록을 담은 책이지만 시인이라 그런지 선택된 단어가 황홀 그 자체다. 겨울이 지난 자리지만 이런 문장을 되새기게 된다. 새벽 5시에 하늘을 본 적이 있던가. 내가 마주하는 공기는 어떤 빛을 보여줄까.

 

 ‘겨울 아침, 나는 5시나 그 전에 계단을 내려온다. 하늘은 검지만 오래가진 않는다. 나는 커피를 끓이고 창문마다 다니며 블라인드를 올리고 밖을 내다본다. 분홍, 귤색, 라벤더색 빛이 동쪽 수평선을 따라 돌진하다가 안개처럼 하늘로 기어올라 어둠의 안쪽 모퉁이에서 바르르 몸을 떤다. 우주의 은밀한 곳! 색깔들이 물 속으로 흘러들고 모든 것이 푸르게 변한다.’

 

 좋은 문장, 아름다운 문장의 첫 시작은 어디서 왔을까.  수없이 많은 퇴고로 탄생된 문장일 것이다. 읽는 것만으로도 충만하니 하나의 문장이 끝났다는 걸 알리는 마침표를 찍을 때 느끼는 희열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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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5-03-07 1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용해주신 권여선의 문장도 좋고, 메리 올리버의 문장도 말씀대로 황홀하네요. 우리 소설이 아닌 외국 서적의 번역본을 읽으며 문장에 감탄하는예는 흔치 않은데 아마 번역자의 능력도 크게 작용하리라 싶어요.
자목련님의 이 글도 좋습니다 새삼스럽지만 ^^ 제가 감상을 쓴다면 이렇게 못 쓸 것 같으니까요.

자목련 2015-03-15 19:18   좋아요 0 | URL
답글이 늦었습니다.
권여선의 문장은 개인적으로 특히 좋아하는 문장입니다.
과한 칭찬 고맙습니다. hnine 님, 포근한 저녁 보내세요^^

2015-03-08 07: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3-15 19:2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