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3일 책의 날이다. 책의 생일지만 매년 이 날을 알려주는 건 서점이다. 4월에 책의 날이 있다는 건만 알뿐 정확한 날짜는 기억하지 못한다. 책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태어나는 수많은 책들. 도서관, 창고, 서점, 화장실, 침대, 기차 안, 지하철, 스마트 폰까지 펼쳐지거나 접히거나 사라지는 책들. 여전히 내게는 정리해야 할 책도 많고 읽어야 할 책도 많다.

 

 책의 날을 맞아 몇 권의 책을 생각한다. 그냥 떠오른 책이다. 가장 최근에 가장 나를 휘어잡은 책은 평범하면서 특별한 한 남자의 이야기 『스토너』, 많은 소설이 나와도 은희경과 하나로 인식되는 『타인에게 말걸기』, 같은 제목의 시집을 출판사, 디자인에 다르게 소장하게 된 정현종 시집 『견딜 수 없네』, 엄태웅의 서툰 연기와 나만의 곰스크를 생각나게 만드는 『곰스크로 가는 기차』, 인생이라는 길고 긴 길을 걷는 우리네 삶 『이런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어쩌면 끝내 완독하지 못할 책과 사람들의 이야기 『젠틀 매드니스』, 그리고 지금 읽고 있는 책은 『에프』.

 

 

 

 

 

 

 

 

 

 

 

 

 

 

 

 

 

 

 

 『에프』의 이런 문장을 지나가고 있다. 의도하지(어쩌면 일부러 이 포스팅을 위해 이 부분에서 멈췄을지도) 않았는데 마침 책에 대한 내용이다.

 

 이반과 에릭과 나는 갈색 포장지의 봉투에 든 이 책을 각각 우편으로 받았는데, 발신이나 헌정의 말도 없었다. 책은 어느 곳에도 소개된 적이 없었고, 서점에서도 보지 못했다. 일 년이 지난 뒤에야 처음 이 책을 거리에서 보게 되었다. 대학교에서 집으로 가던 나는 잠시 착각한 줄 알았다. 하지만 벤치에 앉은 나이 든 남성이 손에 이 책이 진짜 들려 있었고, 남자는 책을 읽는 동안 재미있는지 혼자 미소를 지었는데 자신의 실존을 두고 의심에 사로잡힌 게 분명했다. 나는 몸을 숙여 파란 단색 겉표지를 쳐다보았고, 남자가 불안하게 고개를 드는 바람에 발걸음을 재촉했다. (86쪽)

 

 

 어떤 하루는 아주 더디게 지나고 어떤 하루는 정신없이 흐른다. 그런 하루가 모인 사월은 아프게 지나갈 것이다. 하루를 산다는 건 삶을 사는 것이고 하루를 산다는 건 죽음을 견디는 일이다. 그러므로 하루를 산다는 건 위대한 일이다. 정현종 님의 시로 당신과 나의 하루의 안부를 대신한다.

 

 

 오늘 일들은 다 잘 됐는지.

 또 하루가 지났지.

 하루가 지나가는 게 제일 좋은 거야.

 

 -<어떤 문답,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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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식사가 끝난 뒤
함정임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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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을 맛으로 표현하자면 사랑과 연애를 다룬 소설은 달콤한 맛이 먼저 떠오를 것이다. 전쟁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라면 쓴맛을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전쟁 중에도 애틋하고 뜨거운 사랑이 있고 사랑에도 상처가 있기 마련이다. 그러니 소설을 하나의 맛으로 표현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함정임의 소설집 『저녁 식사가 끝난 뒤』을 아린 맛이라 말하고 싶다. 그건 단편집 전반에 드리운 상실과 부재, 그것들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다.

 

 한 사람으로 연결되는 사람들이 모여 저녁 식사를 하는 동안 누구도 그를 언급하지 않은 채 추모하는  표제작 「저녁 식사가 끝난 뒤」뿐 아니라 돌아갈 수 없는 유년 시절의 기억을 되짚어 들려주는 아련한 「기억의 고고학―내 멕시코 삼촌」, 양부모의 죽음으로 혼자 남은 주인공이 연인과 이별 후 누군가의 죽음을 지켜보는 「그는 내일이라고 말하지 않았다」엔 직간접적으로 죽음이 언급된다. 나머지 단편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와의 이별이 예정되었거나 진행 중이다. 어디 소설뿐이랴. 따지고 보면 우리 앞에 펼쳐질 생은 이별의 반복일 뿐이다.

 

 결혼식 사흘 전에 사라진 약혼자가 십 년 뒤 남긴 유품의 수첩에 적힌 프랑스 호텔을 여행하며 그와 온전히 이별하는 나미의 여정「어떤 여름」, 결혼과 동시에 멕시코로 떠난 U와의 만남을 통해 고단한 삶을 보여주는 「꽃 핀 언덕」, 히말라야에서 우연히 만나 가슴에 새긴 한 소녀의 죽음을 듣고 그곳으로 향하는 남자의 이야기 「오후의 기별」엔 정착하지 못하는 이방인의 기질을 만날 수 있다. 함정임은 영원히 정착할 수 없는 게 삶이라는 걸 아는 이미 다 알고 있는 듯 말한다. 그러니 계획된 일상을 뒤로하고 프랑스행 비행기를 타거나 히말라야로 향하는 소설 속 인물의 선택이 불편하기는커녕 그들을 따뜻하게 배웅하게 된다.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과의 만남이 불안하기보다는 편안하게 끌린다. 「어떤 여름」에서 나미와 충동적으로 동행하는 장을 이해할 수 있다.

 

 지금은 모험보다는 모험 이후의 어떤 흐름, 인생에 관심이 쏠렸다. 지금 이 순간, 이대로의 모든 것.’ (「어떤 여름」, 98쪽)

 

 그러나 여전히 이별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것은 「구두의 기원」속 이명을 앓고 삶의 부재를 견디지 못해 힘겨운 소설가의 삶과 다르지 않다. 일요일마다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엄마를 만나러 요양원에 가는 소설가의 독백처럼 말이다.

 

 늙은 엄마에게 손자처럼 자란 너는 늙어가는 것은 곧 죽어가는 것이라는 순리를 비교적 일찍부터 터득했다. 그리고 살아 있다는 것이 살아가는 것이라는 이치를 비교적 늦게까지 깨닫지 못했다.’ (「구두의 기원」, 134쪽)

 

 그러니 예전 편집자 J를 찾아 어린아이처럼 기대고 의지하는 심정을 함부로 탓할 수 없다. 그런 그에게 다가온 구두 한 짝은 상실을 채우는 이미지였는지도 모른다. 구두를 확인하는 순간, 자신도 존재한다고 여겼던 것일까. 반대로 매일 마주했던 구두가 사라지면서 자신도 사라질 수 있다는 엄정한 사실에서 살아 있다는 경이로운 삶의 단면을 보았을지도 모른다. 설사 그것이 구두가 아니었다 해도 달라질 것이 없다.

 

 그것이 정말 구두였는지, 그렇다면 누구의 것이었는지, 또한 그것은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갔는지, 너는 아는 것이 없었다. 분명한 것은 그것이 사라지고 난 뒤 너에게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어떤 이물감의 흔적을 또렷이 새겨놓았고, 이물감이란 소용돌이치며 타오르는 생명력이었다.’ (「구두의 기원」, 139쪽)
 

 반복되는 유산으로 삶과 죽음을 경험하고 견뎌야 하는 「밤의 관조」속 화자와 「구두의 기원」의 소설가는 가슴 깊숙하게 안기는 인물이다. 사라진 존재가 삶의 이유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살아 있으므로 살아야만 한다. 그리움이란 이름으로 존재하는 그들에게 가장 완벽한 애도다.

 

‘나는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두 세계에 걸쳐 서 있었다. 경쾌한 소리, 투박한 소리, 엉기는 소리, 육중한 소리. 그들의 발걸음이 일으키는 소음은 걷는 것, 오르는 것, 그러니까 살아 있는 것은 끊임없이 나아가는 행위라는 것을 일깨워주는 것 같았다.’ (「밤의 관조」, 1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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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소녀 2015-05-11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자목련 2015-05-12 06:53   좋아요 0 | URL
 
지평
파트릭 모디아노 지음, 권수연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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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 밤 문자 한 통을 받았다. 잘 지내냐며 갑자기 생각났다는 간단한 안부의 내용이었다. 문자를 보낸 번호는 내 번화번호부에 등록되지 않은 번호였다. 그럼에도 끝 번호 네 개가 익숙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전화번호부를 검색하니 같은 끝자리의 다른 번호가 나왔다. 어쩌면 내가 기억하는 사람이 보낸 문자일지도 모른다. 답장은 보내지 않았고 더 이상의 문자도 오지 않았다. 기억한다는 건 소중하게 간직한다는 것과 다른 것이다. 어떤 관계의 경우 아이러니하게도 차단하기 위해 기억한다.

 

 소설 속 마르가레트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한 남자를 기억해야만 했다. 보스망스는 기억하지 못할까 두려워 오랜 시간 마르가레트를 기억했다. 기억과 기억이 마주하는 순간 진짜 기억과 조우할 수 있을까? 소설가 보스망스는 진짜 기억을 찾기 위해 안간힘을 다해 기억 속으로 돌진한다. 청춘의 민낯을 마주하는 이십 대의 시절로 말이다.

 

 자신과 닮은 존재를 한눈에 알아보듯 보스망스의 눈에 비친 마르가레트의 불안은 익숙했다. 자신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나타나는 과거의 남자를 떠나 다른 삶을 찾는 마르가레트와 존재 자체가 고통이었던 어머니와 신부로부터 영원히 분리되고자 원했던 보스망스는 새로운 미래라는 같은 목표를 지녔다. 서로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둘은 서로에게 절대적 존재가 될 수 있었다. 온통 낯선 사람들 속에서 겨우겨우 하루를 살아가는 청춘의 몸짓은 보스망스의 기억 속에 흐릿하면서도 선명하게 남았다. 얼마나 간절하게 새로운 삶을 원했는지 말이다. 

 

 ‘미래. 그리고 또 하나의 단어, 지평. 그 시절의 저녁, 그 구역의 조용하고 텅 빈 거리들은 모두 미래와 지평으로 통하는 탈주로였다.’ (91쪽)

 

 관계를 맺고 확장하는 일이 두려웠 마르가레트에게 보스망스는 유일하고 지속적인 관계였다. 하지만 끝내 온전한 자신을 보여주지 않고 연락을 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떠나 버린다. 사십여 년 전의 마르가레트를 찾는 보스망스의 여정은 사랑을 찾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그때 잃어버린 미래이자 지평인지도 모른다. 곁에 있어도 사라질 것 같았던 존재를 이제는 절대 놓칠 수 없다는 열망 같은 것. 파리의 거리에서 그녀를 닮은 여자를 통해 과거를 추억하는 게 전부라 할지라도.

 

 ‘보스망스는 걸음을 멈추고 여자가 센 강 방향으로 멀어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내가 저 여자를 쫓아간들 무슨 소용인가. 그녀는 나를 알아보지도 못할 것이다. 하지만 어느 날 기적이 일어난다면 우리는 같은 시간의 통로를 지날 것이다. 그러면 이 신시가지에서 우리 둘은 모든 걸 새롭게 시작할 것이다.’ (137쪽)

 

 현재를 사는 우리는 삶이 과거가 되었을 때 정확히 그것을 볼 수 있다. 그제야 대면할 용기를 지닌다. 그 시절을 통해 미래를 꿈꿀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여전히 나가지 못한다. 기억이라는 상처를 견디고 벗어났을 때 가능하다. 그리하여 새로운 지평을 향해 발을 디딜 것이다. 파트릭 모디아노의 소설이 기억이라는 안개를 헤치고 나오는 것처럼 말이다. 언젠가 만나게 될 그곳에서의 당신을 향해.

 

 ‘미래…… 지금의 보스망스에게는 날카롭고도 신비로운 울림을 주는 말. 하지만 그때의 우리는 한 번도 미래에 대한 생각은 하지 않았다. 우리는 여전히, 우리가 가진 가능성을 인식하지 못한 채 영원한 현재 속에 있었다.’ (1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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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 정원 - 제4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박혜영 지음 / 다산책방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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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환적이고 비밀스런 공간 ‘노관’을 상상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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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시장
김성중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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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시절에는 존재가 불확실한 것들에 대해 공포를 느꼈다. 이를테면 귀신이나 유령 같은 것. 직접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없었기에 공포의 크기는 커져만 같다. 그것들은 그저 허상에 불과하다는 걸 알게 된 어른이 된 후에 공포의 대상은 잘 알려진 범죄자나 질병으로 바뀌었다. 공포를 이기는 방법으로는 어떤 게 있을까? 김성중은 어린 시절 상상 속 친구를 만들어 용기를 얻었던 것처럼 소설로 우리는 이끈다. 그곳엔 현실과 맞닿은 모호한 경계이거나 전혀 다른 공간이 펼쳐진다. 거부할 수 없는 강렬한 매력으로 현실을 잊게 만든다.

 

 ‘한동안 숨을 고르고 몸을 일으켜보니 거기에는 내가 두려워한 풍경이, 아무것도 없는 텅 빈 벌판이 펼쳐져 있었다. 거대한 사면상도, 열두 골목을 가득 메운 이국적인 상품도, 물고기를 잡던 소년들과 수상한 환전상도, 멋진 창녀들과 처음으로 산 종이가면도, 로나와 주코도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부서진 노란 물고기 비늘만이 지나간 밤을 증거하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먼지바람이 불어오는 강둑에 서서 풀숲 사이의 허공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국경시장」, 34쪽)

 

 표제작「국경시장」이 그러하다. 기억을 잃은 한 남자가 들려주는 이야기. 국경이라는 공간이 제시하는 묘한 신비감은 고단한 삶으로 단단해진 긴장을 풀어놓게 만든다. 과거의 상처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을 것만 같은 환상을 보았다면 맞는 말일까? 환상에 불과하다는 걸 알면서도 굳이 환상이라고 설명하고 싶지 않다. 버리고 싶은 기억을 팔아 원하는 것을 살 수 있는 국경시장. 문신처럼 새겨져 절대 지울 수 없는 아픈 기억의 한 조각이 화폐로 교환되는 놀라운 곳에 발을 들이민다. 기억 전부를 팔아 다른 나로 살고 싶은 열망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버려진 기억 조각들이 나의 일부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다른 나를 원한다.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절대적 존재를 갈망하기도 한다. 어느 날 갑자기 부여된 천재적 재능을 감당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받아들이는 「쿠문」의 주인공과 그를 동경하는 사람들처럼 말이다. 천재병이 확산될 수 있다는 설정은 얼마나 기발한가. 천재병 ‘쿠문’에 전염되면 죽게 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원하고 원한다.  다른 상상이 다른 권력을 만든다.’ (「쿠문」, 46쪽)란 문장은 인간의 욕망을 그대로 보여준다. 「쿠문」에서의 상상은「관념 잼」으로 연결된다. 유혹과 욕망에서 벗어나 관조의 삶을 선택한 주인공 낙경씨는 사물의 반란과 마주한다. 옷장에서 프라이팬이 나오고 거울은 검고 딱딱하게 변해 있었다. 사물이 자유롭게 변하듯 인간 낙경씨도 유리병이 되고야 만다. 사물이 되어 인간의 세상을 바라본다. 

 

 김성중의 사고로 보자면 인간(사물과 생물 역시)은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래서 때로 서슴없이 악을 행한다. 「필멸」의 주인공 앙투안은 작곡가로 최고의 경지에 오르고 싶지만 후원도 재능도 없다. 그가 다니는 음악원엔 놀라운 재능을 가진 영국 귀족 제프리, 든든한 집안을 가진 자유로운 영혼의 뱅상, 신심 깊은 노력파 비투수가 있다. 진실한 친구는 아니지만 경쟁자인 네 사람은 뱅상이 경마로 번 돈으로 화려한 밤을 보내고 놀라운 예술적 영감을 얻는다. 결코 나눌 수 없는 선율이었다. 주인이 되기 위해 누군가를 죽여야만 했다. ‘진실은 사라지고 남은 것은 물리력뿐이었다. 범속한 인간 사이의 경쟁이 대개 그렇듯.’ (「필멸」, 164쪽)

 

 그리하여 달라진 삶을 위해 기억을 팔고 병에 전염되기를 원한다. 상상의 크기만 다를 뿐 소설 속 인물은 모두 우리가 될 수 있다. 그러니 「동족」속 인간의 말을 알아듣고 글을 읽으며 뱀이라는 사실을 잊은 킹코브라나 인간보다는 숲의 나무와 하나가 되기를 꿈꾸는 「나무 힘줄 피아노」의 유메를 괴기하게 여길 필요는 없다. 어쩌면 김성중은 인간 스스로 만든 틀을 변형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상상하면 상상할수록 더욱 완벽해지는 꿈처럼 말이다. 그 꿈에 동반할 것인가, 선택은 당신의 몫이다.

 

 ‘나는 나쁜 꿈을 꿀 때마다 깨어나지 전에 꿈의 줄거리를 바꿔오던 사람이다.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하늘을 날았고, 괴물에게 잡아먹힐 순간에는 주인공의 자리에 나 아닌 다른 인물을 세워두곤 했다. 그리하여 나에게는 흉몽을 꾼 기억이 없다.’ (한 방울의 죄, 2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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