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그리하여 멀리서  (자목련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 April, Book, Coffee, &amp; You </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Sat, 27 Jun 2026 14:08:13 +0900</lastBuildDate><image><title>자목련</titl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myface/pt_7630901655124647.jpg</url><link>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자목련</description></image><item><author>자목련</author><category>당신과의 포옹</category><title>수국과 소설 </title><link>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346486</link><pubDate>Sun, 21 Jun 2026 10:0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346486</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02936908&TPaperId=1734648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2825/87/coveroff/k002936908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12138606&TPaperId=1734648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295/47/coveroff/k712138606_2.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0909904&TPaperId=1734648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382/40/coveroff/8960909904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수국을 주문하려고 살펴보고 있었다. 올해는 분홍에 꽂혀지만 청보라를 거부할 수 없어 분홍과 청보라를 장바구니에 넣었다 빼기를 반복했다. 그런데 수국이 도착했다. 친구가 보낸 게 분명했다. 친구가 신청한 구독은 끝났다고 알고 있는데 말이다. 사진을 보냈더니 모른다는 답이 왔다. 어쨌거나 내게 온 수국은 은은하게 예뻤다. 강렬하고 화려한 수국이 아닌 다소곳한 수국이라고 할까. 수국수국의 시간이 이어진 것이다.<br><br><br><br><br>어제는 예약된 치과 진료가 있었다. 스케일링과 검진이었는데 비가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취소할까 하다가 그냥 가기로 하고 집을 나섰다. 가로수에 수국이 있었다. 아파트 화단에도 수국과 목수국이 있었다. 작년에도 있었던가 기억하려 했지만 기억나지 않았다. 수국의 계절이었다. 자귀나무도 꽃을 피웠다. 예전 같으면 6월인데 덥다고 했겠지만 이제는 6월이니 덥다가 익숙하다. 여름인 것이다.<br><br><br><br>주문한 책도 왔다. 세 권의 소설이다. 모두 여성 작가의 소설이다. 조해진의 『우리 세희』, 백 솔뫼의 『다가오는 이마와 검은 털 고양이』, 이서수의 『첫사랑이 언니에게 남긴 것』이다. 조해진의 소설은 읽지 못한 소설도 있고 쓰지 못한 리뷰도 있지만 꾸준히 읽는다. 처음 그의 소설을 만났을 때의 느낌이 좋아서. 그렇게 말하자면 박솔뫼의 소설도 그러하다. 박솔뫼의 소설은 많이 읽지 않았지만 이번에 나온 짧은 소설이 급 궁금해졌다. 아, 김지연의 짧은 소설도 읽어야 하는데. 오랜만에 위픽 시리즈도 하나. 이서수가 소설에서 보여주는 여성 연대를 기억한다. 그들의 연대가 끈끈하고 단단하기를 바란다. 이 소설에서는 어떨지 모르지만.<br><br><br>수국도 좋고 소설도 좋다. 수국은 조금씩 시들고 있다. 수국과 소설을 짝꿍처럼 담아보려 했지만 아쉬움만 남는다. 수국을 바라보는 소설, 소설을 바라보는 수국이라고 생각한다. 서로를 향하는 마음이라고 말이다. 소설과 수국의 마음은 어떨지 모르겠지만.<br><br><br><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382/40/cover150/896090990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3824022</link></image></item><item><author>자목련</author><category>당신과의 포옹</category><title>내게 맞는 고요하고 간소한 삶</title><link>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343332</link><pubDate>Fri, 19 Jun 2026 11:0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343332</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42835213&TPaperId=1734333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8419/44/coveroff/k742835213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52137109&TPaperId=1734333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73/19/coveroff/k452137109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1418406&TPaperId=1734333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85/77/coveroff/8991418406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얼마 전 이불을 버렸다. 침낭도 버렸다. 그 가운데 몇 년 동안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것들도 있었다. 손님이 오면 사용하려고 예쁜 이불이라서 버리지 못한 것들이었다. 그것들이 사라진다고 해서 어려움이 생기는 일은 없었다. 단지 버리지 못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소유한다는 것, 그것이 내 것이라는 어떤 욕심이 자리했던 것이다. 둘러보면 그런 것들이 너무 많다. 그런데도 나는 버리지 못한다.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br>오랜만에 친구나 지인을 만나면 주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가파르게 상승하는 코스피를 보면서 지금껏 주식을 하지 않는 나는 잘못한 사람처럼 여겨진다.  그렇다고 주식을 하는 모두가 이익을 낸  건 아니다. 게으르고 무지한 사람처럼 느껴진다. 이런 마음은 어디서 오는 걸까? 내가 단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 삶의 목적이 없기 때문은 아닐까. 최근에 종영한 드라마 속 인물이 대사처럼 목적은 무엇일까 생각하게 된다. ​이런 마음은 미국의 소박한 삶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만든 잡지 「플레인 Plain」에 실린 27편의 에세이를 담은 책 『간소한 삶』를 읽으면서 깊어졌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아차리고 따라가는 삶. 과감하게 무언가를 내려놓고 버리는 삶. 그들이 들려주는 진솔한 이야기는 나를 돌아보게 만든다. 지금 사는 삶이 어떠냐고 묻는다. 농부, 시인, 평범한 주부이자 엄마, 할아버지, 환경운동가 등 다양한 필자가 경험에서 우러난 고백을 들려준다. 이 책을 읽고 당장 내 삶이 크게 변화하지는 않을 것이다. 알고 있다. 그러나 한 번씩 생각날 건 분명하다. ​한 편으로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30여 년 전에 나온 책이니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와 동떨어진 이야기는 아니냐고 말이다. 곳곳에 기독교적 색채와 ‘아미쉬 공동체’에 대한 부담을 가질 수 있다.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책을 읽다 보면 미디어와 AI에 의존하며 우리가 잃어버린 게 무엇인지 확인하게 된다. 물질만능주의에 빠져 그것에 매몰된 자신을 돌아보게 될 것이다. 혼자가 편하고 간편하고 빠른 속도에 익숙해 잠깐의 기다림도 참지 못하고 조바심을 내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돈이면 다 되는 세상, 그 안에서 우리가 놓치는 게 무엇인지 말이다. ​첨단 기술의 발전으로 놀라운 상품을 생산하고 더 많은 곡물을 재배하지만 누군가는 굶주림과 가난에 죽어간다. 책에서 마주한 삶은 과거 우리가 살아온 모습의 조각이다. 이웃과 인사를 나누고 시간을 내고 서로를 배려하고 좋은 일이 생기면 함께 즐거운 마음을 나누는 일. 물물교환, 품앗이, 직접 옷을 만들어 입고 잼을 만들어 먹는 일, 자동차가 아닌 자전거를 이용하는 삶. 지금 이 시대와 맞지 않는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안에서 찾는 행복과 기쁨을 경험하지 않았기에 단정 지을 수 없다. 그래서 이 책이 의미가 있다. ​우리 삶에서 돈이 자치하는 자리를 줄이며 균형을 찾는 일은 상당히 도전이 될 것이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의 가치를 이해하고 우리가 쓰는 돈의 연결고리와 그것이 미치는 효과를 이해한다면, 우리는 돈을 제자리로 돌려놓을 수 있다. (71쪽)<br><br><br><br><br>음식에 관한 한 가장 멋진 점은 물론 먹는 것 그 자체다. 그러니까 함께 먹는 것이다. 혼자 먹으면 별 재미가 없다. 음식을 나누며 우리가 뜻깊은 일을 함께 기념하고 이웃을 사귀고 베풀고 감사하고 삶을 나눈다. 향연과 축제, 작은 파티, 공동식사를 생각해보라. 우리에게 가장 큰 즐거움을 주는 것은 음식 자체가 아니라 식탁에서 생겨나는 유대감이다. (158쪽)​우리가 정말 바라는 삶은 무엇일까? 하루라도 스마트폰이 없으면 살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삶, TV 플러그를 뽑으면 큰일이 날 것 같은 두려움. 그러나 TV는커녕 라디오를 꺼도 아무것도 무너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토록 원하던 고요를 느끼고 아이와의 대화는 풍요로워지고 노래를 부른다. 책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한정된 삶일까? 아닐 것이다. 아이들은 더욱 그러하다. 스마트폰 대신할 수 있는 다른 놀이를 찾을 수 있는 능력을 잠재우고 있는지도 모른다.​너무 많은 정보에 혼란스럽고 선택에 어려움을 겪는 일, 나만 그럴까? 어느 순간 나만의 기준을 사라지고 주변의 삶을 따라가기에 급급하다. 주어진 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 모르고 살아간다. 정체를 모르는 욕구 불만에 계획 없이 무언가를 사들이고 대화는 단절된다. 단답형의 대화, 줄임말로 이어지는 문자. ​더 이상 가까운 이의 전화번호를 외우지 않는 나를 발견했을 때 깜짝 놀랐다. 손의 감각에 의지할 뿐 도어록 비밀번호가 생각나지 않는 때도 있다. 스마트폰에 메모했으니까. 이렇게 살아도 괜찮을까. 과거로 회귀한 듯 모두가 자급자족하며 공동체의 삶을 꾸리며 『간소한 삶』처럼 살라는 게 아니다. 그렇게 살 수도 없다. 하지만 우리가 놓친 게 무엇인지는 인지하고 살아야 한다. ​우리 부모님이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숨을 거두고 우리 아이들이 낯선 사람들의 울타리 안에서 지내는 게 정말 중요할까? 부모와 아이들을 갖다 맡긴 후 이론적으로 복잡한 관계로부터 ‘자유’를 얻게 된, 늙지도 어리지도 않은 사람들의 삶은 과연 좋아졌는가? 좋은 삶이란 서로서로 복잡한 관계를 맺는 것이며, 궁극적으로 그것이 온전한 삶의 핵심이다. (305쪽) ​『간소한 삶』을 읽다 보면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을 떠올리게 된다. 아마 많은 이들이 그러할 것이다. 주제적인 나로 살고자 하는 소망을 생각한다. 그와 같은 삶을 살 수 없겠지만 주변을 정리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 『월든』의 한 구절을 생각하게 된다. 내면의 소리, 내가 외면하는 소리, 그러나 어딘가에서 계속 들려오는 소리. <br>인간은 언제나 자기영혼이 하는 진실한 얘기를 들어야 한다. 그것은 희미하지만 꾸준한 소리다. (『월든』, 286쪽)<br>같은 의미로 최근에 읽은 호세 카를로스 루이스의 『우아한 사고를 위한 철학』도 같은 맥락이다. 디지털 화면이 지배하는 세상, ‘스크린 시대’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생각한다. 스크린의 지배를 받지 않고 내가 스크린를 조율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메타버스, AI, 기후변화, 가상현실과 적절하게 조화하며 그 안에서 나만의 행복을 찾아 살아가야 하니까.<br>누군가 당장 변화를 찾아 행동할지도 모른다. 누군가 나와는 다른 삶이라 치부할지도 모른다. 나에게 맞는 간소한 삶을 찾는 일. 그게 필요하다. 무엇이 필요한지 정확하게 알고 소중한 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일. 내가 좋아하고 마음이 고요해지는 삶을 향한 시작을 『간소한 삶』을 통해 발견하게 될 것이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85/77/cover150/899141840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1857739</link></image></item><item><author>자목련</author><category>당신과의 포옹</category><title>5월의 책 </title><link>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325370</link><pubDate>Tue, 09 Jun 2026 15:5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325370</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52138200&TPaperId=1732537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246/77/coveroff/k452138200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5267&TPaperId=1732537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67/80/coveroff/8932045267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4950&TPaperId=1732537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70/8/coveroff/8937464950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br>일상을 산다. 하루를 산다. 똑같은 날들이 지루하고 때로는 지겨워서 뭔가 이벤트가 있기를 바란다. 아주 작은 이벤트는 신선하고 새로운  활력을 불러오기도 하니까. 그러다 제법 큰 이벤트가 발생하면 그 뻔한 일상이 뻔한 하루가 그리워지기 마련이다. 대단한 일이 있었던 건 아니다. 그저 마음을 졸였고 전전긍긍하며 살았다. 어찌할 수 없는 앞에 한없이 작아지고 무기력하게 말이다.​6월이 되었는데도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달라지고 싶었는데 달라져야 했는데 말이다. 지난 주말에 친구가 다녀갔다. 친구는 이사 문제로 정신이 없었다. 사는 집을 팔았는데 이사 날짜가 맞지 않아 보관 이사를 했고 당분간 살 공간을 원룸을 구했다. 그리고 해결해야 할 문제가 끝이 없었다. 그런 와중에 나를 만나러 왔다. 주말에 늦잠도 못 자고. ​내가 고집을 부렸다. 나를 만나러 오라고. 겨울에 얼굴을 보고 두 계절이 지났다. 만나지 못했던 날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길지 않았고 그 시간은 허투루 보낼 수 없었다. 아쉬움을 남기고 친구는 돌아갔다. ​그리고 나는 오래 생각했다. 그러니까 이 무기력에서 벗어날 생각, 줄어들지 않는 불안과 찾아야 할 일상에 대해서 말이다. 어떤 일에 대해, 어떤 시간에 대해, 어떤 요일에 대해 내가 부여한 의미들에 대해서. 그 시간이, 그 요일이, 그 느낌이 찾아오는 것들에 대해서. 의미를 부여했기에 나는 힘들었다. 의미를 부여했기에 나는 그것들이 두려웠다. 일어난 일들에 대해, 되돌릴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잔뜩 부여한 의미. 그게 문제였다. <br><br><br>나를 아끼는, 나의 소중하고 귀한 친구는 다시 컴퓨터를 켜고 무언가를 쓰는 루틴을 찾으라고 말한다. 책을 읽고 커피를 마시라고. 그래서 나는 커피를 마시고 좋아하는 잔을 구매했다.계획에 없던 일이다. 다시 충동의 일상을 살기로 했다. 그리고 읽으려고, 궁금했던 책을 기록한다. 이 책들은 5월의 책이다. 읽기는 느리고 더디지만 6월의 책도 곧! <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70/8/cover150/893746495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1700890</link></image></item><item><author>자목련</author><category>목소리 </category><title>나의 작약이 그러하듯이 - [작약과 공터]</title><link>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307442</link><pubDate>Sun, 31 May 2026 11:1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30744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4627&TPaperId=1730744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301/34/coveroff/893204462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4627&TPaperId=1730744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작약과 공터</a><br/>허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10월<br/></td></tr></table><br/><br>5월은 불안한 시간으로 채워졌다. 원인을 알 수 없었던 불안이 아니었다. 하지만 원인을 안다고 해서 불안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더욱 불안은 깊어졌고 잠잠하지 않고 요동쳤다. 5월의 마지막 날인 오늘에 이르려야 조금 괜찮아졌다고 여긴다. 정말로 괜찮아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내 스스로 그런 의식이 필요하고 다짐이 필요하다는 걸 알아차렸다고 할까. 그리고 겨우 시집을 읽는다. 실은 작약의 계절에 이 시집을 읽고 싶었고 생생했던 작약의 꽃잎이 시들고 떨어지는 날들에 이 시집이 그리웠다. <br>빗나가고 싶었고, 빗나간 것들에 대해 노래하고 싶었고, 빗나간 것들을 증언하고 싶었다. 시는 그랬다. 모든 시는 불온해야 하고 모든 시는 자유로워야 한다. 불온한 시를 만나는 일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과 친해지는 일이다. 내 모든 시를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에 바친다. (시인의 말)<br>그래서 얼마나 불온한 시냐고? 그건 모르겠다. 다만 시를 만나는 일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과 친해지는 일이라는 말이 가슴에 콕 박혔다. 허연의 시는 뭐랄까, 외롭고 쓸쓸한 한 인간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그러니까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고독한 남자가 맞을지도 모른다. 홀로 있는 그가 건넨 시가 가만히 내게로 건너와 내 곁을 지킨다. 다시 시집을 펼치면서 여전히 같은 시에 시선이 길게 머문다. 그건 좋은 일일까, 나쁜 일일까. 그리고 내심 모른척했던 이런 시를 처음 만난 것처럼 읽는다.<br>​사람들이 땅을 발견함으로써자두나무를 발견하고모든 결과는 자두가 되었다​염탐된 사상들이 담긴서책에 대해서 생각한다​장서관 맨 위 칸 귀퉁이가 찢어진그 서책은 놀라운 것이었다​엄마에 반발한 아이들이줄지어죽어갔던 날들의 기록이었다​익숙한 햇살이 땅을 비출 때마다 그림자는 이름을 가졌다​결국, 세상은 그림자였음을 안다바라보면 눈멀게 되는 것들이 있다​성당 한쪽 담벼락에 섬망이 지나갔다​죽어갔지만 어떤 것들은 이름을 가졌다(「어떤 것들은 이름을 가졌다』 - 전문)<br><br><br>​사라진 기억, 사라졌다고 믿었던 날들, 이제는 부재한 누군가를 생각한다. 그리고 그 안에 나의 이름을 덧붙인다. 나의 생도 언젠가 사라질 것이다. 어느 날에는 소멸을 꿈꾸었지만 정작 그런 순간이 온다면 나는 멀리 달아나고 싶을지도 모른다. 알고 있지만 죽음에 대한 공포는 가장 큰 불안이기도 하니까. 나는 나를 모르고 내가 안다고 믿어도 그건 아는 게 아닐 터.​그러나 유한한 생은 오늘을 데려왔고 오늘을 살게 한다. 어떤 이는 치열하게 어떤 이는 무기력하게 어떤 이는 제법 아름답고 균형 있게 살아갈 것이다. 내게 주어진 5월의 하루하루는 우울감으로 가득했고 무기력으로 짓눌렸다. 심하게 구져졌고 위축했던 나의 마음이 도무지 펴질 것 같지 않았다. 나에게만 매몰되었기 때문이다. 아직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고 아직 마침표를 찍은 게 아닌데 말이다. 그저 오늘이 전부라는 걸 잊었다. 오늘이 인생이라는 걸 말이다. 그러니 이런 시는 완벽하다.​단명할 것이 분명한 화분에여전히 물을 준다마무리 짓지 못하는 일들 그런 게 뭐라고 속이 탄다​화분의 죽음은 화분의 시간은직관만으로는 말할 수 없다​시소에 앉아인조 잔디와 하늘을 번갈아 보면서어떤 게 쓸 만한 선택인지 생각한다​시소에 앉아 느끼는 생의 무질서도(度)는 그나마 견딜 만한다주기니까딱 거기까지니까​노인에서 소년으로시소는 움직인다양쪽에서 하는 일과 양은 같은데한쪽은 등신이고한쪽은 전사다​딱 거기까지가 생이다화분에 물을 준다(「슬픈 주기 1』 - 전문)​나의 5월은 오늘이 마지막이다. 내일은 6월이다. 5월이 될 수 없다. 나의 오월은 지나갈 것이다. 나의 5월은 기억이 될 것이다. 하루가 지나면 6월이 되지만 나의 6월은 알 수 없다. 어쩌면 나는 6월에도 5월을 살지도 모른다. 6월에도 5월의 감정에 허덕이며 허우적댈지도 모른다. 그래도 5월을 살아냈다. 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나의 작약이 그러했듯이.  『작약과 공터』가 그러하듯이. <br><br><br>​작약은 울먹거림알아듣기 힘들지만 정확한 말​살아서 작약을 보고 있다작약에는 잔인 속의 고요가 있고 고요를 알아채는 게 나의 재능이라서 (「작약과 공터』, 일부)<br><br>공터에선당신의 아름다운 나라와내 끔찍한 나라가 불온하게 빛나고 있었다​세상에는 이상한 공터가 있어서마음을 멍하게 하는 공터가 있어서작약이 있어서 (「작약과 공터 2』, 일부)<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301/34/cover150/893204462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3013491</link></image></item><item><author>자목련</author><category>그러니까, 때때로 허물어지는 </category><title>서울은 정말 더웠고 장미가 아름답고 </title><link>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277772</link><pubDate>Fri, 15 May 2026 10:3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277772</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P152939204&TPaperId=1727777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024/4/coveroff/p152939204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4950&TPaperId=1727777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70/8/coveroff/8937464950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52138200&TPaperId=1727777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246/77/coveroff/k452138200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5267&TPaperId=1727777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67/80/coveroff/8932045267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br>어제는 서울에 다녀왔다. 계획에 없던 일정이었다. 서울에 가는 건 좋은 일이 아니다. 서울에 갈 일은 병원 진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서울에 다녀온 게 좋은 일이 되었다. 불확실한 것에 대한 확인을 받았으므로. 서울은 정말 더웠고 장미가 가득했다. 장미 공원을 조성해 놓은 곳도 있었고 벚꽃 나무 아래로 넝쿨장미들이 가득했다. 분홍, 빨강, 노랑, 흰색의 장미가 아름다웠다. 그 모든 풍경에 대한 대화는 병원 진료가 끝나고 병원 내 카페에서 베리베리 라떼를 먹으며 할 수 있었다. ​나는 건강에 자신할 수 없는 사람이다. 하긴 누가 건강에 자신할 수 있겠는가. 여하튼 몸이 보내는 신호와 증상은 나를 두렵게 만들었고 전문가의 확인이 필요했다. 지방에 사는 이들이 그렇듯 서울로 향하는 길은 어떤 상황이 생길지 알 수 없는 대비가 동반된다. 금식을 했고 혹시나 모를 입원 준비를 해서 병원으로 향했다. 진료 예약을 할 때는 오후 늦은 시간이었는데 아침 일찍 병원에서 전화가 왔고 되도록 빨리 오라고 했다. 그건 좋은 일이었다. 의사가 내 상태를 확인했다는 뜻이니까. 아닐 수도 있지만 말이다. ​오랜 기간 만난 담당 의사는 나의 질문에 성실하게 답해주었다. 하지만 확진은 아니었다. 우리  몸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그렇다. 왜 일어나는지 원인을 알아내려면 시간이 필요하고 검사를 진행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시행되지는 않는다. 나의 경우도 그랬다. 단순한, 일시적인 증상일 수도 있다고, 회복되고 완화되고 있으니 지켜보자는 의견. 나도 동의했다. 과잉진료를 하는 의사는 아니니까. 혹시 모르니 검사 예약은 하자고 했고 내가 의심하는 부분에 대한 검사를 위해 채혈을 했다. 장미에 대한 이야기는 피를 뽑고 검사 예약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기 전 카페에서 시작되었다. <br>5월이었다. 고속도로를 달리면서도 연두와 초록이 가득한 풍경에 눈을 돌릴 수가 없었다. 나의 마음의 경로에는 그것이 없었다. 안 좋은 것들, 나쁜 것들이 내 마음의 경로를 지배했다. 나는 다시 그 경로를 수정한다. 언제나 그렇듯 모든 일은 일어날 수 있고 그 모든 걸 이해하고 나는 기존의 나로 돌아와야 한다.<br>지난주에 친구가 보낸 노란 라넌큘러스를 보며 기뻐하는 나로, 스승의 날을 맞아 선생님께 소박한 카네이션을 보내는 나로 말이다. 나의 유일한 선생님, 최고의 스승이 계셔서 정말 감사하다. 손주를 돌보느라 지친 선생님께 작은 즐거움을 드릴 수 있어 감사하다. 조만간 목소리로 뵙고 싶다.<br><br><br><br><br><br>책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내가 주문한 책은 이곳에 없다. 이런 책과 커피를 샀다. 윤후명의 시집 &lt;모루도서관&gt;, 오랜만에 아무튼 시리즈 &lt;아무튼, 새벽&gt;윌리엄 포그너의 &lt;야생 종려나무&gt;. 세 권 모두 좋은 책일 것 같다. 쓰고 싶지 않아서 쓰지 못했다. 쓰고 싶다는 나로 돌아봐서 다행이다. 매일 쓰고 싶을지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쓰고 싶은 마음이 살아나서 다행이다. 다행인 마음이 생겨서 괜찮다. <br><br><br><br><br><br><br><br><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67/80/cover150/893204526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1678011</link></image></item><item><author>자목련</author><category>목소리 </category><title>나름 재밌고 신선한  - [소설 보다 : 가을 2025]</title><link>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243356</link><pubDate>Tue, 28 Apr 2026 11:4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24335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4392&TPaperId=1724335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210/39/coveroff/893204439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4392&TPaperId=1724335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소설 보다 : 가을 2025</a><br/>서장원.이유리.정기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09월<br/></td></tr></table><br/>‘소설 보다 : 2025’ 시리즈 표지에 반해서 구매했다. 봄의 딸기, 여름의 포도, 가을의 무화과까지. 셋 가운데 무화과가 가장 탁월했다. 아무튼 그렇다는 말이다. 이유리의 「두정랜드」는 환상이나 상상을 찾을 수 없는 점이 나는 반가웠다. 이유리의 다른 이야기도 궁금했기 때문이다. 최근에 『구름 사람들』에서 다루었던 이야기와 비슷한 결이었다. 「두정랜드」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나’는 『구름 사람들』 속 주인공과 겹쳐 보였다. 「두정랜드」 속 ‘나’가 조금 더 활달하다고 해야 할까. 그건 공간과 배경이 가상이 아닌 구체적인 현재에서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작가가 인터뷰에서도 밝혔던 것처럼.  그러나 웬만한 독자라면 이미 알 것이다. ‘나'는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다 등록금을 벌기 위해 휴학을 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러 온 게 아니라는걸. ‘나'는 함께 아르바이트를 하는 연두와 놀이 기구를 타러 두정랜드에 온 이들이 서울 사람인지 아닌지를 맞추는 게임을 한다. 매번 실패하는 연두에 비해 나는 항상 정답을 맞힌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두정이 싫고 서울을 갈망하기 때문이다. 두정에서 대학을 다니고 선배 남자친구를 둔 연두와는 다르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대학 입학, 휴학,  친구, 모두 거짓이다. 쉬는 날 홍대 주변을 둘러보는 게 전부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나에게 서울은 홍대이니까. ​나에게 ‘두정’은 정착할 곳이 아니고 떠나야 할 곳, 버려야 할 곳이다. 그에 반해 연두는 결혼할 남자친구가 서울에 집을 가지고 있어 진짜 서울에서 살 것이다. 나가 꿈꾸는 미래를 손에 쥐었음에도 연두는 감흥이 없다. 나의 입장에서 연두는 현실에 순응하는 수동적 인물로 보인다. 가짜를 쫓으며 살아가는 나와 나만의 기준으로 살아가는 연두로 이십 대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은 극단적이지만 요즘 시대를 보면 양극 현상은 당연한 것인지도.​서울과 지방의 격차는 경험한 사람만이 알 수 있다. 그런 이유로 서울을 꿈꾸는지도 모른다. 모든 삶의 표준이 되는 서울, 자연스레 따라오는 차별, 고향을 버리고 새로운 출신지를 꿈꾸는 청춘. 「두정랜드」 속 연두와 화자의 모습을 통해 현재 이십 대의 마음을 본다. 세 번 오르면 소원을 이뤄준다는 관악산 정상으로 모여드는 청춘의 모습까지. ​「두정랜드」가 이십 대의 이야기라면 정기현의 「공부를 하자 그리고 시험을 보자」의 주인공은 십 대다. 주인공 ‘승주’는 전교 1등으로 반 회장 장범규와 사귀는 사이지만 학교에서는 아는 척하지 않는 영악함을 보인다. 승주의 일상은 정확한 계획으로 이뤄진다. 완벽한 계획, 모든 것이 자신이 의도한 대로 진행되어야 한다. 장범규와의 데이트도 그랬다. 똑같은 행위, 똑같은 배달 음식, 그러다 남은 음식을 창문 밖으로 투하하는 장난. 쓰레기를 던지고 몸을 숨기면 완벽했다. 불량 청소년 ‘버들치’ 무리가 승주를 찾아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건 계획에 없던 일이었고 예측을 벗어났으니 대책이 없다. 그러나 쓰레기가 날아온 장소가 장범규의 집이었다는 사실로 승주는 위기에서 벗어났다. 장범규와 결별하고 ‘버들치’ 무리와 어울린다. 승주는 전교 1등 모범생과 일탈, 그 사이를 오가며 자신을 의심하지 않았다. 원하는 대로 계획한 대로 이뤄질 거라 확신했다.<br>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승주는 늘 결백했다. 무엇에서든 오래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나를 속이지 않는 것, 그것만큼 중요한 것이 또 있을까? 요행은 금물. 바라지도 않는 편이 좋다. 오직 최선을 다한다. 그것이 승부가 생각하는 진실이었다. 승주는 나를 속이는 길과 속이지 않는 길, 그 갈림길 앞에 설 때마다 이 명제를 되새겼다. ( 「공부를 하자 그리고 시험을 보자」, 122~123쪽)<br><br><br><br>겪어왔던 바와는 영 딴판인 세계가 자신을 덮쳐 올 때, 또 다른 무기를 갖추지 못했거나 무기를 제때 뽑아 들지 못한 사람은 원래 머물던 세계의 기반마저 한 순간에 위태로워지지 마련이었지만 승주는 달랐다. (136쪽)<br>맹랑하고 자신만만하며 잔망스러운 승주의 태도는 창의력 수학 시험 문제지 앞에서 정점에 이른다. 문제에 나온 유원지를 버들치 무리와의 거닐었던 공간을 대입하며 자신만만하게 풀어낸다. 요구했던 답은 최소였지만 승주는 최대를 구했다. 버들치 무리와 보내는 시간은 길면 길수록 좋은 것이니까. 그러니 시험을 풀며 승주는 내내 행복했을 것이다. 외고 입시의 결과는 상관없이 말이다. 단 한 명의 어른 목소리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 흥미롭다.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한 일이 어떤 결과로 승주 앞에 나타날지, 완벽하다고 여긴 계획의 실수와 오차를 승주는 어떻게 받아들일지, 승주가 어떻게 성장할지 궁금하다. 정기현 작가가 어른이 된 승주 이야기를 들려주면 좋겠다. <br>이유리, 정기현의 소설이 경험, 욕망, 방황으로 읽을 수 있었다면 서장원의 「히데오」는 관계에 대한 이야기로 볼 수 있다. 화자인 ‘수진’과 ‘히데오’는 대학교 연극원 강의실에서 처음 만난 선후배 사이다. 극작을 전공하며 학보사 기사인 수진은 히데오를 인터뷰한다. 조금씩 친해지자 히데오는 수진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일본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가 이혼하고 한국에 온 사실. 자신의 첫 번째 이름이 히데오라는 것. 수진은 그것이 히데오의 비밀이라 여겼고 둘 사이가 특별한 관계라고 생각했다. 자주 만난 산책을 하고 시간을 보냈기도 했으니까. 그 뒤로 수진이 쓴 연극 「따위 게임」에 히데오가 발탁된다. 그 연극을 계기로 히데오는 자신의 출신, 성장과정, 정체성에서 자유로워지며 졸업 후 배우로 성공하고 수진에게 들려준 이야기는 모두가 알게 된다. 시간이 흐른 뒤 둘은 재회하지만 수진이 만난 히데오는 과거의 히데오가 아니었다. 그들이 나눴던 비밀은 사라졌다. 어쩌면 수진만 비밀이라 여겼을지도 모를 비밀. 때문에 수진은 그런 히데오에게 남다른 감정이 생겼고 그도 자신을 좋아하는 게 아닐까 싶었던 것이다. 이처럼 비밀은 시간이 지나면 비밀이 아니다. 관계도 마찬가지다. 이 소설은 다양한 시선으로 읽을 수 있다. 연애 소설로도 읽을 수 있고 나처럼 관계에 주목할 수도 있고 히데오의 성장소설로도 가능하다. <br>『소설 보다 : 가을 2025』에서 만난 서장원, 이유리, 정기현의 소설은 나름 재밌었고 신선했다. 각자가 무엇을 지향하는지 뚜렷하게 보여준다고 할까.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210/39/cover150/893204439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2103996</link></image></item><item><author>자목련</author><category>그러니까, 때때로 허물어지는 </category><title>작약은 예쁘고 시는 슬프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235683</link><pubDate>Fri, 24 Apr 2026 10:1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235683</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42932003&TPaperId=1723568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4366/47/coveroff/k442932003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나는 작약을 좋아하고 그걸 아는 너는 내게 작약을 선물했다. 네가 보낸 작약은 '레드 참'이었고 너는 그 사실을 살짝 안타까워했다. 너는 분명 '사라' 작약을 선택했다고 믿었으니까. 아니 네가 구독한 상품이 그랬을 거라고 여겼으니까. 그러나 나는 작약은 다 좋고 좋으니까. 상관없다. 그래도 아쉬운 건 이 녀석은 빠르게 피고 빠르게 진다는 것. 한순간 와락 꽃잎이 떨어지고 장렬하게 전사한다는 것. 어제 도착했을 때에는 두 송이만 피어나고 있었다. 나머지 세 송이는 작고 귀여운 알사탕이었다. 화병에 옮기고 시간이 지나니 생기가 돌았고 세 송이 가운데 하나도 피어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두 송이는 아직도 수면에 빠진 것 같다. <br><br><br><br><br><br>올해 첫 작약은 네가 시작했고 나의 작약은 두 번째, 세 번째로 이어질 것이다. 아침에 잠깐 튤립, 작약 구근에 대해 작은언니와 이야기를 했다. 오빠네 마당에도 이런 구근을 심으면 좋을 텐데. 오빠는 나무는 좋아하지만 꽃은 그보다 덜 좋아하는 건가 혼자 생각했다. 언제 한 번 물어봐야겠다. <br><br><br><br>자주 검색하는 작약은 '바츠 젤라' 작약, '레몬' 작약이다. 환한 노란빛에 반해서 검색을 하곤 한다.  생화를 구매하는 방법을 찾을 수 없다. 도시의 큰 꽃집에서나 가능할까. 직접 마주하면 그 아름다움에 놀랄 것 같다. 언젠가 꼭 만나고 싶은 작약이다. 이런 마음이 닿아 만나기를 바란다. 작약을 보고 작약이 등장하는 시집을 꺼내 읽는다. 작약도 좋고 이런 시는 슬프다. 다시 읽어도 슬프다.​<br><br>​​작약 속을 걸었다작약이 없다작약이 아닌 것들만 가득했다죽는다고 달라질 게 있을까거기와 이곳이 사이는 없고환상이라고 말하면 이미 환상이 아닌데​여기는 한 번쯤 죽어야 올 수 있다는 말은 거짓이었다​물고기가 바라보는 곳을새 한 마리가 바라본다나도 그곳을 바라본다모두 다른 곳인데 한곳에 있었다​작약은 거기 있다허공에 뿌리를 두고꽃을 물속에 두었다누가 밀어넣었을까누가 밀어올렸을까어떤 반성과 참회의 꼭대기를 흔들었다​무수하게 산란하는 물고기들이내 얼굴을 스쳐간다​작약 속을 걸었다작약이 없다이 모든 게 작약이 되는 날이 온다는 말을 이제 믿지 않는다치욕스러웠다​반복되는 작약 ​피가 물속으로 퍼져갈 때 작약꽃이 피었다​나는 집을 만들 손이 없었다(「작약은 물속에서 더 환한데」, 전문)<br>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4366/47/cover150/k44293200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43664772</link></image></item><item><author>자목련</author><category>당신과의 포옹</category><title>책의 날, 책이 좋아서  </title><link>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233705</link><pubDate>Thu, 23 Apr 2026 10:0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233705</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P092939293&TPaperId=1723370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55/73/coveroff/p092939293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52137009&TPaperId=1723370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58/61/coveroff/k852137009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12137309&TPaperId=1723370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80/59/coveroff/k912137309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4981199&TPaperId=1723370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1396/81/coveroff/8934981199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수요일이었던 어제는 지구의 날 소등행사가 있었다. 작년에는 어땠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올해는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도 동참했다. 저녁 8시에 시작해 10분간 불을 끄는 일, 그 잠깐의 10분이 꽤 오래 느껴졌다. 10분의 침묵과 어둠이 가능했던 시절은 언제였을까. 침묵과 고요, 그것이 주는 평온함을 가만히 떠올렸던 시간이었다. <br>목요일이다. 목요일의 아이는 길을 떠난다고 했던가. 정확하지 않다. 아무튼 목요일이고 오늘은 세계 책의 날이다. 그리고 내 생일이다. 세계 책의 날과 생일이 되었다. 음력으로 생일을 챙기다 보니 이렇게 좋아하는 책과 생일이 같은 해도 맞이한다. 그러니 세계 책의 날을 축하하며 도착한 책을 기록한다. 가까이 지내는 선배 언니가 보낸 책 선물과 커피. 쨍한 핑크 책등이 인상적인 『언어의 무게』. 나는 읽지 않은 책이다. 내가 읽지 않은 책이라 하니 언니는 다행이라며 좋아하면 좋겠다고 했다. 읽기 전이지만 나는 벌써부터 좋다. 커피는 말할 것도 없이. 좋아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말할 수 있다는 건 참 좋은 이다. 그러니 이 글을 쓰는 지금이 참 좋다.<br><br><br><br>박상수 시인의 시집 『메신저 백』과 이름도 어려운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의 소설 『슬픔의 물리학』은 믿고 읽는 이들의 리뷰 덕분에 구매로 이어졌다. 『메신저 백』은 조금 놀랐다. 왜냐하면 수록된 시가 모두 긴 시라서. 마지막에 산문도 한 편 실렸다. 박상수 시인의 시집을 구매한 기억은 있는데 시의 내용이 생각나지 않는다. 물론 그 시집도 책장에 없다. 왠지 찬찬히, 오래 읽어야 할 것 같다. <br>꽉 차올라서 더 채울 게 없는데도 채우지 못한 것 같은 이런 이상한 슬픔과 빛, 소금과 허브로 잘 절여두었다가 건조시킨 후에 꽁꽁 싸매두자 일 년 뒤에 연잎 껍질을 풀면 비로소 오늘의 이 기분이 손에 배어나오도록, 우리 두 사람에서 시작해 우리를 아는 모든 사람에게 반짝이며 풍기도록, 양손을 활짝 펼쳐서 서로를 기다려주는 사람, 한 사람이 품에 들어오면 다른 한 사람이 날개뼈를 잡아 한 번도 떨어져 본 적이 없는 사람들처럼 녹아버리는 마음, 바람이 세서 피크닉은 어려울 것 같은 날에도 키 큰 나무 아래에서 눈을 감고 같이 누워 있는 모습을 떠올려보자 흩어지는 머리칼을 서로 정돈해주며 웃어주는 우리가 되자, (「다하지 못한 마음」 일부)<br>나는 이제 실패를 아는 사람으로서 돌아보면서 가기로 한다 돌아보면서 갈 수도 있을 것이라고 믿어보기로 한다 믿음은 있어서 믿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써 생겨나는 것, 그렇다면 있다 나는 벌써 있다,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감사를 반복하기로 한다 멀리서 종소리가 들리고 나는 강을 뒤로 하고, 이제 로비를 지나 숙소까지 돌아가는 일이 남고, 이것은 갔다가 돌아고는 구조, 회귀의 여정, 성숙의 파노라마를 완성하는 일에 실패할까 봐 내일부터는 하루에 한 번씩만 돌아보기로 한다 나는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고, 중얼거림을 반복하는 사람은 되지 못한 사람, 그런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되지 못한 사람으로서 나는 증명할 수 없는 실패의 말을 받아 적으며 복도를 걸어간다 그때에도 강물은 녹고 빛은 부서진다.  (「증명할 수 없는 사람」 일부)<br>'세계 책의 날'이니 오늘은 여느 때보다 책을 만지는 시간이 많았으면 좋겠다. <br><br><br><br><br><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1396/81/cover150/893498119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13968193</link></image></item><item><author>자목련</author><category>그러니까, 때때로 허물어지는 </category><title>사랑하는 사람을 안다는 건...</title><link>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227770</link><pubDate>Mon, 20 Apr 2026 11:3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227770</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12137883&TPaperId=1722777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03/99/coveroff/k312137883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02137883&TPaperId=1722777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04/7/coveroff/k802137883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42137883&TPaperId=1722777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04/12/coveroff/k842137883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오랜 시간 알고 지낸 친구가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의 반응 때문인데 나쁜 일의 경우 그렇게까지 속상할 일인가 나는 생각하기 때문이다. 저마다의 기준이 다르니까 그럴 수 있다고 해도 돌이킬 수 없는 일에 계속 신경을 쓰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해서다. 하지만 누군가 나를 보면 그도 역시 같은 생각을 할 수도 있다. 누군가는 아는 건 어렵고 이해하는 건 더욱 어려운 일이니까. 그럼 사랑하는 일은 어떨까? 상대의 모든 걸 품어주고 견디는 게 사랑일까. 사랑하기 때문에 그 모든 걸 감수할 자신이 있는 것일까? 애거서 크리스티의 당편소설 『장미와 주목』속 ‘이저벨라’가 선택한 사랑은 도무지 모르겠다. 그녀가 상대의 무엇에 반했는지 말이다. 이렇게 말하면 『장미와 주목』이 단순한 사랑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 있다. 어떤 면에서는 맞지만 소설을 다 읽고 나면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한 사람의 심연을 채우고 지배하는 게 무엇인지, 타인에 대해 안다는 건 얼마나 무지한가 스스로 묻게 된다. <br>소설은 죽어가는 누군가가 화자인 ‘나’를 만나고 싶어 한다는 소식으로 시작한다. 기억에도 없는 이름이었다. ‘존 게이브리얼’, 그를 중오하는데 마지막 순간에 나를 찾다니. 존 게이브리얼과의 만남은 호기심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못생긴 사기꾼의 최후를 지켜보고 싶은 이상한 욕망 말이다. 존 게이브리얼의 죽음의 순간은 그들의 첫 만남을 불러온다. 과거 나는 사고로 하반신 마비로 휠체어와 한 몸인 상태로 런던을 벗어나 형수 테리사의 의 고모가 유산으로 물려준 집이 있는 세인트 루에서 생활했다. 형수는 많은 정치 행사에 참가할 생각이라고 했고 그와 관련된 이들의 만남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그 지역의 보수당 대표로 나선 주자는 존 게이브리얼이었다. 그는 대단한 이력의 소유가는 아니었지만 선거를 출세의 발판으로 삼으려는 뚜렷한 목표가 있었다. 어떻게 하면 세인트 루 사람들의 환심을 사고 좋은 이미지를 남길 수 있는지 아는 사람으로 어느 정도 성공한 듯 보였다. 존 게이브리얼에게 나는 완벽한 청자였다. 모든 이야기를 쏟아냈고 자신의 욕망을 숨기지 않았다. <br>나를 방문한 다른 이들은 안타까운 시선과 연민의 말들을 전했다. 하지만 단 한 사람은 달랐다. 삶을 포기하려고 수면제를 모으고 있던 나를 한눈에 알아본 사람은 귀족 아가씨 이저벨라였다. 그녀가 가장 두려워하는 건 죽음이었기에 그랬을까. 나는 이저벨라와의 만남이 즐거웠고 그녀와 대화를 하면서 모아둔 죽음이 아닌 삶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그녀를 좋아하고 어쩌면 사랑하고 있었을지도. 그러나 그녀에게는 정혼자가 있었다.  그녀는 세인트 루의 성에 노부인들과 지내며 전쟁에 참가한 연인 사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돌아오면 결혼을 할 거라고.  <br>나와 이저벨라는 선거 이야기도 나누었는데 그 중심엔 당연 존 게이브리얼이 있었다. 선거일이 가까워지면서 그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칠 테니까. 그가 술주정뱅이에 폭력을 쓰는 남편으로부터 한 여인을 구해준 일은 일파만파 커졌다. 사람들에게 둘은 내연관계처럼 보일 수 있었으니까. 여인은 자신이 존 게이브리얼에게 도움이 되지 않아 속상해하고 자책했다. 나에게도 찾아와 조언을 구했다. 보수당의 승리를 위해 세인트 루의 많은 이들이 의견을 냈고 결국엔 존 게이브리얼의 승리는 가까워졌다. 그리고 이저벨라가 기다리던 정혼자가 왔다. 이저벨라 정말 잘 어울렸다. 존 게이브리얼은 영광이 기다리고 있었고 이저벨라에게는 행복한 결혼생활만 남은 듯 보였다. 그러나 그런 결말은 도착하지 않았다. 존 게이브리얼과 이저벨라가 떠났으니까. 둘 사이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존 게이브리얼은 귀족에 대한 반감으로 이저벨라를 꺾으려 했다는 것과 이저벨라는 아무렇지 않게 대했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나에게 두 사람은 어울리지 않았다.<br><br><br><br>시간이 지나 의술의 발전으로 나는 휠체어에서 벗어났고 우연한 장소에서 존 게이브리얼과 재회한다. 그를 통해 이저벨라가 있는 집으로 찾아간다. 예상대로 비참한 환경이었지만 이저벨라는 아니었다. 예전과 같은 분위기였다. 정식 결혼을 하지 않고 살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이저벨라가 세인트 루로 돌아간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놀라운 건 그녀가 존 게이브리얼을 대신해 총에 맞아 죽었다. 맨 처음 만났을 때, 죽음이 무섭다고 했던 그녀였다. 선거 행사의 만남에서 그를 좋아하냐고 물었을 때 그를 모른다고 했던 그녀였다. <br>“전 그를 몰라요…… 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죠. 누군가에 대해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모른다는 건 끔찍한 일이에요.” (235쪽)<br>분명 이저벨라는 존 게이브리얼을 사랑했다. 하지만 그를 알지 못했다. 아이러니하지만 맞는 말이다.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은 내 감정과 내 입장에 우선할 수 있으니까. 그러니 사랑은 복잡하고 삶도 마찬가지다. 애거서 크리스티가 필명 ‘메리 웨스트매콧’으로 쓴 소설에서 중점을 둔 것은 인간의 내면이었다. 한 사람의 삶을 이해하이 얼마나 어려운지. 자신이 지난 생을 돌아보는 입장에서도 다르지 않다. 형수 테리사가 짚어주는 이 부분이 소설의 핵심이다. <br>“그녀는 이해하기 힘든 사람이죠. 우리가 이해하지 못했던 건 ㅡ 그녀가 복잡해서가 아니라 단순하기 때문이었어요 ㅡ 무서울 정도로 단순했죠. 그녀는 언제나 본질만 생각했어요. 당신은 이저벨라가의 인생이 짧게 끝나버렸다고, 일그러지고 부서져버렸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난 그것 자체로 완전한 인생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 (347쪽)<br>『장미와 주목』의 화자인 휴 노리스가 이저벨라의 삶을 통해 자신의 그것을 마주한 것처럼. 오 분이나 천년이나 의미는 똑같고, 시간은 중요하지 않다. 이 소설이 T.S 엘리엣의 『네 개의 사중주』 중 “장미의 순간과 주목의 순간은 같다”에서 가져온 것은 의미심장하다. <br>이미 다른 소설이 그러했듯 재미있게 읽었지만 가슴 한 구석을 지나는 날카로운 무언가가 있다. 가장 사랑하는 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를 수 있다는 이저벨라의 모습은 남편과 가족이 전부였고 그것이 행복한 삶이라 여겼던 『봄에 나는 없었다』에서 상실을 느꼈던 ‘조앤’, 가장 든든한 조력자였던 엄마의 죽음와 불행한 결혼을 통해 성장하는 『두 번째 봄』속 ‘셀리아’를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타인에 대한 이해와 인간 심연에 대한 사유, 애거서 크리스티의 통찰이 놀랍다.<br>조앤은 자식들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로드니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몰랐다. 그들을 사랑했지만 알지는 못했다. 알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사람들을 사랑하면 그들에 대해 알아야 하는 건데. 참된 진실보다도 유쾌하고 편안한 것들을 사실이라고 믿는 편이 훨씬 수월하기 때문에, 그래야 자신이 아프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에 대해 몰랐다. (『봄에 나는 없었다』, 중에서)<br>사람이 자라 나이를 먹어가는 것이 얼마나 신비롭고 두려운 일인가. 사람에게 다른 어떤 순간보다 더 자기 자신다운 특별한 순간이라는 게 있을까? (『두 번째 봄』 중에서)<br><br><br><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04/12/cover150/k84213788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8041208</link></image></item><item><author>자목련</author><category>당신과의 포옹</category><title>벚꽃의 시간 </title><link>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217804</link><pubDate>Wed, 15 Apr 2026 10:1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217804</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P862939292&TPaperId=1721780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55/43/coveroff/p862939292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P812939292&TPaperId=1721780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55/59/coveroff/p812939292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39936&TPaperId=1721780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960/17/coveroff/8936439936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어제 점심에 벚꽃을 보고 왔다. 일부러 시간을 냈다. 지금 아니면 볼 수 없으니까. 매년 피는 벚꽃인데 만날 때마다 벅차다. 올해는 더 풍성하게 느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작년보다 나무는 더 자랐을 것이고 더 많은 것을 품고 있을 테니. 나무는 그 자리에서 자신을 지키고 성장한다. 눈 닿은 곳마다 벚꽃이 가득했다. 떨어진 꽃잎이 아까울 정도였다. 정말 황홀해서 차에서 내려 사진을 찍고 싶었다. 넋을 놓는 순간이라고 할까. 하지만 이면 도로가 없는 시골길이고 많지 않지만 차들도 있어서 그럴 수 없었다. 동영상을 찍었는데 조작 미숙인지 저장된 게 없었다. 아쉬운 마음이 컸다. 하지만 벚꽃터널을 지나는 그 순간의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은 남았으니 충분하다. <br><br><br><br><br><br><br><br>지척에 이처럼 아름다운 곳이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마주하는 풍경은 경이롭다. 낮에는 기온이 높아 4월의 여름인가 싶었다. 야트막한 동산에는 연둣빛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파트 화단의 크기가 작은 수수꽃다리의 연보라도 곱고 생기가 돈다. <br><br><br><br>표지가 벚꽃처럼 고운 김혜진의 단편집과 벚꽃처럼 황홀한 맛의 커피까지 좋은 게 많다. 땡스투는 꽃향기가 입안에 가득하다는 님에게. 김혜진은 정말 성실한 작가인 것 같다. 4월의 절반이 지났다. 남은 절반은 벚꽃의 기억과 소설의 즐거움, 맛있는 커피와 함께. <br><br><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960/17/cover150/893643993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9601774</link></image></item><item><author>자목련</author><category>목소리 </category><title>거긴 내 집이 아니야  - [어느 서민 여성의 삶, 노년, 죽음]</title><link>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215867</link><pubDate>Tue, 14 Apr 2026 11:1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21586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4961&TPaperId=1721586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160/44/coveroff/893204496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4961&TPaperId=1721586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어느 서민 여성의 삶, 노년, 죽음</a><br/>디디에 에리봉 지음, 이상길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12월<br/></td></tr></table><br/>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는 친구와 지인이 늘고 있다. 취업을 위한 목적이 아니라 부모님을 위한 준비로 취득한 것이다. 한 친구는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따려고 편입을 하기도 했다. 노후대비의 하나가 된 치매보험이 낯설지 않다. 내가 사는 시골에는 혼자 사시는 어르신이 많다. 늙었지만 혼자 살아가는데 어려움이 없기에 혼자 사신다. 낮에는 경로당이나 마을회관에서 함께 식사를 하고 집을 놔두고 그곳에서 잠을 자는 일도 허다하다고 들었다. 이유는 다양하다. 혼자가 적적해서, 생활비를 줄이려고, 오며 가며 운동이 되니까. 그러나 겨울에는 상황이 달라진다. 추위로 나서는 길은 미끄럽고 위험하며 낙상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해서 겨울엔 여력이 되는 자녀가 와 있거나 어르신들이 자녀의 집에서 지내다 오기를 반복한다. ​내 부모는 두 분 모두 돌아가셨기에 요양원에 갈 일이 없어 요양원이라는 공간은 익숙하면서도 낯설다. 아버지를 요양원에 모신 친구에게 들은 비용은 생각보다 비쌌다. 노년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경비는 얼마나 될까, 아무런 대비 없이 살아가는 나는 심란해졌다. 어떤 질병은 예상 없이 찾아온다. 대책과 대안이 없다면 당황하게 된다. 삶의 마지막조차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은 진정 서글픈 일이다. 경제적인 이유로 자식들의 눈치를 보거나 같은 이유로 고집을 피우지만 현실적인 상황에 굴복하고 된다. 디디에 에리봉의 『어느 서민 여성의 삶, 노년, 죽음』 속 어머니처럼 거긴 내 집이 아니라고 주장하다 멈춘다. 모든 걸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삶은 살아있는 삶일까. 저자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시작하는 이 책은 많은 질문을 남기고 한편으로는 노년이라는 구체적인 삶에 대한 계획이 있는지 묻고 있다. 부모가 아닌 다가올 나의 노년에 대해서 말이다. ​디디에 에리봉처럼 자식의 입장에서 보면 어머니가 집을 떠나 요양원에서 지내는 게 안전하고 합리적이다. 위급상황이 생겼을 때에도 빠른 처치가 가능하고 그곳에는 이미 기존 사용자가 있느니 그들과 잘 지내면 괜찮다고 여긴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 예상하는 것과 실제는 다르다. 기대했던 방향이 아닌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른다. 삶이 그렇다는 걸 알려주듯이. 어머니의 입장에서 보면 그곳은 내 집이 아니다. 분명한 사실이다. 새로운 집이 될 수 없다. 잠시 치료를 위해 입원한 병원이 아니라 퇴원이라는 조치가 없다. 혼자 지내는 것보다 훨씬 나은 게 아니냐고 할 수 있다. 어머니의 의견이 수용될 가능성은 전혀 없다. 그곳에는 그곳 나름의 규칙이 있고 사용자를 도와주고 돌봐주는 직원의 수는 충분하지 않으니까. 사립이 아닌 공공 요양원의 예산은 삭감된다. 필요한 재정은 항상 부족하니까. 그렇다고 그냥 그대로 받아들여야 마땅한가. 그런 삶을 강요해도 되는가. 어머니는 자신이 방식대로 받아들였다. 음식을 거부하고 마지막을 선택한 것이다. ​디디에 에리봉은 그곳에 어머니를 모시고 자주 찾아뵐 거라 여겼다.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어머니의 사후에 쓰인 이 책에서 그는 스스로를 나쁜 아들이라 말한다. 하지만 그는 나쁜 아들이 아니다. 한 번도 행복한 시절이 없었던 온통 불행했던 어머니의 삶을 재조명하며 사회적 구조와 현실적으로 필요한 제도에 대해 설명하는 훌륭한 책을 썼으니까. 어린 시절 부모에게 버림받고 하녀와 가정부로 생계를 유지하고 노동자와 결혼한 어머니. 남편이 죽은 후에야 뭔가 선택할 수 있는 삶이 주어졌다. 그러나 아프고 병들면서 그것은 온전히 사라졌다. 한때 어머니가 사랑했던 남자 때문에 강한 의지를 보였지만. <br><br><br><br>디디에 에리봉과 어머니와 보낸 시간을 통해 어머니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은 남다르고 특별하다. 자신의 정체성과 정치적인 활동으로 인해 가족으로부터 떨어져 독립적인 생활을 시작했던 디디에 에리봉이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와의 관계를 시작한다. 항상 텔레비전을 틀어놓고 지내는 어머니, 은근한 인종주의자 노인. 디디에 에리봉은 어머니의 잘못된 행동이나 발언을 언급하면서도 어머니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 어머니의 말대로 그녀의 집이고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은 적 없이 평생 그렇게 살아왔으므로. 어머니의 부재는 그 모든(어머니와 보낸 순간, 짧은 대화, 사소한 언쟁) 게 애달프고 그립다. ​아들이었으나 더 이상 아들이 아니라는 것. 내게도 일어난 일이다. 더 이상 아들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문화적·정신적으로뿐만 아니라, 이번에는 정말로 내가 더 이상 아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점차 의식하게 되는 것. (155쪽)​더 이상 아들이 아니라는 것. 그러니까 사회적 역할에 대한 이야기. 역할이 사라진다는 이 부분을 읽을 때 나는 울컥했다. 부모가 없는 나에게는 사라진 역할, 친구들이 여전히 수행하는 그 역할. 누군가의 부재로 인해 관계는 지워지고 역할은 사라진다. 나는 더 이상 딸이 아니라는 것, 누군가의 딸이었던 나는 존재하지 않고 큰언니의 동생 역할도 할 수 없다는 사실. 누군가 그게 무슨 말이냐 할지도 모르지만 이건 명확한 사실이었다. 그러니 디디에 에리봉이 어머니의 입에서 자주 쓰던 억양, 말투, 어조, 사투리를 들을 기회가 없다고 여겼던 차에 발견한 방언사전은 어머니를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1930년대 프랑스에서 태어난 디디에 에리봉의 어머니의 이야기 『어느 서민 여성의 삶, 노년, 죽음』을 읽으면서 주변을 둘러본다. 농담처럼 사촌에게 사고뭉치라는 소리를 듣는다는 고모, 택시 운전을 하시는 작은아버지, 고된 농사일을 하는 오빠 내외, 얼마의 국민연금을 받게 될까 계산하는 나까지. 이곳이 아닌 그곳의 삶이 다르지 않다. 다가올 노년의 내 목소리는 누구에게 닿을 것인가. 아니,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늙음과 죽음을 마주할 공간, 내가 원하는 집은 존재할까. <br>남들에게 들리도록 소리를 낼 수 있는 고령자들의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실제의 가능한 ‘우리’가 없기 때문이고, 따라서 현실에서나 심지어 상상의 영역에서도 가능한 공적 발언이 없기 때문이다. (289쪽)]]></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160/44/cover150/893204496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1604461</link></image></item><item><author>자목련</author><category>목소리 </category><title>나를 쓰는 일  - [지극히 나라는 통증 - 비로소 나아가는 읽기, 쓰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213847</link><pubDate>Mon, 13 Apr 2026 11:0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21384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72031647&TPaperId=1721384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306/67/coveroff/k27203164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72031647&TPaperId=1721384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지극히 나라는 통증 - 비로소 나아가는 읽기, 쓰기</a><br/>하재영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09월<br/></td></tr></table><br/><br>나의 글쓰기는 결핍 속에서, 통증에 의해 형성되었다. 통증은 단순한 병리적 증상이 아니라 존재가 세계와 마찰하는 순간에 생겨나는 미세한 감각이다. 또한 말이 채우지 못한 자리에 발생한 공백이자, 말이 넘쳐 흐른 자리에 생겨난 잉여다. 이 낯선 감각은 기억과 몸, 타자와 언어의 경계를 가로지르며, 내가 지극히 나일 수밖에 없는 존재의 방식으로 드러난다. (10쪽)<br>간헐적으로 통증에 시달린다. 미련하게도 참는다. 오랜 시간 약을 먹었기에 약을 줄이고 싶은 마음인지 모른다. 그러다 약을 먹는다. 통증이 사라진 이유가 약 때문인지 시간의 흐름에 따른 결과인지 알 수 없다. 이 통증은 나밖에 모르기에, 누구에게도 설명할 수 없다. 설명하다 한들 나의 고통을 상대는 모른다. 그걸 알기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러니 통증은 언제든 나를 습격한다. 나를 지배하고 무기력하게 만든다. 이러한 사정이 하재영의 『지극히 나라는 통증』이 궁금했다. 이 책은 단순하게 제목 때문에 읽게 된 책이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 책은 통증을 다루거나 통증의 경험을 말하는 책이 아니다. 저자가 다른 지면에 발표한 글과 다양한 주제를 풀어낸 에세이다. 그건 저자에게만 닿은 고유한 감각과 생각일 수도 있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모두가 관심 있게 짚어야 할 주제이기도 하다.​지극히 나라는, 개인적인 서사는 타인에게 공감을 얻기 어렵다. 상처와 고통, 과거의 트라우마를 꺼내기 어려운 이유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같은 경험을 했다면 다르다. 아니, 그 이야기를 꺼낼 창구가 있다면 괜찮다. 창구가 있다면 들어줄 이가 있다는 것이니까. 저자가 12년 전의 상처를 꺼내고 정신의학과를 다니고 변호사를 만나는 일련의 과정은 아무런 결론에 도달하지 못했더라도 의미가 있다. 내면 깊숙이 자리한 트라우마의 실체를 직시할 수 있고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른 사람이라는 걸 확인할 수 있었으므로. ​잔인한 상흔으로 남은 글을 쓸 수 있다는 건 대단한다. 쓴다는 건 참 좋은 일이다. 쓴다는 건 복잡했던 무언가가 풀리는 순간이며 말하고 싶은 욕망을 인정하고 수긍하는 태도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저자는 개인적인 경험을 풀어내며 잘못된 사회적 시선에 대해 말한다. 더불어 타자에 대한 이해와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던진다. 발레를 위한 몸을 위해 감수해야 했던 시간, 그러나 끝내 발레에 적합한 몸이 아니라서 선생님에게 비난의 말을 들어야 했다. 날씬하고 마른 몸 뒤에 숨겨진 폭력의 언어와 폭식. 성년이 되면서 이어진 굶기와 하이힐의 높이로 채워진 몸. 예쁘고 날씬해야 한다고 여성은 주입받는다. 그게 당연하다고 여긴다. 정녕 그건 당연한가. 저자의 이야기를 통해 여성 독자라면 자신의 몸을 보게 될 것이다. 다이어트를 위해 지불한 시간과 돈, 그건 누구를 위한 것일까. 지극히 개인적이고 유일한 나, 그러니 획일된 몸은 사라져야 한다. ​저자의 솔직한 고백은 술에 대한 것으로 이어진다. 자신을 ‘알코올사용장애’라고 설명한다. 적당한 취기는 효과적인 사회적 가면이라고. 술을 마시지만 원고 마감을 어긴 적도 없고, 취재나 강연에 늦지 않았고, 집안은 깨끗하고 정리되어 있고 공과금을 연체하지 않았다고. 중독에 관해서는 ‘술’대신 다른 것들로 채워질 수 있다. 스마트폰, 연애, 커피, 쇼핑, 게임. 과연 중독에서 자유로운 이가 얼마나 될까. 아니 가능이나 할까. <br><br><br>현대인은 자율적으로 살아내기 위한 방편으로 비자율적인 쾌락에 기대 특정한 행위를 반복한다. 더는 중독을 비참하게 훼손된 인간의 징표로만 여길 수 없다. 대상과 정도는 다르지만 무엇인가에 얼마만큼은 중독되어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공동의 운명에 처해 있다. (92쪽)<br>이처럼 자신의 통증(경험)을 통해 우리는 타자와 대화를 나눌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다. 그 경험을 터놓을 수 있는 시작, 그것은 나 아닌 다른 존재에 대한 존중에서 비롯된다. 저자가 키우던 반려견의 죽음을 통해 느꼈던 슬픔과 상실, 나아가 반려종에 대한 부분이 그러하다. 나는 반려인이 아니기에 더욱 인상적이었다. 반려동물의 죽음을 통한 상실은 가족을 잃는 것과 같다고 하지만 나는 그것을 알려 한다고 해도 온전히 알 수 없다. 또한 유기견 센터에 모인 버려진 개에게 좋은 입양자를 찾아주고 싶은 마음이지만 말 잘 듣는 개라는 소개는 결국 키우기 쉬운 개라는 말이며 이것은 인간의 입장에서 본 것이라 말한다. 생명체로 대우하기는 어려운 일인지, 인간과 반려동물의 관계뿐 아니라 모든 관계에 대해 돌아보게 만든다. ​동물에 관한 이야기는 더 이어진다. 환경보호 정책으로 자동차나 오토바이의 운행이 금지된 곳에서 그것들을 대신한 말의 노동력은 괜찮은가 묻는다. 그런 풍경을 마주한다면 나는 어떤 생각을 할까. 관광지에서 말을 타고, 말이 끄는 마차를 타보았지만 동물노동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기에. 인간의 필요와 이익이 최우선 순위인 시대,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와의 관계는 새롭게 사유되어야 한다는 저자의 믿음을 고민하게 된다. ​저자의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에서 만났던 공간과 엄마에 대한 이야기는 여전히 애틋하고 울컥한다. 그것은 여성의 공간, 여성의 글쓰기로 연결된다.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말이다. 가부장제에 편입되면서 이름을 잃어버린 사람, 아내이자 며느리, 엄마인 여자는 어디에나 있어야 했지만 그렇기에 어디에도 속할 수 없었고 자신만의 장소는 존재하지 않았다. 있어도 없는 사람이라 말했던 엄마의 말은 사라질 수밖에 없었고 침묵해야만 했다.<br>한때 우리는 침묵으로써 우리를 보호하려 했으나, 지금은 존재한다는 것이 곧 말한다는 의미임을 안다.나 자신으로서 말하기, 위반된 언어로 말하기, 단상 위에서 말하기. 또다시 내면의 유혈사태를 겪더라도 나는 잃어버린 것을 회고함으로써 계속 말하고 싶다. (248쪽)<br>무엇이든 쓸 수 있고 말할 수 있는 힘을 키우는 일. 말하고 쓰는 것. 이처럼 자연스럽고 자유로운 것이 왜 두려운 것이 되었을까. 잘 쓰고 싶어서 그랬을지 모른다. 잘 쓴 글이 아닌 나를 쓰는 일을 중요하다.  솔직하고 정직한 나를 쓰는 일, 나의 통증을 마주보고 나를 쓰고 싶다. 그 가능성을 믿는 일, 그게 시작일 것이다.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306/67/cover150/k27203164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3066763</link></image></item><item><author>자목련</author><category>목소리 </category><title>스크린 시대의 지침서  - [우아한 사고를 위한 철학 - 어떻게 정신적 빈곤에서 벗어날 것인가]</title><link>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200289</link><pubDate>Mon, 06 Apr 2026 16:2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20028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52137109&TPaperId=1720028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73/19/coveroff/k45213710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52137109&TPaperId=1720028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우아한 사고를 위한 철학 - 어떻게 정신적 빈곤에서 벗어날 것인가</a><br/>호세 카를로스 루이스 지음, 김유경 옮김 / 북하우스 / 2026년 04월<br/></td></tr></table><br/><br>호세 카를로스 루이스의 『우아한 사고를 위한 철학』는 ‘우아한 사고’란 말에 끌린 책이다. 우아한 사고란 무엇일까 싶은 거다.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이 현대인의 민낯과 욕망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는 걸 알았다. sns와 인터넷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끝내는 우리네 일상에서 잃어버린 게 무엇인지 들려준다. 더불어 이대로 간다면 삶이 얼마나 피폐해질지 예측한다. 시대에 뒤떨어질까 봐 트렌드를 모르는 바보가 될까 두려운 마음에 좋아요를 누르고 일상이 상품이 되고 세상.<br>저자는 디지털 화면이 지배하는 세상, 현재를 ‘스크린 시대’라 말한다. 과연 정확하다. 스마트폰에 빠져 대화는 단절되고 오프라인은 사라지고 온라인만 유효한 세상이 되었으니까. 이 책을 읽기 전 시청한 다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가족이 거실에 모여 있지만 과거와 다르게 TV 채널에 두고 싸우지고 않고 오가는 대화, 아니 소리가 아예 없다. 각자의 스마트폰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보편적인 모습이라고 말하며 그게 무슨 문제냐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지 않은가. 비단 다큐 속 가족만 그럴까.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 그런 풍경을 떠올릴 것이다. 더 빠르게 더 강렬하게 변하는 세상에 공감하기 위해 내 속도와는 다르게 살아가고 있다. 모두 그러니까 나도 그래야 한다는 어떤 강박과 욕망의 끝에서 마주하는 감정은 허무가 아닐까. <br>시대와 환경이 변했고 저자의 말대로 집단보다는 개인의 가치가 더 중요해진 세상이기에 과거와 다르게 가족, 학교, 친구, 지역사회를 통한 영향력은 크지 않다. 장소와 시간에 대한 생각도 마찬가지다. 한 개인의 삶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가 처한 상황이나 환경의 역할은 중요했으나 현재는 그렇지 않다. 스트린 시대에는 더 중요한 것들, 더 급진적인 것들이 중심이 되어 과거 새대의 경험이나 역사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가 겪을 기후변화, 가상현실, 메타버스, AI가 중요하니까. 그렇다고 해도 같은 시간 선상에 존재하는 것을 의미하는 동시대성을 잊어버려서는 안 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br>해시태그, 유행, 뉴스 등이 끊임없이 쏟아지고 원자화되면서, 동시대성을 인식할 여유조차 없다. 정신적으로 빈곤한 사람에게 동시대성은 단지 동시성을 뜻하고, 이들은 동시에 일어나는 일들 사이에 아무런 연관이 없다고 느낀다. (59쪽)<br><br><br>​스크린 시대 이전에는 TV, 라디오, 신문 등 제안된 미디어에 의존했기에 직접 경험한 것들에 대한 신뢰가 컸지만 현재는 스크린 속의 콘텐츠에 동화되어 세계화된 성공이라는 개념으로 연결된다. 본격화된 세계화는 사막화, 기후변화, 인구 과잉, 자원 부족, 전염병 같은 피할 수 없는 위협으로 가득한 미래를 전망한다. 이는 창의성을 저해하는 동시에 현실에 대한 인식도 제안한다. 챗지피티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도 같은 맥락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풍부한 시각 정보를 소비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그것을 분석하고 해석하는 능력은 오히려 점차 퇴보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시각 언어를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해석하는 역량의 부족으로 이어지며, 시각 정보에 대한 비판적 사고 발달을 가로막는 결정적 걸림돌이 된다. (292쪽)​그렇다면 저자가 주장하는 우아함은 무엇일까. 저자의 설명에 의하면 우아한 사람은 자신만의 미적 취향을 키우면서 스스로 보기에 아름답지 않다고 판단되는 것들은 과감히 버린다. 이 말은 기준이 정해졌기에 어떠한 제안이 와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에게 맞는 것을 선택한다. 그러나 정신적으로 빈곤한 사람은 선택의 기준이 없기에 휘둘리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며 산다. 누가 좋다고 하면 좋은 거니까, 인터넷과 유튜브를 통한 가짜 뉴스의 진위 여부를 따지는 대신 그렇구나 믿게 된다. 그러니까 우아한 사람이란 자신만의 안목이 있고 분별력과 사고력을 갖춘 사람이라 볼 수 있다. ​『우아한 사고를 위한 철학』에서 주장하는 것은 안목을 키우는 일이라고 여긴다. 의심하고 비판하며 정보에 대해 맹신하지 말고 경험하며 자신이 느낌 감정을 이모지가 아닌 다양한 어휘로 주고받으며 상대와 소통하는 일. 어쩌면 가장 기본적인 생활 태도가 아닐는지. 자연스럽고 평온함으로 타인과의 관계를 유지하고 회복시키는 힘,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우아함이라 생각한다.​철학서라서 어려운 용어가 없는 건 아니지만 스크린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자신의 현재를 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는 책이다.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스마트폰와 거리두기, 더불어 나와 타자의 관계를 점검하고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선물할 것이다.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73/19/cover150/k45213710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8731934</link></image></item><item><author>자목련</author><category>당신과의 포옹</category><title>4월이라 좋다 </title><link>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193924</link><pubDate>Fri, 03 Apr 2026 10:2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193924</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02137865&TPaperId=1719392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764/92/coveroff/k202137865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42137883&TPaperId=1719392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04/12/coveroff/k842137883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52137509&TPaperId=1719392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83/21/coveroff/k852137509_2.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br>책을 샀다. 모두 소설이다. 소설이 좋아서, 새로운 소설을 찾았다. 새로운 소설이라니, 새로운 소설은 무엇인가. 읽지 않은 소설은 모두 새로운 소설이 아닐까. 아니다. 내게 온 소설이 새로운 소설이다. 그래서 예소연의 단편집은 반갑다. 『너의 나쁜 무리』엔 좋았던 「소란한 속삭임」이 수록되었다. 그러니까 위픽 시리즈로 출간되었던 소설이다. 정이현의 단편집을 읽으면서도 알게 되었다.<br>위픽 시리즈 한 권의 가격과 소설집 한 권의 가격 차이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시리즈에는 작가의 인터뷰가 있으니 차별점이 있다고 해야 할까. 위픽 시리즈의 소설이 같은 작가의 다른 소설집에 묶여 나온다는 걸 알았으니 읽고 싶었던 위픽 시리즈를 기억했다가 그 작가의 단편집이 나오면 살펴봐야겠다.<br><br><br><br><br>애거서 크리스티의 『장미와 주목』는 애거서 크리스티가 필명으로 발표한 작품 중 하나다. 추리소설과는 다른 분위기의 소설들이 좋았던 기억이 있다. 이번에 문동에서 개정판으로 나왔다. 기존에 읽지 않았기에 주문했다. 개인적으로 구판 디자인을 선호한다. 베로니크 오발데의 연작소설집 『한낮의 불운』은 2024 공쿠르 단편소설상 수상작이다. 이 작가의 소설을 읽었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 책을 알려주신 잠자냥의 평이 좋아서 궁금해서 구매했는데 땡스투는 다락방 님에게. 재미있을 것 같다. <br>전국 각지에서 꽃축제가 열리는 모양이다. 내가 사는 지역 근교에서도 다양한 꽃 축제가 열린다. 아파트에도 붉은 동백이 보인다. 사진은 친구가 보낸 동백이다. 오래된 동백, 어르신 동백이다. 올봄은 작년보다 얼마나 짧을까. 봄이 오래 지속되면 좋으련만. 아무튼 나는 4월이라 좋다. <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83/21/cover150/k852137509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8832113</link></image></item><item><author>자목련</author><category>목소리 </category><title>예술가가 아닌 인간 패티와의 만남  - [패티]</title><link>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180716</link><pubDate>Sun, 29 Mar 2026 10:4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18071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1964674&TPaperId=1718071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402/64/coveroff/8961964674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1964674&TPaperId=1718071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패티</a><br/>패티 스미스 지음, 정혜윤 옮김 / 아트북스 / 2026년 02월<br/></td></tr></table><br/>가만히 최초의 기억을 떠올린다. 이게 최초인가 갸우뚱하다. 강렬해서 뇌가 기억하는 것, 그것이 최초가 맞을 것 같다. 선명한 이미지는 아니고 공간과 분위기만 이어진다. 그러니 아무리 애를 써도 젊은 부모에 대한 기억은 잡히지 않는다. 낡은 사진도 정리해서 남은 게 없다. 나는 그 기억을 찾을 수 없고 닿을 수 없다. 아쉬움이 몰려드는 이유는 뮤지션이자 시인인 패티 스미스의 회고록 『패티』를 읽어서다. 자신의 생에 대한 기록, 나를 쓴다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정작 쓰려고 한다면 아무나 쓸 수 없다는 걸 알게 되니까.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패티 스미스의 이름을 들어봤지만 그의 음악이나 시에 대해 잘 모른다. 그런 점이 이 책을 읽기에 적당한 독자가 아닐 수도 있고 오히려 이 책을 가장 즐겁게 읽을 수 있는 독자가 된다. ​세상에서 가장 긴 책을 쓰리라고 생각했다. 하루하루의 모든 일을 낱낱이 기록할 거라고. 그렇게 모든 걸 적으면 누구나 거기에서 자신의 한 조각을 발견할 수 있을 거라고. 누군가는 나와 함께 머물 것이고, 또 누군가는 날개가 생겨 훨훨 날아갈 거라고. (11쪽)​자신이 기억하는 첫 감각은 움직임이라고 기억하는 아이라니, 어머니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심한 기관지 질환을 앓는 병약한 아이였지만 모든 걸 만지고 직접 느끼고 경험해야 하는 아이. 가난한 부모와 차례로 태어난 동생들과 보낸 유년 시절은 패티에게 가장 행복한 시절이 아니었을까. 철거를 앞둔 주택단지에서 풍요로움보다는 결핍이 가득한 시절. 이사를 다니느라 친구를 사귀고 우정을 나룰 충분한 시간이 없었던 패티에게 동생들은 가장 좋은 친구였던 것 같다. 병치레가 잦은 딸을 재우기 위해 자신의 귀한 시집을 건네주는 어머니. 어쩌면 패티의 예술적 감각과 특별함은 이런 어머니에게 받은 건지도 모른다. ​그러나 병이 나으면 패티는 동네 아이들의 대장 노릇을 하며 지냈다. 그런 패티에게 학교는 재미없는 곳이었다. 학교 가는 길에 숲속 연못가에서 악어거북에 빠져 점심시간이 다 될 때까지 그곳에 머무른 아이라니. 나는 빨간 머리 앤이 떠올랐다. 패티의 남다름은 또 있었다. 아이들과 선생님조차 생경했던 티베트에 관심을 갖는 6학년 아이라니, 정말 독특하지 않은가. 이런 어린 시절의 모습은 나중에 그의 행보에 영향을 미치는 게 당연하다. 패티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건 랭보의 『지옥에서 보낸 한철』이라고 생각한다. 열다섯 살의 소녀가 랭보를 만난 건 운명이었다.<br>자신의 고통을 시집 속에 봉인했을 때 그의 나이가 고작 열아홉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 나는 그의 고백이 고통에서 그를 해방시켰으리라 믿고 싶었고, 그를 따라 나 역시 모든 걸 송두리째 뒤흔들어놓는 영적 여정의 길을 걷겠다고 다짐했다. (111쪽)<br><br><br>​뭔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진짜 그것으로 향하는 건 어렵다. 그러나 패티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향해 나갔다. 대학교 3학년에 학교를 그만두고 뉴욕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로버트 메이플소프를 만나 글을 쓰고 새로운 예술의 세계로 나간다. 시는 노래 가사가 되고 산문시집의 출판, 드로잉 전시회도 하게 된다. 밥 딜런을 만나고, 시와 세 개의 코드와 소음이 합쳐진 공연. 그 모든 걸 상상하니, 분위기와 벅차오름이 내게로 전해진다. 그리고 프레드 소닉 스미스와의 만나 사랑에 빠진다. 차들이 마구 달려오는데 도로 한가운데서 왈츠를 추는 패티와 프레드. 결혼 후 패티는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아간다. ​나는 어린 아들이 잠들어 있는 이른 아침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때가 내 글쓰기 시작이었다. 몇 달이 지나자 일과는 더 자연스러워져 나는 내면의 시계에 맞춰 기분 좋게 잠에서 깼다. 새벽녘 집이 온통 잠의 고치에 싸인 가운데 잭슨의 숨소리가 제 아버지의  숨소리와 하모니를 이루었다. 나는 조용히 아래층으로 내려가 결코 집을 떠나지 않는 여행자의 모험을 계속 써내려갔다. (229쪽)​그러나 모든 삶이 그러하듯이 패티에게도 소중한 이들과의 이별이 다가온다. 함께 뮤지션으로 활동하고 예술적 교감은 나눈 이들의 죽음, 사랑하는 남편과의 영원한 작별까지. 패티는 도움을 받아 다시 새 삶을 시작하고 시를 통해 공적인 삶으로 뮤지션으로 공연을 이어간다. <br>회고록 『패티』를 통해 나는 뮤지션 패티가 아닌 인간 패티를 만났다. 뮤지션이자 예술가의 행보, 그녀와 함께 노래를 만들고 같은 곳을 향해 나간 동료와 지지자와의 만남과 시간에 대한 이야기는 그녀의 팬에게는 가장 좋은 선물이다. 다른 책을 통해 그녀의 공연, 노래, 시에 대해 알고 있겠지만 말이다. 잘 알아서 반갑고 즐거운 책이 아닐까. 하지만 나는 그런 부분이 아닌 어린 시절의 기억, 가족들과 보낸 충만한 느낌, 자신의 아이들과 보낸 그런 시간을 간직한 진솔하고 담담한 글, 인간 패티의 글을 만날 수 있어 좋았다. 나 같은 독자에게도 깊은 여운을 안겨주는 책이다.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402/64/cover150/8961964674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4026488</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