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그리하여 멀리서  (자목련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 April, Book, Coffee, &amp; You </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Fri, 07 Aug 2026 22:24:33 +0900</lastBuildDate><image><title>자목련</titl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myface/pt_7630901655124647.jpg</url><link>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자목련</description></image><item><author>자목련</author><category>목소리 </category><title>가난의 온도  - [일인칭 가난 - 그러나 일인분은 아닌, 2023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title><link>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433338</link><pubDate>Wed, 05 Aug 2026 09:4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43333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02936242&TPaperId=1743333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2956/26/coveroff/k20293624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02936242&TPaperId=1743333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일인칭 가난 - 그러나 일인분은 아닌, 2023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a><br/>안온 지음 / 마티 / 2023년 11월<br/></td></tr></table><br/><br>시골에서 나고 자란 나는 누군가 집이 없을 수 있다는 걸 이해하지 못했다. 학업이나 직장을 위해 월세, 전제를 얻는 경우를 제외하곤 누구나 집이 있을 거라 여겼다. 풍족하지 않았으나 한 번도 우리 집이 가난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가난 자체에 대해 몰랐던 게 맞다. 어른이 되어서도 타인의 삶과 비교하지 않았다. 그냥 나 사는데 바빴으니까. 실존과 생존이 걸린 이들에게 부동산, 주식의 문제는 다른 세상의 삶이니까. 20여 년간 국민기초생활수급자로 살아온 1997년 생 저자 안온의 『일인칭 가난』은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는 가까운 동생과 이야기를 하다가 읽어야겠다고 생각한 책이었다. ​저자는 어린 시절 초등학교 방학식이 끝나면 멸균우유를 받아 집에 가는 것을 시작으로 자신의 삶을 이야기한다. 가난을 말한다. 어린아이에게 수급자란 말은 어떻게 다가왔을까. 교통사고로 눈이 안 보이는 아빠, 사고로 정규직으로 일하지 못하는 엄마의 상황을 어린아이에게 확인받는 담당자. 가난을 증명해야 필요한 것을 지급하는 시스템의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복지센터 대신 그들이 사는 곳에 직접 나가 보고 실사하는 게 마땅하지 않은가. 인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냉대와 동정의 시선을 거두지 않는 시선이 참 싫다. ​가난이 ‘진짜’가 아닐 수가 있나. ‘가’짜 가난을 만나면 따지고 싶다. 할 짓이 없어서 가난을 도둑질하느냐고, 하다하다 가난마저 진정성 배틀을 붙이는 거냐고. (18쪽)​미래를 그리는 입주자와 기초생활수급자가 동시에 거주하는 주공 아파트에 살면서 저자가 낡은 아파트를 허물고 새 아파트를 짓는 재개발은 나쁜 것이라고 인식하는 건 당연하다. 임대 아파트 주민들의 출입구가 따로 있다는 사실에 경악한다. 수급자에서 벗어나는 게 가장 좋은 일이지만 제도적으로 보면 그건 너무 힘든 일이다. 노동 소득(월급, 아르바이트)가 최저생계비를 넘기면 수급자에서 탈락되고 그러면 기용 생활비가 줄어드니까. ​저자는 가난에서 탈출하는 방법은 공부뿐이라고 여겼고 공부도 잘했다. 엄마는 부산의 사범대학에 입학하기를 바랐지만 글을 쓰고 싶었던 저자는 대구의 국문학과를 선택한다. 서울에 있는 대학에 합격했지만 국립대라는 가성비를 지켜야 했다. 장학생으로 입학했지만 생활비는 별개의 문제였다. 계속해서 장학금을 받기 위해서는 성적 기준을 맞춰야 했지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유지하기란 정말 힘들었을 것이다. <br><br><br><br>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들었던 성차별에 대한 부분은 경악스럽다. 왜 화장을 안 하고 다니냐는 사장이나 손님의 성희롱을 차단하는 게 아니라 슬기롭게 빠져나갔다고 칭찬하는 점장. 그뿐 아니다. 석사 첫 학기에 저자가 교수와 동료에게 받는 질문은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부모님 재력, 남자친구가 있는지, 결혼 및 임신 계획이 있는지. 대학원 교수씩이나 된 사람이 이런 질문을 하다니. 일부겠지만 다른 대학원 교수는 어떤 질문을 하는지 새삼 궁금해진다. ​저자의 가족사는 불행하다. 할머니와 알코올중독 아버지의 자살은 저자가 선택할 수 없는 것이다. 술에 취해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를 병원에 입원시키기 위해 돈을 모았던 저자에게 도움의 손길은 없었다. 할아버지와 고모는 남이나 다름없었다. 저자에게 가족은 엄마와 같은 환경에 놓인, 엄마 친구의 딸뿐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아는 건 우리뿐’(87쪽)이라는 말은 너무도 적확하다. ​나는 가난을 말할 때 가족을 맨 뒤에 배치한다. 가족이 그 모양이니까 그렇게 됐지 따위의 말을 듣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불행한 가족과 가난을 세트 취급하는 클리셰가 지겹다. 내 가난은 가족이 아니라 교통사고, 알코올중독, 여성의 경력 단절과 저임금, 젠더폭력 및 가정폭력과 세트였다. 날 불행하게 했던 것은 교통사고, 알코올중독, 여성의 경력 단절과 저임금, 젠더폭력 및 가정폭력이(었)다. (116쪽)​이 책이 의미 있는 부분은 바로 이것이다. 사회적 가난을 보는 시선, 엄마를 비롯한 아르바이트나 일터에서 만난 여성 근로자를 통한 페미니즘 관점은 특별하다. 대학원에서 이소호의 시집 『캣콜링』과 조남주의 소설 『82년 생 김지영』의 발제에 대해 페미니즘 문학이 문학성이 낮다고 지적하다 사과하는 장면은 한편으로 통쾌하기도 하다. 물론 저자가 남성이라면 또 다른 시선으로 접근할 수도 있겠지만. ​『일인칭 가난』은 저자의 가난을 통해 사회적 가난의 굴레와 다양한 제도의 한계, 어떻게 사회가 가난을 차별하고 억제하고 억압하는지 자세하게 보여준다. 철저하게 신청주의인 한국의 복지에 대해서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안내하는데 그가 바라는 건 시스템 자체의 문제를 바로잡는 일이다. 선거 때마다 잠깐씩 임대 아파트에 들르고 새 장갑으로 연탄을 나르는 일이 아닌 현실적인 제도 개선이 절실하다고 말한다. ​선풍기를 켜고 소파에 앉아 이 책을 읽었다. 그래서일까. 가난의 온도가 떠올랐다. 더위와 추위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가난. 여름의 가난의 온도는 몇 도일까. 적정한 온도를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시간과 제도가 필요할까. 그 중심에 선 가난은 그 시간을 버티고 견디며 기다릴 수 있을까.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2956/26/cover150/k20293624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29562607</link></image></item><item><author>자목련</author><category>목소리 </category><title>사랑이 가능한 시대인가? - [연애 시대의 종말]</title><link>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429765</link><pubDate>Mon, 03 Aug 2026 11:2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42976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82130594&TPaperId=1742976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09/19/coveroff/k48213059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82130594&TPaperId=1742976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연애 시대의 종말</a><br/>비비언 고닉 지음, 홍한별 옮김 / 엘리 / 2026년 07월<br/></td></tr></table><br/><br>소설을 읽는다. 내가 모르는 삶이 거기 있어서, 안다고 착각하는 삶이 거기 있어서. 재밌다고, 슬프다고, 아프다고, 눈부신 은유에 놀라고 감탄하다. 그런 읽기가 전부였다. 뭐, 그런 읽기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소설을 좋아하는 일개의 독자이니까. 내가 알지 못하는 소설이 너무 많다. 먼저 읽은 누군가의 글에 매료되어 그 방대한 세계의 입구에서 기웃거린다. 슬그머니 문을 열고 작은 틈새로 쏟아지는 빛에 눈이 멀 것 같다. 비비언 고닉이 30년 전에 쓴 비평 에세이 『연애 시대의 종말』가 그랬다. 20세기의 문학 작품 가운데 사랑을 읽고 탐구한 기록이다. <br>책을 읽기 전 우선 목록을 살폈다. 내가 아는 작가가 있는지. 거의 없었다. 그렇다. 나는 한국문학을 좋아하고 그에 비해 세계문학은 읽은 게 많지 않다. 아니 거의 없다는 게 맞을지도. 그래도 반가운 이름이 있었고 그중 하나가 ‘윌라 캐더’였다. 그러니까 내가 이 책을 읽은 건 윌라 캐더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그녀의  『루시 게이하트』가 너무 좋아서, 고닉은 어떻게 이야기할지 궁금했다. 책을 읽을 때 작가의 배경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이 책을 읽고 작가의 생애와 환경을 참고하면 더 풍부한 읽기를 할 수 있다는 걸 배웠다. 실천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먼저 윌라 캐더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면 고닉에 의하면 그녀는 실제로 여자를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결혼을 하지 않았기에 소설에서 결혼 생활에 대한 현실적이고 자세한 묘사가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인물과 상황에 대한 묘사가 탁월하다. 월라 캐더의 소설에서 주목하는 것은 결혼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모른다는 것. 『루시 게이하트』 속 루시가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에게 자신을 맡기는 대신 피아노에 집중했더라면 어땠을까. 고닉의 글을 읽으면서 정말 루시가 자기 자신을 몰랐구나 싶었다. 재미있는 건 고닉이 소설 속 루시가 사랑에 빠졌던 남자가 죽은 방식 그대로 죽음에 이르렀다는 걸 꼬집은 것이었다. 『루시 게이하트』를 읽을 때는 우연인가 조차 생각하지 않았는데 월라 캐더의 의도가 아니었을까 싶은 거다. <br><br><br><br>미국의 역사가이자 소설가인 헨리 애덤스와 아내 클로버 에덤스에 대한 부분도 인상적이다. 나처럼 헨리 애덤스에 대해 잘 모르는 독자도 빠져들고 말았다. 헨리 애덤스가 쓴 소설에 대한 이야기는 그 시대의 셀럽 부부의 허상이자 지적이고 관찰력이 뛰어나고 대화 능력도 놀라운 아내 클로버에 대한 헨리의 우울과 질투라는 게 느껴졌다. 한편으로 모두에게 주목받는 건 남편 헨리라는 점에서 클로버는 불안하고 무기력하고 절망했을 것이다. 고닉의 글처럼 말이다. ​클로버처럼 ‘덜 중요한 삶’은 기록으로 남지 않는다. 이들과 가까운 중요한 인물은 풍부한 기록을 남긴 역사가들이 그럴듯한 추론을 할 수 있지만, 덜 중요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저 ‘누이는 신경쇠약이었고, 신부는 도망쳤고, 아내는 자살했다’는 이야기 정도만 남는다. 충격적이고 극적인 결말만이 주어진다. 그러니 우리는 추측할 뿐이다. (51쪽)​누군가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감정의 시작은 어디일까. 눈치가 빠른 이라면 부모와 자식이락 답할 것이다. 남편이 아닌 자식에게 기대고 의지하며 집착하는 어머니. 그런 어머니를 저버리지 못하고 그 사랑에 삶을 저당잡힌 이야기. 『아들과 연인』을 시작으로 『고독의 우물』, 『메리 올리비에』, 『등대로』로 이어지는 무자비한 친밀함은 현재에도 여전히 지독한 연애다. ​우리는 세상으로 나아가고, 세상으로부터 뒷걸음질 친다. 우리는 세상을 욕망하고, 세상을 두려워한다. 삶은 여러 감정이 뒤섞여 일으키는 병적 흥분에 발목 잡힌 연애 사건이다. (86쪽)​30여 년 전 고닉의 글을 읽고 내가 읽지 않고 지나친 작가, 읽으려고 했지만 아직까지 읽지 못한 작가의 목록을 읊는다. 케이트 쇼팽, 진 리스, 버지니아 울프,  레이먼드 카버, 그들이 그려낸 연애와 사랑은 아름다운 결말이나 행복한 순간으로 남지 않는다. 어떤 소설은 막장 드라마 같고 어떤 소설은 모두를 경악하게 만드는 현재의 기괴하고 소름돋는 잔인한 사건과 다르지 않다. 어쩌면 그런 이유로 사랑을 믿고 싶은지도 모른다. 불가능하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오늘날 소설의 중심에 낭만적 사랑을 놓고 인물들이 사랑을 추구하다 무언가 거대한 것에 도달한다고 하면, 독자를 설득할 수 있을까? 사랑이 우리로 하여금 우리 자신을 정면으로 맞닥뜨리게 해서 우리가 어떻게 해서 이렇게 되었는지, 우리가 사는 시대는 왜 이러한지, 그런 중대한 사실을 깨닫게 한다고 설득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오늘날 사랑을 은유로 사용하는 것은 발견의 행위가 아니라 향수에서 비롯된 행위일 것이다. (201쪽)]]></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09/19/cover150/k48213059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7091999</link></image></item><item><author>자목련</author><category>목소리 </category><title>고요하고 아름다운 탐색  - [헤르만 헤세의 게으름의 기술]</title><link>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414462</link><pubDate>Mon, 27 Jul 2026 11:0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41446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12130194&TPaperId=1741446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57/84/coveroff/k11213019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12130194&TPaperId=1741446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헤르만 헤세의 게으름의 기술</a><br/>헤르만 헤세 지음, 유영미 옮김 / 뜨인돌 / 2026년 06월<br/></td></tr></table><br/>열대야로 깊은 잠은 달아나버렸다. 잠들지 못한다는 핑계로 TV 채널을 돌리고 스마트폰을 뒤적인다. 눈을 감고 가만히 잠을 기다리는 게 최선일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잠이 오지 않아 고통스럽게 여길 생각할 뿐 그 자체에 집중하거나 반대로 주변 사물을 관찰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헤르만 헤세는 달랐다. 똑같은 상황을 차분한 관찰로 아름답게 서술해 나를 공간으로 이끈다. 『헤르만 헤세의 게으름의 기술』은 그렇게 기꺼운 초대였다. ​어쩌면 혹자는 제목 때문에 게으름 찬양이나 자기 계발서로 여길지도 모른다. 미리 말하자면 이 책은 헤세가 기록한 삶을 향한 고요하고 아름다운 탐색이다. 아, 그 자체가 또 하나의 자기 계발로 다가올 수도 있다. 헤세가 들려주는 일상의 단편은 목적 없이 달리기만 한 이들에게 멈춤, 쉼, 혹은 다른 속도를 제안한다. 재촉하지 않으며 순간에 집중할 느낄 수 있는 기쁨과 즐거움에 대해 말이다. ​많은 부분이 여행에 대한 기록으로 마치 삶은 여행이라는 걸 증명하는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한 곳에 오래 머무르면 볼 수 없는 것들, 이동하며 만나는 낯선 사람과 자연을 통해 느끼는 경이로움과 사유를 통해 삶의 진정한 가치에 대해 질문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여행이 아닌 유명한 관광지를 찾는 모습은 100 년 전에도 다르지 않았던 걸까. 헤세의 안타까움을 우리는 잊은 지 오래다. 그 사실이 서글프면서도 뼈아프다. ​지구는 정말 가득 들어차버렸다. 어디로 눈길을 주든 새로운 집, 새로운 호텔, 새로운 기차역이 눈에 들어온다. 어딜 가든 건물을 한층 더 올리는 공사가 한창이다. 이제 지구에서는 사람들과 마주치지 않고 한 시간 동안 산책하는 일이 불가능해진 듯하다. (61쪽)​헤세가 만나고 그리워한 이들은 유명한 이들이 아닌 산골 마을에 살며 연기에 그을려 위생적이지 않고 침투성이 바닥의 부엌에서 낡은 양철 주전자로 끓인 커피를 내주는 마귀 같은 친구다. 그가 기억하는 여행지의  모습은 휴양지의 명소가 아닌 소도시에서 친분을 쌓은 목사와 함께 머리에 작은 총상이 나 있던 연고 없는 부랑자였던 고인의 묘지에서 그를 축복한 일이다. 누군가는 불편해서 피하고 싶었을 그 순간을 나는 상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묘하게 울컥하는 건 왜일까. <br><br><br><br>폭염이 지속되는 여름이라서 헤세의 이런 글은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사랑하는 벗에게 쓴 글은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당부로 들린다. 휴가철이라 와락 달려드는 느낌이다. 쉼에도 계획을 세우고 목표를 달성해야 할 것만 같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롯이 휴식에 빠져들지 못하는 현대인이라면 격하게 수긍할 것이다.​유감스럽게도 쉰다고 해서 아무것도 안 하지는 않지만요. 저는 아무것도 안 하는 일에는 도통 재능이 없답니다. 하지만 삶의 속도를 조금 늦추고, 여름의 끝자락에 약간의 호젓함을 누리는 것이 제겐 휴식이 됩니다. (95쪽)​헤세가 누리는 휴식의 일부는 자연에 동화되는 것이었다. 붓으로 표현하고 찬미하고 싶은 순간, 그가 반한 백일홍에 대한 눈부신 사유 울림 그 자체다. 죽음의 춤이라니! 백일홍을 꺾어 방에 두고 본다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해마다 작약과 수국을 곁에 두고 바라보지만 나는 한 번도 하지 못했던 생각들. 헤세의 시선을 따라 시들어가는 백일홍을 마주한다. ​한참 전부터 백일홍을 볼 때면 저는 그 어느 때보다 더, 유쾌하고 아늑한 기분이 됩니다. 오래되어  은은한, 그러나 결코 약해지지 않는 이런 애정은 특히 이 꽃들이 시들어가는 걸 볼 때 더 각별해집니다. 꽃병에 꽂혀 차츰 마르고 죽어가는 백일홍을 보면 죽음의 춤이 이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덧없음에 슬프고도 황홀하게 동의하는 모습이랄까요. 가장 덧없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이며, 죽음조차도 아름답게 피어나고 사랑스러울 수 있기 때문이지요. (97쪽)​작가 아닌 인간 헤세의 면모를 볼 수 있는 이야기는 흥미롭다. 도시의 축제 기간에 우연히 ‘헤르만 헤세의 밤’에 참가한 헤세, 티켓을 파는 이도 참석한 이들도 그가 헤세인 줄 모른다. 낭독자가 시 속의 단어들을 누락하거나 다른 단어로 대체하면 실망하고 상처받는다니. 끝까지 견디디 못하고 자리를 뜨는 헤세의 표정은 씁쓸함이 묻어 있지 않을까. 여행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예측하지 못한 돌발 상황, 숭고한 건축물과 예술가의 작품을 향유하며 본연의 나에 집중하게 된다. 내가 찾으려 했던 게 무엇이며 갈망하는 그것에 대해서. ​여행하면서 낯선 곳에 빠르게 적응하고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을 분별할 줄 아는 사람은 평소의 삶에서도 의미를 깨닫고, 자신의 별을 좇을 줄 아는 사람들이다. 삶의 원천에 대한 강한 향수, 모든 살아 있는 것, 창조하는 것, 성장하는 것 들을 알아가고 동질감을 느끼고자 하는 열망이 세상의 비밀을 여는 그들의 열쇠다. (242쪽)​『헤르만 헤세의 게으름의 기술』는 어느 부분을 먼저 읽어도 상관없고 어디를 펼쳐도 헤세의 찬란한 문장이 반겨준다. 어딘가 목적지가 있는 여행이 아니더라도 오늘이라는 하루를 여행하는 삶의 의미를 생각하게 만든다. 자신만의 속도로 나아가는 것. 어쩌다 빨라지거나 느려지면 약간의 게으름이 필요하다는 걸 발견하고 깨닫게 될지도. 헤세의 하루를 따라 그의 마음의 길에 동행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게으름은 아닐는지.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57/84/cover150/k11213019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6578495</link></image></item><item><author>자목련</author><category>목소리 </category><title>모든 게 암시였고 복선이었다 - [바라모]</title><link>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405478</link><pubDate>Wed, 22 Jul 2026 11:4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40547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4969&TPaperId=1740547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423/76/coveroff/893746496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4969&TPaperId=1740547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바라모</a><br/>세사르 아이라 지음, 권미선 옮김 / 민음사 / 2026년 05월<br/></td></tr></table><br/>세사르 아이라의 『바라모』는 1923년 파나마 콜론의 공무원 ‘바라모’가 월급을 받은 순간부터 열두 시간에 걸쳐 쓴 시「아기 예수의 노래」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당연 독자는 시 「아기 예수의 노래」의 전문을 기대하기 마련이다. 도대체 어떤 시이기에 라틴 아메리카에 시의 걸작으로 찬사 받는지 궁금하니까. 단 한 번도 시를 쓴 적이 없는 바라모가 쓴 시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주목할 건 월급을 받는 순간부터다. 바라모가 월급으로 받은 이백 페소(100페소짜리 두 장)이 위조지폐였던 것이다. 받은 순간 알아차렸지만 바라모는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는다. 그가 공무원이라서 그랬을까. 아니면 위조지폐라도 상관없던 것일까. ​광장으로 나온 내내 바라모를 지배하는 건 위조지폐. 왜 아니겠는가. 인생 최대의 고민에 빠진 그 앞에 차에서 내린 한 남자가 다가온다. 아는 남자다. 정부 청사의 운전기사로 공무원들에게 판 돈을 대주는 도박단이기도 하다. 오늘이 월급 날인 걸 알고 빚을 받으러 온 것인가. 아니었다. 노련한 도박꾼인 어머니가 딴 돈을 전해주는 것이다. 이쯤이면 그 시절 파나마가 어떠했는지 짐작된다. 공무원도 도박을 하는 사회. 그렇다면 위조지폐 유통도 만연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바라모가 전전긍긍하는 걸 보면 그건 또 아닌 것 같고. 수중에 진짜 돈이 생겼으니 뭐라도 먹기로 한다. 땅이 떨어졌다고 몸이 신호를 보내니. 젤리는 파는 여자에게 주사위처럼 생긴 빨간 젤리를 산다. 여자에게 줄 동전이 없어 운전기사에게 받는 1페소를 건넨다. 너무 큰돈을 받은 여자는 거스름돈을 구하기 어렵고 그걸 보던 신체 불구자가 자신이 대신하겠다고 나선다. 바라모는 자신에게 잔돈이 없음을 미안해한다. 여기서 신체 불구자의 한 마디가 정곡을 찌른다.​잘못은 화폐를 제대로 발행하지 않아서 액면가가 낮을수록 일반 대중에게 더욱 희귀해지는 비정상적인 상황을 야기한 통화 당국에 있다고. (18쪽)​이런 문장을 곳곳에서 마주하는데 이 소설이 그 시대의 파나마를 파헤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하튼 젤리를 손에 들고 광장 중앙으로 가는데 미친 남자가 빚을 갚으라며 달려든다. 노상 있는 일이라 동건을 건네며 빚 갚았다고 말하면 그만인데 젤리를 든 손 때문에 힘들다. 정작 젤리는 먹지도 못하고 흘러내려 버려야 하는데 휴지통은 없고 화단 쪽의 풀밭에 버리려다 키 큰 관목의 가지 끝에 젤리를 꽂았다. 아직 집에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바라모와 독자인 나도 진이 다 빠졌다. 근데 위조지폐는 어쩌지.​집에 왔지만 쉴 수가 없다. 공무원의 월급으로 생활하기 어려워(거기다 도박까지 하고 있으니) 바라모는 취미인 동물 박제로 언젠가 돈을 벌기를 꿈꾸며 오늘도 물고기를 만진다. 그는 물고기에 관련된 것이라면 아마뤼 사소해도 일일이 기록했다. 그러는 사이 어머니가 도착해 익명의 편지를 받았다며 보여준다. 내용은 협박이었다. 어머니가 파나마로 이주한 지 오십 년이나 지났지만 두 모자에게는 사그라들지 않는 소문이 있었다. 바라모의 생물학적 부모에게서 훔쳐 왔다는. 중국인 어머니, 누가 봐도 중국인인 바라모를 보면 그럴 리가 없지만 어머니에겐 남편이 없었다. 어머니를 달래고 뒷면을 보니 매트리스 영수증이었다. 언젠가 바라모가 어머니와 함께 매장에서 직접 가지고 온 매트리스. 그토록 찾을 때는 사라지고 없던 영수증. 바라모에게 종이가 추가된다. 호주머니 속의 종잇조각들.​어머니가 준비한 저녁을 먹고 바라모는 자신의 평소 루틴대로 카페를 찾는다. 여전히 위조지폐를 생각하면서. 경찰이 자신의 주머니 속의 실체를 알 것 같아 두렵다. 뭔가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하고. 아, 오늘은 정말 이상한 날이구나 싶은 게 교통사고를 목격한다. 퇴근할 때 만난 정부 운전기사가 사고 피해자였고 바라 모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차 안에는 경제부 장관이 있었다. 사고가 아닌 테러였고 장관이 임시 개인 사무실로 사용하는 가정집에 옮긴다. 그 집은 바라모도 아는 공고라 집안이었는데 자매가 사는 줄은 몰랐고 그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골프채 밀수로) 처음 알게 된다.<br><br> <br>공고라 집안에서 나와 카페에서 바라모가 합석한 세 명의 신사들과 대화를 나눈다. 늘 카페에서 봤던 그들이지만 합석은 처음이었다. 그날이 바로 오늘이었다. 그들은 해적판 출판업자로 바라모가 출판에 관심을 보인다고 생각해 글을 쓰냐고 묻는다. 바라모에겐 기록(물고기)이 있지 않은가. 어디 그뿐인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리, 퇴근길에 광장에서 들었던 클라리온 소리까지 기록하는 바라모인 것을.​그의 무의식에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었다. 바로 이것이 그날 기록해야 할 가장 중요한 내용이었다. (…) 나중에 혹시 이때의 기록이 쓸모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메모지를 잘 접어 주머니 속에 넣어 두었다. (35쪽)​그럼 원고료는 얼마인가? 어쩌면 당신이 예상했을 이백 페소가 맞다. 거기다 책을 완성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다는 바라모의 말에 그들은 네 다섯 시간이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그러면 내 호주머니에 이백 페소가 들어온다고. 아, 이처럼 쉬운 일이었던가. 골칫거리 위조지폐 2장은 간단히 해결할 수 있었다. ​이제야 비로소 자신의 해묵은 쓸데없는 습관, 즉 손에 들어오는 모든 종이 쪼가리를 보관해 두는 습관이 결실을 맺는 때였다. (104쪽) ​그의 눈앞으로 광대한 사막 같은 황량한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었다. 달빛 아래에서 미동도 없이 서 있는 야자수, 어둠에 잠긴 정부 청사들 그리고 적막을 가로지르며 태엽 장난감처럼 외로이 굴러가는 자동차. 그는 잠을 자느라 이러한 장관을 늘 놓치고 살아왔다는 사실을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 그는 이런 것이 작가의 특권이구나, 하고 생각하며 향수에 젖었다. (106쪽)​하루도 지나지 않은 시간, 위조지폐는 진짜 돈이 되었고 기록하고 모아둔 습관은 책이 되었다. 한낱 말단 공무원으로 겨우겨우 살아가던 바라모는 작가이자 시인이 되었다. 예술의 재료는 어디에나 있고 누구나 그것의 주인이 될 수도 있다. 바라모처럼. 1923년 부패한 파나마이라서 가능했다고 말하고 싶은가. 글쎄, 지금 여기는 그곳보다 나은가? 정답을 안다면 알려주면 좋겠다. ​월급으로 받은 위조지폐 두 장으로 시작한 이야기는 수많은 곁가지를 만들어 확장한다. 얼마나 대단한가. 내가 가장 놀라고 감탄한 부분은 카페를 나와 광장을 지나 집으로 가는 길에 새들이 무리를 지어 나무 꼭대기 위아래로 ‘8’자와 ‘Z’자를 날아다니는 모습으로 그 자리는 바라모가 젤리를 꽂아둔 그 가지였다는 것. 그 모든 게 풍자였고 폭로였다. 암시였고 복선이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423/76/cover150/893746496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4237611</link></image></item><item><author>자목련</author><category>그러니까, 때때로 허물어지는 </category><title>아직 거기 있다는 것 </title><link>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403598</link><pubDate>Tue, 21 Jul 2026 12:1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403598</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12137309&TPaperId=1740359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80/59/coveroff/k912137309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52130390&TPaperId=1740359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77/22/coveroff/k352130390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글을 쓴다. 잊히지 않는 일들을 쓴다. 기억을 더듬는다. 어떤 기억은 바로 몇 분 전의 일처럼 선명하다. 상처로 남았을 때 그렇다. 시간이 흘러도 도무지 회복이 되지 않는 순간, 그런 기억은 여러 차례 글감이 된다. 세세한 기록으로 은유와 상징으로 재탄생된다. 시의적절 시리즈로 만난 박상수의 『생활력』에서 내가 발견한 건 그런 것이다. 상처, 기억, 회복, 위로 같은 것들. ​여타의 시의적절 시리즈와 다르게 이번 박상수의 『생활력』은 시와 산문이 교차로 수록된 게 아닌 전체가 다 산문이다. 들어가는 시, 나가는 시를 제외하고 7월 1일부터 7월 31일까지 31편의 산문으로 이어진다. 선명하지 않은 조각의 꿈같은 기억으로 남은 들어가는 시는 작가의 유년 시절이고 대문이 열리고 들어오는 아이를 맞는 풍경의 나오는 시는 작가의 아이의 모습이다. 두 편의 시 사이에 작가의 이야기가 있다. 그래서 어떤 이는 더 반갑고 어떤 이는 많이 아쉬울 수도 있다. ​휴가, 바다, 장마, 뜨겁고 청량한 7월를 찾는다면 이 책엔 없다. 책의 처음에 등장하는 작가의 말이 있듯이. 그럼 무엇이 있는가. 시인 박상수가 있다. 그의 생활력이 있다. 그가 품어온 이야기가 있다. 어쩌면 이 기회가 아니면 들려주지 않았을 이야기, 물론 시를 향한 마음은 가득하다. ​부모님의 맞벌이로 돌봄이 필요한 아이는 시골 할머니 댁으로 보내진다. 아이에게 충분한 설명은 없었을 것이다. 아무리 설명한 듯 이해할 수 있었을까. 산골에서 신나게 뛰어놀았지만 밤에는 달랐다. 칡 흙 같은 어두운 밤, 잠들기 위해 눈을 감은 게 아니라 무서움에 눈을 뜰 수 없었다. 마을 초입의 당산나무에 올라가 부모님이 오기를 기다리는 마음은 얼마나 아팠을까. 그렇게 싹을 튼 불안은 명절에 큰집에 갔을 때에도 이어진다. 혹시라도 부모가 자신을 놓고 갈까 잠들지 않으려 애썼지만 결국 잠들었고 잠에서 깨었을 때 부모가 없다는 사실은 충격이다. 아무리 달래도 울음을 그치지 않는 아이, 큰아버지의 등에 업혀 집으로 가는 그 길은 지울 수 없는 기억으로 남는다. 그것은 불안과 불행으로 단단해졌을 게 분명하다. ​그 시절 많은 아버지가 그랬듯 돈을 벌기 위해 시인의 아버지도 리비아로 떠나기로 돼 있었지만 출국 전 날 발작이 시작된다. 초등학교 6학년 아이는 그 밤의 기억을 아름답게 만들고 싶지만 끝내 불가능하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걸 아는 때가 온다고 해도 자신의 일부가 된 기억을 분리할 수 없는 것. 어쩌면 그런 기억과 상처가 사랑에 대한 집착으로 혹은 사랑에 대한 불신으로 문학도 고통과 상처가 전부라고 여겼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명랑하고 유쾌한 애인을 만나 마음껏 웃어도 되고 행복해도 된다는 걸 알게 된다. <br><br><br><br>내가 원하는 것은 언제나 단 한 사람의 지극한 사랑이었다. 그런데 그런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다시 시도해 볼 마음도 없었다. 실패는 이미 너무 많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단 한 사람에게만 가야 할 사랑을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 주면서, 그렇게도 원하는 사랑을 피했던 것이다. (101~102쪽)​등단을 하고 첫 시집을 냈지만 시만 쓰는 삶은 가능하지 않았고 생활을 위해 시간 강사, 대필, 사교육 알바를 해야 했다. 그런 시절에는 시를 쓰고 싶은 마음이 달아날까 두려웠을 것 같다. 그러니 처음 시를 배우던 시절, 시가 좋아서 시를 잘 쓰고 싶지만 생각처럼 안 돼서 힘들었던 시간이 위로가 되고 도움이 됐을지도. ​잘 쓰고 싶은 마음이 아직 거기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 (148쪽)​책을 읽으면서 나는 이 문장이 좋아서 소리 내어 읽기를 반복했다. 그게 무슨 마음이든 아직 거기 있다는 걸 잊지 않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거기 있다는 걸 아는 건 참으로 중요하다. 우리는 그것을 종종 놓친다. 늘 거기 있어 그것의 소중함을 말이다. 생활을 위해 일하느라 크리스마스이브인 것도 모르던 작가처럼. <br>다만 여기, 우리가 밤과 낮을 같이 살며, 무너지고 또 무너지는 세계 속에서도 생활을 잃지 않고, 생활을 속이지 않고, 생활을 나누며 살아나갈 수 있다면, 그렇게 우리의 이야기가 계속될 수 있다면. (「나가는 시」, 260쪽)<br>어떤 기억은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 않는다. 기억을 안을 새로운 풍경이 필요하다. 혼자만의 조각이 아닌 우리의 그것으로 만든 풍경들. 그리하여 먼 훗날 꺼내어 볼 때 괜찮은 슬픔이 되고 다행인 기억이 된다. 결국 시인이 쓰고 싶은 시는 그런 생활이다. 그의 시집 『메신저 백』의 이런 시처럼. <br>흘린 듯 귀기울이다보면 우린 한데 묶여 있다는 걸 알게되죠 오래전부터 우린 고통의 목격자, 서로가 겪었던 바닥을 알고 있어요 햇빛에 반짝이는 강이 끝없이 펼쳐진 길을 따라 하염없이 걸어갔던 우리, 제발 뒤를 돌아보라고, 더이상 가지 말라고 외쳐도 구부정하게 가버리던 작은 등을 가진 우리, 무너지는 얼굴을 본 적이 있어서 우리가 지금까지 함께해온 것일까요 우린 이 행성의 소박한 여행자이지만 이렇게 묶인 서로가 있어서 다시 집밖으로 걸어나갈 수도 있는 거겠죠, 보세요, 작은 보라색 단화의 주인공이 나타났어요 담요를 두르고 은박지에 싼 고구마를 들고 아궁이로 다가가네요 토치에 불을 붙여 장작불을 만들고, 작은 불이 너울로 번져가는 동안 발그레해지는 얼굴, 어느덧 한 사람 두사람 신발의 주인공들이 모여들고 있네요 바람을 막아주고 싶어도 제 몸을 통과할 뿐이라서 저는 그저 이야기를 듣고만 있어요 장작불을 쬐는 내내<br>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구나, 누가 한숨처럼 내뱉어도 우리가 여기 모인 게 기적이야! 그런 말로 되받을 줄 아는<br>이런저런 말도 없이 제가 조금 늦었어요, 스르륵 같이하고 싶지만 그럼 너무 놀라서 사람들은 이 집을 뛰쳐나갈지도 모르죠 그러니까 저는 밤새 세 사람의 신발을 지키고, 끝없는 이야기를 기다리고, 바람소리를 먼바다의 파도 소리로 잠재워 세 사람의 잠을 지킬 거예요 이 집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 그것뿐이지만. (「오래된 집의 영혼으로부터」,일부)<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77/22/cover150/k35213039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6772280</link></image></item><item><author>자목련</author><category>당신과의 눈맞춤</category><title>정말 커피만 사려고 했는데, </title><link>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396943</link><pubDate>Fri, 17 Jul 2026 15:1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396943</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P782939012&TPaperId=1739694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355/67/coveroff/p782939012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4969&TPaperId=1739694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423/76/coveroff/8937464969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82130594&TPaperId=1739694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09/19/coveroff/k482130594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62139722&TPaperId=1739694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526/0/coveroff/k962139722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필요한 건 커피였다. 커피 할인 쿠폰이 있었고 마침 커피도 얼마 남지 않았다. 하지만 커피만 사지 않았다. 언제나 그렇듯 커피와 책은 세트가 된다. 여름에 카페인 섭취를 줄이라고 권고하지만 쉽지 않다. 물처럼 자꾸만 마시고 싶다. 커피 때문에 예정 도착 예정일은 내일이었다. 그런데 연휴 시작인 오늘 도착했다. 덕분에 내일 아침은 새로운 커피를 마실 수 있겠다. <br>커피와 함께 산 책은 『바라모』였고, 야금야금 그전에 산 두 권의 책은 『연애 시대의 종말』, 『세부 속으로』다. 세 권의 공통점은 내가 사고 싶었던 책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고 싶지 않았던 책이라는 건 잘 모르는 작가란 말이기도 했고 더 이상 읽게 될까 하는 작가의 책이라는 말이다.  <br><br><br>이웃 알라디너가 먼저 읽은 글에 반했고 직접 반하고 싶었다. 『바라모』와 『연애 시대의 종말』의 땡스투는 리뷰로 나를 낚아주신 분에게, 『세부 속으로』는 멋진 리뷰를 쓰신 분에게, 커피는 힘들고 지치는 한여름을 커피 한 잔으로 견뎌보자는 분에게. <br>분량이 많은 책이 아니라서 부담이 적기도 했다. 그렇다고 당장 달려들어 읽을지는 모르겠다. 날은 너무 덥고 작은 활자보다는 커다란 화면에 눈이 간다. 연휴의 첫 날인 오늘은 TV 화면 속으로 나머지 이틀을 기대한다. ​가볍고 부담 없는 책들이다. 물론 읽기 전이라서 그렇다. 더위를 피해 어디론가 떠난다면 이런 책들을 데리고 가면 좋겠다. 막상 그곳이 책들에겐 휴가가 될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br><br><br><br><br><br><br><br><br><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526/0/cover150/k96213972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5260072</link></image></item><item><author>자목련</author><category>목소리 </category><title>꿈이라면 좋았을까? - [꿈 목욕]</title><link>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384062</link><pubDate>Fri, 10 Jul 2026 11:4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38406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0909807&TPaperId=1738406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750/99/coveroff/896090980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0909807&TPaperId=1738406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꿈 목욕</a><br/>김지연 지음, 김지혜 그림 / 마음산책 / 2026년 03월<br/></td></tr></table><br/>김지연의 소설을 꽤 읽었다. 대체로 나쁘지 않았다. 특별히 좋아하는 소설도 있다. 그런 이유로 짧은 소설 『꿈 목욕』을 읽었다. 짧은 소설이니 긴 이야기는 없다. 수록된 열네 편의 이야기는 대체로 꿈같다. 어떤 소설은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이야기, 어떤 소설은 꿈이라 믿고 싶은 현실 이야기, 그 둘을 오가는 이야기라고 해도 좋다. 작가가 실제로 꾼 꿈을 모티브로 한 표제작  「꿈 목욕」부터 꿈이 등장하는 소설이 많다. 어찌 보면 소설은 다 꿈같은 이야기는 아닐까. <br>나는 이 소설집에서 무엇을 기대했을까. 기대한다는 게 우스운 말인지도 모른다. 어떤 책이든 읽기 전에는 아무것도 알 수 없고 읽었다 해도 처음과 다르게 나중에 좋아지는 경우도 있으니까. 『꿈 목욕』을 읽으면서 발터 벤야민의 『고독의 이야기들』가 생각났다. 김지연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그러니까 꿈을 꾸는 이는 작가 자신이고 이야기는 작가의 의식이 흐름은 그가 원하는 곳으로 가고 있다는 느낌. 그러다 길을 잃고 헤매기도 한다. 아, 너무도 당연한 건가. ​친구의 집을 찾아가다가 길을 잃고 만난 폭포에 정신을 잃고 폭포가 떨어져 생긴 샘으로 풍덩 뛰어든 「꿈 목욕」의 ‘나’는 물속을 떠다니며 죽은 친구도 만나고 사라진 친구도 만난다. 사라져가는 모든 것이 물속에 있었고 물을 펴내 찬찬히 들여다보니 밤마다 꾼 꿈들이 폭포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결국 꿈이란 잡을 수 없는 모든 것이며 반대로 꿈에서는 모든 존재와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일까. ​꿈에서는 그럴 수 있다 치다. 꿈이 아닌 현실에서 벌어지는 기이한 현상은 뭐라고 설명할까. 면접에서 자꾸 떨어지는 ‘솧희’를 위해 친구가 예약해 준 호텔에서의 시간을 들려주는 「맴맴」도 다르지 않다. 해변에 위치한 호텔은 개업한 지 얼마 안 된 곳으로 손님은 송희 혼자였다. 직원과 자신뿐인 호텔에서 휴식을 취하던 송희는 직원이 감염병이 걸려서 격리를 해야 한다는 소식과 일주일간 호텔을 떠날 수 없다는 통보는 받는다. 관리인은 연락이 되지 않고 창밖으로 일정한 시간에 같은 옷의 남자와 개가 산책하는 걸 본다. 그러다 같은 하루가 반복되고 있다는 것, 어떤 히루에 갇혀 있다는 걸 자각한다. ​어떤 하루에 갇혀 있다는 건 결국 반복되는 꿈을 꾸는 것과 뭐가 다른가. 그렇다면 얼른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수없이 많은 이력서를 쓰고 면접에서 떨어진 송희는 꿈이든 시간이든 그곳에서 머물고 싶었다. 깨고 싶지 않은 달콤한 꿈을 꾸는 것처럼.<br><br><br><br>아직은 이 시간 언저리를 조금 더 맴돌고 싶었다. 물밀 듯이 쏟아져 내리는 시간에서 점점 떨어져 나와 멈춰 있고 싶었다. 유예일 수도, 모른 척 일 수도 있겠지만 그저 잠깐만 쉬고 싶었다. 몸도 마음도 모든 것을 비워두고 내 기분만 살피면서. 그다음에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면 그때는 원하는 방향으로 원하는 만큼 나아가고 싶었다. (「맴맴」, 41쪽)​그런가 하면 꿈에서나 일어날 법한 이야기도 있다.  인류가 더 이상 전통적인 방식의 책을 만들지 않는, 종이책이 사라진 미래의 인간은 악어로 변해간다는 「나무 아래 악어」, 죽은 후 귀신이 되어 과거 연인을 따라 산책하는 「산책하는 귀신들」. 어디로든 갈 수 있는 영혼, 그러나 정작 과거 연인은 죽었는데 귀신끼리도 서로가 알아볼 수 없다는 걸 좀 슬프다. 알아보고 반가워하며 서로가 서로를 그리워하는 설정이라면 어땠을까. 슬프거나 괴로울 때조차 눈물이 나지 않는 이들에게 비법을 알려준다는 ‘엉엉울음상담소’가 등장하는 이야기 「울음의 형식」. 3개월을 한꺼번에 결제하면 10퍼센트 디시를 해주겠다며 울음까지 상품이 되는 세상. 어쩌면 AI 시대에 이런 가능한 일일까. ​『꿈 목욕』엔 허무맹랑한 꿈이라 치부하기엔 쓸쓸하고 외로운 이야기들. 꿈이 아니어도 진실을 알려는 노력보다는 그저 편한 대로 판단하고 받아들이려는  「사인」은 더 그랬다. 달동네 좁은 방에 살던 ‘복수’가 죽은 이유를 두고 자살이라 여기는 사람들. 왕래하는 가족이 없어 그렇게 여겼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죽음은 자살이 아니었다. 빚이 있어 이혼을 했고 떨어져 살았지만 아내 경호와 딸 미진과 자주 연락했고 만났다. 경호와 미진만이 그럴 리가 없다고 믿었다. 지방에 살고 있는 경호와 미진을 만나러 온 복수가 재벌 집 아들이 자살했다는 뉴스를 보며 나누는 대화를 기억하니까. 실제로도 그랬다. 그의 사인은 심근경색이었다. 뒤늦은 발견이란 불운이 더해졌을 뿐이다. ​“근데, 나는 그런 거 없어. 죽을 이유 같은 건 없어.”단호히 말하는 복수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미진은 생각했다. 인생은 장밋빛이 아니구나. 비단길도 꽃길도 아니고 가시밭길이구나. 마냥 행복하지도 않구나. 인생은 그런 것. 그러나 죽을 이유 같은 거 없고 우리는 살아갈 것이다. (「사인」, 130쪽)​복수의 죽음이야말로 꿈이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꿈이기를 바라지만 현실은 지독하고 현실이라면 좋을 황홀한 꿈은 금세 깨고 만다. 그럼에도 꿈꾸는 인생을 포기할 수 없다. 그조차도 포기하면 인생은 폭풍우 몰아치는 바다와 막막한 사막이나 마찬가지 일 테니까.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750/99/cover150/896090980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7509983</link></image></item><item><author>자목련</author><category>당신과의 포옹</category><title>습습의 날들 </title><link>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382066</link><pubDate>Thu, 09 Jul 2026 10:0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382066</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22794&TPaperId=1738206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174/41/coveroff/8937422794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52130390&TPaperId=1738206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77/22/coveroff/k352130390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5283&TPaperId=1738206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376/14/coveroff/8932045283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02139840&TPaperId=1738206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543/72/coveroff/k902139840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비가 그치는가 싶더니 그럴 리가 없다고 말하는 듯 내린다. 무섭게 쏟아진다. 장마라고 하기엔 연속성이 부족하고 아니라고 하기엔 맑음이 적다. 내가 사는 곳은 흐림과 비가 이어진다. 그러니까 장마인 걸까. 습하기가 이렇게 습할 수가 없다. ​습습의 날들이다. 좋아하는 감자를 쪄서 먹기 좋은 여름이지만 습한 날에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냉장고에 작은 수박의 속내도 보지 않았다.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수박 써는 일은 번거롭고 귀찮은 일이다. 내가 수박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하다. 수박을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수박을 썰어서 먹을 정도로 좋아하지 않는 것이다. 그 대신 친구가 보낸 황도 복숭아를 맛있게 먹는다. 한 입 베어 물면 복숭아 형태가 완전히 사라지는 단맛이다. 친구는 내게 복숭아를 주문하면서 자신을 위해서는 백도를 주문했다고 했다. 황도보다 단단할 백도의 맛도 궁금하다. ​책을 샀다. 아, 자꾸 책을 산다. 지난번 박솔뫼의 짧은 소설을 샀는데 블랑카 님이 단편집 『영릉에서』에 수록된 단편이 좋다고 해서 그 단편이 궁금해서 샀다. 좋아하는 시인 하재연의 신간시집 『인간이라는 환상처럼』, 산문과 시가 모두 좋다는 고명재의 시집도 한 권 샀다. 『어깨에 머리를 기대던 시절』란 제목에서 그리움과 애틋함이 느껴진다. 땡스투는 시인의 글씨가 순수하다고 하신 분에게. 박상수의 『생활력』은 시의적절 시리즈다.<br><br><br><br>고명재의 시집에는 「작약」이라는 시가 있다.  시가 있는 줄 몰랐는데 좋다. 잘 샀다 싶다. 내가 모르는 작약은 많고 내가 모르는 작약을 담은 시도 많으니까. <br>먹을 수 없는 작약, 그 오월의 품격꺾을 수 없는 작약, 그 동그런 향기약이 될 수 없는 작약, 홀로 아름다움약도 듣지 않는 미래, 그래도 아름다움 (「작약」, 일부)​​하재연의 시는 어려운 시가 많다. 상상이 되지 않는 낯선 세계. 그런데도 이상하게 하재연의 시집은 계속 사게 된다. 계속 읽게 된다. 잘 모르면서 말이다. 이번 시집에 이런 시가 있다. <br>반구의 너머로부터 네가 도착한다이십 년이 지난 후에야​이렇게 시작되는 대본을 쓰는창밖으로 눈이 쏟아진다 클리셰가 난무하는장르 드라마처럼​과거에서 미래로 열린창문틀이 육체처럼 삐걱거리고 있다나의 시간들이 새어 나간다​기화하는 탄소에게 사로잡힌탄산수의 나머지 심정으로​종반부가 다가온다지면을 덮는다흰 백지와 같이 절대적으로​이십 년 후의 네가 이상하게 아름다워서나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눈은 이제 폭설이 되어가며결말을 준비하고​마지막 장을 덮고서야여름의 파도 소리는 시작된다​지구의 건너편 반구에서부터기억처럼 도래하는 방식으로 (「여름 판타지」, 전문)<br>책을 사는 건 좋은 일이다. 읽으려고 산다. 좋아하니까 계속 좋아하기로 한다. 현재의 상태는 좋음이니까. 나중에는 별로가 될 수도 있고 싫음이 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좋으니까. <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543/72/cover150/k90213984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5437265</link></image></item><item><author>자목련</author><category>목소리 </category><title>좁혀지지 않는 거리  - [노 피플 존]</title><link>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378388</link><pubDate>Tue, 07 Jul 2026 12:0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37838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12032607&TPaperId=1737838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448/73/coveroff/k51203260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12032607&TPaperId=1737838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노 피플 존</a><br/>정이현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10월<br/></td></tr></table><br/>예약된 병원 검사 일정을 변경했다. 병원 고객센터의 직원이 담당 부서로 전화를 돌려주며 대기하는 시간은 꽤 길었다. 내가 원하는 날짜의 시간과 검사가 비어있는 날을 맞추는 일은 간단하지 않았다. 몇 번의 기다림 끝에 일정을 변경했다. 검사를 미루기로 결정한 이유는 내가 느끼기에 상태가 괜찮아지는 것 같았고 지난번 외래에서 만난 의사의 말이 컸다. 의사가 확실한 믿음을 주는 말을 한 건 아니다. 그가 들려준 가장 큰 믿음은 과거 외래에서 '방법이 있을 거라'는 말이다. ​의사와 환자인 나 사이에는 일정한 거리가 존재한다. 나는 가까이 다가가고 싶지만 상대는 허락하지 않는다. 좁혀지지 않는 어떤 일정하고도 적절함, 정이현의 단편집 『노 피플 존』을 떠올리면 그런 거리감이 떠오른다. 불편함과 편함의 거리, 친밀하면서도 냉소적인 분위기, 상대가 내민 손을 잡을까 말까 고민하는 그런. 소설의 내용과 상관없이 이런 구절이 딱 그러하다. ​어떤 경우에도 나는 환자에게 괜찮을 거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괜찮지 않을 거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괜찮음과 괜찮지 않음 사이에서 적절하게 밸런스를 조정하는 것이 이 직업에 가장 필요한 덕목일지도 몰랐다.(「선의 감정」, 95쪽)​「선의 감정」은 코로나19를 배경으로 의사인 ‘나’가 환자의 죽음에 대해 느끼는 이야기라고 할까. 환자의 죽음이 자신의 의료 과실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책임 소재. 소설은 환자가 죽은 이유를 찾는 과정처럼 보이지만 환자의 보호자였던 딸이 ‘나’의 환자로 나타나 들려주는 이야기가 중심이다. 소설의 제목의 선(線/善)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가 생각하게 만든다. 병원이라는 배경을 벗어나 그것은 우리 사회 전반에 대입할 수 있으니까.​그런 감정은 「실패담 크루」에서도 느껴진다. 실패의 속상함과 아픔을 혼자가 아닌 여러 사람들과 나누는 모임 ‘실패담 말하기 크루’에서 삼십 대 변호사 ‘나’는 가장 젊은이다. 모임의 대부분은 사회적 위치가 확고한 중년의 기성 서대다.  그러니까 성공한 사람들이다. 누군가 이 소설에서 인생의 선배로 실패해도 괜찮다고, 충분히 잘 하고 있다는 말을 기대했다면 오산이다. 그들은 그저 자신의 위치의 권력을 즐기고 싶을 뿐이니까. 나의 실패가 그들에게 인정받아 한 단계 높은 곳으로 이동하기를 꿈꾼다. 하지만 나의 실패담은 말 그대로 실패로 돌아간다. 이런 패배감을 조성하는 분위기는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그게 우리가 사는 세상의 현실일지라도 말이다.  ​학과 조교로 일하며 지도 교수의 일을 대신 맡아서 하지만 그에 대한 인정은커녕 부당한 대우를 받는 '인회 언니'의 이야기인 「언니」도 마찬가지다. 대학교수와 실패담 크루의 기성 서대는 누가 봐도 강자이며 모임에서 가장 젊은이였던 나와 조교인 인회 언니는 약자다. 뛰어넘을 수 없는 계급의 차이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사회 초년생, 그 시기에 진입한 이와 그 시기를 지나온 이에게 「실패담 크루」와 「언니」는 생생한 현장 중계처럼 여겨질 것이다. <br><br>그럼 학교를 졸업하고 얼마간의 이력이 쌓이거나 소위 인생의 다음 단계인 결혼을 했을 때는 조금 괜찮아질까. 자신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들고 지속하게 될까.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더 확장된 관계에서 발생하는 문제들. 완벽한 해결책이 아닌 가장 무난한 답을 찾는 일도 불가능해 보인다. 그렇다면 애초부터 관계의 시작부터 거부해야 할까. 모르겠다.  「빛의 한가운데」 속 아들을 키우는‘안희’와  딸을 키우는 ‘미령’은 남다른 사이다. 함께 모든 걸 나누고 우정을 키워 온 관계. 안희의 아들이 학교에서 일어난 딥페이크 성범죄의 당사자로 지목되면서 안희는 충격에 빠진다. 아무렇지 않게 아들을 두둔하는 남편을 향한 안희의 절규. ​둘째를 임신하면서 육아휴직을 쓰지 않기 위해 입주 시터를 구하는  「이모에 관하여」, 놀이 가정 교사 업체에 취직해 심리적을 불안한 아이와 시간을 보내는 「단 하나의 아이」에서는 돌봄에 대해 말한다. 입주 시터가 간절하지만 중국인 동포 이모의 신분이 미덥지 않다. 그녀의 이력은 충분했고 잠깐 동안 보낸 시간도 나쁘지 않았다.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이유를 하나라도 더 찾아야 했을지도 모른다. 출산과 육아로 경력 단절을 경험한 화자는 우리 주변에 너무 많고 그 모든 책임을 여성에게 돌리는 사회적 시선도 여전히 강하다. ​그녀가 첫날 일터에 맨발로 온 것은 사소한 부주의에 지나지 않았다. 그 한 면을 가지고 사람 전체를 재단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도 재연은 자꾸자꾸 맨발에 대해 생각했다. ( 「이모에 관하여」, 285쪽)​같은 맥락으로 「단 하나의 아이」는 제목부터 상징적이다. 놀이 가정 교사가 해야 할 일은 함께 놀아주는 게 아니라 아이의 가정사에 개입하지 않으며 아이와 적절한 거리 두기가 요구된다. 「단 하나의 아이」에서 놀이 가정 교사가 된 ‘한나’는 아이 ‘하유’의 이상 행동을 발견하고 부모에게 알리지만 결과는 하유가 바쁘다는 이유로 놀이교사 일이 종료된다. 한나가 더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맞을까. 선을 넘는 일로 치부될 게 분명하다. 어쩌면 한나가 아이와 타인과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는 계기를 마련해 준 것으로 충분할지도 모른다. ​노 키즈 존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었을 때 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은 있다. 지나치게 소란스러워서 타인에게 방해가 되는 인간이라면 그게 누구든 얼마나 어리든 또 얼마나 늙었든 자신이 있는 곳에는 들어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노 피플 존. 나와 내 일행 외에는 아무도 없거나, 있어도 눈에 뜨지 않는 곳. 타인의 존재가 내 신경에 거슬리게 하지 않는.  (「단 하나의 아이」, 157쪽)​정이현이 그려 낸 『노 피플 존』의 인물이 겪는 일은 소설로만 치부할 수 없다. 경험하지 않아 모르는 세계라고 해도 왠지 알 것 같다. 불편하다고 외면하는 문제, 개선되지 않는 제도. 우리 사회 전반의 문제라서 그냥 뻔한 보통의 일상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그런 이유로 정이현은 최대한의 감정을 배제하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객관적으로 들여다보기 위해,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려고 말이다. 그러한 노력은 그 거리의 간극이 좁혀지기를 바라는 간절함이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448/73/cover150/k51203260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4487307</link></image></item><item><author>자목련</author><category>목소리 </category><title>우리가 잃어버린 최소한의 관심   - [달걀의 온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364193</link><pubDate>Tue, 30 Jun 2026 11:3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36419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39936&TPaperId=1736419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960/17/coveroff/893643993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39936&TPaperId=1736419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달걀의 온기</a><br/>김혜진 지음 / 창비 / 2026년 04월<br/></td></tr></table><br/>저마다 사정이 있다. 그 사정을 듣고 헤아려줄 여유가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가족이나 친구 사이에도 어렵다. 내 사정에 더 급하니까. 나 살기도 급급하니까. 그래서 사건이 일어나야 시선을 돌리게 된다. 그제야 안타깝고 속상하고 미안하다. 그리고 잊어버린다. 누군가 대책을 세우겠지 생각한다. 당사자가 아니면 그렇게 잊힌다. 어쩔 수 없다. 거들어봐야 좋은 소리도 못 듣고 오지랖이라는 책망만 돌아오니까. 관여하면 고소 고발로 이어지기도 한다. 쓰고 보니 정말 각박한 세상이다. 그러나 자신 있게 나는 예외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김혜진의 『달걀의 온기』 엔 있다. 그냥 지나치지 않고 관심을 갖고 말을 거는 사람들이 있다. 상대가 원하지 않지만 자꾸 말을 건다. 대단한 태도는 아니다. 그냥 사소하고 보잘것없는 거라 거절하거나 대놓고 무시하기도 어렵다. ​「관종들」이란 제목에서 짐작하듯 소설 속 ‘정해’와 남편 ‘영기’는 주변 이웃에게 관심이 많다. 아파트 공용공간에 물건을 쌓아두는 이웃, 난간에 위험하게 놓인 화분이 불편하고 불안하다. 관리사무소에 민원을 제기하지만 달라지지 않는다. 그런 그들에게 아파트 정자에서 계절감 없는 옷을 입고 혼자 있는 아이를 지나칠 수 없다. 부모가 의심스럽다. 결국 경찰에 신고한다. 아동학대가 의심되지만 경찰은 별일 아니라고 답한다. 아이의 부모는 사정이 있었다고 말하는데 정말 그럴만한 사정이 있는 건지 정해와 영기는 자꾸만 신경이 쓰인다. 그들이 원하는 건 사고가 발생하기 전 미리 예방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을 알리고 싶었을 뿐이다. 함께 사는 세상, 그들의 행동은 정말 최소한의 것이었다. ​최소한의 일. 그들은 자신들이 신경 쓰는 다른 문제들도 똑같이 대했다. 그건 선을 넘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관종들」, 29쪽)​「관종들」은 많은 생각을 불러온다. 정해와 영기가 지나치다는 싶으면서도 공동주택인 아파트에서 아무렇지 않게 실내 흡연을 하고 복도나 계단을 개인 공간인 양 사용하는 이들로 인한 고통이 경험한 이라면 그럴 수 있다고. 하지만 아동학대에 대한 신고를 직접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걱정과 염려가 되는 정도로 끝나지 않을까. 정해와 영기처럼 쪽지를 받고 현관문에 불편한 메모를 발견해도 멈추지 않고 계속할 수 있을까. ​모임이나 공동체에 새로 들어온 누군가를 대하는 태도도 다르지 않다. 지금 관계를 맺고 있는 이들과 잘 지내기도 버겁기에 적당한 거리를 둔다. 언제부턴가 타인은 불편한 존재가 되었다. 아내와 사별한 뒤 교회의 성경 모임에 나가게 된 「푸른색 루비콘」의 ‘나’도 그렇다. 아들의 걱정 때문에 헬스클럽에 등록하고 여러 강좌를 수강하지만 길게 이어가지 못한다. 아내가 있을 때는 어렵지 않았던 일들을 혼자 마주하니 당혹스러웠다. 이 나이에 누군가를 알아가야 하나 싶고 뭔가 말할 준비가 돼 있어도 딱히 자신에게 관심을 갖는 이도 없다. 그런데 한 남자가 자신에게 다가온다. 입성이 별로인 남자의 부탁으로 양봉장에 데려다준다. 만날 때마다 그를 데려다주게 되는데 그와 보낸 시간이 묘하게 편하다. 많은 대화를 나눈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의 공간에서 마주한 풍경이, 그가 내어준 꿀물이 오래 남는다. 모임의 마지막에 아무도 모르는 그의 이름을 자신이 기억하는 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타인과 관계를 맺는다는 것, 타인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은 이처럼 별스럽지 않은 듯 보이지만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 아는 체하며 다가온 남자, 궁금하지 않았지만 실없이 건넨 말들, 그러니까 그는 곁을 내어준 것이다. 곁을 내어준다는 건 마음을 나눠준 것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하루치의 말」의 고향으로 내려와 어머니의 이불 가게를 물려받는 ‘애실’의 고충을 들어주고 일상을 나눈 ‘현서’는 돈을 빌리고 갚지 않은 사기꾼만은 아니다. 처음 운영하는 가게의 어려움을 살갑게 들어주고 퇴근 후 우울증을 앓는 어머니가 계신 집이 아닌 치킨집에서 맥주를 마실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한 고마운 존재였다.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말들을 꺼낼 수 있는 유일한 타인. <br>피해를 입은 이들의 성화에 못 이겨 고소를 했지만 현서를 면회한 애실은 돈을 받아내겠다는 마음이 아니었을 것이다. 어쩌면 애실은 자신의 모든 말을 들어 준 현서가 그리웠을지도 모른다. 현서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접근했을지 모르지만 현서로 인해 애실은 자신의 상처나 실수를 말할 수 있었다. 부모의 이혼과 그로 인해 방치된 청소년기를 보낸 건 애실의 잘못이 아니라고 7년 만에 연락해 돈을 빌려 간 아버지에게 사과를 요구할 수 있었다. <br>​<br><br>애실은 다 기억나지도 않는, 이제 주워담을 수도 없는 말들을 생각했다. 그러면서 다시금 말을 간직하는 법을 배워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중얼거렸다. 매일 밤, 차갑고 딱딱한 마음을 파서 하루치의 말을 묻는 일. 매일 조금씩 더 깊이 파고, 오래 파는 행위에 적응하는 일. 말들이 튀어나오거나 새어나오지 않도록 마음을 단단하게 다지는 일. 그러니까 안전하고 평화로운 하루를 영위한 현명한 사람들이 매일 반복하는 일. (「하루치의 말」, 134쪽)​말이란 얼마나 쉽고도 어려운가. 그저 호감일 뿐인데 주변 사람들은 이상하게 주시한다. 그러니 어떤 말은 주저하고 어떤 말은 사라지고 상대의 말을 믿기도 어렵다. 남편과 자전거 가게를 운영하는 ‘나’가  헬스장에서 만난 남자의 부탁으로 그가 외국에서 사 온 빈티지 엽서를 읽어주는 「빈티지 엽서」, 아르바이트로 저명한 미술가의 전시실에서 관람객의 반응을 기록하며 표절 논란을 마주하는 「우연의 직조」, 치매를 앓는 아버지가 가까운 이가 자신의 땅을 빼앗아 갔다는 말을 전해 듣고 혼란스러운 아들의 이야기 「우리와 우리 아닌 것」의 말들은 그러하다. 진위를 구분할 수 없기에 힘들다. 섣불리 의견을 제시했다가 손해만 볼 수 있기에. ​이처럼 김혜진은 관심이 병이 되고 선의의 마음조차 거부되어 돌아오는 시대에 최소한의 그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달걀의 온기」의 ‘선희’는 투자 사기를 당한 후 비어 있는 고향 집에 돌아온다. 요양원에 들어간 아버지가 돌아오실 것 같지 않아 그 집을 처분하기로 한다. 엿을 만들어 팔던 집안 내력 덕분에 ‘엿집’ 막내딸로 통했던 자신을 알아보는 어른들을 피해 다니지만 ‘민지’라는 어린아이와 자꾸 마주친다. 부모에게 버림받고 조모에게 맡겨진 아이였다. 당찬 아이는 스스로 닭을 키우고 달걀을 팔아가며 살아가고 있었다. 옆집 아주머니가 자신에게 건넨 청란, 달걀을 안 좋아한다는 아버지가 그 아이의 달걀을 사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선희는 지갑을 가지러 집 안으로 들어가며 청란을, 그 청란이 품고 있는 온기를 떠올렸다. 그러나 왜 그것이 돌연 마음을 뭉클하게 하는지, 왜 당혹스럽고 부끄러운 감정을 불러오는지에 대해선 깊이 고민해보지 못했다. 그것이 자기 삶에는 없다고 여겼던, 스스로 감쪽같이 지워버렸던 누군가의 보살핌과 애정 같은 것을 일깨웠다는 사실을 안 건 시간이 더 흐른 후였다. 그러니까 그녀가 이곳을 떠날 때 동력으로 삼았던 원망과 미움이 옅어지고, 그 아래 자리한 것들이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거였다. (「달걀의 온기」, 233~234 쪽)​뜻대로 되지 않는 삶, 이제껏 자신의 불행을 아버지와 두 오빠 탓으로 돌리며 살아온 선희는 민지를 통해 자신의 과거를 돌아본다. 여전하게 자신을 기억하고 보살펴준 손길을 생각한다. 한 알에 천 원인 청란이 하나도 비싸지 않다는걸. 표제작 「달걀의 온기」를 통해 우리는 실감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말과 행동이 무엇인지. 온기와 다정함을 품은 말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는다. 최소한의 그것이 상처받은 우리를 어루만지고 살게 한다는 것을.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960/17/cover150/893643993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9601774</link></image></item><item><author>자목련</author><category>목소리 </category><title>당연하게도 누군가의 새벽  - [아무튼, 새벽 - 나는 누구도 가질 수 없는 새벽을 이야기해보기로 했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359540</link><pubDate>Sun, 28 Jun 2026 11:1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35954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52138200&TPaperId=1735954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246/77/coveroff/k45213820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52138200&TPaperId=1735954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아무튼, 새벽 - 나는 누구도 가질 수 없는 새벽을 이야기해보기로 했다</a><br/>박수영 지음 / 제철소 / 2026년 05월<br/></td></tr></table><br/><br>끌리는 단어가 있다. 좋아하는 단어가 있다. 마음을 품었던 기억과 여전히 버리지 못하는 물건을 떠올리는 말들. 누구나 그럴 것이다. 아끼거나 증오하거나 사랑하거나 분노하거나. 그 모든 건 글이 될 수 있고 네 출판사가 함께 펴내는 ‘아무튼 시리즈’가 그렇다고 생각한다. 글감이 다채로우니 저자도 다양하다. 수집광이거나 에세이 리스트거나 작가거나 나만 모르는 세계의 유명인이거나. ​아무튼 나는 새벽에 끌려다는 말이다. 뿌연한 안개를 곁에 두고 달리던 새벽, 소중한 이와 보내는 시간이 아까워 뜬 눈으로 밤을 새우고 맞이한 새벽이 스쳐 지나간다. 홀로 새벽에 쏟아낸 수많은 말들과 술병. 새벽이라는 푸르스름한 빛, 불투명한 이미지, 고독과 사색의 시간. 아무도 모르는 일들이 벌어질 것만 같은 시간. ​잠들려고 애쓰지만 잠들지 못하고 서성이는 새벽의 시간의 날들이 있었기에 그 새벽을 생각한다. 비공개 카테고리로 이동한 그날들의 기록을 보면 그 새벽에 나는 말이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외로웠다고 말하는 게 맞겠다. 혼자여도 괜찮다고 여겼지만 괜찮지가 않아서 잠들지 못하고 자판에 손을 올리고 뭔가를 써 내려갔다. 돌이켜보면 부질없고 아까운 시간이다. 하지만 당시의 나에게 그 새벽은 소중했고 소용돌이치는 감정을 위로하던 시간이었다. ​어쩌면 나는 『아무튼, 새벽』에서 그런 비슷한 것들을 찾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혼자여서 싫기도 하고 혼자여서 충만하기도 했던 감각들. 새벽에만 느낄 수 있는 공기, 그것을 아는 사람이 들려주는 이야기라고 할까. 단편적인 새벽, 새벽의 조각만 떠올렸다. 새벽을 물려받았다고 말하는 저자에게 지각은 당연했다. 새벽만 되면 잠이 달아나고 그 밤에는 영화가 보고 싶고, 영화배우가 꿈이 되었다. 책을 읽으며 새벽마다 본 영화에 대한 글을 쓰고 영화에 출연하고 단편 영화를 만드는 그가 배우로 성공하기를 바랐던 것 같다. 저자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기에 그를 검색했으니까. 그런 날들을 견딜 수 있었던 건 새벽이 있었기 때문이다. 새벽의 도움을 받아 새벽을 좋아하는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처럼. <br><br><br><br>한데 나는 오롯이 새벽에만 끌렸기에 저자의 새벽이 특별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새벽 기도를 다니며 마주했던 조용하고 적막한 시골 읍내의 풍경이나 새벽이라는 한정된 시간의 생동감이나 활기 같은 걸 찾고 싶었던 것 같다. 저자가 고양이와 인연을 맺으며 새벽을 그들을 돌보며 마주한 일상은 새벽의 다른 이면이었다. 사람들이 쉽게 발견하지 못하는 길고양이 급식소, 아픈 고양이를 돌보며 불편하고 불쾌한 시선을 견뎌야 했던 새벽. 여성에게 더 많은 위험과 공포가 도사리는 새벽. 이제야 표지에 왜 고양이가 등장했는지 알 것 같다. 사실, 고양이도 책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였는데 새벽과 고양이의 접점을 나는 알지 못했다. ​새벽엔 풀 냄새, 바람 냄새, 너구리 무리가 머물렀던 자리의 냄새가 너무 짙어서 눈에 보일 것만 같다. 서리 때문은 아니다. 보슬비 내리는 낮에는 없는 냄새가 새벽에만 있으니까. 고요가 허락하는 냄새를 만끽하려면 보폭을 줄여야 한다. (100쪽)​내가 사는 시골의 새벽은 냄새보다 소리가 먼저다. 새소리로 시작하는 여름의 새벽은 더욱 그러하다. 그 소리는 상쾌하고 청량하지만 이불 속 나에게는 볼륨을 줄여줬으면 싶을 때가 많다. 나의 새벽은 그들처럼 날갯짓을 하고 움직이는 새벽이 아니기에. 나만의 새벽은 사라졌다. 아니, 나만의 새벽이 잠들기를 원한다. 잠들지 못하는 새벽이 힘들다. 새벽이 주는 이미지를 좋아하지만 현재 나의 새벽은 깊고 깊은 잠이길 바란다. 그러니  『아무튼, 새벽』에서 나만의 새벽과 교집합을 찾기란 불가능하다. 저마다의 새벽이 있다는 걸 수긍할 뿐이다. ​새벽이면 이 사회의 약자가 누구인지 선명하게 드러난다. 덥고 습한 새벽, 꽁꽁 얼어붙은 새벽, 눈과 비가 쏟아져 내리는 새벽이면 이 시간의 주인을 자처하던 이들은 사라지고 없다. 그런 날에도 길 위에 남아 있는 사람은 환경공무관과 새벽 배송 기사 그리고 길고양이 돌보미인 나였다. 하루만큼 버려진 쓰레기와 하루만큼 쌓인 택배 상자, 그리고 하루만큼 비워진 고양이들의 밥그릇 때문에 우리는 매일 만났다. (124쪽)​내가 깊게 잠들기를 소망하는 새벽에 누군가는 바쁘고 빠르게 움직인다. 나의 아침을 위해 누군가의 새벽은 노동으로 채워진다. 수고와 고마움으로 새벽은 이어진다. 도시의 새벽은 더욱 요란하고도 고요할 것이다. 새벽마다 깨어 시간을 확인하고 눈을 감는 나는 한 번쯤 『아무튼, 새벽』이 생각날지도 모른다. 그게 전부가 될 것 같다. 내가 기대했던 새벽, 내가 궁금했던 새벽이라고 할 수 없기에.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특별한 새벽은 없었다. 당연하게도 누군가의 새벽이 있을 뿐.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246/77/cover150/k45213820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2467711</link></image></item><item><author>자목련</author><category>당신과의 포옹</category><title>수국과 소설 </title><link>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346486</link><pubDate>Sun, 21 Jun 2026 10:0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346486</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02936908&TPaperId=1734648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2825/87/coveroff/k002936908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12138606&TPaperId=1734648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295/47/coveroff/k712138606_2.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0909904&TPaperId=1734648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382/40/coveroff/8960909904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수국을 주문하려고 살펴보고 있었다. 올해는 분홍에 꽂혀지만 청보라를 거부할 수 없어 분홍과 청보라를 장바구니에 넣었다 빼기를 반복했다. 그런데 수국이 도착했다. 친구가 보낸 게 분명했다. 친구가 신청한 구독은 끝났다고 알고 있는데 말이다. 사진을 보냈더니 모른다는 답이 왔다. 어쨌거나 내게 온 수국은 은은하게 예뻤다. 강렬하고 화려한 수국이 아닌 다소곳한 수국이라고 할까. 수국수국의 시간이 이어진 것이다.<br><br><br><br><br>어제는 예약된 치과 진료가 있었다. 스케일링과 검진이었는데 비가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취소할까 하다가 그냥 가기로 하고 집을 나섰다. 가로수에 수국이 있었다. 아파트 화단에도 수국과 목수국이 있었다. 작년에도 있었던가 기억하려 했지만 기억나지 않았다. 수국의 계절이었다. 자귀나무도 꽃을 피웠다. 예전 같으면 6월인데 덥다고 했겠지만 이제는 6월이니 덥다가 익숙하다. 여름인 것이다.<br><br><br><br>주문한 책도 왔다. 세 권의 소설이다. 모두 여성 작가의 소설이다. 조해진의 『우리 세희』, 백 솔뫼의 『다가오는 이마와 검은 털 고양이』, 이서수의 『첫사랑이 언니에게 남긴 것』이다. 조해진의 소설은 읽지 못한 소설도 있고 쓰지 못한 리뷰도 있지만 꾸준히 읽는다. 처음 그의 소설을 만났을 때의 느낌이 좋아서. 그렇게 말하자면 박솔뫼의 소설도 그러하다. 박솔뫼의 소설은 많이 읽지 않았지만 이번에 나온 짧은 소설이 급 궁금해졌다. 아, 김지연의 짧은 소설도 읽어야 하는데. 오랜만에 위픽 시리즈도 하나. 이서수가 소설에서 보여주는 여성 연대를 기억한다. 그들의 연대가 끈끈하고 단단하기를 바란다. 이 소설에서는 어떨지 모르지만.<br><br><br>수국도 좋고 소설도 좋다. 수국은 조금씩 시들고 있다. 수국과 소설을 짝꿍처럼 담아보려 했지만 아쉬움만 남는다. 수국을 바라보는 소설, 소설을 바라보는 수국이라고 생각한다. 서로를 향하는 마음이라고 말이다. 소설과 수국의 마음은 어떨지 모르겠지만.<br><br><br><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382/40/cover150/896090990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3824022</link></image></item><item><author>자목련</author><category>당신과의 포옹</category><title>내게 맞는 고요하고 간소한 삶</title><link>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343332</link><pubDate>Fri, 19 Jun 2026 11:0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343332</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42835213&TPaperId=1734333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8419/44/coveroff/k742835213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52137109&TPaperId=1734333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73/19/coveroff/k452137109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1418406&TPaperId=1734333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85/77/coveroff/8991418406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얼마 전 이불을 버렸다. 침낭도 버렸다. 그 가운데 몇 년 동안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것들도 있었다. 손님이 오면 사용하려고 예쁜 이불이라서 버리지 못한 것들이었다. 그것들이 사라진다고 해서 어려움이 생기는 일은 없었다. 단지 버리지 못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소유한다는 것, 그것이 내 것이라는 어떤 욕심이 자리했던 것이다. 둘러보면 그런 것들이 너무 많다. 그런데도 나는 버리지 못한다.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br>오랜만에 친구나 지인을 만나면 주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가파르게 상승하는 코스피를 보면서 지금껏 주식을 하지 않는 나는 잘못한 사람처럼 여겨진다.  그렇다고 주식을 하는 모두가 이익을 낸  건 아니다. 게으르고 무지한 사람처럼 느껴진다. 이런 마음은 어디서 오는 걸까? 내가 단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 삶의 목적이 없기 때문은 아닐까. 최근에 종영한 드라마 속 인물이 대사처럼 목적은 무엇일까 생각하게 된다. ​이런 마음은 미국의 소박한 삶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만든 잡지 「플레인 Plain」에 실린 27편의 에세이를 담은 책 『간소한 삶』를 읽으면서 깊어졌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아차리고 따라가는 삶. 과감하게 무언가를 내려놓고 버리는 삶. 그들이 들려주는 진솔한 이야기는 나를 돌아보게 만든다. 지금 사는 삶이 어떠냐고 묻는다. 농부, 시인, 평범한 주부이자 엄마, 할아버지, 환경운동가 등 다양한 필자가 경험에서 우러난 고백을 들려준다. 이 책을 읽고 당장 내 삶이 크게 변화하지는 않을 것이다. 알고 있다. 그러나 한 번씩 생각날 건 분명하다. ​한 편으로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30여 년 전에 나온 책이니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와 동떨어진 이야기는 아니냐고 말이다. 곳곳에 기독교적 색채와 ‘아미쉬 공동체’에 대한 부담을 가질 수 있다.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책을 읽다 보면 미디어와 AI에 의존하며 우리가 잃어버린 게 무엇인지 확인하게 된다. 물질만능주의에 빠져 그것에 매몰된 자신을 돌아보게 될 것이다. 혼자가 편하고 간편하고 빠른 속도에 익숙해 잠깐의 기다림도 참지 못하고 조바심을 내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돈이면 다 되는 세상, 그 안에서 우리가 놓치는 게 무엇인지 말이다. ​첨단 기술의 발전으로 놀라운 상품을 생산하고 더 많은 곡물을 재배하지만 누군가는 굶주림과 가난에 죽어간다. 책에서 마주한 삶은 과거 우리가 살아온 모습의 조각이다. 이웃과 인사를 나누고 시간을 내고 서로를 배려하고 좋은 일이 생기면 함께 즐거운 마음을 나누는 일. 물물교환, 품앗이, 직접 옷을 만들어 입고 잼을 만들어 먹는 일, 자동차가 아닌 자전거를 이용하는 삶. 지금 이 시대와 맞지 않는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안에서 찾는 행복과 기쁨을 경험하지 않았기에 단정 지을 수 없다. 그래서 이 책이 의미가 있다. ​우리 삶에서 돈이 자치하는 자리를 줄이며 균형을 찾는 일은 상당히 도전이 될 것이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의 가치를 이해하고 우리가 쓰는 돈의 연결고리와 그것이 미치는 효과를 이해한다면, 우리는 돈을 제자리로 돌려놓을 수 있다. (71쪽)<br><br><br><br><br>음식에 관한 한 가장 멋진 점은 물론 먹는 것 그 자체다. 그러니까 함께 먹는 것이다. 혼자 먹으면 별 재미가 없다. 음식을 나누며 우리가 뜻깊은 일을 함께 기념하고 이웃을 사귀고 베풀고 감사하고 삶을 나눈다. 향연과 축제, 작은 파티, 공동식사를 생각해보라. 우리에게 가장 큰 즐거움을 주는 것은 음식 자체가 아니라 식탁에서 생겨나는 유대감이다. (158쪽)​우리가 정말 바라는 삶은 무엇일까? 하루라도 스마트폰이 없으면 살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삶, TV 플러그를 뽑으면 큰일이 날 것 같은 두려움. 그러나 TV는커녕 라디오를 꺼도 아무것도 무너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토록 원하던 고요를 느끼고 아이와의 대화는 풍요로워지고 노래를 부른다. 책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한정된 삶일까? 아닐 것이다. 아이들은 더욱 그러하다. 스마트폰 대신할 수 있는 다른 놀이를 찾을 수 있는 능력을 잠재우고 있는지도 모른다.​너무 많은 정보에 혼란스럽고 선택에 어려움을 겪는 일, 나만 그럴까? 어느 순간 나만의 기준을 사라지고 주변의 삶을 따라가기에 급급하다. 주어진 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 모르고 살아간다. 정체를 모르는 욕구 불만에 계획 없이 무언가를 사들이고 대화는 단절된다. 단답형의 대화, 줄임말로 이어지는 문자. ​더 이상 가까운 이의 전화번호를 외우지 않는 나를 발견했을 때 깜짝 놀랐다. 손의 감각에 의지할 뿐 도어록 비밀번호가 생각나지 않는 때도 있다. 스마트폰에 메모했으니까. 이렇게 살아도 괜찮을까. 과거로 회귀한 듯 모두가 자급자족하며 공동체의 삶을 꾸리며 『간소한 삶』처럼 살라는 게 아니다. 그렇게 살 수도 없다. 하지만 우리가 놓친 게 무엇인지는 인지하고 살아야 한다. ​우리 부모님이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숨을 거두고 우리 아이들이 낯선 사람들의 울타리 안에서 지내는 게 정말 중요할까? 부모와 아이들을 갖다 맡긴 후 이론적으로 복잡한 관계로부터 ‘자유’를 얻게 된, 늙지도 어리지도 않은 사람들의 삶은 과연 좋아졌는가? 좋은 삶이란 서로서로 복잡한 관계를 맺는 것이며, 궁극적으로 그것이 온전한 삶의 핵심이다. (305쪽) ​『간소한 삶』을 읽다 보면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을 떠올리게 된다. 아마 많은 이들이 그러할 것이다. 주제적인 나로 살고자 하는 소망을 생각한다. 그와 같은 삶을 살 수 없겠지만 주변을 정리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 『월든』의 한 구절을 생각하게 된다. 내면의 소리, 내가 외면하는 소리, 그러나 어딘가에서 계속 들려오는 소리. <br>인간은 언제나 자기영혼이 하는 진실한 얘기를 들어야 한다. 그것은 희미하지만 꾸준한 소리다. (『월든』, 286쪽)<br>같은 의미로 최근에 읽은 호세 카를로스 루이스의 『우아한 사고를 위한 철학』도 같은 맥락이다. 디지털 화면이 지배하는 세상, ‘스크린 시대’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생각한다. 스크린의 지배를 받지 않고 내가 스크린를 조율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메타버스, AI, 기후변화, 가상현실과 적절하게 조화하며 그 안에서 나만의 행복을 찾아 살아가야 하니까.<br>누군가 당장 변화를 찾아 행동할지도 모른다. 누군가 나와는 다른 삶이라 치부할지도 모른다. 나에게 맞는 간소한 삶을 찾는 일. 그게 필요하다. 무엇이 필요한지 정확하게 알고 소중한 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일. 내가 좋아하고 마음이 고요해지는 삶을 향한 시작을 『간소한 삶』을 통해 발견하게 될 것이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85/77/cover150/899141840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1857739</link></image></item><item><author>자목련</author><category>당신과의 포옹</category><title>5월의 책 </title><link>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325370</link><pubDate>Tue, 09 Jun 2026 15:5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325370</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52138200&TPaperId=1732537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246/77/coveroff/k452138200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5267&TPaperId=1732537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67/80/coveroff/8932045267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4950&TPaperId=1732537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70/8/coveroff/8937464950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br>일상을 산다. 하루를 산다. 똑같은 날들이 지루하고 때로는 지겨워서 뭔가 이벤트가 있기를 바란다. 아주 작은 이벤트는 신선하고 새로운  활력을 불러오기도 하니까. 그러다 제법 큰 이벤트가 발생하면 그 뻔한 일상이 뻔한 하루가 그리워지기 마련이다. 대단한 일이 있었던 건 아니다. 그저 마음을 졸였고 전전긍긍하며 살았다. 어찌할 수 없는 앞에 한없이 작아지고 무기력하게 말이다.​6월이 되었는데도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달라지고 싶었는데 달라져야 했는데 말이다. 지난 주말에 친구가 다녀갔다. 친구는 이사 문제로 정신이 없었다. 사는 집을 팔았는데 이사 날짜가 맞지 않아 보관 이사를 했고 당분간 살 공간을 원룸을 구했다. 그리고 해결해야 할 문제가 끝이 없었다. 그런 와중에 나를 만나러 왔다. 주말에 늦잠도 못 자고. ​내가 고집을 부렸다. 나를 만나러 오라고. 겨울에 얼굴을 보고 두 계절이 지났다. 만나지 못했던 날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길지 않았고 그 시간은 허투루 보낼 수 없었다. 아쉬움을 남기고 친구는 돌아갔다. ​그리고 나는 오래 생각했다. 그러니까 이 무기력에서 벗어날 생각, 줄어들지 않는 불안과 찾아야 할 일상에 대해서 말이다. 어떤 일에 대해, 어떤 시간에 대해, 어떤 요일에 대해 내가 부여한 의미들에 대해서. 그 시간이, 그 요일이, 그 느낌이 찾아오는 것들에 대해서. 의미를 부여했기에 나는 힘들었다. 의미를 부여했기에 나는 그것들이 두려웠다. 일어난 일들에 대해, 되돌릴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잔뜩 부여한 의미. 그게 문제였다. <br><br><br>나를 아끼는, 나의 소중하고 귀한 친구는 다시 컴퓨터를 켜고 무언가를 쓰는 루틴을 찾으라고 말한다. 책을 읽고 커피를 마시라고. 그래서 나는 커피를 마시고 좋아하는 잔을 구매했다.계획에 없던 일이다. 다시 충동의 일상을 살기로 했다. 그리고 읽으려고, 궁금했던 책을 기록한다. 이 책들은 5월의 책이다. 읽기는 느리고 더디지만 6월의 책도 곧! <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70/8/cover150/893746495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1700890</link></image></item><item><author>자목련</author><category>목소리 </category><title>나의 작약이 그러하듯이 - [작약과 공터]</title><link>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307442</link><pubDate>Sun, 31 May 2026 11:1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30744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4627&TPaperId=1730744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301/34/coveroff/893204462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4627&TPaperId=1730744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작약과 공터</a><br/>허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10월<br/></td></tr></table><br/><br>5월은 불안한 시간으로 채워졌다. 원인을 알 수 없었던 불안이 아니었다. 하지만 원인을 안다고 해서 불안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더욱 불안은 깊어졌고 잠잠하지 않고 요동쳤다. 5월의 마지막 날인 오늘에 이르려야 조금 괜찮아졌다고 여긴다. 정말로 괜찮아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내 스스로 그런 의식이 필요하고 다짐이 필요하다는 걸 알아차렸다고 할까. 그리고 겨우 시집을 읽는다. 실은 작약의 계절에 이 시집을 읽고 싶었고 생생했던 작약의 꽃잎이 시들고 떨어지는 날들에 이 시집이 그리웠다. <br>빗나가고 싶었고, 빗나간 것들에 대해 노래하고 싶었고, 빗나간 것들을 증언하고 싶었다. 시는 그랬다. 모든 시는 불온해야 하고 모든 시는 자유로워야 한다. 불온한 시를 만나는 일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과 친해지는 일이다. 내 모든 시를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에 바친다. (시인의 말)<br>그래서 얼마나 불온한 시냐고? 그건 모르겠다. 다만 시를 만나는 일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과 친해지는 일이라는 말이 가슴에 콕 박혔다. 허연의 시는 뭐랄까, 외롭고 쓸쓸한 한 인간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그러니까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고독한 남자가 맞을지도 모른다. 홀로 있는 그가 건넨 시가 가만히 내게로 건너와 내 곁을 지킨다. 다시 시집을 펼치면서 여전히 같은 시에 시선이 길게 머문다. 그건 좋은 일일까, 나쁜 일일까. 그리고 내심 모른척했던 이런 시를 처음 만난 것처럼 읽는다.<br>​사람들이 땅을 발견함으로써자두나무를 발견하고모든 결과는 자두가 되었다​염탐된 사상들이 담긴서책에 대해서 생각한다​장서관 맨 위 칸 귀퉁이가 찢어진그 서책은 놀라운 것이었다​엄마에 반발한 아이들이줄지어죽어갔던 날들의 기록이었다​익숙한 햇살이 땅을 비출 때마다 그림자는 이름을 가졌다​결국, 세상은 그림자였음을 안다바라보면 눈멀게 되는 것들이 있다​성당 한쪽 담벼락에 섬망이 지나갔다​죽어갔지만 어떤 것들은 이름을 가졌다(「어떤 것들은 이름을 가졌다』 - 전문)<br><br><br>​사라진 기억, 사라졌다고 믿었던 날들, 이제는 부재한 누군가를 생각한다. 그리고 그 안에 나의 이름을 덧붙인다. 나의 생도 언젠가 사라질 것이다. 어느 날에는 소멸을 꿈꾸었지만 정작 그런 순간이 온다면 나는 멀리 달아나고 싶을지도 모른다. 알고 있지만 죽음에 대한 공포는 가장 큰 불안이기도 하니까. 나는 나를 모르고 내가 안다고 믿어도 그건 아는 게 아닐 터.​그러나 유한한 생은 오늘을 데려왔고 오늘을 살게 한다. 어떤 이는 치열하게 어떤 이는 무기력하게 어떤 이는 제법 아름답고 균형 있게 살아갈 것이다. 내게 주어진 5월의 하루하루는 우울감으로 가득했고 무기력으로 짓눌렸다. 심하게 구져졌고 위축했던 나의 마음이 도무지 펴질 것 같지 않았다. 나에게만 매몰되었기 때문이다. 아직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고 아직 마침표를 찍은 게 아닌데 말이다. 그저 오늘이 전부라는 걸 잊었다. 오늘이 인생이라는 걸 말이다. 그러니 이런 시는 완벽하다.​단명할 것이 분명한 화분에여전히 물을 준다마무리 짓지 못하는 일들 그런 게 뭐라고 속이 탄다​화분의 죽음은 화분의 시간은직관만으로는 말할 수 없다​시소에 앉아인조 잔디와 하늘을 번갈아 보면서어떤 게 쓸 만한 선택인지 생각한다​시소에 앉아 느끼는 생의 무질서도(度)는 그나마 견딜 만한다주기니까딱 거기까지니까​노인에서 소년으로시소는 움직인다양쪽에서 하는 일과 양은 같은데한쪽은 등신이고한쪽은 전사다​딱 거기까지가 생이다화분에 물을 준다(「슬픈 주기 1』 - 전문)​나의 5월은 오늘이 마지막이다. 내일은 6월이다. 5월이 될 수 없다. 나의 오월은 지나갈 것이다. 나의 5월은 기억이 될 것이다. 하루가 지나면 6월이 되지만 나의 6월은 알 수 없다. 어쩌면 나는 6월에도 5월을 살지도 모른다. 6월에도 5월의 감정에 허덕이며 허우적댈지도 모른다. 그래도 5월을 살아냈다. 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나의 작약이 그러했듯이.  『작약과 공터』가 그러하듯이. <br><br><br>​작약은 울먹거림알아듣기 힘들지만 정확한 말​살아서 작약을 보고 있다작약에는 잔인 속의 고요가 있고 고요를 알아채는 게 나의 재능이라서 (「작약과 공터』, 일부)<br><br>공터에선당신의 아름다운 나라와내 끔찍한 나라가 불온하게 빛나고 있었다​세상에는 이상한 공터가 있어서마음을 멍하게 하는 공터가 있어서작약이 있어서 (「작약과 공터 2』, 일부)<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301/34/cover150/893204462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3013491</link></image></item><item><author>자목련</author><category>그러니까, 때때로 허물어지는 </category><title>서울은 정말 더웠고 장미가 아름답고 </title><link>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277772</link><pubDate>Fri, 15 May 2026 10:3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277772</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P152939204&TPaperId=1727777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024/4/coveroff/p152939204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4950&TPaperId=1727777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70/8/coveroff/8937464950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52138200&TPaperId=1727777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246/77/coveroff/k452138200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5267&TPaperId=1727777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67/80/coveroff/8932045267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br>어제는 서울에 다녀왔다. 계획에 없던 일정이었다. 서울에 가는 건 좋은 일이 아니다. 서울에 갈 일은 병원 진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서울에 다녀온 게 좋은 일이 되었다. 불확실한 것에 대한 확인을 받았으므로. 서울은 정말 더웠고 장미가 가득했다. 장미 공원을 조성해 놓은 곳도 있었고 벚꽃 나무 아래로 넝쿨장미들이 가득했다. 분홍, 빨강, 노랑, 흰색의 장미가 아름다웠다. 그 모든 풍경에 대한 대화는 병원 진료가 끝나고 병원 내 카페에서 베리베리 라떼를 먹으며 할 수 있었다. ​나는 건강에 자신할 수 없는 사람이다. 하긴 누가 건강에 자신할 수 있겠는가. 여하튼 몸이 보내는 신호와 증상은 나를 두렵게 만들었고 전문가의 확인이 필요했다. 지방에 사는 이들이 그렇듯 서울로 향하는 길은 어떤 상황이 생길지 알 수 없는 대비가 동반된다. 금식을 했고 혹시나 모를 입원 준비를 해서 병원으로 향했다. 진료 예약을 할 때는 오후 늦은 시간이었는데 아침 일찍 병원에서 전화가 왔고 되도록 빨리 오라고 했다. 그건 좋은 일이었다. 의사가 내 상태를 확인했다는 뜻이니까. 아닐 수도 있지만 말이다. ​오랜 기간 만난 담당 의사는 나의 질문에 성실하게 답해주었다. 하지만 확진은 아니었다. 우리  몸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그렇다. 왜 일어나는지 원인을 알아내려면 시간이 필요하고 검사를 진행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시행되지는 않는다. 나의 경우도 그랬다. 단순한, 일시적인 증상일 수도 있다고, 회복되고 완화되고 있으니 지켜보자는 의견. 나도 동의했다. 과잉진료를 하는 의사는 아니니까. 혹시 모르니 검사 예약은 하자고 했고 내가 의심하는 부분에 대한 검사를 위해 채혈을 했다. 장미에 대한 이야기는 피를 뽑고 검사 예약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기 전 카페에서 시작되었다. <br>5월이었다. 고속도로를 달리면서도 연두와 초록이 가득한 풍경에 눈을 돌릴 수가 없었다. 나의 마음의 경로에는 그것이 없었다. 안 좋은 것들, 나쁜 것들이 내 마음의 경로를 지배했다. 나는 다시 그 경로를 수정한다. 언제나 그렇듯 모든 일은 일어날 수 있고 그 모든 걸 이해하고 나는 기존의 나로 돌아와야 한다.<br>지난주에 친구가 보낸 노란 라넌큘러스를 보며 기뻐하는 나로, 스승의 날을 맞아 선생님께 소박한 카네이션을 보내는 나로 말이다. 나의 유일한 선생님, 최고의 스승이 계셔서 정말 감사하다. 손주를 돌보느라 지친 선생님께 작은 즐거움을 드릴 수 있어 감사하다. 조만간 목소리로 뵙고 싶다.<br><br><br><br><br><br>책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내가 주문한 책은 이곳에 없다. 이런 책과 커피를 샀다. 윤후명의 시집 &lt;모루도서관&gt;, 오랜만에 아무튼 시리즈 &lt;아무튼, 새벽&gt;윌리엄 포그너의 &lt;야생 종려나무&gt;. 세 권 모두 좋은 책일 것 같다. 쓰고 싶지 않아서 쓰지 못했다. 쓰고 싶다는 나로 돌아봐서 다행이다. 매일 쓰고 싶을지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쓰고 싶은 마음이 살아나서 다행이다. 다행인 마음이 생겨서 괜찮다. <br><br><br><br><br><br><br><br><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67/80/cover150/893204526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1678011</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