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그리하여 멀리서  (자목련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 April, Book, Coffee, &amp; You </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Sat, 25 Apr 2026 22:43:13 +0900</lastBuildDate><image><title>자목련</title><url>http://image.aladdin.co.kr/Community/myface/pt_7630901654863820.jpg</url><link>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자목련</description></image><item><author>자목련</author><category>그러니까, 때때로 허물어지는 </category><title>작약은 예쁘고 시는 슬프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235683</link><pubDate>Fri, 24 Apr 2026 10:1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235683</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42932003&TPaperId=1723568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4366/47/coveroff/k442932003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나는 작약을 좋아하고 그걸 아는 너는 내게 작약을 선물했다. 네가 보낸 작약은 '레드 참'이었고 너는 그 사실을 살짝 안타까워했다. 너는 분명 '사라' 작약을 선택했다고 믿었으니까. 아니 네가 구독한 상품이 그랬을 거라고 여겼으니까. 그러나 나는 작약은 다 좋고 좋으니까. 상관없다. 그래도 아쉬운 건 이 녀석은 빠르게 피고 빠르게 진다는 것. 한순간 와락 꽃잎이 떨어지고 장렬하게 전사한다는 것. 어제 도착했을 때에는 두 송이만 피어나고 있었다. 나머지 세 송이는 작고 귀여운 알사탕이었다. 화병에 옮기고 시간이 지나니 생기가 돌았고 세 송이 가운데 하나도 피어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두 송이는 아직도 수면에 빠진 것 같다. <br><br><br><br><br><br>올해 첫 작약은 네가 시작했고 나의 작약은 두 번째, 세 번째로 이어질 것이다. 아침에 잠깐 튤립, 작약 구근에 대해 작은언니와 이야기를 했다. 오빠네 마당에도 이런 구근을 심으면 좋을 텐데. 오빠는 나무는 좋아하지만 꽃은 그보다 덜 좋아하는 건가 혼자 생각했다. 언제 한 번 물어봐야겠다. <br><br><br><br>자주 검색하는 작약은 '바츠 젤라' 작약, '레몬' 작약이다. 환한 노란빛에 반해서 검색을 하곤 한다.  생화를 구매하는 방법을 찾을 수 없다. 도시의 큰 꽃집에서나 가능할까. 직접 마주하면 그 아름다움에 놀랄 것 같다. 언젠가 꼭 만나고 싶은 작약이다. 이런 마음이 닿아 만나기를 바란다. 작약을 보고 작약이 등장하는 시집을 꺼내 읽는다. 작약도 좋고 이런 시는 슬프다. 다시 읽어도 슬프다.​<br><br>​​작약 속을 걸었다작약이 없다작약이 아닌 것들만 가득했다죽는다고 달라질 게 있을까거기와 이곳이 사이는 없고환상이라고 말하면 이미 환상이 아닌데​여기는 한 번쯤 죽어야 올 수 있다는 말은 거짓이었다​물고기가 바라보는 곳을새 한 마리가 바라본다나도 그곳을 바라본다모두 다른 곳인데 한곳에 있었다​작약은 거기 있다허공에 뿌리를 두고꽃을 물속에 두었다누가 밀어넣었을까누가 밀어올렸을까어떤 반성과 참회의 꼭대기를 흔들었다​무수하게 산란하는 물고기들이내 얼굴을 스쳐간다​작약 속을 걸었다작약이 없다이 모든 게 작약이 되는 날이 온다는 말을 이제 믿지 않는다치욕스러웠다​반복되는 작약 ​피가 물속으로 퍼져갈 때 작약꽃이 피었다​나는 집을 만들 손이 없었다(「작약은 물속에서 더 환한데」, 전문)<br>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4366/47/cover150/k44293200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43664772</link></image></item><item><author>자목련</author><category>당신과의 포옹</category><title>책의 날, 책이 좋아서  </title><link>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233705</link><pubDate>Thu, 23 Apr 2026 10:0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233705</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P092939293&TPaperId=1723370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55/73/coveroff/p092939293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52137009&TPaperId=1723370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58/61/coveroff/k852137009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12137309&TPaperId=1723370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80/59/coveroff/k912137309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4981199&TPaperId=1723370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1396/81/coveroff/8934981199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수요일이었던 어제는 지구의 날 소등행사가 있었다. 작년에는 어땠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올해는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도 동참했다. 저녁 8시에 시작해 10분간 불을 끄는 일, 그 잠깐의 10분이 꽤 오래 느껴졌다. 10분의 침묵과 어둠이 가능했던 시절은 언제였을까. 침묵과 고요, 그것이 주는 평온함을 가만히 떠올렸던 시간이었다. <br>목요일이다. 목요일의 아이는 길을 떠난다고 했던가. 정확하지 않다. 아무튼 목요일이고 오늘은 세계 책의 날이다. 그리고 내 생일이다. 세계 책의 날과 생일이 되었다. 음력으로 생일을 챙기다 보니 이렇게 좋아하는 책과 생일이 같은 해도 맞이한다. 그러니 세계 책의 날을 축하하며 도착한 책을 기록한다. 가까이 지내는 선배 언니가 보낸 책 선물과 커피. 쨍한 핑크 책등이 인상적인 『언어의 무게』. 나는 읽지 않은 책이다. 내가 읽지 않은 책이라 하니 언니는 다행이라며 좋아하면 좋겠다고 했다. 읽기 전이지만 나는 벌써부터 좋다. 커피는 말할 것도 없이. 좋아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말할 수 있다는 건 참 좋은 이다. 그러니 이 글을 쓰는 지금이 참 좋다.<br><br><br><br>박상수 시인의 시집 『메신저 백』과 이름도 어려운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의 소설 『슬픔의 물리학』은 믿고 읽는 이들의 리뷰 덕분에 구매로 이어졌다. 『메신저 백』은 조금 놀랐다. 왜냐하면 수록된 시가 모두 긴 시라서. 마지막에 산문도 한 편 실렸다. 박상수 시인의 시집을 구매한 기억은 있는데 시의 내용이 생각나지 않는다. 물론 그 시집도 책장에 없다. 왠지 찬찬히, 오래 읽어야 할 것 같다. <br>꽉 차올라서 더 채울 게 없는데도 채우지 못한 것 같은 이런 이상한 슬픔과 빛, 소금과 허브로 잘 절여두었다가 건조시킨 후에 꽁꽁 싸매두자 일 년 뒤에 연잎 껍질을 풀면 비로소 오늘의 이 기분이 손에 배어나오도록, 우리 두 사람에서 시작해 우리를 아는 모든 사람에게 반짝이며 풍기도록, 양손을 활짝 펼쳐서 서로를 기다려주는 사람, 한 사람이 품에 들어오면 다른 한 사람이 날개뼈를 잡아 한 번도 떨어져 본 적이 없는 사람들처럼 녹아버리는 마음, 바람이 세서 피크닉은 어려울 것 같은 날에도 키 큰 나무 아래에서 눈을 감고 같이 누워 있는 모습을 떠올려보자 흩어지는 머리칼을 서로 정돈해주며 웃어주는 우리가 되자, (「다하지 못한 마음」 일부)<br>나는 이제 실패를 아는 사람으로서 돌아보면서 가기로 한다 돌아보면서 갈 수도 있을 것이라고 믿어보기로 한다 믿음은 있어서 믿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써 생겨나는 것, 그렇다면 있다 나는 벌써 있다,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감사를 반복하기로 한다 멀리서 종소리가 들리고 나는 강을 뒤로 하고, 이제 로비를 지나 숙소까지 돌아가는 일이 남고, 이것은 갔다가 돌아고는 구조, 회귀의 여정, 성숙의 파노라마를 완성하는 일에 실패할까 봐 내일부터는 하루에 한 번씩만 돌아보기로 한다 나는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고, 중얼거림을 반복하는 사람은 되지 못한 사람, 그런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되지 못한 사람으로서 나는 증명할 수 없는 실패의 말을 받아 적으며 복도를 걸어간다 그때에도 강물은 녹고 빛은 부서진다.  (「증명할 수 없는 사람」 일부)<br>'세계 책의 날'이니 오늘은 여느 때보다 책을 만지는 시간이 많았으면 좋겠다. <br><br><br><br><br><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1396/81/cover150/893498119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13968193</link></image></item><item><author>자목련</author><category>그러니까, 때때로 허물어지는 </category><title>사랑하는 사람을 안다는 건...</title><link>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227770</link><pubDate>Mon, 20 Apr 2026 11:3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227770</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12137883&TPaperId=1722777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03/99/coveroff/k312137883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02137883&TPaperId=1722777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04/7/coveroff/k802137883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42137883&TPaperId=1722777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04/12/coveroff/k842137883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오랜 시간 알고 지낸 친구가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의 반응 때문인데 나쁜 일의 경우 그렇게까지 속상할 일인가 나는 생각하기 때문이다. 저마다의 기준이 다르니까 그럴 수 있다고 해도 돌이킬 수 없는 일에 계속 신경을 쓰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해서다. 하지만 누군가 나를 보면 그도 역시 같은 생각을 할 수도 있다. 누군가는 아는 건 어렵고 이해하는 건 더욱 어려운 일이니까. 그럼 사랑하는 일은 어떨까? 상대의 모든 걸 품어주고 견디는 게 사랑일까. 사랑하기 때문에 그 모든 걸 감수할 자신이 있는 것일까? 애거서 크리스티의 당편소설 『장미와 주목』속 ‘이저벨라’가 선택한 사랑은 도무지 모르겠다. 그녀가 상대의 무엇에 반했는지 말이다. 이렇게 말하면 『장미와 주목』이 단순한 사랑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 있다. 어떤 면에서는 맞지만 소설을 다 읽고 나면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한 사람의 심연을 채우고 지배하는 게 무엇인지, 타인에 대해 안다는 건 얼마나 무지한가 스스로 묻게 된다. <br>소설은 죽어가는 누군가가 화자인 ‘나’를 만나고 싶어 한다는 소식으로 시작한다. 기억에도 없는 이름이었다. ‘존 게이브리얼’, 그를 중오하는데 마지막 순간에 나를 찾다니. 존 게이브리얼과의 만남은 호기심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못생긴 사기꾼의 최후를 지켜보고 싶은 이상한 욕망 말이다. 존 게이브리얼의 죽음의 순간은 그들의 첫 만남을 불러온다. 과거 나는 사고로 하반신 마비로 휠체어와 한 몸인 상태로 런던을 벗어나 형수 테리사의 의 고모가 유산으로 물려준 집이 있는 세인트 루에서 생활했다. 형수는 많은 정치 행사에 참가할 생각이라고 했고 그와 관련된 이들의 만남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그 지역의 보수당 대표로 나선 주자는 존 게이브리얼이었다. 그는 대단한 이력의 소유가는 아니었지만 선거를 출세의 발판으로 삼으려는 뚜렷한 목표가 있었다. 어떻게 하면 세인트 루 사람들의 환심을 사고 좋은 이미지를 남길 수 있는지 아는 사람으로 어느 정도 성공한 듯 보였다. 존 게이브리얼에게 나는 완벽한 청자였다. 모든 이야기를 쏟아냈고 자신의 욕망을 숨기지 않았다. <br>나를 방문한 다른 이들은 안타까운 시선과 연민의 말들을 전했다. 하지만 단 한 사람은 달랐다. 삶을 포기하려고 수면제를 모으고 있던 나를 한눈에 알아본 사람은 귀족 아가씨 이저벨라였다. 그녀가 가장 두려워하는 건 죽음이었기에 그랬을까. 나는 이저벨라와의 만남이 즐거웠고 그녀와 대화를 하면서 모아둔 죽음이 아닌 삶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그녀를 좋아하고 어쩌면 사랑하고 있었을지도. 그러나 그녀에게는 정혼자가 있었다.  그녀는 세인트 루의 성에 노부인들과 지내며 전쟁에 참가한 연인 사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돌아오면 결혼을 할 거라고.  <br>나와 이저벨라는 선거 이야기도 나누었는데 그 중심엔 당연 존 게이브리얼이 있었다. 선거일이 가까워지면서 그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칠 테니까. 그가 술주정뱅이에 폭력을 쓰는 남편으로부터 한 여인을 구해준 일은 일파만파 커졌다. 사람들에게 둘은 내연관계처럼 보일 수 있었으니까. 여인은 자신이 존 게이브리얼에게 도움이 되지 않아 속상해하고 자책했다. 나에게도 찾아와 조언을 구했다. 보수당의 승리를 위해 세인트 루의 많은 이들이 의견을 냈고 결국엔 존 게이브리얼의 승리는 가까워졌다. 그리고 이저벨라가 기다리던 정혼자가 왔다. 이저벨라 정말 잘 어울렸다. 존 게이브리얼은 영광이 기다리고 있었고 이저벨라에게는 행복한 결혼생활만 남은 듯 보였다. 그러나 그런 결말은 도착하지 않았다. 존 게이브리얼과 이저벨라가 떠났으니까. 둘 사이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존 게이브리얼은 귀족에 대한 반감으로 이저벨라를 꺾으려 했다는 것과 이저벨라는 아무렇지 않게 대했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나에게 두 사람은 어울리지 않았다.<br><br><br><br>시간이 지나 의술의 발전으로 나는 휠체어에서 벗어났고 우연한 장소에서 존 게이브리얼과 재회한다. 그를 통해 이저벨라가 있는 집으로 찾아간다. 예상대로 비참한 환경이었지만 이저벨라는 아니었다. 예전과 같은 분위기였다. 정식 결혼을 하지 않고 살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이저벨라가 세인트 루로 돌아간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놀라운 건 그녀가 존 게이브리얼을 대신해 총에 맞아 죽었다. 맨 처음 만났을 때, 죽음이 무섭다고 했던 그녀였다. 선거 행사의 만남에서 그를 좋아하냐고 물었을 때 그를 모른다고 했던 그녀였다. <br>“전 그를 몰라요…… 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죠. 누군가에 대해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모른다는 건 끔찍한 일이에요.” (235쪽)<br>분명 이저벨라는 존 게이브리얼을 사랑했다. 하지만 그를 알지 못했다. 아이러니하지만 맞는 말이다.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은 내 감정과 내 입장에 우선할 수 있으니까. 그러니 사랑은 복잡하고 삶도 마찬가지다. 애거서 크리스티가 필명 ‘메리 웨스트매콧’으로 쓴 소설에서 중점을 둔 것은 인간의 내면이었다. 한 사람의 삶을 이해하이 얼마나 어려운지. 자신이 지난 생을 돌아보는 입장에서도 다르지 않다. 형수 테리사가 짚어주는 이 부분이 소설의 핵심이다. <br>“그녀는 이해하기 힘든 사람이죠. 우리가 이해하지 못했던 건 ㅡ 그녀가 복잡해서가 아니라 단순하기 때문이었어요 ㅡ 무서울 정도로 단순했죠. 그녀는 언제나 본질만 생각했어요. 당신은 이저벨라가의 인생이 짧게 끝나버렸다고, 일그러지고 부서져버렸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난 그것 자체로 완전한 인생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 (347쪽)<br>『장미와 주목』의 화자인 휴 노리스가 이저벨라의 삶을 통해 자신의 그것을 마주한 것처럼. 오 분이나 천년이나 의미는 똑같고, 시간은 중요하지 않다. 이 소설이 T.S 엘리엣의 『네 개의 사중주』 중 “장미의 순간과 주목의 순간은 같다”에서 가져온 것은 의미심장하다. <br>이미 다른 소설이 그러했듯 재미있게 읽었지만 가슴 한 구석을 지나는 날카로운 무언가가 있다. 가장 사랑하는 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를 수 있다는 이저벨라의 모습은 남편과 가족이 전부였고 그것이 행복한 삶이라 여겼던 『봄에 나는 없었다』에서 상실을 느꼈던 ‘조앤’, 가장 든든한 조력자였던 엄마의 죽음와 불행한 결혼을 통해 성장하는 『두 번째 봄』속 ‘셀리아’를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타인에 대한 이해와 인간 심연에 대한 사유, 애거서 크리스티의 통찰이 놀랍다.<br>조앤은 자식들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로드니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몰랐다. 그들을 사랑했지만 알지는 못했다. 알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사람들을 사랑하면 그들에 대해 알아야 하는 건데. 참된 진실보다도 유쾌하고 편안한 것들을 사실이라고 믿는 편이 훨씬 수월하기 때문에, 그래야 자신이 아프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에 대해 몰랐다. (『봄에 나는 없었다』, 중에서)<br>사람이 자라 나이를 먹어가는 것이 얼마나 신비롭고 두려운 일인가. 사람에게 다른 어떤 순간보다 더 자기 자신다운 특별한 순간이라는 게 있을까? (『두 번째 봄』 중에서)<br><br><br><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04/12/cover150/k84213788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8041208</link></image></item><item><author>자목련</author><category>당신과의 포옹</category><title>벚꽃의 시간 </title><link>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217804</link><pubDate>Wed, 15 Apr 2026 10:1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217804</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P862939292&TPaperId=1721780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55/43/coveroff/p862939292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P812939292&TPaperId=1721780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55/59/coveroff/p812939292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39936&TPaperId=1721780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960/17/coveroff/8936439936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어제 점심에 벚꽃을 보고 왔다. 일부러 시간을 냈다. 지금 아니면 볼 수 없으니까. 매년 피는 벚꽃인데 만날 때마다 벅차다. 올해는 더 풍성하게 느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작년보다 나무는 더 자랐을 것이고 더 많은 것을 품고 있을 테니. 나무는 그 자리에서 자신을 지키고 성장한다. 눈 닿은 곳마다 벚꽃이 가득했다. 떨어진 꽃잎이 아까울 정도였다. 정말 황홀해서 차에서 내려 사진을 찍고 싶었다. 넋을 놓는 순간이라고 할까. 하지만 이면 도로가 없는 시골길이고 많지 않지만 차들도 있어서 그럴 수 없었다. 동영상을 찍었는데 조작 미숙인지 저장된 게 없었다. 아쉬운 마음이 컸다. 하지만 벚꽃터널을 지나는 그 순간의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은 남았으니 충분하다. <br><br><br><br><br><br><br><br>지척에 이처럼 아름다운 곳이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마주하는 풍경은 경이롭다. 낮에는 기온이 높아 4월의 여름인가 싶었다. 야트막한 동산에는 연둣빛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파트 화단의 크기가 작은 수수꽃다리의 연보라도 곱고 생기가 돈다. <br><br><br><br>표지가 벚꽃처럼 고운 김혜진의 단편집과 벚꽃처럼 황홀한 맛의 커피까지 좋은 게 많다. 땡스투는 꽃향기가 입안에 가득하다는 님에게. 김혜진은 정말 성실한 작가인 것 같다. 4월의 절반이 지났다. 남은 절반은 벚꽃의 기억과 소설의 즐거움, 맛있는 커피와 함께. <br><br><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960/17/cover150/893643993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9601774</link></image></item><item><author>자목련</author><category>목소리 </category><title>거긴 내 집이 아니야  - [어느 서민 여성의 삶, 노년, 죽음]</title><link>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215867</link><pubDate>Tue, 14 Apr 2026 11:1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21586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4961&TPaperId=1721586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160/44/coveroff/893204496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4961&TPaperId=1721586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어느 서민 여성의 삶, 노년, 죽음</a><br/>디디에 에리봉 지음, 이상길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12월<br/></td></tr></table><br/>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는 친구와 지인이 늘고 있다. 취업을 위한 목적이 아니라 부모님을 위한 준비로 취득한 것이다. 한 친구는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따려고 편입을 하기도 했다. 노후대비의 하나가 된 치매보험이 낯설지 않다. 내가 사는 시골에는 혼자 사시는 어르신이 많다. 늙었지만 혼자 살아가는데 어려움이 없기에 혼자 사신다. 낮에는 경로당이나 마을회관에서 함께 식사를 하고 집을 놔두고 그곳에서 잠을 자는 일도 허다하다고 들었다. 이유는 다양하다. 혼자가 적적해서, 생활비를 줄이려고, 오며 가며 운동이 되니까. 그러나 겨울에는 상황이 달라진다. 추위로 나서는 길은 미끄럽고 위험하며 낙상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해서 겨울엔 여력이 되는 자녀가 와 있거나 어르신들이 자녀의 집에서 지내다 오기를 반복한다. ​내 부모는 두 분 모두 돌아가셨기에 요양원에 갈 일이 없어 요양원이라는 공간은 익숙하면서도 낯설다. 아버지를 요양원에 모신 친구에게 들은 비용은 생각보다 비쌌다. 노년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경비는 얼마나 될까, 아무런 대비 없이 살아가는 나는 심란해졌다. 어떤 질병은 예상 없이 찾아온다. 대책과 대안이 없다면 당황하게 된다. 삶의 마지막조차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은 진정 서글픈 일이다. 경제적인 이유로 자식들의 눈치를 보거나 같은 이유로 고집을 피우지만 현실적인 상황에 굴복하고 된다. 디디에 에리봉의 『어느 서민 여성의 삶, 노년, 죽음』 속 어머니처럼 거긴 내 집이 아니라고 주장하다 멈춘다. 모든 걸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삶은 살아있는 삶일까. 저자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시작하는 이 책은 많은 질문을 남기고 한편으로는 노년이라는 구체적인 삶에 대한 계획이 있는지 묻고 있다. 부모가 아닌 다가올 나의 노년에 대해서 말이다. ​디디에 에리봉처럼 자식의 입장에서 보면 어머니가 집을 떠나 요양원에서 지내는 게 안전하고 합리적이다. 위급상황이 생겼을 때에도 빠른 처치가 가능하고 그곳에는 이미 기존 사용자가 있느니 그들과 잘 지내면 괜찮다고 여긴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 예상하는 것과 실제는 다르다. 기대했던 방향이 아닌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른다. 삶이 그렇다는 걸 알려주듯이. 어머니의 입장에서 보면 그곳은 내 집이 아니다. 분명한 사실이다. 새로운 집이 될 수 없다. 잠시 치료를 위해 입원한 병원이 아니라 퇴원이라는 조치가 없다. 혼자 지내는 것보다 훨씬 나은 게 아니냐고 할 수 있다. 어머니의 의견이 수용될 가능성은 전혀 없다. 그곳에는 그곳 나름의 규칙이 있고 사용자를 도와주고 돌봐주는 직원의 수는 충분하지 않으니까. 사립이 아닌 공공 요양원의 예산은 삭감된다. 필요한 재정은 항상 부족하니까. 그렇다고 그냥 그대로 받아들여야 마땅한가. 그런 삶을 강요해도 되는가. 어머니는 자신이 방식대로 받아들였다. 음식을 거부하고 마지막을 선택한 것이다. ​디디에 에리봉은 그곳에 어머니를 모시고 자주 찾아뵐 거라 여겼다.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어머니의 사후에 쓰인 이 책에서 그는 스스로를 나쁜 아들이라 말한다. 하지만 그는 나쁜 아들이 아니다. 한 번도 행복한 시절이 없었던 온통 불행했던 어머니의 삶을 재조명하며 사회적 구조와 현실적으로 필요한 제도에 대해 설명하는 훌륭한 책을 썼으니까. 어린 시절 부모에게 버림받고 하녀와 가정부로 생계를 유지하고 노동자와 결혼한 어머니. 남편이 죽은 후에야 뭔가 선택할 수 있는 삶이 주어졌다. 그러나 아프고 병들면서 그것은 온전히 사라졌다. 한때 어머니가 사랑했던 남자 때문에 강한 의지를 보였지만. <br><br><br><br>디디에 에리봉과 어머니와 보낸 시간을 통해 어머니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은 남다르고 특별하다. 자신의 정체성과 정치적인 활동으로 인해 가족으로부터 떨어져 독립적인 생활을 시작했던 디디에 에리봉이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와의 관계를 시작한다. 항상 텔레비전을 틀어놓고 지내는 어머니, 은근한 인종주의자 노인. 디디에 에리봉은 어머니의 잘못된 행동이나 발언을 언급하면서도 어머니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 어머니의 말대로 그녀의 집이고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은 적 없이 평생 그렇게 살아왔으므로. 어머니의 부재는 그 모든(어머니와 보낸 순간, 짧은 대화, 사소한 언쟁) 게 애달프고 그립다. ​아들이었으나 더 이상 아들이 아니라는 것. 내게도 일어난 일이다. 더 이상 아들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문화적·정신적으로뿐만 아니라, 이번에는 정말로 내가 더 이상 아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점차 의식하게 되는 것. (155쪽)​더 이상 아들이 아니라는 것. 그러니까 사회적 역할에 대한 이야기. 역할이 사라진다는 이 부분을 읽을 때 나는 울컥했다. 부모가 없는 나에게는 사라진 역할, 친구들이 여전히 수행하는 그 역할. 누군가의 부재로 인해 관계는 지워지고 역할은 사라진다. 나는 더 이상 딸이 아니라는 것, 누군가의 딸이었던 나는 존재하지 않고 큰언니의 동생 역할도 할 수 없다는 사실. 누군가 그게 무슨 말이냐 할지도 모르지만 이건 명확한 사실이었다. 그러니 디디에 에리봉이 어머니의 입에서 자주 쓰던 억양, 말투, 어조, 사투리를 들을 기회가 없다고 여겼던 차에 발견한 방언사전은 어머니를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1930년대 프랑스에서 태어난 디디에 에리봉의 어머니의 이야기 『어느 서민 여성의 삶, 노년, 죽음』을 읽으면서 주변을 둘러본다. 농담처럼 사촌에게 사고뭉치라는 소리를 듣는다는 고모, 택시 운전을 하시는 작은아버지, 고된 농사일을 하는 오빠 내외, 얼마의 국민연금을 받게 될까 계산하는 나까지. 이곳이 아닌 그곳의 삶이 다르지 않다. 다가올 노년의 내 목소리는 누구에게 닿을 것인가. 아니,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늙음과 죽음을 마주할 공간, 내가 원하는 집은 존재할까. <br>남들에게 들리도록 소리를 낼 수 있는 고령자들의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실제의 가능한 ‘우리’가 없기 때문이고, 따라서 현실에서나 심지어 상상의 영역에서도 가능한 공적 발언이 없기 때문이다. (289쪽)]]></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160/44/cover150/893204496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1604461</link></image></item><item><author>자목련</author><category>목소리 </category><title>나를 쓰는 일  - [지극히 나라는 통증 - 비로소 나아가는 읽기, 쓰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213847</link><pubDate>Mon, 13 Apr 2026 11:0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21384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72031647&TPaperId=1721384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306/67/coveroff/k27203164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72031647&TPaperId=1721384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지극히 나라는 통증 - 비로소 나아가는 읽기, 쓰기</a><br/>하재영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09월<br/></td></tr></table><br/><br>나의 글쓰기는 결핍 속에서, 통증에 의해 형성되었다. 통증은 단순한 병리적 증상이 아니라 존재가 세계와 마찰하는 순간에 생겨나는 미세한 감각이다. 또한 말이 채우지 못한 자리에 발생한 공백이자, 말이 넘쳐 흐른 자리에 생겨난 잉여다. 이 낯선 감각은 기억과 몸, 타자와 언어의 경계를 가로지르며, 내가 지극히 나일 수밖에 없는 존재의 방식으로 드러난다. (10쪽)<br>간헐적으로 통증에 시달린다. 미련하게도 참는다. 오랜 시간 약을 먹었기에 약을 줄이고 싶은 마음인지 모른다. 그러다 약을 먹는다. 통증이 사라진 이유가 약 때문인지 시간의 흐름에 따른 결과인지 알 수 없다. 이 통증은 나밖에 모르기에, 누구에게도 설명할 수 없다. 설명하다 한들 나의 고통을 상대는 모른다. 그걸 알기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러니 통증은 언제든 나를 습격한다. 나를 지배하고 무기력하게 만든다. 이러한 사정이 하재영의 『지극히 나라는 통증』이 궁금했다. 이 책은 단순하게 제목 때문에 읽게 된 책이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 책은 통증을 다루거나 통증의 경험을 말하는 책이 아니다. 저자가 다른 지면에 발표한 글과 다양한 주제를 풀어낸 에세이다. 그건 저자에게만 닿은 고유한 감각과 생각일 수도 있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모두가 관심 있게 짚어야 할 주제이기도 하다.​지극히 나라는, 개인적인 서사는 타인에게 공감을 얻기 어렵다. 상처와 고통, 과거의 트라우마를 꺼내기 어려운 이유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같은 경험을 했다면 다르다. 아니, 그 이야기를 꺼낼 창구가 있다면 괜찮다. 창구가 있다면 들어줄 이가 있다는 것이니까. 저자가 12년 전의 상처를 꺼내고 정신의학과를 다니고 변호사를 만나는 일련의 과정은 아무런 결론에 도달하지 못했더라도 의미가 있다. 내면 깊숙이 자리한 트라우마의 실체를 직시할 수 있고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른 사람이라는 걸 확인할 수 있었으므로. ​잔인한 상흔으로 남은 글을 쓸 수 있다는 건 대단한다. 쓴다는 건 참 좋은 일이다. 쓴다는 건 복잡했던 무언가가 풀리는 순간이며 말하고 싶은 욕망을 인정하고 수긍하는 태도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저자는 개인적인 경험을 풀어내며 잘못된 사회적 시선에 대해 말한다. 더불어 타자에 대한 이해와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던진다. 발레를 위한 몸을 위해 감수해야 했던 시간, 그러나 끝내 발레에 적합한 몸이 아니라서 선생님에게 비난의 말을 들어야 했다. 날씬하고 마른 몸 뒤에 숨겨진 폭력의 언어와 폭식. 성년이 되면서 이어진 굶기와 하이힐의 높이로 채워진 몸. 예쁘고 날씬해야 한다고 여성은 주입받는다. 그게 당연하다고 여긴다. 정녕 그건 당연한가. 저자의 이야기를 통해 여성 독자라면 자신의 몸을 보게 될 것이다. 다이어트를 위해 지불한 시간과 돈, 그건 누구를 위한 것일까. 지극히 개인적이고 유일한 나, 그러니 획일된 몸은 사라져야 한다. ​저자의 솔직한 고백은 술에 대한 것으로 이어진다. 자신을 ‘알코올사용장애’라고 설명한다. 적당한 취기는 효과적인 사회적 가면이라고. 술을 마시지만 원고 마감을 어긴 적도 없고, 취재나 강연에 늦지 않았고, 집안은 깨끗하고 정리되어 있고 공과금을 연체하지 않았다고. 중독에 관해서는 ‘술’대신 다른 것들로 채워질 수 있다. 스마트폰, 연애, 커피, 쇼핑, 게임. 과연 중독에서 자유로운 이가 얼마나 될까. 아니 가능이나 할까. <br><br><br>현대인은 자율적으로 살아내기 위한 방편으로 비자율적인 쾌락에 기대 특정한 행위를 반복한다. 더는 중독을 비참하게 훼손된 인간의 징표로만 여길 수 없다. 대상과 정도는 다르지만 무엇인가에 얼마만큼은 중독되어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공동의 운명에 처해 있다. (92쪽)<br>이처럼 자신의 통증(경험)을 통해 우리는 타자와 대화를 나눌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다. 그 경험을 터놓을 수 있는 시작, 그것은 나 아닌 다른 존재에 대한 존중에서 비롯된다. 저자가 키우던 반려견의 죽음을 통해 느꼈던 슬픔과 상실, 나아가 반려종에 대한 부분이 그러하다. 나는 반려인이 아니기에 더욱 인상적이었다. 반려동물의 죽음을 통한 상실은 가족을 잃는 것과 같다고 하지만 나는 그것을 알려 한다고 해도 온전히 알 수 없다. 또한 유기견 센터에 모인 버려진 개에게 좋은 입양자를 찾아주고 싶은 마음이지만 말 잘 듣는 개라는 소개는 결국 키우기 쉬운 개라는 말이며 이것은 인간의 입장에서 본 것이라 말한다. 생명체로 대우하기는 어려운 일인지, 인간과 반려동물의 관계뿐 아니라 모든 관계에 대해 돌아보게 만든다. ​동물에 관한 이야기는 더 이어진다. 환경보호 정책으로 자동차나 오토바이의 운행이 금지된 곳에서 그것들을 대신한 말의 노동력은 괜찮은가 묻는다. 그런 풍경을 마주한다면 나는 어떤 생각을 할까. 관광지에서 말을 타고, 말이 끄는 마차를 타보았지만 동물노동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기에. 인간의 필요와 이익이 최우선 순위인 시대,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와의 관계는 새롭게 사유되어야 한다는 저자의 믿음을 고민하게 된다. ​저자의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에서 만났던 공간과 엄마에 대한 이야기는 여전히 애틋하고 울컥한다. 그것은 여성의 공간, 여성의 글쓰기로 연결된다.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말이다. 가부장제에 편입되면서 이름을 잃어버린 사람, 아내이자 며느리, 엄마인 여자는 어디에나 있어야 했지만 그렇기에 어디에도 속할 수 없었고 자신만의 장소는 존재하지 않았다. 있어도 없는 사람이라 말했던 엄마의 말은 사라질 수밖에 없었고 침묵해야만 했다.<br>한때 우리는 침묵으로써 우리를 보호하려 했으나, 지금은 존재한다는 것이 곧 말한다는 의미임을 안다.나 자신으로서 말하기, 위반된 언어로 말하기, 단상 위에서 말하기. 또다시 내면의 유혈사태를 겪더라도 나는 잃어버린 것을 회고함으로써 계속 말하고 싶다. (248쪽)<br>무엇이든 쓸 수 있고 말할 수 있는 힘을 키우는 일. 말하고 쓰는 것. 이처럼 자연스럽고 자유로운 것이 왜 두려운 것이 되었을까. 잘 쓰고 싶어서 그랬을지 모른다. 잘 쓴 글이 아닌 나를 쓰는 일을 중요하다.  솔직하고 정직한 나를 쓰는 일, 나의 통증을 마주보고 나를 쓰고 싶다. 그 가능성을 믿는 일, 그게 시작일 것이다.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306/67/cover150/k27203164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3066763</link></image></item><item><author>자목련</author><category>목소리 </category><title>스크린 시대의 지침서  - [우아한 사고를 위한 철학 - 어떻게 정신적 빈곤에서 벗어날 것인가]</title><link>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200289</link><pubDate>Mon, 06 Apr 2026 16:2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20028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52137109&TPaperId=1720028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73/19/coveroff/k45213710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52137109&TPaperId=1720028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우아한 사고를 위한 철학 - 어떻게 정신적 빈곤에서 벗어날 것인가</a><br/>호세 카를로스 루이스 지음, 김유경 옮김 / 북하우스 / 2026년 04월<br/></td></tr></table><br/><br>호세 카를로스 루이스의 『우아한 사고를 위한 철학』는 ‘우아한 사고’란 말에 끌린 책이다. 우아한 사고란 무엇일까 싶은 거다.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이 현대인의 민낯과 욕망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는 걸 알았다. sns와 인터넷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끝내는 우리네 일상에서 잃어버린 게 무엇인지 들려준다. 더불어 이대로 간다면 삶이 얼마나 피폐해질지 예측한다. 시대에 뒤떨어질까 봐 트렌드를 모르는 바보가 될까 두려운 마음에 좋아요를 누르고 일상이 상품이 되고 세상.<br>저자는 디지털 화면이 지배하는 세상, 현재를 ‘스크린 시대’라 말한다. 과연 정확하다. 스마트폰에 빠져 대화는 단절되고 오프라인은 사라지고 온라인만 유효한 세상이 되었으니까. 이 책을 읽기 전 시청한 다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가족이 거실에 모여 있지만 과거와 다르게 TV 채널에 두고 싸우지고 않고 오가는 대화, 아니 소리가 아예 없다. 각자의 스마트폰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보편적인 모습이라고 말하며 그게 무슨 문제냐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지 않은가. 비단 다큐 속 가족만 그럴까.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 그런 풍경을 떠올릴 것이다. 더 빠르게 더 강렬하게 변하는 세상에 공감하기 위해 내 속도와는 다르게 살아가고 있다. 모두 그러니까 나도 그래야 한다는 어떤 강박과 욕망의 끝에서 마주하는 감정은 허무가 아닐까. <br>시대와 환경이 변했고 저자의 말대로 집단보다는 개인의 가치가 더 중요해진 세상이기에 과거와 다르게 가족, 학교, 친구, 지역사회를 통한 영향력은 크지 않다. 장소와 시간에 대한 생각도 마찬가지다. 한 개인의 삶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가 처한 상황이나 환경의 역할은 중요했으나 현재는 그렇지 않다. 스트린 시대에는 더 중요한 것들, 더 급진적인 것들이 중심이 되어 과거 새대의 경험이나 역사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가 겪을 기후변화, 가상현실, 메타버스, AI가 중요하니까. 그렇다고 해도 같은 시간 선상에 존재하는 것을 의미하는 동시대성을 잊어버려서는 안 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br>해시태그, 유행, 뉴스 등이 끊임없이 쏟아지고 원자화되면서, 동시대성을 인식할 여유조차 없다. 정신적으로 빈곤한 사람에게 동시대성은 단지 동시성을 뜻하고, 이들은 동시에 일어나는 일들 사이에 아무런 연관이 없다고 느낀다. (59쪽)<br><br><br>​스크린 시대 이전에는 TV, 라디오, 신문 등 제안된 미디어에 의존했기에 직접 경험한 것들에 대한 신뢰가 컸지만 현재는 스크린 속의 콘텐츠에 동화되어 세계화된 성공이라는 개념으로 연결된다. 본격화된 세계화는 사막화, 기후변화, 인구 과잉, 자원 부족, 전염병 같은 피할 수 없는 위협으로 가득한 미래를 전망한다. 이는 창의성을 저해하는 동시에 현실에 대한 인식도 제안한다. 챗지피티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도 같은 맥락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풍부한 시각 정보를 소비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그것을 분석하고 해석하는 능력은 오히려 점차 퇴보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시각 언어를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해석하는 역량의 부족으로 이어지며, 시각 정보에 대한 비판적 사고 발달을 가로막는 결정적 걸림돌이 된다. (292쪽)​그렇다면 저자가 주장하는 우아함은 무엇일까. 저자의 설명에 의하면 우아한 사람은 자신만의 미적 취향을 키우면서 스스로 보기에 아름답지 않다고 판단되는 것들은 과감히 버린다. 이 말은 기준이 정해졌기에 어떠한 제안이 와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에게 맞는 것을 선택한다. 그러나 정신적으로 빈곤한 사람은 선택의 기준이 없기에 휘둘리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며 산다. 누가 좋다고 하면 좋은 거니까, 인터넷과 유튜브를 통한 가짜 뉴스의 진위 여부를 따지는 대신 그렇구나 믿게 된다. 그러니까 우아한 사람이란 자신만의 안목이 있고 분별력과 사고력을 갖춘 사람이라 볼 수 있다. ​『우아한 사고를 위한 철학』에서 주장하는 것은 안목을 키우는 일이라고 여긴다. 의심하고 비판하며 정보에 대해 맹신하지 말고 경험하며 자신이 느낌 감정을 이모지가 아닌 다양한 어휘로 주고받으며 상대와 소통하는 일. 어쩌면 가장 기본적인 생활 태도가 아닐는지. 자연스럽고 평온함으로 타인과의 관계를 유지하고 회복시키는 힘,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우아함이라 생각한다.​철학서라서 어려운 용어가 없는 건 아니지만 스크린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자신의 현재를 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는 책이다.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스마트폰와 거리두기, 더불어 나와 타자의 관계를 점검하고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선물할 것이다.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73/19/cover150/k45213710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8731934</link></image></item><item><author>자목련</author><category>당신과의 포옹</category><title>4월이라 좋다 </title><link>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193924</link><pubDate>Fri, 03 Apr 2026 10:2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193924</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02137865&TPaperId=1719392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764/92/coveroff/k202137865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42137883&TPaperId=1719392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04/12/coveroff/k842137883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52137509&TPaperId=1719392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83/21/coveroff/k852137509_2.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br>책을 샀다. 모두 소설이다. 소설이 좋아서, 새로운 소설을 찾았다. 새로운 소설이라니, 새로운 소설은 무엇인가. 읽지 않은 소설은 모두 새로운 소설이 아닐까. 아니다. 내게 온 소설이 새로운 소설이다. 그래서 예소연의 단편집은 반갑다. 『너의 나쁜 무리』엔 좋았던 「소란한 속삭임」이 수록되었다. 그러니까 위픽 시리즈로 출간되었던 소설이다. 정이현의 단편집을 읽으면서도 알게 되었다.<br>위픽 시리즈 한 권의 가격과 소설집 한 권의 가격 차이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시리즈에는 작가의 인터뷰가 있으니 차별점이 있다고 해야 할까. 위픽 시리즈의 소설이 같은 작가의 다른 소설집에 묶여 나온다는 걸 알았으니 읽고 싶었던 위픽 시리즈를 기억했다가 그 작가의 단편집이 나오면 살펴봐야겠다.<br><br><br><br><br>애거서 크리스티의 『장미와 주목』는 애거서 크리스티가 필명으로 발표한 작품 중 하나다. 추리소설과는 다른 분위기의 소설들이 좋았던 기억이 있다. 이번에 문동에서 개정판으로 나왔다. 기존에 읽지 않았기에 주문했다. 개인적으로 구판 디자인을 선호한다. 베로니크 오발데의 연작소설집 『한낮의 불운』은 2024 공쿠르 단편소설상 수상작이다. 이 작가의 소설을 읽었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 책을 알려주신 잠자냥의 평이 좋아서 궁금해서 구매했는데 땡스투는 다락방 님에게. 재미있을 것 같다. <br>전국 각지에서 꽃축제가 열리는 모양이다. 내가 사는 지역 근교에서도 다양한 꽃 축제가 열린다. 아파트에도 붉은 동백이 보인다. 사진은 친구가 보낸 동백이다. 오래된 동백, 어르신 동백이다. 올봄은 작년보다 얼마나 짧을까. 봄이 오래 지속되면 좋으련만. 아무튼 나는 4월이라 좋다. <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83/21/cover150/k852137509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8832113</link></image></item><item><author>자목련</author><category>목소리 </category><title>예술가가 아닌 인간 패티와의 만남  - [패티]</title><link>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180716</link><pubDate>Sun, 29 Mar 2026 10:4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18071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1964674&TPaperId=1718071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402/64/coveroff/8961964674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1964674&TPaperId=1718071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패티</a><br/>패티 스미스 지음, 정혜윤 옮김 / 아트북스 / 2026년 02월<br/></td></tr></table><br/>가만히 최초의 기억을 떠올린다. 이게 최초인가 갸우뚱하다. 강렬해서 뇌가 기억하는 것, 그것이 최초가 맞을 것 같다. 선명한 이미지는 아니고 공간과 분위기만 이어진다. 그러니 아무리 애를 써도 젊은 부모에 대한 기억은 잡히지 않는다. 낡은 사진도 정리해서 남은 게 없다. 나는 그 기억을 찾을 수 없고 닿을 수 없다. 아쉬움이 몰려드는 이유는 뮤지션이자 시인인 패티 스미스의 회고록 『패티』를 읽어서다. 자신의 생에 대한 기록, 나를 쓴다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정작 쓰려고 한다면 아무나 쓸 수 없다는 걸 알게 되니까.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패티 스미스의 이름을 들어봤지만 그의 음악이나 시에 대해 잘 모른다. 그런 점이 이 책을 읽기에 적당한 독자가 아닐 수도 있고 오히려 이 책을 가장 즐겁게 읽을 수 있는 독자가 된다. ​세상에서 가장 긴 책을 쓰리라고 생각했다. 하루하루의 모든 일을 낱낱이 기록할 거라고. 그렇게 모든 걸 적으면 누구나 거기에서 자신의 한 조각을 발견할 수 있을 거라고. 누군가는 나와 함께 머물 것이고, 또 누군가는 날개가 생겨 훨훨 날아갈 거라고. (11쪽)​자신이 기억하는 첫 감각은 움직임이라고 기억하는 아이라니, 어머니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심한 기관지 질환을 앓는 병약한 아이였지만 모든 걸 만지고 직접 느끼고 경험해야 하는 아이. 가난한 부모와 차례로 태어난 동생들과 보낸 유년 시절은 패티에게 가장 행복한 시절이 아니었을까. 철거를 앞둔 주택단지에서 풍요로움보다는 결핍이 가득한 시절. 이사를 다니느라 친구를 사귀고 우정을 나룰 충분한 시간이 없었던 패티에게 동생들은 가장 좋은 친구였던 것 같다. 병치레가 잦은 딸을 재우기 위해 자신의 귀한 시집을 건네주는 어머니. 어쩌면 패티의 예술적 감각과 특별함은 이런 어머니에게 받은 건지도 모른다. ​그러나 병이 나으면 패티는 동네 아이들의 대장 노릇을 하며 지냈다. 그런 패티에게 학교는 재미없는 곳이었다. 학교 가는 길에 숲속 연못가에서 악어거북에 빠져 점심시간이 다 될 때까지 그곳에 머무른 아이라니. 나는 빨간 머리 앤이 떠올랐다. 패티의 남다름은 또 있었다. 아이들과 선생님조차 생경했던 티베트에 관심을 갖는 6학년 아이라니, 정말 독특하지 않은가. 이런 어린 시절의 모습은 나중에 그의 행보에 영향을 미치는 게 당연하다. 패티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건 랭보의 『지옥에서 보낸 한철』이라고 생각한다. 열다섯 살의 소녀가 랭보를 만난 건 운명이었다.<br>자신의 고통을 시집 속에 봉인했을 때 그의 나이가 고작 열아홉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 나는 그의 고백이 고통에서 그를 해방시켰으리라 믿고 싶었고, 그를 따라 나 역시 모든 걸 송두리째 뒤흔들어놓는 영적 여정의 길을 걷겠다고 다짐했다. (111쪽)<br><br><br>​뭔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진짜 그것으로 향하는 건 어렵다. 그러나 패티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향해 나갔다. 대학교 3학년에 학교를 그만두고 뉴욕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로버트 메이플소프를 만나 글을 쓰고 새로운 예술의 세계로 나간다. 시는 노래 가사가 되고 산문시집의 출판, 드로잉 전시회도 하게 된다. 밥 딜런을 만나고, 시와 세 개의 코드와 소음이 합쳐진 공연. 그 모든 걸 상상하니, 분위기와 벅차오름이 내게로 전해진다. 그리고 프레드 소닉 스미스와의 만나 사랑에 빠진다. 차들이 마구 달려오는데 도로 한가운데서 왈츠를 추는 패티와 프레드. 결혼 후 패티는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아간다. ​나는 어린 아들이 잠들어 있는 이른 아침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때가 내 글쓰기 시작이었다. 몇 달이 지나자 일과는 더 자연스러워져 나는 내면의 시계에 맞춰 기분 좋게 잠에서 깼다. 새벽녘 집이 온통 잠의 고치에 싸인 가운데 잭슨의 숨소리가 제 아버지의  숨소리와 하모니를 이루었다. 나는 조용히 아래층으로 내려가 결코 집을 떠나지 않는 여행자의 모험을 계속 써내려갔다. (229쪽)​그러나 모든 삶이 그러하듯이 패티에게도 소중한 이들과의 이별이 다가온다. 함께 뮤지션으로 활동하고 예술적 교감은 나눈 이들의 죽음, 사랑하는 남편과의 영원한 작별까지. 패티는 도움을 받아 다시 새 삶을 시작하고 시를 통해 공적인 삶으로 뮤지션으로 공연을 이어간다. <br>회고록 『패티』를 통해 나는 뮤지션 패티가 아닌 인간 패티를 만났다. 뮤지션이자 예술가의 행보, 그녀와 함께 노래를 만들고 같은 곳을 향해 나간 동료와 지지자와의 만남과 시간에 대한 이야기는 그녀의 팬에게는 가장 좋은 선물이다. 다른 책을 통해 그녀의 공연, 노래, 시에 대해 알고 있겠지만 말이다. 잘 알아서 반갑고 즐거운 책이 아닐까. 하지만 나는 그런 부분이 아닌 어린 시절의 기억, 가족들과 보낸 충만한 느낌, 자신의 아이들과 보낸 그런 시간을 간직한 진솔하고 담담한 글, 인간 패티의 글을 만날 수 있어 좋았다. 나 같은 독자에게도 깊은 여운을 안겨주는 책이다.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402/64/cover150/8961964674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4026488</link></image></item><item><author>자목련</author><category>그러니까, 때때로 허물어지는 </category><title>알게 될까?</title><link>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174663</link><pubDate>Thu, 26 Mar 2026 12:0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174663</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42936840&TPaperId=1717466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2927/35/coveroff/k142936840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92030857&TPaperId=1717466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075/80/coveroff/k192030857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한 번씩 그런 순간과 마주한다. 이게 진짜 내 생일까 하는 의구심. 그러니까 모든 게 꿈은 아닐까 싶은 마음이 든다. 깨어나야 하는 게 깨지 않는 건 아닐까. 자각하지 못하는 어떤 삶을 살고 있는 건 아닌가 싶은 마음. 존재하는 나는 실제인가 하는 생각으로 이어질 때도 있다. 그래서 꿈을 자주 꾸는 내가 싫다. 어떤 꿈은 너무 잘 맞아서, 어떤 꿈은 너무 무서워서. 자꾸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는데 유디트 헤르만의 에세이 『말해지지 않은 것들에 대한 에세이』에 대해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서 그렇다. <br>이 책은 시학 강의록으로 쓰기와 말하기에 대한 책이라고 할 수도 있고 유디트 헤르만, 작가 자신에 대해 들려주는 이야기라 할 수도 있다. 하긴 뭐가 중요하겠는가. 읽는 동안 그에게 빠져들었고 나는 이제 유디트 헤르만를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으면 그만이다. 어쩌면 나는 이처럼 잡을 수 없는, 몽환적이고 몽환적인 글에 매료되는지도 모른다. 그의 단편집 『레티파크』에서 느꼈던 분위기, 그 소설에서 무얼 말하고 싶었는지 조금 알 것 같고 이 에세이를 통해 모호했던 것들이 선명하게 다가온다. 그의 가족, 친구, 지인, 정신분석가, 그가 좋아한 공간에서 보낸 시간, 그곳에서 보낸 여름에 대한 이야기. 혈연으로 이어진 가족과 운명처럼 만난 특별한 이들(선택가족)에 대한 기억과 그리움. 그 모든 것을 쓸 수 있고 말할 수 있다고 자신하지만 정작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때문에 우리는 쓰고자 노력하고 쓰고 싶어 하는지도 모른다. <br>모든 이야기에는 첫 문장이 있다. 책 속 이야기가 시작하는 문장이 아니라, 내 머릿속 이야기가 시작하는 첫 문장 말이다. 가끔은 어떤 이미지 또는 순간, 무언가를 향하거나 무언가에서 떨어지는 시선. 하지만 대개 그것은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말하는 문장이다. 나는 이 문장을 듣고, 불과 몇 초일 뿐이지만 그동안에 명확하고 몸에 바로 와 닿는 감각을 느낀다. (45쪽)<br>이 에세이는 이상하다. 왜냐하면 모두가 연결돼있고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그것은 유디트 헤르만의 소설이 되기 때문이다. 쓰고 보니 내 글은 멍청하다. 작가에게 연결, 영향, 소설은 당연한 수순이 아닌가. 정신분석가와 작가에게 그를 소개한 친구 ‘아다’와 세상을 떠난 ‘마르코’ 가 에세이를 지배한다고 느꼈다. 그들이 함께 보낸 여름은 자유롭고 명랑하고 선명하다. 여름의 그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을까. 모든 규율은 사라지고 그들만의 규칙으로 채워진 시간들. 아직 읽지 못한 『여름 별장, 그 후』이 더욱 궁금하다. 에세이를 읽기 전 읽었더라면 좋았겠지만 오히려 나는 이후에 읽는 게 더 좋을 것 같다. <br><br><br><br>정식 분석을 받는다고 하면 상담가와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떠오르지만 유디트 헤르만이 들려주는 건 그가 의자에 누워있고 박사는 그 뒤에 서 있는 게 전부다. 대화라기보다는 말이 이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레티파크』의 「꿈」의 모습이다. 에세이에서 상담을 끝낸 후 오랜만에 우연히 그를 만나 나눈 이야기. 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자신의 소설을 읽었냐고, 그러니까 단편 「꿈」에 대해서.  『레티파크』 속 정신병원에 입원한 아버지의 이야기 「시」도 마찬가지다. 모두 실제라는 것. 그녀의 아버지가 정신병원에 보낸 시간, 폐쇄 병동으로 아버지를 면회 가던 시절, 그리고 아버지에게 시를 읽어준 일. <br>아버지는 경제적으로는 무능력한 가장이었다. 그래서 어머니가 직장에 다녔고 그녀를 키운 건 할머니였다. 어머니가 벌어온 돈으로 담배, 책, 가구를 사고 그것들로 자신만의 공간을 만든 아버지. 그런 부모가 고독과 불안을 안겨줬을 건 분명하다. 평생 우울증을 앓던 아버지는 어머니를 위해 놀라운 일을 벌인다. 그것은 부모가 살던 거리의 모든 집이 팔렸고 사람들은 이사를 나가고 그녀의 부모가 마지막 세입자였을 때 힘들어하는 어머니를 위해 누군가 이사 온 것처럼 꾸민다. 그러니가 가짜 명패와 희미한 불빛, 발코니의 식물들. 어머니의 안정을 위한 아버지의 아이디어는 다정하고 살뜰하다.<br>쓴다는 건 결국 나를 꺼내는 일이며 나를 들여다보는 일이다. 누군가를 향한 애도이자 그리움, 거짓과 진실을 오가는 마음, 왜곡된 기억과 사진으로 남은 선명함 같은. 그게 소설이든 에세이든, 혹은 일기나 메모든 말이다. 그렇다면 내가 자꾸 ‘말하지 않은’으로 읽은 ‘말해지지 않은’ 것들은 무엇일까? 한 번도 꺼내지 않은 주제일까. 정확하지 않은 기억일까. 아니면 비밀일까. 말할까 말까 고민하다 마구잡이로 쏟아내는 말, 닫히고 감춰진 말들일지도. 잘 모르겠다. 아니, 영영 알지 못할지도. <br>어떤 문장은 현실에 너무 가깝다. 그것들은 현실에 속하며, 현실과 분리할 수 없다. 그것들에는 비밀이 없다. 그것들은 명백하고, 진실이며, 이 문장들에는 뒤흔들 것이 없다. 하나의 이야기 안으로 인도하는 문장들은 중간 세계에서 오고, 불투명하고, 해석 가능하고, 바꿀 수 있으며, 이는 세계를 바꿀 수 있다는 뜻이다. 나는 세계를, 나의 세계를 이야기를 통해 바꿀 수 있다. (82쪽)<br>여전히 모르겠고 나는 닿을 수 없다. 다만, 삶을 쓴다는 건 의미 있는 일이라는 사실. 무엇을 쓰는지 알지 못하더라도 쓰고 있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때로 무의미한 글이 나를 존재하게 만들고 어느 순간 의미 있게 다가오기도 하니까. 말해지지 않은 것들에 대해서도 열리게 되는 순간이 올 테니까. 물론 말해지지 않아도 상관없겠지만.<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075/80/cover150/k19203085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0758035</link></image></item><item><author>자목련</author><category>목소리 </category><title>가장 높은 곳에 살지만,   - [구름 사람들]</title><link>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167676</link><pubDate>Mon, 23 Mar 2026 12:1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16767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82136416&TPaperId=1716767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646/14/coveroff/k18213641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82136416&TPaperId=1716767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구름 사람들</a><br/>이유리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02월<br/></td></tr></table><br/><br>내가 바라는 것과 상대가 바라는 게 같다면 다툼과 갈등은 존재하지 않는다. 문제의 시작은 다르다는 것이다. 크고 대단한 걸 바라는 게 아닌데, 상대는 그것조차 허용하지 않는다. 상대와 내가 같은 지점에 있지 않다는 것. 상대는 나와 같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것. 설상가상 네가 감히, 어떻게라는 태도로 내려다보는 사람들. 특권의식을 내려놓을 수 없고, 그것에 방해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 그것은 존재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니까 이유리의 『구름 사람들』속 구름 위에서 사는 사람들은 절대 느낄 수 없고 가질 수 없는 기분이다. <br>구름 위와 땅으로 구별된 세상, 얼핏 구름 위의 삶이란 꿈속을 거니는 삶이라는 상상을 할지도 모른다. 하늘 위의 분홍빛 구름이라니, 얼마나 낭만적인가. 실체를 알기 전까지 우리는 무엇이든 상상할 수 있고 판단할 수 있다. 이유리의 소설을 읽기 전 내가 한 기대도 다르지 않았다. 막연하게 뭔가 아름다운 상상, 구름으로 변한 사람들의 이야기인가 싶었다. 내만 만난 이유리의 소설, 그가 그려낸 상상은 그러했으니까. 신기하고 애틋한 환상이 치유로 이어지는 이야기. 그러나 이유리의 『구름 사람들』는 작정하고 쓴 것 같았다. 환상으로의 도피가 아닌 진짜 아프고 불행한 사람들의 모습을 담아내려 했던 것 건 아닐까. 그게 삶의 민낯이라고. 현실이 그러하다고. <br>더 화려하고 멋진 세계를 욕망해 높게 쌓아 올린 주상복합의 공간이 아닌 인간이 만들어낸 오염물질로 만들어진 구름. 땅에서는 집을 구할 수 없어 구름 위로 올라온 사람들이 있다. 땅에 지어진 불법 건축물이 아니라 구름에 지어진 세계. 땅에 발을 딛고 살 수 없어서 오염물질로 가득한 구름 위에서 살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 사람들. 그러니까 가장 높은 곳에 가장 낮은 사람들이 산다. 생계를 위한 일자리는 땅에 있기에 땅으로 내려가 일하고 구름으로 올라와 살아간다. 그곳에서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고 키운다. 구름 사람들은 가까운 태양으로 인해 목덜미가 까맣고 누가 봐도 구름 사람들이라는 게 표가 난다. 그러니 땅에서 학교를 다니고 직장을 구해도 차별의 대상이 된다. <br>구름에서 나고 자라 스무 살이 된 주인공 ‘하늘’은 할아버지, 엄마, 아빠, 그리고 어린 동생과 살아간다.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게 땅에만 있기에 사다리를 통해 이동한다. 사다리에 지탱해 공중을 이동하는 삶, 그것은 구름 사람들의 생존 그 자체를 묘사한다. 자칫하면 죽을 수 있다는 공포와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 아픈 할아버지는 땅에 있는 병원에 다니지만 병세는 여전하다. 나아지는 대신 그냥 살아가는 것이다. 엄마도 아빠, 하늘이 열심히 일하지만 구름 사람이 아닌 땅 사람이 되는 건 불가능하다. 구름 사람들에게 어떤 미래를 꿈꾸는 건 아예 불가능한지도 모른다. 그래서 엄마는 일자리를 핑계로 주말마다 구름으로 올라왔다가 마침내 돌아오지 않는 선택을 한 건 아닐까.<br>삶 전체를 조망해보는 것은 불행의 지름길이다. 단지 지금 당장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만 중점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게 현명하다. (129쪽)<br>세상은 불행하고 나쁜 것으로만 가득차 있다. 구름도 땅도 마찬가지다. 세상 끝에서 끝까지 걸어가도 기쁨과는 마주칠 수 없을 거다. 단 한 조각도. (170쪽)<br><br><br><br>하늘이 지닌 생각은 당연한지도 모른다. 땅에 내려가 식당 아르바이트를 하고 동생을 구박하고 챙기면서 할아버지의 기침 소리를 들으며 잠드는 일. 그래도 동갑내기 원과 함께 구름에서 도망치고 싶은 소망쯤을 가지고 있다. 어쩔 수 없다고 여기며 살아가려 했지만 구름을 아예 없애버리려는 인공 강우제 살포설은 그냥 둘 수 없다. 생존이 걸린 문제니까. 아무런 대책도 없이 강우제를 살포하겠다는 정치인과 땅 사람들의 이기적인 태도가 구름 사람들을 결속시킨다. 하늘이 아빠를 중심으로 데모를 준비한다. 구름 사람들의 목소리를 내면 뭔가 달라질 거라는 믿음으로 말이다. 하지만 그 결과는 참혹하다. 시위를 하러 내려온 구름 사람들을 경찰이 둘러싸 정작 그들이 시위나 목소리는 땅 사람들에게 닿지 않는다. 시위가 실패로 끝나자 하늘이 아빠는 혼자 무서운 계획을 감행하고 하늘은 끔찍한 소식을 듣는다. <br>예고된 할아버지의 죽음은 그렇다 해도 아빠의 죽음은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가. 하늘을 위로하고 돌봐줄 어른도 보호자도 없이 어린 동생과 남은 하늘에게 더 이상 불행은 없을 것 같지만 삶이란 얼마나 잔인한가. 동생과 둘이 땅에서 살기로 결심한 하늘은 모아둔 돈으로 집을 구하려 애쓰지만 구름 사람이라는 이유로 방을 구할 수 없고 돈이 많이 버는 유튜버가 되겠다며 동생은 구름을 먹는 방송을 하다 목숨을 잃는다. 혼자 남은 하늘은 다큐멘터리 피디 노을의 제안을 수락한다. 구름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후원을 받은 돈으로 땅에서 살 집을 마련하고 이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살아간다. 그리고 마침내 강우제 살포가 현실이 된다. 땅 사람이 된 하늘은 자신의 고향이었던 곳을 찾는다. <br>어둠 속에서 발판은 조용하게 웅크려 있다. 마치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내가 당장이라도 올라탈 것을 안다는 듯이. 나는 가만히 발판을 쏘아본다. 살아온 날들이 지독하게 길고 재미없는 한편의 농담 같다고 생각하면서. 그러나 농담은 금방 끝이 나지만, 삶은 쉽게 끝나지 않는다. (330쪽)<br>구름이 아닌 땅에서 살아가는 하늘의 삶은 해피엔딩일까. 혼자 지내기에 넓은 집에 사는 하늘이 한방에서 다섯 식구가 서로의 등을 보며 잠들었던 기억을 잊을 수 있을까. 누군가 그래도 다행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어차피 강우제는 살포될 게 분명했고 구름 사람들은 그곳을 떠나야 했다고. 노을 피디가 아니더라도 하늘에게 접촉한 이가 있었을 거라고. 누군가의 불행을 전시하고 이용하는 모습은 잘 알고 있다고. ‘구름’이라는 공간의 설정만 다를 뿐 우리는 이런 구조에 익숙하다. 가난, 차별, 계급의 문제는 혼자만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걸. <br>우리가 마주할 미래는 정녕 디스토피아일까. 불운과 불행으로 가득할 삶의 끝은 존재할까. 더 나는 세상, 모두가 행복하다고 느낄 수는 없겠지만 괜찮은 세상을 희망하는 건 어리석은 일인가. 조정과 타협으로 갈등을 해결하는 건강한 사회는 어디에 있을까. 읽는 내내 우울하고 우울했던 기분이 사라지지 않는다.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646/14/cover150/k18213641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6461410</link></image></item><item><author>자목련</author><category>목소리 </category><title>도달할 수 없는 세계  - [뾰 - 백은선의 8월]</title><link>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143472</link><pubDate>Wed, 11 Mar 2026 11:5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14347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22030719&TPaperId=1714347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886/68/coveroff/k72203071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22030719&TPaperId=1714347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뾰 - 백은선의 8월</a><br/>백은선 지음 / 난다 / 2025년 08월<br/></td></tr></table><br/>시인의 글을 읽을 때마다 시인은 이런 단어를 어디서 찾는 것일까 놀라곤 한다. 그냥 보통의 말인데, 나도 알고 있는 말인데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골몰하고 골몰해서 도달한 단어라서 그럴까. 아니면 많이 쓰고 많이 읽어서 그럴까. 어쩌면 나는 끝내 알지 못할 것이다. 알고 싶고 알려고 애쓰더라도 말이다. ​백은선 ‘뾰’도 그렇지 않은가. 나는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고 이 책을 통해 기억으로 남을 ‘뾰’. 백은선의 시집을 읽지 않았기에 그가 닿으려는 시의 마음이나 시의 세계가 어떤 것인지 모른다. 『뾰』를 통해서 시가 그에게 어떤 것인지 어렴풋하게 알 것 같은 정도다. 모르면 어떻고 알면 어떤가. 책을 읽는 순간에는 백은선과 백은선은 원하지 않았으나 엄마의 재능을 닮은 아들을 일상을 그릴 수 있는 정도면 충분하다. 8월의 바다와 술에 취한 백은선의 취한 밤의 한 조각을 그러잡은 느낌이라고 할까. 지금은 사라진 밤과 충동적인 아름다움과 지독한 슬픔에 대해서. ​이 책 전 만난 백은선의 산문에서도 느꼈지만 엄마 백은선과 시인 백은선은 선명한 경계를 원하지만 그게 얼마나 어려운지 내가 다 속이 상한다. 아이와 살기 위한 수단으로 글을 쓰면서도 좋은 글을 써야 한다는 부담에 지치고 좋은 엄마가 되고 싶고 어떻게든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려 애쓰는 그는 분명 좋은 엄마다. 그 말을 해주고 싶다. 병에 가득 채워 밤마다 한 잔씩 따라 마실 수 있도록. ​시는 빛으로 이루어진 층계다.시는 어둠 속에서 펼쳐보는 일기장이다.시는 가장 처음 배운 외국말이다.시는 불속에서 녹아버리는 뼈손끝에서 터지는 한 발의 총성노래를 듣는 순간 떠오르는 과거의 풍경이다. ​시는 모든 것이다. 사물의 희미한 윤곽, 생물의 동력, 우주가 부풀어오르는 리듬이 바로 시다. (8월 22일 산문「빛의 층계 끝에 다다를 때」 중에서)<br><br><br><br>그가 쓴 시 길고 긴 시는 너무 버겁다. 그러나 시를 원하는 그의 뜨거운 갈망은 감격스럽다. 선선히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많은 것을 말하고 싶은 욕망, 깊고 진하게 뻗어가는 모양, 아니 사고할 수 없는 어떤 것, 아무도 모르게 존재하는 무궁무진한 것들을 채집하는 그의 노력이 보이는 것 같다. 그리하여 그것들을 함께 말하자고 그는 독자에게 손을 내민다. 잡아줄 이가 없을까 두려워하면서도. 그런 의미에서 이 에세이는 시집으로 묶이지 않은 하나의 시집이라 여겨도 좋겠다. <br>뾰뾰뾰​아무것도 발생하지 않는 섬과 바다사랑스러운 돌고래들​몇 년이나 헤매고 나서 찾았어입과 귀의 모든 것​위로는 젬병이라 차라리 잘라버리고 싶었던 것들​남은 평생 단 하나의 단어만 말할 수 있다면뭘 선택할래?언젠가 네가 물었고난 눈을 감은 채​응하고 답했지​응 (8월 18일 시 「뾰」, 일부)​어딘가 빛이 닿지 않는 숨겨진 응달에는 눈이 아직 남았다. 빛으로부터 달아나 자신만의 공간에 안착했을지도 모르나 서서히 사라질 것이다. 봄빛을 기다리고 그 너머의 여름을 생각할 여력이 없다. 그러나 이런 문장 앞에서 사나울 정도로 격렬한 무언가를 품는다. 시인은 여름이 끝났다고 생각한다지만 나는 그렇게 여기지 않는다. 아이가 자라는 동안 함께 할 그 모든 여름과 8월이 그에게 영원한 여름이 될 거라고. <br>찬란한 파동, 펼쳐지는 물의 계단, 층층이 밟고 오르면 만날 수 있는 새로운 풍경이 있을 것만 같고. 사계절이 한 사람의 삶과 같다면, 여름은 청춘 같다. 물론 청춘이란 말 안에 봄이 들어가 있기는 하지만. 나는 내 삶의 여름은 이미 끝났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만약 내게도 여름이 남아 있다면 그건 팔월의 끝, 마지막 빛 같은 것이 아닐까. (8월 31일 일기 「마지막 여름은 나와 함께」중에서)]]></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6886/68/cover150/k72203071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8866874</link></image></item><item><author>자목련</author><category>그러니까, 때때로 허물어지는 </category><title>미래를 사는 방식 </title><link>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141560</link><pubDate>Tue, 10 Mar 2026 11:2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141560</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62032721&TPaperId=1714156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499/93/coveroff/k862032721_2.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80003&TPaperId=1714156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0211/80/coveroff/8954680003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72136744&TPaperId=1714156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722/91/coveroff/k172136744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만약에’로 이어지는 말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미 결정된 어떤 일, 어떤 선택을 돌이킬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래도 만약에로 무언가를 바꿀 수 있다면 나는 어떤 선택 앞에 설까 생각하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둘 수 있는 맨 처음이 아닐까. 그럴 수 없기에 그것을 꿈꾸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떤 일은 수많은 고민과 갈등을 하더라도 단 하나의 선택으로 끝난다. 과거로 돌아가도 그 선택을 할 거라는 알기에, 그게 나라는 사람이라는 걸 알기에. ​‘윤리적 딜레마’란 주제로 김연수와 히라노 게이치로가 참여한 『근접한 세계』를 읽다 보면 누구나 어떤 선택을 떠올리게 된다. 어떤 이는 나만을 위한 선택, 어떤 이는 모두를 위한 선택을 생각할 것이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는 걸 알지만 선택은 책임이 따라오기에 언제나 어렵다. 공익을 위한 제보, 특별한 위치에 있는 사람의 비밀을 공개한 뒤 남은 인생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김연수의 「우리들의 실패」는 그런 삶을 조명한다. 소설은 화자인 기자가 ‘손동하’란 인물을 인터뷰하는 이야기다. ​손동하의 선택은 비상계엄 선포, 대통령 탄핵안 가결로 이어졌고 그는 한국을 떠나야 했다. 대의를 위한 그의 선택은 개인의 인생을 포기해야만 가능했다. 모두를 위한 선택이 개인에게도 이로운 일일까. 소설을 읽는 우리는 그의 선택을 지지한다. 선택 밖에 있기에, 선택 안의 그의 복잡한 내면을 모르면서 응원한다. 어쩌면 모르기에 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김연수는 어렵고 주제의 무게감을 내려놓고 한 사람의 선택과 과거의 이야기로 풀어간다. 손동하가 들려주는 그가 어린 시절 만난 소녀의 이야기는 지극히 개인적인 사소한 것처럼 보이지만 스스로 만들 수 있는 미래는 가능한가 묻는다. 그렇다면 그의 선택으로 다가올 미래는 어떤가. ​삶이란 불확실하지만 분명한 과거가 존재하기에 현재와 미래가 있는 것이다. 결국 미래를 사는 일은 오늘을 사는 일이며 무엇을 선택하든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는 것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그래서 히라노 게이치로의 「우리들의 실패」속 큐레이터 ‘가스미’는 고인이 된 사진작가의 작품 전시 결정을 내리기 전에 고민하고 고민한다. 전시할 작품이 아닌 공개되지 않은 사진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고인의 취향이라 할 수 없는 범죄인 사진이었다. 사진작가와 자신의 관계를 생각하면 그냥 넘어가야 할까. 자신이 알았다고 믿은 모습은 거짓이란 말인가.  ​사진작가의 아들은 반발한다. 아버지는 죽었고 그 사진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묵인할 수 있다 주장한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공론화할 수는 없지만 전시를 강행할 수 없었다. 세상은 모르고 나만 아는 일, 그러니 비밀로 묻고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누가 그를 비난할 것인가. 한편으로 이처럼 세상은 모르고 소수만 아는 엄청난 비밀은 얼마나 될까. 시간이 지나 드러나고 밝혀지는 일들 말이다. <br><br><br><br>왜 그때 그 상자를 열었을까. 다시 그 생각으로 돌아온다. 열지 않았다면 지금쯤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전시회 준비를 마무리하고 있었을 텐데. 그런 세계가 어딘가 있다면 지금이 세계의 나를 잃더라도 그곳에 가고 싶다. 하지만 그 세계에서 피해자가 있다는 걸 모른 채 전시회 성공을 기뻐하는 나도, 알고도 모르는 척하는 나도, 내가 되고 싶은 나는 아니다. (「결정적 순간」, 167~168쪽)<br>예술이라는 주제를 놓고 보면 큐레이터가 조언을 구하고 고민을 해야 하는 게 당연한 일처럼 보인다. 하지만 개인의 일이라면 어떨까. 가까운 이의 비밀, 그러니까 범죄에 관련된 비밀을 알았다면 할 수 있는 선택은 무엇일까. 내가 알았던 이가 전혀 다른 이로 존재하는 순간은 얼마나 두렵고 무서울까. 한 사람을 아는 일은 현재뿐이 아닐까. 함께 할 미래를 아는 일은 가능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한 번 더 살 수 있다면 모든 것은 가능할까. 아니 가능하게 만들 수 있을까. ​뒤에 이어지는 김연수와 히라노 게이치로의 대화는 소설이 어떻게 쓰여졌고 그 과정을 이해하기에 충분하고 대화를 읽고 나면 소설이 더 좋아진다. 두 작가가 소설가로 살아가는 마음가짐이나 태도를 가늠하게 된다고 할까. ​저는 그 다정함이 과거의 기록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 내가 다르지 않다’는 상상을 통해 그들의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주는 ‘미래적 시점’에서 오는 것이라 믿습니다. 운명론의 노예가 아닌 결단의 주체로써 독자에게 인물을 제시하는 것, 그것이 소설가로써 발휘할 수 있는 가장 큰 다정함일 것입니다. (김연수, 201쪽)​『근접한 세계』 는 ‘윤리적 딜레마’란 주제로 쓰였지만 김연수의 소설은 미래를 사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로 다가왔다. 최근 그가 가장 주목하는 주제가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소설집 『이토록 평범한 미래』가 떠올랐고 가장 최근에 읽은 『겨울 정원』 속 「조금 뒤의 세계」를 생각하면 그렇다. 김연수의 소설을 읽다 보면 지금의 삶을 가만히 생각한다. 나와 연결된 우리가 만드는 미래. 만약에는 불가능하지만  한 번 더 살 수 있다면 우리가 꿈꾸는 미래와 다가올 미래에 대한 진지한 사랑과 격려가 필요하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계속 지는 한이 있더라도 선택해야만 하는 건 이토록 평범한 미래라는 것을. 그리고 포기하지 않는 한 그 미래가 다가올 확률은 100퍼센트에 수렴한다는 것을. (「이토록 평범한 미래」, 34~35쪽)<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722/91/cover150/k17213674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7229138</link></image></item><item><author>자목련</author><category>당신과의 포옹</category><title>그러니까, 내가 기다린 건 </title><link>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137238</link><pubDate>Sun, 08 Mar 2026 10:5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137238</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P652939292&TPaperId=1713723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54/99/coveroff/p652939292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2736257&TPaperId=1713723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9979/19/coveroff/8952736257_2.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52137817&TPaperId=1713723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7587/94/coveroff/8954681158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0909807&TPaperId=1713723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750/99/coveroff/8960909807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br>아파트에 매화가 다 폈다는 카톡과 함께 사진을 받았다. 봄이니까 당연한 일인데 한참을 보았다. 만개한 매화 사진을 보면서 벚꽃도 금방일 듯이란 답을 보냈다. 그러니까, 이제는 봄이다. 봄! 봄! 봄! 눈 닿는 곳에 눈의 흔적이 여전하지만 봄이다. 이제 내게 날아올 꽃들은 얼마나 많을까. 반갑고 예뻐서 꽃 사진을 찍을 내 친구들과 가까운 이들. 나는 벌써 작약을 검색하니까. ​그러니까 나는 이런 봄을 기다린 것이다. 그리고 이런 책을 기다렸다. 김지연의 신간 『꿈 목욕』이다. 온라인 서점에서 가장 많이 검색하는 작가는 인기 있는 성해나와 위수정이 아닌 김지연, 예소연이다. 김지연의 짧은 소설과 어울리는 원두는 &lt;니카라과 산 살바도르 카투라&gt;다. 땡스투는 맛이 정직하다는 페넬로페 님께. 어쩜 이리 잘 어울리는 색인가. <br><br><br><br>김지연의 짧은 소설이 나왔다는 걸 안 건 알림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나는 김지연의 신간 소식을 알았고 구매했다. 음, 이걸 김지연 작가가 보면 좋겠다는 엉뚱한 생각. 그럴 일은 없겠지만. 같이 구매한 정해연의 『홍학의 자리』는 충동적이었다. 어쩌다 이 책이 검색되었는지 모르겠지만 &lt;유괴의 날&gt;을 쓴 작가라는 걸 알았고 드라마를 재밌게 봐서 구매했다. 이 소설도 재밌으면 좋겠다. <br>그러나 이 글에서 가장 중요한 간 김지연 작가다. 김지연 작가의 소설이 좋아서, 많은 이들이 읽으면 좋겠다. 점점 더 좋아지는 작가 중 하나다. 좋은, 좋아지는 이유를 설명하긴 어렵다. 그러니까 내가 그의 소설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 실은 황정은의 소설도 기다리고 있다. <br>좋아하는 걸 기다리는 일은 지루하지 않다. 기다리는 시간도 기쁨이다. 좋아하는 사람을 기다리고, 좋아하는 것이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좋아하는 작약이 피기를 기다리는 일. 그 대상이 된다면 더  좋을 것이다.<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750/99/cover150/896090980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7509983</link></image></item><item><author>자목련</author><category>당신과의 포옹</category><title>계절 선택은 봄 </title><link>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129223</link><pubDate>Wed, 04 Mar 2026 09:4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129223</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P652939292&TPaperId=1712922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54/99/coveroff/p652939292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82136416&TPaperId=1712922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646/14/coveroff/k182136416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72136744&TPaperId=1712922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722/91/coveroff/k172136744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화요일 같은 수요일이다. 입학식을 마친 이들에게는 두 번째 등교 일일 것이다. 처음이 아닌 두 번째는 안도일까. 쓸데없는 생각은 처음이었던 그 순간이 어렴풋이 떠올라서다. 설레면서도 두려워서 내심 괜찮은 척하며 서툰 미소를 연습했던 시절들. ​아무튼 3월은 벌써 네 번째 날이다. 사용하는 보일러에는 온수 온도를 조정하기 위한 계절 선택이 있다. 어젯밤에는 겨울이었던 계절을 봄으로 바꿨다. 그리고 주말에는 그런 봄이 내게로 왔다. 근처에 볼일이 있던 친구가 다녀갔고 우리는 아주 기쁜 눈 맞춤을 시작으로 귀한 시간을 보냈다. 짧아서 더 귀했다. 과일과 간식으로 가득했던 박스에는 노란 튤립과 분홍 장미가 있었다. 장미는 친구가 고른 것이고 튤립은 친구의 남편이 고른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친구는 장미를 좋아하고 그녀의 남편은 튤립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나는 둘 다 마냥 좋았다.<br><br><br><br>그리고 반가운 작가의 신간 소식은 또 얼마나 좋은가. 바로 김연수 작가다. 김연수와 히라노 게이치로의 소설 『근접한 세계』와 장편은 처음이라 궁금한 이유리 작가의 장편소설 『구름 사람들』은 3월의 책이다. 읽기의 속도는 회복되지 않고 쓰기는 거의 멈춤과 다르지 않지만 그래도 책은 이어진다. 느리고 멈춘 모양새지만 끊어지지 않고 연결된다는 느낌을 놓치고 싶지 않다. 알라딘에서 새로 나온 커피는 어떤 맛일까. 다음에 구매해야겠다. <br><br><br><br><br>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고 계절은 계절을 부르고 계절은 계절과 인사한다. 계절을 오가는 바람의 인사를 상상한다. 안녕, 잘 부탁해라는 부드럽고 다정한 속삭임을. <br><br><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722/91/cover150/k17213674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7229138</link></image></item><item><author>자목련</author><category>목소리 </category><title>이상한 만남과 예상치 못한 위안  - [별일]</title><link>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117543</link><pubDate>Fri, 27 Feb 2026 11:3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11754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0909572&TPaperId=1711754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536/34/coveroff/896090957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0909572&TPaperId=1711754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별일</a><br/>최은미 지음, 수하 그림 / 마음산책 / 2025년 10월<br/></td></tr></table><br/>최은미의 『별일』속 11편의 짧은 소설은 별일 아닌 이야기로 여길 수도 있고, 정말 별일이 다 있네로 기억할 수 있다. 몇 편은 재미있게 읽었고 몇 편은 자꾸만 마음에 남았고 몇 편은 만약에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면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보통의 일상을 담은 그러니까 평범한 이야기인데 왜 이리 짠하고 마음이 무거운지 모르겠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도 될 에피소드들이 아파서 울컥한다. 변화무쌍한 나의 호르몬이 문제인가. 이 모든 걸 나이 탓으로 돌려야 할까. <br>사람 사는 일이 다 거기서 거기라고 하지만 둘러보면 다들 웃을 일만 가득한 것 같지 않은데 나와 가까운 이들에게만 안 좋은 일이 생기고 걱정이 늘어나는 것 같아 마음이 쓰인다. 그냥 별일 아닐 거란 말로 위로하기엔 우리는 서로의 사정을 너무 잘 알안다. 속상함을 삼키고 일부러 표정을 숨기는 지도 모른다. 그래서 처음 만난 사람에게 아무렇지 않게 어떤 이야기를 꺼내게 된다. 일면식 없는 타인, 이웃도 친구도 아닌 누군가에게. 『별일』 은 그런 만남의 이야기라 봐도 괜찮다. <br>표제작 「별일」을 보면 화자 중희는 창문으로 들어오는 담배 냄새의 범인을 찾으러 나섰다. 담배 냄새를 따라 도착한 비밀스러운 공간에서 담배를 피우는 주민 여자를 만난다. 같은 아파트에 살지만 처음 보는 여자였는데 어쩌다 보니 담배 냄새에서 시작해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나누게 되고 서로의 이름까지 알게 된다. 범인을 못 잡고 돌아오면서 그곳을 찾을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곳에서 만난 여자의 이름과 대화는 오래 기억하지 않을까. 예상치 못한 만남에서 받은 이상한 위안을 말이다. 공동주택에서 담배 냄새는 별일이면서도 별일이 아니다. 누군가에게 고통스러운 냄새가 누군가에게는 일상일 테니. <br>현금인출기에서 남의 만두를 훔친  「이상한 이야기」속 나와 만두 주인의 만남도 그렇다. 주인이 오기를 30분간 기다렸다가 만두 봉지를 집어 들었을 때 주인이 등장하다니. 타이밍이 기묘하다. 돌려줘야 하지만 나는 그 만두를 고집하고 그곳에서 나온다. 그 만두의 맛을 정말 잘 알기에, 그 만두가게에서 보낸 시간과 추억이 있어서. 만두가게의 모든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까지 든다. 그건 내 사정이고 만두는 내 것이 아닌데. 만두 주인도 만두를 포기할 생각이 없다. 나를 계속 따라온다. 마치 내 모든 걸 꿰뚫어 보는 것처럼. <br><br><br><br>빨리 집으로 가야 하는데 그토록 기다렸던 헤어진 연인에게 연락이 오고 답장을 하느라 시간은 지체된다. 휴대폰이 고장 났다고 부탁을 하는 내용이었다. 뭐 이런 일이 다 있을까. 왜 이런 타이밍에 연락이 오고 만두 주인은 돌아가지 않는 걸까. 심지어 가까운 사람한테 연락 온 거 아니냐고, 그거 피싱이라고 말한다. 이상하고 낯선 친절을 선뜻 믿을 수 있을까. 무서운 세상이라서 이런 일은 별일도 아닌가. <br>그러가 하면 「모르는 이야기」속의 만남은 타인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이어진 필요한 만남이다. 내 집을 마련한 기쁨으로 화장실을 공사를 맡긴 인테리어 시공업자와의 만남은 기대로 가득했다. 얼마나 신중하게 고르고 선택한 업체인데 사장에게 사기를 당했다. 고소를 진행하고 일상을 이어갈 수도 있었지만 주인공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아내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남편인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사장의 형이 피해액을 돌려주는 조건으로 고소를 취하하라고 했을 때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자신과 통화하고 집으로 방문했던 과정이 진심이라고 여겼는데 그럴 수 있단 말인가. 그 일을 계기로 아내와 헤어지고 시간이 지나도 그 사장 얼굴을 잊을 수 없다. 이런 일은 얼마나 허다할까. <br>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시작된 모임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야기 모임 1」과 「이야기 모임 2」의 만남은 신선하다. 뭔가를 얘기하고 싶어서 ‘못 배길 때’ 소집되는 모임이라니 흥미진진하면서도 가족, 가까운 친구나 이웃과는 나누지 못하고 다른 상대를 찾아야 한다는 게 씁쓸하다. 이 짧은 소설을 읽으면서 한 번 만나고 헤어진다는 ‘티슈 친구’가 생각났다. 처음 본 타인과 짧은 이야기를 나누고 이름과 연락처를 교환하지 않는 관계. 정말 별일인데 별일이 아니라는. <br>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상관없다. 들으러만 가서는 안 된다. 각자 준비해온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는 반드시 같이 밥을 먹고 헤어진다. 닉네임은 색깔 이름 하나로 정한다. 복잡할 것은 없다. 뭔가를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들이 그때그때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무언가를 먹는 것뿐이다. (「이야기 모임 1」, 91쪽)<br>세상에나 이런 일도 있어 하며 호들갑을 떨 수 있는 상대는 얼마나 될까. 그러다가 나는 그런 상대인가 싶다. 통화보다는 카톡이나 문자에 익숙한 시대. 긴 영상보다는 짧은 몇 초의 영상에 빠져드는 이런 세상에 ‘이야기 모임 ’하나쯤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건 나만이 아닐 것이다. <br>작가 최은미는 살다 보면 아무나 붙잡고 속상한 사정을 이야기하고 위로받고 싶은 마음에 대해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별일 아닌 일도 별일이 되어 서로의 마음에 내려앉아 살아있기를 바라는. 별일 아니니 괜찮다고 신경 쓰지 말고 툭툭 털어버리라 말해주는 누군가가 필요한 이들에게.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536/34/cover150/896090957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5363415</link></image></item><item><author>자목련</author><category>그러니까, 때때로 허물어지는 </category><title>2월이 가기 전에 </title><link>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110705</link><pubDate>Tue, 24 Feb 2026 10:5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110705</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4273X&TPaperId=1711070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9524/24/coveroff/895464273x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52135311&TPaperId=1711070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495/90/coveroff/k252135311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내가 갖지 못한 어떤 것, 그 능력을 질투한다. 질투는 나의 힘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를 향한 마음을 버리지 않는 건 꽤 괜찮다. 모방이라는 노력이라는 방향으로 뻗어가거나 수집으로 남기 때문이다. 2월을 기억하고 말하고 쓴 김상혁의 에세이 『그냥 못 넘겼어요』를 읽으면서 든 생각이다. 그의 시집을 읽었다는 게 참 다행이구나 싶었다. 겨우 한 권하지만 말이다. 나만 아는 문장, 나만 쓸 수 있는 무언가를 갈망하던 시절이 있었다. 적극적으로 배우거나 강의를 찾는 대신 그저 읽기에 최선을 다했던 때였다. 그때의 인연은 나에게 시집을 많이 읽으라고 했다. 시집을 모으고 읽으려고 하던 노력도 다 그 인연 덕이다. <br>모든 걸 새롭게 시작할 다짐과 수많은 용기로 채워진 1월과 왠지 모를 설렘으로 기대하는 3월 사이에서 날도 적어 움츠러든 2월이 진짜 나라고 말하는 김상혁 시인의 글은 어떤 꾸밈없이 솔직하다. 부모의 이혼 당시 엄마의 뱃속에 있었던 시인, 아버지는 곧 재혼했으니 아버지와의 시간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조금 천천히 알아도 좋았을 슬픔은 존재와 동시에 느꼈을지도 모른다. 손에 꼽을 정도의 만남과 함께 한 시간은 그에게 어떤 감각이었을까. 때문에 그는 아들에게 그 사랑을 온전히 전하고 싶었을지도. 어쩌면 이건 나의 오지랖이겠다. <br>일하는 엄마, 손주를 향한 끔찍한 사랑이나 다정함보다는 자신들의 분노와 고통을 돌본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 안에서 자라는 그가 외로움을 친구로 두는 일은 가장 쉽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우울했던 유년 시절 할아버지 방에서 보았던 주말의 영화는 그를 안아주고 달래주었다. 늦은 밤 TV에서 나오는 알 수 없는 영화를 보던 그 소년을 상상한다. 우리는 어느 시절 같은 영화를 보고 있었을지도 모르니까. 그래서 나는 그의 플레이리스트에 겹치는 곡이 있는 독자, 여기 있다고 외친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 내가 자주 듣는 노래가 두 곡이나 있다고 말이다. 시인의 플레이리스트가 궁금한가? 궁금하면 『그냥 못 넘겼어요』를 읽어보길.<br>이렇듯 책이란 참 이상하다. 김상혁이란 시인에 대해 나는 아는 게 없었는데 이제 조금 안다고 할 수 있다. 책에 썼고 그걸 읽었으니 당연한 거 아니냐고 하겠지만. 작가가 책에 쓴 모든 게 나에게 흡수되거나 하는 건 아니니까. 재밌게 읽었다는 기억으로 남거나 심지어 읽은 기억도 잊게 되니까. 물론 이 책에 대한 기억도 그런 수순을 밟을지도 모르지만 기록으로 남기니 다를 것이다. 그가 즐겨드는 노래 가운데 내가 좋아하는 노래가 있다는 것, 그가 자랑스럽게 여기지 않은 등단작을 얄궂게 검색하고 말았다. 그리고 이런 글이 좋아서 가끔씩 저녁이 되면 생각날지도 모른다. <br><br><br><br>저녁이 우리집 대문을 열고 나를 찾으로 온다. 서서히 다가오는 저녁은 짐짓 엄격해 보이는 표정이다. 어서 집으로 돌아가서 밥 먹고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더 놀지 못해 좀 슬프다. 그렇지만 나도 종일 노느라 지쳤기 때문에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며, 실은 매일 돌아가자고 이야기해주는 저녁이 고맙다. 집에 가자고 강권하는 저녁의 얼굴을 쳐다보고, 그 진지하고도 차가운 사랑의 목소리를 들으며, 놀이에 미련이 남아 공터 쪽을 연신 돌아보며 집으로 돌아가는 순간이 매일같이 찾아온다는 사실이 고맙다. (95~96쪽)<br>그러니까 ‘저녁’은 김상혁 시인의 고유한 정서 같다고 할까. 그의 시집 『다만 이야기가 남았네』에서도 만난 저녁이니까. 어떤 슬픔과 안도가 동시에 전해지는 저녁. 어떤 저녁은 그를 위로하고 어떤 저녁은 그를 더 외롭게 만들고 어떤 저녁은 그를 포근히 안아주었을 것이다. <br>문득 나의 저녁도 떠올려본다. 빨리 밤이 오기를 바랐기에 저녁은 존재하지 않았던 날들. 나는 왜 그토록 밤을 기다렸던 것일까. 어둡고 짙은 밤의 깊이에 숨을 수 있어서 그랬다. 그 시절의 나는 저녁의 애틋함 따위는 알지 못했다. 오직 밤 만이 계속되기를. 그리하여 끝내 아침이 오지 않기를 바랐다. 그런 저녁이 있었기에 이런 저녁의 아름다움을 흠모할 수 있다.<br>저녁은 헤어지기 좋은 시간이다. 지치기도 쉬운 시간이구. 하지만 제 손으로 머리칼을 털며 고갤 숙이고 있는 장면만으로 떠오르게 된다. 이런 말도 가능하다. 내가 매일 현관으로 쓰러지며 쏟은 별과 모래를 아침마다 네가 예쁘게 비질한다고. (「가정」의 일부) <br>『그냥 못 넘겼어요』를 읽기 전 내가 기대했던 2월은 풍성한 꽃다발과 서툰 웃음으로 채워진 사진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2월은 각자의 사정과 기억으로 채워진다. 여느 달이 그렇듯 말이다. 누군가의 2월은 쓸쓸하고 누군가의 2월은 분주하고 누군가의 2월은 끝나지 않고 이어진다. 졸업과 시작으로 이어지던 2월은 없다. 내가 기다렸던 봄 방학을 지금의 아이들은 알지 못한다. 계절은 조금씩 다르게 흐르고 열두 달의 의미도 새롭게 변화한다.<br>시 쓰는 강의에서 만난 천재 수강생이 수업에 나오지 않아 연락했더니 자신의 이름도 정확하게 모르고 있어 씁쓸하지만. 어렸던 자기를 질투하는 귀여운 아들과 아이가 태어나면서 그냥 개가 된 개와 살아가는 2월의 이야기는 흐뭇한 미소로 끝난다. 마냥 즐겁고 행복해서가 아니라 그 모든 일상이 소중한 풍경이라서. 정말 시의적절하다고 할까. 3월만 기다리지 말고 남은 2월을 사랑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얹는다. 2월이 있어야 3월이 오고 춥고 변덕스러운 2월이 있기에 그보다 포근한 3월은 폼 나기도 하니까. <br><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495/90/cover150/k25213531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4959071</link></image></item><item><author>자목련</author><category>당신과의 포옹</category><title>쟁여두는 </title><link>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093550</link><pubDate>Sun, 15 Feb 2026 11:3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093550</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P732939796&TPaperId=1709355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358/2/coveroff/p732939796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P912938528&TPaperId=1709355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5589/78/coveroff/p932938528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P722938427&TPaperId=1709355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5589/52/coveroff/p872938427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32135581&TPaperId=1709355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417/94/coveroff/k932135581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연휴가 시작되었다. 특별한 일정이 있는 건 아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말이다. 설날 아침에 오빠네 집에 모여 예배를 드리고 간단한 식사를 하는 게 전부다. 작년 11월 올케언니가 골절 수술을 받고 회복 중이라 걱정이 많지만 얼굴을 뵈니 마음이 놓였다. 겨울이라서 얼마나 다행인가. 평소처럼 그렇게 명절을 보내면 될 것 같다.<br>친구와 가까운 이에게 짧은 인사를 전하고 통화를 했다.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가 반갑고 정겨웠다. 뭐가 그리 바쁘고 대단한 일을 하는지 목소리를 나누는 게 어렵다. 그래서 더 귀하게 다가온다. 무고하고 무탈하길 바라지만 어떤 일들은 일어나고 어떤 일상은 계속된다. 그럼에도 무언가에 휩쓸리지 않고 단단하게 지내기를 바라는 마음을 보냈다. <br>이번 설에는 쿠키 선물이 많다. 커피와 곁들이면 좋을 다양한 수제 쿠키다. 냉동실에 보관했다가 하나씩 꺼내 먹으면 될 것이다. 연휴에 뭔가 읽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아마도 먹다가 보다가 자다가 먹다가를 반복할 게 뻔하다. 그래도 알라딘이 적립금으로 유혹해서 제일 좋아하는 커피를 샀다. 주문하고 나니 알라딘이 커피 할인 쿠폰을 줬다. 타이밍이 아쉽다. 새로운 커피를 주문할지도 모르겠다. 책도 한 권 샀다. 『나만 아는 단어』란 제목에 끌려서. 정용준, 김화진의 소설을 읽었기에 그들이 선택한 주머니, 유령, 산책이란 단어가 내게 아는 척을 하는 것 같아서. <br><br><br><br>좋아하는 커피를 쟁여둔다. 곁에 두기만 해도 향이 좋아서 자꾸만 생각난다. 좋아하는 것들을 쟁여두면 나쁜 것들이 사라질 것 같다. 무엇이 나쁜지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말이다. 그런 기꺼운 마음을 쟁여두면 좋겠다. 쟁여두는 마음, 쟁여두는 안부, 쟁여두는 안녕. <br>기척도 없이 미세먼지가 찾아오고 봄이 가까이 있다는 걸 느낀다. 옷차림의 무게는 가벼워지고 잠깐이라도 집 밖을 나갈 때면 마스크를 챙긴다. 누군가 꽃이 피는 소리를 알려줄 것이다. 여기저기서 그런 소식이 날아들 순간이 곧 들이닥치겠다. <br><br><br><br><br><br><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417/94/cover150/k93213558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4179402</link></image></item><item><author>자목련</author><category>목소리 </category><title>조금만 더 주변을 둘러보고 손을 내밀어야  -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title><link>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091622</link><pubDate>Sat, 14 Feb 2026 13:0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09162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4074&TPaperId=1709162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653/50/coveroff/893204407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4074&TPaperId=1709162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a><br/>공현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06월<br/></td></tr></table><br/><br>사고나 위험한 일을 경험하게 된 이후의 삶은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될 대로 되라는 식, 다른 하나는 감사와 충만으로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이다. 작년 2월 아파트에 화재가 났었다. 3층 아래의 집에서 발생한 것으로 나는 소방관의 안내에 따라 대피했다. 감사하게 인명사고나 피해는 없었다. 그날의 경험과 기억은 한동안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고 이후의 사고도 변화했다. 모든 게 허무하고 부질없다는 것, 그리하여 더 내가 원하는 쪽으로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굳건해졌다. 이제는 괜찮아졌다고 여겼지만 2월이 되니 2월이 빨리 지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공현진의 소설집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처럼 세상은 멸망할 것이고 나는 언제든 죽을 수 있다. 그러니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할 것이다. 어쩌면 공현진은 소설을 통해 그런 마음을 나누고 연대하며 살아가기를 바랐을지도 모른다. 알고 있지만 그런 삶이 얼마나 어려운지도 안다. <br>표제작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 속 수영 강습에서 만난 ‘주호’와 ‘희주’는 각자의 계기로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교사였던 희주는 학폭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지구가 아프고 언젠가 물에 잠길 거라는 사실이다. 다른 이들에게 보편적인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희주의 사고방식은 옛 연인이나 그녀의 엄마에게 이상한 것으로 여겨졌다. 학교를 그만두고 환경을 생각하는 삶을 살기 시작한다. 물론 쉽지 않았다. 버리는 대신 필요해서 사들이는 물건이 훨씬 많았다. 우연히 수영 강습을 받게 되면서도 그랬다. <br>주호는 직장에서 동료가 죽었는데도 공장이 돌아가고 아무렇지 않게 이어진다는 게 이상했다. 그래서 기계를 껐다. 뭔가 달라져야 하는 데 당연하다고 생각했으니까. 동료와 상사의 반응은 달랐다. 처음엔 주호를 이해하는 것처럼 대했지만 회사를 쉬게 만들었다. 예전의 주호라면 그들과 같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다. 무엇이 주호를 그렇게 만들었는지 모른다. 어떻게 보면 주호와 희주는 별난 사람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주호와 희주가 특별한 사람도 아니고 행동하는 사람도 아니었으니까. 그렇다고 우리가 그들은 책망하고 비난할 권리가 있을까. <br>「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 은 좋은 단편이다.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 될 대로 되란 식의 흐름이 아닌 그 멸망이 언제일지 모르니 멸망이 온다고 해도 그전까지 함께 잘 살아보자는 의미를 담았다. 혼자서만 살아가고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니까. 더불어 같이 살아가는 삶을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br>희주는 반짝이던 도시가, 사람들이, 색색의 거리들이 물에 잠긴 모습을 상상했다. 무서운 것이 아니라 이상하게 위안이 됐다. 같이 떠내려가는 것, 같이 잠기고 같이 사라지는 것. 그런 것도 사랑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 55쪽)<br>「녹」은 결혼이주여성과 시간강사인 화자의 이야기로 제목의 ‘녹’은 이주여성의 이름이다. 화자는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수업에서 녹을 만났다. 둘은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 같은 처지지만 녹이 화자의 아이를 돌봐주면서 둘은 수직관계가 된다. 녹을 배려했고 녹의 아이를 데려오는 일이 불편함을 표현했다. 그녀의 입장에서는 당연했다. 그러다 비 오는 날 녹의 아이가 사고로 죽었다. 엄마가 있은 곳으로 오는 길이었다. 녹은 화자가 강의하는 학교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주임교수는 화자에게 어떻게 해야 하지 않겠냐고 말한다. 주임교수의 말은 악의가 없는 교양 있는 친절한 말이었다. 화자를 해촉하겠다는 뜻은 아닌 것처럼. <br>다른 의미를 담지 않는, 그래서 훼손되지 않는 말을 할 수 있는 것 역시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자격은 아니라는 걸 알았다. 그것이야말로 특권이었다. 현재에도 미래에도, 말이 끝나고 난 후에도 결코 부서지지 않는 말을 할 수 있는 특권. (「녹」, 13쪽)<br>주임교수와 화자의 관계는 녹과 화자의 관계와 같았다. 화자는 녹이 아이를 데려오는 걸 환대해야 했을까. 잘못은 화자에게만 있을까. 돌봄에 대한 사회적 시스템이 구축되었다면 녹도 화자도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고 사고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화자의 아이는 녹을 찾고 화자 역시 녹이 필요하지만 그건 가능할까. 1인 시위를 하던 녹이 사라진 후의 이야기가 궁금하지만 그려지지 않는다.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문제를 고발하는 역할에서만 그쳐 아쉽다. 물론 소설에서 대안이나 공동체를 그려낸다고 해도 현실화되기는 어렵겠지만.<br><br><br><br>『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속 인물은 주류가 아닌 비주류, 중심이 아닌 변두리의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그들은 중심으로 향하기를 간절히 열망하거나 안달 내지 않는다. 그게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아니, 그들은 체념의 상태일지도  모르겠다. 「이름을 짓기 직전」속 인물도 마찬가지다. 소설에서 화자와 ‘석주’는 친구 사이다. 화자는 여행사에서 전화 상담을 한다. 비정규직이다. 정규직의 노동 운동에 큰 관심이 없다. 석주는 일을 하지 않고 밴드에서 보컬 활동을 한다. 석주의 아버지는 석주가 남자답지 않고 군대를 가지 않고 채식을 한다고 때리지만 돈을 준다. 석주는 밴드에서 잘린 후 스스로 밴드를 결성하는데 거기서도 잘렸다. 그래서 둘만의 밴드를 결성하고 이름을 짓는 중이다. <br>그저 음악을 함께 하고 싶고 그 시간을 누리고 싶은 것뿐이라고 석주는 말했다. 진심도 자격이 있어야 가질 수 있어? 내가 정말 많은 걸 바라는 거야? 나는 석주의 넋두리를 들었다. (「이름을 짓기 직전」, 131쪽)<br>석주에게 그냥 그럴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래도 충분하다고. 어쩌면 공현진이 이 소설집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이 아닐까. 그대로 충분하다고 말이다. 그러면서도 사회적 시선이나 제도의 개선을 필요하다는걸. 석주처럼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이들의 이야기는 「돌아가는 마음」과 「권능」에서도 만날 수 있다. 「돌아가는 마음」속 언니는 가출을 했지만 주일마다 예배를 드리지만 목사인 아버지가 축도를 할 때 사라진다. 그런 언니가 5년 만에 돌아와 결혼을 하겠다고 통보한다. 엄마는 언니의 마음을 헤아리는 대신 상대가 믿는 사람인지 묻는다. 가출 전 모두의 자랑이었던 언니에게 분명 무슨 일이 있었지만 소설에서는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그 일에 대해 부모가 언니를 위로하거나 이해하지 않았다는 건 알 수 있다. 어렵게 얻는 딸을 잃은 이모가 조카인 화자의 모든 걸 간섭하는 「권능」에서도 비정상적인 신앙에 대해 보여준다. 가족 간의 관계에서 신앙이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는 듯이. <br>현실적 어려움은 신앙이 아닌 상대의 어려움을 헤아리는 마음에서 나온다. 「선자 씨의 기적의 공부법」의 선자 씨처럼 말이다. ‘진아’와 ‘선자 씨’를 요양 보호사 자격증 준비반에서 만났다. 진아는 아픈 아버지를 돌볼 방법으로 선자 씨는 남편을 부양할 목적으로 공부하며 서로를 돕는다. 수업을 들으면서 선자 씨의 질문을 진아는 빠짐없이 알려준다. 진아가 수도계량기 동파로 새벽에 전화를 걸자 선자 씨는 트럭을 몰고 달려온다. 그런 선자 씨의 합격을 진아는 진심으로 축하한다. 「이름을 짓기 직전」과 「선자 씨의 기적의 공부법」속 인물의 우정이 아름답고 따뜻하다. <br>타인에 대한 이해와 관심은 사라지고 오직 나만이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커지는 세상이다. 인간이 아닌 AI와 소통하는 시대를 쫓으며 살아간다. 먼 미래 내가 존재하지 않는 세상의 풍경은 어떨까. 적막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인류의 마지막 순간에 유일한 존재로 남은 인간 ‘하나’의 이야기를 그린 「모두가 사라진 이후에─3인칭의 세계」 속 이런 문장은 짙은 여운을 남긴다. <br>거리에 멈춰 서서 침묵과 소란이 오가는 시간을 지켜보았다. 이 마지막 풍경을 보기 위해 자신이 남아 있었다. 빠르게 시간이 가고 있었다. 멈추지 않고 시간이 가고 있었다. 사람들이 죽은 이후의 세상이 얼마나 조용하고 평화롭고 안전하고 고독하고 아름답고 무서운지. 소란스럽고 외롭고 소름 끼치고 사랑스러운지. 누군가는 보았으면 좋겠다는 소망 때문에 자신이 남았다는 것을 하나는 알아챘다. 인간들이 사라진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하나는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모두가 사라진 이후에─3인칭의 세계」, 274쪽)<br>작가는 살아가는 삶이 고단하여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오고 어차피 행복한 결말이 보장되지 않은 삶이라는 걸 알지만 그럼에도 삶은 살아볼 만하다고 말한다. 그러니 조금만 더 주변을 둘러보고 용기 내어 손을 내밀어야 한다고 말이다.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6653/50/cover150/893204407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6535077</link></image></item><item><author>자목련</author><category>목소리 </category><title>숨겨둔 말들이 발화하기를  - [우리 사이에 금지된 말들]</title><link>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081062</link><pubDate>Mon, 09 Feb 2026 11:1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08106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92034889&TPaperId=1708106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008/41/coveroff/k19203488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92034889&TPaperId=1708106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우리 사이에 금지된 말들</a><br/>예소연.전지영.한정현 지음 / 다람 / 2025년 12월<br/></td></tr></table><br/>칭찬의 말은 진위 여부를 따질 필요도 없이 긍정으로 이어질 때가 많다. 잘하지 못한 일에는 잘할 수 있다는 격려가 담겼고 잘했을 경우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 때문이다. 부정의 말은 실낱같은 희망의 싹을 짓밟는다. 환경이나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해도 그렇다. 어렸을 때 그런 말을 들은 기억이 있다. 상급 학교의 진학을 선택할 때였다. 근거리의 학교에 진학하기를 바랐던 어른들의 말을 솔직하지 못했다. 그 시절 가장 혹독한 말은 모두 할머니 입에서 나왔는데 이를테면 이런 것이었다. 여자가, 딸이 무슨... <br>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기를 썼다.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원하는 곳으로 방향을 잡았다. 형편이 어려우니 엄마를 도와주면 어떻겠냐, 혹은 미안하지만 이번엔 네가 양보를 하면 좋겠다는 말을 했더라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그랬더라도 고집을 피웠을 것이다. 모든 행동이 엄마에게 얼마나 큰 상처로 남을지 알면서도 말이다. 『우리 사이에 금지된 말들』 을 읽으면서 왜 그 시절이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할머니의 권력에 엄마는 말을 아꼈다. 해야 할 말도 하지 못했고 하고 싶은 말도 삼켰다. 엄마가 내게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일까. 서러울 정도로 알고 싶고 듣고 싶다. <br>『우리 사이에 금지된 말들』에 수록된 세 편은 숨기고 감춰진 말들, 그러니까 해야 하는데 무언의 압력이나 사회적 통념이란 이유로 여성의 일상 속에서 하지 못한 말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전지영의 「나쁜 가슴」은 가장 현실적이고 보편적이라 우리가 그동안 그것이 얼마나 나쁜 말이고 해서는 안 되는 말인지 묵인하고 있었다는 걸 깨닫게 한다.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는 순간, 여성은 사라지고 모성만 강조된다. 모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산후조리원에서 아이에게 모유를 주고자 하는 마음은 간절하다. 하지만 그게 어렵고 안 되는 산모는 많다. 화자 ‘유진’은 엄마라 불리는 것도 익숙하지 않는데 모유 수유의 어려움마저 엄마의 탓으로 돌린다. 산후조리원장의 입장에서는 그게 당연하다. <br>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엄마라는 단어는 산모들의 기분을 묘하게 우울하게 만들었다. 우리 중 누구도 제 이름이 아닌, 엄마로 통칭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으니까. (「나쁜 가슴」, 14~15쪽)<br>“나쁜 가슴이 뭐 어때서요?”그녀의 말에 내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녀의 공허한 눈 속에서 슬픔과 절망, 무엇보다 단단하게 뭉친 분노를 발견했다. 내 마음이 그녀의 눈에 비친 것만 같았다. (「나쁜 가슴」, 26쪽)<br>모유가 적은 산모에게 나쁜 가슴이라 말하며 산모를 죄인 취급하는 원장의 말. 누구의 엄마가 아닌 나 자신으로 살고 싶은 마음, 역할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나로 존재하고자 했던 마음은 왜 부정당하는 것일까. 이 단편은 우리 사회가 모성을, 출산한 여성의 몸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보여준다. 생명을 잉태하고 출산하는 대단하고 아름다운 존재라는 인식이 부족하다는 것을 말이다. <br><br><br><br>사회운동에 참여해 대학원 무기정학 처분을 받고 집으로 돌아온 고모를 바라보는 조카 ‘성은’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한정현의 「가짜 여자친구」도 다르지 않다. 여학교에서 은밀하게 일어나는 교사의 성추행과 폭력을 대하는 미온적 태도. 가만히 있어야 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연대하고 행동해야 한다고. 차별과 폭행을 옹호하고 당연시하는 말들이야말로 영원히 금지되어야 할 말이라고.<br>전지영의 「나쁜 가슴」과 한정현의 「가짜 여자친구」이 사회와 개인 사이를 오가는 금지된 말들에 대한 것이라면 예소연의 「나의 체험학습」은 개인과 개인 사이의 말과 관계에 관한 것이다. 소설 속 ‘수이’는 가장 가까운 이와 이별한 반복된 경험으로 상대에게 진심을 내놓지 못한다. 단단한 관계를 원하면서도 헤어짐을 떠올리기 때문에 항상 불안과 함께다. 과거의 일은 그저 우연에 불과할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그 모든 것을 자신의 잘못이라 여기는 수이에게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미미 이모와의 만남은 관계의 새로운 확장이다. 둘 사이에 오가는 대화는 엉뚱하면서도 진중하다. 침묵하고 이별할 순간을 두려워하는 대신 뭐든 말하고 함께 해나간다. <br>고맙습니다, 같이 가, 혹은 그러지 마. 우리 사이에 금지된 말에 대해 생각했다. 둘 중 하나가 그 말을 내미는 순간 나는 이별에 대해 생각하고 만다. 그러면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되고 그 순간 마력이 솟구쳐 그 말은 우리를 이별의 순간으로 데려간다. 나는 몇 번이나 그런 식의 헤어짐을 겪었고 이제는 진절머리가 날 지경이다. “갈까?” “ 가자.” 우리는 금지된 말을 하지 않고도 제법 자유롭게 대화할 줄 안다. (「나의 체험학습」, 84쪽)<br>나는 언제나 관계라는 것이 명명백백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그러한 점이 나를 질리는 사람으로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사람이나 돌고래나 개나 언제든 누군가를 떠날 수 있으며 그것을 받아들이는 게 사실 우리에게 주어진 일일지도. (「나의 체험학습」, 117쪽)<br>언제나 그렇듯 세 작가의 얽힘 코멘터리를 읽으며 개운한 기분이 든다. 독자들이 이 시리즈를 찾는 이유 중 하나가 얽힘 코멘터리가 아닐까 싶다. 『우리 사이에 금지된 말들』를 읽고 저마다를 사로잡는 불안과 쌓아두고 숨겨둔 말들이 하나씩 발화했으면 좋겠다. 어떤 불안은 자꾸 꺼내야 없어지기도 하니까. 하지 못한 말들의 무게에 억눌려 위축된 마음이 기지개를 켤 수 있도록.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008/41/cover150/k19203488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0084170</link></image></item><item><author>자목련</author><category>당신과의 포옹</category><title>마음의 속도 </title><link>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078654</link><pubDate>Sun, 08 Feb 2026 10:4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078654</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5070&TPaperId=1707865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10/20/coveroff/8932045070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52135311&TPaperId=1707865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495/90/coveroff/k252135311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82135466&TPaperId=1707865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385/70/coveroff/k982135466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1월에는 친구들을 만났다. 내가 가장 여유롭고 친구들은 바쁘기에 일정을 조율하고 맞춰 얻은 시간이었다. 언제나 친구들과의 시간은 빨리 지나간다. 다시 자신의 공간으로 돌아가야 했기에 마음은 급하고 하고 싶은 말들을 쏟아낸다. 많이 웃고 많이 먹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래서 다음 만날 약속을 정하는 일은 더 가쁘다. 다음 만남을 기대하며 정신없이 살아갈 것이다. <br>다들 바쁘게 살아가고 나는 느리게 산다. 나무늘보처럼 산다. 목적 없이 살아간다. 그렇게 살아도 괜찮다고 그런 날들도 있는 거라고 친구는 말했지만 나는 알고 있다. 이런 시간을 종결해야 한다는 것을. 마음의 보폭이 조금은 넓고 빨라지기를 원한다. <br>좋은 책들이 내 마음의 속도를 올려줄 것이다. 2월의 책은 보뱅 (땡스투는 아프도록 아름답다는 잠자냥 님께)의 『세상의 빛』, 시의적절 시리즈 김상혁의 2월 『그냥 못 넘겼어요』, 이문재 시인의 시집 『꿈을 꾸게 하는 꿈이 있다』까지 세 권이다. 시집을 정리하면서 신간 시집을 사는 마음은 뭘까. <br><br><br><br>한결같이 아름다운 문장으로 가득한 책들이다. 아름다운 문장을 읽다 보면 나만의 문장을 꿈꾸게 된다. 나만의 문장을 갖는 일, 나만의 문장을 쓰고 싶은 욕망으로 이어진다. 그건 좋은 일이다. 좋은 문장을 얻지 못해도, 쓸 수 없는 문장을 바라더라도 문장을 염원하는 일은 벅차다. <br><br>잔가지 맨 끝늦겨울 이른 봄​처음 눈뜻 새순이뒤돌아보며 말한다​무서워요앞에 아무 것도 안 보여요​가지가 말한다앞에서는 아무것도 안 보여​줄기가 말한다네가 하늘을 보고 있는 거야​계속 올려줄 테니 앞만 보거라뿌리가 말한다​하늘이 너를 보고 있는 거야지근 네가 맨 앞인 거야(「새봄」, 전문)<br>맹렬한 추위가 마음을 가둔다. 좀 풀린다 싶더니 다시 추워졌다. 입춘이 지났다고 방심한 탓일까. 추워도 봄은 오고 추워도 꽃은 핀다. 그렇게 계절이 흐르는 걸 느낀다. 봄이 오고 있다. 우리가 바라는 봄은 새봄일 것이다. 작년과는 다른 봄, 단 한 번의 봄을 맞이한다.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385/70/cover150/k98213546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3857082</link></image></item><item><author>자목련</author><category>그러니까, 때때로 허물어지는 </category><title>작가와 나를 연결하는 통로 </title><link>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049433</link><pubDate>Tue, 27 Jan 2026 12:1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049433</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34826&TPaperId=1704943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7393/7/coveroff/s932034826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34834&TPaperId=1704943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7393/6/coveroff/8932034834_2.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16518&TPaperId=1704943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384/91/coveroff/8954616518_2.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93466&TPaperId=1704943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1784/0/coveroff/8954693466_2.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지난 12월에 친구와 나는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대화를 나눴다. 그것은 작가 한강에 대해서였다. 예상하지 못했다는 말은 친구는 책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처음 만났던 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려도 그런 것 같다. 그렇다면 나는 책을 좋아했던가. 모르겠다. 현재의 나는 책을 좋아하고 책을 사들이고 책을 쌓아둔다. 친구는 내게 한강의 책 가운데 『소년이 온다』의 내용이 뭐냐고 물었다. 대표적인 한강의 소설로 가장 많이 언급되었기에 그랬을 것이다. 솔직하게 그 소설은 읽기 힘들 거라고 답했다. 『작별하지 않는다』도 마찬가지라고. 내가 좋아하는 단편집을 추천했지만 친구는 장편이 좋겠다고 했다. 나는 그 기회를 놓칠 수 없어 알라딘에 들어가서 주문을 하려고 하자 친구는 극구 말렸다. 친구에게 책은 도서관에서 빌리는 것이었고 내게는 사는 것이었다. 마침 곁에 둔 『디 에센셜 한강』을 건넸다. 이 책이 정말 안성맞춤이라고 생각했다. 다시 책을 구매했고 천천히 읽었다. 아니, 게으르게. <br>나는 한강 작가를 좋아한다. 한강 작가가 무얼 말하는지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그 차분한 슬픔이, 애써 고르고 고른 순수한 언어가 좋았다. 어렵게 다가왔지만 자꾸 그렸다. 어쩌면 그의 소설을 읽을 당시 내 감정과 상태가 그러해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때문에 여전히 그의 초기 소설을 아낀다. 『디 에센셜 한강』에 수록된 작품은 그런 이유로 읽으면서 조금 울컥했고 많이 아팠다. 어떤 면에서 한강의 소설은 상실과 애도로 가득한 생을 버티고 견디며 살아가야 하는 궁극적인 이유가 무엇인지 묻는 것 같다. 아니, 어떻게든 살아내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한강에게 그것은 문학이자 언어였을 것이다. 유일하고 고유한 목소리. <br>말을 잃은 여자와 시력을 잃는 남자와의 이야기인 『희랍어 시간』을 다시 읽으며 나는 조마조마했다. 아름답게 보이기만 했던 소설이 아니었다. 처음 읽는 기분이었다. 처음 읽는 기분이 맞을지도 모른다. 한순간 그 삶이 깨질 것 같아서, 무너져내릴 것만 같아서. 그들이 겪는 상실과 고통을 나는 알 수 없으니 느낄 수 없고 말할 수 없다. 그들이 바라는 간절함이 나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는 것이라서. 절망의 순간을 지나왔다고 여겼지만 여전히 절망의 시간을 살고 있다는 게 부끄러웠다. 말을 잃은 그녀가 시력을 잃은 희랍어 강사의 집으로 돌아와 그를 위해 안경점에 가려는 마음에 안도했다. 그것은 당연한 마음이 아니었기에. 이상한 일이었다. 과거에 옮겨 적었던 문장은 보이지 않았다. 오롯이 두 사람의 실루엣만 내게 들어왔다. 그들의 움직임, 사소한 떨림, 귀 기울이고 놓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몸짓. <br>그런 기분은 단편소설 「회복하는 인간」과 「파란 돌」을 읽을 때도 다르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의 소설을 제대로 읽은 적이 없었다. 그게 맞았다. 「회복하는 인간」을 읽으면서 이런 내용이었던가. 나는  「회복하는 인간」을  「노랑무늬영원」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육체적 고통 따위는 아무런 문제도 아니라는 마음. 그렇다면 한강이 주목하는 고통은 무엇일까. 내면을 가득 채운 고통은 무엇일까. 인간으로 삶의 의미를 어디에 두고 살아가고 있는가. 그러나 반가운 점도 있었다. 「파란 돌」을 읽으며 한강의 소설이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파란 돌」에서 등장한 삼촌의 그림은 『바람이 분다, 가라』에 등장하는 먹그림을 불러왔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한강의  「어깨뼈」를 떠올렸다. 한강의 소설 곳곳에서 느껴지는 봄의 기운. 겨울을 견디고 봄을 기다리는 이미지가 한강의 그것은 아니었을까 혼자 짐작했다. <br>나도 모르게 떨리는 손이 가슴으로 올라왔습니다. 가슴뼈 사이 오목한 곳, 어떤 장기도 없는, 그렇게 아파보기 전에는 그런 장소가 몸에 있는지조차 몰랐던 곳이었습니다. 당신은 잠시 우두커니 서 있다가 손을 뻗어 내 손을 가볍게 쥐었습니다. 담담하게, 무언가를 위로하듯이. ( 「파란 돌」, 263쪽)<br><br><br><br>그래, 나는 이런 문장에 반하고 반했었다. 감히 만질 수 없는 감각과 숨죽여야만 들을 수 있는 소리. 그 모든 것은 슬픔에 기반된 것이었다. 그러나 슬픔에 싸였거나 갇힌 게 아니었다. 슬픔과 함께 성장하고 살아가는 것이었다. 눈이 되어 사라지고 말을 잃고 시력을 잃어도 멈출 수 없는 삶은 이어지고 계속된다는 당연하고 당연한 삶의 의무에 대한 위로이자 토닥임이었다. 거대한 역사의 슬픔을 통해서 한강이 전하고 싶은 게 이런 것이었지 오래전 나의 감각이 되살아났다. 부재로 존재하는 것, 그것이 나와 우리를 버티게 만드는 그것이었다. 사라졌다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고 그래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br>사람의 몸에서 가장 정신적인 곳이 어디냐고 누군가 물은 적이 있지. 그때 나는 어깨라고 대답했어. 쓸쓸한 사람은 어깨만 보면 알 수 있잖아. 긴장하면 딱딱하게 굳고 어려우면 움츠러들고 당당할 때면 활짝 넓어지는 게 어깨지. 당신을 만나기 전, 목덜미와 어깨 사이가 쪼개질 듯 저려올 때면, 내 손으로 그 자리를 짚어 주무르면서 생각하곤 했어. 이 손이 햇빛이었으면. 나직한 오월의 바람 소리였으면. 처음으로 당신과 나란히 포도(鋪道)를 걸을 때였다. 길이 갑자기 좁아져서 우리 상반신이 바싹 가까워졌지. 기억나? 당신의 마른 어깨와 내 마른 어깨가 부딪힌 순간, 외로운 흰 뼈들이 달그랑, 먼 풍경(風磬) 소리를 낸 순간. (『내 여자의 열매』 속 「어깨뼈」)<br>『디 에센셜 한강』에서 만난 산문은 정말 처음이었다. 처음이라서 새로웠고 더 깊게 집중할 수 있었다. 작가 한강이 아닌 소녀 한강, 딸 한강, 인간 한강을 마주하는 순간이라고 할까. 피아노를 열망하던 어린 한강을 상상하며 읽은  「종이 피아노」는 비슷한 경험이 있어 더 애틋했다. 딸이 원하는 피아노 학원을 보내주지 못하는 부모의 마음은 어땠을까. 형편이 나아졌을 때 피아노 학원에 엄마 아빠를 위해 일 년만 다녀주라는 그 마음. 그리하여 중학교 3학년이  되어 다니게 된 피아노 학원의 이야기 「저녁 여섯 시, 검고 긴 바늘」은 피아노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언제 기회가 되면 피아노에 대해 말할 수 있기를. <br>그런가 하면 「여름의 소년들에게」는 『소년이 온다』를 읽기 전이나 읽은 후에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는 이 책을 읽고 어떤 느낌이었을까. 친구가 궁금해했던  『소년이 온다』를 읽게 될까. 아니면 읽지 못하게 될까. 친구는 한강의 다른 책을 더 읽게 될까. 아니면 멈추게 될까. 다음에 친구를 만나면 우리는 한강에 대해 이야기를 할 것이다. 예상하지 않았던 대화지만 예전과 같으면서도 다른 그 무언가에 대해서.<br>‘언어’라는 나이 불충분하고 때로 불가능한 도구가, 결국은 그것을 읽을 누군가를 향해 열려 있는 통로라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자각해야 한다는 것을. 그리하여 마침내 첫 문장을 쓰는 순간, 내는 백 년 뒤의 세계를 믿어야 할 것입니다. 내가 쓴 것을 읽을 사람들이 거기 아직 살아남아 있으리라는 불확실한 가능성을. (「백 년 동안의 기도」, 340쪽)<br>저마다 독립적이었다고 여겼던 한강의 소설이 동그라미가 되었다. 동그랗게 커지고 있었다. 내가 만난 소설이 그 동그라미의 일부였고 전체였다는 게 기쁘다. 잘 모르고 끝내 알 수 없더라도 읽을 수 있고 읽는 일이 작가와 나를 연결하는 통로라는 사실이. <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1784/0/cover150/8954693466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17840073</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