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그리하여 멀리서  (자목련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 April, Book, Coffee, &amp; You </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Fri, 30 Oct 2026 05:18:50 +0900</lastBuildDate><image><title>자목련</titl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myface/pt_2093843_639247216576643525.jpg</url><link>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자목련</description></image><item><author>자목련</author><category>그러니까, 때때로 허물어지는 </category><title>무화과 시루와 책 </title><link>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599861</link><pubDate>Thu, 29 Oct 2026 09:5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599861</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22131926&TPaperId=1759986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549/51/coveroff/k322131926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42130197&TPaperId=1759986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64/41/coveroff/k442130197_2.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하필 약속은 가장 추운 날이었다. 그러니까 어제 말이다. 서로의 시간을 맞추고 얼굴을 마주하기로 한 날. 친구가 오기 전에 보일러를 틀었다. 바닥이 따뜻해지는 게 기분이 좋았다. 거의 5달 만에 마주한 우리. 그 사이 우리는 조금 더 늙었고 집착 비슷한 열망은 조금 옅어졌다. 9월엔 친구에게 큰일이 있었고, 나는 그 곁을 지켜주지 못했다. 약속을 잡으면서 친구가 무화과 시루를 사갈 수 있으면 사 가겠다고 했다. 당신에 예상하는 그곳의 무화과 시루가 맞다. <br>친구와 나는 그 지역에서 고등학교와 대학을 다녔다. 그래서 종종 놀란다. 그 빵집이 이렇게 유명해질지 몰랐으니까. 당시에도 랜드마크였고 그 앞에서 약속을 잡기도 했지만. 아무튼 직접 본 무화과 시루는 너무 예뻤다. 어마 무시하게 컸다. 친구가 말하길, 이건 숟가락으로 떠먹어야 한다고. 우리는 그렇게 각자의 접시와 수저를 두고 무화과 시루를 먹었다. 물론 양이 적어서 다 먹을 수 없었고 남은 케이크는 소분해서 냉동실에 넣었다. 그건 모두 친구가 했다. 친구는 나보다 그런 걸 잘한다.<br><br><br><br>이사 간 집과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친구가 책 이야기를 꺼냈다. 친구가 책 이야기를 꺼내는 건 정말 진기한(친구에게 미안하지만) 일이다. 필사를 할 거라고 했다. 켈리 그라프를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친구의 손 글씨는 정갈하고 곱다. 덕분에 나는 이런 책이 있는 줄 알았다. 친구에게 선물을 하려고 장바구니에 담아두었다. 드라마 대사로 하는 필사, 그래서 나는 드라마 이야기를 꺼냈다. 요즘 가장 기다리는 드라마 &lt;연애박사&gt;에 대해서 말이다. 아마도 올가을 내 키워드는 &lt;연애박사&gt;가 지배할 것 같다. ​11월의 첫날 친구는 여동생 둘과 중국 여행을 떠난다고 했다. 3박 4일의 짧은 기간이 친구에게 쉼이자 휴식이면 좋겠다. 함께 할 시간은 끝이 났고 우리는 다음 계절을 약속했다. 겨울의 어느 시기에 만날지 모른다. 첫눈이 내리는 겨울일지도 모르고 봄에 속한 겨울이 될 수도 있고 여름에 떠올리는 겨울일지도 모른다. 그때까지 10월의 무화과 시루를 생각하게 될 것이다. 달콤함으로 풍성하게 채워진 하루를. <br><br><br><br><br><br><br><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64/41/cover150/k442130197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6644181</link></image></item><item><author>자목련</author><category>목소리 </category><title>그냥 나진으로 살기  - [우리 착한 나진]</title><link>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588070</link><pubDate>Fri, 23 Oct 2026 10:4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58807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77513&TPaperId=1758807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258/13/coveroff/893747751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77513&TPaperId=1758807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우리 착한 나진</a><br/>이서수 지음 / 민음사 / 2026년 09월<br/></td></tr></table><br/>출근하려고 나섰는데 낯선 여자가 앉아 있다면 어떨까? 순간 아찔할 것이다. 집을 잘못 찾은 사람이라고 여기고 무시할 수도 있다. 조심스레 문을 닫고 가면 그만이니까. 그러나 우리의 ‘나진’은 그러지 못한다. 제목이 암시하듯 나진은 ‘착한’ 사람이니까. ‘좋은’ 사람이고 싶으니까. 여기서 뭐 하냐고 묻는다. 불편은 감추고 친절하게. 모르는 사람이 나를 알고 내 집까지 찾아올 수 있다는 설정은 너무 무섭다. 오래전 알았던 사이라 해도 연락이 끊겼으면 그건 불가능한 일이니까. <br>낯선 여자는 나진을 선생님이라 부른다. 15년 전 나진이 국어 과외를 했던 학생 중 하나인 다혜였다. 힘들면 언제든 연락하라고 하지 않았냐고. 세상에나 그 말을 믿고 찾아왔다고? 15년이나 지났는데. 어떻게 찾았을까? 나진은 다혜를 집에 들이고 출근한다. 나진과 다혜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나진은 왜 다혜를 매몰차게 거절하지 못했을까. 다혜가 반가워서는 아니었을 것이다. 정말 말 그대로 어쩔 수 없어서, 상황을 모면하려고 그랬을지도 모른다. 이 모든 걸 다혜가 의도했다면 나진의 일상은 어떻게 될까?<br>스물셋의 나진과 열다섯의 다혜를 생각하면 어른과 아이로 구분할 수 있다. 그러나 서른여덟의 나진과 서른 살의 다혜의 현재를 보면 둘 다 성인 여자이다. 서른 살 여성이 도움을 청할 사람이 나진뿐이었을까. 정말 그래서 찾아온 것일까. 다혜에겐 어떤 사정이 있을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착한 나진은 그렇게 다혜와 불편한 동거를 시작한다. 보호와 돌봄이 필요했던 열다섯의 다혜를 떠올리며, 그때나 지금이나 나진은 그저 선의를 베푸는 것이다. <br>다혜는 청소를 하고 밥을 해놓고 나진을 기다리며 제 집처럼 지낸다. 제발 빨리 나가주기를 바라는 나진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말이다. 나진은 다혜를 볼 때마다 15년 전 그날이 떠오른다. 나진은 최선을 다했다고 여기며 과거에서 벗어나려 애쓴다. 다혜 말고도 나진에게는 골칫거리가 있다. 회사를 그만둔 직원 이상우가 훔쳐 간 비품 때문인데, 나진과 연결시키려면 연결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과거 나진에게 고백했던 상대이기도 해서 찜찜한데 그 물건을 맡아달라며 나진에게 보낸 것이다. 아무튼 이래저래 나진은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편하지 않다.<br>설상가상 전세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대출도 없는 전 재산으로 얻은 전세였는데 사기라니. 부동산 중개인도 모르쇠로 일관하고.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나진 대신 다혜는 아무렇지 않게 제 일처럼 모든 걸 해결한다. 집을 구하고 짐을 정리하고 이사를 주도한다. 집을 구하는 비용도 모두 다혜가 해결했다. 회사도 그만두었는데 이상우가 사장 부인과 외도를 했고 나진과 삼각관계였다는 괴소문 때문이다. 지칠 대로 지친 나진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다혜가 차려준 밥을 먹고 다혜가 이끄는 대로 생활한다. 다혜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외출을 하는데 무엇을 하러 다니는지 알고 싶지 않다. <br><br><br><br>다혜는 엉뚱하게도 나진에게 복수를 해야 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그게 가능이나 한 일인가? 전세 사기를 친 사람을 찾아도 돈을 돌려받을 수 없는 걸 아는데. 나진에게 이제 일상은 욕이 되었다. 욕이라도 해야 살 수 있었으니까. 사는 동안 내내 착하게(착한 사람으로 보이게) 살아왔는데 왜 자신에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 세상을 원망하고 사기 친 사람을 욕할 수밖에 없다. 그런 나진을 다혜는 조금씩 움직이게 만들었고 부동산 중개인에게 사과를 받아낸다. 동네 산책을 하고 벚꽃을 구경할 수 있게 만든다. 주인집 할아버지와 막걸리를 마시고 할아버지가 키우는 개 찐빵과도 친해진다. 15년 전 학교에서는 왕따를 당하고 엄마의 방치와 빚 때문에 혼자 집에 남겨진 다혜를 선의로 도왔던 나진이 지금은 다혜의 돌봄을 받는다. 춥고 혹독한 겨울과 봄과 여름까지. <br>나진은 이제 달라졌다. 그 달라짐이 나쁘지 않다. 착한 나진도 아니고 우리의 나진도 아니다. 그냥 나진일 뿐이다. 이사면서 가지고 온 이상우의 물건(횡령을 위한 낡고 바랜 A4용지)을 돌려주리고 한다. 이상우는 부산에 있다며 나진에게 부산으로 오라고 한다. 예전 같았으면 나진은 부산에 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이상우의 친구가 운영하는 탁구장에서 둘은 만났다. 이상우에게 따지고 화를 낸다. <br>나진은 아무 대꾸 없이 찢어진 용지를 한 아름 모아 든 다음 이상우가 서 있는 네트 너머로 힘차게 내던졌다. 파괴되기 전에는 못 넘어가도 파괴된 뒤에는 어디든 넘어갈 수 있다. 이상우는 그걸 모르는 것 같았다. 나진도 예전엔 몰랐다. (166쪽)<br>나는 '파괴된 뒤에는 어디든 넘어갈 수 있다.’는 말이 통쾌하고 기분이 좋아서, 몇 번을 읽었다. 우리 착한 나진이 파괴하지 못한 것. ‘우리’와 ‘착한’을 생각하면서. 나는 무엇을 파괴하지 못했을까. 무엇에 갇혀 있고 끌려다니고 있을까. 그럼 다혜는 진즉에 파괴된 것일까, 아니면 파괴한 것일까? 타인의 삶을 파괴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 사기를 치는 사람과 사기를 당하는 사람, 선의와 호의를 악용하는 사람, 직장에서 자신의 위치를 이용하는 사람. 어쩌면 누군가의 진심을 아는 건 어렵고 진심이 모든 걸 해결해 주지도 않는 세상에서 속내를 감추는 건 당연한지도 모른다. <br>호기심으로 시작하는 소설은 스릴러 같기도 하고 사회고발 소설 같기도 하다. 어른의 역할이 부재한 사회, 해결하지 못하는 전세 사기까지. 나에겐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일은 어디에도 없다는 걸 확인시키면서 그럼에도 이런 세상에서 우리를 살아가게 만드는 건 돌봄과 연대가 아니겠냐고 말한다. <br>“넌 참 이상한 사람이야. 그렇지만 너의 일부분은 좋아. 싫은 점도 있지만 참아 줄 만해. 결국 그런 사람을 곁에 두게 되는 건지도 모르겠어.”<br>“내가 어느 한 시기에 내 곁에 있었던 나진 씨를 못 잊는 것처럼 나진 씨도 어느 한 시기에 곁에 있었던 나를 못 잊었으면 좋겠어. 이 집에서 보낸 봄과 여름을.” (196쪽)<br>소설에서 나진를 부르는 다혜의 호칭은 세 번 변하는 데 그게 참 좋았다. 그건 관계의 변화이기도 하고 둘 사이의 거리에 대한 설명이기도 하니까. 선생님으로 시작해, 언니, 그리고 나진 씨. 수직관계에서 벗어나 수평적이고 대등한 관계. 비로소 어른과 어른으로 마주한 두 사람의 모습은 독립적이면서 아름답다. 마침내 자기 자신으로 살아갈 나진을 응원한다.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258/13/cover150/893747751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2581394</link></image></item><item><author>자목련</author><category>그러니까, 때때로 허물어지는 </category><title>노란 은행잎이 수북히 쌓인 걸 못 봤으니</title><link>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586724</link><pubDate>Thu, 22 Oct 2026 17:0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586724</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42131684&TPaperId=1758672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321/63/coveroff/k242131684_2.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92130196&TPaperId=1758672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59/7/coveroff/k692130196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38732&TPaperId=1758672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7539/65/coveroff/8932038732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52131586&TPaperId=1758672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315/60/coveroff/k652131586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서울에 다녀왔다. 일요일에 출발해서 1박 2일의 일정이었다. 하필 폭우가 쏟아지던 시간에 고속도로 위에 있었다. 내가 운전을 한 건 아니지만 조수석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무서웠다. 병원 일정으로 간단한 검사를 위한 것이었지만 오랜만에 입원을 하니 위중한 환자가 된 기분이었다. 몸무게와 키를 확인하고 배정된 병실로 향했다. 침대에 담요와 환자복이 개어져 있었다. 저녁을 먹고 나니 딱히 할 일이 없었다. 보호자도 나도 심심했다. 코로나 이후로 병원 분위기는 달라졌다. 조용했고 커튼을 걷어두는 게 오히려 이상할 정도였다. 나쁘지 않았다. 혈압, 맥박을 측정하고 간단한 채혈을 했다. 미열이 있어 살짝 걱정했지만 간호사는 검사에는 상관이 없다고 말했다. <br>일찍 잠들었지만 간호사의 방문으로 깊은 잠은 오지 않았다. 평소처럼 새벽에 깨고 다시 잠들기 위해 노력했다. 월요일의 검사는 지난번 외래에서 하지 못한 것으로 이번에는 꼭 해야만 했다. 혹시나 이번에도 힘들까 봐 걱정했는데 다행히 검사를 마칠 수 있었다. <br>검사 결과를 기다리면서 늦은 아침과 약간의 낮잠과 점심을 먹었다. 걱정할 정도의 결과는 아니었고 의사는 1년 후로 검사를 잡았다. 이번 검사는 돌발적인 상황이라 할 수 있지만 하나의 숙제를 끝낸 기분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나를 살피는 일이었다. 내 몸에 일어난 변화를 내가 감지하는 것, 내가 스스로 나를 책임지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br>서울로 향하는 길은 폭우와 바람 때문에 초조하고 불안했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편안하면서도 지루했다. 월요일의 고속도로는 생각보다 차가 많았다. 저녁을 간단하게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피곤했는지 꽤 많은 잠을 잤다. 그리고 화요일과 수요일에는 내 일정을 아는 친구의 통화가 이어졌다. 어쩌다 보니 알게 된 일정이었는데 병원이라서 걱정이 많았다. 직접 통화를 해야 마음이 놓이는 이들이었던 것이다.<br>나의 안부를 묻는 일, 그 모양은 다양하다. 자신의 관심거리에 맞춘 안부라고 할까. 어떤 이는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으로 안부를 시작하고 어떤 이는 드라마 이야기를 하다 마지막에 내 안부를 묻고 어떤 이와는 안부를 묻지 않고 아무렇지 않은 듯 일상을 주고받는다. 누군가를 염려하고 걱정하는 마음은 만남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다음 주에는 친구를 만나기로 했다. 나는 친구가 많은 편이 아니고 얼굴을 보는 이도 정해져 있다. 그래도 얼굴을 보고 밥을 먹으면 안심이 될 것 같아서 약속을 정했다. <br><br><br><br>책의 안부에 대해 생각해 보면 작가의 신간 소식을 듣고 읽거나 오랜만에 작가의 책을 구매하고 읽는 일이 아닐까 싶다. 김경후의 시집이 그러하다. 김경후의 시집 『열두 겹의 자정』을 좋아하는데 그 이후로는 시집을 읽는 게 없다. 유디트 헤르만의 소설도 장편은 처음인 것 같다. 두 권의 책은 모두 Falstaff 님 덕분에 알게 되었다. 땡스 투로 부족하지만 고마움을 표한다. 이윤 리의 에세이는 너무 아프고 슬플 것 같은데 그래도 읽어보고 싶어서 구매했고 하루키의 소설은 좋아한다고 할 수 없지만 오랜만에 나오는 소설이라서. <br>가을이니, 가을에 어울리는 이런 제목의 시를 우선 찾았는데 뭔가 핏빛 낭자한 풍경을 목도한 것만 같다. ​눈먼 새들열린다날개 묶어 열린다핏빛으로 떨어진다 열린 채얼어붙은 채엄마, 떨어지면 날아가?가을 하늘은 넓고 높지지하철역 스크린도어 열리고닫힌다내가 스마트폰을 찾는 사이열차 날아갈 듯 핏빛 눈빛들 (「단풍」, 전문)​어제는 너무 추워서 겨울이 왔나 싶었는데 오늘은 다시 날씨가 가을이라고 확인시켜준다. 아직 노란 은행잎이 수북히 쌓인 걸 못 봤으니 겨울 생각은 조금 미뤄두기로 한다. <br><br><br><br><br><br><br><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315/60/cover150/k65213158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3156082</link></image></item><item><author>자목련</author><category>목소리 </category><title>간직하고 기억하여 잊지 않겠다고 - [우리 세희]</title><link>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582264</link><pubDate>Tue, 20 Oct 2026 11:0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58226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12138606&TPaperId=1758226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295/47/coveroff/k712138606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12138606&TPaperId=1758226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우리 세희</a><br/>조해진 지음 / 현대문학 / 2026년 05월<br/></td></tr></table><br/><br>나로 살아간다. 나의 안위와 행복이 우선이다. 나의 상처에만 매몰되어 주변을 둘러볼 여력이 없다. 그러다 움찔한다. 나를 둘러싼 우리를 만난 때, 내가 여기 존재할 수 있는 근원과 마주했을 때 말이다. 누군가 역사의 한 조각이라 말하고 누군가 나로 이어져, 나와 연결된 단단한 뿌리라 말한다. 나의 조부모가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 평범한 삶을 살았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 나는 그들의 젊음을 모르고 부모의 시간을 모르는데 말이다. <br>조해진의 『우리 세희』를 읽으면서도 그랬다. 끊임없이 타인을 향한 연민과 이해를 놓지 않으려는 작가임을 알았지만 이번에는 그 무게가 달랐다. 어쩌면 실존 인물에 대한 이야기라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사실을 몰라도 상관없다. 그저 소설로만 읽어도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과 맞닿는다. 한 사람의 생이 이처럼 참담할 수 있을까. 역사라는 거대한 운명 앞에 한 개인의 삶은 무참히 무너질 수밖에 없는가. 끝내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이방인이었던 그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구원이자 기쁨이었다. <br>소설은 업무를 위해 런던에 도착한 연주가 선생님이 위독하다는 전화를 받는 것으로 시작한다. 선생님은 연주의 죽은 엄마 오세희와 연결된 분으로 연주 자신과도 이어진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엄마와 같은 세계와 속한 사람이라고 해야 할까. 엄마가 한국에 오기 전 살았던 그곳, '자이니치'로서 재일한인들이 살았던 대학시절 선생님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던 선배이자 친구로 지낸 선생님이 죽음을 앞두고 있다. 선생님은 일본에서 나오 자랐고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했지만 자이니치라는 이유만으로 차별과 냉대를 받았다. 선생님과 센세를 만날 때마다 그들이 들려준 이야기로 연주는 이제껏 생각하지 않았고 몰랐던 시절의 엄마를 만날 수 있었다. 선생님이 떠나면 일본의 양로원에 계시는 치매를 앓는 외할머니를 제외하면 엄마 세희를 기억할 사람은 선생님의 아내 센세뿐이다. <br>연주가 런던에 온 이유는 일본계 영국인 예술가 ‘제이비 류’를 취재하기 위해서다. 그가 제주 4·3의 비극을 다룬 자품을 전시했기 때문이다. 소설은 연주가 런던에 머무는 3일 동안 선생님의 죽음과 동시에 연주 엄마 세희의 삶을 들여다본다. 현재 런던에서 연주가 느끼는 이방인을 향한 차별과 세희가 서울에서 담담하게 받아들였던 타인의 시선, 선생님과 엄마의 부모가 살아온 오사카의 삶을 교차하며 들려준다. <br>'자이니치'로 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힘든지, 고향으로 돌아갔지만 다시 일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서글프고 고단한 삶에 대해서. 단 3일이라는 시간을 보내는 동안에도 연주는 모멸감을 느끼고 치욕스러웠는데 엄마 세희와 외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어땠을까. 1942년 원산에서 오사카 항만공사 인부로 강제 징용된 세희의 부모, 말이 통하지 않는 곳에서 오직 살아남기 위해 살아야 했던 시간. 그럼에도 세희는 단 한 번도 일본 사람이었던 적이 없었다. 일본에서는 한국 사람이라는 이유로, 한국에서는 일본에서 왔다는 이유로 조롱거리가 되었다. 세희는 평생 한국 사람이었는데 말이다.<br>내력이 죄가 되고 죄는 죄책감으로 수렴되는 삶이었다. (47쪽)<br><br><br><br>한국 어디에도 기댈 수 없던 세희가 자신을 아는 선생님과 재회했을 때 얼마나 기뻤을까. 어린 연주는 그런 엄마를 지켜보며 세희가 선생님과 센세를 만났을 때 보였던 모습을 지울 수 없다. 연주가 런던에서 단 3일 동안 머무는 동안에 받았던 이방인으로의 시간을 세희와 선생님, 그리고 그들의 부모는 평생 그렇게 살아온 것이다. 그건 그들이 원한 것도 아니었고 잘못도 아니었다. 역사라는 거대한 장벽 앞에서 견디며 살아남아야 했으니까. 그랬기에 세희의 오빠는 세희가 원하는 삶을 살게 해주기 위해 북으로 떠난 것이다. 동생은 자신과 달라야 하니까. 그러나 그렇게 북으로 떠난 오빠의 죽음은 세희를 가장 힘들게 했다. 그러나 세희도 알고 있었다. 오빠의 죽음은 개인이 아니라 역사와 국가의 문제라는걸. 개인을 지켜줘야 할 국가가 부재했다는 것을. 그것은 ‘제이비 류’의 작품에서도 이어진다. 그의 할아버지가 고향 제주에서 겪었던 무자비한 폭행도 역사와 국가 바로잡아야 하는 것이라는 것. 살아남기 위해 그곳을 떠나야 했던 심경을 누가 이해할 수 있겠는가.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할 거대한 슬픔을 현재를 살아가는 나는 알 수 없다. 다만, 세희와 선생님이 서로에게 회복의 존재라는 사실을 생각할 뿐이다. 거기에 그들의 이야기를 듣은 연주가 다시 그 이야기를 기억하고 간직하려 한다는 것을. 세희라는 이름 속에 담긴 그들의 사랑과 기쁨, 그리고 소망을 말이다. 기억이 흐려져 손녀인 연주를 세희라 부르는 외할머니의 목소리마저도 소중하다.<br>‘세’ 뒤에 ‘희喜’를 넣어 ‘세희世喜’를 완성한 사람은 외할아버지였다. 세이지 sage의 꽃말은 ‘구원’. 그러니까 ‘세희’는 세상과 세상에 속한 스스로를 구원하면서 기뻐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의미였다. 히로코가 그저 몸에 맞는 옷이라면 세희는 보호막 같은 옷에 가까웠다고 엄마는 말했다.세희야,라고 불리면 더 이상 무서울 게 없었다고도. (95~56쪽)<br>우리는 때로 아프고 불편하다는 이유로 역사를 지나간 과거로 여긴다. 현재가 아닌 과거니까. 돌이킬 수 없고 바꿀 수 없다고 쉽고 안일하게 생각한다. 나 역시 다르지 않았다. 책을 통해, 수업을 통해 그런 일들이 있었다는 것만 알았다. 나는 모어를 잃은 적이 없고, 전쟁을 경험한 적도 없고 단 한 번도 이방인이 아니었으니까. 지금 여기 나로 존재하는 게 당연하다고 여겼으니까. 역사의 고통은 온전히 회복될 수 없고 치유될 수 없는 것이라는 걸 몰랐다. 그 불가능한 상처를 잊어버린다면 얼마나 비참한 일인가. <br>그들이 내게 들려준 이야기는 고스란히 내 몸 안에 새겨져 있다. 숨이 멎는 날까지 내 피와 뼈에 저장된 그들의 이야기는 단 한 줄도 분실되지 않으리라. (116쪽)<br>그러니 나는 이제 기억하려 한다. 보호막 같은 옷을 입은 세희의 마음을, 감히 우리 세희라 불러본다. 조해진의 소설을 통해 연주처럼 내 몸에 새겨둔다. 언제 어디서든 모어를 말하고, 어디든 갈 수 있고, 원하는 삶을 위해 살아갈 수 있는 내가 여기 존재할 수 있는 근원에 대한 감사를 전한다. 그리고 단호하게 말한다. 간직하고 기억하여 잊지 않겠다고, 나와 우리는 그들과 이어져있다고.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295/47/cover150/k712138606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2954718</link></image></item><item><author>자목련</author><category>목소리 </category><title>삶의 순간을 고스란히  -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6 - 사과]</title><link>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569332</link><pubDate>Tue, 13 Oct 2026 11:5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56933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62130536&TPaperId=1756933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030/79/coveroff/k56213053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62130536&TPaperId=1756933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6 - 사과</a><br/>박솔뫼 외 지음 / 북다 / 2026년 08월<br/></td></tr></table><br/><br>어떤 책은 읽기도 전에 기대하는 게 있다.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6』 대상작인 박솔뫼의 「사과」가 그랬다. 정확하게는 기대가 아니라 떠오르는 소설이 있었다.  박솔뫼의 「사과」란 제목과 흩어지는(이별하는) 과정을 담았다는 소개에서 나는 은희경의 단편 「내가 살았던 집」속 문장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br>사과 역시 자기들끼리 닿아 있는 부분에서부터 썩기 시작한다는 걸 알았다. 가까이 닿을수록 더욱 많은 욕망이 생기고 결국 속으로 썩어 문드러지는 모양이 사람의 집착과 비슷했다. 갈색으로 썩은 부분을 도려냈지만 살이 깊게 팬 사과들은 제 모양이 아니었다. (「내가 살았던 집」 중에서)<br>하지만 박솔뫼의 「사과」는 결이 달랐다. 뭐랄까.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은 채 다투지 않고 헤어질 수 있다는 것, 어쩌면 그것은 우리의 일상에서 붙잡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박솔뫼의 소설이 예의 그랬듯이 산책하듯, 걷고 이동하는 모습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를 담은 듯했다. 「사과」의 주인공 ‘애리’도 다르지 않았다. 사원 숙소를 제공하는 회사에 다니는 애리는 주 4일일하고 주말엔 카페에 나간다. 애리는 기차를 타고 이동한다. 카페의 손님이자 커피가 거의 들어가지 않은 커피의 맛을 구현하는 일을 하는 ‘선호’를 만난다. 애리와 선호는 가까워지며 선호의 집에서 주말을 보내기도 한다. <br>선호가 출장을 가면서 애리는 선호의 집에 머물며 선호의 화분을 돌본다. 보통의 연인이라면, 아니 소설에서 그런 관계를 다룬다면 떨어져 있는 게 힘들어 보일 텐데 둘 사이에는 그런 게 없다. 애리는 선호가 출장에서 돌아오면 둘 사이가 멀어질 거라는 걸 아는 듯하다. 특별한 사건 없이 말이다. 이상한 건 시간이 흐른 뒤에 둘은 여전히 카페 직원과 손님 사이다. 어쩌면 처음부터 모든 게 예정되었는지도 모른다. 커피 본연의 맛이 사라진 세계에서 커피를 파는 카페 직원 애리와 다르게 아버지를 통해 그것을 아는 선호, 회사 숙소에서 출퇴근하는 애리와 부모님이 남겨준 바닷가 근처에 건물을 세놓은 선호. 선호는 애리를 흙이 묻은 감자를 굳이 씹어 먹는 사람이라고 느꼈고 애리는  자신이 먹던 건 사과라고 보여줄 수 있었지만 변호하지 않았다. 어떤 만남은, 어떤 연애는 설명할 필요도 없이 서서히 이별이 이어지기도 하니까. 그러니까 「사과」는 연인 사이의 이별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서로 다른 존재라는 인식과 삶이 흐르는 대로 흘러가게 놔두는 삶의 순간에 대한 포착이라고 할까. <br>박솔뫼의 「사과」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설정은 ‘잠’이었다. 내가 느끼기에 애리는 잠이었고 선호는 꿈이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장소를 잠이라고 구현할 수 있는 이는 오직 박솔뫼뿐이다. 내가 가질 수 있는 것, 내가 언제든 갈 수 있는 공간, 잠. <br>애리는 잠이라는 상태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잠이라는 장소가 자신에게 주어졌다고 여긴다. 어느 곳에서 살든지 나에게 잠이라는 곳이 있고 나는 잠을 잘 때 그곳에 가면 된다고 생각한다. ( 「사과」, 14쪽)<br>잠과 꿈은 서로 다른 존재로, 잠은 자신에게 주어진 장소이고 자신이 가질 수 있는 공간이었다. 꿈은 애리가 가끔 볼 수 있는 것이었는데, 그래서 애리는 잠을 자지 않을 때도 가끔 꿈을 꿀 수 있었다. ( 「사과」, 22쪽)<br><br><br><br>자선작 「비둘기 옮기기」도 흥미롭다. 여러 나라의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며 지금 읽는 것을 다른 것으로 옮기고 싶다는 열망에 지닌 화자의 이야기.‘도쿄’와 ‘나카타’를 거닐며 마주한 풍경과 사유. 그것은 박솔뫼 본연의 모습이라 생각한다.  비둘기와 고양이는 같을 수 있을까. 아니면 얼마나 다를까. 서로 다른 존재를 옮기는 일, 서로 다른 존재를 옮기는 것과 말하는 것. 그것은 이해하고 노력하는 일일 것이다. 「사과」와  「비둘기 옮기기」는 박솔뫼의 매력에 빠지기 충분한 단편이다. 그렇다고 해서 쉽게 읽었다는 말은 아니다. 박솔뫼의 소설은 풍경, 산책, 걷기, 이동과 같은 분위기로 남았다. <br>비둘기를 고양이로 옮길 수는 없었지만 그 순간 비둘기는 이전처럼 보이지 않기는 했고 비둘기는 날아가지도 움직이지도 않고 가만히 벤치에 앉아 있었다. 그 후로 나는 비둘기를 이전과 같이 보지 않고 아주 조금 고양이처럼 보게 되었다. (「비둘기 옮기기」, 54쪽)<br>5편의 우수작품상도 나쁘지 않았다. 성혜령의 「하악」은 화자 ‘자인’이 보낸 마흔 번째 생일 이야기다. 엄마와 함께 장애시설에 거주하는 여동생 ‘태인’을 보러 가고 나머지 시간은 사촌 동생인 ‘서린’을 만나는 하루를 담았다. 장애를 가진 태인, 완벽한 외모를 가진 서린, 그 사이에 자인. 선과 악, 아름다움과 추함을 대비하면서 우리 사회의 이중성을 보여준다. <br>자기들은 정상이고 너희들은 비정상이라며 분명하게 선을 긋는 사람들. 이제 자인은 분노하지 않는다. 구분하는 게 편리하다는 걸 자인도 아니까. 실은 자인도 이 시설과 마을로부터 분리되고 싶으니까. (「하악」, 100~101쪽)<br>정희원의 「영주」는 학교 폭력 피해자인 ‘영주’가 가해자이자 방관자였고 현재 작가가 된 화자 ‘우진’을 느닷없이 찾아와 자신의 죽음을 지켜봐 달라고 말하는 이야기다. 우진에게 영주의 등장은 잊고 살았을지 모르는 과거가 불쑥 나타나 자신을 옥죄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 우진은 그런 영주를 피하지 않고 만나고 영주가 원하는 곳으로 운전을 한다. 과거의 죄의식 때문일까. <br>반려견 ‘조아’의 유골함을 어디에 안치할까 고민하다 가족묘에 안장하기로 한  임솔아의 「나의 빈 묘에」, 우연히 발견한 벽에 박힌 쇠갈고리로 자신의 거죽을 벗긴다는 기이한 설정의 정기현의  「그거 점 된다」, 사고로 인해 두 다리가 마비된 ‘세진’의 재택근무 일상과 제목 그대로 일일업무를 보고하는 하루를 담은 황시운의  「일일업무 보고서」까지 현재를 살아가는 다양한 우리의 모습을 만날 수 있었다. 문학이라는 허구의 세계로 치부할 수 없는 현실의 단면을 말한다. 사느라고 바빠서 놓치고 있던, 나와는 상관없다고 여기는 삶과 고스란히 마주한다.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030/79/cover150/k56213053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0307916</link></image></item><item><author>자목련</author><category>당신과의 포옹</category><title>다정한 애정 </title><link>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560558</link><pubDate>Thu, 08 Oct 2026 11:3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560558</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0900893&TPaperId=1756055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827/93/coveroff/8960900893_2.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0900907&TPaperId=1756055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827/93/coveroff/8960900907_2.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26270&TPaperId=1756055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800/23/coveroff/8954626270_2.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80003&TPaperId=1756055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0211/80/coveroff/8954680003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0398X&TPaperId=1756055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98/84/coveroff/895460398x_3.jpg" width="75" border="0"></a>&nbsp;&nbsp;<a href='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560558' target='_blank'>[상품더보기]</a><br/><br/><br>김연수 작가를 좋아한다. 그의 소설을 좋아한다는 말이 정확하겠다. 그가 경북 김천 출신이라는 걸 알고는 대학 동기 하나가 그와 같은 출신이라는 게 떠올랐다. 그 동기의 이름은 유명 정치인과 같아서 기억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연락이 닿았다면 나는 김연수 작가에 대해 물어봤을 것이다. 김천이 뉴욕제과점에 대해서도. 어제 &lt;책빵 뉴욕제과점&gt;이란 곳에서 보낸 책을 받았다. 김연수 작가의 소설집 『눈 내리는 삼일포』였다. 작가의 사인본, 그러니까 나만을 위한 사인본이다. 내가 김연수 작가를 좋아하는 걸 아는 다정한 동생이 보낸 선물이다. <br>&lt;책빵 뉴욕제과점&gt;이란 이름이 왠지 익숙해서 검색하니 독립서점이었다. 짐작하는 바로 그곳. 김연수 작가의 부모님이 운영하시던 그 빵집이 독립서점이 된 것이다. 작가의 누나가 운영하신다고 한다. 아마 동생의 선물이 아니면 나는 몰랐을 곳이다. 내가 독립서점을 방문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가까운 곳에 독립서점도 없거니와 온라인 서점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br><br><br><br>내가 가지고 있는 작가 사인본의 경우 거의 같은 경로로 내게 도착했다. 기억을 더듬어 찾아보니 김연수의 『소설가의 일』과 『소설가의 산책』이란 비매품 도서에도 있었다. 날짜는 2014년 11월 15일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를 기억하고 기회가 닿을 때마다 나를 생각해 주는 마음이 있다는 게 정말 감사하다. 우리는 만난 적이 없고 단 한 번의 통화가 전부였다. 우리는 이어준 건 책이었고 그 가운데 김연수 작가가 있었다. <br>한 번씩 소장하고 있는 책을 정리한다. 읽지 않을 책, 읽게 될까 생각하지만 그대로 미루는 책, 누렇게 바랜 책을 이제는 과감히 정리하는 편이다. 시집은 남겨야지 했던 마음도 차츰 시들어져서 시집도 정리를 한다. 정리하는 과정에 읽으면서 분류를 다시 하는 경우도 있지만 말이다. 아무튼 현재 나에게 책은 가까운 사이면서도 정리할 사이가 되어가는 중이다. 그러니 김연수 작가의 책도 모두 소장한 건 아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애정은 줄어들지 않고 희미해지지도 않는다. 읽지 않은 책도 여전하다. <br><br><br><br>처음 김연수 작가의 소설을 읽었던 건 다시 책을 읽기 시작할 즈음이었다. 내가 쓴 글을 검색하니 나는 그의 소설에서 큰 위로를 받은 것 같다. 내가 기억하고 싶었던 문장을 다시 읽어보는데 최근에 그가 쓴 소설에서 받은 느낌과 이렇게 비슷할 수가 있다니. 놀라웠다. 누군가는 한 작가의 글이니 당연한 거 아니냐고 하겠지만 그건 쉽게 설명할 수 있는 감정이 아니다. 2007년의 글이었다. 다시 이 소설을 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문장은 오래 기억하려 할 것이다. <br>우리는 지나간 뒤에야 삶에서 일어난 일들이 무슨 의미인지 분명하게 알게 되며, 그 의미를 알게 된 뒤에는 돌이키는 게 이미 늦었다는 사실을.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드』 중에서)<br>삶이란 우리가 살았던 게 아니라 기억하는 것이며 그 기억이란 다시 잘 설명하기 위한 기억이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중에서)<br><br><br>이 가을, 김연수 작가의 신잡 소설집이 나와서 참 기쁘다. 내가 아는 책을 좋아하는 이들과 이 기쁨을 함께 하고 싶다. 주변에는 함께 할 수 있는 이가 아주 많지 않지만 말이다. <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172/78/cover150/k89213177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1727813</link></image></item><item><author>자목련</author><category>그러니까, 때때로 허물어지는 </category><title>꽉 잡은 마음</title><link>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558842</link><pubDate>Wed, 07 Oct 2026 12:2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558842</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5720&TPaperId=1755884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168/74/coveroff/8932045720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32131586&TPaperId=1755884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315/64/coveroff/k632131586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77513&TPaperId=1755884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258/13/coveroff/8937477513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92131770&TPaperId=1755884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172/78/coveroff/k892131770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연휴가 있어 기다렸던 책은 조금 늦게 도착했다. 책을 사는 일은 일상이 되었지만 사고 싶은 책을 바로 사는 일은 일상의 큰 즐거움이다. 사고 싶은 책을 바로 사는 게 무슨 대단한 즐거움이나 싶겠지만 사고 싶을 때 사지 못하고 나중에 사게 되면 당시의 기쁨이 조금 사그라든 기분이다. 사고 싶을 때 사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기 때문이다. 책이 도착했을 때 책을 바로 받아보지 못할 사정도 있고 예약판매일 때도 그렇다. 예약판매는 바로 책을 받아볼 수 없다. 그러니 사고 싶을 때 바로 책을 받아볼 수 없다. 좀 엉뚱한 말인가. 아무튼 그렇다.<br>기다리던 책은 김연수의 소설집 『눈 내리는 삼일포』였다. 사고 싶을 때 바로 샀지만 바로 도착하지 않은 책이다. 그리고 이서수의 『우리 착한 나진』은 제목에서 뭔가 알 것 같은 내용이다. 아직 읽기 전이다. 윤단과 최미래의 단편이 더 읽고 싶어서 『소설보다 가을 2026』와 10월엔 시의적절 시리즈도 구매했다. 신용목 시인의 『포도』다. 책을 감싸는 보랏빛이 좋다. <br><br><br><br>포도를 생각하면 여름이 자동으로 따라오는데 10월의 포도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좋아서 더 좋을 것 같은 김연수의 소설집, 이번에 읽으면 더 좋아할 것 같은 이서수와 윤단, 최미래. 그리고 신용목 시인은 가지고 있는 시집이 있지만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는다. 이번에 산문집을 읽으면 무언가 겹쳐지는 게 있을 것 같다. <br>책이 있지만 자꾸 책을 산다. 아침에 읽을 책, 점심에 읽을 책, 저녁에 읽을 책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넉넉해진다. 읽는 날보다 읽지 않는 날이 많지만 책을 생각한다. 쓰는 날보다 쓰지 않는 날이 많지만 쓰고 싶은 마음을 꽉 잡고 있다. 사실 그건 읽기에 대한 마음이 더 그렇다. 그렇게 읽지는 않지만. 꽉 잡은 손, 꽉 잡은 마음, 꽉 잡은 가을. 손이 아플 정도로 꽉 잡고 있어도 좋을 그런 것들. 꽉 잡은 마음을 생각하고 필요한 날들이다. <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172/78/cover150/k89213177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1727813</link></image></item><item><author>자목련</author><category>당신과의 포옹</category><title>글을 쓰고 읽는 기쁨</title><link>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550277</link><pubDate>Fri, 02 Oct 2026 10:2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550277</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38867&TPaperId=1755027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0276/23/coveroff/8936438867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92130907&TPaperId=1755027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59/35/coveroff/k092130907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42131485&TPaperId=1755027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281/7/coveroff/k842131485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글을 쓴다는 건 가만히 나를 관찰하는 일이다. 때로는 보이는 대로 외부를 기록하다 점점 그것은 내부로 파고든다. 결국 글쓰기는 말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나 해야만 했던 말들에 대한 다른 방식의 대화다. 말로는 차마 하지 못했던 일들에 대한 용기거나 뒤늦은 후회, 다짐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처음부터 쉽지는 않다. 누구에게 보일 목적이 아니더라도 마찬가지다. 나만이 읽고 쓰는 글이라 해도 조금은 주저하거나 조금은 글 뒤로 숨고 만다. 그러나 결국엔 감정이 담긴 글을 쓰고야 만다. 그것이야말로 글을 쓰는 기쁨이고 글을 쓰는 위안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br>마주의 『내가 좋아하는 것을 말할 때』를 읽으면서도 그런 느낌을 받았다. 특성상 말을 크게 해야 하고 큰 목소리로 정확하게 아이에게 말을 건네야 할 치료사(언어, 놀이, 상담 등)를 떠올리는 이미지와는 다른 글이었다. 어쩌면 외부인인 내가 알지 못하는 내부인의 진짜 이야기가 그러하다는 걸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특수한 상황에 놓인(보편적인 이용자) 이들과 반복적인 내용을 전달하거나 학습시키는 일, 그것을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외부로 드러나는 장면이나 드라마나 영화처럼 포장된 이미지가 실재는 아니라는 정도다. <br>그러니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치료사라는 직업과 일을 떠나 치료사란 개인에게 맡겨진 막중한 책임을 처음 느끼고 생각했다.복지관이나 사설 센터에서 선생님이란 호칭으로 불리지만 4대 보험이나 정직원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일. 작은 공간에 아이들 치료를 위한 놀잇감이나 도구를 사비로 구입하고 대소변 실수를 하는 아이를 감당하는 일까지 하루하루 나아지기를 바라는 부모(조력자, 모든 보호자)에게 상태를 전달하고 앞으로 방향까지 계획해야 한다. 감사를 위한 서류 업무는 물론이고 센터의 청소까지. <br>아이를 관찰하고 의연하게 바라봤던 그 수많은 의식과 기록들을 굽이굽이 기억에서 끌어올리는 것을 끊임없이 마주해야 하는 일은 그래서 가늘고 길다. (본문 중에서)<br>업무나 행정에서 한계를 느껴도 그것에 대한 개선이나 요구사항을 정확히 전달할 창구가 없다는 걸 낄 때 그 마음은 어떨까. 동료이면서 각자의 치료실에서 벗어나지 못하니 인사조차 나누지 못하고 서로의 시간에 들고나는 것 정도만 인식하는 일은 얼마나 외롭고 쓸쓸할까. 누군가는 그저 직업이라고 직장일 뿐이라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이직을 할 때마다 치료사가 아닌 많은 아이를 받아 수입을 더 늘이는 게 목적인 원장 앞에서 수긍의 미소를 건네는 일은 아프고 힘겹다. <br>그러나 아이들을 만나고 개개인이 좋아하는 것들을 시작으로 발화하거나 의미를 알지 못하더라도 대화를 이어가는 일은 치료사에게 가장 소중하고 숭고하다. 때로 의도한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수업이 흐르고 반복적이 놀이에 지치더라도 아이가 놀이실에 왔다는 것 자체가 감사하다. 불편한 신체를 도와주기 위한 보장구에 대해 목발이나 휠체어 같은 게 전부인 줄 알았지만 더 세부적인 도움을 위한 것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 책으로 알게 되었다. <br>치료사의 일상에 대해, 그 일을 하고자 하는 이에게 이 책은 선배이자 동료가 건네는 손길이 될 것이다. 한눈에 바로 뛰어나게 발화하거나 움직임이 좋아지거나 놀이를 원활하게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치료사와의 시간에 즐겁고 행복하다면 그로 인해 그들은 충만해질 것이다. 치료사도 아이도. 물론 이 모든 게 나의 착각일지도 모른다. 고단한 현실은 끝이 보이지 않고 어려움은 산적해 있는 게 삶이니까. 그래도 우리는 제목처럼 ‘내가 좋아하는 것을 말할 때’ 반짝인다. 그것을 들어주고 공감해 줄 이가 있다는 사실에 더욱 그러하다. 이 책도 담긴 마음도 그렇다. <br>아이들이 남기고 간 장난감은 언제나 내게 어떤 이야기였다. 단순히 질문을 하기 위한 핑계가 아닌, 상상하고 느끼는 그대로의 이야기 말이다. 아이들과 노는 동안, 나는 되도록 어려운 질문은 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그것대로 두고, 원래 그랬던 것처럼 바라보는 일을 오래오래 하고 싶다. 장난감이 가득한 곳에서 부끄럽거나, 슬프거나, 어딘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드는 일 없이 놀 수 있다면 초대한 내가 더없이 기쁘겠다. (본문 중에서)<br>『내가 좋아하는 것을 말할 때』를 읽으면서 여러 저자가 자신의 계절에 대해 쓴 『계절 쓰기』와 백수린의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를 만났을 때처럼 좋았다. 담담하면서도 차분한 톤, 쓰고 읽는 일에 대해 생각한다. 나를 쓰고 나를 읽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길고 길었던, 끝날까 싶었던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열린 지금, 가을에 대한 부분은 처음과 다르게 가을에만 존재할 것 같은 감각으로 읽힌다. 이 가을은 눈 깜짝할 것 없이 지나할 것이고 우리는 또 겨울에 취해 가을을 잊게 될지도 모른다. <br>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왔다는 걸 느끼는 순간은 아침에 집에서 나와 숨을 들이마셨을 때 찬 기운이 가슴 속으로 훅 들어와 명치를 아리게 할 때다. 그럴 때면 왠지 모르게 가슴이 아팠고 어떤 감정이 나를 한바탕 뒤흔들고 지나가려는 조짐이라고 생각했다. (「홍한별의 가을 : 오래된 이야기」 중에서)<br>아름다움이 무엇인지 한마디로 정의하는 것은 내 능력 밖의 일이겠지만 슬픔이 너무 커서 세상에 대해 원망만 가득했던 마음이 찬란한 가을 햇살 속에서 맞닥뜨리는 어떤 풍경들에 황홀함으로 물드는 걸 느낄 때마다 나는 아름다움은 어쩌면 삶을 닮은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중에서)<br>순간을 채집하고 소중하게 간직하는 방법으로 기록은 훌륭하다. 정작 쓰고 있을 때는 모르지만 나중에 가만히 읽어 보면 그때와 얼마나 달라졌는지 느끼고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어떤 말들은 여전히 깊은 곳에서 쌓이고 어떤 말들은 목까지 달려 나오다 멈추고 만다. 그런 말들이 글이 되어 나왔을 때 우리는 가만히 그 말을 듣고 그 말에 위로받고 회복된다. 그래서 글을 쓰고 글을 읽는다. <br><br><br><br><br><br><br><br><br><br><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281/7/cover150/k84213148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2810773</link></image></item><item><author>자목련</author><category>목소리 </category><title>라임빛으로 남은 사랑 - [테니스나무]</title><link>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543059</link><pubDate>Tue, 29 Sep 2026 11:2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54305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92131166&TPaperId=1754305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136/77/coveroff/k79213116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92131166&TPaperId=1754305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테니스나무</a><br/>윤고은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09월<br/></td></tr></table><br/>원하지 않아도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누군가 건넨 말로, 틀어놓은 TV의 뉴스 한 꼭지로, 얼결에 클릭한 기사나 광고로 그런 것들을 알게 된다. 몰라도 될 것들이다. 살아가면서 반드시 필요한 것들이라며 이런 것도 모르냐며 나를 향해 돌진한다. 차단하고 거부해도 막무가내로 쏟아지는 것들. 세상이 너무 좋아져서 그렇다. 무언가를 검색했을 때 가장 먼저 AI가 답하는 시스템. 나는 이런 빠른 속도가 달갑지 않은 사람이다. 윤고은의 소설 『테니스나무』를 읽으면서도 그런 마음이 들었다. 세상의 속도가 너무 빨라서, 하나의 일이 순식간에 모두가 알게 되는 세상이라서 씁쓸하고 서글퍼졌다. 어쩌면 이 소설이 사랑 이야기라서, 소설 속 두 사람의 사랑이 그들의 의지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게 안타까워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소설은 생존배낭을 만드는 일을 하는 ‘미아’와 지하철 K선 역사에서 일하는 역무원 ‘태오’는 업무적으로 만나면서 연인이 된다. 지하철 역사를 달리는 하프코스 러닝 대회의 기념품이 미아 회사의 생존배낭이었고 그 일로 태오를 처음 만났다. 모든 게 AI로 통하는 세상에 지하철 역사에 인간 역무원이 거의 없었기에 태오는 K의 얼굴로 통했다. 미아가 지하철에서 양말을 잃어버렸을 때 유실물 담당자가 태오였고 그래서 둘은 구면이었다. 러닝 대회가 다가올수록 둘은 자주 만났고 그렇게 가까워진다. 서로의 마음을 알아가면서 둘 사이의 풍경은 그들만의 언어와 의미로 새겨진다. 산책하면서 지나는 테니스코트의 풍경이 그러했다. 이용자가 없는 테니스코트의 밤, 바닥에 떨어진 라임색 테니스 공들은 가로수 불빛을 받아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왔다. 태오와 미아에게 그것은 싱그러운 열매처럼 느껴졌고 테니스코트의 옆 나무에서 떨어진 것처럼 보였다. <br>우리는 테니스코트 옆 커다란 나무 한 그루를 테니스나무로 지정했다. 공들은 나무줄기에 매달렸던 기억이 없겠지만, 그 밤의 나무는 분명히 테니스 공의 출처처럼 보였다. 아침이 되면 공은 다시 코트 안을 오가다가 밤이 오면 가로등 불빛을 받으며 조금 더 라임빛으로 물들 테고. (44쪽)​이 얼마나 아름답고 황홀한 순간인가. 아무도 모르는 둘만이 아는 공간, 둘만이 느낄 수 있는 공기, 둘만의 감정으로 가득 채워진 시간. 사랑은 그런 것이니까. 무리 없이 러닝 대회만 끝나면 둘 사이는 더욱 공고해지고 사랑은 커질게 분명했다. 러닝 대회는 무사히 끝났지만 예상치 못한 사고가 발생하고 그 중심에 태오가 있었다. 지하철 승강장에서 노숙인으로 보이는 노인이 사망한 사건으로 대회 기념품 생존배낭을 메고 있었다. 같은 자리에 하루 전에도 누워 있는 노인을 발견한 승객이 민원을 넣은 것이다. 그 전화를 받은 게 태오였다. 태오는 매뉴얼대로 처리했다. 노인이 있었던 곳은 B선을 타고 오다가 K선으로 갈아타기 위해 내린 승강장이었고 정확하게는 B선 관할이라 B선에 연락을 취했고 교대했다. 얼마 후 노인은 사망했다. ​사람들은 하나의 건수를 잡은 듯 사건에 집중했다. 책임을 추궁했고 태오와 미아 사이의 글로 등장했다. 10살이라는 나이 차이, 인턴의 정규직 전환 인사권에 영향을 주는 미아의 위치까지. 말도 안 되는 소문과 악의적인 기사가 쏟아졌다. 미아의 회사에서는 노인이 메고 있던 생존배낭이 문제였다. 미아는 태오를 향한 어쩔 수 없는 마음과 함께 사건이 잠잠해지기를 바라면서 잘못된 정보를 흘린 이들(댓글 작성자, 기자, 유튜버)을 차곡차곡 모았다. 고소를 할 생각은 아니었다. 그래도 뭔가를 해야 할 것만 같았고 그렇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다. <br><br><br><br>‘○○행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그런 말이 들리는 세계란 정말 어마어마한 거구나. 보통 우리 삶은 그렇지 않으니까. 어디를 향해 갈지 알 수 없는 일들이, 어떤 신호도 주지 않고 닥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니까. 행선지를 확인하고 올라타도 전혀 다른 곳으로 흘러가는 것이 인생이니까. (124쪽)​그들이 이름 붙인 테니스나무와 열매처럼 환하고 밝게 빛날 것만 같은 둘의 사랑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향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그러나 태오는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미아는 그런 태오를 지켜주고 싶었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재난을 대비해 생존배낭을 기획하고 준비한 미아였지만 사랑의 재난 앞에서 무력했다. 태오는 AI가 아닌 사람이 있다고 당신의 말을 듣고 있다고 안심을 주는 업무를 맡은 역무원의 얼굴이 되었지만 자신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안심하라고 말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태오와 미오 사이를 오가던 홍해파리의 존재도 힘이 되지 않았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외부 환경이 좋지 않다고 느끼면 유년기로 숨어버리는, 필요할 때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홍해파리. 시간을 거슬러 서로의 꿈에 초대하며 라임 빛 열매를 함께 볼 수 있는 순간은 돌아오지 않았다. ​테니스나무는 꿈의 틈새에 책갈피처럼 놓여 있다. 그 나무 아래 라임빛 열매들과, 태오가 있을 것이다. 나는 그 사실을 알고 향기도 맡을 수 있지만 그곳에 가닿을 수는 없는 사람. (202쪽)​수없이 많은 말들을 파생시키고 주장했던 사람들의 기억에서 그 사건은 희미해지고 사라지지만 태오와 미오의 일상은 망가지고 부서졌다. 회복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서로가 힘들 때 가장 힘이 되어준 사람이지만 함께 할 앞날을 꿈꿀 수 없었다. 그저 한 시절의 기억으로 아픈 사랑으로 남아야 했다. <br>AI와 더 많은 대화를 나누고 감정을 공유하는 세상에서 사랑은 더 귀해졌다. 인간이 인간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최고의 것은 사랑이 아닐까. 어쩌면 윤고은은 재난이 일상이 된 세계에서 생존배낭 목록에 반드시 필요한 건 사랑이라고, 사랑의 기억이라고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테니스 공을 볼 때마다 홍해파리란 말을 들을 때마다 이 소설이 생각날 것이다. 쏟아지는 햇빛처럼 환하고 눈부시게 빛나던 그들의 가슴 아린 사랑과 함께.]]></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136/77/cover150/k79213116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1367792</link></image></item><item><author>자목련</author><category>그러니까, 때때로 허물어지는 </category><title>명절 쓰기, 기다리는 책 </title><link>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539009</link><pubDate>Sun, 27 Sep 2026 10:5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539009</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P642939012&TPaperId=1753900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355/61/coveroff/p642939012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42131485&TPaperId=1753900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281/7/coveroff/k842131485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5720&TPaperId=1753900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168/74/coveroff/8932045720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77513&TPaperId=1753900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258/13/coveroff/8937477513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주말을 제외하면 이번 추선 연휴는 이틀이라 할 수 있다. 추석 당일에는 날씨도 별로였다. 은근히 덥고 오후에는 비가 내렸다. 어린 시절처럼 송편을 빚지도 않고 전을 부치지도 않는다. 차례 대신 간단한 예배를 드리고 많이 않은 식구가 모여 식사를 하는 게 전부다. 설에는 농사일이 없어서 다 같이 거실에 앉아 TV 채널을 돌리는 게 일인데 가을 추석에는 일이 한창 바쁜 농사철이다. 식사를 마치자마자 커피나 과일을 먹는 대신 오빠는 약을 치러 나가셨다. 올케언니도 결혼한 조카에게 과일을 깎아 먹으라는 말을 건네고 서둘러 나가셨다. ​결혼한 조카는 이번 명절에 다른 때와 다르게 시댁이 아닌 친정에 먼저 왔다. 순서가 바뀐 것이다. 우리 집에서 아침을 먹고 시댁으로 가는 일정이다. 조카 부부와 큼지막한 배를 깎아 먹었다. 배를 좋아하는 편이 아닌 데 올가을 배는 달고 맛이 좋았다. 조카사위의 취향대로 물이 많았던 믹스 커피의 맛은 생략하겠다. ​아시안 게임이 한창이었지만 TV를 켜지 않았다. 내가 켜지 않으니 아무도 켜지 않았고 나중에는 다른 조카가 TV를 왜 안 보냐고 묻기까지 했다. 나는 그냥 안 보려고라고 말했지만 TV에 시선을 모으지 않으니 오히려 좋았다.  결혼한 조카는 최근에 직업을 바꿨다. 조카의 결단력에 조금 놀랐다. 자영업자가 되는 조카를 마음으로 응원했다. 시댁으로 출발해야 하는 조카 부부는 먼저 떠났고 남동생도 피곤하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는 올케언니는 기다렸다. 올케언니의 말대로 시간은 길지 않았고 1시간 30여 분이 지나니 오빠와 올케언니가 돌아왔다. 온몸이 땀에 젖은 채로. ​나는 마스크를 꼭 써야 한다고 괜한 잔소리를 했다. 오빠의 오른쪽 다리에는 큰 상처가 있었다. 다 나았다고 했지만 아직 시간이 필요했다. 항상 조심해야 한다고 거들었다. 우리는 그런 사이가 되었다. 다 알고 있지만 잔소리를 하는 사이. 도착한 청첩장의 디자인을 보며 잠깐 이야기를 했고 갑자기 이웃집 아주머니의 이름이 궁금해서 올케언니에게 물었더니 알려주셨다. 그분은 교회에 다니지 않아서 이름을 모른다. 누구 엄마로만 알기에. 그분의 이름을 처음 알게 되었다. 흔한 이름인데 무척 특별하게 다가왔다. <br><br><br><br>명절에는 시간을 쓴다. 평소에는 내어주지 않았던 시간, 바빠서 미루고 미뤘던 시간, 그러나 힘들어도 힘들지 않은 시간이다. 명절에는 몸을 쓴다. 안 하던 일과 정리로 몸을 써서 명절 후엔 이곳저곳이 아프다. 명절에는 돈을 쓴다. 선물을 준비하고 봉투에 용돈을 넣는다. 선물의 크기와 종류에 상관없이 선물을 고르는 일은 어렵고 용돈도 금액과 상관없이 부족한 마음이다. 명절에는 마음을 쓴다. 연로하신 부모님을(나에게는 이제 오빠 내외) 뵈면 속상하고 나의 조카들에게는 고모로써 도움을 주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 미안해서 마음이 쓰인다. <br>명절 일상을 기록하려고 했는데 쓰다에 많은 것들이 따라왔다. 명절이 지나고 명절을 쓰니 생각이 많아진다. 어느 해부터 추석에 송편을 먹지 않는다. 아무 때나 먹고 싶으면 사 먹을 수 있기에. 하지만 막상 송편도 없는 추석을 보냈다는 생각을 하니 서운하다. ​꽉 찼던 보름달은 조금씩 살이 빠지고 다음 보름을 위해 준비한다. 단맛이 빠진 청귤 차에 물을 붓는 주말 저녁으로 우리의 명절은 끝났다. 이상하게 제목에 끌려 주문한 이서수의 소설, 윤단과 최미래의 단편을 기다리고 커피와 주문할 책을 둘러보는 아침, 진짜 연휴가 끝난다.  <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258/13/cover150/893747751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2581394</link></image></item><item><author>자목련</author><category>목소리 </category><title>우리가 갈망하는 관계 - [너의 나쁜 무리]</title><link>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532644</link><pubDate>Wed, 23 Sep 2026 12:1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53264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52137509&TPaperId=1753264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83/21/coveroff/k852137509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52137509&TPaperId=1753264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너의 나쁜 무리</a><br/>예소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04월<br/></td></tr></table><br/>새로운 관계를 맺는 일은 조심스럽다. 이미 맺어온 관계만으로 충분해서 그렇기도 하고 다른 누군가와 연결되는 일은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참여하고 싶은 모임이나, 알고 지내고 싶은 이가 생기기 마련이다. 그들과 더 가까이, 그들과 한편이 되고 싶은 마음은 어떻게 확장되는가. 누군가의 지속적인 노력이나 특별한 계기가 있어야 가능하다. 예소연의 소설집 『너의 나쁜 무리』는 나와 다른 누군가와 쉽게 친해지는 일이 점점 더 불가능한 시대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그 가능성에 대해 말한다. 그 이면에 존재하는 연약하게 이어온 관계를 거부하고 과감하게 단절하는 것에 대해서. ​『너의 나쁜 무리』에서 만나는 관계는 조금 이상하다. 남이나 다름없는 사이, 신경 쓸 일 없는 사이로 보이는 데 그게 잘 안된다. 그냥 단 한 번의 만남, 일적으로 만난 사이인데 묘하게 끌려 상대의 제안을 거부할 수 없다. 무슨 말이냐면 구급차를 모는 ‘이중일’이 자신이 호송하던 환자 ‘진정희’와 보호자 ‘서송이’에게 자신의 구급차를 빼앗기는 이야기  「작은 별」가 그렇다. 이중일은 그냥 그들을 호송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환자와 보호자가 구급차에 탄 이후 그들과 나누는 대화를 통해 이중일은 심경의 변화를 느낀다. 마냥 죽음을 기다리지 않겠다는 환자의 의지, 그리고 자신이 그저 무기력하게 살아왔다는 걸 알게 된다. 어쩌면 삶의 끝에 다다른 환자였기에 이중일의 상태를 알아볼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 나의 ‘상태’를 알아봐 준다는 건 가장 큰 위로일지도 모른다. 살면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 누가 봐도 이상한 이야기다. 하지만 그럴 수도 있다 싶은 이야기다. ​이런 기이한 감정은 노인을 돌보는 시터로 일하는 ‘희지’가 돌보던 두부 할머니의 관계를 보여주는 「아무 사이」도 마찬가지다. 정해진 시간만큼 돌봄이 필요한 할머니를 돌보는 일, 의무는 거기까지다. 하지만 희지는 최선을 다했다. 이전에는 입사와 퇴사를 반복하며 불안했지만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는 뿌듯함과 자신감이 있었다. 두부를 만병통치약으로 아는 두부 할머니가 희지가 가사 일을 하는 사이 사라진 것이다. 갈 법한 곳은 다 찾아다녔는데 할머니는 없었다. 할머니의 며느리에게는 거짓말까지 한다. 할머니가 주무신다고. 정작 할머니는 며느리와 함께였고 할머니는 희지에게 전화기를 놓고 간 사실을 미안해한다. 며느리는 희지에게 할머니에게 최선을 다하지 말라고 하지만 희지는 그럴 수 없다. 할머니를 사랑하고 돌보는 일이, 그것을 유지하는 일이 자신이 지키고자 하는 삶의 최소한을 지켜내는 일이므로. ​「아무 사이」란 제목은 의미심장하다. 아무 사이가 아니었지만 아무 사이가 아닌 사이가 될 수 있고 아무 사이가 아니라서 객관적인 시선으로 대할 수 있고 아무 사이가 아니라서 상대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이 단편이 좋았던 이유는 희지가 할머니를 찾기 위해 성당, 시장의 두부집을 찾아다니며 ‘이순이’ 할머니라 말하는 것, 할머니의 휴대전화에 ‘희지’라고 저장된 부분이었다. 누군가 이름을 호명하고 기억하는 일은 관계의 시작이며 서로에게 속하는 일이니까. 희지와 두부 할머니 둘 사이의 하루와 관계를 상상할 수 있는 부분. 갑과 을이 아닌, 고용주와 고용인이 아닌 ‘희지’와 ‘이순이’ 둘 사이의 관계는 한결같다. <br><br><br><br>나는 문득 두부 할머니의 휴대전화에 내 이름이 어떻게 저장되어 있는지 궁금했다. 연락처 목록에 들어가보니 ‘희지’라고 저장되어 있었다. 마치 백지처럼. 유희지도 아니고, 아줌마도 아닌 담백한 나의 이름, 희지. 나는 그걸 본 순간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명백히 알아차렸다. (「아무 사이」, 208~209쪽)​표제작 「나의 나쁜 무리」를 보자면 가족이라는 혈연관계에 대한 이야기로 발칙하면서도 유쾌한 유선의 성장소설이다.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손녀 ‘유선’은 할머니를 여사라 부른다. 둘은 할머니와 손녀가 아닌 마치 친구처럼 지내는데 연애에 자유로운 여사는 유선에게 너는 그러지 않고도 살았으면 한다고 말한다. 여사가 살아가는 삶에 스며든 유선에게 그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어쨌든 유선은 성인이 되자마자 여사로부터 도망쳤고 5년이라는 시간 동안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 여사처럼 살지 않기 위해. ​내가 여사와 우리가 되기 위해 애썼던 시절들을떠올리고 있자면 마음이 아프다. 우리가 되기 위해 서로를 받아들이려고 노력했고 그게 잘 되지 않으면 나의 문제라고 여겼던 것 같다. 그렇다면 여사는 어땠을까? 12세의 나를 더이상 애가 아니라고 여겼던 여사는 내가 성장함으로 점점 더 우리가 되었다고 여기게 되었을까? (「너의 나쁜 무리」, 100~101쪽)​하지만 여사와의 관계를 끊어낼 수 없다. 여전히 여사와 한 패가 되어 여사의 과거 남자친구의 현구 아저씨의 굴착기를 찾기 위해 모였다. 유선의 옛 남자친구 이해신과 함께. 과거 현구 아저씨는 굴착기 구매 사기를 당했고 여사는 현구 아저씨에게 돈을 빌려줬다. 연인에서 채무관계가 된 여사와 현구 아저씨처럼 관계는 변하지만 그들이 보낸 시간은 변할 수 없는 걸까. 지긋지긋하면서도 끈끈한 사이, 어찌 보면 가장 완벽하게 아무 사이도 아니자 가장 가까운 사이다. ​그런가 하면 자신이 ‘뚜비’라 부르던 고모와 친구 ‘근정’의 결혼을 바라보는‘문주’의 이야기 「뜰의 미래」 속 관계는 누가 봐도 인정할 수 없다. 뚜비의 재산을 노리고 근정이 접근한 것 같지만 아니었다. 둘은 진정으로 사랑했고 뚜비는 문주가 혼인서약을 해주길 바란다. 이처럼 어떤 관계는 숱한 의심을 받는다. 둘 사이의 내밀한 관계에 대해서는 알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다시 읽어도 여전히 좋은  「소란한 속삭임」은 비밀 아닌 비밀을 속삭이는 모임을 만들어 연대하고 서로를 위로하는 데 새로운 관계와 연결에 대한 희망을 제시한다.​단단하고 영원할 것 같은 관계를 원했던 시절이 있었다. 관계의 매듭이 만들어지기까지 걸린 시간에 비하면 매듭이 풀리는 건 한순간이다. 관계의 지속은 혼자만의 노력만으로 불가능하다. 이처럼 관계 맺는다는 건 타자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이해할 수 없는 누군가를 이행하는 일, 그것을 사랑이라 부른다. 결국 예소연의 『너의 나쁜 무리』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지지하고 응원하는 관계를 갈망하는 우리의 모습이다. <br>*박헤진 평론가의 발문도 좋다.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83/21/cover150/k852137509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8832113</link></image></item><item><author>자목련</author><category>당신과의 포옹</category><title>어쩌다 보니 추석 선물 </title><link>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530567</link><pubDate>Tue, 22 Sep 2026 11:1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530567</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39995&TPaperId=1753056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013/75/coveroff/8936439995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92131166&TPaperId=1753056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136/77/coveroff/k792131166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82130410&TPaperId=1753056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75/8/coveroff/k182130410_3.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좋아하는 것과 첫 만남을 기억할 수 있을까? 그 대상이 사람이라면 첫 떨림 정도는 간직할 수 있다. 누군가는 사진을 찍은 것처럼 선명하게 누군가는 어렴풋이 기억할 것이다.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확신할 수 있는 시기는 언제일까? 어린 시절 집에는 양장본의 세계문학이 있었다. 아마도 영업사원의 화술에 부모님 중 한 분이 구매하셨을 가능성이 높다. 아버지였을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로 아버지는 상술에 약하고 거절을 하지 못하는 성격이셨다. 한 마디로 우유부단한 사람이었다. 세계 전집 가운데 &lt;수레바퀴 아래서&gt;, &lt;유리알 유희&gt;를 기억한다. 읽지는 않았다. 어린 나는 읽지 않았지만 두 명의 언니 중 한 명이 읽지 않았을까 싶다. <br>동화책에 대해 잊히지 않는 기억이 있다. 명절이었는데 고모가 책을 사 왔는데 내가 아닌 사촌에게만 주었다. 나는 그 책이 갖고 싶었는데 내가 울어서 울며 겨자 먹기로 책을 받았다. 나의 기억과 고모의 기억은 다를 수 있다. 아무튼 그런 내가 모여서 책을 좋아하는 내가 되었다. 그리고 국어 선생님. 중학교 3학년 때 만난 나의 선생님.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오는 유일한 나의 은사님. 이제는 같이 늙어가는 사이라고 농담을 건네는 선생님. <br>올여름 카톡으로 메시지가 도착했다. 선생님께서 보내신 기프트 카드였다, 책과 함께 행복하라는 메모도 있었다. 잊고 있다가 책을 주문했다. 책을 고르는 고민은 즐겁다. 읽고 싶은 책이 많고 궁금한 소설도 많아서 어렵다. 스테판 츠바이크의 『어제의 세계』, 윤고은의 『테니스나무』를 골랐다. 『찌니주의보』는 다른 서점에서 주문했는데 어쩌다 장바구니에 담겼다가 결제를 했고 취소를 하려니 벌써 출고 작업 중이었다. 창비의 요즘 표지는 정말 별로인데, 출판사는 모르는 걸까. 여름 독서가 아닌 가을 독서, 어쩌다 보니 추석 선물이 되었다. 연휴에 읽을 것 같지는 않지만 말이다. <br><br><br><br>책은 언제나 좋고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가까운 이가 있는 건 더 좋다. 친구들 가운데 책을 좋아하지 않아도 내가 책을 좋아하는 걸 알고 기억하는 이가 있는 것도 좋다. 책을 좋아하는 친구나 지인에게는 책을 선물하는 일은 즐겁다. 내가 고른 책, 내가 읽고 좋았던 책을 함께 읽고 그것에 대한 짧은 감상을 나누는 것도. 가끔은 내가 좋아는 걸 무작정 내 맘대로 선물하기도 한다. 내가 좋아하는 책, 꽃, 티. 요즘엔 티가 많다. <br>좋아하는 것에 대해 좋아한다고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일은 즐겁다. 좋아하는 것을 기억하는 일, 좋아하는 것을 존중해 주는 일, 좋아하는 것을 응원하는 마음이 곁에 있다는 건 꽤나 행복하다. 좋아하는 책에 대해 맘껏 이야기할 수 있는 여기 알라딘은 친근하고 좋은 공간이다.<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75/8/cover150/k182130410_3.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8750859</link></image></item><item><author>자목련</author><category>목소리 </category><title>나만의 이야기로 나만의 이벤트를 - [이벤트]</title><link>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523473</link><pubDate>Fri, 18 Sep 2026 10:4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52347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81622&TPaperId=1752347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066/86/coveroff/893648162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81622&TPaperId=1752347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이벤트</a><br/>이희영 지음 / 창비 / 2026년 08월<br/></td></tr></table><br/><br>어제의 내가 있기에 오늘의 내가 존재한다. 당연한 사실이지만 우리는 종종 어제의 나를 부정한다. 아니, 어제의 다른 나가 존재했기를 바란다. 열심히 하지 않았던 나를, 실수를 해 창피한 나를, 실패한 나를, 게으름으로 가득했던 나는 사라지기를 바라다.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알지만 말이다.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새로 태어날 수 있다면 전혀 다른 나로 살아갈 수 있다고 여긴다. 그럴 수 없기에 우리는 현재에 충실하고 현재를 사랑해야 한다. 그게 안 돼서 삶이 힘들다. ​이희영의 소설 『이벤트』의 주인공 ‘슬목’과 그가 만나는 사람도 다르지 않다. 사실, 모두가 그러하다. 복잡한 도시와 직장 생활의 어려움을 겪은 슬목은 퇴사하고 호텔 공고를 보고 지원한다. 합격할까 싶었는데 합격 소식을 받고 도착한 곳은 깊은 산속에 위치한 한옥 호텔 ‘담야(談夜)’다. 말이 호텔이지 일곱 개의 객실과 열 명도 안 되는 직원이 전부다. 거기다 대표는 호텔 경영에 관심도 없어 보이는데 직원들의 건의사항은 모두 수용한다. 누가 봐도 이상한 호텔이다. 누가 보면 편하게 일할 수 있는 직장 같지만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걱정이 있다. 손님이 없어도 너무 없으니까. 그래서 오픈 일 주년을 기념으로 홍보 이벤트를 기획하기로 한다. 여러 의견이 나왔는데 진해하기로 한 이벤트는 슬목의 아이디어였다. 개개인의 맞춤형 이벤트를 원하는 고객을 초대하고 그 내용을 홍보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알지도 못하는 호텔 담야에 과연 이벤트를 신청하는 사람이 있을까. 그런데 신청자가 있었다. 기쁜 마음에 호텔 직원들과  술을 마시고 집으로 향하는데 일어나 보니 낯선 곳이다. 옷차림도 수상하고 눈앞에는 경찰이 서 있다. 분명 집에 들어가서 씻고 잠들었는데 집에 가 보니 잃어버린 건 없고 탁자에는 쪽지가 놓여있다. 짧은 내용과 함께 연락처를 남겼다. 과연 누가 슬목의 집에 다녀간 것일까. CCTV를 설치하고 확인하며 놀라고 만다. 그리고 오래전 기억을 떠올린다. 이른둥이로 태어나 부모님의 극진한 돌봄을 받는 시절, 심각한 아토피로 고생하며 놀림을 받던 순간, 원하는 대학에 떨어지고 절망하던 순간에 벌어진 사건까지. 화면에 등장한 이는 바로 자신이었고 메모를 남기는 것도 같은 사람이었다. 슬목은 몽유병 환자일까. ​이상한 일은 뒤로하고 출근을 했고 첫 이벤트에 집중한다. 남자친구에게 여자친구가 프러포즈를 하는 내용이었다. 첫 이벤트로 제격이다. 남자가 프러포즈를 해야 한 하는 건 아니니까. 고객이 원하는 대로 준비를 하고 도착한 손님을 맞이하는데 분위기가 이상하다. 소꿉친구로 시작해 연인이 된 두 사람. 형편이 어려운 남자 친구는 더 이상 여자친구의 배려와 사랑을 받을 수 없었다. 하지만 여자친구의 사랑과 믿음은 확실했다. 담야의 첫 이벤트는 실패했을지 몰라도 고객의 사랑은 실패라 할 수 없다. 훗날 두 사람에게 담야의 이벤트는 가장 멋진 과거가 될지도 모르니까. 그야말로 가장 멋진 이벤트. <br>소설 『이벤트』는 호텔 담야를 배경으로 고객의 사연과 슬목의 과거를 들려주는 이야기가 함께한다. 몽유병이 아니라면 밤 열시 이후 존재하는 다른 슬목은 누구인가. 십이 년 전 스무 살의 슬목은 긴 잠에 빠져 있었는데 그 시간 동안 서른둘의 자신을 만난 것이다. 스무 살의 자신은 서른두 살 미래의 자신에게 쪽지를 남기고 서른두 살의 슬목은 스무 살의 자신을 위해 냉장고를 채우고 주의 사항을 건넨다. 누구에게도 알릴 수 없는 일이지만 스무 살의 자산의 생각과 일상이 나쁘지 않다. 이것은 슬목만 아는 이벤트라 할 수 있다. <br><br><br><br>이처럼 ‘이벤트’는 누군가에게는 멋진 일이 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사건처럼 다가올 수 있다. 담야에 사연을 보내는 고객들도 마찬가지다. 조카의 취직을 축하하는 이모의 사연, 아들의 생일을 축하하는 엄마의 사연도 그러하다. 이모를 떠올리면 조카보다 나이도 많고 아들의 생일이라면 당사자가 함께 호텔을 찾을 거라 여기는 건 하나의 편견에 지나지 않는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이는 다른 존재이고 다른 삶을 살아가니까. 평범하고도 특별한 이야기.​우리가 바라는 '이벤트'는 무엇일까. 스무 살의 슬목에게는 입시의 실패가 커다란 사고였을 것이다. 좌절에 절망하면 주변을 돌아보고 살필 여력도 없었을 테니까. 하지만 서른두 살의 슬목이 돌아본 그 시간은 실패가 전부가 아니었다. 그 시간을 견디고 이겨내고 성장했으니까. 그때의 자신이 존재했기에 스물하나의 삶도 존재했고 지금의 자신이 존재하고 그 곁에는 여전한 부모님의 사랑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저마다의 경험은 삶을 살아가는 풍부한 자양분이 된다는걸. ​인간의 선택은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의 경험에서 나온 나름의 결괏값인지도 모르겠다. 그사이 덧없이 지나가 버린 삶의 중요한 순간들은 또 얼마나 많았을까. 영원히 함께하자던 우정과 다시 만나자는 약속과 온 세상이 환희로 넘쳤던 첫사랑까지. 그 아름다웠던 시간은 지금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하지만 낙엽처럼 시간이 분해되어 삶의 밑거름이 되고 그 힘으로 모두 고된 하루하루를 버텨 내는지도 모른다. 힘듦에도 불구하고 아침이면 눈물을 닦고, 슬픔에도 불구하고 얼굴에 웃음을 그린 채, 아픔에도 불구하고 활기차게 인사를 하며, 이렇듯 아무렇지 않은 척 굳건히 살아갈 수는 있는지도. (267~268쪽)​지난날을 돌이켜보면 어떤 날은 하나부터 열까지 마음에 들지 않고 어떤 날은 조금 괜찮고 어떤 날은 아주 기분 좋은 날이 될 것이다. 삶이란 모조리 실패로 채워지지 않고 성공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물론 저절로 알게 되지 않는다. 소설 속 인물이 겪는 다양한 이벤트처럼 자신만의 이벤트가 있기 마련이다. 지나간 이벤트는 수정할 수 없고 돌이킬 수 없다. 앞으로 다가올 이벤트도 알 수 없다. 다만, 그 모든 것이 나를 채우고 존재하게 만든다는 사실만이 중요하다. 그렇게 조금씩 성장하고 살아가며 나만의 이야기로 나의 이벤트를 만들어 가는 일 말이다.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066/86/cover150/893648162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0668697</link></image></item><item><author>자목련</author><category>목소리 </category><title>인생은 알 수 없고,  - [한낮의 불운 - 2024 공쿠르 단편소설상 수상작]</title><link>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519568</link><pubDate>Wed, 16 Sep 2026 11:1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51956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02137865&TPaperId=1751956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764/92/coveroff/k20213786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02137865&TPaperId=1751956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한낮의 불운 - 2024 공쿠르 단편소설상 수상작</a><br/>베로니크 오발데 지음, 이세진 옮김 / 다산책방 / 2026년 03월<br/></td></tr></table><br/>운이 좋은 편인가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누군가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듣는다면 처음에 가졌던 시선이 안쓰러운 쪽으로 급격하게 변할 테니까. 그러거나 말거나 상관없다. 이제 나는 인생은 그런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고 이야기를 들어줄 누군가를 선택할 안목이 조금 생겼다. 인생은 알 수 없고, 그래서 신비로우며 생을 살아가는 일은 대단하다. 그러니 대놓고 『한낮의 불운』이란 제목의 소설에도 크게 두려워하지 말기 바란다. <br>2024 공쿠르 단편소설상 수상작인 베로니크 오발데의 『한낮의 불운』은 그런 불운이 가득하다. 불운으로 치닫기 쉬운 기질은 일찍부터 두각을 나타냈다는 「오귀스트 바라카가 겪은 낭패들」의 주인공 ‘오귀스트’의 이야기를 해보자면 열여덟 번째 생일 전날 아버지가 죽었다. 사고는 때와 장소를 가리자 않고 방법도 가리지 않고 찾아오니까. 그렇다 해도 아버지가 죽었으면 어머니가 있어야 하지 않은가. 우리의 주인공 오귀스트의 어머니는 진즉 그의 곁에 없었다. 당연 아버지의 장례식에도 오지 않았고 아들에게는 과일 바구니를 보냈다. 폭탄을 받은 기분이라는 오귀스트의 마음이 알 것 같다. 세상에는 우리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하고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니까. 그러나 세상에는 다양한 사고를 지닌 사람이 있으니. 어머니는 어머니 나름대로 사정이 있고 그의 삶이 있었으니라. <br>아무튼 그래도 아버지가 남긴 유산과 어머니가 보내준 약간의 돈이 있었다. 사실 오귀스트의 불운은 차고 넘쳤는데 자잘한 것은 설명하기도 입 아프다. 가장 큰 불운을 꼽자면 음향 기사 국가고시를 낙방이었다. 근데 동명이인이 있어 합격이 바뀐 것으로 6개월이 걸려 정정되었다. 사소한 일상이나 연애의 불운은 오죽했겠는가. 이쯤 되면 내 인생은 왜 이런가 한탄하고 세상과 단절하고 싶을 수 있겠지만 오귀스트는 익숙해진 탓인지 인간에게 큰 기대를 하지고 실망을 하지도 않았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 소리에 매진할 준비가 되었고 스튜디오를 위한 건물을 보려고 부동산 중개인과 만났다. 오귀스트보다 연상이며 딸이 있는 그녀가 바로 ‘에바 코파’로 이 소설집의 중심에 있다. 여기까지만 하자. 딸을 부양해야 하는 에바는 어떻게든 이 계약을 성사시켜야 했고 오귀스트는 건물의 자세한 정보가 아닌 에바에게 이미 반해버렸으니. 그의 불운이 하나 더 추가되었다고 상상해도 나쁘지 않다.<br>이제  「“당신은 성공으로 빛나고 있네요”」 속 주인공 에바의 삶으로 들어가 보자. 파리에서 운전면허 없이 지내는 에바는 지하철, 버스 파업에 퇴근길이 지옥이다. 낮에 지상층에 습기 많은 집을 보고 간 남자 때문에 슬프기도 했다. 맞다. 그 남자는 오귀스트다. 그러나 남의 슬픔을 봐 줄 여유가 없다. 원하지 않고 꿈꾸지 않았던 부동산 중개인으로 생활해야 한다. 이해할 수도 없고 무대에 올릴 수도 없는 희곡을 쓰는 전 남편이 양육비를 보내주지도 않으니까. <br><br><br><br>거기다 딸의 문제도 머리 아프다. 딸 ‘마르그리트’가 자신의 이름을 남자 이름 ‘보브’라고 불러달라고 하질 않나. 공부에 관심도 없으니. 그나마 딸이 요리를 좋아하고 재능을 보여 요리학교에 진학하고 대형 레스토랑에서 실습을 하게 됐다. 이 얼마나 다행인가. 집에 들어오자 마주한 소식은 잘렸다는 딸의 이야기. 딸의 설명을 들으면 충분히 그럴만한 사정인데  매니저는 복귀시킬 수 없다는 답이 돌아온다. 속상해하는 에바에게 딸은 내가 알아서 할 거라고 걱정하지 말라여 엄마를 위로한다. 그리고 에바는 딸을 믿는다. 어쩌면 그거야말로 에바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고 기대할 수 있는 운 인지도 모른다. ​에바의 딸 마르그리트는 왜 이름을 보브로 바꾸고 싶었을까. 그 이유는 「자기에게로 가는 길」에서 만날 수 있는데 다른 독자를 위해 말을 삼가기로. 이처럼 『한낮의 불운』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서로가 서로에게 연결되어 있는 연작 소설집이다. 여덟 편의 소설에서 모두가 주연이자 조연인 것이다. 마지막 「동네의 여왕」 속 ‘릴리’와 ‘조’를 보자면 특히 그렇다. 릴리와 조는 단짝 친구다. 예쁜 릴리는 모두가 좋아하고 추앙하는 소녀, 조는 그런 릴리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기쁘다. 그녀를 지켜보고 기록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릴리이므로. 어느 날 동네를 촬영할 일이 생기고 영화감독이 오디션을 보기로 한다. 릴리와 조는 오디션에 참가하고 당연 릴리가 뽑힐 거라 생각하는데 결과는 릴리가 아닌 조였다. 그 일로 조와 릴리는 결별한다. 그 뒤로 사람 사귀는 일은 어려웠고 결혼에도 실패했다. 하지만 지금은 에바와 카페를 하며 동네의 여왕으로 살고 있다. 조 자신만 그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각각의 소설에서 죽음, 상실, 해고, 이별, 사기 등 굵직한 불운이 등장하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소설 속 인물이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져 있는 건 아니다. 운이란 게 그렇지 않은가. 이렇게 보면 대단한 운이라고 저렇게 보면 별거 아닌 운에 불과하고. 그러니 운 만 쫓는다면 불행한 나날이 될 것이다. 운은 없다가도 있는 것이니까. 좋다가도 나쁘고 나쁘다가도 좋은 것, 인생이란 그런 것이다. 에바의 말처럼 끊임없이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찾기를 반복하는 일 말이다. <br>살면서 잃는 것은 하나뿐인데 그 하나를 끊임없이 잃어가는 거지. 그게 뭐가 됐든. 어떤 느낌일 수도 있고 작은 기쁨이나 희망일 수도 있는 그것을 되찾고는 해. 그것의 메아리라도 되찾았다가 또다시 잃어버리기를 무한 반복하는 거야. (「“당신은 성공으로 빛나고 있네요”」, 42쪽)<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764/92/cover150/k20213786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7649215</link></image></item><item><author>자목련</author><category>그러니까, 때때로 허물어지는 </category><title>신나는 마음이 필요해 </title><link>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507691</link><pubDate>Thu, 10 Sep 2026 17:4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507691</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P402939012&TPaperId=1750769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355/47/coveroff/p402939012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4756&TPaperId=1750769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331/48/coveroff/8937464756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62130536&TPaperId=1750769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030/79/coveroff/k562130536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92131770&TPaperId=1750769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172/78/coveroff/k892131770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도착한 택배 상자를 열기도 전에 기분이 좋아진다. 커피향 때문이다. 조금 신나는 마음이 필요했는데 다행이다. 새로운 커피를 주문했다. 알라딘 커피는 꽤 만족스러운데 이번에도 그럴 것 같다. 커피는 포장도 예쁘다. 사진에는 그 예쁨이 담기지 않았다. 노란, 아니 쨍한 레몬색이라고 하면 맞을까. 아무튼 커피를 내리기도 전에, 마시기도 전에 그 환한 향이 나를 좋은 기분으로 이끈다. 땡스투는 커피장인이 되라는 그분에게. 나도 500g을 살 걸 후회할지도 모르겠다. <br>커피향이 묻었을지도 모르는 책은 박솔뫼가 대상을 수상한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6』, 민음사 편집자 김민경이 방송에서 나와 체호프 단편 「내기」를 소개하기에 찾아서 읽다가 희곡이 궁금해서 『체호프 희곡선』을 주문했다. 정작 가장 반갑고 기다린 책은 김연수의 소설집 『눈 내리는 삼일포』인데 예약 주문이라 10월에나 도착할 것 같다. <br><br><br><br><br>더위가 물러간 날씨는 제법 선선하다. 아직은 민소매를 입고 얇은 이불을 덥는다. 이럴 때 감기가 달려드니 조심해야 한다. 아, 조심할 게 왜 이리 많은가. 가을을 타지 않지만 올가을은 가을을 탈 것 같다. 그저 가을인데 이상하게 그런 생각이 든다. 그러니 미리 헐거워진 마음을 조이기로 한다.<br>생일일 친구와 통화를 했다. 목소리는 반가웠지만 우리가 나눈 대화는 어두웠다. 색으로 따지면 깊게 가라앉은 검은색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서로가 알고 있지만 모른 척 그 깊이에 대해, 그 어두움에 대해서는 모르는 척했다. 굳이 꺼내지 않아도 우리는 그것에 대해 잘 알고 있으니까. 친구의 9월이 무사히 지났으면 하는 마음뿐이다. 친구에게도 조금은 신나는 마음이 필요한데, 커피향 같은 신나는 마음이 곁에 있기를 바란다. <br>시간이 지나 우리가 이 9월을, 이 가을을 이야기할 때 슬퍼하고 쓸쓸하지 않았으면 한다. 미리 염려하고 걱정할 필요는 없지만 자꾸만 마음이 그쪽으로 기운다. 나이가 든 탓이다. <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172/78/cover150/k89213177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1727813</link></image></item><item><author>자목련</author><category>당신과의 포옹</category><title>여름은 끝나지 않고, </title><link>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486433</link><pubDate>Tue, 01 Sep 2026 12:4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486433</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12932614&TPaperId=1748643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4403/76/coveroff/k912932614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72833255&TPaperId=1748643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1955/43/coveroff/k372833255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92130907&TPaperId=1748643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59/35/coveroff/k092130907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여름이 시작될 무렵부터 여름에 대한 걱정이 자란다. 여름을 채울 폭염과 높은 습도를 체감하기도 전에 이미 여름의 한복판에 도착한 듯 겁을 낸다. 언제부터 여름은 이런 계절이 되었을까. 그래서 여름이 되면 여름의 즐거움, 여름의 맛을 생각한다. 더위를 많이 타기에 여름보다는 겨울을 더 선호하지만 여름의 매력에 끌리기도 한다. 빠져드는 여름의 저녁, 뒤척이는 여름밤, 쏟아지는 불평과 불만, 그것은 여름을 살아내는 증거이자 견디는 힘이기 떄문이다. 그러니 김연수의 여름에 반할 수밖에 없다. ​나는 김연수의 글을 읽기 전 제주의 여름을 모르고, 제주의 세화를 모른다. (세화, 여름의 이름)을 읽고 그 바다를 상상한다. 언젠가 그 바다에 닿을 거란 기약은 할 수 없지만 그 바다 ‘세화’를 품을 수 있다. 『계절 쓰기』는 제목 그대로 여덟 명의 저자가 한 계절을 맡아 쓴 이야기다. 두 번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만날 수 있다. 같은 계절이지만 그 느낌은 다르다. 당연하겠지만 말이다. 나는 여름을 좋아한다고 말하지 못하는데 이상하게 매번 여름을 쓴 글을 지나치지 못한다. 아니, 정확하게 김연수의 여름이다. ​소설가 김연수가 들려주는 세화의 여름, 제주의 바다. 현무암, 김영갑, 오일장, 제철 한치의 맛을 읽는 일은 여름의 풍경이자 제주 세화에서만 만날 수 있는 여름이다. ‘세화’란 가는 꽃이 아니라 다랑쉬오름에서 바닷가까지 이어지는 가늘고 긴 수림지대를 뜻하는 이름이라는 것까지. 김연수가 기억하는 세화에서 보낸 그 여름밤은 다음에 찾은 그것과 결코 같을 수 없다. 매년 변화하는 여름, 살아있는 생물처럼 요동치는 여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우리의 여름은 지나가고 있습니다. 바람과 구름이 지나가듯이. 매일의 날씨가 달라지듯이. 빛과 그림자가 교차하고, 낮과 밤이 번갈아 찾아옵니다. 낮은 밤을 모르고 밤은 아침을 알지 못하지만, 여름은 그렇게 지나가고 또 돌아옵니다. (세화, 여름의 이름), 24쪽​겨울이 시작되면 시인으로서 휴가 신청을 한다는 김소연에게 겨울은 (미현실의 방)이다. 사람을 거의 만나지 않고, 시적 언어 따위를 밖으로 꺼내지 않아 서서히 지워지고 있는 것 같은데 그게 좋아진다는 시인. 시인이 아닌 오롯이 김소연으로 지내는 계절. 그것은 어쩌면 시인으로 표현할 수 있는 언어의 모든 것을 키워내는 단단한 동면의 시간이 아닐까 싶다. 시인의 어린 시절 추억이 가득한 경주를 만나는 일도 즐겁다.<br><br><br><br>식물분류학자 허태임의 봄 이야기 (봄의 눈)은 팽나무처럼 자신을 지탱해 준 할머니를 향한 그리움으로 가득하다. 할머니를 통해 식물의 이름을 알고 순과 나물을 어떻게 먹는지 배운다. 고사리 새순으로 봄이 등장하고 자신의 엄마로부터 그것을 꺾는 걸 배운 할머니. 허태임의 봄은 자신을 돌보고 보살핀 할머니라는 겨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한다. ​나무는 겨울눈을 안전하게 만들고 나서야 낙엽을 떨어뜨린다. 이파리가 연둣빛을 상실한 채 말라간다고 해서 나무가 발달을 멈추는 건 아니다. 더 치밀하게 세포를 만드는 방식으로 겨울을 대비한다. 깊이 생각하거나 몰입하듯이 자신의 내면을 돌보는 일이겠지. 그건 생존 전략인 동시에 일종의 신성한 의식일 수도 있다. 겨울을 무사히 건너기를 빌고 봄의 새순을 희망하는, 나무 세계의 동제 같은 것. (봄의 눈), 73~74쪽​문학평론가 윤경희의 가을 쓰기 (장미철)에서 만난 장미 기록과 직겁 찍은 사진은 신기하면서도 특별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장미에 대해서 새로운 걸 알게 되었다. 내게 5월의 장미로 각인된 장미가 한 해 여러 차례 개화하는 ‘개화 반복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 어느 계절에 장미를 만나고 놀라지 말기를. 장미에 사로잡혀 장미 시력이 생겼다는 저자의 말이 재밌다. 장미를 보면 저자가 자동으로 떠오를 것 같다. ​번역가 홍한별의 가을, 인류학자 전의령 여름, 작가 김지승의 겨울과 은유의 봄도 각별하다. 저마다의 기억과  선명함으로 남은 계절,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나만의 방에 저장된 계절의 특별한 장면이 있기 마련이니까. 그래서일까. 가만 생각해 보면 나에게 여름은 아픈 계절인데 그래서 애틋한 것 같기도 하다. 아주 오래전 여름의 시작엔 엄마의 죽음이 있었고 어느 여름에 나는 두 번이나 병실에서 긴 시간을 보냈고 커다란 여름의 기억은 큰언니와의 작별이다. 봄, 가을처럼 짧아서 아쉽고 붙잡고 싶은 계절이 아니라 여름은 어떻게도 건너뛸 수 없는 계절이 되었다. 아마도 나는 여름이라는 계절이 아니라 그 안의 나를 안쓰럽게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김연수의 『너무나 많은 여름이』를 좋아하고 좋하며 한정원의 『내가 네번째로 사랑하는 계절』을 좋아하는 것이다. <br>‘그러므로’, 너무나 많은 여름이, 너무나 많은 골목길과 너무나 맣은 산책과 너무나 많은 저녁이 우리를 찾아오리다. 우리는 사랑할 수 있으리라. 우리는 좋아하는 것을 더 좋아할 수 있으리라. ( 「너무나 많은 여름이」, 281쪽)<br>나는 여름의 하늘을 조금 사랑한다. 당당하고 등등한 푸름을, 푸름을 가벼이 저버리고 소나기를 내리는 패기를, 패기를 무효하는 천진한 무지개를. 「조금 사랑하기」, 일부)<br>조만간 여름은 끝날 것이다. 누군가의 마음에 이미 가을이 도착했을지도 모른다. 돌고도는 계절, 다음 계절이 있다는 게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는 일은 기록 속에만 존재하게 될지도 모른다. 계절을 읽는 일, 계절을 사는 일을 좀 더 소중하게 여겨야 하는 이유다. <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59/35/cover150/k09213090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7593513</link></image></item><item><author>자목련</author><category>그러니까, 때때로 허물어지는 </category><title>능숙한 여름은 없다 </title><link>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463133</link><pubDate>Fri, 21 Aug 2026 09:0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463133</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4756&TPaperId=1746313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331/48/coveroff/8937464756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81657&TPaperId=1746313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065/71/coveroff/8936481657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62130536&TPaperId=1746313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030/79/coveroff/k562130536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5070&TPaperId=1746313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10/20/coveroff/8932045070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컴퓨터가 아프다. 심각하게 아프다. 오래 사용했으니 그럴만하다. 바꿔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알면서도 결정은 쉽지 않다. 지금 이렇게 잘 쓰고 있지 않은가. 내가 필요한 것들은 불편 없이 사용할 수 있으니. 고민을 더 해야 할 것 같다. 그러다 정작 써야 할 때 켜지지 않으면 곤란할 텐데, 알면서도 조금 미루기로 한다. 새로운 컴퓨터와의 만남을 미룬다.​다시 비가 온다. 폭염은 사라지지 않았고 습한 날들이 힘들다. 제법 선선해졌다고 생각한 것 오산이었다. 구름을 담았던 곳에서 비를 담았다. 비는 드러나지 않았고 나만이 비라는 걸 알 수 있다. 거기 비가 있다는 것, 그건 나만 아는 비밀처럼.<br><br><br><br><br>능숙한 여름은 없다. 어제 지난달 관리비 고지서를 확인하면서 전기 요금을 보고 놀랐다. 최고였다. 그만큼 이 여름이 더웠고, 그만큼 나는 더위를 피할 수 있었다는 증거였다. 그러니 불평하지 말라고. ​친구와 통화를 하면서 추석에 대한 이야기를 했고 꿈에는 다른 친구가 나왔다. 모임을 하는 친구들과 다 같이 캠핑을 가자고 제안했다. 며칠 전에는 또 다른 친구가 나오기도 했는데, 아마도 나는 그들이 보고 싶은 모양이다. ​그래서 이런 시가 눈에 밟힌다. 보름이 되면 나도 친구에게 달을 보라고 말해야지. 잊어버리지 않는다면 말이다. <br>보름달 떴다고나가서 보름달 보라고​남쪽 친구가 전화를 했다전화기 들고 밖으로 나갔더니​신도시 아파트 단지 사이 밤하늘샛노란 밤의 눈동자​보름달 보이지?그래, 보여!​그렇구나, 우리 눈빛이지금 저 달에서 만나는 거로구나​폭풍 찌는 열대야 삼아밤이 켜졌다, 밤이 커졌다(「밤이 켜졌다」, 전문)​<br>밤이 부족하다우리에게는​이 도시에서는밤이 부족하다마음에게도 턱없이​저 키 큰 나무들작은 모래알 한 알새들 물고기에게도밤하늘 저 높은 별들에게도​크고 많아아 할 것이 많지 않다작고 적어야 할 것이 많지 않다(「밤이 부족하다」, 전문)​<br>너무 열심히 사느라 밤이 부족한 친구에게, 너무 바쁘게 사느라 밤인 줄도 모르고 지내는 친구에게. 새벽까지 잠들지 못하는 이들에게 충분한 밤이 내렸으면 한다. 밤이 내려와 밤을 느끼고 밤과 지내며 밤을 껴안고 고운 잠이 들기를. 수고한 이들에게 편안한 밤이 가득했으면 한다. 그 밤을 토닥여 줄 책을 고른다. 아, 읽고 싶은 책은 왜 이리 많은가. <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10/20/cover150/893204507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5102051</link></image></item><item><author>자목련</author><category>당신과의 포옹</category><title>특별한 애정을 담은 </title><link>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457234</link><pubDate>Tue, 18 Aug 2026 10:0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457234</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62139637&TPaperId=1745723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535/87/coveroff/k462139637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82855&TPaperId=1745723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8136/31/coveroff/8954682855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22834326&TPaperId=1745723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2191/5/coveroff/k422834326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32135581&TPaperId=1745723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417/94/coveroff/k932135581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나만 아는 단어』란 제목에 끌렸다. 그러니까 나만 아는, 나만 알고 싶은, 특별한 단어에 대한 이야기. 그러나 그것은 뭔가 비밀스럽지만 평범하고 모두에게 다 열린 단어였다. 작가, 시인, 번역가 10명이 각가 자신만의 다섯 단어를 소개한다. 좋아하는 작가의 글에서 이미 만난 단어, 독자라면 그 작가가 어떤 단어를 즐겨 사용하는지 알 법도 하기에 그걸 발견하는 기쁨도 누릴 수 있다. 일례로, 김화진의 주머니라든가, 정용준의 산책 같은 것이다. 그러니 작가, 시인, 번역가의 개인적인 생각을 들려주는 책이다.  그게 무엇이든 나만의 의미를 지니면 특별하게 다가온다는 걸 알기에 이 책에서 만나는 모든 단어는 그들로부터  나에게로 건너 와 나만의 것이 될 수도 있다. ​모두에게 알려진 물건, 특별할 것 없는 것들이 의미를 갖는다는 건 어떤 소중한 기억이나 위로가 있을 때 가능할 것이다. 보편적으로 그렇다. 아니면 나만의 언어를 갖기 위해 특별하게 관리하게 위해 남들과 다른 이름을 붙이거나 의미를 부여한다. 사전적 의미를 떠나서 내가 이름 붙이기 나름인, 내가 사용하게 편리한 그런 단어들도 있을 수 있다. 그래서 목록을 보면서 끌리는 단어, 좋아하는 단어를 살펴보며 그것을 먼저 만나면 재밌는 읽기가 될 것이다. ​내 경우 정용준의  소설 『유령』이나 「선릉 산책」이 떠올라서 정용준, 김화진의 소설 「사랑의 신」에서 만난 ‘주머니’란 단어가 기억나서 김화진의 단어부터 찾았다. 소설에서 사람은 주머니 같다는 김화진의 말은 뭔가 호기심을 불러오니까. 익숙한 느낌이면서 내가 모르는 의미를 만나 새로운 단어를 추가된 것만 같았다. 그러나 정작 마음을 붙잡은 건 시인이나 번역가의 단어였다. 시와 시인에 대한 알 수 없는 열망 같은 게 작용한 것이다. ​시를 쓸 때마다 느끼는 사실이지만, 시 쓰기도 실은 고원을 산책하는 일 같다. 시를 쓰는 동안 어느새 도달한 고원은 시가 끝나는 동시에 서서히 흐려지다가 곧 그 고도와 넓이를 상실하고 만다. 그래서 시인은 늘 불만족 상태에 머무르며 다음 고원을 기다린다. 고원이 사라진 곳에서 다음 고원을 기다리는 동안 삶은 부질없이 흘러간다. 어떻게 하면 고원의 상태에서 좀 더 오래 머무를 수 있을까? 그것이 요즘 나의 화두다. (황유원 「고원」 중에서, 38쪽)​고원이 사라진 곳에서 다음 고원을 기다리는 동안 삶은 부질없이 흘러간다는 시인의 시간을 대변하는 것 같다고 할까. 잘 알지도 못하지만 그렇게 느껴진다. 황유원의 작품은 정확하게 읽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김선형의 번역가의 책은 읽은 기억이 있어 왠지 안도한다. 번역가의 단어를 읽으면서 원서를 읽으면 나도 그런 느낌을 가질 수 있을까 상상하게 된다. ​어쩐지 pang은 내 안 어딘가에서, 가슴에서, 혹은 뱃속에서, 불시에 팡, 터지는 얼음 폭탄 같다. 움찔 소스라쳐 아연하는 사이, 수백만 조각으로 비산한 날카로운 얼음 파편이 혈류에 침투해 온몸으로 퍼진다. 서서히, 아주 서서히, 미소한 얼음 조각들이 흐느끼며 녹아내린다. (김선형 「Pang (n.)」 중에서, 130쪽)​『나만 아는 단어』에서 가장 좋았던 건 번역가 정수윤의 글이다. 일본어 루리에 대한 글에서 그는 자신의 이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릴 적 돌아가신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 수윤이란 이름에 담긴 애정에 대해서. 애틋하고 애틋한 그 애정을 응원하고 응원받는다. <br><br><br><br>이름은, 이름을 붙인다는 것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어떤 존재가 언어라는 상징을 통해서 모두와 함께 약속되는 순간이다. 그 모두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며 존재하는 사람들이고, 나에게 이름이 붙는다는 것은 그 무한한 사람들로부터 내가 특정되는 일이다. 그들이 나의 이름을 부를 때, 그들이 내 이름의 뜻을 알든 모르든 나는 내 이름이 품고 있는 힘의 파장을 받게 된다. 나의 이름이 불릴 때마다 나는 그 이름으로부터 힘을 얻는다. 누군가가 나의 이름을 기억하고, 떠올리고, 말하고, 쓰고, 부를 때마다 나는 스스로 갈고닦고자 하는 열망이 조금씩 더 해진다고 믿는다. (정수윤 「루리」 중에서, 208~209쪽)​이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레 주변의 사물이나, 내가 아끼는 단어에 대한 생각이나 기억이 이어진다. 내가 시집을 고를 때, 몇몇 시어에 끌린다는 것. 그건 단순히 좋아하는 것 이상으로 나에게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우산, 의자, 풍경이 그러하다. 종종 그것들에 대해 생각하고 글을 쓰기도 하는데 부끄럽지만 나는 우산에 대한 이런 글이 좋다. ​우산을 열다, 우산을 펴다, 우산을 접다, 우산을 개다. 말장난 같은 말들이 주르륵 따라왔다. 이처럼 열고 닫을 수 있다는 건 간편하고 편리하구나 생각했다. 그저 버튼 하나만 누르면 자동으로 열리는 우산, 마음에는 그런 버튼이 없다는 게 다행인지 불행인지. ​마음을 여는 건 정말 어렵다고 한다. 연다는 건 문이 있다는 말인데, 그럼 문의 위치와 입구를 찾는 게 먼저다. 그렇게 찾아 연 문이 닫힌다면 얼마나 무섭고 두려울까. 물론 마음의 문을 닫는 것도 그렇다. 처음부터 활짝 열린 마음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마음도 있으니까. 어렵게 열린 마음이니 그 마음을 닫는 일은 얼마나 더 어려울까. 마음에는 길도 없고 마음에는 이정표도 없고. ​우산 안으로 들어와야 볼 수 있는 우산의 내부, 일정하게 자리한 우산 댓살처럼 안으로 들어와야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밖에서 짐작하는 것과는 다른 것들이 많다. 그러나 함부로 예측하고 예단하면 안 된다. 그중 가장 어려운 게 마음이다. 마음 안으로 들어온다는 것, 마음 안에서 마음을 보는 일. (우산을 정리하다 쓴 글)​다시 좋았던 소설가의 소설을 펼치고 시인의 시를 찾는 일로 확장된다. 하나의 책이 다른 책으로 이어지는 기분 좋은 읽기. <br>어쩌면 그의 삶은 오해되고 왜곡되었는지 모른다. 아니, 우리를 속이고 있는지도 모르지. 솜씨 좋은 작가처럼 거짓을 진짜처럼 혹은 진실을 가짜처럼. 영혼은 편하게 침대에 눕혀놓고 하루종일 내 손을 잡고 유령처럼 산책하다 집에 돌아간 것일지도 모른다. 아닌가. 하지만 그럴 수도 있지. 모르는 일이니까.「선릉 산책」 중에서 <br>사람을 상상하는 일. 겉으로 보이는 행동이 전부라고 애써 믿으면서도 그 안을 조금이나마 헤아려보는 일. 나는 그런 걸 그만둘 수 없는 것 같아. 사람은 주머니 같다. 나는 그 안이 궁금해. 「사랑의 신」 중에서 <br>특별하면서도 특별하지 않고 공통적이면서도 공통적이지 않은 단어의 이야기. 좋아하는 작가가 소중하게 다루는 단어를 함께 기억한다는 건 작가와 알게 모르게 연결된 기분이다. 그래서 이런 책은 지나치기 힘들다. <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417/94/cover150/k93213558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4179402</link></image></item><item><author>자목련</author><category>목소리 </category><title>걷기와 움직임  - [영릉에서 - 박솔뫼 소설집]</title><link>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448158</link><pubDate>Thu, 13 Aug 2026 11:0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44815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22794&TPaperId=1744815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174/41/coveroff/893742279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22794&TPaperId=1744815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영릉에서 - 박솔뫼 소설집</a><br/>박솔뫼 지음 / 민음사 / 2025년 09월<br/></td></tr></table><br/><br>바람의 부드러운 숨결, 나란히 걷는 두 사람, 잠깐의 만남과 긴 이별. 박솔뫼의 소설집 『영릉에서』을 읽고 내가 떠올린 것들이다. 박솔뫼의 소설을 오랜만에 읽었는데 내가 기억하는 이미지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쩌면 내가 박솔뫼를 그리는 장면이 그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박솔뫼는 여전히 공간과 시간, 그리고 기억을 소중하게 다루고 싶어 하는 것 같다. 뭐, 그렇지 않더라도 상관없다. 박솔뫼가 쓰는 소설과 내가 읽는 소설의 끝이 같을 수는 없으니까.​박솔뫼는 사건이나 서사가 아닌 한순간을 포착해 그것을 시작으로 조금씩 원을 만든다고 할까. 그래서 반복이 이어지고 어떤 장면은 중첩되고 과거와 현재가 오가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표제작이라 할 수 있는 「원준이와 정목이 영릉에서」는 원준이는 정목이와 정목이 아버지의 트럭을 타고 계속에 놀러 간다.  그러다 정목이 아버지가 먼저 떠난 걸 알고 걸어서 집으로 돌아간다. 그 과정에서 돌아오는 길에 만난 어른들에 대한 기억. 그런데 묘한 건 이 소설이 아름답고 좋으면서도 울컥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다. 그때의 기억은 남았지만 연락은 닿지 않는 관계가 되었다는 것. 평범하고도 당연한 일. 왠지 모를 쓸쓸함과 슬픔의 조각이라고 할까. ​정목이와 원준이가 정목이 아버지를 따르는 것처럼 정목이와 원준이를 따르는 것이 있었는데. 뒤를 돌아보면 알 수 있겠지만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햇빛과 선명한 파란색의 하늘은 그대로이고 그것은 어느 다른 날의 햇빛과 하늘과 구름과 같다. 그 뒤를 따르는 것은. 어느 날은 뒤를 돌아보았는데 그날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원준이와 정목이 영릉에서」, 13쪽)​박솔뫼는 특정 장소 대해 말하기를 좋아하는 것 같은데 영릉이 그러하듯 나머지 단편에서도 독자를 장소로 이끈다. 장소에 대한 에피소드가 아닌 그곳에 도착해서 마주한 기억, 그러니까 그곳에서 만난 이들과 함께 보낸 시간을 꺼내 들려준다.  「천사가 우리에게 나타날 때」의 부산, 「극동의 여자 친구들」속 중부시장,  「아오모리에서」에서는 아오모리다. 그래서 소설이 아닌 일상의 기록처럼 읽히는 부분도 많다. ​김연덕의 『아오리 아니고 아오모리』 때문에 「원준이와 정목이 영릉에서」를 읽고  「아오모리에서」를 다음으로 읽었다. 「아오모리에서」는 9월의 아오모리에서 많은 이들을 만난 이야기인데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것처럼 사람들이 등장하고 사라지고 새로운 사람이 등장한다. 마치 꿈같기도 한데 덕분에 나는 9월에는 아오모리가 생각날 것 같다. ​나의 얼굴을 아는 사람들을 느리게 외우며 어떨 때는 누군가를 알 것 같다고 생각하지만 대개는 누구도 잘은 알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하지만 그것이 슬프지 않았고 기꺼웠다. 나에게 얼굴을 보여준 사람들 내 얼굴을 보아주는 사람들 역시 나와 같지 않을까. (「아오모리에서」, 188쪽)<br><br><br><br>이 소설집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 ‘움직임 연구소’를 중심으로 한  「극동의 여자 친구들」, 「스칸디나비아 클럽에서」, 「투 오브 어스」 세 편의 연작소설이다.  「극동의 여자 친구들」의 화자 강주는 중부 시장에서 커피 배달 아르바이트를 한다.  오가며 마주한 간판, ‘움직임 연구소’. 움직임을 연구하는 곳이 있다니. 정말 흥미롭다. 밝은 눈을 가진 이만이 그곳을 발견하고 방문할 것 같은 느낌이다.  세 단편의 화자는 움직임 연구소의 워크숍에서 자신이 움직이는 방식에 대한 설명을 말하고 그것을 사람들 앞에서 구현한다. 자신이 움직이는 방식에 대한 설명이라니. 나의 움직임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기에 상상하기 어렵다. 내 몸을 내 의지대로 움직이는 것, 혹은 잘못된 자세 같은 것만 떠오를 뿐이다. <br>세 편의 이야기는 ‘움직임 연구소’란 공통분모가 있지만 그보다 작가가 더 중요하게 말하고 싶은 건 그들이 오가며 마주하는 공원과 지금은 부지로만 남은  ‘미극동공병단’에 대한 것이다. 1950년대의 공간과 그곳에서 있었을 사람들의 시간을 기억하는 것. 잊히고 사라지는 공간을 기억해야 하는 의무 같은 것이라고 할까. 미극동공병단 근처를 걷고 공원에서 보드를 타는 사람들을 지켜보며 나누는 이야기들. 매일 걷고 스치는 지나는 공간이 지닌 기억을 헤아리고 회상한다고 할까. <br>다른 소설이 주로 장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면 「만나게 되면 알게 될 거야」는 조금 다르다. 기정은 자신의 집을 친구에게 내어주며 서원의 집에서 지내게 된다. 서원은 기정과 지내면서 그를 좋아하는 마음이 커진다. 기정이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고 서원이 기정과 연결된 사람들과 만나며 기정을 향한 마음은 변화한다. <br>우리에게 일어나는 일 자신의 머리카락과 이마 눈썹과 피 눈물과 피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생각한다는 것이 마치 바람의 호흡을 살피고 구름과 별의 움직임을 헤아리는 일처럼 중요하였고 서원이는 자신과 주변의 일들을 하나씩 천천히 생각했다. (「만나게 되면 알게 될 거야」, 162쪽)<br>모든 사랑은 언제나 늦게 찾아오며 이미 시작되어 있다는 것, 이미 시작되었고 다른 세계에서 찾아온다는 것을, 또한 사랑은 어긋나며 어긋난 대로 반복된다는 것을 깊이 이해해 버리고 말았다. 그것이 서원이가 사랑을 만나고 알게 된 사실이며 콧물에서 벌어진 일이자 서원이의 몸과 마음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만나게 되면 알게 될 거야」, 167쪽)​소설집 전체를 관통하는 걷기를 생각하면 서원이 기정을 향한 마음의 걷기의 속도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좋아하는 마음이 커져서 빠르게 걷는 마음, 그리고 조금 멀어져 천천히 걷는다. 마침내 그 방향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돌아서는 마음의 걷기. 그것은 마음의 움직임이라 할 수도 있다. 걷기와 움직임, 이 소설은 그렇게 연결된다. ​소설을 읽으며 종종 검색을 했다. 영릉, 중부 시장 건어물, 명동 성당, 부산. 그리고 박솔뫼 작가를 검색했고 단편 「사과」로 올해 이효석 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사과」가 궁금해졌다. 이 소설집을 읽지 않았다면 관심을 갖지 않았을 것이다. 시작은 「원준이와 정목이 영릉에서」가 좋았다는 blanca 님의 댓글이었다. 「사과」로 이어지는 것까지 마음이 흡족하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174/41/cover150/893742279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1744151</link></image></item><item><author>자목련</author><category>당신과의 포옹</category><title>계속 좋아하기 </title><link>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444675</link><pubDate>Tue, 11 Aug 2026 15:4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444675</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5577&TPaperId=1744467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29/28/coveroff/8932045577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92130907&TPaperId=1744467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59/35/coveroff/k092130907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지난 주말이 세계 고양이의 날이라고 해서 고양이 컵이 생각났다. 꺼내놓고 보니 흡족할 정도로 반가웠다. 집사는 아니지만 나는 고양이가 좋다. 아무튼 세계 모든 고양이가 행복하면 좋겠다고 잠깐 생각했다. 주말까지 무지 덥더니 어제부터는 뭔가 기운이 달리진 것 같다. 급기야 어젯밤에는 에어컨을 켜지 않고 잠을 잤다. 물론 긴 잠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8월에도 책을 샀다. 사는 건 즐거우니까. 그게 책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고르고 골라 주문한 두 권의 책은 소설과 에세이다. 김화진의 소설집『텅 빈 마음 가진 채로 』과 김연수의 에세이가 있는 『계절 쓰기』다. 김화진의 소설을 생각하면 많이 읽지 않았지만 마음을 다루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래서 관심을 갖게 된다. <br>사실, 내가 큰 목소리고 이야기하고 싶은 건 김연수의 글이다. 『계절 쓰기』에서도 김연수는 여름에 대해 썼다. 어느 여름일까, 어떤 여름일까. 읽기도 전에 흥분된 상태. 그러면서, 이제 김연수의 에세이나 소설이 한 권의 책으로 묶여 나올 것 같은데 아직인가 싶은 생각을 해본다. <br><br><br><br>김연수는 계속 좋아하는 작가 중 하나다. 계속 좋아하는 마음에 흠집이 나지 않아 다행이다. 괜히 그런다. 계속 좋아하다, 계속 읽다가 이제는 읽지도 않고 신간이 나와도 지나치는 작가가 많아졌으니까. 계속 좋아하기로 마음을 먹지 않아서 그렇게 된 걸까. 계속 좋아하고 싶은데 그게 잘 안되는 건 글 때문일까, 아니면 나의 변심 때문일까.  그러니까 계속 좋아하는 건 무척 쉬운 일 같으면서도 어려운 일이다. <br>고양이를 계속 좋아하고 싶다. 어쩌면 그냥 바라볼 수 있어서 그럴 것이다. 내 책임 안에 두지 않아서 그저 사랑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고 여겨서. 책임이 부여된다면 더 크게 사랑하는 게 가능할지도 모른다. 계속 좋아하는 일은 혼자만의 사랑이라 가능하면서도 그와 같은 이유로 계속 좋아하지 않을 수 있다. <br>계속 좋아하기를 계속 생각한다. 계속 좋아하기, 계속 좋아해서 끝까지 좋아하기. 계속 좋아하고 좋아해서 계속이라는 말이 필요 없어지면 굳이 좋아한다는 말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아직은 계속 좋아하는 중이다. <br>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59/35/cover150/k09213090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7593513</link></image></item><item><author>자목련</author><category>목소리 </category><title>가난의 온도  - [일인칭 가난 - 그러나 일인분은 아닌, 2023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title><link>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433338</link><pubDate>Wed, 05 Aug 2026 09:4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43333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02936242&TPaperId=1743333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2956/26/coveroff/k20293624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02936242&TPaperId=1743333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일인칭 가난 - 그러나 일인분은 아닌, 2023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a><br/>안온 지음 / 마티 / 2023년 11월<br/></td></tr></table><br/><br>시골에서 나고 자란 나는 누군가 집이 없을 수 있다는 걸 이해하지 못했다. 학업이나 직장을 위해 월세, 전제를 얻는 경우를 제외하곤 누구나 집이 있을 거라 여겼다. 풍족하지 않았으나 한 번도 우리 집이 가난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가난 자체에 대해 몰랐던 게 맞다. 어른이 되어서도 타인의 삶과 비교하지 않았다. 그냥 나 사는데 바빴으니까. 실존과 생존이 걸린 이들에게 부동산, 주식의 문제는 다른 세상의 삶이니까. 20여 년간 국민기초생활수급자로 살아온 1997년 생 저자 안온의 『일인칭 가난』은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는 가까운 동생과 이야기를 하다가 읽어야겠다고 생각한 책이었다. ​저자는 어린 시절 초등학교 방학식이 끝나면 멸균우유를 받아 집에 가는 것을 시작으로 자신의 삶을 이야기한다. 가난을 말한다. 어린아이에게 수급자란 말은 어떻게 다가왔을까. 교통사고로 눈이 안 보이는 아빠, 사고로 정규직으로 일하지 못하는 엄마의 상황을 어린아이에게 확인받는 담당자. 가난을 증명해야 필요한 것을 지급하는 시스템의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복지센터 대신 그들이 사는 곳에 직접 나가 보고 실사하는 게 마땅하지 않은가. 인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냉대와 동정의 시선을 거두지 않는 시선이 참 싫다. ​가난이 ‘진짜’가 아닐 수가 있나. ‘가’짜 가난을 만나면 따지고 싶다. 할 짓이 없어서 가난을 도둑질하느냐고, 하다하다 가난마저 진정성 배틀을 붙이는 거냐고. (18쪽)​미래를 그리는 입주자와 기초생활수급자가 동시에 거주하는 주공 아파트에 살면서 저자가 낡은 아파트를 허물고 새 아파트를 짓는 재개발은 나쁜 것이라고 인식하는 건 당연하다. 임대 아파트 주민들의 출입구가 따로 있다는 사실에 경악한다. 수급자에서 벗어나는 게 가장 좋은 일이지만 제도적으로 보면 그건 너무 힘든 일이다. 노동 소득(월급, 아르바이트)가 최저생계비를 넘기면 수급자에서 탈락되고 그러면 기용 생활비가 줄어드니까. ​저자는 가난에서 탈출하는 방법은 공부뿐이라고 여겼고 공부도 잘했다. 엄마는 부산의 사범대학에 입학하기를 바랐지만 글을 쓰고 싶었던 저자는 대구의 국문학과를 선택한다. 서울에 있는 대학에 합격했지만 국립대라는 가성비를 지켜야 했다. 장학생으로 입학했지만 생활비는 별개의 문제였다. 계속해서 장학금을 받기 위해서는 성적 기준을 맞춰야 했지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유지하기란 정말 힘들었을 것이다. <br><br><br><br>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들었던 성차별에 대한 부분은 경악스럽다. 왜 화장을 안 하고 다니냐는 사장이나 손님의 성희롱을 차단하는 게 아니라 슬기롭게 빠져나갔다고 칭찬하는 점장. 그뿐 아니다. 석사 첫 학기에 저자가 교수와 동료에게 받는 질문은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부모님 재력, 남자친구가 있는지, 결혼 및 임신 계획이 있는지. 대학원 교수씩이나 된 사람이 이런 질문을 하다니. 일부겠지만 다른 대학원 교수는 어떤 질문을 하는지 새삼 궁금해진다. ​저자의 가족사는 불행하다. 할머니와 알코올중독 아버지의 자살은 저자가 선택할 수 없는 것이다. 술에 취해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를 병원에 입원시키기 위해 돈을 모았던 저자에게 도움의 손길은 없었다. 할아버지와 고모는 남이나 다름없었다. 저자에게 가족은 엄마와 같은 환경에 놓인, 엄마 친구의 딸뿐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아는 건 우리뿐’(87쪽)이라는 말은 너무도 적확하다. ​나는 가난을 말할 때 가족을 맨 뒤에 배치한다. 가족이 그 모양이니까 그렇게 됐지 따위의 말을 듣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불행한 가족과 가난을 세트 취급하는 클리셰가 지겹다. 내 가난은 가족이 아니라 교통사고, 알코올중독, 여성의 경력 단절과 저임금, 젠더폭력 및 가정폭력과 세트였다. 날 불행하게 했던 것은 교통사고, 알코올중독, 여성의 경력 단절과 저임금, 젠더폭력 및 가정폭력이(었)다. (116쪽)​이 책이 의미 있는 부분은 바로 이것이다. 사회적 가난을 보는 시선, 엄마를 비롯한 아르바이트나 일터에서 만난 여성 근로자를 통한 페미니즘 관점은 특별하다. 대학원에서 이소호의 시집 『캣콜링』과 조남주의 소설 『82년 생 김지영』의 발제에 대해 페미니즘 문학이 문학성이 낮다고 지적하다 사과하는 장면은 한편으로 통쾌하기도 하다. 물론 저자가 남성이라면 또 다른 시선으로 접근할 수도 있겠지만. ​『일인칭 가난』은 저자의 가난을 통해 사회적 가난의 굴레와 다양한 제도의 한계, 어떻게 사회가 가난을 차별하고 억제하고 억압하는지 자세하게 보여준다. 철저하게 신청주의인 한국의 복지에 대해서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안내하는데 그가 바라는 건 시스템 자체의 문제를 바로잡는 일이다. 선거 때마다 잠깐씩 임대 아파트에 들르고 새 장갑으로 연탄을 나르는 일이 아닌 현실적인 제도 개선이 절실하다고 말한다. ​선풍기를 켜고 소파에 앉아 이 책을 읽었다. 그래서일까. 가난의 온도가 떠올랐다. 더위와 추위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가난. 여름의 가난의 온도는 몇 도일까. 적정한 온도를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시간과 제도가 필요할까. 그 중심에 선 가난은 그 시간을 버티고 견디며 기다릴 수 있을까.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2956/26/cover150/k20293624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29562607</link></image></item><item><author>자목련</author><category>목소리 </category><title>사랑이 가능한 시대인가? - [연애 시대의 종말]</title><link>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429765</link><pubDate>Mon, 03 Aug 2026 11:2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42976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82130594&TPaperId=1742976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09/19/coveroff/k48213059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82130594&TPaperId=1742976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연애 시대의 종말</a><br/>비비언 고닉 지음, 홍한별 옮김 / 엘리 / 2026년 07월<br/></td></tr></table><br/><br>소설을 읽는다. 내가 모르는 삶이 거기 있어서, 안다고 착각하는 삶이 거기 있어서. 재밌다고, 슬프다고, 아프다고, 눈부신 은유에 놀라고 감탄하다. 그런 읽기가 전부였다. 뭐, 그런 읽기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소설을 좋아하는 일개의 독자이니까. 내가 알지 못하는 소설이 너무 많다. 먼저 읽은 누군가의 글에 매료되어 그 방대한 세계의 입구에서 기웃거린다. 슬그머니 문을 열고 작은 틈새로 쏟아지는 빛에 눈이 멀 것 같다. 비비언 고닉이 30년 전에 쓴 비평 에세이 『연애 시대의 종말』가 그랬다. 20세기의 문학 작품 가운데 사랑을 읽고 탐구한 기록이다. <br>책을 읽기 전 우선 목록을 살폈다. 내가 아는 작가가 있는지. 거의 없었다. 그렇다. 나는 한국문학을 좋아하고 그에 비해 세계문학은 읽은 게 많지 않다. 아니 거의 없다는 게 맞을지도. 그래도 반가운 이름이 있었고 그중 하나가 ‘윌라 캐더’였다. 그러니까 내가 이 책을 읽은 건 윌라 캐더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그녀의  『루시 게이하트』가 너무 좋아서, 고닉은 어떻게 이야기할지 궁금했다. 책을 읽을 때 작가의 배경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이 책을 읽고 작가의 생애와 환경을 참고하면 더 풍부한 읽기를 할 수 있다는 걸 배웠다. 실천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먼저 윌라 캐더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면 고닉에 의하면 그녀는 실제로 여자를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결혼을 하지 않았기에 소설에서 결혼 생활에 대한 현실적이고 자세한 묘사가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인물과 상황에 대한 묘사가 탁월하다. 월라 캐더의 소설에서 주목하는 것은 결혼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모른다는 것. 『루시 게이하트』 속 루시가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에게 자신을 맡기는 대신 피아노에 집중했더라면 어땠을까. 고닉의 글을 읽으면서 정말 루시가 자기 자신을 몰랐구나 싶었다. 재미있는 건 고닉이 소설 속 루시가 사랑에 빠졌던 남자가 죽은 방식 그대로 죽음에 이르렀다는 걸 꼬집은 것이었다. 『루시 게이하트』를 읽을 때는 우연인가 조차 생각하지 않았는데 월라 캐더의 의도가 아니었을까 싶은 거다. <br><br><br><br>미국의 역사가이자 소설가인 헨리 애덤스와 아내 클로버 에덤스에 대한 부분도 인상적이다. 나처럼 헨리 애덤스에 대해 잘 모르는 독자도 빠져들고 말았다. 헨리 애덤스가 쓴 소설에 대한 이야기는 그 시대의 셀럽 부부의 허상이자 지적이고 관찰력이 뛰어나고 대화 능력도 놀라운 아내 클로버에 대한 헨리의 우울과 질투라는 게 느껴졌다. 한편으로 모두에게 주목받는 건 남편 헨리라는 점에서 클로버는 불안하고 무기력하고 절망했을 것이다. 고닉의 글처럼 말이다. ​클로버처럼 ‘덜 중요한 삶’은 기록으로 남지 않는다. 이들과 가까운 중요한 인물은 풍부한 기록을 남긴 역사가들이 그럴듯한 추론을 할 수 있지만, 덜 중요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저 ‘누이는 신경쇠약이었고, 신부는 도망쳤고, 아내는 자살했다’는 이야기 정도만 남는다. 충격적이고 극적인 결말만이 주어진다. 그러니 우리는 추측할 뿐이다. (51쪽)​누군가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감정의 시작은 어디일까. 눈치가 빠른 이라면 부모와 자식이락 답할 것이다. 남편이 아닌 자식에게 기대고 의지하며 집착하는 어머니. 그런 어머니를 저버리지 못하고 그 사랑에 삶을 저당잡힌 이야기. 『아들과 연인』을 시작으로 『고독의 우물』, 『메리 올리비에』, 『등대로』로 이어지는 무자비한 친밀함은 현재에도 여전히 지독한 연애다. ​우리는 세상으로 나아가고, 세상으로부터 뒷걸음질 친다. 우리는 세상을 욕망하고, 세상을 두려워한다. 삶은 여러 감정이 뒤섞여 일으키는 병적 흥분에 발목 잡힌 연애 사건이다. (86쪽)​30여 년 전 고닉의 글을 읽고 내가 읽지 않고 지나친 작가, 읽으려고 했지만 아직까지 읽지 못한 작가의 목록을 읊는다. 케이트 쇼팽, 진 리스, 버지니아 울프,  레이먼드 카버, 그들이 그려낸 연애와 사랑은 아름다운 결말이나 행복한 순간으로 남지 않는다. 어떤 소설은 막장 드라마 같고 어떤 소설은 모두를 경악하게 만드는 현재의 기괴하고 소름돋는 잔인한 사건과 다르지 않다. 어쩌면 그런 이유로 사랑을 믿고 싶은지도 모른다. 불가능하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오늘날 소설의 중심에 낭만적 사랑을 놓고 인물들이 사랑을 추구하다 무언가 거대한 것에 도달한다고 하면, 독자를 설득할 수 있을까? 사랑이 우리로 하여금 우리 자신을 정면으로 맞닥뜨리게 해서 우리가 어떻게 해서 이렇게 되었는지, 우리가 사는 시대는 왜 이러한지, 그런 중대한 사실을 깨닫게 한다고 설득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오늘날 사랑을 은유로 사용하는 것은 발견의 행위가 아니라 향수에서 비롯된 행위일 것이다. (201쪽)]]></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09/19/cover150/k48213059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7091999</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