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그리하여 멀리서  (자목련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 April, Book, Coffee, &amp; You </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Sat, 04 Apr 2026 21:02:29 +0900</lastBuildDate><image><title>자목련</title><url>http://image.aladdin.co.kr/Community/myface/pt_7630901654863820.jpg</url><link>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자목련</description></image><item><author>자목련</author><category>당신과의 포옹</category><title>4월이라 좋다 </title><link>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193924</link><pubDate>Fri, 03 Apr 2026 10:2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193924</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02137865&TPaperId=1719392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764/92/coveroff/k202137865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42137883&TPaperId=1719392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04/12/coveroff/k842137883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52137509&TPaperId=1719392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83/21/coveroff/k852137509_2.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br>책을 샀다. 모두 소설이다. 소설이 좋아서, 새로운 소설을 찾았다. 새로운 소설이라니, 새로운 소설은 무엇인가. 읽지 않은 소설은 모두 새로운 소설이 아닐까. 아니다. 내게 온 소설이 새로운 소설이다. 그래서 예소연의 단편집은 반갑다. 『너의 나쁜 무리』엔 좋았던 「소란한 속삭임」이 수록되었다. 그러니까 위픽 시리즈로 출간되었던 소설이다. 정이현의 단편집을 읽으면서도 알게 되었다.<br>위픽 시리즈 한 권의 가격과 소설집 한 권의 가격 차이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시리즈에는 작가의 인터뷰가 있으니 차별점이 있다고 해야 할까. 위픽 시리즈의 소설이 같은 작가의 다른 소설집에 묶여 나온다는 걸 알았으니 읽고 싶었던 위픽 시리즈를 기억했다가 그 작가의 단편집이 나오면 살펴봐야겠다.<br><br><br><br><br>애거서 크리스티의 『장미와 주목』는 애거서 크리스티가 필명으로 발표한 작품 중 하나다. 추리소설과는 다른 분위기의 소설들이 좋았던 기억이 있다. 이번에 문동에서 개정판으로 나왔다. 기존에 읽지 않았기에 주문했다. 개인적으로 구판 디자인을 선호한다. 베로니크 오발데의 연작소설집 『한낮의 불운』은 2024 공쿠르 단편소설상 수상작이다. 이 작가의 소설을 읽었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 책을 알려주신 잠자냥의 평이 좋아서 궁금해서 구매했는데 땡스투는 다락방 님에게. 재미있을 것 같다. <br>전국 각지에서 꽃축제가 열리는 모양이다. 내가 사는 지역 근교에서도 다양한 꽃 축제가 열린다. 아파트에도 붉은 동백이 보인다. 사진은 친구가 보낸 동백이다. 오래된 동백, 어르신 동백이다. 올봄은 작년보다 얼마나 짧을까. 봄이 오래 지속되면 좋으련만. 아무튼 나는 4월이라 좋다. <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83/21/cover150/k852137509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8832113</link></image></item><item><author>자목련</author><category>목소리</category><title>예술가가 아닌 인간 패티와의 만남  - [패티]</title><link>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180716</link><pubDate>Sun, 29 Mar 2026 10:4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18071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1964674&TPaperId=1718071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402/64/coveroff/8961964674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1964674&TPaperId=1718071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패티</a><br/>패티 스미스 지음, 정혜윤 옮김 / 아트북스 / 2026년 02월<br/></td></tr></table><br/>가만히 최초의 기억을 떠올린다. 이게 최초인가 갸우뚱하다. 강렬해서 뇌가 기억하는 것, 그것이 최초가 맞을 것 같다. 선명한 이미지는 아니고 공간과 분위기만 이어진다. 그러니 아무리 애를 써도 젊은 부모에 대한 기억은 잡히지 않는다. 낡은 사진도 정리해서 남은 게 없다. 나는 그 기억을 찾을 수 없고 닿을 수 없다. 아쉬움이 몰려드는 이유는 뮤지션이자 시인인 패티 스미스의 회고록 『패티』를 읽어서다. 자신의 생에 대한 기록, 나를 쓴다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정작 쓰려고 한다면 아무나 쓸 수 없다는 걸 알게 되니까.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패티 스미스의 이름을 들어봤지만 그의 음악이나 시에 대해 잘 모른다. 그런 점이 이 책을 읽기에 적당한 독자가 아닐 수도 있고 오히려 이 책을 가장 즐겁게 읽을 수 있는 독자가 된다. ​세상에서 가장 긴 책을 쓰리라고 생각했다. 하루하루의 모든 일을 낱낱이 기록할 거라고. 그렇게 모든 걸 적으면 누구나 거기에서 자신의 한 조각을 발견할 수 있을 거라고. 누군가는 나와 함께 머물 것이고, 또 누군가는 날개가 생겨 훨훨 날아갈 거라고. (11쪽)​자신이 기억하는 첫 감각은 움직임이라고 기억하는 아이라니, 어머니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심한 기관지 질환을 앓는 병약한 아이였지만 모든 걸 만지고 직접 느끼고 경험해야 하는 아이. 가난한 부모와 차례로 태어난 동생들과 보낸 유년 시절은 패티에게 가장 행복한 시절이 아니었을까. 철거를 앞둔 주택단지에서 풍요로움보다는 결핍이 가득한 시절. 이사를 다니느라 친구를 사귀고 우정을 나룰 충분한 시간이 없었던 패티에게 동생들은 가장 좋은 친구였던 것 같다. 병치레가 잦은 딸을 재우기 위해 자신의 귀한 시집을 건네주는 어머니. 어쩌면 패티의 예술적 감각과 특별함은 이런 어머니에게 받은 건지도 모른다. ​그러나 병이 나으면 패티는 동네 아이들의 대장 노릇을 하며 지냈다. 그런 패티에게 학교는 재미없는 곳이었다. 학교 가는 길에 숲속 연못가에서 악어거북에 빠져 점심시간이 다 될 때까지 그곳에 머무른 아이라니. 나는 빨간 머리 앤이 떠올랐다. 패티의 남다름은 또 있었다. 아이들과 선생님조차 생경했던 티베트에 관심을 갖는 6학년 아이라니, 정말 독특하지 않은가. 이런 어린 시절의 모습은 나중에 그의 행보에 영향을 미치는 게 당연하다. 패티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건 랭보의 『지옥에서 보낸 한철』이라고 생각한다. 열다섯 살의 소녀가 랭보를 만난 건 운명이었다.<br>자신의 고통을 시집 속에 봉인했을 때 그의 나이가 고작 열아홉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 나는 그의 고백이 고통에서 그를 해방시켰으리라 믿고 싶었고, 그를 따라 나 역시 모든 걸 송두리째 뒤흔들어놓는 영적 여정의 길을 걷겠다고 다짐했다. (111쪽)<br><br><br>​뭔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진짜 그것으로 향하는 건 어렵다. 그러나 패티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향해 나갔다. 대학교 3학년에 학교를 그만두고 뉴욕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로버트 메이플소프를 만나 글을 쓰고 새로운 예술의 세계로 나간다. 시는 노래 가사가 되고 산문시집의 출판, 드로잉 전시회도 하게 된다. 밥 딜런을 만나고, 시와 세 개의 코드와 소음이 합쳐진 공연. 그 모든 걸 상상하니, 분위기와 벅차오름이 내게로 전해진다. 그리고 프레드 소닉 스미스와의 만나 사랑에 빠진다. 차들이 마구 달려오는데 도로 한가운데서 왈츠를 추는 패티와 프레드. 결혼 후 패티는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아간다. ​나는 어린 아들이 잠들어 있는 이른 아침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때가 내 글쓰기 시작이었다. 몇 달이 지나자 일과는 더 자연스러워져 나는 내면의 시계에 맞춰 기분 좋게 잠에서 깼다. 새벽녘 집이 온통 잠의 고치에 싸인 가운데 잭슨의 숨소리가 제 아버지의  숨소리와 하모니를 이루었다. 나는 조용히 아래층으로 내려가 결코 집을 떠나지 않는 여행자의 모험을 계속 써내려갔다. (229쪽)​그러나 모든 삶이 그러하듯이 패티에게도 소중한 이들과의 이별이 다가온다. 함께 뮤지션으로 활동하고 예술적 교감은 나눈 이들의 죽음, 사랑하는 남편과의 영원한 작별까지. 패티는 도움을 받아 다시 새 삶을 시작하고 시를 통해 공적인 삶으로 뮤지션으로 공연을 이어간다. <br>회고록 『패티』를 통해 나는 뮤지션 패티가 아닌 인간 패티를 만났다. 뮤지션이자 예술가의 행보, 그녀와 함께 노래를 만들고 같은 곳을 향해 나간 동료와 지지자와의 만남과 시간에 대한 이야기는 그녀의 팬에게는 가장 좋은 선물이다. 다른 책을 통해 그녀의 공연, 노래, 시에 대해 알고 있겠지만 말이다. 잘 알아서 반갑고 즐거운 책이 아닐까. 하지만 나는 그런 부분이 아닌 어린 시절의 기억, 가족들과 보낸 충만한 느낌, 자신의 아이들과 보낸 그런 시간을 간직한 진솔하고 담담한 글, 인간 패티의 글을 만날 수 있어 좋았다. 나 같은 독자에게도 깊은 여운을 안겨주는 책이다.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402/64/cover150/8961964674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4026488</link></image></item><item><author>자목련</author><category>그러니까, 때때로 허물어지는 </category><title>알게 될까?</title><link>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174663</link><pubDate>Thu, 26 Mar 2026 12:0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174663</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42936840&TPaperId=1717466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2927/35/coveroff/k142936840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92030857&TPaperId=1717466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075/80/coveroff/k192030857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한 번씩 그런 순간과 마주한다. 이게 진짜 내 생일까 하는 의구심. 그러니까 모든 게 꿈은 아닐까 싶은 마음이 든다. 깨어나야 하는 게 깨지 않는 건 아닐까. 자각하지 못하는 어떤 삶을 살고 있는 건 아닌가 싶은 마음. 존재하는 나는 실제인가 하는 생각으로 이어질 때도 있다. 그래서 꿈을 자주 꾸는 내가 싫다. 어떤 꿈은 너무 잘 맞아서, 어떤 꿈은 너무 무서워서. 자꾸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는데 유디트 헤르만의 에세이 『말해지지 않은 것들에 대한 에세이』에 대해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서 그렇다. <br>이 책은 시학 강의록으로 쓰기와 말하기에 대한 책이라고 할 수도 있고 유디트 헤르만, 작가 자신에 대해 들려주는 이야기라 할 수도 있다. 하긴 뭐가 중요하겠는가. 읽는 동안 그에게 빠져들었고 나는 이제 유디트 헤르만를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으면 그만이다. 어쩌면 나는 이처럼 잡을 수 없는, 몽환적이고 몽환적인 글에 매료되는지도 모른다. 그의 단편집 『레티파크』에서 느꼈던 분위기, 그 소설에서 무얼 말하고 싶었는지 조금 알 것 같고 이 에세이를 통해 모호했던 것들이 선명하게 다가온다. 그의 가족, 친구, 지인, 정신분석가, 그가 좋아한 공간에서 보낸 시간, 그곳에서 보낸 여름에 대한 이야기. 혈연으로 이어진 가족과 운명처럼 만난 특별한 이들(선택가족)에 대한 기억과 그리움. 그 모든 것을 쓸 수 있고 말할 수 있다고 자신하지만 정작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때문에 우리는 쓰고자 노력하고 쓰고 싶어 하는지도 모른다. <br>모든 이야기에는 첫 문장이 있다. 책 속 이야기가 시작하는 문장이 아니라, 내 머릿속 이야기가 시작하는 첫 문장 말이다. 가끔은 어떤 이미지 또는 순간, 무언가를 향하거나 무언가에서 떨어지는 시선. 하지만 대개 그것은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말하는 문장이다. 나는 이 문장을 듣고, 불과 몇 초일 뿐이지만 그동안에 명확하고 몸에 바로 와 닿는 감각을 느낀다. (45쪽)<br>이 에세이는 이상하다. 왜냐하면 모두가 연결돼있고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그것은 유디트 헤르만의 소설이 되기 때문이다. 쓰고 보니 내 글은 멍청하다. 작가에게 연결, 영향, 소설은 당연한 수순이 아닌가. 정신분석가와 작가에게 그를 소개한 친구 ‘아다’와 세상을 떠난 ‘마르코’ 가 에세이를 지배한다고 느꼈다. 그들이 함께 보낸 여름은 자유롭고 명랑하고 선명하다. 여름의 그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을까. 모든 규율은 사라지고 그들만의 규칙으로 채워진 시간들. 아직 읽지 못한 『여름 별장, 그 후』이 더욱 궁금하다. 에세이를 읽기 전 읽었더라면 좋았겠지만 오히려 나는 이후에 읽는 게 더 좋을 것 같다. <br><br><br><br>정식 분석을 받는다고 하면 상담가와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떠오르지만 유디트 헤르만이 들려주는 건 그가 의자에 누워있고 박사는 그 뒤에 서 있는 게 전부다. 대화라기보다는 말이 이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레티파크』의 「꿈」의 모습이다. 에세이에서 상담을 끝낸 후 오랜만에 우연히 그를 만나 나눈 이야기. 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자신의 소설을 읽었냐고, 그러니까 단편 「꿈」에 대해서.  『레티파크』 속 정신병원에 입원한 아버지의 이야기 「시」도 마찬가지다. 모두 실제라는 것. 그녀의 아버지가 정신병원에 보낸 시간, 폐쇄 병동으로 아버지를 면회 가던 시절, 그리고 아버지에게 시를 읽어준 일. <br>아버지는 경제적으로는 무능력한 가장이었다. 그래서 어머니가 직장에 다녔고 그녀를 키운 건 할머니였다. 어머니가 벌어온 돈으로 담배, 책, 가구를 사고 그것들로 자신만의 공간을 만든 아버지. 그런 부모가 고독과 불안을 안겨줬을 건 분명하다. 평생 우울증을 앓던 아버지는 어머니를 위해 놀라운 일을 벌인다. 그것은 부모가 살던 거리의 모든 집이 팔렸고 사람들은 이사를 나가고 그녀의 부모가 마지막 세입자였을 때 힘들어하는 어머니를 위해 누군가 이사 온 것처럼 꾸민다. 그러니가 가짜 명패와 희미한 불빛, 발코니의 식물들. 어머니의 안정을 위한 아버지의 아이디어는 다정하고 살뜰하다.<br>쓴다는 건 결국 나를 꺼내는 일이며 나를 들여다보는 일이다. 누군가를 향한 애도이자 그리움, 거짓과 진실을 오가는 마음, 왜곡된 기억과 사진으로 남은 선명함 같은. 그게 소설이든 에세이든, 혹은 일기나 메모든 말이다. 그렇다면 내가 자꾸 ‘말하지 않은’으로 읽은 ‘말해지지 않은’ 것들은 무엇일까? 한 번도 꺼내지 않은 주제일까. 정확하지 않은 기억일까. 아니면 비밀일까. 말할까 말까 고민하다 마구잡이로 쏟아내는 말, 닫히고 감춰진 말들일지도. 잘 모르겠다. 아니, 영영 알지 못할지도. <br>어떤 문장은 현실에 너무 가깝다. 그것들은 현실에 속하며, 현실과 분리할 수 없다. 그것들에는 비밀이 없다. 그것들은 명백하고, 진실이며, 이 문장들에는 뒤흔들 것이 없다. 하나의 이야기 안으로 인도하는 문장들은 중간 세계에서 오고, 불투명하고, 해석 가능하고, 바꿀 수 있으며, 이는 세계를 바꿀 수 있다는 뜻이다. 나는 세계를, 나의 세계를 이야기를 통해 바꿀 수 있다. (82쪽)<br>여전히 모르겠고 나는 닿을 수 없다. 다만, 삶을 쓴다는 건 의미 있는 일이라는 사실. 무엇을 쓰는지 알지 못하더라도 쓰고 있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때로 무의미한 글이 나를 존재하게 만들고 어느 순간 의미 있게 다가오기도 하니까. 말해지지 않은 것들에 대해서도 열리게 되는 순간이 올 테니까. 물론 말해지지 않아도 상관없겠지만.<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075/80/cover150/k19203085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0758035</link></image></item><item><author>자목련</author><category>목소리</category><title>가장 높은 곳에 살지만,   - [구름 사람들]</title><link>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167676</link><pubDate>Mon, 23 Mar 2026 12:1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16767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82136416&TPaperId=1716767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646/14/coveroff/k18213641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82136416&TPaperId=1716767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구름 사람들</a><br/>이유리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02월<br/></td></tr></table><br/><br>내가 바라는 것과 상대가 바라는 게 같다면 다툼과 갈등은 존재하지 않는다. 문제의 시작은 다르다는 것이다. 크고 대단한 걸 바라는 게 아닌데, 상대는 그것조차 허용하지 않는다. 상대와 내가 같은 지점에 있지 않다는 것. 상대는 나와 같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것. 설상가상 네가 감히, 어떻게라는 태도로 내려다보는 사람들. 특권의식을 내려놓을 수 없고, 그것에 방해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 그것은 존재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니까 이유리의 『구름 사람들』속 구름 위에서 사는 사람들은 절대 느낄 수 없고 가질 수 없는 기분이다. <br>구름 위와 땅으로 구별된 세상, 얼핏 구름 위의 삶이란 꿈속을 거니는 삶이라는 상상을 할지도 모른다. 하늘 위의 분홍빛 구름이라니, 얼마나 낭만적인가. 실체를 알기 전까지 우리는 무엇이든 상상할 수 있고 판단할 수 있다. 이유리의 소설을 읽기 전 내가 한 기대도 다르지 않았다. 막연하게 뭔가 아름다운 상상, 구름으로 변한 사람들의 이야기인가 싶었다. 내만 만난 이유리의 소설, 그가 그려낸 상상은 그러했으니까. 신기하고 애틋한 환상이 치유로 이어지는 이야기. 그러나 이유리의 『구름 사람들』는 작정하고 쓴 것 같았다. 환상으로의 도피가 아닌 진짜 아프고 불행한 사람들의 모습을 담아내려 했던 것 건 아닐까. 그게 삶의 민낯이라고. 현실이 그러하다고. <br>더 화려하고 멋진 세계를 욕망해 높게 쌓아 올린 주상복합의 공간이 아닌 인간이 만들어낸 오염물질로 만들어진 구름. 땅에서는 집을 구할 수 없어 구름 위로 올라온 사람들이 있다. 땅에 지어진 불법 건축물이 아니라 구름에 지어진 세계. 땅에 발을 딛고 살 수 없어서 오염물질로 가득한 구름 위에서 살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 사람들. 그러니까 가장 높은 곳에 가장 낮은 사람들이 산다. 생계를 위한 일자리는 땅에 있기에 땅으로 내려가 일하고 구름으로 올라와 살아간다. 그곳에서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고 키운다. 구름 사람들은 가까운 태양으로 인해 목덜미가 까맣고 누가 봐도 구름 사람들이라는 게 표가 난다. 그러니 땅에서 학교를 다니고 직장을 구해도 차별의 대상이 된다. <br>구름에서 나고 자라 스무 살이 된 주인공 ‘하늘’은 할아버지, 엄마, 아빠, 그리고 어린 동생과 살아간다.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게 땅에만 있기에 사다리를 통해 이동한다. 사다리에 지탱해 공중을 이동하는 삶, 그것은 구름 사람들의 생존 그 자체를 묘사한다. 자칫하면 죽을 수 있다는 공포와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 아픈 할아버지는 땅에 있는 병원에 다니지만 병세는 여전하다. 나아지는 대신 그냥 살아가는 것이다. 엄마도 아빠, 하늘이 열심히 일하지만 구름 사람이 아닌 땅 사람이 되는 건 불가능하다. 구름 사람들에게 어떤 미래를 꿈꾸는 건 아예 불가능한지도 모른다. 그래서 엄마는 일자리를 핑계로 주말마다 구름으로 올라왔다가 마침내 돌아오지 않는 선택을 한 건 아닐까.<br>삶 전체를 조망해보는 것은 불행의 지름길이다. 단지 지금 당장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만 중점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게 현명하다. (129쪽)<br>세상은 불행하고 나쁜 것으로만 가득차 있다. 구름도 땅도 마찬가지다. 세상 끝에서 끝까지 걸어가도 기쁨과는 마주칠 수 없을 거다. 단 한 조각도. (170쪽)<br><br><br><br>하늘이 지닌 생각은 당연한지도 모른다. 땅에 내려가 식당 아르바이트를 하고 동생을 구박하고 챙기면서 할아버지의 기침 소리를 들으며 잠드는 일. 그래도 동갑내기 원과 함께 구름에서 도망치고 싶은 소망쯤을 가지고 있다. 어쩔 수 없다고 여기며 살아가려 했지만 구름을 아예 없애버리려는 인공 강우제 살포설은 그냥 둘 수 없다. 생존이 걸린 문제니까. 아무런 대책도 없이 강우제를 살포하겠다는 정치인과 땅 사람들의 이기적인 태도가 구름 사람들을 결속시킨다. 하늘이 아빠를 중심으로 데모를 준비한다. 구름 사람들의 목소리를 내면 뭔가 달라질 거라는 믿음으로 말이다. 하지만 그 결과는 참혹하다. 시위를 하러 내려온 구름 사람들을 경찰이 둘러싸 정작 그들이 시위나 목소리는 땅 사람들에게 닿지 않는다. 시위가 실패로 끝나자 하늘이 아빠는 혼자 무서운 계획을 감행하고 하늘은 끔찍한 소식을 듣는다. <br>예고된 할아버지의 죽음은 그렇다 해도 아빠의 죽음은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가. 하늘을 위로하고 돌봐줄 어른도 보호자도 없이 어린 동생과 남은 하늘에게 더 이상 불행은 없을 것 같지만 삶이란 얼마나 잔인한가. 동생과 둘이 땅에서 살기로 결심한 하늘은 모아둔 돈으로 집을 구하려 애쓰지만 구름 사람이라는 이유로 방을 구할 수 없고 돈이 많이 버는 유튜버가 되겠다며 동생은 구름을 먹는 방송을 하다 목숨을 잃는다. 혼자 남은 하늘은 다큐멘터리 피디 노을의 제안을 수락한다. 구름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후원을 받은 돈으로 땅에서 살 집을 마련하고 이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살아간다. 그리고 마침내 강우제 살포가 현실이 된다. 땅 사람이 된 하늘은 자신의 고향이었던 곳을 찾는다. <br>어둠 속에서 발판은 조용하게 웅크려 있다. 마치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내가 당장이라도 올라탈 것을 안다는 듯이. 나는 가만히 발판을 쏘아본다. 살아온 날들이 지독하게 길고 재미없는 한편의 농담 같다고 생각하면서. 그러나 농담은 금방 끝이 나지만, 삶은 쉽게 끝나지 않는다. (330쪽)<br>구름이 아닌 땅에서 살아가는 하늘의 삶은 해피엔딩일까. 혼자 지내기에 넓은 집에 사는 하늘이 한방에서 다섯 식구가 서로의 등을 보며 잠들었던 기억을 잊을 수 있을까. 누군가 그래도 다행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어차피 강우제는 살포될 게 분명했고 구름 사람들은 그곳을 떠나야 했다고. 노을 피디가 아니더라도 하늘에게 접촉한 이가 있었을 거라고. 누군가의 불행을 전시하고 이용하는 모습은 잘 알고 있다고. ‘구름’이라는 공간의 설정만 다를 뿐 우리는 이런 구조에 익숙하다. 가난, 차별, 계급의 문제는 혼자만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걸. <br>우리가 마주할 미래는 정녕 디스토피아일까. 불운과 불행으로 가득할 삶의 끝은 존재할까. 더 나는 세상, 모두가 행복하다고 느낄 수는 없겠지만 괜찮은 세상을 희망하는 건 어리석은 일인가. 조정과 타협으로 갈등을 해결하는 건강한 사회는 어디에 있을까. 읽는 내내 우울하고 우울했던 기분이 사라지지 않는다.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646/14/cover150/k18213641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6461410</link></image></item><item><author>자목련</author><category>목소리</category><title>도달할 수 없는 세계  - [뾰 - 백은선의 8월]</title><link>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143472</link><pubDate>Wed, 11 Mar 2026 11:5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14347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22030719&TPaperId=1714347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886/68/coveroff/k72203071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22030719&TPaperId=1714347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뾰 - 백은선의 8월</a><br/>백은선 지음 / 난다 / 2025년 08월<br/></td></tr></table><br/>시인의 글을 읽을 때마다 시인은 이런 단어를 어디서 찾는 것일까 놀라곤 한다. 그냥 보통의 말인데, 나도 알고 있는 말인데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골몰하고 골몰해서 도달한 단어라서 그럴까. 아니면 많이 쓰고 많이 읽어서 그럴까. 어쩌면 나는 끝내 알지 못할 것이다. 알고 싶고 알려고 애쓰더라도 말이다. ​백은선 ‘뾰’도 그렇지 않은가. 나는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고 이 책을 통해 기억으로 남을 ‘뾰’. 백은선의 시집을 읽지 않았기에 그가 닿으려는 시의 마음이나 시의 세계가 어떤 것인지 모른다. 『뾰』를 통해서 시가 그에게 어떤 것인지 어렴풋하게 알 것 같은 정도다. 모르면 어떻고 알면 어떤가. 책을 읽는 순간에는 백은선과 백은선은 원하지 않았으나 엄마의 재능을 닮은 아들을 일상을 그릴 수 있는 정도면 충분하다. 8월의 바다와 술에 취한 백은선의 취한 밤의 한 조각을 그러잡은 느낌이라고 할까. 지금은 사라진 밤과 충동적인 아름다움과 지독한 슬픔에 대해서. ​이 책 전 만난 백은선의 산문에서도 느꼈지만 엄마 백은선과 시인 백은선은 선명한 경계를 원하지만 그게 얼마나 어려운지 내가 다 속이 상한다. 아이와 살기 위한 수단으로 글을 쓰면서도 좋은 글을 써야 한다는 부담에 지치고 좋은 엄마가 되고 싶고 어떻게든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려 애쓰는 그는 분명 좋은 엄마다. 그 말을 해주고 싶다. 병에 가득 채워 밤마다 한 잔씩 따라 마실 수 있도록. ​시는 빛으로 이루어진 층계다.시는 어둠 속에서 펼쳐보는 일기장이다.시는 가장 처음 배운 외국말이다.시는 불속에서 녹아버리는 뼈손끝에서 터지는 한 발의 총성노래를 듣는 순간 떠오르는 과거의 풍경이다. ​시는 모든 것이다. 사물의 희미한 윤곽, 생물의 동력, 우주가 부풀어오르는 리듬이 바로 시다. (8월 22일 산문「빛의 층계 끝에 다다를 때」 중에서)<br><br><br><br>그가 쓴 시 길고 긴 시는 너무 버겁다. 그러나 시를 원하는 그의 뜨거운 갈망은 감격스럽다. 선선히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많은 것을 말하고 싶은 욕망, 깊고 진하게 뻗어가는 모양, 아니 사고할 수 없는 어떤 것, 아무도 모르게 존재하는 무궁무진한 것들을 채집하는 그의 노력이 보이는 것 같다. 그리하여 그것들을 함께 말하자고 그는 독자에게 손을 내민다. 잡아줄 이가 없을까 두려워하면서도. 그런 의미에서 이 에세이는 시집으로 묶이지 않은 하나의 시집이라 여겨도 좋겠다. <br>뾰뾰뾰​아무것도 발생하지 않는 섬과 바다사랑스러운 돌고래들​몇 년이나 헤매고 나서 찾았어입과 귀의 모든 것​위로는 젬병이라 차라리 잘라버리고 싶었던 것들​남은 평생 단 하나의 단어만 말할 수 있다면뭘 선택할래?언젠가 네가 물었고난 눈을 감은 채​응하고 답했지​응 (8월 18일 시 「뾰」, 일부)​어딘가 빛이 닿지 않는 숨겨진 응달에는 눈이 아직 남았다. 빛으로부터 달아나 자신만의 공간에 안착했을지도 모르나 서서히 사라질 것이다. 봄빛을 기다리고 그 너머의 여름을 생각할 여력이 없다. 그러나 이런 문장 앞에서 사나울 정도로 격렬한 무언가를 품는다. 시인은 여름이 끝났다고 생각한다지만 나는 그렇게 여기지 않는다. 아이가 자라는 동안 함께 할 그 모든 여름과 8월이 그에게 영원한 여름이 될 거라고. <br>찬란한 파동, 펼쳐지는 물의 계단, 층층이 밟고 오르면 만날 수 있는 새로운 풍경이 있을 것만 같고. 사계절이 한 사람의 삶과 같다면, 여름은 청춘 같다. 물론 청춘이란 말 안에 봄이 들어가 있기는 하지만. 나는 내 삶의 여름은 이미 끝났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만약 내게도 여름이 남아 있다면 그건 팔월의 끝, 마지막 빛 같은 것이 아닐까. (8월 31일 일기 「마지막 여름은 나와 함께」중에서)]]></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6886/68/cover150/k72203071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8866874</link></image></item><item><author>자목련</author><category>그러니까, 때때로 허물어지는 </category><title>미래를 사는 방식 </title><link>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141560</link><pubDate>Tue, 10 Mar 2026 11:2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141560</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62032721&TPaperId=1714156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499/93/coveroff/k862032721_2.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80003&TPaperId=1714156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0211/80/coveroff/8954680003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72136744&TPaperId=1714156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722/91/coveroff/k172136744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만약에’로 이어지는 말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미 결정된 어떤 일, 어떤 선택을 돌이킬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래도 만약에로 무언가를 바꿀 수 있다면 나는 어떤 선택 앞에 설까 생각하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둘 수 있는 맨 처음이 아닐까. 그럴 수 없기에 그것을 꿈꾸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떤 일은 수많은 고민과 갈등을 하더라도 단 하나의 선택으로 끝난다. 과거로 돌아가도 그 선택을 할 거라는 알기에, 그게 나라는 사람이라는 걸 알기에. ​‘윤리적 딜레마’란 주제로 김연수와 히라노 게이치로가 참여한 『근접한 세계』를 읽다 보면 누구나 어떤 선택을 떠올리게 된다. 어떤 이는 나만을 위한 선택, 어떤 이는 모두를 위한 선택을 생각할 것이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는 걸 알지만 선택은 책임이 따라오기에 언제나 어렵다. 공익을 위한 제보, 특별한 위치에 있는 사람의 비밀을 공개한 뒤 남은 인생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김연수의 「우리들의 실패」는 그런 삶을 조명한다. 소설은 화자인 기자가 ‘손동하’란 인물을 인터뷰하는 이야기다. ​손동하의 선택은 비상계엄 선포, 대통령 탄핵안 가결로 이어졌고 그는 한국을 떠나야 했다. 대의를 위한 그의 선택은 개인의 인생을 포기해야만 가능했다. 모두를 위한 선택이 개인에게도 이로운 일일까. 소설을 읽는 우리는 그의 선택을 지지한다. 선택 밖에 있기에, 선택 안의 그의 복잡한 내면을 모르면서 응원한다. 어쩌면 모르기에 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김연수는 어렵고 주제의 무게감을 내려놓고 한 사람의 선택과 과거의 이야기로 풀어간다. 손동하가 들려주는 그가 어린 시절 만난 소녀의 이야기는 지극히 개인적인 사소한 것처럼 보이지만 스스로 만들 수 있는 미래는 가능한가 묻는다. 그렇다면 그의 선택으로 다가올 미래는 어떤가. ​삶이란 불확실하지만 분명한 과거가 존재하기에 현재와 미래가 있는 것이다. 결국 미래를 사는 일은 오늘을 사는 일이며 무엇을 선택하든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는 것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그래서 히라노 게이치로의 「우리들의 실패」속 큐레이터 ‘가스미’는 고인이 된 사진작가의 작품 전시 결정을 내리기 전에 고민하고 고민한다. 전시할 작품이 아닌 공개되지 않은 사진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고인의 취향이라 할 수 없는 범죄인 사진이었다. 사진작가와 자신의 관계를 생각하면 그냥 넘어가야 할까. 자신이 알았다고 믿은 모습은 거짓이란 말인가.  ​사진작가의 아들은 반발한다. 아버지는 죽었고 그 사진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묵인할 수 있다 주장한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공론화할 수는 없지만 전시를 강행할 수 없었다. 세상은 모르고 나만 아는 일, 그러니 비밀로 묻고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누가 그를 비난할 것인가. 한편으로 이처럼 세상은 모르고 소수만 아는 엄청난 비밀은 얼마나 될까. 시간이 지나 드러나고 밝혀지는 일들 말이다. <br><br><br><br>왜 그때 그 상자를 열었을까. 다시 그 생각으로 돌아온다. 열지 않았다면 지금쯤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전시회 준비를 마무리하고 있었을 텐데. 그런 세계가 어딘가 있다면 지금이 세계의 나를 잃더라도 그곳에 가고 싶다. 하지만 그 세계에서 피해자가 있다는 걸 모른 채 전시회 성공을 기뻐하는 나도, 알고도 모르는 척하는 나도, 내가 되고 싶은 나는 아니다. (「결정적 순간」, 167~168쪽)<br>예술이라는 주제를 놓고 보면 큐레이터가 조언을 구하고 고민을 해야 하는 게 당연한 일처럼 보인다. 하지만 개인의 일이라면 어떨까. 가까운 이의 비밀, 그러니까 범죄에 관련된 비밀을 알았다면 할 수 있는 선택은 무엇일까. 내가 알았던 이가 전혀 다른 이로 존재하는 순간은 얼마나 두렵고 무서울까. 한 사람을 아는 일은 현재뿐이 아닐까. 함께 할 미래를 아는 일은 가능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한 번 더 살 수 있다면 모든 것은 가능할까. 아니 가능하게 만들 수 있을까. ​뒤에 이어지는 김연수와 히라노 게이치로의 대화는 소설이 어떻게 쓰여졌고 그 과정을 이해하기에 충분하고 대화를 읽고 나면 소설이 더 좋아진다. 두 작가가 소설가로 살아가는 마음가짐이나 태도를 가늠하게 된다고 할까. ​저는 그 다정함이 과거의 기록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 내가 다르지 않다’는 상상을 통해 그들의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주는 ‘미래적 시점’에서 오는 것이라 믿습니다. 운명론의 노예가 아닌 결단의 주체로써 독자에게 인물을 제시하는 것, 그것이 소설가로써 발휘할 수 있는 가장 큰 다정함일 것입니다. (김연수, 201쪽)​『근접한 세계』 는 ‘윤리적 딜레마’란 주제로 쓰였지만 김연수의 소설은 미래를 사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로 다가왔다. 최근 그가 가장 주목하는 주제가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소설집 『이토록 평범한 미래』가 떠올랐고 가장 최근에 읽은 『겨울 정원』 속 「조금 뒤의 세계」를 생각하면 그렇다. 김연수의 소설을 읽다 보면 지금의 삶을 가만히 생각한다. 나와 연결된 우리가 만드는 미래. 만약에는 불가능하지만  한 번 더 살 수 있다면 우리가 꿈꾸는 미래와 다가올 미래에 대한 진지한 사랑과 격려가 필요하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계속 지는 한이 있더라도 선택해야만 하는 건 이토록 평범한 미래라는 것을. 그리고 포기하지 않는 한 그 미래가 다가올 확률은 100퍼센트에 수렴한다는 것을. (「이토록 평범한 미래」, 34~35쪽)<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722/91/cover150/k17213674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7229138</link></image></item><item><author>자목련</author><category>당신과의 포옹</category><title>그러니까, 내가 기다린 건 </title><link>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137238</link><pubDate>Sun, 08 Mar 2026 10:5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137238</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P652939292&TPaperId=1713723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54/99/coveroff/p652939292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2736257&TPaperId=1713723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9979/19/coveroff/8952736257_2.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52137817&TPaperId=1713723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7587/94/coveroff/8954681158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0909807&TPaperId=1713723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750/99/coveroff/8960909807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br>아파트에 매화가 다 폈다는 카톡과 함께 사진을 받았다. 봄이니까 당연한 일인데 한참을 보았다. 만개한 매화 사진을 보면서 벚꽃도 금방일 듯이란 답을 보냈다. 그러니까, 이제는 봄이다. 봄! 봄! 봄! 눈 닿는 곳에 눈의 흔적이 여전하지만 봄이다. 이제 내게 날아올 꽃들은 얼마나 많을까. 반갑고 예뻐서 꽃 사진을 찍을 내 친구들과 가까운 이들. 나는 벌써 작약을 검색하니까. ​그러니까 나는 이런 봄을 기다린 것이다. 그리고 이런 책을 기다렸다. 김지연의 신간 『꿈 목욕』이다. 온라인 서점에서 가장 많이 검색하는 작가는 인기 있는 성해나와 위수정이 아닌 김지연, 예소연이다. 김지연의 짧은 소설과 어울리는 원두는 &lt;니카라과 산 살바도르 카투라&gt;다. 땡스투는 맛이 정직하다는 페넬로페 님께. 어쩜 이리 잘 어울리는 색인가. <br><br><br><br>김지연의 짧은 소설이 나왔다는 걸 안 건 알림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나는 김지연의 신간 소식을 알았고 구매했다. 음, 이걸 김지연 작가가 보면 좋겠다는 엉뚱한 생각. 그럴 일은 없겠지만. 같이 구매한 정해연의 『홍학의 자리』는 충동적이었다. 어쩌다 이 책이 검색되었는지 모르겠지만 &lt;유괴의 날&gt;을 쓴 작가라는 걸 알았고 드라마를 재밌게 봐서 구매했다. 이 소설도 재밌으면 좋겠다. <br>그러나 이 글에서 가장 중요한 간 김지연 작가다. 김지연 작가의 소설이 좋아서, 많은 이들이 읽으면 좋겠다. 점점 더 좋아지는 작가 중 하나다. 좋은, 좋아지는 이유를 설명하긴 어렵다. 그러니까 내가 그의 소설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 실은 황정은의 소설도 기다리고 있다. <br>좋아하는 걸 기다리는 일은 지루하지 않다. 기다리는 시간도 기쁨이다. 좋아하는 사람을 기다리고, 좋아하는 것이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좋아하는 작약이 피기를 기다리는 일. 그 대상이 된다면 더  좋을 것이다.<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750/99/cover150/896090980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7509983</link></image></item><item><author>자목련</author><category>당신과의 포옹</category><title>계절 선택은 봄 </title><link>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129223</link><pubDate>Wed, 04 Mar 2026 09:4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129223</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P652939292&TPaperId=1712922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54/99/coveroff/p652939292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82136416&TPaperId=1712922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646/14/coveroff/k182136416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72136744&TPaperId=1712922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722/91/coveroff/k172136744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화요일 같은 수요일이다. 입학식을 마친 이들에게는 두 번째 등교 일일 것이다. 처음이 아닌 두 번째는 안도일까. 쓸데없는 생각은 처음이었던 그 순간이 어렴풋이 떠올라서다. 설레면서도 두려워서 내심 괜찮은 척하며 서툰 미소를 연습했던 시절들. ​아무튼 3월은 벌써 네 번째 날이다. 사용하는 보일러에는 온수 온도를 조정하기 위한 계절 선택이 있다. 어젯밤에는 겨울이었던 계절을 봄으로 바꿨다. 그리고 주말에는 그런 봄이 내게로 왔다. 근처에 볼일이 있던 친구가 다녀갔고 우리는 아주 기쁜 눈 맞춤을 시작으로 귀한 시간을 보냈다. 짧아서 더 귀했다. 과일과 간식으로 가득했던 박스에는 노란 튤립과 분홍 장미가 있었다. 장미는 친구가 고른 것이고 튤립은 친구의 남편이 고른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친구는 장미를 좋아하고 그녀의 남편은 튤립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나는 둘 다 마냥 좋았다.<br><br><br><br>그리고 반가운 작가의 신간 소식은 또 얼마나 좋은가. 바로 김연수 작가다. 김연수와 히라노 게이치로의 소설 『근접한 세계』와 장편은 처음이라 궁금한 이유리 작가의 장편소설 『구름 사람들』은 3월의 책이다. 읽기의 속도는 회복되지 않고 쓰기는 거의 멈춤과 다르지 않지만 그래도 책은 이어진다. 느리고 멈춘 모양새지만 끊어지지 않고 연결된다는 느낌을 놓치고 싶지 않다. 알라딘에서 새로 나온 커피는 어떤 맛일까. 다음에 구매해야겠다. <br><br><br><br><br>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고 계절은 계절을 부르고 계절은 계절과 인사한다. 계절을 오가는 바람의 인사를 상상한다. 안녕, 잘 부탁해라는 부드럽고 다정한 속삭임을. <br><br><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722/91/cover150/k17213674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7229138</link></image></item><item><author>자목련</author><category>목소리</category><title>이상한 만남과 예상치 못한 위안  - [별일]</title><link>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117543</link><pubDate>Fri, 27 Feb 2026 11:3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11754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0909572&TPaperId=1711754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536/34/coveroff/896090957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0909572&TPaperId=1711754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별일</a><br/>최은미 지음, 수하 그림 / 마음산책 / 2025년 10월<br/></td></tr></table><br/>최은미의 『별일』속 11편의 짧은 소설은 별일 아닌 이야기로 여길 수도 있고, 정말 별일이 다 있네로 기억할 수 있다. 몇 편은 재미있게 읽었고 몇 편은 자꾸만 마음에 남았고 몇 편은 만약에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면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보통의 일상을 담은 그러니까 평범한 이야기인데 왜 이리 짠하고 마음이 무거운지 모르겠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도 될 에피소드들이 아파서 울컥한다. 변화무쌍한 나의 호르몬이 문제인가. 이 모든 걸 나이 탓으로 돌려야 할까. <br>사람 사는 일이 다 거기서 거기라고 하지만 둘러보면 다들 웃을 일만 가득한 것 같지 않은데 나와 가까운 이들에게만 안 좋은 일이 생기고 걱정이 늘어나는 것 같아 마음이 쓰인다. 그냥 별일 아닐 거란 말로 위로하기엔 우리는 서로의 사정을 너무 잘 알안다. 속상함을 삼키고 일부러 표정을 숨기는 지도 모른다. 그래서 처음 만난 사람에게 아무렇지 않게 어떤 이야기를 꺼내게 된다. 일면식 없는 타인, 이웃도 친구도 아닌 누군가에게. 『별일』 은 그런 만남의 이야기라 봐도 괜찮다. <br>표제작 「별일」을 보면 화자 중희는 창문으로 들어오는 담배 냄새의 범인을 찾으러 나섰다. 담배 냄새를 따라 도착한 비밀스러운 공간에서 담배를 피우는 주민 여자를 만난다. 같은 아파트에 살지만 처음 보는 여자였는데 어쩌다 보니 담배 냄새에서 시작해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나누게 되고 서로의 이름까지 알게 된다. 범인을 못 잡고 돌아오면서 그곳을 찾을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곳에서 만난 여자의 이름과 대화는 오래 기억하지 않을까. 예상치 못한 만남에서 받은 이상한 위안을 말이다. 공동주택에서 담배 냄새는 별일이면서도 별일이 아니다. 누군가에게 고통스러운 냄새가 누군가에게는 일상일 테니. <br>현금인출기에서 남의 만두를 훔친  「이상한 이야기」속 나와 만두 주인의 만남도 그렇다. 주인이 오기를 30분간 기다렸다가 만두 봉지를 집어 들었을 때 주인이 등장하다니. 타이밍이 기묘하다. 돌려줘야 하지만 나는 그 만두를 고집하고 그곳에서 나온다. 그 만두의 맛을 정말 잘 알기에, 그 만두가게에서 보낸 시간과 추억이 있어서. 만두가게의 모든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까지 든다. 그건 내 사정이고 만두는 내 것이 아닌데. 만두 주인도 만두를 포기할 생각이 없다. 나를 계속 따라온다. 마치 내 모든 걸 꿰뚫어 보는 것처럼. <br><br><br><br>빨리 집으로 가야 하는데 그토록 기다렸던 헤어진 연인에게 연락이 오고 답장을 하느라 시간은 지체된다. 휴대폰이 고장 났다고 부탁을 하는 내용이었다. 뭐 이런 일이 다 있을까. 왜 이런 타이밍에 연락이 오고 만두 주인은 돌아가지 않는 걸까. 심지어 가까운 사람한테 연락 온 거 아니냐고, 그거 피싱이라고 말한다. 이상하고 낯선 친절을 선뜻 믿을 수 있을까. 무서운 세상이라서 이런 일은 별일도 아닌가. <br>그러가 하면 「모르는 이야기」속의 만남은 타인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이어진 필요한 만남이다. 내 집을 마련한 기쁨으로 화장실을 공사를 맡긴 인테리어 시공업자와의 만남은 기대로 가득했다. 얼마나 신중하게 고르고 선택한 업체인데 사장에게 사기를 당했다. 고소를 진행하고 일상을 이어갈 수도 있었지만 주인공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아내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남편인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사장의 형이 피해액을 돌려주는 조건으로 고소를 취하하라고 했을 때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자신과 통화하고 집으로 방문했던 과정이 진심이라고 여겼는데 그럴 수 있단 말인가. 그 일을 계기로 아내와 헤어지고 시간이 지나도 그 사장 얼굴을 잊을 수 없다. 이런 일은 얼마나 허다할까. <br>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시작된 모임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야기 모임 1」과 「이야기 모임 2」의 만남은 신선하다. 뭔가를 얘기하고 싶어서 ‘못 배길 때’ 소집되는 모임이라니 흥미진진하면서도 가족, 가까운 친구나 이웃과는 나누지 못하고 다른 상대를 찾아야 한다는 게 씁쓸하다. 이 짧은 소설을 읽으면서 한 번 만나고 헤어진다는 ‘티슈 친구’가 생각났다. 처음 본 타인과 짧은 이야기를 나누고 이름과 연락처를 교환하지 않는 관계. 정말 별일인데 별일이 아니라는. <br>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상관없다. 들으러만 가서는 안 된다. 각자 준비해온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는 반드시 같이 밥을 먹고 헤어진다. 닉네임은 색깔 이름 하나로 정한다. 복잡할 것은 없다. 뭔가를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들이 그때그때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무언가를 먹는 것뿐이다. (「이야기 모임 1」, 91쪽)<br>세상에나 이런 일도 있어 하며 호들갑을 떨 수 있는 상대는 얼마나 될까. 그러다가 나는 그런 상대인가 싶다. 통화보다는 카톡이나 문자에 익숙한 시대. 긴 영상보다는 짧은 몇 초의 영상에 빠져드는 이런 세상에 ‘이야기 모임 ’하나쯤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건 나만이 아닐 것이다. <br>작가 최은미는 살다 보면 아무나 붙잡고 속상한 사정을 이야기하고 위로받고 싶은 마음에 대해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별일 아닌 일도 별일이 되어 서로의 마음에 내려앉아 살아있기를 바라는. 별일 아니니 괜찮다고 신경 쓰지 말고 툭툭 털어버리라 말해주는 누군가가 필요한 이들에게.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536/34/cover150/896090957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5363415</link></image></item><item><author>자목련</author><category>그러니까, 때때로 허물어지는 </category><title>2월이 가기 전에 </title><link>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110705</link><pubDate>Tue, 24 Feb 2026 10:5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110705</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4273X&TPaperId=1711070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9524/24/coveroff/895464273x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52135311&TPaperId=1711070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495/90/coveroff/k252135311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내가 갖지 못한 어떤 것, 그 능력을 질투한다. 질투는 나의 힘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를 향한 마음을 버리지 않는 건 꽤 괜찮다. 모방이라는 노력이라는 방향으로 뻗어가거나 수집으로 남기 때문이다. 2월을 기억하고 말하고 쓴 김상혁의 에세이 『그냥 못 넘겼어요』를 읽으면서 든 생각이다. 그의 시집을 읽었다는 게 참 다행이구나 싶었다. 겨우 한 권하지만 말이다. 나만 아는 문장, 나만 쓸 수 있는 무언가를 갈망하던 시절이 있었다. 적극적으로 배우거나 강의를 찾는 대신 그저 읽기에 최선을 다했던 때였다. 그때의 인연은 나에게 시집을 많이 읽으라고 했다. 시집을 모으고 읽으려고 하던 노력도 다 그 인연 덕이다. <br>모든 걸 새롭게 시작할 다짐과 수많은 용기로 채워진 1월과 왠지 모를 설렘으로 기대하는 3월 사이에서 날도 적어 움츠러든 2월이 진짜 나라고 말하는 김상혁 시인의 글은 어떤 꾸밈없이 솔직하다. 부모의 이혼 당시 엄마의 뱃속에 있었던 시인, 아버지는 곧 재혼했으니 아버지와의 시간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조금 천천히 알아도 좋았을 슬픔은 존재와 동시에 느꼈을지도 모른다. 손에 꼽을 정도의 만남과 함께 한 시간은 그에게 어떤 감각이었을까. 때문에 그는 아들에게 그 사랑을 온전히 전하고 싶었을지도. 어쩌면 이건 나의 오지랖이겠다. <br>일하는 엄마, 손주를 향한 끔찍한 사랑이나 다정함보다는 자신들의 분노와 고통을 돌본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 안에서 자라는 그가 외로움을 친구로 두는 일은 가장 쉽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우울했던 유년 시절 할아버지 방에서 보았던 주말의 영화는 그를 안아주고 달래주었다. 늦은 밤 TV에서 나오는 알 수 없는 영화를 보던 그 소년을 상상한다. 우리는 어느 시절 같은 영화를 보고 있었을지도 모르니까. 그래서 나는 그의 플레이리스트에 겹치는 곡이 있는 독자, 여기 있다고 외친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 내가 자주 듣는 노래가 두 곡이나 있다고 말이다. 시인의 플레이리스트가 궁금한가? 궁금하면 『그냥 못 넘겼어요』를 읽어보길.<br>이렇듯 책이란 참 이상하다. 김상혁이란 시인에 대해 나는 아는 게 없었는데 이제 조금 안다고 할 수 있다. 책에 썼고 그걸 읽었으니 당연한 거 아니냐고 하겠지만. 작가가 책에 쓴 모든 게 나에게 흡수되거나 하는 건 아니니까. 재밌게 읽었다는 기억으로 남거나 심지어 읽은 기억도 잊게 되니까. 물론 이 책에 대한 기억도 그런 수순을 밟을지도 모르지만 기록으로 남기니 다를 것이다. 그가 즐겨드는 노래 가운데 내가 좋아하는 노래가 있다는 것, 그가 자랑스럽게 여기지 않은 등단작을 얄궂게 검색하고 말았다. 그리고 이런 글이 좋아서 가끔씩 저녁이 되면 생각날지도 모른다. <br><br><br><br>저녁이 우리집 대문을 열고 나를 찾으로 온다. 서서히 다가오는 저녁은 짐짓 엄격해 보이는 표정이다. 어서 집으로 돌아가서 밥 먹고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더 놀지 못해 좀 슬프다. 그렇지만 나도 종일 노느라 지쳤기 때문에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며, 실은 매일 돌아가자고 이야기해주는 저녁이 고맙다. 집에 가자고 강권하는 저녁의 얼굴을 쳐다보고, 그 진지하고도 차가운 사랑의 목소리를 들으며, 놀이에 미련이 남아 공터 쪽을 연신 돌아보며 집으로 돌아가는 순간이 매일같이 찾아온다는 사실이 고맙다. (95~96쪽)<br>그러니까 ‘저녁’은 김상혁 시인의 고유한 정서 같다고 할까. 그의 시집 『다만 이야기가 남았네』에서도 만난 저녁이니까. 어떤 슬픔과 안도가 동시에 전해지는 저녁. 어떤 저녁은 그를 위로하고 어떤 저녁은 그를 더 외롭게 만들고 어떤 저녁은 그를 포근히 안아주었을 것이다. <br>문득 나의 저녁도 떠올려본다. 빨리 밤이 오기를 바랐기에 저녁은 존재하지 않았던 날들. 나는 왜 그토록 밤을 기다렸던 것일까. 어둡고 짙은 밤의 깊이에 숨을 수 있어서 그랬다. 그 시절의 나는 저녁의 애틋함 따위는 알지 못했다. 오직 밤 만이 계속되기를. 그리하여 끝내 아침이 오지 않기를 바랐다. 그런 저녁이 있었기에 이런 저녁의 아름다움을 흠모할 수 있다.<br>저녁은 헤어지기 좋은 시간이다. 지치기도 쉬운 시간이구. 하지만 제 손으로 머리칼을 털며 고갤 숙이고 있는 장면만으로 떠오르게 된다. 이런 말도 가능하다. 내가 매일 현관으로 쓰러지며 쏟은 별과 모래를 아침마다 네가 예쁘게 비질한다고. (「가정」의 일부) <br>『그냥 못 넘겼어요』를 읽기 전 내가 기대했던 2월은 풍성한 꽃다발과 서툰 웃음으로 채워진 사진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2월은 각자의 사정과 기억으로 채워진다. 여느 달이 그렇듯 말이다. 누군가의 2월은 쓸쓸하고 누군가의 2월은 분주하고 누군가의 2월은 끝나지 않고 이어진다. 졸업과 시작으로 이어지던 2월은 없다. 내가 기다렸던 봄 방학을 지금의 아이들은 알지 못한다. 계절은 조금씩 다르게 흐르고 열두 달의 의미도 새롭게 변화한다.<br>시 쓰는 강의에서 만난 천재 수강생이 수업에 나오지 않아 연락했더니 자신의 이름도 정확하게 모르고 있어 씁쓸하지만. 어렸던 자기를 질투하는 귀여운 아들과 아이가 태어나면서 그냥 개가 된 개와 살아가는 2월의 이야기는 흐뭇한 미소로 끝난다. 마냥 즐겁고 행복해서가 아니라 그 모든 일상이 소중한 풍경이라서. 정말 시의적절하다고 할까. 3월만 기다리지 말고 남은 2월을 사랑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얹는다. 2월이 있어야 3월이 오고 춥고 변덕스러운 2월이 있기에 그보다 포근한 3월은 폼 나기도 하니까. <br><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495/90/cover150/k25213531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4959071</link></image></item><item><author>자목련</author><category>당신과의 포옹</category><title>쟁여두는 </title><link>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093550</link><pubDate>Sun, 15 Feb 2026 11:3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093550</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P732939796&TPaperId=1709355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358/2/coveroff/p732939796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P912938528&TPaperId=1709355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5589/78/coveroff/p932938528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P722938427&TPaperId=1709355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5589/52/coveroff/p872938427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32135581&TPaperId=1709355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417/94/coveroff/k932135581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연휴가 시작되었다. 특별한 일정이 있는 건 아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말이다. 설날 아침에 오빠네 집에 모여 예배를 드리고 간단한 식사를 하는 게 전부다. 작년 11월 올케언니가 골절 수술을 받고 회복 중이라 걱정이 많지만 얼굴을 뵈니 마음이 놓였다. 겨울이라서 얼마나 다행인가. 평소처럼 그렇게 명절을 보내면 될 것 같다.<br>친구와 가까운 이에게 짧은 인사를 전하고 통화를 했다.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가 반갑고 정겨웠다. 뭐가 그리 바쁘고 대단한 일을 하는지 목소리를 나누는 게 어렵다. 그래서 더 귀하게 다가온다. 무고하고 무탈하길 바라지만 어떤 일들은 일어나고 어떤 일상은 계속된다. 그럼에도 무언가에 휩쓸리지 않고 단단하게 지내기를 바라는 마음을 보냈다. <br>이번 설에는 쿠키 선물이 많다. 커피와 곁들이면 좋을 다양한 수제 쿠키다. 냉동실에 보관했다가 하나씩 꺼내 먹으면 될 것이다. 연휴에 뭔가 읽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아마도 먹다가 보다가 자다가 먹다가를 반복할 게 뻔하다. 그래도 알라딘이 적립금으로 유혹해서 제일 좋아하는 커피를 샀다. 주문하고 나니 알라딘이 커피 할인 쿠폰을 줬다. 타이밍이 아쉽다. 새로운 커피를 주문할지도 모르겠다. 책도 한 권 샀다. 『나만 아는 단어』란 제목에 끌려서. 정용준, 김화진의 소설을 읽었기에 그들이 선택한 주머니, 유령, 산책이란 단어가 내게 아는 척을 하는 것 같아서. <br><br><br><br>좋아하는 커피를 쟁여둔다. 곁에 두기만 해도 향이 좋아서 자꾸만 생각난다. 좋아하는 것들을 쟁여두면 나쁜 것들이 사라질 것 같다. 무엇이 나쁜지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말이다. 그런 기꺼운 마음을 쟁여두면 좋겠다. 쟁여두는 마음, 쟁여두는 안부, 쟁여두는 안녕. <br>기척도 없이 미세먼지가 찾아오고 봄이 가까이 있다는 걸 느낀다. 옷차림의 무게는 가벼워지고 잠깐이라도 집 밖을 나갈 때면 마스크를 챙긴다. 누군가 꽃이 피는 소리를 알려줄 것이다. 여기저기서 그런 소식이 날아들 순간이 곧 들이닥치겠다. <br><br><br><br><br><br><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417/94/cover150/k93213558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4179402</link></image></item><item><author>자목련</author><category>목소리</category><title>조금만 더 주변을 둘러보고 손을 내밀어야  -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title><link>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091622</link><pubDate>Sat, 14 Feb 2026 13:0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09162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4074&TPaperId=1709162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653/50/coveroff/893204407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4074&TPaperId=1709162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a><br/>공현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06월<br/></td></tr></table><br/><br>사고나 위험한 일을 경험하게 된 이후의 삶은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될 대로 되라는 식, 다른 하나는 감사와 충만으로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이다. 작년 2월 아파트에 화재가 났었다. 3층 아래의 집에서 발생한 것으로 나는 소방관의 안내에 따라 대피했다. 감사하게 인명사고나 피해는 없었다. 그날의 경험과 기억은 한동안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고 이후의 사고도 변화했다. 모든 게 허무하고 부질없다는 것, 그리하여 더 내가 원하는 쪽으로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굳건해졌다. 이제는 괜찮아졌다고 여겼지만 2월이 되니 2월이 빨리 지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공현진의 소설집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처럼 세상은 멸망할 것이고 나는 언제든 죽을 수 있다. 그러니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할 것이다. 어쩌면 공현진은 소설을 통해 그런 마음을 나누고 연대하며 살아가기를 바랐을지도 모른다. 알고 있지만 그런 삶이 얼마나 어려운지도 안다. <br>표제작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 속 수영 강습에서 만난 ‘주호’와 ‘희주’는 각자의 계기로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교사였던 희주는 학폭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지구가 아프고 언젠가 물에 잠길 거라는 사실이다. 다른 이들에게 보편적인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희주의 사고방식은 옛 연인이나 그녀의 엄마에게 이상한 것으로 여겨졌다. 학교를 그만두고 환경을 생각하는 삶을 살기 시작한다. 물론 쉽지 않았다. 버리는 대신 필요해서 사들이는 물건이 훨씬 많았다. 우연히 수영 강습을 받게 되면서도 그랬다. <br>주호는 직장에서 동료가 죽었는데도 공장이 돌아가고 아무렇지 않게 이어진다는 게 이상했다. 그래서 기계를 껐다. 뭔가 달라져야 하는 데 당연하다고 생각했으니까. 동료와 상사의 반응은 달랐다. 처음엔 주호를 이해하는 것처럼 대했지만 회사를 쉬게 만들었다. 예전의 주호라면 그들과 같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다. 무엇이 주호를 그렇게 만들었는지 모른다. 어떻게 보면 주호와 희주는 별난 사람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주호와 희주가 특별한 사람도 아니고 행동하는 사람도 아니었으니까. 그렇다고 우리가 그들은 책망하고 비난할 권리가 있을까. <br>「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 은 좋은 단편이다.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 될 대로 되란 식의 흐름이 아닌 그 멸망이 언제일지 모르니 멸망이 온다고 해도 그전까지 함께 잘 살아보자는 의미를 담았다. 혼자서만 살아가고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니까. 더불어 같이 살아가는 삶을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br>희주는 반짝이던 도시가, 사람들이, 색색의 거리들이 물에 잠긴 모습을 상상했다. 무서운 것이 아니라 이상하게 위안이 됐다. 같이 떠내려가는 것, 같이 잠기고 같이 사라지는 것. 그런 것도 사랑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 55쪽)<br>「녹」은 결혼이주여성과 시간강사인 화자의 이야기로 제목의 ‘녹’은 이주여성의 이름이다. 화자는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수업에서 녹을 만났다. 둘은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 같은 처지지만 녹이 화자의 아이를 돌봐주면서 둘은 수직관계가 된다. 녹을 배려했고 녹의 아이를 데려오는 일이 불편함을 표현했다. 그녀의 입장에서는 당연했다. 그러다 비 오는 날 녹의 아이가 사고로 죽었다. 엄마가 있은 곳으로 오는 길이었다. 녹은 화자가 강의하는 학교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주임교수는 화자에게 어떻게 해야 하지 않겠냐고 말한다. 주임교수의 말은 악의가 없는 교양 있는 친절한 말이었다. 화자를 해촉하겠다는 뜻은 아닌 것처럼. <br>다른 의미를 담지 않는, 그래서 훼손되지 않는 말을 할 수 있는 것 역시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자격은 아니라는 걸 알았다. 그것이야말로 특권이었다. 현재에도 미래에도, 말이 끝나고 난 후에도 결코 부서지지 않는 말을 할 수 있는 특권. (「녹」, 13쪽)<br>주임교수와 화자의 관계는 녹과 화자의 관계와 같았다. 화자는 녹이 아이를 데려오는 걸 환대해야 했을까. 잘못은 화자에게만 있을까. 돌봄에 대한 사회적 시스템이 구축되었다면 녹도 화자도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고 사고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화자의 아이는 녹을 찾고 화자 역시 녹이 필요하지만 그건 가능할까. 1인 시위를 하던 녹이 사라진 후의 이야기가 궁금하지만 그려지지 않는다.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문제를 고발하는 역할에서만 그쳐 아쉽다. 물론 소설에서 대안이나 공동체를 그려낸다고 해도 현실화되기는 어렵겠지만.<br><br><br><br>『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속 인물은 주류가 아닌 비주류, 중심이 아닌 변두리의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그들은 중심으로 향하기를 간절히 열망하거나 안달 내지 않는다. 그게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아니, 그들은 체념의 상태일지도  모르겠다. 「이름을 짓기 직전」속 인물도 마찬가지다. 소설에서 화자와 ‘석주’는 친구 사이다. 화자는 여행사에서 전화 상담을 한다. 비정규직이다. 정규직의 노동 운동에 큰 관심이 없다. 석주는 일을 하지 않고 밴드에서 보컬 활동을 한다. 석주의 아버지는 석주가 남자답지 않고 군대를 가지 않고 채식을 한다고 때리지만 돈을 준다. 석주는 밴드에서 잘린 후 스스로 밴드를 결성하는데 거기서도 잘렸다. 그래서 둘만의 밴드를 결성하고 이름을 짓는 중이다. <br>그저 음악을 함께 하고 싶고 그 시간을 누리고 싶은 것뿐이라고 석주는 말했다. 진심도 자격이 있어야 가질 수 있어? 내가 정말 많은 걸 바라는 거야? 나는 석주의 넋두리를 들었다. (「이름을 짓기 직전」, 131쪽)<br>석주에게 그냥 그럴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래도 충분하다고. 어쩌면 공현진이 이 소설집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이 아닐까. 그대로 충분하다고 말이다. 그러면서도 사회적 시선이나 제도의 개선을 필요하다는걸. 석주처럼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이들의 이야기는 「돌아가는 마음」과 「권능」에서도 만날 수 있다. 「돌아가는 마음」속 언니는 가출을 했지만 주일마다 예배를 드리지만 목사인 아버지가 축도를 할 때 사라진다. 그런 언니가 5년 만에 돌아와 결혼을 하겠다고 통보한다. 엄마는 언니의 마음을 헤아리는 대신 상대가 믿는 사람인지 묻는다. 가출 전 모두의 자랑이었던 언니에게 분명 무슨 일이 있었지만 소설에서는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그 일에 대해 부모가 언니를 위로하거나 이해하지 않았다는 건 알 수 있다. 어렵게 얻는 딸을 잃은 이모가 조카인 화자의 모든 걸 간섭하는 「권능」에서도 비정상적인 신앙에 대해 보여준다. 가족 간의 관계에서 신앙이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는 듯이. <br>현실적 어려움은 신앙이 아닌 상대의 어려움을 헤아리는 마음에서 나온다. 「선자 씨의 기적의 공부법」의 선자 씨처럼 말이다. ‘진아’와 ‘선자 씨’를 요양 보호사 자격증 준비반에서 만났다. 진아는 아픈 아버지를 돌볼 방법으로 선자 씨는 남편을 부양할 목적으로 공부하며 서로를 돕는다. 수업을 들으면서 선자 씨의 질문을 진아는 빠짐없이 알려준다. 진아가 수도계량기 동파로 새벽에 전화를 걸자 선자 씨는 트럭을 몰고 달려온다. 그런 선자 씨의 합격을 진아는 진심으로 축하한다. 「이름을 짓기 직전」과 「선자 씨의 기적의 공부법」속 인물의 우정이 아름답고 따뜻하다. <br>타인에 대한 이해와 관심은 사라지고 오직 나만이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커지는 세상이다. 인간이 아닌 AI와 소통하는 시대를 쫓으며 살아간다. 먼 미래 내가 존재하지 않는 세상의 풍경은 어떨까. 적막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인류의 마지막 순간에 유일한 존재로 남은 인간 ‘하나’의 이야기를 그린 「모두가 사라진 이후에─3인칭의 세계」 속 이런 문장은 짙은 여운을 남긴다. <br>거리에 멈춰 서서 침묵과 소란이 오가는 시간을 지켜보았다. 이 마지막 풍경을 보기 위해 자신이 남아 있었다. 빠르게 시간이 가고 있었다. 멈추지 않고 시간이 가고 있었다. 사람들이 죽은 이후의 세상이 얼마나 조용하고 평화롭고 안전하고 고독하고 아름답고 무서운지. 소란스럽고 외롭고 소름 끼치고 사랑스러운지. 누군가는 보았으면 좋겠다는 소망 때문에 자신이 남았다는 것을 하나는 알아챘다. 인간들이 사라진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하나는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모두가 사라진 이후에─3인칭의 세계」, 274쪽)<br>작가는 살아가는 삶이 고단하여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오고 어차피 행복한 결말이 보장되지 않은 삶이라는 걸 알지만 그럼에도 삶은 살아볼 만하다고 말한다. 그러니 조금만 더 주변을 둘러보고 용기 내어 손을 내밀어야 한다고 말이다.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6653/50/cover150/893204407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6535077</link></image></item><item><author>자목련</author><category>목소리</category><title>숨겨둔 말들이 발화하기를  - [우리 사이에 금지된 말들]</title><link>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081062</link><pubDate>Mon, 09 Feb 2026 11:1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08106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92034889&TPaperId=1708106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008/41/coveroff/k19203488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92034889&TPaperId=1708106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우리 사이에 금지된 말들</a><br/>예소연.전지영.한정현 지음 / 다람 / 2025년 12월<br/></td></tr></table><br/>칭찬의 말은 진위 여부를 따질 필요도 없이 긍정으로 이어질 때가 많다. 잘하지 못한 일에는 잘할 수 있다는 격려가 담겼고 잘했을 경우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 때문이다. 부정의 말은 실낱같은 희망의 싹을 짓밟는다. 환경이나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해도 그렇다. 어렸을 때 그런 말을 들은 기억이 있다. 상급 학교의 진학을 선택할 때였다. 근거리의 학교에 진학하기를 바랐던 어른들의 말을 솔직하지 못했다. 그 시절 가장 혹독한 말은 모두 할머니 입에서 나왔는데 이를테면 이런 것이었다. 여자가, 딸이 무슨... <br>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기를 썼다.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원하는 곳으로 방향을 잡았다. 형편이 어려우니 엄마를 도와주면 어떻겠냐, 혹은 미안하지만 이번엔 네가 양보를 하면 좋겠다는 말을 했더라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그랬더라도 고집을 피웠을 것이다. 모든 행동이 엄마에게 얼마나 큰 상처로 남을지 알면서도 말이다. 『우리 사이에 금지된 말들』 을 읽으면서 왜 그 시절이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할머니의 권력에 엄마는 말을 아꼈다. 해야 할 말도 하지 못했고 하고 싶은 말도 삼켰다. 엄마가 내게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일까. 서러울 정도로 알고 싶고 듣고 싶다. <br>『우리 사이에 금지된 말들』에 수록된 세 편은 숨기고 감춰진 말들, 그러니까 해야 하는데 무언의 압력이나 사회적 통념이란 이유로 여성의 일상 속에서 하지 못한 말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전지영의 「나쁜 가슴」은 가장 현실적이고 보편적이라 우리가 그동안 그것이 얼마나 나쁜 말이고 해서는 안 되는 말인지 묵인하고 있었다는 걸 깨닫게 한다.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는 순간, 여성은 사라지고 모성만 강조된다. 모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산후조리원에서 아이에게 모유를 주고자 하는 마음은 간절하다. 하지만 그게 어렵고 안 되는 산모는 많다. 화자 ‘유진’은 엄마라 불리는 것도 익숙하지 않는데 모유 수유의 어려움마저 엄마의 탓으로 돌린다. 산후조리원장의 입장에서는 그게 당연하다. <br>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엄마라는 단어는 산모들의 기분을 묘하게 우울하게 만들었다. 우리 중 누구도 제 이름이 아닌, 엄마로 통칭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으니까. (「나쁜 가슴」, 14~15쪽)<br>“나쁜 가슴이 뭐 어때서요?”그녀의 말에 내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녀의 공허한 눈 속에서 슬픔과 절망, 무엇보다 단단하게 뭉친 분노를 발견했다. 내 마음이 그녀의 눈에 비친 것만 같았다. (「나쁜 가슴」, 26쪽)<br>모유가 적은 산모에게 나쁜 가슴이라 말하며 산모를 죄인 취급하는 원장의 말. 누구의 엄마가 아닌 나 자신으로 살고 싶은 마음, 역할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나로 존재하고자 했던 마음은 왜 부정당하는 것일까. 이 단편은 우리 사회가 모성을, 출산한 여성의 몸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보여준다. 생명을 잉태하고 출산하는 대단하고 아름다운 존재라는 인식이 부족하다는 것을 말이다. <br><br><br><br>사회운동에 참여해 대학원 무기정학 처분을 받고 집으로 돌아온 고모를 바라보는 조카 ‘성은’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한정현의 「가짜 여자친구」도 다르지 않다. 여학교에서 은밀하게 일어나는 교사의 성추행과 폭력을 대하는 미온적 태도. 가만히 있어야 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연대하고 행동해야 한다고. 차별과 폭행을 옹호하고 당연시하는 말들이야말로 영원히 금지되어야 할 말이라고.<br>전지영의 「나쁜 가슴」과 한정현의 「가짜 여자친구」이 사회와 개인 사이를 오가는 금지된 말들에 대한 것이라면 예소연의 「나의 체험학습」은 개인과 개인 사이의 말과 관계에 관한 것이다. 소설 속 ‘수이’는 가장 가까운 이와 이별한 반복된 경험으로 상대에게 진심을 내놓지 못한다. 단단한 관계를 원하면서도 헤어짐을 떠올리기 때문에 항상 불안과 함께다. 과거의 일은 그저 우연에 불과할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그 모든 것을 자신의 잘못이라 여기는 수이에게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미미 이모와의 만남은 관계의 새로운 확장이다. 둘 사이에 오가는 대화는 엉뚱하면서도 진중하다. 침묵하고 이별할 순간을 두려워하는 대신 뭐든 말하고 함께 해나간다. <br>고맙습니다, 같이 가, 혹은 그러지 마. 우리 사이에 금지된 말에 대해 생각했다. 둘 중 하나가 그 말을 내미는 순간 나는 이별에 대해 생각하고 만다. 그러면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되고 그 순간 마력이 솟구쳐 그 말은 우리를 이별의 순간으로 데려간다. 나는 몇 번이나 그런 식의 헤어짐을 겪었고 이제는 진절머리가 날 지경이다. “갈까?” “ 가자.” 우리는 금지된 말을 하지 않고도 제법 자유롭게 대화할 줄 안다. (「나의 체험학습」, 84쪽)<br>나는 언제나 관계라는 것이 명명백백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그러한 점이 나를 질리는 사람으로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사람이나 돌고래나 개나 언제든 누군가를 떠날 수 있으며 그것을 받아들이는 게 사실 우리에게 주어진 일일지도. (「나의 체험학습」, 117쪽)<br>언제나 그렇듯 세 작가의 얽힘 코멘터리를 읽으며 개운한 기분이 든다. 독자들이 이 시리즈를 찾는 이유 중 하나가 얽힘 코멘터리가 아닐까 싶다. 『우리 사이에 금지된 말들』를 읽고 저마다를 사로잡는 불안과 쌓아두고 숨겨둔 말들이 하나씩 발화했으면 좋겠다. 어떤 불안은 자꾸 꺼내야 없어지기도 하니까. 하지 못한 말들의 무게에 억눌려 위축된 마음이 기지개를 켤 수 있도록.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008/41/cover150/k19203488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0084170</link></image></item><item><author>자목련</author><category>당신과의 포옹</category><title>마음의 속도 </title><link>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078654</link><pubDate>Sun, 08 Feb 2026 10:4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078654</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5070&TPaperId=1707865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10/20/coveroff/8932045070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52135311&TPaperId=1707865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495/90/coveroff/k252135311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82135466&TPaperId=1707865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385/70/coveroff/k982135466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1월에는 친구들을 만났다. 내가 가장 여유롭고 친구들은 바쁘기에 일정을 조율하고 맞춰 얻은 시간이었다. 언제나 친구들과의 시간은 빨리 지나간다. 다시 자신의 공간으로 돌아가야 했기에 마음은 급하고 하고 싶은 말들을 쏟아낸다. 많이 웃고 많이 먹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래서 다음 만날 약속을 정하는 일은 더 가쁘다. 다음 만남을 기대하며 정신없이 살아갈 것이다. <br>다들 바쁘게 살아가고 나는 느리게 산다. 나무늘보처럼 산다. 목적 없이 살아간다. 그렇게 살아도 괜찮다고 그런 날들도 있는 거라고 친구는 말했지만 나는 알고 있다. 이런 시간을 종결해야 한다는 것을. 마음의 보폭이 조금은 넓고 빨라지기를 원한다. <br>좋은 책들이 내 마음의 속도를 올려줄 것이다. 2월의 책은 보뱅 (땡스투는 아프도록 아름답다는 잠자냥 님께)의 『세상의 빛』, 시의적절 시리즈 김상혁의 2월 『그냥 못 넘겼어요』, 이문재 시인의 시집 『꿈을 꾸게 하는 꿈이 있다』까지 세 권이다. 시집을 정리하면서 신간 시집을 사는 마음은 뭘까. <br><br><br><br>한결같이 아름다운 문장으로 가득한 책들이다. 아름다운 문장을 읽다 보면 나만의 문장을 꿈꾸게 된다. 나만의 문장을 갖는 일, 나만의 문장을 쓰고 싶은 욕망으로 이어진다. 그건 좋은 일이다. 좋은 문장을 얻지 못해도, 쓸 수 없는 문장을 바라더라도 문장을 염원하는 일은 벅차다. <br><br>잔가지 맨 끝늦겨울 이른 봄​처음 눈뜻 새순이뒤돌아보며 말한다​무서워요앞에 아무 것도 안 보여요​가지가 말한다앞에서는 아무것도 안 보여​줄기가 말한다네가 하늘을 보고 있는 거야​계속 올려줄 테니 앞만 보거라뿌리가 말한다​하늘이 너를 보고 있는 거야지근 네가 맨 앞인 거야(「새봄」, 전문)<br>맹렬한 추위가 마음을 가둔다. 좀 풀린다 싶더니 다시 추워졌다. 입춘이 지났다고 방심한 탓일까. 추워도 봄은 오고 추워도 꽃은 핀다. 그렇게 계절이 흐르는 걸 느낀다. 봄이 오고 있다. 우리가 바라는 봄은 새봄일 것이다. 작년과는 다른 봄, 단 한 번의 봄을 맞이한다.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385/70/cover150/k98213546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3857082</link></image></item><item><author>자목련</author><category>그러니까, 때때로 허물어지는 </category><title>작가와 나를 연결하는 통로 </title><link>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049433</link><pubDate>Tue, 27 Jan 2026 12:1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049433</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34826&TPaperId=1704943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7393/7/coveroff/s932034826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34834&TPaperId=1704943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7393/6/coveroff/8932034834_2.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16518&TPaperId=1704943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384/91/coveroff/8954616518_2.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93466&TPaperId=1704943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1784/0/coveroff/8954693466_2.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지난 12월에 친구와 나는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대화를 나눴다. 그것은 작가 한강에 대해서였다. 예상하지 못했다는 말은 친구는 책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처음 만났던 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려도 그런 것 같다. 그렇다면 나는 책을 좋아했던가. 모르겠다. 현재의 나는 책을 좋아하고 책을 사들이고 책을 쌓아둔다. 친구는 내게 한강의 책 가운데 『소년이 온다』의 내용이 뭐냐고 물었다. 대표적인 한강의 소설로 가장 많이 언급되었기에 그랬을 것이다. 솔직하게 그 소설은 읽기 힘들 거라고 답했다. 『작별하지 않는다』도 마찬가지라고. 내가 좋아하는 단편집을 추천했지만 친구는 장편이 좋겠다고 했다. 나는 그 기회를 놓칠 수 없어 알라딘에 들어가서 주문을 하려고 하자 친구는 극구 말렸다. 친구에게 책은 도서관에서 빌리는 것이었고 내게는 사는 것이었다. 마침 곁에 둔 『디 에센셜 한강』을 건넸다. 이 책이 정말 안성맞춤이라고 생각했다. 다시 책을 구매했고 천천히 읽었다. 아니, 게으르게. <br>나는 한강 작가를 좋아한다. 한강 작가가 무얼 말하는지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그 차분한 슬픔이, 애써 고르고 고른 순수한 언어가 좋았다. 어렵게 다가왔지만 자꾸 그렸다. 어쩌면 그의 소설을 읽을 당시 내 감정과 상태가 그러해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때문에 여전히 그의 초기 소설을 아낀다. 『디 에센셜 한강』에 수록된 작품은 그런 이유로 읽으면서 조금 울컥했고 많이 아팠다. 어떤 면에서 한강의 소설은 상실과 애도로 가득한 생을 버티고 견디며 살아가야 하는 궁극적인 이유가 무엇인지 묻는 것 같다. 아니, 어떻게든 살아내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한강에게 그것은 문학이자 언어였을 것이다. 유일하고 고유한 목소리. <br>말을 잃은 여자와 시력을 잃는 남자와의 이야기인 『희랍어 시간』을 다시 읽으며 나는 조마조마했다. 아름답게 보이기만 했던 소설이 아니었다. 처음 읽는 기분이었다. 처음 읽는 기분이 맞을지도 모른다. 한순간 그 삶이 깨질 것 같아서, 무너져내릴 것만 같아서. 그들이 겪는 상실과 고통을 나는 알 수 없으니 느낄 수 없고 말할 수 없다. 그들이 바라는 간절함이 나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는 것이라서. 절망의 순간을 지나왔다고 여겼지만 여전히 절망의 시간을 살고 있다는 게 부끄러웠다. 말을 잃은 그녀가 시력을 잃은 희랍어 강사의 집으로 돌아와 그를 위해 안경점에 가려는 마음에 안도했다. 그것은 당연한 마음이 아니었기에. 이상한 일이었다. 과거에 옮겨 적었던 문장은 보이지 않았다. 오롯이 두 사람의 실루엣만 내게 들어왔다. 그들의 움직임, 사소한 떨림, 귀 기울이고 놓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몸짓. <br>그런 기분은 단편소설 「회복하는 인간」과 「파란 돌」을 읽을 때도 다르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의 소설을 제대로 읽은 적이 없었다. 그게 맞았다. 「회복하는 인간」을 읽으면서 이런 내용이었던가. 나는  「회복하는 인간」을  「노랑무늬영원」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육체적 고통 따위는 아무런 문제도 아니라는 마음. 그렇다면 한강이 주목하는 고통은 무엇일까. 내면을 가득 채운 고통은 무엇일까. 인간으로 삶의 의미를 어디에 두고 살아가고 있는가. 그러나 반가운 점도 있었다. 「파란 돌」을 읽으며 한강의 소설이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파란 돌」에서 등장한 삼촌의 그림은 『바람이 분다, 가라』에 등장하는 먹그림을 불러왔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한강의  「어깨뼈」를 떠올렸다. 한강의 소설 곳곳에서 느껴지는 봄의 기운. 겨울을 견디고 봄을 기다리는 이미지가 한강의 그것은 아니었을까 혼자 짐작했다. <br>나도 모르게 떨리는 손이 가슴으로 올라왔습니다. 가슴뼈 사이 오목한 곳, 어떤 장기도 없는, 그렇게 아파보기 전에는 그런 장소가 몸에 있는지조차 몰랐던 곳이었습니다. 당신은 잠시 우두커니 서 있다가 손을 뻗어 내 손을 가볍게 쥐었습니다. 담담하게, 무언가를 위로하듯이. ( 「파란 돌」, 263쪽)<br><br><br><br>그래, 나는 이런 문장에 반하고 반했었다. 감히 만질 수 없는 감각과 숨죽여야만 들을 수 있는 소리. 그 모든 것은 슬픔에 기반된 것이었다. 그러나 슬픔에 싸였거나 갇힌 게 아니었다. 슬픔과 함께 성장하고 살아가는 것이었다. 눈이 되어 사라지고 말을 잃고 시력을 잃어도 멈출 수 없는 삶은 이어지고 계속된다는 당연하고 당연한 삶의 의무에 대한 위로이자 토닥임이었다. 거대한 역사의 슬픔을 통해서 한강이 전하고 싶은 게 이런 것이었지 오래전 나의 감각이 되살아났다. 부재로 존재하는 것, 그것이 나와 우리를 버티게 만드는 그것이었다. 사라졌다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고 그래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br>사람의 몸에서 가장 정신적인 곳이 어디냐고 누군가 물은 적이 있지. 그때 나는 어깨라고 대답했어. 쓸쓸한 사람은 어깨만 보면 알 수 있잖아. 긴장하면 딱딱하게 굳고 어려우면 움츠러들고 당당할 때면 활짝 넓어지는 게 어깨지. 당신을 만나기 전, 목덜미와 어깨 사이가 쪼개질 듯 저려올 때면, 내 손으로 그 자리를 짚어 주무르면서 생각하곤 했어. 이 손이 햇빛이었으면. 나직한 오월의 바람 소리였으면. 처음으로 당신과 나란히 포도(鋪道)를 걸을 때였다. 길이 갑자기 좁아져서 우리 상반신이 바싹 가까워졌지. 기억나? 당신의 마른 어깨와 내 마른 어깨가 부딪힌 순간, 외로운 흰 뼈들이 달그랑, 먼 풍경(風磬) 소리를 낸 순간. (『내 여자의 열매』 속 「어깨뼈」)<br>『디 에센셜 한강』에서 만난 산문은 정말 처음이었다. 처음이라서 새로웠고 더 깊게 집중할 수 있었다. 작가 한강이 아닌 소녀 한강, 딸 한강, 인간 한강을 마주하는 순간이라고 할까. 피아노를 열망하던 어린 한강을 상상하며 읽은  「종이 피아노」는 비슷한 경험이 있어 더 애틋했다. 딸이 원하는 피아노 학원을 보내주지 못하는 부모의 마음은 어땠을까. 형편이 나아졌을 때 피아노 학원에 엄마 아빠를 위해 일 년만 다녀주라는 그 마음. 그리하여 중학교 3학년이  되어 다니게 된 피아노 학원의 이야기 「저녁 여섯 시, 검고 긴 바늘」은 피아노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언제 기회가 되면 피아노에 대해 말할 수 있기를. <br>그런가 하면 「여름의 소년들에게」는 『소년이 온다』를 읽기 전이나 읽은 후에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는 이 책을 읽고 어떤 느낌이었을까. 친구가 궁금해했던  『소년이 온다』를 읽게 될까. 아니면 읽지 못하게 될까. 친구는 한강의 다른 책을 더 읽게 될까. 아니면 멈추게 될까. 다음에 친구를 만나면 우리는 한강에 대해 이야기를 할 것이다. 예상하지 않았던 대화지만 예전과 같으면서도 다른 그 무언가에 대해서.<br>‘언어’라는 나이 불충분하고 때로 불가능한 도구가, 결국은 그것을 읽을 누군가를 향해 열려 있는 통로라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자각해야 한다는 것을. 그리하여 마침내 첫 문장을 쓰는 순간, 내는 백 년 뒤의 세계를 믿어야 할 것입니다. 내가 쓴 것을 읽을 사람들이 거기 아직 살아남아 있으리라는 불확실한 가능성을. (「백 년 동안의 기도」, 340쪽)<br>저마다 독립적이었다고 여겼던 한강의 소설이 동그라미가 되었다. 동그랗게 커지고 있었다. 내가 만난 소설이 그 동그라미의 일부였고 전체였다는 게 기쁘다. 잘 모르고 끝내 알 수 없더라도 읽을 수 있고 읽는 일이 작가와 나를 연결하는 통로라는 사실이. <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1784/0/cover150/8954693466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17840073</link></image></item><item><author>자목련</author><category>목소리</category><title>아파서 시골에 왔지만 좋아서 살아가는  - [아파서 시골에 왔습니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037642</link><pubDate>Thu, 22 Jan 2026 11:5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03764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02034731&TPaperId=1703764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263/52/coveroff/k00203473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02034731&TPaperId=1703764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아파서 시골에 왔습니다</a><br/>안효원 지음 / 밤나무 / 2026년 01월<br/></td></tr></table><br/><br>살다 보면 어찌할 수 없는 일들과 마주한다. 내가 원하고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고 다른 곳으로 데리고 가는 게 삶이라는 걸 알게 된다. 하지만 바로 수긍하고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다. 시간이 필요하다. 적응할 수 있는 시간,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들고 품고 살아갈 수 있는 시간 말이다. 안효원의 『아파서 시골에 왔습니다』는 그런 시간에 대한 기록이다. 기록은 일상이고, 기록은 삶이다. 그러니 이 책은 살아가는 이야기, 어쩌면 당신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br>『아파서 시골에 왔습니다』 란 제목에서 당신은 어디에 끌리는가? 아파본 사람은 아파서에 멈추고, 시골에 살거나 시골을 꿈꾸는 이들은 시골이란 단어가 그럴 것이다. 시골에 살기도 하고 튼튼하지도 않는 나는 읽기 전부터 조금 마음이 아렸다. 그렇다고 이 책이 투병기 혹은 회복기라는 착각은 하지 말길 바란다. 앞서 말한 것처럼 그냥 사는 이야기. 웃고, 울고, 실수하고 배우고 성장하는 시골 농부의 이야기다. <br>저자가 처음부터 귀농을 결정한 건 아니다. 수업이 끝난 토요일 버스를 기다리느니 2시간 걸어서 집에 오던 아이, 고등학교부터는 집을 떠나 자취를 하고 PD가 될 수 있다는 말에 국문과에 입학한 청년은 영화주간지의 기자가 되었다. 좋아하는 책을 읽고 소개하는 분야로 이직도 했다. 왕복 다섯 시간의 출근길이 무리였을까 몸이 신호를 보내왔고 수술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회복을 위해 고향 포천으로 돌아왔다. 충천을 위한 시간은 어느덧 토박이의 삶으로 변화했다. 우연한 계기로 초등학교 인턴 국어 교사를 시작했고 도시로 가기를 바랐던 부모님의 바람과는 다르게 저자의 선택은 결론적으로 귀농이었다.<br>농부의 딸이고 동생이기에 나는 농사를 짓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안다. 그래서 저자가 들려줄 농사 이야기가 시시하지 않을까 싶었다. 아니었다. 너무 재밌고 놀라웠다. 언제나 그렇듯 짐작은 경험이 아니니까. 초등학교 아이들과 수업을 하며 아버지를 도와 조금씩 농부가 되어가는 과정은 즐겁고 감동이었다. 저자에게는 힘겨운 과정이 더 많았을 수도 있겠지만. <br><br><br><br>농사는 힘겹다. 그냥 씨를 뿌리고  때 되면 수확하는 게 아니다. 하루하루 살피고 자연의 영향을 받고 많은 시간과 정성이 필요한 일이다. 적절한 비와 바람과 태양 같은 건 없다. 산에 심어놓은 더덕 넝쿨을 다 뜯어내고 옥수수를 뽑는 일은 귀여운 실수다. 아버지는 논에 제초제를 주는 일도 대충 주면 된다고 하지만 그 대충은 아버지만 알 수 있다. 그러니 적당히 논을 가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실패하고 실수하고 시간을 투자하면 보인다. 손을 놓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리고 깨닫고 알게 된다.<br>오늘 세상이 끝나는 건 아니니까 일 한 시간 더 하고 망가진 거 고치면 그만이다. 고치면 논둑은 더욱 단단해진다. (69쪽)<br>우리가 살아가는 삶이 그러하다. 어제와 똑같아서 지겨울 수도 있지만 어제와 똑같으니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오늘을 살 수 있다. 배달 음식을 먹을 수 없는 시골이기에 도시에 가면 모든 게 맛있고 좋아 보인다. 일손이 부족해 도움을 받아야 하지만 친구와 친척의 도움을 받아 일을 하는 날은 신나고 즐거운 날도 기억된다. 혼자 사는 이웃 할머니께 아이들과 인사를 가면 과자가 수북이 반긴다. 작은 학교, 작은 동네에 보탬이 되고자 참여하고 열심히 최선을 다한 공동체의 10년 시간은 상처를 남긴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글쓰기가 된다. <br>저자의 하루를 상상한다. 매서운 추위로 가득한 겨울의 날들은 좋아하는 책과 둘러싸여 있을 것 같다. 어쩌면 눈 내린 둔덕을 찾아 아이들과 눈썰매를 타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내 부천댁과 ‘밤나무 북스테이’ 공간을 위해 열심히 뭔가를 계획하고 수정하기를 반복할지도 모른다. 아파서 시골에 왔지만 좋아서 시골에 살고 있다는 다음 이야기를 쓰고 있을지도. <br>어쩌면 우리는 기대하지 않았던 삶을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어떤 이는 기대하는 삶을 위해 기대하지 않았던 삶을 견디고 있을지 모른다. 어떤 이는 기대하지 않았던 삶에서 기대 이상의 것을 발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살아가야 할 삶은 알 수 없다. 미지의 날들이기에 희망을 꿈꾸기도 하고 반대로 불안을 버리지 못한다. 삶의 방향을 어디로 둘 것인지, 주어진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이 책을 읽고 나면 조금 분명해질 것이다. 괜찮다는 위로와 함께. ​봄이면 뒷산에서 상큼한 상아를 뜯어 먹고, 이제는 먹을 사람도 없어 동네 오디를 혼자 다 따 먹는다. 집 앞에 자라는 딸기는 작고 볼품없지만 제철 딸기의 향을 오롯이 품고 있어 좋다. 버드나무 꽃가루가 사방에 날리면 한상의 세계에 온 것 같고, 열심히 일하고 돌아와 느티나무 그늘에 앉아 서산으로 지는 해를 보는 것도 좋다. (135쪽)]]></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263/52/cover150/k00203473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2635290</link></image></item><item><author>자목련</author><category>목소리</category><title>언제쯤 원하는 삶을 살게 될지  - [안녕이라 그랬어]</title><link>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020476</link><pubDate>Wed, 14 Jan 2026 15:3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02047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62039240&TPaperId=1702047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566/52/coveroff/s63213595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62039240&TPaperId=1702047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안녕이라 그랬어</a><br/>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06월<br/></td></tr></table><br/><br>나이를 먹으면서 어떤 면에서는 거리낌 없어지고 어떤 면에서는 의뭉스러워진다. 뭔가를 소유하고 채워야 한다는 부담감, 이뤄야 한다는 의무감이 가득하다. 대화의 폭은 점점 좁아지고 깊이는 얕아진다. 진심을 표현하는 게 어렵고 가벼운 수긍이나 농담으로 눙 치는 경우가 늘었다. 사느라 그런 거라고, 고단해서 그런 거라고 여기면서도 돌아서면 내심 서럽고 웅크러진 마음을 어찌할 수가 없다. 김애란의  『안녕이라 그랬어』 속 단편을 읽으면서 그런 기분을 느꼈다. 작가와 함께 나이를 들고 작가가 그려낸 소설 속 인물이 전혀 남 같지 않음이 반가우면서도 쓸쓸한 건 나뿐이 아닐 것이다.<br>화려하고 풍요로운 공간을 방문할 기회, 부러움의 대상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무의미한 대화 속에서 결코 우리가 될 수 없다는 걸 확인하고 마는 「홈 파티」나 타국의 휴양지에서 한 달 동안 지내면서 겪는 묘하게 불편함을 느끼는 상황이 소통의 부재보다는 돈의 문제로 부각되는 「숲속 작은 집」은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경제적 어려움을 직면한 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것이다.  ‘홈 파티’나 ‘숲속 작은 집’이라는 제목만 보면 우리네 현실과는 다른 삶이 아닐까 싶은 기대와 다른 각도를 보여주는 것. 나의 자리가 아닌 다른 사람의 자리에서 바라보는 삶의 장면이 어떻게 펼쳐질지 성찰하게 만드는 단편이다.<br>이처럼 이번 단편집에서 김애란이 들려준 이야기가 실제적이고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건 그냥 있을 법한 장면이나 삶의 조각이 아니라 누군가 살아내고 경험하는 삶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독자에게 가장 친숙하고 현실감 있게 다가왔을  「좋은 이웃」이 그렇다. 층간 소음이 심각한 요즘 좋은 이웃을 만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마찬가지로 좋은 이웃이 될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없다. 아니, 내 집이라면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전세를 살며 독서지도사로 공부방을   운영하는 ‘나’는 윗집의 공사로 인해 소음과 일에 차질이 생기고 피해를 입는다. 이사를 오기 전 인테리어 공사 안내를 하고 서명을 받으며 좋은 이웃이 되겠다는 말은 이행되지 않는다. 선의로 이해를 하려 하지만 쉽지 않다. 전세이기에 이사를 가야 하는 상황과 가르치는 학생의 이사로 복잡하다. 장애가 있는 시우가  곧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가고 학부모는 그곳까지 와서 수업을 해줄 수 있는지 묻지만 선뜻 대답을 할 수 없다. 좋은 이웃이자 좋은 선생님은 의지가 있다고 가능한 게 아니었다. <br>우리가 집을 잃어서도, 이웃을 잃어서도 아니었다. 우리가 정말 상실한 건 결국 좋은 이웃이 될 수 있고, 또 될지 몰랐던 우리 자신이었다는 뼈아픈 자각 때문이었다. (「좋은 이웃」, 142쪽)<br><br><br><br><br>남들처럼 사는 건 왜 이리 어려운가. 때가 되면 전세가 아닌 자가의 공간에서 살 수 있다는 행운은 나만 비껴가는 것일까. 이런 마음은 「빗방울처럼」에서도 만날 수 있다. 「좋은 이웃」과 마찬가지로 부동산 문제를 다루지만 한층 심각한 전세 사기에 대한 이야기다. 새 아파트로 이사를 앞둔 ‘지수’에게 닥친 일은 뉴스에서나 들은 것이었다. 집 주인이 집을 담보도 대출을 받고 연락 두절이 된 것. 천장에선 물까지 새는 상황에 할 수 있는 선택은 새 아파트 입주가 아닌 살던 집을 경매로 낙찰받는 일이다. 그럴 수 있다 쳐도 갑작스러운 남편의 죽음은 감당할 수 없다. 아무리 내 맘대로 되지 않는 게 삶이라지만. 누가 지수의 선택을 비난할 수 있을까. 자신이 머물다 떠난 자리가 단정하길 바랐던 지수는 물 새는 천장 도배를 위해 도배사를 부른다. 안방 천장 상태를 살피던 그녀가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는다.  아무것도 모르는 이가 건네는 그 평범한 말을 통해  아무에게도 받지 못한 위로를 그녀에게서 받는다. 생의 마지막을 결심한 그 순간에 말이다.<br>삶의 끝이 무엇일지 알 수 없기에 우리는 그저 살아가는 건지도 모른다. 한편으로는 언제쯤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 희망을 끈을 놓지 않으면서. 그러니 어떤 일들은 그냥 이유 없이 다가오고 일어난다. 표제작 「안녕이라 그랬어」의 ‘은미’에게도 그랬다. 달콤한 미래를 꿈꾸던 시절이 있었다. 엄마의 간병이 길지 않을 거라고 여겼지만 현실은 계획한 대로 흐르지 않는다. 연인 헌수와의 이별이야말로 예정된 수순이었고 엄마를 떠나보낸 은미는 사십 대 중년의 나이가 되었다.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선택지가 별로 없는 나이, 그러나 이대로 포기해서는 안 되는 나이, 은미는 외국어 공부를 시작한다. 화상 영어 사이트를 통해 원어민에서 영어를 배운다. 그 과정에서 ‘안녕’이란 말이 은미에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연인과의 만남과 헤어짐, 엄마와의 작별, 그리고 원어민 교사와의 이별. 왜 나만 이렇게 버겁고 힘든가 싶었던 모든 것들은 피할 수 없는 자연스러운 일상이라는 위안. <br>그런 일은 ‘그냥’ 일어난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저 내 차례가 된 것뿐이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왜 그 앞에서 매번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을까? 마치 살면서 이별이라고는 전혀 겪어본 적 없는 사람들처럼.(「안녕이라 그랬어」, 250쪽)<br>살다 보면 이런저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 준비하라고 말해주지 않는다. 나이를 먹으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아니다. 삶은 알려주지 않는다. 언제쯤 원하는 삶과 마주할지 알 수 없다. 좋은 삶을 살게 될지도 알 수 없다. 혼자만의 세상이 아니기에 나도 모르는 사이 타인과 비교하고 절망한다. 행복의 수치를 돈으로 헤아리기도 한다. 그러나 내가 모르는 그들의 사정도 있고 아픔도 있을 것이다. 김애란은 그것을 헤아리고 배려하는 좋은 이웃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소망을 돈과 이웃의 이야기로 엮은 『안녕이라 그랬어』를 통해 전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더 높은 곳, 다른 계층으로의 이동을 욕망하는 자연스러움을 포착한다. 그리고 나 혼자만 그런 삶을 사는 게 아니라고 가만히 위로를 건넨다.<br>앞으로도 저는 삶이 무엇인지 모른 채 삶을, 죽음이 무언지 모른 채 죽음을 그릴 테지만, 때로는 그 ‘모름’의 렌즈로 봐야만 비로소 알게 되는 것들이 있음을 새로 배워나가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삶은 언제나 우리에게 뒤늦은 깨달음의 형태로 다가오니까요. (작가의 말 중에서, 316~317쪽)]]></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6566/52/cover150/s63213595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5665217</link></image></item><item><author>자목련</author><category>그러니까, 때때로 허물어지는 </category><title>새해 증후군 </title><link>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018579</link><pubDate>Tue, 13 Jan 2026 16:1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018579</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2748&TPaperId=1701857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3929/36/coveroff/8932042748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44961&TPaperId=1701857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160/44/coveroff/8932044961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빈둥거림이 지나쳐서 이제는 뭔가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다. 바람이 강하게 불고 기온이 영하 저 아래로 떨어지는 날들이다. 몸만 추운 게 아니라 마음까지도 바람이 들이치는 것만 같다. 새해에 맞게 뭔가 새롭게 해야 할 것만 같은 부담은 어디서 오는 걸까. 주변에 뭐라 말하는 이도 없고 눈치를 주는 사람도 없는데 말이다. 어쩌면 이런 마음은 새해 증후군일지도 모른다. <br>몇 년 전 이즈음의 글에는 계획을 세우는 게 세우지 않는 것보다 낫지 않겠냐는 큰 언니와의 대화가 있었다. 아무런 계획을 세우지 않는 지금의 나에게 하는 말 같았다. 계획 없이 사는 나에게, 조금은 계획이 필요하다는 걸 알고 있는 것처럼. <br>지난 계획을 기록한 글을 찾아보니 대단한 게 없었다. 책을 조금 더 읽고 쓰고 친구를 만나는 일, 그게 전부였다. 운동을 하거나 외국어 공부를 하거나 투자를 하거나 하는 건 없었다. 그런 계획을 다시 세워보기로 한다. 읽는 즐거움이 완전히 소멸되지 않도록 책을 고른다. 올해의 첫 시와 첫 책은 이렇다.  조용미 시인의 『초록의 어두운 부분』에서 만난 시, 디디에 에리봉의 『어느 서민 여성의 삶, 노년, 죽음』 책이다. <br><br><br>기이하다 오래전에 나는 당신과 함께 모든 걸 나누었던 것 같다 같은 공간과 시간에서 서로에게 마음을 다했던 것 같다​왜 지금은 이토록 남인가 다른 생을 받으면 이렇게 다시 시작되는가​이전의 모든 생은 분명하고 또 어렴풋하다 모든 생에서 나는 나의 기억과 함께였는지도 모른다​어떻게 그런 걸 알 수가 있을까 당신은 지독한 타인이고 다음 생까지는 너무 멀다​언제나 다음 생을 믿을 만큼 나는 어리석었다​여기서 그쳐야 한다 끝이라는 말을 늘 생각한다 끝은 여러 생을 거쳐 행할 줄 모르는 습관이 생겨났다​끝은 끝끝내 오지 않아서 우리는 끝에 닿을 수 없다​믿을 수 없다 끝이 없는 마음이 지옥인데도 죽어도 마음은 끝을 모른다 끝이 저 스스로 죽고 싶도록 아름답게, 처절하게 우리는 (「구제적인 삶」, 전문)<br>모든 게 불확실하고 모호하지만 구체적인 것들을 생각한다. 하루의 일상, 하루의 시간,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분명하고 명확한 것들을 떠올린다. 하루하루 늙고 있다는 게 이상하지 않다. 나이를 헤아리지 않은지 꽤 오래되었다. 혼자만의 새해 증후군은 조금 더 길어질지 모르지만 제주도에서 온 동백 사진은 반갑다.<br> <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160/44/cover150/893204496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1604461</link></image></item><item><author>자목련</author><category>목소리</category><title>사랑을 대하는 당신의 태도는?  - [이성과 감성]</title><link>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001529</link><pubDate>Mon, 05 Jan 2026 16:3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rilkecactus/1700152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02034983&TPaperId=1700152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701/22/coveroff/k402034983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02034983&TPaperId=1700152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이성과 감성</a><br/>제인 오스틴 지음, 김선형 옮김 / 엘리 / 2025년 12월<br/></td></tr></table><br/>연애소설에서 독자가 바라는 건 무엇일까. 첫눈에 반해 아무런 장애 없이 완벽한 사랑과 행복한 결말일까. 아니면, 숱한 오해와 헤어짐을 반복하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것일까. 뭐가 됐든 독자는 소설을 읽으면서 주인공과 동일시되어 연애 감정을 전달받기를 원한다. 연애를 꿈꾸면서도 연애를 멀리하는 요즘 20~30대가 연애 프로그램에 열광하는 이유도 같을 것이다. 제인 오스틴의 『이성과 감성』과 『오만과 편견』이 오랜 시간 사랑받는 이유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br>제인 오스틴의 첫 장편소설인 『이성과 감성』은 연애의 첫 시작과 전반적인 모든 과정을 만날 수 있는 연애소설이다. 『이성과 감성』은 앞서 읽은 『오만과 편견』과 인물 설정이나 스토리가 상당히 비슷하다. 『이성과 감성』엔 유머러스한 인물이 없다는 점이 다르다고 할까. 주인공 자매는 물론이고 상대 남성의 성격이나 집안 배경도 흡사하다. 소설 속 자매의 아버지가 사망하면서 유산이 이복 오빠에게 돌아가며 어쩔 수 없이 정든 집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하게 된다. <br>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며 사랑이 시작될 것 같지만 사실 첫째 엘리너는 이사 전 사돈총각인 에드워드와 연애 감정을 키우는 중이었다. 물론 사돈 집안에서는 엘리너를 환대하는 건 아니었다. 거리가 멀어져도 둘 사이의 확신이 있다면 크게 문제 될 게 뭐가 있겠는가. 하지만 좀처럼 에드워드의 연락은 없었다. 반면 메리앤은 이사 온 곳에서 두 명의 남자를 만난다. 메리앤을 좋아하는 브랜던 대령과 메리앤이 첫눈에 반한 월러비. 메리앤의 마음은 나이차가 많이 나는 브렌던 대령보다는 또래인 청년 월러비에 향했고 언니 엘리너의 눈에는 둘 사이가 약혼한 것처럼 보였다. 브랜던 대령은 메리앤의 감정을 알면서도 메리앤을 향한 마음을 접지 않는다.<br>이성과 감성이란 제목처럼 소설 속 두 주인공은 서로 반대 성향을 지녔다. 철저하게 이성적 판단이 강한 언니 엘리너와 생각이나 판단보다는 감정에 이끌려 행동하는 동생 메리앤의 연애와 사랑에 대한 이야기. 요즘 유행하는 성향으로 보자면 엘리너는 T, 메리앤은 F라 할 수 있다. 엘리너는 한편으로는 신중하다 못해 고지식하게 보인다. 에드워드에게 숨겨둔 약혼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도 차분함을 잃지 않으니 말이다. 메리앤의 명랑은 사랑스러울 때도 많았지만 제발 한 번 더 생각하면 어떨까 싶을 때도 있었다. 그러니 미래를 확신하는 월러비가 연락이 닿지 않고 마침내 들려온 소식이 그의 결혼 소식이니 메리앤의 상심은 병이 될 수밖에 없다. <br><br><br><br>엘리너와 메리앤의 사랑은 끝내 이뤄지지 않는 것일까. 에드워드의 숨겨진 약혼자와 월러비의 결혼은 충격이었기에 브랜던이 사랑하는 이도 메리앤이 아닌 언니 엘리너가 아닐까 조바심이 났다. 놀라운 건 이 소설이 제인 오스틴의 첫 소설이라는 점이다. 누군가를 좋아하면서 발견할 수 있는 모든 감정과 그와의 관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소설에 녹아냈다고 할까. 어디 그뿐인가. 제인 오스틴은 그 시대의 사회적 관습에 대해서도 놓치지 않는다. 장자상속의 문제점을 꼬집고 자녀를 소유물로 여기는 부모(에드워드의 어머니)에 대해서도 가감 없이 보여준다. <br>재미있는 건 결혼의 조건이라 할 수 있다. 결혼에서 행복은 운이라 말했던 『오만과 편견』속 샬럿처럼 『이성과 감성』에서도 약혼을 했지만 파혼하고 다른 사람과 결혼했을 때 이익을 생각하는 따지며 유리한 선택을 한 루시의 모습은 그 시대의 영국의 사회가 어땠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엘리너와 메리앤이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지만 제인 오스틴의 주변에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했을 것 같다. <br>누군가를 사랑할 때 발생하는 감정은 어떻게 표현되는 게 좋을까. 얼핏 생각하기에 엘리너와 메리앤의 감정이 반박씩 드러나면 가장 완벽할 것 같지만 사랑하는 일도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니 뭐나 좋고 나쁨을 판단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래도 스스로를 다잡는 엘리너의 모습은 애처로워 보였다. 엘리너에게서 K- 장녀 모습이 겹쳐진 건 나뿐일까. <br>겉으로는 아무런 기쁨도 드러내지 않았고, 어떤 말이나 미소로도 표현되지 않았답니다. 오직 엘리너의 가슴속에서만, 그 고요하고 강인한 만족감이 머물러 있었어요. (477~478쪽)<br>“나는 침착하게 행동할 거야. 내 마음의 주인이 될 거야.” (542쪽)<br>사랑을 대하는 당신의 태도는 어떠냐고 묻는 것 같다. 소설을 읽으면서 지난 사랑의 모습을 가만히 돌아보는 이들이 많을 것 같다. 어쨌든 돌고 돌아서 사랑의 결실이 이뤄지는 모습은 독자로서 흐뭇하다. 오랫동안 사랑받는 연애소설이라는 걸 확인한다. 제인 오스틴을 사랑하는 독자에게 제인 오스틴 탄생 250주년을 맞아 새로운 번역으로 출간된 소설이라는 점은 특별한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701/22/cover150/k402034983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7012223</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