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즐거움에 이어 아는 즐거움이다. 한국문학을 좋아하니, 한국소설은 언제나 반갑다. 요즘 소설에서 다루는 주제나 소재가 비슷(돌봄, 여성, 연대) 하지만 읽는 일은 즐겁다. 작가마다 선택한 주제는 닮았어도 표현이나 인물의 환경 설정은 다르니까.


곧 세계 책의 날도 다가오니 아는 즐거움에 흠뻑 빠져드는 일도 좋다. 안다고 했지만 아는 즐거움은 크지 않다. 한국 문학의 젊은 작가는 하루가 다르게 쏟아져 나오고 그 소설을 이해하는 일은 버겁다. 그래도 소설은 좋고 이런 작가는 더욱 반갑다.


우선 오랜만에 만나는 김이설의 단편집이다. 연작이 아니 『누구도 울지 않는 밤』에는 단편 10개가 수록된 작품이다. 오늘 출간 기념 북토크가 있다고 한다. 책에 대한 이야기를 음악으로 이야기하는 색다른 북토크인 듯하다. 누군가의 참석 후기를 기다린다.






올해도 『2023 제14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을 곁에 두었다. 이미상, 이서수, 김멜라의 이름이 반갑고 처음 만나는 작가의 이름으로 채워진 『소설 보다 : 봄 2023』, 묘하게 끌리는 시집 『소멸하는 밤』를 읽는 밤을 기대한다. 소설과 시를 읽는 것으로 4월을 마지막을 보낼 것 같다.














4월인데, 내가 좋아하는 4월이 이렇게 흐른다. 언제부터인가 4월에는 노영심의 『4월이 울고있네』를 듣는다. 발매 당시에는 몰랐던 노래. 세월이 흘러 이제야 듣게 되는 노래. 가사를 따라 읽으면 흥얼거린다. 봄비가 내리는 4월, 청벚꽃을 바라보며 그 아래서 사진을 찍었던 봄을 생각한다. 그립기도 하고 아쉽기도 한 4월이 흐른다.



봄비가 내려오는데 꽃잎이 흩날리는데

나의 눈에는 4월이 울고 있는 것처럼 보이네

봄비가 내리는 소리 꽃잎이 떨어지는 소리

나의 귀에는 4월이 울고 있는 것처럼 들리네

창문열고 봄비 속으로 젖어드는

그대 뒷모습 바라보면은

아무리 애써 보아도 너를 잊을 순 없어라

내일을 기다려도 될까

내 사랑을 믿어도 될까

내가 딛고 가는 저 흙이 마르기 전에

내 눈물이 그칠까

창문열고 봄비 속으로 젖어드는

그대 뒷모습 바라보면은

아무리 애써 보아도 너를 잊을 순 없어라

내일을 기다려도 될까

내 사랑을 믿어도 될까

내가 딛고 가는 저 흙이 마르기 전에

내 눈물이 그칠까

내 눈물이 그칠까(내일을 기다려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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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연보를 읽는 것으로 『디 에센셜 김수영』를 시작했다. 한 사람의 삶을 시간순으로 순차적으로 정리한 글 안에서 김수영은 태어났고 소년에서 청년으로 자랐다. 총명하고 아픈 아이로 시작한 연보는 가장 들끓던 지식인, 쓰기를 멈추지 않던 젊은 시인에게 찾아온 죽음으로 끝났다.


나와는 한 줄의 시간도 겹치지 않은 시간을 살다간 시인의 시를 언제 만나고 알게 되었던가. 만났다는 말은 우습다. 김수영의 시는 솟대같이 우뚝 서 있었고 어디서든 우리는 그의 시를 읽을 수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풀」은 뭐랄까. 어떤 상징으로 이해했고 잘 모르면서도 중얼거렸다. 아마도 학창 시절이었을 것이다. 그저 암기의 수순으로 기억한 시구절. 『디 에센셜 김수영』에서 천천히 다시 읽은 그의 시는 슬프면서도 아름다웠고 사실적이면서도 풍부한 은유로 가득했다.


우리의 음악은 어디로 흐르는 것일까. 음악이 상징하는 것은 무엇일까. 처음 시를 배우던 시절로 돌아가 하나하나 그것을 파헤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가도 ‘음악은 흐르는 대로 내버려 두자’나 ‘나의 음악이여 지금 다시 저기로 흘러라’ 같은 구절에서 뭔가 울컥하고 올라오는 건 무엇일까. 시로 말하고 외치고자 했던 건 무엇일까.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된다.




음악은 흐르는 대로 내버려 두자

저무는 해와 같이

나의 앞에는 회색이 뭉치고

응결되고

또 주먹을 쥐어도 모자라는

이날에 또 어느 날에

나는 춤을 추고 있었나 보다

불이 생기어도

어젯날의 환희에는 이기지 못할 것

누구에게 할 말이 꼭 있어야 하여도

움직이는 마음에

형벌은 없어져라

음악은 아주 험하게

흐르는구나

가슴과 가슴이 부딪치어도

소리는 나지 않을 것이다

단단한 가슴에 음악이 흐른다

다리도 없이

집도 없이

가느다란 곳에는 가시가 있고

살찐 곳에는 물이 고이는 것이다

나의 음악이여

지금 다시 저기로 흘러라

몸은 언제나 하나이었다

물은 나의 얼굴을 비추어 주었다

누구의 음악이 처참스러운지 모르지만

나의 설움만이 입체를 갖고

떨어져 나간다

음악이여 ( 「음악」, 전문)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자

강물 위에 떨어진 불빛처럼

혁혁한 입적을 바라지 말라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달이 떠도

너는 조금도 당황하지 말라

술에서 깨어난 무거운 몸이여

오오 봄이여 ( 「봄밤」, 일부)


오랜 시간 손에 잡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속도가 나지 않는 책이었다. 어쩌면 집중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특히 산문에서 김수영이 느꼈을 시에 대한 고민과 그가 살았던 시대에 학인의 역할로 고뇌하는 그 심경에 대해 알 수 없었다. 어찌 알겠냐만 그래도 솔직하게 건네는 산문으로 그가 글 쓰는 일을 어떻게 여겼는지 미세한 떨림의 깊이 정도는 가늠하고 싶었다. 그의 내면을 흔들고 부서졌다가 채우기를 반복하는 그 마음의 조각, 혁명의 시대에 폭발하듯 써 내려간 시와 그 안에 담고자 했던 자유를 말이다. 읽기의 한계는 언제나 빨리 도착한다. 산문에서 한 번씩 멈추고 말았다. 포로수용소의 기록, 닭을 키우던 일, 박인환의 마리서사, 번역에 대한 생각들을 읽으면서 자꾸만 나는 알 수 없는 그 시대와 현재를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지금 김수영이란 시인이 있다면 어땠을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들.


수동적으로 불안을 받아들이느니 보다는 불안 속에 뛰어 들어가 불안과 운명을 같이하는 것이 괴로움이 적은 일이요 떳떳한 일같이 생각이 들었다. (산문 「내가 겪은 포로 생활」중에서)


유명이 유명을 먹고, 더 유명한 것이 덜 유명한 것을 먹고, 덜 유명한 것이 더 유명한 것을 잡아 누르려고 기를 쓴다. 이쯤 되면 지옥이다. 그리하여 모든 사회의 대제도(大制度)는 지옥이다. 이 지옥 속의 레슬러들이 속물이다.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다 속물이다. (산문 「이 거룩한 속물들」중에서)


젊은 층의 전면적인 불신임을 받아야 할 것은 정치계에만 한한 일이 아니라 문학계도 마찬가지이고, 이러한 각성의 시기는 빨리 오면 빨리 올수록 좋은 것이기 때문이다. (산문 「독자의 불신임」중에서)


읽는 것도 어렵고 이해하기란 더욱 어렵겠지만 이런 따뜻하고 좋은 시 앞에서는 멈추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읽기를 반복한다. 그 파밭의 푸른색이 눈앞에 펼쳐진 것 같다. 붉고 푸른 이미지가 전하는 게 반복되는 사랑과 상실이라고, 우리네 삶이라고 믿고 싶다.


삶은 계란의 껍질이

벗겨지듯

묵은 사랑이

벗겨질 때

붉은 파밭의 푸른 새싹을 보아라

얻는다는 것은 곧 잃는 것이다


먼지 앉은 석경 너머로

너의 그림자가

움직이듯

묵은 사랑이

움직일 때

붉은 파밭의 푸른 새싹을 보아라

얻는다는 것은 곧 잃는다는 것이다


새벽에 조로의 물이

대낮이 지나도록 마르지 않고

젖어 있듯이

묵은 사랑이

뉘우치는 마음의 한복판에

젖어 있을 때

붉은 파밭의 푸른 새싹을 보아라

얻는다는 것은 곧 잃는 것이다 ( 「파밭 가에서」, 전문)


김수영을 읽는 일은 그의 생애를 알고 그의 문학세계에 조금이나마 가까이 다가서기 위함일 것이다. 그러나 그의 시, 산문, 일기, 미완성의 소설을 읽는 읽은 우리가 보지 못한 지난 시대를 읽는 일이고 현재의 삶을 돌아보는 일인지도 모른다. 같은 듯 다른 시대가 풀어야 할 과제는 여전히 같다. 그것이 정치든 문학이든 말이다. 반복되는 시행착오, 고뇌하는 이들, 영혼을 탐구하고 균형과 조화가 아름다운 시대를 바라고 소망하는 마음은 한결같아서다.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풀」,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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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3-04-21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삶은 계란 먹고 싶.. 따끈한 거 호호 불어서 ㅋㅋ 이제는 넷플릭스에서보는 지구 반대편 이야기가 김수영의 시절보다 익숙하고 친근하게 느껴지는 시대가 되었네요. 디 에센셜 좋은 기획같아요! 😀

자목련 2023-04-21 12:24   좋아요 0 | URL
바글바글 냄비에 계란 삶아 공쟝쟝 님께 보내고 싶네요. 어렵지만 디 에센셜, 저도 좋은 기획 같아요. 맞아요, 화면에서 처음 보는 사람도 반갑게 느껴지는데 정작 현실의 사람들은 왜 이리 멀까 싶고요. 코로나 19로 멀어진 마음과 관계가 회복되기는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맛난 점심 드시고 계시죠?
 

겨울 이불을 정리하는 일을 자꾸만 미룬다. 변덕스러운 날씨 탓을 하다가 게으른 내 탓이지 싶다. 하지만 날카로운 봄바람은 어쩔 수 없다. 속절없이 비를 간절히 기다리던 시간에는 흔들림 없이 아랑곳하지 않던 하늘이 비와 더불어 바람까지 보내고 황사까지. 알 수 없는 봄바람이 마음의 옷깃도 여미게 만든다.


코로나 이전에는 봄이면 꽃을 보러 나가기도 했다. 가까운 곳에 꽃터널이 많다. 해마다 나무는 성장하니 웅장한 아름다움도 함께 성장한다. 지난주 부활절 예배를 드리고 오면서 가로수로 심은 벚꽃이 활짝 핀 모습을 보고 놀랐는데 어제는 그 꽃들이 있었나 싶을 정도 연두가 가득했다. 한시도 멈추지 않고 흐르는 시간, 그 안에서 저마다 성장하는 모든 것들. 나는 왜 성장하지 못하고 있는가.


4월의 절반이 지나고 세월호 참사 9주기가 지났다. 시간이 흘러도 슬픔은 흐르거나 지나지 않고 우리 곁을 지킨다. 그래서 4월은 여러 의미로 잔인하다. 잔인한 시간을 달래려 책을 샀다. 모르는 즐거움을 위해서다. 내가 아는 작가가 아닌 모르는 작가, 처음 만나는 작가를 기대하는 새로운 즐거움이라고 할까.





이렌 네미롭스키의 『뜨거운 피』, 버나드 멜러머드의 『점원』, 비타 색빌웨스트의 『모든 열정이 다하고』. 아무런 정보가 없을 때 기대할 수 있다. 뭔가 알게 되면 그 기대는 순수하지 않은 불순함이 포함된다. 이 세 권의 소설에 대한 내 마음이 그렇다. 이 소설을 읽고 난 후 나의 기대는 달라질 것이다. 실망하거나 기대하거나.


아무런 절망 없이 무언가를 기대하는 일, 새로운 책을 만나는 기쁨이다. 모르는 즐거움, 모르는 기쁨이 있다는 건 얼마나 신이 나는 일인가. 남은 4월은 이렇게 신이 나면 좋겠다. 신이 나기 위해 모르는 작가의 책을 더 들여야 할까. 그럴지도 모른다. 4월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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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3-04-17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점원 읽다 말고 다른 책들에
그만 정신이 팔렸네요 그것 참.

자목련 2023-04-18 08:49   좋아요 0 | URL
<점원>은 레삭매냐 님의 글에서 처음 본 소설이에요. 언제 읽을지는 저도 모르겠어요 ㅎ

은오 2023-04-17 20: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모르는 즐거움!! 😆💕 역시 독서는 좋은 취미입니다. 평생 읽어도 안읽은 책 안읽은 작가가 수두룩할거라는게 얼마나 위안이 되는지 ㅋㅋㅋㅋ

자목련 2023-04-18 08:51   좋아요 2 | URL
봄 비처럼 반가운 은오 님! 잘 지내고 있나요? 맞아요, 수많은 책들이 있어 다행이에요 ㅎ

은오 2023-04-19 00:01   좋아요 0 | URL
아아아아ㅏ 봄비처럼 반갑다고 해주시다니 자목련님 다정함에 녹아버려.......ㅠㅠ 저 그만 꼬시세요!!!!!!!!!! 🤭
 

인생을 사계절로 비유하는 일은 진부하지만 그것만큼 인생의 시기를 잘 표현하는 말도 없는 것 같다. 그러나 모두에게 획일적인 계절을 대입하는 건 좋지 않다. 나만의 시간이 있고 나만의 계절이 있으니까. 지금 어떤 계절을 살아가고 있는지 아는 이는 오직 한 사람, 자신뿐이다. 살다 보니 별일을 다 겪고 과거에는 상상조차 못했던 일상을 살아가는 일, 그게 인생이라는 걸 느낀다. 그러나 여전히 인생을 아는 일은 어렵고 꿋꿋하게 노년의 삶을 이어가는 분들을 보면 존경스럽다.


어린 시절에는 그냥 늙는다고 여겼다. 나이를 먹으면 저절로 어른이 되고 뭐든 막힘없이 다 해결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 삶이 얼마나 고단하고 어떻게든 버텨내는 것이라는 걸 조금씩 배우고 깨닫는다. 최근 친구들과 통화를 하면서 사는 게 참 어려운데 그 시간을 견디고 살아낸 할머니들이 대단한다는 말을 자주 한다. 70대 중반에 그림을 그리리 시작한 모지스 할머니도 마찬가지다. 『인생의 봄에는 할 일이 참 많습니다』를 통해서 나는 알지 못하는 인생의 비밀과 감사를 만난다.


역사의 기록에서나 만날 시대, 1860년에 태어나 결혼해서 10명의 아이를 낳았지만 다섯 명만 키우고 70세 이후에 그림을 그리면서 유명해진 그녀는 93세에 <타임> 표지 장식을 하기에 이르렀다. 100세에는 모지스 할머니의 날로 지정까지 받았다. 그런 할머니의 말에는 뭔가 특별한 게 있지 않을까 기대하게 된다. 하지만 기사, 인터뷰, 구술, 편지를 통해 모은 할머니의 말들을 한 권의 책으로 만났을 때 솔직하고 평범해서 놀라고 긍정적인 태도에 위로를 받는다. 인생의 질문에 해답 책처럼 아무 곳이나 펼쳐도 명쾌하게 답을 제시한다고 할까. 아마도 내가 경험하지 못한 시간이 있기에 가능할 것이다.


불안과 두려움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도전과 시도는 대단한 결심 이후에 시작되어야 할 과정 같지만 “일단 해보면 되겠지요”란 할머니 말엔 어떤 핑계도 통하지 않는다. 해보지도 않고 이런저런 핑계와 변명을 내세우는 내 모습이 부끄럽다. 까짓것, 해보고 안 되면 말지, 하는 마음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한바탕 시원하게 웃고 나면 그 힘으로 또다시 살아갑니다”란 말은 왠지 호통과도 같이 들린다. 한바탕 시원하게 웃었던 때가 언제였나 싶은 거다.


모든 삶이 그렇듯 언제나 좋은 시절, 좋은 기억으로 생을 채울 수는 없다. 알면서도 우리는 때로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그 시절에 머물곤 하다. 그냥 지나간 대로 두지 못해서 안달을 내기도 한다. 그러다 이런 할머니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든다. 세계대전이라는 전쟁을 두 번이나 겪고 아이를 잃은 상실과 함께 101세까지 살아온 할머니도 있는데 고작 나의 슬픔에 매몰되어 상처에 전착하다니.


지나간 일은 지나간 대로, 그렇게.

살다 보니, 실망스러운 일이 있더라도 불평하지 말고 지나간 일은 지나간 대로, 그렇게 흘러나가도록 내버려 두는 것도 좋다는 생각이 듭니다. (27쪽)


어떻게든 삶은 계속되고 우리는 살아간다. 3년 전의 봄은 마스크 한 장에 울고 자가격리와 코로나 확진에 대한 공포로 무너진 일상이었지만 지금 우리는 마스크를 벗고 봄을 맞는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고 튀르키예 지진으로 많은 이들이 생명을 잃었다. 고공행진하는 물가와 어려운 살림살이로 하루하루 사는 게 버겁지만 할머니의 말처럼 감사할 것들은 차고 넘친다.


하지만 감사할 일은 너무도 많습니다.

추수감사절에는 웃음꽃이 피어나는 집이 있는가 하면 슬픔에 잠기는 집도 있습니다. 하지만 감사할 일들은 너무도 많습니다. 우리가 누리는 모든 축복과 풍요로움에 감사해야겠지요. (210쪽)


이렇게 귀한 말을 읽고 그것을 기록하고 나눌 수 있는 것도. 101살이라는 나이, 나는 감히 상상할 수 없지만 알 수 없는 내일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삶은 아름답다는 걸 이제 나는 안다. 잘 사는 게 뭔지 모르지만 잘 살아야지 싶다.


모지스 할머니의 『인생의 봄에는 할 일이 참 많습니다』를 읽다 보니 생각나는 할머니가 있다. 모지스 할머니처럼 101세까지 산 실존 인물이 아닌 일흔넷의 소설 속 할머니. 젊은 할머니라고 해야 할까. 와카타케 치사코의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속 일흔넷 모모코 할머니. 남편은 죽고 자식은 분가했다. 말 그대로 홀가분하게 산다. 자식과 즐겁게 소통하지 않는다. 조금은 쓸쓸하게 혼잣말을 하고 스스로와 대화한다. 정기적으로 병원을 찾고 자신과 닮은 이들의 모습을 관찰한다.


모지스 할머니의 활기 넘치는 모습과 대조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두 할머니의 모습은 곧 우리가 마주하는 미래의 모습이 될 수 있다. 누군나 늦은 나이에도 뭔가 시작하고 하루하루 신 나게 살겠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도 있으니까.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낸 할머니들, 그 나이가 거저 오는 게 아니라는 걸 주변의 어르신을 통해 느낀다.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속 모모코 할머니처럼 혼자서 남은 생을 살아야 하는 이들도 많다. 어떤 삶이 더 좋거나 나쁘다고 말할 수 없다. 삶이란 각자의 못이니까. 정반대의 모습이라 할지라도 누구 하나의 삶을 응원하는 쪽 아니라 모든 삶을 응원한다. 나 역시 그 삶 가운데 하나로 살아갈 테니까.


수많은 모모코 씨가 있다. 수많은 모모코 씨가 간다. 모모코 씨가 모모코 씨의 어깨를 끌어안고, 손을 끌어당기며, 등을 밀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그 길이 얼마나 따듯하던지.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 138쪽)


주어진 하루가 버겁고 다가올 내일을 어떻게 채워야 하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하루를 맞았고 주어진 하루에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다. 내가 살아가는 인생이 도달할 계절을 그려본다.아직은 봄이라고 우겨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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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먼지 2023-04-14 10: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글 읽으면서 노년의 삶을 기록한 또 다른 여성작가가 누가 있을까 떠올려봤는데 소노 아야코도 있네요!! 이 할머니는 조금 까칠하신 편!! 인용해주신 부분을 그냥 읽었으면 제가 좀 삐뚤게 받아들였을 것 같은데 미리 모지스 할머니의 인생을 설명해주셔서 모난 마음을 가라앉히고 곱씹어보게 됩니다!! 인생의 계절이 봄부터 시작하진 않는 것 같아요!! 제겐 겨울부터 온 것 같은데 그래서 지금이 봄입니다❤️

자목련 2023-04-17 09:54   좋아요 1 | URL
소노 아야코 검색해 보고 알았어요. <약간의 거리를 둔다>로 만난 작가였는데 1931년생인 줄 몰랐어요. 책먼지 님의 봄을 응원합니다. 활기차고 환할 봄!!
 

올봄은 꽃이 빨리 피어서 축제를 기획한 이들이 무척 당황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지난 3년간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한 봄을 만끽하려는 사람들을 위해 꽃들이 열렸다고나 할까. 기후 위기의 증거로 자연 생태계에는 위험 신호로 받아들여야 하지만 그 사실은 망각하고 꽃에 취하고 만다. 어쨌거나 그에 발맞추려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 그 무리에 끼는 일은 어렵고 아파트 한쪽에 동백나무가 꽤 크게 자란 걸 확인하는 날들이다.


봄이지만 마음은 여전히 겨울이다. 각자의 겨울은 끝나지 않았고 우리는 그 겨울 속 추위를 견딘다. 한 겹의 옷을 벗고 바람에 몸을 맡기는 연습을 하는 것처럼 조금씩 겨울에서 탈출을 시도한다. 그러다 보드라운 바람에 슬그머니 마음을 내려놓는다. 봄이구나, 봄이니까, 봄이라서 마음은 자꾸 느슨해진다.


나는 아무것도 거두지 못했다

실패한 봄이 나를 지나간 후였다

꽃이 혼자 지던 날


무게중심은 어디서나 숨길 수 없다

저기 막 사라진 사람들

고개를 숙인 사람들

앞 촉이 닳은 신발을 신은 사람들

치욕 같은 맨발을 내 보인 사람들


울고 있는 동안은

눈물에 대해 말하지 못한다


이미 나를 지내간 내 거짓말


나는 가볍고

구름은 금세 몸을 바꿔 흩어져

한 번도 우리는 우리를 관통한 적 없었다


나는 지금 울고 있는 것 아니라

막 안개를 지나온 것이거나

안개와 섞여본 적 없음을 알았을 뿐

지나가던 눈물을 훔쳐 살 뿐


그리하여 매번 너무 늦게 울었거나

안개에 얼굴을 묻는

발 없는 나무가 되고 싶었다 ( 「안개 속의 거짓말」, 전문)


아무리 지우려 노력해도 지워지지 않는 얼룩이 긴 줄을 세우는 그런 사월이다. 나를 지나간 거짓말들은 어디서 무엇이 되었을까. 만우절로 시작된 4월이라 그럴까. 거짓과 눈물이 나뒹구는 4월이다. 새로이 탄생할 거짓과 슬픔이 자멸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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