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이브다. 택배 알림 문자가 도착했다. 나를 위한 선물이 곧 도착할 것이다. 이장욱의 『천국보다 낯선』, 하성란의 『아직 설레는 일은 많다』, 백민석의 『죽은 올빼미 농장』을 주문했다. 작가정신 이벤트가 있어서 작가향 시리즈를 몇 권 더 구매할까 생각 중이다. 그리고 이런 책들을 읽고 고른다. 알랭 드 보통의 『영혼의 미술관』을 아무 곳이나 펼쳐 읽고 있다. 오늘 읽은 부분은 이렇다.
‘우리가 억누르고 있는 걱정거리는 생의 특별한 마지막 순간만이 아니다. 거기엔 우리가 나이를 먹고, 건강을 잃고, 시들고 쇠약해진다는 사실이 딸려 있다. 생의 현 단계는 순식간에 흘러가고, 돌이켜보면 무상하기 그지없다. 스무 살이 되면 일곱 살 때 보낸 수천 시간은 휴지 조각처럼 느껴진다. 쉰 살이 되면 이십 대에 보낸 십 년 세월이 한순간처럼 덧없어진다. 삶의 문제들은 오늘, 우리 앞에 펼쳐질 며칠, 그리고 강렬하거나 혹은 멍한 몇 시간 동안 아주 크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결국에는 모두가 사소해져 기억조차 하찮은 과거의 일이 된다.
예술은 여기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예술이란 현재를 앞질러 가, 자연이 우리를 데려갈 종착역에 대비해 우리의 합리적, 감각적 자아를 준비시켜주는 상상의 힘이기 때문이다. 얀 호사르트의 나이든 남녀의 초상화에서, 두 사람의 얼굴은 각기 약간 다른 방식으로 그들이 끌고 온 삶의 무게를 보여준다. 그들은 그들 자신이나 상대방에게 특별히 만족하는 듯 보이진 않지만, 그렇다고 환멸을 느끼거나 우울해 보이지도 않는다.
남자의 모자에는 작은 금색 배지가 꽂혀 있고, 배지에는 그들보다 훨씬 젊은 남녀의 벌거벗은, 확실히 에로틱한 모습이 새겨져 있다. 그 배지는 그들이 관계를 맺기 시작하던 시절, 이제는 희미하게 멀어진 그때의 기억을 추억하는 기념물이다. 이 작품은 노년이 아니라 젊은 시절에 봐야 할 이미지를 담고 있다. 예술은 우리에게 미래의 소식을 전해주곤 한다.’ (영혼의 미술관, 142쪽)
읽고 싶은 책은 버지니아 울프의 자전적 에세이 『존재의 순간들』, 맨부커상 수상작가 하워드 제이콥슨의 『사랑의 행위』, 강창래의 『책의 정신』, 최근 알게 된 문학치료와 비슷한 맥락 일 것 같은 존 폭스의 『시詩치료』, 제32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 시집인 손미의 『양파 공동체』, 윤제림 시집 『새의 얼굴』, 아직 만나지 못한 최진영의 장편 『나는 왜 아직 죽지 않았는가』, 강렬한 표지로 말을 거는 듯한 박선희의 『이브가 말했다』, 에밀 시오랑의 『지금 이순간, 나는 아프다』.
기다리고 기대했던 소식은 들리지 않는 오후다. 그러니까 소식의 주인은 내가 아닌 것이다. 조금은 천천히 흐를 오후, 어떤 책을 읽어야 빨리 지나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