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좋아하는데 좋아하는 만큼 기록은 힘이 든다. 좋아하는 것에 대해 잘 말하고 싶은 마음과 좋아하는 것을 다른 이들도 좋아해 주기를 바람이 있기 때문이다. 좋음은 그거 취향이고 개인적인 생각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렇다. 2023년에도 책을 읽었고 기록했다. 몇 권을 읽었는지 그런 건 세어보지 않는다. 읽은 책을 다 기록하는 것도 아니다. 어떤 책은 의무감에 어떤 책은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어떤 책은 진짜 진짜 좋아서, 그런 이유로 기록하지 못하는 책도 있다. 아니, 많다.


2023년 내 맘대로 좋은 책들을 생각하니 가장 좋은 책들로 떠오른 책은 딱 5 권이다. 2023년에 읽고 리뷰를 기록한 책에서 고른 것이다. 그렇다. 나의 기억력은 이렇게 낮은 수준이다. 그 다섯 권이라도 있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클레어 키건의 『맡겨진 소녀』에 대해서는 그냥 좋다는 말로 충분하다. 올해의 기쁨이라고 하면 클레어 키건이라는 작가를 만나게 된 것이다. 담담하면서도 함축된 문장에 내포된 갖가지 감정을 한 마디로 뭐라 표현할 수 있을까? 부모와 아이의 관계, 잘 몰라서, 서툴다는 이유로 애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것은 가장 큰 죄일지도 모른다. 소설 속 소녀의 얼굴 표정을 상상하는 일은 너무 가슴 아프다. 하지만 그 소녀가 자신만의 환한 표정을 짓게 될 순간을 기대는 포기할 수 없다.







백수린의 산문집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은 제목 그대로 행복한 느낌을 안겨주었다. 그저 보통의 일상을 담은 산문집인데, 이상하게 마음이 아리고 벅차올랐다. 이미 작가의 산문을 읽은 기억이 있지만 이 산문집은 이전의 글, 앞으로의 글에서도 가장 좋은 산문집이 될 것이다. 하루를 살고 기록하는 기쁨과 소중함을 알려주는 책이라고 할까. 내가 좋아하는 단어, 순환을 더욱 좋아하게 만든 이런 구절은 여전히 좋다. 그러고 나면 다시 봄이 왔고, 자연의 이치대로 모든 순환이 다시 시작됐다. (44쪽)




지극히 개인적인 좋음으로 김연수의 『너무나 많은 여름이』를 빼놓을 수 없다. 여름의 크리스마스처럼 깜짝 등장한 단편집. 쓰고 나니 민망하다. 아주 짧은 단편으로 구성된 이 단편집은 김연수의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는 것 같았다. 조금 더 다정해진, 조금 더 친근해진, 무람없는 친구를 만난 기분, 커피를 마시며 소소한 일상에 대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는 느낌. 그래서 다음 김연수의 소설을 기대하게 만든다. 그러니 여름마다 이 소설집이 떠오를 것 같다.




2023년에 한 읽기 중 나쓰메 소세키 읽기도 있다. 한 달에 한 권 읽기를 했는데, 책장에서 한 권씩 꺼내 읽은 재미가 있었다. 나름 뿌듯한 기분이 좋았다. 나쓰메 소세키를 조금 더 알게 되고 다가섰다고 느꼈다. 어쩌면 가장 심심하고 담백한 맛, 조미료는 없는 본연의 글이라고 할까. 특히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 『행인』은 어려웠지만 깊은 여운을 남겼다.





내가 나를 안다는 것, 타인을 안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지 확인하면서 동시에 그것에 대해 더욱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도 했다. 올해도 한 달에 한 권 읽기(문학동네, 민음사 세계문학 )를 하기를 바란다.







기록을 살펴보면서 아, 이 책도 읽었구나 떠올리며 좋았던 책은 또 있다. 작가들이 외로움을 주제로 쓴 산문집 『 ALONE 』, 현대인의 고독과 내재된 어떤 슬픔을 만나면서 우리가 얼마나 외로운 존재인가 생각했다. 내가 알지 못했던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외로움에 대해서도 말이다. 문학으로의 의미가 아닌 저마다 살아오면서 만났을 외로운 순간의 기억이 아프면서도 아름다웠다.





그런 느낌은 윌리엄 트레버의 단편집 『마지막 이야기들』에서도 어이진다. 다양한 삶에 대해, 누군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감정을 섬세하게 다룬 윌리엄 트레버. 10편의 짧은 소설에 담긴 매혹적인 삶은 먼 훗날 우리의 삶도 누군가의 기억하는 비밀을 간직한 이야기가 될 수 있음을 알려준다. 설명할 기회를 놓치고 용서할 기회를 놓쳐버린 삶에 대한 안타까움.





여성 작가가 들려주는 글쓰기에 대한 어려움, 혹은 간절함에 대한 책도 좋았다. 『쓰지 못한 몸으로 잠이 들었다』란 제목만 읽어도 목이 미어진다. 읽지 않아도 그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아도, 무엇이 힘든지 알 것 같아서다. 읽기는 어떤 상황에서는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을 정리하거나 새롭게 쓰는 일은 어떤 시간과 공간을 필요로 한다. 그로가 하나가 되어 새로운 무언가로 태어날 수 있는 시간.




『자두』로 만난 이주혜의 산문집 『눈물을 심어본 적 있는 당신에게』는 이주혜가 쓰고자 하는 방향이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았다. 같은 여성으로 동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세대의 여성의 이야기였다. 상처와 기억, 그리고 위로를 전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내 어머니의 서사, 그들을 향한 이해와 공감이 늦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2023년에 읽었지만 2024년의 좋은 책이 될 소설은 이렇다. 그러니까 읽었지만 좋음을 아직 쓰지 못해 목록에 오르지 못한 책들이다. 권여선과 최은영의 단편집, 클레어 키건의 소설.























올해에는 한 달에 한 권 책장 속 세계문학 읽기와 시집 읽기를 하고 싶다.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우선은 쓰고 본다. 쓰면 생각할 것이고 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르니까. 혼자의 생각이라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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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4-01-02 11: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자목련 님 최고의 책은 키건이군요! 저는 키건 두 번째도 좋았어요. 조만간 읽고 또 리뷰 써주세요.
나쓰메 소세키 책이 두 권이나 있어서 뿌듯합니다....(왜 내가?ㅋㅋㅋ)

자목련 2024-01-02 11:56   좋아요 2 | URL
잠자냥 님의 말씀처럼 키건의 이번 소설이 더 좋았어요. 독자에게 생각할 거리를 건네주고 상상하게 만드는 아름다운 힘이라고 할까요. 두 번 읽었는데 리뷰는 아직...

페넬로페 2024-01-02 12: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글에는 언제나 좋은 향기와 맛이 배여 있어요.
자목련이 자목련하다~~
매번 그것에 취하는 페넬로페입니다.
올려주신 책들 중 거의 대분분 제가 좋아하는 것과 겹쳐 너무 기분 좋은데요.
나머지 책들도 잘 담아 두겠습니다.
저도 올해 책장 속 책을 읽을 예정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은오 2024-01-02 21:03   좋아요 2 | URL
저도 지금 자목련님 페이퍼 읽고 실시간으로 꽃향기를 맡고 있습니다. 취하는중....😳

얄라알라 2024-01-02 21:10   좋아요 2 | URL
오!

자목련이 자목련!

프사 사진도 한결같으신 자목련님의 향기^^

페넬로페님께서 멋진 말로 정리해주셨네요 ^^

자목련 2024-01-03 16:07   좋아요 1 | URL
책장 속 책을 즐겁게 읽어보아요!
좋아하는 소설과 겹치다니 페넬로페 님과 가까워진 느낌입니다.

자목련 2024-01-03 16:09   좋아요 2 | URL
은바오는 향기를 어떻게 맡나요? 진심 궁금,코를 바짝 대고 있을까요? ㅎㅎ

자목련 2024-01-03 16:10   좋아요 2 | URL
얄라 님 말씀으로 프사는 쭉~~

은오 2024-01-04 13:26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 진심 궁금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바짝 안 대도 자목련님 페이퍼만 누르면 그냥 맡아지더라고요?! 😍

망고 2024-01-02 12:2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맡겨진소녀 이북으로 사서 잠재우고 있는데 서재분들 다 좋다고 하시니 얼른 깨워서 읽어야할거 같아요ㅋㅋㅋ잠자냥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잠자냥 2024-01-02 12:30   좋아요 3 | URL
엥 잠자냥님? ㅋㅋㅋㅋㅋㅋ 망고 님 저 사랑하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네 여기서도 새해 복 많이 받을게요! ㅋㅋㅋㅋㅋㅋ

망고 2024-01-02 12:32   좋아요 3 | URL
어머나ㅋㅋㅋㅋ첫댓글 읽고 쓰느라ㅋㅋㅋㅋㅋ아니아니 제 속마음 들켰나요ㅋㅋㅋㅋㅋ

독서괭 2024-01-02 12:33   좋아요 4 | URL
망고님을 차기 잠사모 회장 후보로 낙점..

망고 2024-01-02 12:33   좋아요 2 | URL
자목련님 잠자냥님 자씨가족 다 사랑합니당❤

망고 2024-01-02 12:37   좋아요 2 | URL
저 은오님이랑 경쟁할 자신이 없어요ㅠㅠ 너무 무서움

독서괭 2024-01-02 13:31   좋아요 4 | URL
은오님은 회장직에 관심이 없으십니다. 가족이 될 거라서…

은오 2024-01-02 21:04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개웃겨요ㅠ

잠자냥 2024-01-02 21:04   좋아요 1 | URL
은오가 무섭긴요. 귀엽죠. …. 술 취한 거 아님 ㅋㅋㅋㅋㅋㅋㅋㅋ

은오 2024-01-02 21:13   좋아요 1 | URL
😳
제가 잠뽕 맞고 취하는데요....

자목련 2024-01-03 16:08   좋아요 1 | URL
망고 님도 반할 거라 생각합니다!

독서괭 2024-01-02 1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이 꼽아주신 책들 다 좋아 보여요. 저는 읽은 책은 하나도 없고^^; 가지고 있는 책만 한 권 보이는군요. <ALONE> 올해는 읽어야겠습니다. 자목련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자목련 2024-01-03 16:11   좋아요 1 | URL
다 좋아 보인다니 더 좋습니다. <ALONE> 즐겁게 읽으시면 좋겠어요. 독서괭 님, 새해 복 많이 많이 받으세요^^

레삭매냐 2024-01-02 1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서가에서 잠자고 있는 소세키
작가의 책들을 읽어야지 했었는데...
많이는 못 읽었네요.

<고양이>부터 마저 읽어야 하는데-

자목련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새해에도 좋은 책들과 함께 하시길.

자목련 2024-01-03 16:13   좋아요 1 | URL
레삭매냐 님의 소세키 읽기 기대하겠습니다^^
저도 올해에 나머지 책을 읽고 싶습니다.

거리의화가 2024-01-02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저는 김연수 작가님의 책이 눈에 들어와요. 작년에 못 읽었는데 올해 여름에 읽어보는 것도 새로울 것 같네요. 자목련님 덕분에 한국 소설에 더 관심을 가지는 기회가 되는 것 같습니다. 올해는 또 어떤 책들을 읽어서 전해주실까 궁금하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자목련 2024-01-03 16:15   좋아요 0 | URL
싱그러운 여름에 화가 님이 읽은 <너무나 많은 여름이>를 기대하겠습니다.
올해도 역사 관련 즐거운 독서 이어가시고요!

yamoo 2024-01-02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좋았던 책 짧은 감상만 봐도 자목련 님 감상이 어땠는지 알거 같아요. 좋은 독서 하셨네요! 너무 잘 봤습니다.
저는 이거 다음 주에나 쓸 듯합니다. 내가 좋았던 책 짧은 기록...이걸 남겨놓지 않으면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아 저도 숙제처럼 해야합니다..ㅎㅎ 올해도 즐독하시기 바랍니다!^^

자목련 2024-01-03 16:16   좋아요 0 | URL
분명 읽었는데 생각이 나지 않으니... 기록은 그래서 필요한 것 같습니다.
즐거운 숙제, 꼭 하시길~~

단발머리 2024-01-02 1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클레어 키건 읽어야겠습니다 ㅎㅎㅎ 나의 꿈, 나의 결심.
자목련님 꾸준한 독서 항상 부럽습니다. 저도 내년, 아니 올해에는 더 열심히 읽으려고요. 나의 꿈, 나의 결심입니다 ㅋㅋㅋㅋㅋ

자목련 2024-01-03 16:17   좋아요 1 | URL
클레어 키건을 꼭 읽으시길!
단발머리 님의 멋진 리뷰가 기다릴게요. 우리의 꿈, 우리의 결심~~

다락방 2024-01-02 15: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역시 연말에 여러분들이 책 리스트 올려주시는 거 읽는 재미가 정말 큽니다. 그렇다고 매일 연말이길 바랄 순 없지만요. 후훗.
올해도 열심히 읽고 연말에 근사한 리스트 작성해주세요, 자목련 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요!!

자목련 2024-01-03 16:18   좋아요 1 | URL
책 리스트의 재미는 당연, 다락방 님의 책탑입니다!
올해도 다락방 님의 서재에서 다양한 책들을 만나겠지 싶어요. 좋은 오후 보내세요^^

건수하 2024-01-02 1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아 자목련님 리스트에 읽은 책이 단 한 권도 없습니다.. 왠지 부끄럽네요.
그래도 사둔 책이 하나 (이주혜님 산문집) 있어서 쪼금 위안이 되고요. 잊고있었는데 저 책도 저의 잠재적 독서 계획에 넣어야겠습니다.

자목련님 좋은 일 가득한 한 해 되셔요 ^^

자목련 2024-01-03 16:21   좋아요 1 | URL
부끄럽다는 댓글은 넣어두세요. 이주혜 산문은 최근 읽은 장편보다 더 좋았습니다.
건수하 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기쁨이 넘치는 한 해 이어가시길 바라요!

은오 2024-01-02 23: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역시 자목련님 연말 페이퍼 너무 좋으네요...ㅠㅠ <마음>은 저도 올해 읽었고, 좋았습니다!
그리고 읽어야지 하는건 <맡겨진 소녀>랑 윌리엄 트레버구요 >.< ㅎㅎㅎ
저.....2023년 자목련님 만나서 너무 좋았어요!!!!!!ㅠㅠ 알고 계시나요?! 올해도 잘부탁드려요 자목련님 💕 새해 복 마구마구 받으시고요!!!!!

자목련 2024-01-03 16:22   좋아요 1 | URL
은오 님이 만날 클레어 키건와 윌리엄 트레버 궁금합니다.
저야말로 은오 님을 만나 기쁨이 가득했던 해였습니다.
올해도 건강하고 즐거운 날들로 채우시길 바라요. 학교 생활도 즐겁게 하시고요!

새파랑 2024-01-03 08: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소세키랑 트레버~!! 저의 최애 작가입니다~!! 김연수 작가님 책 읽어봐야 겠습니다~!!

자목련 2024-01-03 16:23   좋아요 1 | URL
새파랑 님의 보뱅 리뷰를 읽고 반성합니다. 읽은 즉시 리뷰를 쓰는 일, 대단해요!
김연수 작가의 책 즐겁게 만나시길 바라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요^^
 

2023년 마지막 주문으로 구매한 책은 이렇다. 그러니까 정녕 마지막이다. 나를 위한 선물이라고, 크리스마스라고, 이런저런 이유를 붙이다 결국, 그냥 사고 싶어서, 읽고 싶어서, 궁금해서 산 책이다. 아무튼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은 오랜만인 것 같다. 주문한 책이 하루키의 소설을 직접 보니 묵직하다. 한 손에 꽉 들어찬 소설의 내용도 묵직할 것 같다. 어제부터 읽고 있는데 기시감이라고 할까. 우선 든 느낌은 그렇다. 끝까지 읽어봐야 알겠지만 말이다.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마냥 좋아하는 편은 아니라서 소설을 많이 읽지 않았지만 그의 고유성에 대해서는 조금 알 것 같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을 읽으면서도 마찬가지다. 이를테면 사춘기적 느낌, 풋풋하고 미완의 것들, 상징적 이미지들.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그것이 곧 하루키를 대하는 나의 태도니까. 누군가 거대한 새로운 세계를 말할지도 모르지만, 나의 독서는 그렇다. 독서는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니까.


나를 위한 선물 목록에 하루키의 소설만 있는 건 아니다. 살까, 말까 고민하다 결국 사게 된 엘리자베스 하드윅의 소설 『잠 못 드는 밤』은 왠지 올해의 마지막 소설로 좋을 것 같다. 분량도 많지 않으니까 적당하지 않을까. 아, 올해가 가기 전에 크리스티앙 보뱅의 책을 읽기로 했는데. 올해의 마지막에 내가 어떤 책을 읽게 될지, 아무것도 읽지 않을지 마지막이 되어야 알 수 있겠다. 이 소설은 '잠 못 드는 밤 비는 내리고'란 노래가 생각나는 제목이다.


마지막 한 권은 로베르트 발저의 에세이 『연필로 쓴 작은 글씨』다. 양장본으로 책 만듦새도 고급스럽고 예쁘다. '희미해져가는 사람, 발저의 마지막 나날'이란 부제까지. 이런 책은 그냥 지날 칠 수 없지 않은가. 마지막은 언제나 아련함을 불러오고 그것이 무엇인지 궁금하게 만든다. 그러니 2023년의 마지막 주문으로 완벽하지 않은가. 다가올 크리스마스에 다 먹지도 못하는 케이크 대신, 미리 산 책들. 나를 위한 선물로 충분하다.




주말부터 내린 눈은 아직 녹지 않았다. 곳곳에 보이는 빙판이 몸을 움츠러들게 만든다. 조심조심 걷는 마음으로 이 연말을 보내고 싶다. 올해 연락을 전하지 못한 이들에게 짧은 안부를 전할 수 있다면 좋겠다. 건강하게 지내라는 연말 인사를 보내고 새해의 복을 기원하는 마음을 전할 수 있었으면 한다. 가까운 이들에게 그런 마음을 보낼 수 있기를. 하루키의 소설 속 '너'처럼 아무 연락 없이 사라지지 말고. (아직 다 읽지 못해서 너의 재등장 여부를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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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3-12-19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리스마스인데 셀프 선물은 당근 아닙니까! ㅎ
알라딘 서재 분들은 늘 책 선물 셀프로 준다는 게 문제지만; ㅋㅋ
책들이 다 예쁩니다.
하루키 저도 어제부터인가 읽고 있는데... ˝기시감˝에 격하게 공감합니다...ㅋㅋㅋㅋㅋㅋㅋㅋ (자꾸 삐딱한 시선으로 보지 말자고 채찍질 중ㅋㅋㅋㅋㅋ)

자목련 2023-12-19 16:17   좋아요 1 | URL
자고로, 책 선물은 셀프!
요즘은 책들이 다 예쁜 것 같아요. 특히 이번 세 권은 더욱 예쁘고요!
잠자냥 님의 삐딱함, 알 것 같아요 ㅋㅋㅋㅋ

망고 2023-12-19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늘 나에게 선물 했어요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 양장본이요ㅋㅋㅋㅋㅋ근데 결제하고 나서 너무 과했나 하고 약간 후회중 입니다ㅜㅜ

자목련 2023-12-19 16:15   좋아요 1 | URL
절대 과하지 않아요! 망고 님은 소중하니까요^^

새파랑 2023-12-19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시감 ㅋ 하루키 후기 작품들에는 기시감이 확실히 있긴 한데

그런 기시감이 저는 절대 싫지는 않더라구요~!!

자목련 2023-12-19 16:15   좋아요 1 | URL
새파랑 님은 하루키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아주 많이!!

레삭매냐 2023-12-19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춘수샘 팬은 아니지만 그래도 책이
나오면 꾸역꾸역 읽는답니다. 그것 참.

책이 생각보다 댑따 두꺼워 보이네요 ㅠ

눈이 다 녹지도 않았는데 오늘밤에 눈이
많이 내린다고 합니다. 언능 집에 가야 하
는데...

자목련 2023-12-20 09:08   좋아요 1 | URL
네, 분량에 제법 많아요.
이곳은 계속 눈이 내립니다. 안전한 출퇴근을 기원합니다^^

은오 2023-12-20 10: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역시 크리스마스에도 케잌보단 책입니다 >.< ❤️ 케잌은 먹어봐야 똥된다...
오늘도 자목련님 향기가 물씬 나는 픽들! <연필로 쓴 작은 글씨>는 제게도 오고 있습니다 히히

자목련 2023-12-22 17:59   좋아요 1 | URL
은오 님, 방학이에요?
넘 추워요. 누워서 신나는 책 읽어요!!
 

최대한 자제해야 한다는 결심을 지키려고 노력한 결과물이다. 궁금한 책은 많고 읽고 싶은 책도 많지만 12월의 책 구매는 이 소설들로 끝을 내려고 한다. 현재는 그렇다. 사실, 사진의 맨 아래 류드밀라 울리츠카야의 『소네치카·스페이드의 여왕』은 책장을 정리하다 발견했다.


알라딘에 들어가 구매내역을 살펴보니 11월의 첫날이었다. 잠자냥 님의 리뷰를 보고 산 책이었다. 무려 40일을 방치(?) 하고 있었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니 올해가 가기 전에 꼭 읽어야 한다. 아, 올해가 가기 전에 읽으려고 다짐한 책들은 왜 이리 많은가. 이제 겨우 20일 밖에 남지 않았는데.






좋은 소설을 발견하는 일은 기쁜 일이다. 이미 좋은 소설을 쓴 작가가 쓴 다음 소설을 만나는 일도 그렇다. 그래서 『맡겨진 소녀』로 만난 클레어 키건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읽기 전에 기쁨이 한가득이다. 알랭 로브그리예의 『진』도 기대하는 소설이다. 물론 겨울이니 『소설 보다 : 겨울 2023』도 읽어야지. 가을 2023을 다 읽지 못했지만 말이다. ㅎ




누군가 연말에 많은 송년회를 하겠지만 나는 책을 읽고 싶다. 아니, 읽어야 한다. 지금의 게으름에서 일어나 읽어야 한다. 12월의 소설을 읽고 미처 읽지 못한(아, 너무 많구나) 책들도 차곡차곡 읽어야 한다. 도대체 뭐 하느라 책도 안 읽는지. 이러다 책들의 미움을 한가득 받을 것 같아 무섭구나.





12월의 소설은 하나같이 얇다. 열심을 내야지. 얇다고 나중으로 미루면 또 책장에서 찾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런 문장을 한 번 소리 내어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어느 소설인지는 나만 아는 것도 좋겠다. 먼저 읽은 사람은 바로 알겠지만 말이다.






나는 정해진 시각에 정확히 도착했다. 여섯시 반. 벌써 거의 어두컴컴하다. 창고는 닫혀 있지 않다. 나는 자물쇠가 없는 문을 밀면서 들어선다. 내부는 온통 조용하다. 좀더 바짝 귀를 기울이자, 꽤 가까운 곳에서 맑은 소음 하나가 규칙적으로 탐지된다. 제대로 잠그지 않은 수도꼭지 물이 새면서 통이나 대야 또는 고인 웅덩이에 물방울이 떨어지고 있다.


읽지 않은 소설을 생각하는 일, 제목만 보고 소설을 상상하는 일, 즐거움이다. 체득하는 즐거움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걸 잘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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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3-12-11 11: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12월 책 네권이 딱 아담하고 읽고싶어지는 두께네요~!!
제목에서부터 좋아보입니다~!!

자목련 2023-12-11 11:50   좋아요 2 | URL
네, 얇아서 빨리 읽을 것 같기도 한데..
모두 기대하는 소설이에요!

잠자냥 2023-12-11 11: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니 40일이나 방치하다가 발견! ㅋㅋㅋ
올해가 가기 전에 읽으세요.
그리고 <진>은... 이미 사셨네요. 제 리뷰 읽고 사신다고 했는데 리뷰가 오늘 올라옴;;;

자목련 2023-12-11 11:50   좋아요 1 | URL
<소네치카>, <진> 모두 자냥 님 리뷰 덕분에 탱투하고 샀어요. <진>리뷰도 좋을 거라 여기고!!

거리의화가 2023-12-11 13: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40일 방치에 저는 몇 년간 묵힌 책도 많은데 중얼거리며 자괴감에 빠져듭니다^^;;; 얇은 책들이 오히려 더 내용이 더 압축적인 경우가 많아 읽기 어렵더라구요. 자목련님 남은 12월 즐거운 독서 생활 이어가시길!

자목련 2023-12-12 17:12   좋아요 0 | URL
몇 년간 묵힌 책은 당연 무지 많지요. 다만, 그 책은 책장에 보이거든요. ㅋㅋ
화가 님 말씀처럼 얇은 책이 읽기 어려운 경우도 많더라고요!

그레이스 2023-12-14 07: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제 미안한 맘도 못느끼는 그런 사람이 되었습니다 ;;; ㅎㅎ

자목련 2023-12-14 14:28   좋아요 0 | URL
아마도 서재 대부분의 이웃이 그러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ㅎㅎ

희선 2023-12-15 0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 님 십이월이 가기 전에 읽고 싶은 소설 만나시기 바랍니다 책을 사두면 언젠가 보겠지 하는 생각을 가지기도 하는군요 출판시장은 줄어든다고 하는데 여전히 책이 많이 나오네요


희선

자목련 2023-12-15 12:28   좋아요 0 | URL
읽고 싶은 소설, 책들이 계속 나와서 걱정입니다.
희선 님, 비 오는 금요일 따뜻하게 보내세요^^
 

지난 달 방영을 시작한 KBS 대하사극 <고려거란전쟁>을 보고 있다. 오랜만에 만나는 대하사극이라 기대가 컸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역사 드라마는 많았지만 고려를 다룬 드라마는 많지 않았기에 반가웠다. 고려와 거란의 전쟁을 다룬 드라마. 드라마의 원작이 있다는 걸 알았기에 소설과 드라마를 비교하며 시청할 것 같다.


길승수 작가의 『고려거란전쟁:고려의 영웅들』 을 읽으면서 자연적으로 소설 속 인물과 드라마의 인물을 떠올리게 되었다. 저자의 『고려거란전쟁』가 전체적인 전쟁의 흐름을 다루었다면 소설에서는 2차 고려거란전쟁을 기록한 전쟁일지와 동시에 '고려의 영웅들'이라는 부제가 말하듯 전장의 나가 적과 맞서 싸우는 실존하는 고려인의 모습을 들려준다. 군사를 지휘하는 지도사의 모습, 병법과 전략을 세우는 모습, 죽음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을 이겨내고 병사들의 사기를 복 돋우는 모습, 나라를 위하기보다는 나 혼자 살겠다고 도망치는 모습, 전쟁 속에서 볼 수 있는 인간 군상을 마주한다.


2차 고려거란전쟁은 소배압을 필두로 황제 야율융서가 직접 전장에 나온 거란에게는 오직 승리만이 중요했다. 막대한 군사력을 내세워 전쟁을 시작했으니 거란의 쉬운 전쟁이 될 거라 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고려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소설은 1010년 11월 16일을 시작으로 날짜와 시간별로 이어가며서 공간을 바꿔가며 고려와 거란의 전투 상황을 입체적으로 다룬다. 그러니까 흥화진, 구주성, 통주, 서경 등 곳곳에서 전투 현장을 그리며 대치하며 상대의 전략을 예측하는 고려 영웅들의 활약상을 보여준다.


놀랍고 인상적인 것은 압도적인 물량 공세로 진입하는 거란의 기세에 눌리지 않으려 노래를 부르고 뿔나발을 불러 전혀 밀리지 않는 태도를 보여주는 고려의 모습이었다. 『고려거란전쟁(상)』 에서는 특히 현종을 왕으로 세운 강조가 통주에서 거란과 싸웠지만 포로로 잡혀 항복하지 않고 죽음을 맞는 모습과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조원을 도와 서역을 지킨 강민첨이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이런 장면 앞에서 강민첨도 도망치고 싶지 않았을까 싶다.





사람과 마필, 기계가 보통강의 얼음 위를 가득 메우며 전진해오는데, 말의 발굽과 각종 기계의 바퀴에 긁히는 얼음 조각들이 마치 안개처럼 날리며 대기를 가득히 채우고 있었다. 더욱이 해가 비추어 서릿발처럼 날을 세운 병장기들이 빛을 받아 은빛으로 빛나고, 대기 중의 작은 얼음 조각들이 이 빛을 산란시켰다. 모든 것이 찬란하게 빛났다. 마치 구름 위 천상의 군대가 지상에 도래한 것 같았다. (상, 432쪽)


서경을 함락하고자 하는 거란과 그에 맞서는 고려의 전술은 기가 막혔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성의 약한 부분을 집중 공략하는 거란군을 막을 수 없기에 사다리를 타고 성벽에 올라 성 안으로 집입하는 거란군이 바닥으로 내려올 때 빠질 수 있는 구덩이를 판 것이다.


거란군에게 패해 산속으로 흩어진 아군은 모으고 포로로 잡혔지만 투항하지 않고 죽음을 불사하며 고려를 위해 목숨을 바친 영웅들은 높은 직책의 사람만이 아니었다. 성안의 평민과 노비도 군사를 도왔다. 생동감 넘치는 전투의 모습은 고스란히 독자에게 전달되어 긴박한 상황에서는 나도 모르게 긴장하고 주먹을 쥐게 되었다.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소설을 읽다 보면 역사에 기록된 인물이 얼마나 소수인가 알게 된다. 역사란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을 증명한다고 할까. 그러나 우리 모두가 역사의 주인공이듯 지난 시대를 살아온 우리의 선조들은 모두 승자가 되어야 마땅하다. 드라마를 챙겨보면서 『고려거란전쟁(하)를 마저 읽었다. 드디어 강감찬이 등장했고 양규의 용맹함을 마주했다.사실, 강감찬만 읽고 있었고 양규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고려거란전쟁(상) : 고려의 영웅들』 에서 실감 나게 전쟁의 모습을 그렸다면 『고려거란전쟁(하) : 고려의 영웅들』에서는 인물에 대한 깊이가 느껴졌다고 할까. 내게는 그렇게 다가왔다. 왕순(현종)이 전쟁을 대하는 태도, 그러니까 거란에 항복하자는 이들과 끝까지 싸워야 한다는 이들 의견을 듣고 결단을 내려야 하는 고뇌의 모습. 한 나라를 책임지는 왕이 무조건 도망칠 수는 없으니까. 왕후의 임신을 이유로 개성을 떠나 남쪽으로 가야 한다는 대신의 속내는 왕을 보필하며 결국 그들도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왜 아니 그렇겠는가. 식솔의 안전을 생각하면 우선을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이 컸을 것이다.


왕순은 피난을 청하는 대신 군사를 차출하여 밥을 주고 사기를 돋우라는 강감찬을 믿기로 한다. 한국의 역사 속 위대한 장군으로 등장하는 강감찬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문신출신이었던 이가 전쟁을 이끄는 장군이 되었다는 것도 놀랍다. 소설에서 묘사한 강감찬은 융통성이라고는 없는 고집쟁이처럼 보이기도 했다.


강감찬은 예부시랑이나 육십이 넘은 나이였다. 평소 말이 많지 않았고 엄격하기로 말하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였으며, 법도에 맞게 행동하는 사람이었다. 사실 관료들은 평소 강감찬과 가까이하기를 꺼렸다. 강감찬이 심하게 원리원칙주의자인데다가 이상주의자였기 때문이다. 강감찬은 관료들끼리 사적인 교분을 맺는 것을 싫어했고 당파를 이루는 것은 더욱 싫어했다. 문하생들의 모임 따위는 당연히 나가지 않았다. 관료들끼리 사적 교분이 있으면 정치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 180쪽)


『고려거란전쟁(하) : 고려의 영웅들』에서는 강감찬의 면면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었고 양규와 김숙홍의 활약이 가장 인상적이다. 아니, 그들을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곽주를 탈환하기 위한 그들의 노력과 거침없는 행보와 거란의 포로로 잡힌 고려인을 구하고자 노력한 모습은 감동을 안겨준다. 전쟁에서 죽음이 두렵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승전을 기약할 수 없는 전략, 단 한 번의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되는 절박함. 양규의 리더십이 있었기에 곽주 탈환이 가능했다고 보인다.


“우리는 저들보다 병력이 아주 적습니다. 적은 병력을 기책(奇策)으로 메워야 합니다. 지금부터 거란군이 물러갈 때까지는 오직 이것에 집중해 주십시오. 우리가 지금 할 일은 나라를 지키는 일입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이 한 가지에 집중합시다!” (하, 94쪽)


역사의 기록을 다루고 그 가운데서도 가장 치열했던 전쟁을 다룬 소설이기에 내게는 낯선 말들이 많았다. 영채, 토산 같은 단어는 쉽게 들어오지 않았다. 우습게도 소설을 읽으며 검색을 많이 했다. 강민첨, 양규, 김숙홍, 김종현 같은 인물을 검색하고 지식백과를 통해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었다.





지금은 사라진 지역명들, 그림으로 만나는 무기, 작가가 생생하게 그려낸 전투의 모습으로 그 안에 살았던 이들을 생각한다. 작가는 이름있는 장수가 아닌 무명의 병사의 활약을 입체적으로 담아내어 그들을 우리가 기억하게 만든다. 고려서, 요사, 송사를 빠짐없이 공부하고 고려사를 기록하고 싶었던 작가의 수고에 감사하다.


드라마의 재미는 이제부터다. 그 안에서 나는 강감찬이나 양규보다는 김숙홍, 강민첨, 무명의 병사를 기한 배우들은 조금 더 애정 할 것 같다. 역사소설을 좋아하는 독자와 역사에 관심 있는 이들이나 공부를 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하는 소설이다. 이미 읽고 있거나 읽었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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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3-12-01 17:4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드라마 재밌죠^^ 모쪼록 끝까지 이 페이스를 유지해서 유종의 미를 거두면 좋겠습니다. 말씀처럼 잘 아는 인물보다는 그동안 드라마화되지 않았던 인물들에 주목한다면 좋겠어요. 드라마를 보면서 함께 관련 책을 읽어나가니 확실히 더 재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얼른 5, 6부 마저 보고 이번주부터는 본방사수하려구요. 자목련님도 드라마 재밌게 즐기셔요!ㅎㅎ

자목련 2023-12-04 15:54   좋아요 2 | URL
직접적인 전쟁의 묘사를 마주하는 건 힘겹지만, 그 모든 게 역사구나 싶은 생각을 하면 가슴이 아파요.
강조의 죽음(스포일러군요..)은 안타까웠지만 그의 절개는 놀라웠어요. 이번 주부터는 본격적인 강감찬의 활약이 두드러질 것 같아요. ㅎ

공쟝쟝 2024-01-16 14:02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 열혈 시청자 한 명, 두 명, 여기 세 명이요!~! ㅋㅋㅋ
자목련님 강감찬은 언제(?) 활약 하나요… 양규 잃은 백성은 갈피잡지 못하는 가운데… 갑자기 드라마 생각나서 댓글달러 옴ㅋㅋ

은오 2023-12-01 18: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사극도 좋아하시는군요?! 자목련님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알았따..
역사소설까지 읽으시는 자목련님.. 날 미치게 해..

자목련 2023-12-04 15:54   좋아요 2 | URL
나이가 드니(?) 예전과 다르게 사극도 즐겨 봅니다. ㅎㅎ
역사소설 읽기는 재미있지만 리뷰는 어렵습니다. 화가 님을 존경!

미미 2023-12-04 18:57   좋아요 2 | URL
은오님 왜이렇게 귀여운 거예요ㅋㅋㅋㅋ
댓글을 안 달 수가 없따....아놔ㅋㅋㅋㅋㅋㅋ

은오 2023-12-05 00:12   좋아요 2 | URL
🫢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오잉 그정도였나요? 이런 멘트가 미미님 취향이구나... 접수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전 진심을 표현했을뿐인데..

yamoo 2023-12-02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려 거란전쟁을 보니, 아직도 저 지도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우리를 봅니다.
이미 요즘 학계에서는 요하 일대에서 싸웠다는 게 각종 유물과 지형으로 증명이 되어 가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아직도 조선사편수회의 지도를 따르고 있네요. 강동6주는 평안도 지방이 아니었다는게 <고려의 북계>에 나오죠. 논문과 유물 그리고 연구물이 싸여도 우리의 한국사 통설은 요지부동이네요. 고려거란 전쟁으로 우리 강역을 다시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자목련 2023-12-04 15:57   좋아요 0 | URL
네,말씀처럼 조금이나마 드라마가 그런 역할도 할 수 있기를 바라요. 고려에 대한 다양한 시선을 기대합니다. 역사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 높아지기를 기대하며 즐겁게 시청하고 있어요^^

도도라니 2023-12-12 2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리뷰를 보고 책을 사러 갑니다. 멋진 글 감사합니다.

자목련 2023-12-19 15:41   좋아요 0 | URL
댓글이 늦었습니다. 즐겁게 만나세요^^

공쟝쟝 2024-01-16 14: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지만 양규 장군님 돌아가실 때 저는…. 어흐흥…. (사실은 애국자) 그리고 김숙흥…과의 우정. 오랫동안 잊고 지낸 브로맨스 못 잃고…, 꺼이꺼이 (열혈 시청자)

자목련 2024-01-17 09:46   좋아요 0 | URL
이제 절반이 지났으니 본격적인 강감찬의 활약이 등장할 것 같아요.
 

정권이 바뀔 때마다 기대하고 걱정하는 분야 중 하나가 부동산이다. 이번에는 살 집을 장만할 수 있을까. 투기가 아닌 실거주자를 위한 정책을 기대한다. 눈 닿는 곳마다 아파트를 짓는 현장인데 내가 들어갈 곳은 어디에도 없어 허탈하다. 도대체 그 많은 집엔 누가 살고 있을까, 가끔 궁금해진다. 종합부동산세에 대한 뉴스를 통해 고가의 집을 몇 채나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명단을 보고 경악한다.


신기하게도 시대가 바뀌어도 부동산에 대한 심각성은 사라지지 않는다. 박영서의 『시시콜콜 조선부동산실록』에서도 마찬가지다. 사람 사는 게 다 똑같구나 싶으면서도 뭔가 속상한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조선부동산에 관한 이야기다. 조선 건국 초기 공정하게 땅을 분배하고 농사를 지어 세금을 내어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겠다는 의지, 그에 따른 세법, 상속, 집값까지 실전 사례를 들어 11부에서는 조선의 땅을, 2부에서는 조선의 집을 설명한다. 학창 시절 국사시간으로 돌아간 기분이다.


책을 읽다 보면 누구나 어쩜 이러게 조선시대나 지금이나 똑같은 문제로 고민했다는 걸 알 수 있다. 조선 개국 공신에서 땅을 주던 공신전의 세습과 가진 자들이 더 많이 가지려고 지위와 법을 악용하는 모습, 도성에서 집을 구하기 위해 애쓰는 것, 허가되지 않은 도상 밖에 집을 짓고 사는 일, 전란을 겪고 살 길을 찾아 도성으로 모여드는 백성의 모습은 조선이 아닌 현재 대한민국의 현실과 다르지 않았다.


조선 왕조 초기 토지를 나라 땅을 경작자에게 분배하고 농사를 지어 세를 받을 수 있는 과전법이 제정되지만 예외가 있었다. 양반의 토지는 건드릴 수 없었다. 언제나 특권층의 예외적 허용이 문제였다. 자신의 땅을 더 늘리면 늘렸지 줄어들 게 할 수 없이 유산에도 태클을 건다. 동등한 상속권을 보장했던 고려와 달리 여성은 제외했고 부계 중심을 주장한다. 아들 모두에게 공평하게 나누던 것도 장남에게 몰아주는 게 재산을 지키는 방법이라 여기고 고수한다.


노비도 땅을 소유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양반과 사대부가 약탈해 땅도 자식도 모두 노비가 되는 경우가 허다했지만 말이다. 땅을 빌려주고 부당한 소작료를 받아 부를 쌓는 양반의 모습까지. 개혁을 위한 노력은 매번 실패로 이어져 안타까웠다.


땅보다는 집에 대한 이야기가 실제적으로 다가왔다. 집을 지으려면 우선 땅이 있어야 할 터. 조선 시대 신분에 따른 집터 분배 기준을 보고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왕족은 천평, 고위 관료는 600평, 마지막 서민도 80평이니 걱정할 것 없어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왕족과 공신들의 수가 많아 서민의 차례까지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허울좋은 법이라고 할까. 1가구 1주택을 정하지만 그 1 가구가 자꾸 넓어지니 서민들은 허가받지 않은 땅에 집을 짓고 살 수밖에 없었다. 나라에서 철거하면 몰래 짓는 과정을 반복하는 일, 어쩔 수 없이 불법건축물에서 살 수밖에 없는 현재의 모습과 같은 처지인 것이다.


역대급 흉작으로 인한 물가 상승과 화폐 가치 하락, 출몰하는 이양선과 세도 정권이 주도하는 답 없는 정치 상황, 뒤숭숭한 민심과 국가 개정 고갈 등 수많은 문제가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이 위기의 순간, 사람들은 일제히 부동산에 투자합니다. 토지와 주택의 가치가 주목받는 거죠. ‘집값은 언젠가는 오른다’는 믿음이 그들에게도 있었을까요? 알 수 없습니다만, 적어도 ‘안전 자산’으로의 기대가 충분했다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271쪽)


현재와 마찬가지로 취직과 공부를 위해 서울로 모여드는 현상은 조선에도 있었다. 과거를 보거나 관직에 올라 서울에서 생활해야 하는데 집은 구할 수 없으니 빌려서 살아야 했다. 집주인의 막무가내식 태도는 지금 가장 큰 문제인 전세사기와 다를 바 없다. 어떻게든 한양에 집을 사기로 결심하고 구입하는 과정도 만만치 않다. 집을 장만하기 위한 자금 마련도 현재와 똑 닮았다. 아버지의 후원, 친척에게 빌린 돈, 사채였다. 조선 시대 사채는 은행 대출로 보면 맞겠다. 집주름(지금의 공인중개사 역할)의 교묘함이 놀랍다. 집을 제안하면서 집값을 올리는 과정(높은 수수료를 챙기려는 의도)이며 매매를 하려는데 이미 팔렸다는 일도 허다하다. 갑자기 집을 구하려 다니던 때가 생각나고 집주인이 보증금을 주지 않아 내용증명까지 보냈던 기억이 떠올랐다. 아, 집 없는 설움이란.


조선의 주택은 ‘사는〔 live 〕 곳’으로 시작해서, ‘사는〔 buy 〕 것’으로 끝났습니다. 정부가 적절할 때 시장에 개입하지 않았고, 주거난 해소를 장기적인 해법을 고안하지 않았으며, 부동산 시장에서 벌어진 자산 및 소득 불평등을 해소하는데 소극적이었습니다. 또한 임차인을 보호하고 투기 수요를 억제하는 데 실패함으로써, 백성을 자본의 공격에 그대로 노출시켰죠. 살 권리를 잃어버린 백성들은 불법건축물에서 간신히 삶을 영위해야 했습니다. 정부가 시민의 살 권리를 위해 끊임없이 시장 논리에 대응하지 않으면, 집을 얻는 과정이 아비규환에 이르고 맙니다. 이것이 조선의 주택사가 남긴 귀중한 경험적 자산입니다. (333쪽)


이 책을 읽으면서 얼마 전에 읽은 『전세 인생』과 『오래된 매력을 팔다』가 생각났다. 모두 집에 대한 이야기였다. 특히 『전세 인생』은 현재 우리 시대의 가장 심각한 부동산 문제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집이란 무엇인지, 제대로 된 부동산 정책을 만날 수 있을까. 김포가 서울시로 편입된다는 뉴스를 보면서 정말 그렇게 될까. 조선이나 지금이나 서울살이는 모두가 바라는 것인가. 나는 잘 모르겠지만 누군가에게 절실한 서울일 것이다.



그럼에도 무조건 서울이나 대도시, 새로운 것만 찾는 시대, 우리에겐 『오래된 매력을 팔다』 속 자온길 같은 도시재생 프로젝트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환경을 생각해서도 그렇고 집의 의미를 생각할 때도 그렇다. 100년이 넘은 집이 주는 온기와 가치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더라도 집의 재활용 개념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절실하다. 부동산 정책은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이뤄져야 한다.


도시 재생이라고 하면 거창해 보이지만 결국 로컬 창업과 연결되는 이야기다. 특히 소도시에서의 창업은 한가한 슬로우 라이프를 꿈꾸면서 만만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많은 사람들이 소도시에서 창업했다가 이유도 모르는 채로 1년 안에 폐업하게 된다. 일단 인구 자체가 적은 탓도 있지만 또 다른 이유는 사람들을 불러 모으지 못했기 때문이다. 로컬 창업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다섯 가지 조건이 반드시 필요하다. 바로 부동산, 건축, 전문 분야, 디자인, 홍보다. 이 요소들을 갖추어야 비로소 완성된다. (『오래된 매력을 팔다』, 118쪽)


정책을 세우는 건 국민을 위한 일이다. 국민의 입장에서 최선이 무엇인지 정부가 알아야 한다. 조선이나 지금이나 부동산 개혁은 시급하다는 걸 확인했다. 갈수록 심화되는 부동산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하고 해법을 찾아야 할 시간이다.


조선이나 지금이나 내 집을 갖는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마음이 아프다. 그래서 이런 문장이 자꾸만 아른거린다. 갈팡질팡 흔들리는 부동산 정책, 집에 대한 갈망, 그 모든 게 안정되고 누구나 내 집에서 나만의 공간에서 쉴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 품어도 될까.


흔들리지 않는 집에서 살기로 했어.

지면에 단단하게 뿌리내린,

그런 완벽한 장소 말이야. (『전세 인생』, 1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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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오 2023-11-21 21: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내 집 너무 갖고 싶어요 자목련님...😫😭
저도 품고는 있는데.... 하아 그날이 언제 올지....

자목련 2023-11-22 08:54   좋아요 1 | URL
은오 님 손길이 닿아 정리정돈이 잘 되어 아름다울 은오 님의 집을 그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