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있다. 슬프다, 아프다, 그립다, 이런 말로 정리하기 어려운 감정 말이다. 저마다 고유한 감정은 결과 폭이 다르다. 같을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같은 이름으로 부른다. 같은 질량으로 판단하다. 그럴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딱히 고민하지 않았다. 사느라 바빠서 내면을 들여다볼 여유가 없어서, 뭐라고 불러야 좋을지 생각나지 않아서, 이유는 많다. 그런 복잡하고 엉킨 감정을 하나씩 풀어 이름을 붙인 이가 있다. 『슬픔에 이름 붙이기』의 저자 존 케닉이다. 감정이라는 거대한 가지에 붙은 잔 줄기에 이름을 붙이기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것을 정리한 내용이 바로 이 책이다. 쉽고 단순하게 말하자면 신조어 사전이다.


슬픔에 이름 붙이기란 제목처럼 슬픔에 국한된 내용은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숱한 감정들, 고독한 순간들, 내밀한 심연과 마주하는 순간을 새로운 단어로 설명한다고 할까. 여섯 장에 걸려 외부 세계, 내적 자아, 당신이 아는 사람, 당신이 모르는 사람, 시가의 흐름, 의미의 추구까지 주제별로 모은 300여 개의 단어를 만날 수 있다. 신조어 사전답게 그가 만든 단어는 어원에 대한 설명이 더해진다. 가령 이런 것이다. 슬립 패스트(slipfast)는 형용사로 어원은 slip + fast다. 뜻은 세상에 참여하지 않고도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전혀 발자국을 남지 않고도 사람들의 대화 속을 자유로이 헤맬 수 있게.


존 케닉의 설명을 읽고 나면 아마도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어떤 일에 개입하지 않고 그냥 지켜보게 되는 그런 순간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물론 이건 나의 생각일 뿐이다. 생각해 보면 이처럼 어떤 단어는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되지만 똑같지 않을 수 있다. 어느 연인은 “사랑해”란 말 대신 둘만의 신호로 특정 숫자를 언급하기도 하고 “고요해”란 말로 대신할 수도 있으니까. 그러니 이 책은 자유로이 해석될 수 있다.







영어로 만든 단어, 같은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 이들에게 특별한 의미가 없다고 여길지도 모르다. 맞다. 그러나 가만히 이 책의 신조어를 하나하나 읽다 보면 깊은 밤 누구에게 들킬까 혼자만 돌아보았던 순간의 감정이나 막연하게 이해받고 싶었던 감정이 스쳐지나는 걸 느낄 것이다. 그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낄 법한 감정의 순간이 겹쳐지기 때문이다. 여러 해 동안 알아온 누군가에게도 개인적이고 신비한 내적 삶이 존재한다는 깨달음이란 그노시엔느(Gnossienne)라는 단어를 만났을 때 그랬다. 짐작했듯이 에릭 사티의 피아노곡 제목에서 차용한 단어다. 사랑하는 연인이라고 해서 다 알 수 없다. 전부를 알고 싶지만 전부를 아는 일은 불가능하다.


우리 사이에는 늘 어떤 거리감이 존재할 것이다. 어쩌면 견유학파의 말이 맞는지도, 사랑은 그저 환상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쩌면 그것은 성스러운 종류의 환상일지도, 아이들을 인도하기 위해 나타나는 파랗게 빛나는 신들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그렇다고 믿기만 한다면, 그것은 힘을 지닌다. 그리고 그거면 충분하다. (137쪽)


그럼에도 더 알고 싶은 마음이 이런 신조어를 만들어내는 게 아닐까.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싶고 조금 더 상대의 슬픔이나 아픔을 이해하고 싶은 간절함에 말이다. 그런 마음 조각들이 프로젝트란 이름으로 모여 이런 사전이 되었다. 사실 이 책에 대해 말하는 건 어렵다. 한국어가 아닌 외국어라는 점에도 그렇지만 직접 읽었을 때 와닿는 기분이나 분위기를 제대로 전달할 수 없기에. 문득 떠오른 건 전시 같은 형태로 소개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책엔 단어를 표현한 콜라주 작품이 있기 때문이다. 앞서 끌렸던 단어 Gnossienne엔 이런 작품으로 만날 수 있다.






날씨 따라 마구 달라지는 감정, 계절마다 뒤바뀌는 감정, 그때의 감정을 획일적인 하나의 단어로 표현하는 건 삭막한 일이다. 시대에 따라 유행하는 말이 다르고 같은 말인데 세대에 따라 다르게 사용된다. 그뿐인가, 어떤 말은 사멸한다. 그런 점에서 존 케닉의 이런 프로젝트는 의미 있다.

아마도 특정 단어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그 단어에 반하게 되거나 반가움을 표할지도 모른다. 한국어로 번역해 사용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내 안의 감정을 정리하여 이름을 붙이고 싶은 욕구를 느낄지도 모른다. 하나의 감정에 대해 고유하고도 차별적으로 펼쳐놓는다고 할까. 결코 같을 수 없는 무게의 슬픔 혹은 감정에 이름을 붙인다면 어떨까. 존 케닉의 이 책처럼 나만의 시를 쓰고 사전을 만들어봐도 좋을 것이다. 남다르고 각별하게 기억될 책이다.


단어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왜곡되고 변화하면서 시대에 뒤처지거나 새로운 의미를 띠는 경향이 있다. 그럼에도 단어는 겉으로는 제자리에 고정된 듯한 모습을 보이며 우리의 삶에서 우리를 달래주는 존재로, 우리가 길을 잃었다고 느낄 때마다 의지할 수 있는 무언가로 남는다. (292~293쪽)


독특하고 특별한 『슬픔에 이름 붙이기』을 읽다 보면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책이 있다. 바로 이 책을 추천한 김소연의 『마음사전』이다. 김소연의 『마음사전』은 제목 그대로 마음사전이다. 나도 모르는 나의 마음, 알고 싶지만 단단한 문으로 가로막힌 당신의 마음을 향한 두드림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바람결에 달라지기도 하는 감정의 상태, 숨어버린 마음, 속이 상해 울컥한 기분을 달래주는 글의 집합체! 전부를 다 소개하고 설명하지 않아도 이런 단어로 충분하다.


은은한 것들은 향기가 있고, 은근한 것들은 힘이 있다. 은은함에는 아련함이 있고, 은근함에는 아둔함이 있다. 은은한 것들이 지닌 아련함은 그 과정을 음미하게 하며, 은근한 것들이 지닌 아둔함은 그 결론을 신뢰하게 한다. 은은한 사람은 과정을 아름답게 엮어가며, 은근한 사람은 아름답게 맺는다. (「은은하다: 은근하다」, 전문)


「은은하다: 은근하다」를 읽는다. 마음과 감정의 이름을 불러주면 그것들은 진정 선명한 형태를 지닌다. 명확하게 내게로 온다고 할까. 은은하고 은근한 사람을 생각한다. 그는 향기를 지닌 사람, 무언가를 열심히 하는 사람일 것이다. 그런 이들에게서는 빛이 난다. 그 빛은 멀리서 알아볼 수 있도록 환하고 아름답다. 어렵겠지만 은은하고 은근한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면서도 스스로를 성찰하는 고독의 시간을 통해 단련하는 사람.


다른 책으로 김신식의 『다소 곤란한 감정』이다. 모두에게 같은 감정을 강요할 수 없고 타인의 감정을 섣불리 예단해서도 안 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감정 비평이라고 말하고 싶다.


타인의 감정 상태에 이름 붙이기가 심해지면 어찌 될까. 당신의 하루. 본인의 감정을 굳이 해석하고 싶지 않은 상태로 자신을 자신을 잠시 내버려두고 싶은 날. 그러나 누군가는 당신의 심적 상태마저도 어떤 감정이라며 이름 붙이려 한다. 감정에 관해 스스로 무無의 상황에 놓이고 싶은 싶은 시공간을 확보하기란 점점 어렵다. 감정에 관한 무의 상황도 특정한 감정임을 확인하려 드는 시도 때문에. (『다소 곤란한 감정』, 212쪽)


하나의 현상에 대해서 모두가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사회적 이슈에 대해 언론이나 전문가의 말을 들으며 그들의 감정에 휩쓸리곤 한다. 그들과 다른 감정을 표출하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라고 할까. 다른 감정을 소유할 수 있고 다른 의견을 낼 수 있어야 한다. 개개인이 모여 사회를 이루고 그 안에서 다양한 감정을 읽어내는 일은 중요하고 필요하다.


나의 슬픔에 이름을 붙이는 것처럼 타인의 슬픔과 감정에도 내가 모르는 이름이 있을 수 있다. 서로의 이름을 알려주고 불러주는 일, 위로와 회복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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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06-16 1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건 딴 얘긴데 마음사전을 쓴 김소연 작가가 시인겸 건축가인 함성호 씨와
부부지간이더군요. ㅎ

자목련 2024-06-16 17:11   좋아요 1 | URL
네, 함성호 씨의 산문을 통해 알게 되었어요. 시인과 소설가 부부, 소설가 부부도 많더라고요.
 

엊그제부터는 오디를 먹는다. 줄지 않는다. 매년 오디를 맛볼 수 있는 건 권사님 덕분이다. 작년에 앵두를 주신 권사님이다. 크기가 오디였다. 손으로 잡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오디 물이 들었기 때문이다. 젓가락으로 집어먹다가 비닐장갑을 끼고 먹었다. 아, 나는 이런 어른이 돼버렸다. 오디나무의 열매를 보고 반가운 마음에 손으로 마구 따먹었는데 말이다.





어렸을 때 먹었던 오디의 크기는 아주 작았다. 그리고 이렇게 검붉은 쪽에 가까운 색이 아니었던 것 같다. 아마도 개량종 오디나무가 아닐까 싶다. 이상하게도 어릴 적 먹었던 오디의 맛이 그리워진다. 형언할 수 없는 단맛의 기억은 이렇게 크고 탐스러운 오디의 맛과 비교할 수 없다. 뇌가 기억하는 맛이라고 할까. 어쩌면 존재하지 않는 맛일지도 모른다. 잡히지 않는 맛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 오디의 맛을 지울 수가 없다.


하루가 다르게 작았던 열매는 조금씩 커지고 어제보다 힘이 센 더위가 몰려온다. 작년에도 이렇게 더웠던가. 6월에 정말 더웠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냥 더웠다는 것 정도다. 아직 선풍기는 꺼내지 않았다. 하지만 곧 꺼낼 것 같다. 올여름에는 얼마나 많은 비가 올까 걱정이다. 친구와 그런 이야기를 하다가 제습기를 하나 장만할까 싶다고 말했다. 친구도 마찬가지였다. 요즘 제습기는 정말 좋은 기능이 많다고. 정작 제습기 상품 목록을 보내온 건 친구였다. 사용하고 있는 제습기가 있지만 하나 더 있다면 편리할 것이다. 조금 더 고민이 필요하다.


나의 읽기 효율은 낮아지고 있다. 나이 탓을 해야 할까. 집중력이 떨어지는 게 당연하니까. 그러나 읽고 싶은 마음은 아직 충분하다. 김연수, 김기태, 비비언 고닉의 책을 샀다. 비비언 고닉의 에세이 『끝나지 않은 일』는 이 책에 대한 좋다는 평가가 가장 많은 듯하다. 그래서 기대가 크다. 천천히, 나중에 읽고 싶은 마음도 있다. 이 열기가 조금 식은 후에 말이다. 게으름을 대비한 생각이다.






정작 『디 에센셜 김연수』야말로 아주 천천히, 아주 나중에 읽지 않을까 싶다. 우선은 사 두는 마음. 소장했다는 어떤 뿌듯함으로 말이다. 이렇게 김연수의 책이 한 권 더 늘어난다. 김기태의 첫 단편집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은 기다렸던 책이다. 두 개의 단편으로 만난 그의 소설이 좋았다. 이 한 권에 담긴 다른 단편들도 분명 그러할 거라는 기대를 감출 수 없다.


주말인 내일은 비가 올 거라고 한다. 주말마다 내리는 비는 그 간격을 줄이고 일주일 내내 비가 내릴지도 모른다. 장마를 검색한다. 코킹 공사를 한 덕분에 장마에 대한 걱정의 일부는 줄었다. 얼마나 많은 비를 품었을까. 얼마나 무섭게 쏟아질까. 미리 걱정하지 않으려 해도 걱정이 달아나지 않는다. 오디처럼 검붉은 여름의 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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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4-06-07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5월부터는 주말 마다 비가 오는 것 같아요. 날씨가 한여름처럼 기온이 올라가고요.
과일가게에서 오디를 본 적이 있긴 한데 물이 드는 과일인 건 몰랐어요.
자목련님 잘 읽었습니다.
좋은하루되세요.^^

자목련 2024-06-10 11:23   좋아요 1 | URL
하루하루 더위랑 친하게 지내야 할 것 같아요 ㅎ
서니데이 님도 시원하고 좋은 한 주 시작하세요^^

얄라알라 2024-06-07 1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며칠전 산에 갔다 계곡 마른 걸 봤기 때문에 비 소식은 반갑네요^^ 그런데 저도 오디가 저리 검은 색인줄 처음알았어요. 보라빛인줄..^^

자목련 2024-06-10 11:22   좋아요 0 | URL
살짝 내린 비가 아쉬웠어요. ㅎ
오디는, 검은색에 가까운 보라로 보면 좋을 것 같아요.

youif 2024-06-19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디 라는 말에 이끌려서 여기 왔네요
어려서 먹던 그 맛들은 이제 나이 들어서 찾을 수 없는 거겠죠
맛 있는 것들이 없다면서 ...
6월이 이렇게 더웠나 제가 나이가 들어서 면력이 떨어져 그런가하고
선풍기 만으로 결딜만 했던(집구조 덕분에) 여름이
조금만 움직여도 목으로 타고 내려오는 땀으로 올 여름은 얼마나 더울까 합니다
여름 잘 보네세요
오디 잘 보고 갑니다
 


올해의 작약은 사라 작약이다. 작년에 코랄 작약 주문이라고 메모를 해두었지만 막상 주문을 하려고 보니 코랄 작약은 일찍 핀다는 설명이 있어서 사라 작약으로 변경했다. 작년보다 풍성한 5송이를 주문했는데 결과는 살짝 아쉽다. 작년의 레드 참 작약은 도착하자마자 물올림을 하니 활짝 피었는데 이번 사라 작약은 조금 더디다. 지난 화요일에 도착했는데 방긋 열렸다고 볼 수 없다.


그래서 올해의 작약은 하루하루 지날 때마다 더 기대하게 만들었다. 밤이 지나고 아침에 얼마나 활짝 열렸을까 방에서 나오자마자 거실의 작약을 확인했다. 5송이는 다 달랐다. 제일 먼저 꽃 잎을 연 한 송이, 나머지 네 송이는 천천히 움직였다. 나를 애태우게 만들었다. 꽃잎의 색이 바래지기도 했고 떨어지기도 했다. 피어나기도 전에 말이다. 올해의 작약은 색다른 작약을 알려준 셈이다. 올해의 작약답게!





초록의 줄기도 하루하루 시들어갔다. 당연한 과정인데 왠지 더 아쉬웠다. 아쉬움을 안겨준 올해의 작약. 그래도 작약의 주는 기쁨은 줄어들지 않는다. 제철 작약을 보는 일, 고개를 숙여 작약 꽃봉오리에 코를 대고 향기를 맡는 일. 색이 짙을수록 향이 진한 것 같다. 작년 레드 참 작약과 비교해 보니 그렇다.


작년과 다르게 작약도 화병에 꽂았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화병은 길고 입구가 작은 게 좋은 것 같다. 그래도 올해는 도자기에 쭉 꽂아두려고 한다. 다음에 주문할 수국도. 작약은 활짝 핀 대로 아주 느리게 피어나는 과정도 다 좋다. 작약을 향한 내 마음이 변한다면 작약은 서운할 테니까.





작약도 샀지만 책도 샀다. 그리고 쫀드기도 사 보았다. 김이설의 장편소설을 사면서 무료 배송을 위해 쫀드기를 추가했다. 맛은 좋았다. 오랜만에 먹는 쫀드기라 그런지 나중에도 쫀드기를 구매할 것 같다.





커다란 솜사탕 작약이다. 부드럽고 달콤한 솜사탕을 상상한다. 향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은은하게 공간을 지배한다. 작약에겐 작약의 향이 있다. 사라질 때까지 사라지지 않겠다는 작약의 마음 같다. 작약을 볼 수 있는 지금이 좋다. 올해의 작약은 올해의 작약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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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4-05-13 16: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작년에 자목련님께서 올리신 작약 페이퍼 기억하는데 벌써 1년이 지났네요.
작약은 언제나 예쁩니다.
저는 산책로에 핀 작약을 감상하고 왔습니다.
사라 작약, 코럴 작약, 이름도 다양하네요^^

자목련 2024-05-14 15:45   좋아요 2 | URL
말씀처럼 벌써 1년이 흘렀어요. 시간 정말 빠릅니다.
산책로 에 핀 작약, 얼마나 예뻤을까요!
다양한 이름도 있지만 함박꽃이란 이름도 좋은 것 같아요^^

레삭매냐 2024-05-13 17: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제 칠보산 나들이 갔다가
길에 핀 작약을 보고 사진을 찍었답니다.
포스팅해야겠네요 :>

저도 언제 작약 한 번 심어봐야지 싶었는
데 벌써 만개했네요.

자목련 2024-05-14 15:44   좋아요 1 | URL
길에 핀 작약을 만나셨다니 부럽습니다.
포스팅해주세요!!!
베란다에 심어주시면 더 좋고요^^

독서괭 2024-05-13 19: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작약이 이렇게 생겼군요. 너무 예쁘네요~ 향기도 좋은가 봅니다. 킁킁🌷

자목련 2024-05-14 15:43   좋아요 1 | URL
꽃송이가 커서 환한 달 같이 느껴지기도 해요. ㅎ
향기도 나쁘지 않고요!
 

지레 겁을 먹는 책이 있다. 알 수 없는 무언가에 압도 당하는 느낌이라고 할까. 허먼 멜빌의 『모비 딕』도 그런 책 중 하나였다. 읽기도 전에 읽을 수 있을까, 읽다가 포기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지배적인 책. 고래를 잡는 포경선 이야기 정도로만 알고 있었던 나에게는 오히려 다행이었다. 어쩌면 나 같은 독자가 아무런 편견과 기대 없이 『모비 딕』를 읽기에 알맞은 독자일지도 모른다.


당분간 배를 타고 나가서 세계의 바다를 두루 돌아보면 좋겠다는 화자 ‘이슈메일’을 따라 나는 포경선 ‘피쿼드’호에 탑승했다. 살짝 고백하자면 이슈메일이 배에 오르기 전까지 여관에서 만난 식인종 친구 퀴퀘그와의 이야기가 재미있었다. 둘 사이의 묘한 긴장감, 퀴퀘그만의 의식(피쿼드에서도 그는 대단하다)이 흥미로웠다. 따뜻하고 화창한 봄날의 항해가 아닌 추운 날씨도 모자라 크리스마스에 항해는 시작된다. 이슈메일과 함께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그러니까 ‘모비 딕’에 미친 남자 선장 ‘에이해브’는 모비 딕에 가려진 인물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에이해브에겐 오직 모비 딕만 중요할 뿐 그 외 에이해브를 구성하는 건 없다. 한쪽 다리를 잃게 만든 모비 딕을 향한 복수, 눈처럼 하얀 이마와 혹을 지닌 모비 딕이 그의 인생에 전부라는 말이다. 친절하게 수록된 ‘피쿼드’호의 항해 지도에서 볼 수 있듯 대서양에서 출발해 희망봉, 인도양, 일본 연해를 지나 태평양에 도달하는 항해 끝에 운명의 모비 딕을 만난다.





단순하게 정리하자면 모비 딕을 쫓는 에이해브의 복수심과 욕망, 그리고 피쿼드에 승선한 선원들과 그들을 관찰하고 소설 내내 이슈메일이 설명하는 고래에 대한 모든 것이라고 정리해도 좋을 소설이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지는 것이다. 항해사도 작살잡이도 아닌 포경선이 아닌 상선에만 타봤을 이슈메일은 왜 ‘피쿼드’호에 탑승했고 고래에 집착하는가. 포경선에서 일어나는 작고 사소한 사건들, 선장 에이해브와 항해사의 갈등도 빼놓을 수 없다. 에이해브를 제외한 다른 선원들에게 모비 딕은 최종 목표가 아니었다. 그저 향유고래를 잡아서 고향으로 돌아가면 그뿐이다. 고래를 잡는 것은 돈을 버는 것이니까. 그러나 어쩌겠는가 피쿼드 호의 대장은 선장이니 선장 에이해브의 명령에 따를 뿐이다.


거기에 넓은 바다에서 다른 포경선과 만나는 이야기, 모비 딕을 만나기 전 고래를 잡고 해부하고 기름을 짜는 이야기, 모든 걸 이슈메일은 하나도 빠짐없이 들려준다. 물론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건 고래에 관한 것이다. 그러니 고래 사전, 고래 설명서, 고래 해부학, 고래 역사서라는 말이 이 소설의 부제라 해도 이상하지 않다. 또한 인생이라는 끝을 알 수 없는 항해, 그 과정에서 만나는 수많은 역경을 철학적으로 풀어냈다고 할 수 있겠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하고 긴 항해가 끝났다는 것은 두 번째 항해가 시작된다는 뜻이니, 두 번째가 끝나면 세 번째가 시작되고, 그렇게 영원히 계속된다. 그렇게 끝없이 이어지는 것, 그것이 바로 견딜 수 없는 세상의 노고인 것이다. (120쪽)


누구나 작살줄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 모든 인간은 목에 밧줄을 두른 채 태어났다. 하지만 인간이 조용하고 포착하기 힘들지만 늘 존재하는 삶의 위험들을 깨닫는 것은 삶이 갑자기 죽음으로 급선회할 때뿐이다. 여러분이 철학자라면, 포경 보트에 앉아 있어도 작살이 아니라 부지깽이를 옆에 놓고 난롯가에 앉아 있을 때보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공포를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403쪽)


일정 부분 지루한 면도 없지 않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에이해브와 모디빅이 언제 만날지가 궁금했고 그 둘의 대결, 그러니까 인간과 고래의 한판 승부를 기다렸다. 망망대해 거친 바다를 항해하면서 다른 포경선과 만날 때마다 에이해브는 언제나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흰 고래를 보지 못했소?” 모비 딕을 기다리는 에이해브는 84일 동안 바다에 나갔지만 물고기를 잡지 못한 산티아고를 떠오르게 했다. 노인과 바다를 읽으면서 모비 딕을 떠올려야 맞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한낱 인간과 거대한 자연이자 신적인 존재로 묘사되는 모비 딕의 대결이 나오기를 기다린 것이다. 『모비 딕』를 향한 다양한 해석과 찬사도 그런 부분이 아닐까 싶다.


마침내 그토록 기다렸던 모비 딕을 만났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놈이다. 나는 모비 딕의 결말을 모르기에 에이해브와 모비 딕의 팽팽한 대결에 빠져들었다. 에이해브가 이기기를 바라는 마음과 모비 딕이 인간의 욕망에 붙잡히지 않기를 바랐다. 모두가 추앙하고 마주하고 싶은 거대한 존재 “눈처럼 하얀 이마와 혹”을 지닌 아름다운 존재로 남아주기를 바라기도 했다. 모비 딕을 추적하는 하루하루의 생생한 묘사는 압권이다. 마치 태풍 전야의 고요 속 긴장감 가득한 슬픔을 담은 잔인한 아름다움.


적에게 다가갈수록 바다는 더욱 잔잔해져서 물결 위에 융단을 깔아놓은 듯했다. 바다는 한낮의 목장처럼 평화롭게 펼쳐져 있었다. 드디어 숨죽인 사냥꾼이 아직 낌새를 채지 못한 듯이 보이는 사냥감에 바짝 다가가자, 눈부신 혹의 전모가 또렷이 보였다. 그 혹은 독립된 별개의 생물처럼 바다를 헤엄쳐 갔고, 그 주위에서는 양털처럼 고운 초록빛 거품이 끊임없이 빙글빙글 맴도는 고리를 이루고 있었다. 혹 너머에는 살짝 치켜든 대가리에 복잡하게 새겨진 거대한 주름이 보였다. 보드라운 튀르크 양탄자 같은 물결 위에는 그 넓은 우윳빛 이마의 하얀 그림자가 반짝거리며 머리보다 앞서 달렸고, 잔물결은 장단을 맞추어 장난치듯 움직이는 골짜기 속으로 푸른 물이 번갈아 흘러들고 있었다. 양쪽에서 비치는 물거품이 올라와 고래 옆에서 춤을 추었다. (726쪽)


나처럼 지레 겁을 먹고 『모비 딕』 을 두려워하거나 시작도 못하는 독자가 있다면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설령 읽다가 멈추면 좀 어떤가. 한 편의 거대한 바다 뮤지컬 같은 소설, 바다라는 무대 위에 ‘피쿼드’ 승선을 거부할 이유는 없다. 우리는 모비 딕을 만나 사투를 벌이는 대신 돌아올 수 있고 원하는 순간 바로 ‘피쿼드’에서 내려올 수도 있으니까.


그나저나 모비 딕과 에이해브의 목숨을 건 전투에서 누가 승리했는지 궁금할 것이다. 어쩌면 그건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에이해브에겐 항해 목표이자 삶의 목표였던 간절히 바랐던 모비 딕과 조우만으로도 충분했을지도 모른다. 쉽사리 이해할 수 없고 이해받을 수 없는 에이해브의 집착은 고래를 향한 이슈메일의 그것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물론 이 모든 건 하먼 멜빌의 고래를 향한 위대한 집념에서 기인한 것이리라. 그 놀라운 수고와 대단한 노력 덕분에 이제라도 『모비 딕』 을 만났고 흰 고래를 상상할 수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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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3 10: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5-07 10: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잠자냥 2024-05-03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잉 드뎌 모비딕을 읽으셨군요! 뿌듯한 독서였을 거 같아요.
퀴퀘그하고 알콩달콩 재밌죠? ㅋㅋㅋ 둘이 그냥 결혼해라~!!
저는 에이헤브가(이런 인간 유형이) 싫어요;;;

자목련 2024-05-07 10:31   좋아요 0 | URL
드뎌 읽기는 했는데, 설렁설렁 읽었다는 게 맞을 것 같아요. ㅎㅎ
퀴퀘그와의 케미 좋았어요, 퀴퀘그도 살았더라면...

책읽는나무 2024-05-03 14: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모비딕 완독 축하드립니다.
여전히 겁을 먹고 있는 독자라 선뜻 구입하기에도 좀 망설여지는 책이었는데...괜찮다고 다독여주시니...언제 한 번 용기내 보아야겠어요.^^

자목련 2024-05-07 10:33   좋아요 1 | URL
완독이라는 의미가 무색합니다. 고래에 대한 사전 같은 부분은 대충 넘어가기도 해서 ㅎㅎ
저도 읽었으니 나무 님은 더 즐겁게 꼼꼼하게 읽으실 수 있습니다!!

새파랑 2024-05-03 1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도 드디어 읽으셨군요~!!
인간의 복수심과 맹목성이 얼마나 비이성적일 수 있는건지 잘 보여주는 작품이었습니다 . 마지막 싸움을 위한 빌드업이 좀 길긴 하지만 재미있었습니다~!!

자목련 2024-05-07 10:34   좋아요 1 | URL
에이해브 같은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정말 정말 피곤할 것 같습니다.
저는 결말을 몰라서 그 부분이 궁금해서 끝까지 나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ㅎ

stella.K 2024-05-03 1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같은 생각인데 막상 읽어 본 사람들은 다들 좋다고 하더군요.
책이야 말로 백문이 불여일견이겠죠?
잃시찾도 그렇다고 하던데. ㅋ
근데 같은 책을 두 권이나 갖고 계시는군요. 혹시 특별한 이유라도...?

2024-05-07 10: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Falstaff 2024-05-03 17: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작품은 그냥 좋다, 최고다. 뭐 이런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 제 의견입니다.
<모비딕>은 말 그대로 ˝인류 문화 유산˝ 가운데에서도 앞 자리에 있어야 마땅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크게 야단맞은 이야기겠지만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창세기˝보다 더 근사합니다.

자목련 2024-05-07 10:39   좋아요 0 | URL
소설적 재미는 별개로 언급하신 <인류 문화 유산>에 동의합니다.
인간과 고래, 그 역사에 대한 어마어마한 자료 조사에 매우 놀랐어요.

잉크냄새 2024-05-03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표지 디자인이 참 인상적이네요.

자목련 2024-05-07 10:40   좋아요 0 | URL
네, 디자인을 잘 한 것 같아요^^
 


4월의 책 목록을 살펴보았다. 읽은 책, 산책, 리뷰를 쓴 책, 리뷰를 쓰지 못한 책. 모든 책들이 줄고 리뷰를 쓰지 못한 책만 늘고 있다. 좋았던 구절을 발췌하고 메모 형태로 임시 저장을 해두었다. 임시 저장은 임시 저장에 불과하다. 살아 있다고 볼 수 없다. 그렇다고 죽었다고 할 수 없다. 생명을 불어넣어야 하는 글, 내가 보살펴야 하는 글이다.


책들에게 보살핌을 받았으니 나도 그래야 한다. 뭐 그렇다는 말이다. 5월이니 5월의 소설을 기대한다. 크리스티앙 보뱅, 그를 몰랐다면 어쩔 뻔했는가. 그의 책도 읽고 리뷰를 쓰지 못한 책에 속한다. 아무렴 상관없다. 이번엔 소설이다. 『마지막 욕망』 은 읽고 리뷰를 쓰고 싶다. 이주란의 짧은 소설 『좋아 보여서 다행』은 5월의 붉음을 닮은 표지다. 왠지 5월과 잘 어울릴 것 같다. 제목도 마음에 든다. 5월의 소설에 김이설의 장편소설 『우리가 안도하는 사이』도 추가될 것이다.





4월이 봄의 끝이었다면 5월은 여름의 시작이다. 5월이 봄이었던 기억은 저기 멀이 있다. 반소매 옷을 입기 시작한지 여러 날이 되었다. 송홧가루의 습격 때문에 창문을 열지 못하는 날들이다. 샛노란 가루가 멀리 퍼진다. 꽃가루가 닿는 곳, 먼 그곳에는 우리가 모르는 생명이 잉태될 준비를 할지도 모른다.


이곳의 5월은 분주할 것이다. 논에 물을 대고 모내기를 시작할 것이고 영글어가는 마늘의 마늘종을 뽑을 것이다. 그럼 나는 맛있는 마늘종 볶음을 먹게 될지도 모른다. 5월에는 작약을 주문해야지. 작약을 곁에 두고 매일매일 조금씩 행복해야지. 5월에는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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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4-05-02 12: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보뱅 책 바로 구매했습니다 ~!!
표지가 기존 시리즈랑 좀 달라서 아쉽습니다ㅡㅡ
완전 기대중입니다 ㅋㅋ

자목련 2024-05-02 14:15   좋아요 1 | URL
표지는 저도 그랬어요^^
새파랑 님은 바로 읽으실 것 같습니다!

blanca 2024-05-02 1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의 작약이 저도 기다려집니다. ^^

자목련 2024-05-03 09:47   좋아요 0 | URL
연휴 지나고 주문하려고 합니다^^

잠자냥 2024-05-02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보뱅 책 바로 받았습니다~!!
가벼운 마음도 저 표지로 바뀐 거 같더라고요?!

라파엘 2024-05-02 21:52   좋아요 0 | URL
표지의 통일성이 훼손되어서 약간 불편한 마음이 드네요. 일관성 있는 질서를 추구하는 게 저의 마지막 욕망인 것 같아요... 😅

라파엘 2024-05-02 22:17   좋아요 0 | URL
그런데, 자냥님 말씀대로 이 작품과 가벼운 마음만 새로운 표지가 적용된다면, 출판사에서 보뱅의 작품 표지를 소설과 에세이로 구분해서 출판하려는 게 아닐까 생각되기도 하네요 🤔

자목련 2024-05-03 09:49   좋아요 1 | URL
어쩌면 라파엘 님의 말씀처럼 출판사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만 기존 표지가 더 좋은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