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가재가 노래하는 곳>을 보고 리뷰를 남기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나중에 한 번 더 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책에 대한 글을 마주할 때마다 소설로 꼭 읽어보고 싶었다. 결과적으로 소설을 읽은 건 정말 잘한 일이다. 아름다운 산문시 같은 소설,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게 되는 문장들, 가만히 눈을 감고 내가 알지 못하는 그곳을, 내가 닿을 수 없는 그곳의 공기와 냄새를 상상한다. 이렇게 아름다운 문장으로 시작하는 소설에 누가 반하지 않겠는가.


습지는 늪이 아니다. 습지는 빛의 공간이다. 물속에서 풀이 자라고 물이 하늘로 흐른다. 꾸불꾸불한 실개천이 느릿느릿하게 배회하며 둥근 태양을 바다로 나르고, 수천 마리 흰기러기들이 우짖으면 다리가 긴 새들이 ㅡ 애초에 비행이 존재의 목적이 아니라는 듯 ㅡ 뜻밖의 기품을 자랑하며 일제히 날아오른다. (13쪽)




그러나 그곳의 어린 소녀 여섯 살의 카야를 생각하면 마음이 시려온다. 떠난 엄마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소녀, 조디 오빠까지 떠나고 아빠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조심 행동하는 소녀, 모든 걸 혼자 감당해야 하는 소녀 카야가 어떻게 살아게 될지 걱정이 돼서다. 그러니 이 소설은 카야의 성장을 담은 소설이자 홀로서기로 볼 수 있다. 그렇게 보자면 1960년대 미국의 노스캐롤라이나의 습지를 배경으로 그 시대를 살아가는 인물들 속에서, 그러니까 백인 우월주의와 습지에 사는 카야에겐 그게 가능할까 싶기도 하다. 아무리 소설이라 할지라도 소설을 읽다 보면 저절로 그 시대의 문화와 관습에 가까이 다가갈 수밖에 없다.


카야는 습지에 산다는 이유로, 여자라는 이유로, 아예 관계를 단절하고 자신을 혐오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상으로 나가기를 거부한다. 어린 소녀에게는 모든 게 무섭고 두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카야는 자포자기하지 않는다. 혼자만의 방식으로 자신을 지키고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한다. 엄마가 돌아올지 모르는 집을 지키며 외부인이 찾아올라치면 용케 숨어버린다.


가끔 알 수 없는 밤의 소리가 들려오고 코앞에 내리꽂힌 번개에 소스라쳐 놀랄 때도 있었지만, 카야가 비틀거리면 언제나 습지의 땅이 붙잡아주었다. 콕 짚어 말할 수 없는 때가 오자 심장의 아픔이 모래에 스며드는 바닷물처럼 스스르 스며들었다. 아예 사라진 건 아니지만 더 깊은 데도 파고들었다. 카야는 숨을 쉬는 촉촉한 흙에 가만히 손을 대었다. (49쪽)


홍합을 따서 필요한 물건을 사고 요트의 기름을 채우고 자신을 품어주는 습지에서 깃털과 조개껍질을 모으며 살아간다. 카야를 아끼고 돕는 이도 있었다. 홍합을 사주고 교회에서 옷과 신발을 가져가 카야에게 주는 흑인 점핑 아저씨와 메이블 아줌마, 그리고 테이트. 자연에 대해, 요트를 운전하는 법에 대해 카야에게 알려준 조디 오빠의 친구 테이트.


그는 카야에게 깃털로 마음을 전하고 천천히 다가왔다. 단 하루 학교에 갔던 카야에게 글을 가르쳐 주고 책을 가져다준다. 둘은 금세 서로를 향한 마음을 확인하고 사랑에 빠진다. 테이트는 카야의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고 미래를 약속하지만 현실적인 문제를 외면할 수 없다. 대학에 가야 하고 그동안은 카야와 떨어져지내야 한다. 돌아올 것을 굳게 다짐하지만 테이트는 끝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테이트도 자신을 떠났다는 사실에 카야는 절망하고 자신만의 세계로 깊게 들어간다.






그런 카야에게 바람둥이 체이스가 다가오고 결국 그와 사귄다. 달콤한 말로 결혼을 약속하고 멋진 집을 지어주겠다는 체이스는 카야를 농락하고 버린다. 카야는 예전처럼 혼자가 된다. 카야 곁에는 갈매기와 바람과 버섯과 자연뿐이다. 여전히 카야를 사랑하는 테이트는 학업을 마치고 고향 근체 연구소에 취직하고 카야를 찾는다. 자신을 거부하는 카야에게 용서를 구하고 카야가 습지에서 수집하고 기록한 것들을 출판할 수 있도록 돕는다. 자신의 책을 낸 카야는 집을 고치고 여유로운 생활을 이어간다. 책 덕분에 자신을 떠났던 조디 오빠가 집을 찾아와 재회한다. 카야가 습지를 떠나지 않았기에 둘은 만날 수 있었다.


이 소설은 카야의 성장에 관한 아름다운 소설만은 아니다. 체이스의 시체가 등장하는 것으로 시작하기에 범인을 밝히는 추리소설로 볼 수도 있다. 소설은 현재 범인을 추적하는 과정과 카야의 어린 시절을 교차하며 이어지는데 예상했듯 카야는 범인으로 지목된다. 세상의 시선에 체이스를 죽인 범인은 카야였고 카야여야만 했다. 영화는 소설과 다르게 카야가 재판을 받는 과정을 집중해서 보여준다. 20미터 망루의 난간에서 떨어져 죽은 체이스, 카야와 체이스가 다투는 모습을 본 증인들, 체이스의 옷에서 발견한 붉은 털실이 카야의 모자의 것과 같다는 증거로 검사는 카야를 용의자로 지목한다. 그러나 그 시간 카야는 출판사의 편집자를 만나기 위해 마을을 떠나 있었다. 카야는 적극적인 방어를 하지 않는다. 변호사만이 강력하게 증거에 맞선다. 재판이 끝나고 카야의 울부짖음에 가까운 말은 모두를 아프게 한다.


“난 한 번도 사람들을 미워하지 않았어. 사람들이 날 미워했어. 사람들이 날 놀려댔어. 사람들이 나를 떠났어. 사람들이 나를 괴롭혔어. 사람들이 나를 습격했단 말이야. 그래, 그 말은 맞아. 난 사람들 없이 사는 법을 배웠어. 오빠 없이, 엄마 없이! 아무도 없이 사는 법을 배웠다고!” (434쪽)


카야는 그저 혼자 모든 것을 배우고 익혔다. 누구에게 피해를 주지도 않았고 도움을 요청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사람들은 카야를 폭력과 따돌림으로 무시하고 괴롭혔다. 1960년대가 아니라 지금이라면 어떨까? 습지의 소녀를 우리는 어떻게 대할까. 그 당시 사회와 얼마나 다르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카야의 슬픔과 고통을 헤아리는 이는 그와 같은 외로움을 아는 흑인 점핑 부부밖에 없었다. 카야가 기댈 곳은 카야 곁으로 날아오는 갈매기, 은은하고 찬란한 빛을 품은 습지, 그 자연이었다.





아름답지만 슬픈 소설이다. 서정적이지만 아픈 소설이다.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어디일까? 문득 궁금해진다. 카야가 카야답게 살 수 있는 곳. 카야가 자유롭고 편안하게 숨 쉴 수 있던 그곳, 별이 된 카야는 지금 그곳의 풍경을 내려다보고 있을 것 같다.


카야는 조수간만처럼 확실한 이런 자연적 과정의 일환으로 살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녀만큼 이 지구라는 별과 그 속의 생명체들을 끈끈하게 유착되어 살아가는 사람은 찾기 힘들었다. 흙 속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대지의 어머니에게서 태어나서. (448쪽)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4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잠자냥 2024-02-16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헐... 저 이 책 독서괭 님이 선물해줬는데........

독서괭 2024-02-16 11:59   좋아요 0 | URL
읽겠다고 했었는데…

잠자냥 2024-02-16 12:17   좋아요 1 | URL
읽기는 할 거라던데....

자목련 2024-02-16 14:26   좋아요 0 | URL
혹 주말에 읽을지도...

잉크냄새 2024-02-16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p13의 내용이 영화의 첫 내레이션 부분 같네요.
영화도 영상미가 좋았는데 소설 또한 아름다울것 같아 읽고 싶게 만드네요

자목련 2024-02-16 14:26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프롤로그의 처음이기도 하고요.
영화도 나쁘지 않았지만 소설이 더 좋은 것 같습니다^^

레삭매냐 2024-02-16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5년 전에 읽었을 때, 리즈 위더스푼이
영화 만들기 시작했다고 들었는데
어느새 영화로도 나왔나 보네요.
구해서 한 번 보려구요.

슬펐던 소설로 기억합니다.

자목련 2024-02-16 14:28   좋아요 1 | URL
영상미가 뛰어난 영화였어요. 영화도 좋았고 소설도 좋았어요,
소설 쪽으로 살짝 기울어요.
넷플릭스에서 봤는데 아직 있지 않을까 싶어요. 저도 한 번 더 보고 싶은 영화입니다.

독서괭 2024-02-16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리뷰가 참 좋아요^^
영화에서는 카야가 저렇게 소리를 치는군요? 소설에서는 그런 장면 없지요? 어떤 자기변호도 안 했던 것 같아요. 그게 더 카야에게 어울리지 않나 싶네요.
저는 소설 먼저 읽고, 이미지가 깨질까봐 영화는 안 봤는데, 영화보다 소설이 더 좋았다고 하시니 다행(?)입니다 ㅎㅎ

자목련 2024-02-19 17:06   좋아요 1 | URL
소설이 더 좋았는데, 영화도 괜찮았어요. 저는 다시 돌려서 보는 장면이 있었어요.
독서괭 님의 리뷰도 이 소설을 읽게 만든 이유였어요. 감사해요^^

steal0321 2024-02-29 1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항상 플레이리스트에 넣어 두기만 했는데, 자목련님의 후기를 읽으니 당장 읽고, 보고 싶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

자목련 2024-03-04 15:39   좋아요 0 | URL
즐겁게 읽으시면 좋겠습니다^^
 

연휴에 책을 읽으려고 했다. 아예 읽지 않은 건 아니지만 정독을 하거나 집중을 해서 읽지는 못했다. 역시 연휴에는 뒹굴뒹굴이 최고다. 2월이 되었다고 말하기에는 벌써 절반이다. 올해 2월은 29일까지 있으니 하루를 번 셈인가. 아무튼 명절도 지나고 연휴도 지나고 봄이 오고 있다는 걸 느끼는 2월이다.


2월의 책은 단출하다. 단출하다고 해서 2월에 다 읽을 수 있을지 장담을 하지 않겠다. 아무튼 2월에는 이런 책을 샀다.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0, 이장욱의 『뜨거운 유월의 바다와 중독자들』 현대문학 핀 시리즈가 벌써 50번째다. 꼬박꼬박 챙겨 읽는 건 아니고 좋아하는 작가의 소설일까 눈여겨보는 시리즈다. 이장욱의 소설은 갑자기 읽고 싶어져서 구매했다. 그러니까 이장욱의 소설은 오랜만이다.


나머지 두 권은 계속 리스트에 읽던 책이다. 록산 게이의 『헝거(Hunger)』와 델리아 오언스의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중고로 샀다. 중고 알림 받기를 신청했지만 매번 구매에 실패했거나 미루는 경우가 많았다. 델리아 오언스의 소설은 영화로 먼저 만났다. 아름다운 영화였다. 일부 장면은 기억에 담아 두었다. 소설로 읽고 싶었고 소설을 다 읽으면 영화를 한 번 더 보고 싶다.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지금 읽고 있는데 어쩌면 이렇게 아름답게 그려낼 수 있을까 감탄하는 중이다. 작가가 생태학자라 그런 걸까. 지나친 비유가 아닌 꼭 맞는 적절한 비유와 묘사, 주인공 카야의 심리를 솔직하면서도 풍부하게 그려냈다. 습지에 흐르는 빛과 바다, 그 안에서 서식하는 모든 생물의 호흡과 성장이 눈부시다.


여기에는 윤리적 심판이 끼어들 자리가 없다. 악의 희롱이 끼어들 자리가 없다. 다른 참가자는 목숨을 희생시켜 그 대가로 힘차게 지속되는 생명이 있을 뿐이다. 생물학에서 옳고 그름이란, 같은 색채를 다른 불빛에 비추어보는 일이다. (『가재가 노래하는 곳』 중에서)


영화를 보았기에 사건의 전개나 결말에 대한 기대를 갖기는 어렵지만 영상이 아닌 소설을 통해서 전해지는 느낌이 있다. 소설의 감각이라고 하면 맞을까. 영화의 장면을 떠올리며 문장을 읽는다. 나중에 영화를 보면서 그 문장을 떠올릴 수 있으면 좋겠다.


싹을 틔우거나 준비하는 2월, 시골에서 2월은 아직 여유가 있다. 농사를 시작하기 전, 충분한 휴식을 취한다고 할까. 어쩌면 숨 고르기 중인지도 모른다. 2월은 그런 달이다.
















댓글(9) 먼댓글(0) 좋아요(4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망고 2024-02-14 16: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영화보다 소설이 훠얼씬 좋았어요 저는 소설 먼저 읽고 영화 봤는데 영화가 많이 실망스러웠어요...😂

자목련 2024-02-15 11:55   좋아요 0 | URL
그러니 영화를 먼저 본 저는 이 소설이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요!

stella.K 2024-02-14 1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설 연휴 마지막은 저도 암것도 안하게 되더군요. 뭐 평소 때랑 다름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ᆢㅋ 이왕 아무 것도 못할 거 영화나 보자했죠.
가재가...는 좋다는 사람 참 많았는데 여기서 보니 정말 읽고 싶네요.

자목련 2024-02-15 11:54   좋아요 0 | URL
<가재가 노래하는 곳> 좋았습니다. 기회 되시면 읽어보세요.
남은 2월 활기차게 보내시고요^^

coolcat329 2024-02-15 0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으로 서정적인 작품이죠. 작가가 생태학자 출신이라 자연에 대한 묘사도 아름답구요. 저는 영화는 안봤는데 책이 더 좋을 거 같긴 해요.

자목련 2024-02-15 11:53   좋아요 1 | URL
소설을 읽어보니 영화를 먼저 본 게 다행이구나 싶기도 해요. 좋은 소설이었어요^^

은오 2024-02-15 19: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잉? 헝거 저도 이번달에 읽었는데 자목련님 페이퍼에서 또 보게 될 줄이야! 역시 자목련님이랑 저는 통하는 사이~! 💕 2월 3일에 읽었네요. 저도 전부터 담아놨다가 절판된 바람에 중고로....🤣🤣
저도 어쩐지 연휴가 지나니까 더 잘 읽히는 느낌이에요. ㅋㅋㅋ 연휴는 싱숭생숭....

자목련 2024-02-16 08:50   좋아요 1 | URL
은오 님 헝거 읽으셨군요. 그것도 최근에. 근데 왜 백자평, 리뷰, 페이퍼 없죠?
뭐가 그리 바쁜가요? 잠자냥 님 흠모하느라 바쁜가요? 글도 써주면 안 되나요?

은오 2024-02-16 21:11   좋아요 0 | URL
계속 글 안쓰는 은바오에게 점점 단호해지시는 자목련님ㅠㅋㅋㅋㅋㅋㅋㅋㅋ제가 요즘 읽느라 바빠서 쓰는 게 귀찮아졌습니다.. 다 읽고서 빨리 또 다음 책 읽고 싶은 다급한 마음......인데 이제 정말 써야 할 시기인가봐요? ㅠㅠ
 

2월이라서 그런가, 1월보다는 한결 포근한 느낌이다. 아무래도 날씨가 풀려서 그런 것 같다. 곧 입춘이고 설날이다. 2월은 왠지 빨리 흐를 것 같다. 똑같은 시간이 갑자기 빠르게 느껴지는 건 나이가 들어서다. 지겨울 정도로 시간이 가지 않았던 날들이 있었던 날도 있었으니까. 빠르게 달리는 시간과 반대로 나의 1월은 게으름이 차오르는 날들이다. 차오르는 게으름을 잠재우는 2월이면 좋겠다.


유디트 헤르만의 단편집 『레티파크』를 읽었다. 그러니까 결국 이 책을 샀다. 나에게는 그녀의 단편집이 두 권 더 있다. 아직 읽지 않았다. 그 사실이 참 기쁘다. 내게 읽어야 할 그녀의 책이 있다는 게, 그녀의 소설을 읽을 수 있어서 말이다. 물론 내가 읽은 이 소설집에서 느낀 것과는 다른 것을 읽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 나는 유디트 헤르만의 글에 매력을 느꼈고 그가 던지는 그 말투, 그가 바라보는 시선, 그러니까 특정한 인물이 아닌 어떤 풍경이나 먼 곳을 바라보는 게 좋다. 그뿐이다.


『알리스』, 『여름 별장, 그 후』는 어떤 계기로 구매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누군가 먼저 읽은 이의 글을 읽고 구매했거나 추천하는 글을 보고 구매했을 가능성이 크다. 놀라운 건 내가 정리하지 않고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최근에 나는 책을 소장하는 마음이 아닌 버리려 노력 중이기 때문이다.







마음이란 게 그때그때 달라서 어떤 날은 다 버리고 싶고 어떤 날은 버린 날을 후회한다. 그러니 어떤 책의 운명은 갈팡질팡한 나의 마음 때문에 그 존재 가치를 알리기도 전에 사라지기도 하고 어떤 책은 알 수 없는 끌림이 계속 내 곁에 남는다.





순간의 감정, 나를 붙잡는 한 문장, 기어이 상상하게 만드는 풍경과 인물, 그런 것들이 내게 중요하다는 걸 알았다. 그러나 또 누가 알겠는가. 어느 날엔 그 문장이 그저 그렇고 시시하다고 느낄지. 아무튼 나는 지금 유디트 헤르만의 소설을 계속 생각하고 있다.

공교롭게 앤드루 포터의 소설과 유디트 헤르만의 최근 소설은 읽었지만 이전의 단편은 읽지 않았다. 또한 두 작가의 이번 소설은 모두 40대 이후의 삶을 그렸다. 그러니까 젊음의 감각이나 소비, 열정 같은 것을 지나온 이야기, 사라진 것들과 잊힌 것들, 상실과 죽음 같은 것들에 대한 글이다.

나 역시 그만큼의 시간을 지나왔기에 두 작가의 소설에 깊이 빠져든다. 소설의 인물의 상황과 감정을 헤아릴 수 있다.







댓글(7) 먼댓글(0) 좋아요(4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tella.K 2024-02-01 1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옛날엔 2월도 겨울이었는데 지금은 초봄입니다. 모르긴해도 다음 주면 또 달라지지 않을까 싶네요. 그래도 올 2월은 하루가 더 있어서 조금 길다고 느껴질 것 같습니다. 별 것 아닐 수도 있지만 무려 24 시간입니다. ㅋㅋ

자목련 2024-02-02 12:53   좋아요 0 | URL
맞아요, 2월은 완전 겨울이었는데.
오늘은 정말 따뜻해서 봄 같아요. 2024년의 2월은 조금 더 특별하겠어요. 29일이 있어서^^

꼬마요정 2024-02-01 1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단지 유령일 뿐>을 가지고 있어요. 아직 읽지는 않았는데 자목련 님 글보니 확 땡깁니다. ㅎㅎ 저도 점점 책을 쌓아두는 게 버거워져서 비우려고 하는데 쉽지 않아요ㅠㅠ 일단 읽어야 정리가 될텐데...ㅠㅠ 많이도 사 모았더라구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행복한 2월 함께 보내요^^ 제발 극한 한파는 안 오면 좋겠어요. 추운 거 너무 힘들어요ㅠㅠ (부산 사는 주제에... 라고 생각합니다만 ㅋㅋ)

자목련 2024-02-02 12:54   좋아요 1 | URL
<단지 유령일 뿐>, 저는 없어요. 나머지 두 권을 어서 읽어야~~
부산 사시니 한파가 더 강하게 느껴질 것 같아요. 따뜻한 오후 보내세요!

은오 2024-02-01 2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저 앤드루포터 읽고있는데 왤케좋아요?ㅠ미쳤어요ㅠ

자목련 2024-02-02 12:54   좋아요 1 | URL
진짜 진짜 진짜 좋죠?

독서괭 2024-02-03 12:57   좋아요 1 | URL
저도요. “라인벡” 읽고 크아~~ 했어요 ㅎ
 

책을 샀다, 처음인 것처럼 말이다. 처음 맞다. 그러니까 2024년 1월의 처음. 처음은 얼마나 좋은가. 다음이 있으니까. 처음에는 실수해도 좋고 처음에는 미완성도 좋다. 뭐든 처음에는 일정의 배려가 있고 수용이 있다. 처음에 잘해야 나중에도 잘 한다는 생각, 처음부터 잘못하면 기대를 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누군가 더 주의 깊게 지켜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2024년의 처음인 1월도 끝이 보인다. 계획 같은 거 세우지 않지만 나름 하루의 할 일들을 한 날도 있고 그렇지 못한 날도 있다. 조금 게으르고, 조금 느리고, 조금도 움직이지 않은 날들이 있다. 누군가 1월은 더 가열하게, 더 빠르고, 더 빡빡할 것이다. 그렇게 각자의 1월을 살고 있다.






아무튼 책을 샀다, 처음인 것처럼. 앤드루 포터의 소설집 『사라진 것들』, 조해진의 중편소설 『겨울을 지나가다』, 김소연의 시집 『촉진하는 밤』까지 세 권이다. 문득 한 작가의 글을 계속 읽는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그들과 나의 첫 만남에 대해서. 그 만남의 느낌의 여부에 따라 그다음이 결정되었으니까.


그렇게 보면 앤드류 포터는 완벽한 첫 만남을 떠올릴 수 없다. 왜냐하면 그의 첫 소설집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을 다 읽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다음을 기대했고 다음인 이 소설집을 읽고 좋구나, 이런 글이 우리에겐 필요하구나 생각하는 건 무슨 이유일까.






그에 반해 조해진의 첫 만남은 불투명한 슬픔이었다. 너무 맑고 너무 아름다웠다면 오히려 그의 소설을 계속 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렇다. 앤드류 포터의 짧은 이야기와 조해진의 조금 긴 이야기는 쉽고도 따뜻하다. 애틋하고도 아련하다. 먹먹하고도 포근하다.







김소연의 시집은, 시집은 그냥 좋기도 하고, 닿을 수 없어서 더 끌리기도 하고, 시집은 묘하다. 김소연의 시집은 대체로 길고 어렵구나! 읽다 보면 어려움이 조금 사라질 것이다. 아니, 계속 어려워도 뭐 어쩌겠는가.







이렇게 나는 책을 샀다. 처음인 것처럼. 사고 싶은 책이 또 있지만 참고 있어야지. 참을 수 있어야 한다. 참은 뒤에 찾아오는 기쁨이 더 크니까. 나는 그걸 아니까. 그래도 사고 싶은 책을 말하자면 이 책이다. 곧 살 것 같다. ㅎㅎ







댓글(9) 먼댓글(0) 좋아요(5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24-01-26 12: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늘 책을 샀어요! 며칠전에도 그랬듯이, 지난주에도 그랬듯이..
그중 겹친 책이 있어 반갑습니다. 훗.
:)

잠자냥 2024-01-26 12:13   좋아요 0 | URL
저는 요즘 퀴폐들 지켜보는 재미에 책도 안 사고 있어요!!! (순기능ㅋㅋㅋㅋㅋㅋㅋ)

자목련 2024-01-29 09:15   좋아요 0 | URL
오늘도 책을 사실 것 같은!!
겹친 책은 언제나 반갑죠^^

망고 2024-01-26 12: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집을 꾸준히 사고 읽으시는 자목련님. 시를 못 읽는 저는 그저 자목련님의 좋은 리뷰로 늘 대리만족을 하고 있습니다ㅜㅜ

자목련 2024-01-29 09:17   좋아요 1 | URL
시집에 대한 마음은, 알 수 없고 놓을 수 없는 그런 마음인 것 같습니다. ㅎ

2024-01-26 12: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1-29 09: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얄라알라 2024-01-26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의 리뷰는 산문시라는 생각^^ [아무튼 책을 샀다, 처음인 것처럼.] 이 부분은 자목련님 책 내실 때 제목, 아니 최소 챕터 제목으로 쓰셔도 되실 것 같아요^^

자목련 2024-01-29 09:19   좋아요 0 | URL
얄라 님의 응원 같은 일이 일어나면 좋겠습니다!
날이 많이 풀린 것 같아요.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힘겹게 읽었다. 이렇게 쓰고 보니 정말 힘겹게 읽은 것 같다. 그래서 더 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다. 도리스 레싱의 단편집 『19호실로 가다』 이야기다. 11편의 단편을 다 읽으면서 이전에 읽은 단편이 있다는 걸 알았다. 제목을 보고는 어떤 내용인지 몰랐는데 그 결말이 생각난 것이다. 나머지 10편은 처음 읽었고 그 가운데 가장 특별한 건 역시나 표제작인 「19호실로 가다」였다. 이 단편집에서 레싱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아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정체성과 자신만의 공간의 필요성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 여성에게 말이다.


소설 속 1960년대가 아닌 현재와도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여성의 일과 공간은 여전히 중요한 과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에 대한 관념이 달라졌지만 현실에서 결혼 후 경력이 단절되고 재취업을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지 언급하지 않아도 이미 다 알고 있다. 누군가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해 보이는 결혼 생활을 하는 「19호실로 가다」 속 수전에게 묻고 싶을지도 모른다. 뭐가 부족하냐고. 당신은 넓은 저택에 건강한 아이들과 든든한 남편과 살고 있지 않냐고. 그러나 우리는 안다. 살다 보면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를 마주하게 된다는 것을. 수전과 매슈에겐 무엇이 필요했던 것일까.


두 사람이 “다른 것은 모두 이것을 위해”라고 말할만한 것이 없었다. ( 「19호실로 가다」 중에서)


권태로운 결혼 생활의 위기라고 하면 맞을까. 남편의 외도를 확인했기 때문일까. 아이들이 수전의 보살핌을 필요로 하지 않아서 그랬을까. 정원을 가꾸고 집안일을 하는 기쁨을 얻지 못해서 그랬던 것일까. 아무도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찾을 수 없다. 그것을 인정하고 알아야 한다. 우리는 수전이 아니지 않는가. 우리는 수전이 될 수 없다. 그러니 그녀가 가족들이 엄마의 방을 만들어주고 그곳에서 쉬라고 배려했을 때 그녀가 왜 그곳에서 오롯이 혼자임을 느끼지 못하는지 알 수 없는 게 당연하다.



수전의 내부에서 일어난 복잡한 감정의 변화를 아무도 알 수 없다. 아내가 호텔에서 보내는 시간을 위해 돈을 지불하면 된다고, 설령 외도를 해도 눈감아주겠다는 식의 남편의 태도는 그녀의 감정이 별게 아니라는 무관심과 뻔뻔함이다. 수전은 아무렇지 않게 외도를 인정한다. 가상의 남자를 만들고 직업을 정한다. 호텔에서 아내도 엄마도 아닌 익명의 존재로 충분했던 수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19호실에서 보내는 그 시간이 수전에겐 필요했다. 철저히 혼자였으면 좋겠다는 수전의 말에 나도라고 외치는 목소리가 겹쳐들린다. 40대인 수전이 느끼는 그 감정은 뭐라 불러야 할까. 고독이라고 하기엔 부족한 그것의 이름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녀가 선택한 죽음.


이 세상에서 철저히 혼자였으면 좋겠어요. ( 「19호실로 가다」 중에서)

그래, 난 지금 여기에 있어. 만약 다시는 식구들을 만나지 못하게 되더라도, 난 여기에 있을 거야……. ( 「19호실로 가다」 중에서)


그러나 나는 수전의 선택은 존중할 수 없다. 이해할 수 없다. 그럼에도 그 방법만이 그녀가 만족하는 유일한 것, 그녀를 구원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한다면 수긍할 수밖에. 다만 수전에게 공감하면서도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족과 거리 두기, 상담, 같은 것. 하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일까 싶기도 하다. 수전도 몰랐을 리 없다. 60년이 흐른 지금도 가부장제와 남성 중심의 사회와 문화가 여전할 걸 보면 말이다. 차별, 편견, 위선과 싸우며 고통받는 여성의 삶이 이어진다는 게 화가 날 뿐이다.



도리스 레싱의 소설을 읽으며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과 애거사 크리스티의 『봄에 나는 없었다』가 생각났다. 아무리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 나만의 방을 갖는 일은 말이다. 일상을 벗어난 공간, 주기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어도 필요할 때마다 찾을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지지하고 격려할 이도 있어야 한다. 수전의 마음을 읽고 헤아리고 연대할 이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40대의 수전은 50대, 50대의 멋지고 당당한 수전으로 살지 않았을까.



애거사 크리스티 소설 『봄에 나는 없었다』의 중년 여성 조앤도 다르지 않다. 조앤이 느낀 공허. 어쩌면 애써 그것을 부정하며 살아왔을지도 모른다. 여행 중 의도하지 않게 사막에서 기차를 기다리며 그녀는 달라질 것을 결심한다.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기 위해 돌아가는 거라고.





사막에 온 건 그것 때문이다. 이 맑고 무지막지한 빛줄기가 그녀에게 자신의 본래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그동안 외면했던 모든 진실을 보여줄 것이다. 사실은 그녀도 다 알고 있었던 모든 것을 보여줄 것이다. ( 『봄에 나는 없었다』 중에서)


그것은 얼마나 두려운 일이며 용기가 필요한 일인가? 소설 밖 현실에서 경력이 단절되고 재취업을 위해 다시 공부를 하는 이들을 생각한다. 제도적 보완과 정책이 간절하다. 소설은 그저 소설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19호실로 가다』 속 수전, 『봄에 나는 없었다』의 조앤은 그렇게 거울이 된다. 여성만 비추는 게 아니라 사회 전체를 비추는 거대한 거울.


우리에게 저마다의 19호실이 필요하다. 산다는 건 궁극적으로 나의 삶을 사는 것이다. 나를위해 사는 삶, 어떤 면에서는 이기적인 삶이 가장 행복하고 완벽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자신만의 방을 위해 비상금을 모으고 가족이 아닌 절 처하게 혼자만의 시간을 위해 애써도 괜찮다. 나를 아는 일, 나를 돌보고 알아가는 시간은 필요하니까. 나와 만나 원하는 삶을 사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삶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