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타로 카드 뒷장처럼 겹겹이 펼쳐지는지. 물위
                   에 달리는 꽃잎들 맴도는지. 어쩌자고 벽이 열려 있
                   는데 문에 자꾸 부딪히는지. 사과파이의 뜨거운 시럽
                   이 흐르는지, 내 목덜미를 타고 흐르는지. 유리공장
                   에서 한 번도 켜지지 않은 전구들이 부서지는지. 어
                   쩌자고 젖은 빨래는 마르지 않는지. 파란 새 우는지,
                   널 사랑하는지, 검은 버찌나무 위의 가을로 날아가는
                   지. 도대체 어쩌자고 내가 시를 쓰는지, 어쩌자고 종
                   이를 태운 재들은 부드러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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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여전하게

 

 

 장미꽃다발을 연상시키는 기다란 상자로 배달된 커튼은 생각보다 두껍지 않았다. 그래도 커튼을 치고 나니, 보일러의 실내온도는 아직 변화를 보이지 않지만, 왠지 따뜻한 느낌이다. 쌓일 듯 말듯 가느다란 눈이 계속 내린 하루였다. 아이가 좋아하는 만두와 김밥으로 점심을 먹고, 저녁엔 치킨도 먹었다. 아이가 좋아하는 노래를 불러주다 같이 잠이 들었다. 다시 깨어 불꺼진 채,  텔레비젼을 보다가, 벌떡 일어났다. 몇 해전 겨울 밤엔, 새벽에도 종종 깨어있던 날들이 많았다. 잠들지 못하는 이유는 언제나 같았다. 간헐적인 통증, 명확한 불안감. 

 모든 것에 시간처럼 좋은 약은 없다고 했던가. 익숙함, 습관이 얼마나 무서운지, 생각한다. 내일은 좀 바쁘게 움직이고 싶다. 내일, 계속되는 내.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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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10 07: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0년을 맞이할 즈음에 2010년은 아주 먼 시간이었다. 그 때 내게 2010년은 없었다. 그러나 이미 시간은 날아간 화살이었고, 이제 2010년을 마주하려한다. 성큼 성큼, 2010년이 오고 있다. 올해도 여전하게 책을 읽었고, 쓰는 것엔 부족했다. 적어도 한 달에 한 권의 시집을 읽어야겠다 생각했지만, 생각은 생각으로 머무르고 실천은 지켜지다 말았다. 여름이 되면서 시는 점점 내 손에서 멀어져갔고, 9월부터 일상엔 적지 않은 변화가 생겼고, 책 읽기와 리뷰에도 변화가 생겼다. 주말에 많이 읽게 되었고, 해서, 자꾸 미뤄두는 책과 글이 많아졌다. 

 허연<나쁜 소년이 서 있다>, 김이설<나쁜 피>, 박민규<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조해진<천사들의 도시>, 강영숙과 이현수, 오정희, 공지영, 전성태, 김연수, 한창훈, 김훈의 책들과 황정은, 정한아, 염승숙, 김유진, 김애란... 내겐 좋아하는 작가와  읽어야 할 작가가 늘어나고 있다. 

줌파 라히리<그저 좋은 사람>, 무라카미 하루키 <1Q84>  그리고 기억에 남는<체실 비치에서>, <보트>, <겨울>, <다른 남자>,<벤자민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흐른다>, <평온의 도시들>... 

 산문은 작가의 새로운 매력을 만나게 되어 더 좋다. 김연수의 <청춘의 문장들>, 사강의 <고통과 환희의 순간들>,원재훈이 만난 21인의 작가 <나는 오직 글쓰고 책읽는 동안 행복했다>, 박범신이 마난 젊은 작가<박범신이 읽은 젊은 작가>, 그리고 여전하게 매혹적인 독서기들. <미술관에는 왜 혼자인 여자가 많을까>, <영화인문학>, <불멸의 신성가족>도 좋았다.  

 내 맘대로 고른 10권의 책들 
<나쁜 소년이 서 있다>, <나쁜 피>,<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미술관에는 왜 혼자인 여자가 많을까>,<그저 좋은 사람><1Q84>,<영화인문학>, <불멸의 신성가족>, <도가니>,<나를 위해 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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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에 없다. 누군가는 내가 여행을 떠났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여행의 뜻은- 일이나 유람을 목적으로 다른 고장이나 외국에 가는 일.

 일을 위해 온 것도 아니고 유람은 더더욱 아닌. 그저 잠시 집을 떠난 상태가 되버렸다. 지금 있는 곳은 직장 다닐 때 신세를 졌던 고모댁. 모두 나가고 혼자, 아니 여기 할머님도 계시다. 할머님은 방에 계시고, 금동이라는 강아지와 함께 있다. 몇 일을 계속 자고, 차려주는 밥 먹고, 세수도 안하고 뒹굴 거리고 있다. 딱히  이곳에 오게 된 이유가 묻는다면 그저 내가 속한 자리를 떠나고 싶었다는 것.

식구들이 돌아가면서 몇 통의 전화로 안부를 묻고 택배 아저씨는 택배를 잘 넣어두었다고 감사하게 연락을 주셨다. 몇 일, 이런 저런 생각을 많이 한다. 생각들, 생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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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27 22: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4-28 17: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 다 자랐다, 삼십대, 청춘은 껌처럼 씹고 버렸
다. 가끔 눈물이 흘렀으나 그것을 기적이라 믿지 않
았다. 다만 깜짝 놀라 친구들에게 전화질이나 해댈
뿐, 뭐 하고 사니, 산책은 나의 종교, 하품은 나의 기
도문, 귀의할 곳이 있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지. 공
원에 나가 사진도 찍고 김밥도 먹었다. 평화로웠으
나, 삼십대, 평화가 그리 믿을 만한 것이겠나, 비행
운에 할퀴운 하늘이 순식간에 아무는 것을 잔디밭에
누워 바라보았다. 내 속 어딘가 고여 있는 하얀 피,
꿈속에, 니가 나타났다, 다음 날 꿈에도, 같은 자리
에 니가 서 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너랑 닮은 새였다
(제발 날아가지마), 삼십대, 다 자랐는데 왜 사나,
사랑은 여전히 오는가, 여전히 아픈가, 여전히 신열
에 몸 들뜨나, 산책에서 돌아오면 이 텅 빈 방, 누군
가 잠시 들러 침만 뱉고 떠나도, 한 계절 따뜻하리,
음악을 고르고, 차를 끓이고, 책장을 넘기고, 화분에
물을 주고, 이것을 아늑한 휴일이라 부른다면, 뭐,
그렇다 치자, 창밖, 가을비 내린다, 삼십대, 나 흐르
는 빗물 오래오래 바라보며, 사는 둥 마는 둥, 살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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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09-04-10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눈물이 나려고 해요.

자목련 2009-04-10 22:05   좋아요 0 | URL
저도 어제 이 시를 만나면서 그랬는데, 님도 그러셨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