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립백 가을하다 - 12g, 7개입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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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커피, 골라 마시는 재미가 있다!
일시품절, 인기가 많구나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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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매력을 팔다 - 자온길, 시골 마을 재생 프로젝트
박경아 지음 / 포르체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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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컨하우스가 유행이다. 복잡한 도시를 떠나 한적한 시골의 나만의 공간에서 쉴 수 있는 여유를 꿈꾸는 이가 늘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5도 2촌의 생활을 실천하는 이도 많다. 일상의 벗어나 완벽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을 찾는다면 반색할 곳이 있다. 바로 부여의 ‘자온길’이다. 이미 다녀온 이들도 있을 것이다. 부여의 규암 마을에 자온대라는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에서 왕이 놀면 바위가 스스로 따뜻해졌다는 설화에서 착안해 사람들의 온기로 스스로 따뜻해지는 길, 자온길이란 이름이 탄생했다.


주식회사 세간 대표 박경아의 『오래된 매력을 팔다』는 ‘자온길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다. 옛것을 버리지 않고 취해 새롭게 만든 문화 공간이라고 할까. 전통 콘테츠를 활용해 새로운 공간을 만드는 시골 재생 프로젝트라고 해도 좋겠다. 아무리 기획이 좋다고 해도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건 아니다.


자온길 프로젝트는 비어 있던 규암리의 상가 거리의 헌 집 십여 채를 매수하여 리모델링하고 공예 문화 거리로 재탄생시키는 프로젝트다. 건물을 새로 짓는 게 아니라 옛 건물을 최대한 살려 전통이 가지고 있는 멋을 그대로 간직하려 노력했다. 공예 작가들은 새로운 콘텐츠를 선보이고,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은 한국 전통 공예의 매력을 쉽게 체험할 수 있도록 하여 궁극적으로 지역 전체의 가치를 상승시킬 수 있도록 기획했다. (5쪽)


공예를 전공한 저자는 20대 초반부터 쌈지길, 인사동, 삼청동, 파주 헤이리 등지에서 아트숍을 운영했다. 서울과 부여를 오가며 일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외부인에 대한 편견과 따가운 시선, 쉽지 않은 지원과 투자까지, 저자를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럼에도 저자가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는 공예를 전달하는 사람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오랜 역사를 지닌 빈집들은 비록 지금은 손길이 닿지 않아 폐허처럼 보일 수 있지만, 눈앞에서 치워서 해결해야 할 과제가 아니라 소중한 유산들이다. 으리으리한 한옥과 고운 비단만 보존해야 하는 유물일까? 무명도, 모시도, 광목도, 가난한 시절에 삐뚤빼뚤한 목재로 만든 한옥도 모두 다시 돌아오지 않는 소중한 유물이고 자원이다. (79~80쪽)


책에는 저자의 열정과 사업 전반의 노하우, 지역 주민과의 상생을 위한 노력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시골의 헌 집을 매입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집 주인을 찾아 설득하는 일, 우여곡절 끝에 아파트 부지로 팔인 집을 매입하는 일, 멸실 신청이 되어 있는 집의 취소 과정까지 저자가 직접 뛰어다닌 것이다. 헌 집이 지닌 매력과 물건을 정리하여 맨 처음 만든 곳은 ‘책방 세:간’이다. 인구 소멸의 시골에 책방이 과연 인기가 있을까 싶지만 부여의 관광지를 들른 이들이 마주한 ‘책방 세:간’은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했다. 이를 시작으로 오일장 한가운데 주막이 규방 공예공방· 스테이 '청명'으로, 선술집을 도예가의 잔을 선택해서 마시는 찻집 '수월옥', 100년이 넘은 고택은 멋진 공연을 볼 수 있는 공간 '이안당'으로, 과거 양조장이었던 곳은 전통주를 소개하는 펍인 '자온양조장'으로 재연했다.


저자는 현재의 아름다운 자온길이 되기까지의 경험을 들려주면서 자신과 같은 일을 하는 이들에게 조언도 아끼지 않는다. 도시 재생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사항으로 부동산은 무조건 많이 봐야 하며 건축은 경험을 통해서 배워야 하며 전문 분야에 대한 충분한 지식에 대해 언급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하는 일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바로 디자인과 홍보다. 아름다운 것을 보고 기록하려는 사람들의 심리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또한 전통 공예가 어려운 게 아니라 일상으로 쉽게 스며들 수 있기를 바라며 ‘자온길’이 온라인 쇼핑이 발달된 시대에 온라인으로 할 수 없는 일, 직접 문화를 즐기고 체험할 수 있는 커다란 쇼룸이자 전통을 체험하는 백화점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었다.


빌딩 숲을 잊고 잠시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고, 창 너머의 대나무 숲을 들여다보고, 새소리와 풀벌레 소리를 듣는 곳. 옛날에 만들어졌지만,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오래된 공간에서 에너지를 충전하는 것이다. 그래서 도시에 돌아가서도 이곳에서의 장면들을 꺼내어 숨 쉬고, 그것이 문득 위로와 힘이 되어 준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146쪽)


이 책은 자온길 프로젝의 모든 과정을 담고 있지만 나만의 콘텐츠로 사업을 구상하는 이들에게도 큰 도움을 주는 책이다. 저자의 솔직한 경험과 노하우는 청년 사업가에게 현장의 진행사항을 들려주고 조언을 받을 수 있어 유용하다. 더불어 전통 공예라는 세계의 놀라운 가능성도 만날 수 있다.


책을 읽으면서 어린 시절 내가 자란 시골의 풍경을 떠올렸다. 집 뒤에 있던 대나무 숲, 대청마루, 정월 대보름과 추석에 동네를 돌던 사당패의 꽹과리 소리가 아련하게 들리는 듯했다. 부여의 자온길이 궁금해졌다. 계절마다 품은 자연의 소리를 상상하며 자온길을 걷고 그 거리에 스며들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 가을, 그곳에서 오래된 매력에 취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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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전집 6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 민음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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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뿐인 생을 생각하면 모든 게 의미 있고 소중하게 여겨진다. 순간에 충실하라는 '카르페 디엠'을 외치지 않더라도 말이다. 그러나 살다 보면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하는 순간에 직면한다. 절실하게 매달렸던 것들이 무너지고 믿고 사랑했던 이가 배신하는 건 다반사다. 삶이라는 무거운 짐을 벗어던지고 날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그러다 죽고 사는 게 아니라면 삶에 얽매일 필요 없이 단순하게 살는 게 제일 현명하다는 결론을 맺는다. 단순하게 사는 게 가능한가 싶지만 말이다.


지난 7월 사망한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으면서 인간은 복잡한 존재이며 관계에 얽매여 사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시작된 관계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존재,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확인하려 애쓰다 생을 마감하는 존재. 소설의 제목처럼 참을 수 없는 존재에 대한 갈망으로 때로 무겁게 때로 가볍게 생을 살아간다. 아니, 영영 알지 못한 채 번민 속에서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 사람과의 만남을 운명이라 여기며 다른 삶에 대해서는 돌아보지 않고 직진하여 길을 잃는 사람들, 사실 잘 모르겠다. 밀란 쿤데라가 말하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 소설에 등장하는 네 남녀의 사랑이 닿고자 하는 인생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우선 토마시와 테레자의 사랑을 보면 둘 사이 관계의 주도권은 의사인 토마시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 사람에게 정착하지 못하고 여러 여자들을 자유롭게 만나는 토마시는 우연한 만남으로 그를 찾아온 테레자를 특별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토마시와 떨어지지 않으려는 테레자가 승자라 할 수 있다. 토마시의 특별한 여자 친구 사비나를 통해 출판사에서 사진을 찍게 된 테레자는 끝내 토마시와 결혼에 성공한다.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는 둘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소련의 침공으로 체코를 떠나 스위스로 간다.


스위스에서 테레사는 자신의 사진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사실에 회의를 느낀다. 체코에서 전쟁의 현실과 참상을 다루었지만 스위스에서는 선인장이나 장미를 찍어야 한다니. 테레사는 토마시와 상의 없이 프라하로 돌아오고 토마시는 그녀를 찾아온다. 토마시에게 테레사의 부재는 자유 그 자체여야 하지 않을까. 더없이 가볍고 가볍게 날아오를 수 있었을 텐데. 토마시는 병원 일을 하면서 공산주의에 대한 생각을 신문에 기고하게 된다. 이념이나 정치를 떠나 그저 순수한 의견이었다. 그 일로 토마시는 감시와 회유의 대상이 되었고 테레사와 시골로 향한다. 의사가 아닌 창문을 닦고 나중에는 트럭 운전사가 된다. 테레사와 반려견 카레닌과 함께 살아간다. 마냥 가벼울 수는 없었다. 누군가 그들을 감시한다는 걸 알았기에. 자유롭고 여유로운 시골 생활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나머지 두 남녀는 어떤가? 토마시의 오랜 연인이었던 화가 사비나는 그와 헤어지고 스위스에서 교수 프란츠를 만난다. 프란츠 역시 아내가 있는 유부남이었다. 둘 사이의 사랑도 평탄하지 않다. 사비나는 헤어졌지만 토마시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난 건 아니었다. 동시에 그녀를 붙잡는 건 역사였다. 그렇다고 그 무게에 짓눌리지는 않았다. 토마시와 마찬가지로 그녀는 가벼움을 누렸다. 그녀는 자신의 그림으로 공산주의를 미학적으로 저항했다. 그녀가 좋아하는 말로 표현하면 배신이었다. 그녀는 최선을 다해 조국을 배신했다. 그런 사비나를 프란츠는 이해할 수 없었다. 파리에서 공부하고 교수가 되고 과학자로 평탄하게 살아가는 프란츠는 사비나의 조국인 체코를 향한 동정심이 있었다. 아마도 그는 모든 것을 책과 이론으로 접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거리에서의 투쟁이나 시위, 자유를 외치는 모든 것들이 그에게는 이상적인 존재로 다가왔던 것이다.


네 남녀에게 삶의 변곡점은 작게는 서로를 만난 것이고 크게는 외부 작용인 역사의 소용돌이로 볼 수 있다. 우연을 가장한 필연으로 마침내 토마시와 살게 된 테레자에게는 부단한 노력이 있었고 토마시는 그래야만 한다는 운명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토마시가 테레사를 거부하고 하던 대로 가벼운 삶을 선택했다면 어땠을까. 소설을 이끄는 건 토마시와 테레자의 사랑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1960년대 체코란 역사를 떼어놓을 수 없다. 그 두 가지를 실존이라는 철학적 사유를 통해 묘사하기에 어려운 소설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나 무거움을 따지기 이전에 존재 그 자체를 참을 수 없는 게 아닐까 싶다. 존재, 그것은 사랑, 이념, 역사,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우리 모두는 사랑이란 뭔가 가벼운 것, 전혀 무게가 나가지 않는 무엇이라고는 생각조차 할 수 없다고 믿는다. 우리는 우리의 사랑이 반드시 이런 것이어야만 한다고 상상한다. 또한 사랑이 없으면 우리의 삶도 더 이상 삶이 아닐 거라고 믿는다. (63~64쪽)


소설에서 화자인 ‘나’는 네 사람의 사랑과 삶을 끊임없이 가벼움과 무거움을 저울질하면서도 한쪽으로 기울기를 거부한다. 마치 독자에게 어느 것을 선택할 거냐고, 어떤 게 더 나은 삶이냐고 묻는 것처럼 말이다. 소설의 시작부터 화자는 내게 너무도 궁금한 존재였다. 네 명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했지만 나는 작가 밀란 쿤데라라는 결론을 내렸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우리의 인생은 단 한 번뿐이라는 걸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 속 인물은 저마다 자신의 생을 사랑하고 나름 최선을 다해 살았을 것이다. 그 과정이나 결과가 타인의 시선에 어떻게 보일지는 중요한 게 아니다. 어디에 의미를 두냐에 따라 그 삶은 지나치게 가벼울 수 있고 걷잡을 수 없이 무거울 수 있을 뿐이다.


영원한 회귀가 주장하는 바는, 인생이란 한번 사라지면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한낱 그림자 같은 것이고, 그래서 산다는 것에는 아무런 무게도 없고 우리는 처음부터 죽은 것과 다름없어서, 삶이 아무리 잔혹하고 아름답고 혹은 찬란하다 할지라도 그 잔혹함과 아름다움과 찬란함조차도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9쪽)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단 한 번뿐이라는 것, 영속성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반복되는 역사를 마주할 때 안타까움을 어찌할 수 없다. 1960년대 프라하를 떠올리지 않아도 종교와 이념을 포기하지 못해 일어난 전쟁의 무게는 얼마일지. 우리가 한 번만 살 수 있다는, 그 분명하고 명확한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존재의 경중을 떠나 존재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다. 설령 우리의 존재가 참을 수 없이 가볍다 하더라도 말이다. 살아 있는 동안, 존재 그 자체는 위대하다는 사실에 감동해야 하지 않을까.


역사란 개인의 삶만큼이나 가벼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가벼운, 깃털처럼 가벼운, 바람에 날리는 먼지처럼 가벼운, 내일이면 사라질 그 무엇처럼 가벼운 것이다. (3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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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 2023-10-21 1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읽어야지읽어야지 하면서 수년째 안 읽고 있어요 자목련님 글 읽고 또다시 읽어야지 하고 다짐하고 갑니다ㅋㅋㅋㅋ

자목련 2023-10-24 14:52   좋아요 1 | URL
저도 대학 때부터 시도했다가 멈추기를 반복, 이제서야 겨우 읽었습니다.
망고 님도 곧 만나시길 바라요^^
 
세계는 이렇게 바뀐다 - 제3회 박지리문학상 수상작
단요 지음 / 사계절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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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의 세상을 살고 있다. 삶의 기준은 무너지고 당장 오늘만 버티겠다는 생각이 만연하다. 혼란의 시대를 구원할 무언가를 기다린다. 구원자의 등장이거나 신의 계시가 있다면 믿고 따를 기세다. 그것이 무엇이든 상관하지 않을 것 같다. 단요의 장편소설 『세계는 이렇게 바뀐다』의 수레바퀴처럼. 그것은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다. 인간의 정수리에 동그란 수레바퀴가 떠올라 정의를 상징하는 청색과 반대의 부덕을 상징하는 적색 영역으로 이분된다. 모두가 각자의 정의와 부덕을 보여줄 수 있다. 청색을 지닌 채 죽음을 맞이하면 천국, 반대는 지옥이 결정된다.


수레바퀴의 등장으로 사람들은 변한다. 덜 쓰고 나누고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려고 한다. 그것은 진정한 마음일까. 아닐 것이다. 종교와 철학에 대한 관심은 늘어나고 수레바퀴의 지배를 받는다. 정의와 부덕을 누가 결정하는지 모른 채 사람들은 자신의 머리 위 수레바퀴에서 벗어날 수 없다. 보편적인 개념의 도덕과 정의는 시시때때로 바뀌고 범죄 이력이 없는 이의 수레바퀴에도 적색이 존재한다. 혼란을 기회로 삼은 이들은 곧 등장한다. 수레바퀴 컨설팅 회사다. 대학 입시처럼 정의와 부덕을 컨설팅하는 세상이라니.


‘나’는 수레바퀴가 출현한지 1년 되는 시점에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인터뷰하는 르포작가로 수레바퀴를 대하는 태도와 생각을 들려준다. 수레바퀴의 등장을 반기는 윤리학자, 수레바퀴에 적대적인 수학과 교수, 수레바퀴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불법 도박업체를 운영하는 재력가. 죄를 지은 이를 변호해야 하는 변호사는 직업을 포기해야 하는가. 작가는 소설의 형식을 빌린 토론의 장에 독자를 참여시킨다. 당신의 머리 위에 수레바퀴가 등장한다면 어떻게 행동할 거냐고. 이런 시대에 아이를 낳고 기를 수 있겠냐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소설과 어떻게 다르냐고.


자신이 정한 기준에 따라 살다가 지옥에 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가, 수레바퀴를 따라 청색을 유지하려 애쓰다 천국에 갈 것인가. 그렇다면 천국은 존재하는가. 여러 가지 생각이 몰려온다. 이 시대의 정의는 무엇이며 우리에게 정의를 구현할 의지가 있는가. 수치와 테이터로 모든 걸 표현하는 세상, 인간적인 감성이나 인간의 존엄성을 상실하는 시대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돌아갈 수 없는 과거를 추억하며 살 수도 없고 다가올 미래의 불안을 껴안고 사는 인간 군상의 모습.


우리는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시간이 완전히 잘려나간 시대에 살게 되었다고. 어쩔 수 없이 존재하는 사람들은 시간과 함께 서서히 사위어가는 중이라고. 음울하지만 조금은 낭만적이다. (169쪽)


내일은 오늘보다 초라할 것이고 모래는 다시 내일보다 볼품없을 것이다. (186쪽)


신선하고 기발한 발상이라고 감탄하고 치부할 수 없다. 극단적인 상상이라고 말하지도 모른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좋아질 거라는 믿음 대신 모든 게 망해가고 있다는 걸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작가는 살고 싶은 세계가 있다면 우리는 변화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저 상상을 조금 더해 우리 사회의 민낯을 보여주고 스스로 느끼고 깨우치기를 바란다. 정의와 도덕이 사라지는 시대, 청색과 적색 이분법적인 색의 등장은 아닐지라도 뭔가 바뀌어야 한다. 어쩌면 우리는 수레바퀴 같은 존재의 등장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의 미래가 유토피아는 아닐지라도 유토피아를 꿈꿀 수 있는 디스토피아이기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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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3-10-18 11: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작년에 작가의 다른 소설 ‘다이브‘를 읽어본 적이 있어요. 오늘날 기후위기와 죽음, 의료에 대한 생각을 떠올리게 했는데 이 소설도 현재의 위기를 작가의 방식으로 보여준다 싶네요.

자목련 2023-10-20 18:01   좋아요 0 | URL
언급하신 기후, 죽음, 의료가 작가가 관심을 갖는 분야인 것 같아요.
작가의 시선 끝에 닿은 삶이 결코 소설에 국한 된 게 아니라는 게 서글프고요.

레삭매냐 2023-10-18 1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의와 도덕이 실종되었다는 말에
왜 이렇게 공감이 가는지요...

오늘보다 나을 내일 혹은 모레를 기대
하기가 난망하다는 현실이 오늘을 사는
이들의 비애가 아닌가 싶습니다.

아주 조금이라도...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이 필요한 시절
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자목련 2023-10-20 17:59   좋아요 0 | URL
소통은 단절되고 불통으로 향하는 미래가 무섭습니다.
어디선가 다른 형태의 수레바퀴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구 파괴의 역사 - 과학자의 시선으로 본
김병민 지음 / 포르체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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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소비를 한다. 물을 마시고 커피를 마시고 스마트폰을 쓰고 TV를 시청한다. 따지고 보면 부족한 게 없는 삶이다. 그런데도 좀 더 편한 삶, 좀 더 안락한 삶을 원한다. 불편했던 과거에 대한 그리움은 잊지만 정작 돌아갈 수 있다고 한다면 돌아감을 선택하는 이는 얼마나 될까. 나 역시도 선뜻 그렇다고 답을 할 수 없다. 나의 삶이, 거창할 것 업는 나의 소비가 지구를 파괴하는 게 크게 일조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큰 차는 물론이고 명품도 없으니까. 과연 그럴까?


화학공학자 김병민의 『지구 파괴의 역사』를 읽으며 확인했다. 지구에 사는 우리 모두는 날마다 지구를 파괴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오래전 인류가 시작되면서 성장하고 발전하는 내내 그러했다는 것을 말이다. 그저 외면하고 아직은 괜찮다고 여기며 살다가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게 현재 인류의 모습이라는걸. 그러니까 '지구 파괴의 역사'는 인류가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며 살아온 역사이자 욕망의 결과라는 것이다.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기업은 ESG(친환경, 사회적 책임 경영)을 외친다. 소비자도 착한 소비를 하려고 노력한다. 지속 가능한 삶에 동참하고자 재활용품을 위한 분리수거를 한다. 입지 않는 옷은 의류 수거함에 넣으면서 그 옷이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거라 여기며 안도한다. 쓰레기가 아니니 괜찮다는 생각은 괜찮을 걸까. 우리나라가 헌 옷 수출국 5위라는 사실에 놀랐다. 개발도상국에서 그 옷이 모두 주인을 찾는 게 아니라는 것, 낡아서 버리는 게 아니라 많아서, 마음에 들지 않아서 버리는 일상.


눈앞에 쌓이는 게 보이면 괴롭고 불편하지만 녹색 의류 수거함에 고민과 의식을 같이 넣는 것은 주저하지 않는다. 몸에 들어오는 미세 플라스틱은 걱정하면서 그 주범이 우리 자신임은 인식하지 않는다. 우리가 깨끗해지면 지구는 더러워진다. (62쪽)


올여름 폭염의 대가는 전기세 폭탄이었다. 어쩌겠는가 당장 더운데 당장 시원한 바람이 필요한 것을. 저장할 수 없는 전기. 대체 에너지로 적합한 것은 무엇일까. 지구 표면 절반을 덮고 있는 물에서 얻을 수 있는 수소, 저자의 언급대로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많지 않으니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놀랍고도 흥미로운 점은 인류 역사가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기술과 과학을 발전으로 더 좋은 쪽으로 가야 하는데 전쟁은 멈추지 않고 원인을 찾을 수 없는 질병으로 발생하는 인명 피해. 과학을 발달로 인해 밝혀낸 로마의 멸망 원인이 기후 변화와 신종 감염병으로 인한 결과라는 것. 로마의 도시화와 개발이 전염병을 확산시키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했을 정도니 얼마나 많은 이들이 로마로 모여들었을지.


우리는 이미 메시지를 충분히 받고 있다. 메신저는 지속적으로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우리가 무시할 뿐이다. 깨닫지 못할 인간을 위해 자연이 메신저로 직접 나서고 있지 않은가. 절대 자연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그 메신저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자연에서 인류가 사라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201쪽)


자연과 함께 공생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 우리는 왜 자꾸만 자연을 파괴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환경을 지킬 수 있는 과학 발전은 가능한 것일까. 과학자가 아닌 나는 잘 모르겠다. 다만 우리가 개발한 플라스틱은 세제에 남아 우리 몸에 흡수되고 바다에 흘러 생명체(물고기를 비롯한)에게 고통을 남기고 생명체는 인간에게 돌아온다. 지난 8월 24일 일본이 방류를 시작한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도 그렇지 않은가.


인간은 자신이 그저 지구라는 행성에 속한 여러 부족 중 생명체, 그리고 그 안에서도 일부 종에 지나지 않는다는 인식을 해야 한다. (311쪽)


나의 하루를 생각한다. 나의 소비를 돌아본다. 잠시 멈춤으로 살아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소유한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걸 인정하고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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