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빛 미스터리, 더 Mystery The 5
이누이 루카 지음, 추지나 옮김 / 레드박스 / 2014년 2월
평점 :
절판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은 끊임없이 발생한다. 다만,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그러니 남들에게는 없는 특별한 능력을 지닌 이들의 존재를 의아해할 필요는 없다. 어쩌면 나에게도 내가 발견하지 못한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른다. 신비로운 끌림이라 설명하고 싶은 이누이 루카의 단편집 『여름 빛』을 읽으면서 내내 그 무언가를 찾고 싶었다. 내게 속한 어떤 특별한 감각 같은 것 말이다.

 

 책에 수록된 여섯 편의 이야기는 무섭기보다는 아련했다. 누군가와 이별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아사다 지로의 『슬프고 무섭고 아련한』이 떠올랐다. 아사다 지로의 소설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처연하다. 1부와 2부로 나누어 · · 귀와 이 · · 코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러니까 신체 부위와 감각에 대한 사연인 것이다. 

 

 표제작인 「여름 빛」은 표지를 통해 예상할 수 있는 눈에 대한 내용이다. 소설은 현재가 아닌 1945년 2차 세계대전 말 큰어머니 댁인 세토우치 어촌으로 피난 온 소년 데쓰히코와 다카시의 우정에 대한 이야기다. 다카시는 학교 친구들과 마을 사람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는 아이다. 얼굴 왼쪽 전반에 시커먼 반점이 있는데 다카시의 엄마가 임신 중 배가 고파 상괭이를 먹어서 생긴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마을에선 상괭이는 신령과 같은 존재라서 다카시에게 저주가 내린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였을까, 놀랍게도 다카시에겐 죽음을 보는 능력이 있었다. 누군가 곧 죽을 사람을 보면 다카시의 왼쪽 눈동자의 푸른빛이 반짝이는 것이다. 그러나 데쓰히코에겐 상관 없었다. 다른 이들에게 다카시는 저주받은 괴물처럼 보였지만 데쓰히코에게는 언제나 함께 하고 싶은 친구였다.

 

 ‘다카시의 작고 둥근 밤 속에서 푸르스름한 빛이 하나, 둘 헤엄친다. 더 집중해서 응시하자 암흑 속에서 광점이 순식간에 증식했다. 하늘인지 바다인지 구분되지 않는 신기한 푸른빛이 줄지어 움직인다. 마치 춤을 추는 것 같았다.’ (「여름 빛」, 54~55쪽)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전쟁, 공습경보가 끊이지 않는 날들, 가족과 떨어진 소년의 외로움은 오직 다카시를 통해서만 위로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반딧불 처럼 반짝이는 눈을 통해 죽음을 예감하는 능력이라니, 어린 소년에게는 참으로 가혹하다. 이누이 루카는 이처럼 소외당한 사람들의 슬픔을 아름답게 그려낸다. 그들은 모두 다카시처럼 특별한 능력이 있었다. 요양을 위해 학업을 중단하고 교수가 소개한 집에서 지내는 「쏙독새의 아침」의 주인공 이시쿠로는 마스크를 쓴 기묘한 소녀를 본다. 마스크를 벗은 소녀의 입술은 새의 부리와 수염이 있었다. 이시쿠로에게만 보이는 모습이었다. 뿐만 아니라, 「백 개의 꽃」에서 기미는 자신보다 예쁜 동생 마치를 두고 저주의 주술을 외운다. 모두가 동생에게만 관심을 보여 속상한 것이다. 형제나 자매가 있는 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가졌던 마음이라 기미가 더 애틋하게 다가온다.

 

 2부에서는 기르던 금붕어가 돌연변이 괴물 금붕어가 되어 사람을 공격한다는 섬뜩하면서도 기발한 이야기 「이」, 마술사 아빠에게 학대를 받는 소년 다쿠의 하늘을 나는 능력 「Out of This World」, 감정을 냄새로 맡을 수 있는 아야코의 사연 「바람, 레몬, 겨울의 끝」에서도 이누이 루카는 공포를 섬세하게 그려낸다. 특히 누군가의 감정이 풍기는 냄새를 맡는 후각을 지닌 「바람, 레몬, 겨울의 끝」은 정말 매혹적인 이야기다. 주인공 아야코는 폭군인 아버지와 함께 동남아에서 인신매매로 팔려온 소녀들을 감시하는 일을 맡는다. 언제 죽음이 찾아올지 모르는 상황, 소녀들에게는 슬픔과 죽음의 냄새가 풍긴다. 그러나 단 한 명의 소녀 츠마는 희망을 나타내는 녹차 향기가 감돌았다. 온갖 핍박과 절망 속에서도 츠마는 바다를 보러 간다는 아빠의 말에 대한 희망을 갖고 있었다. 츠마를 통해 아야코 역시 자신의 삶을 바꿀 수 있는 희망을 발견한 것이다.

 

 ‘살을 에는 바람. 이어서 아직 푸르른 빛을 머금은 상큼한 레몬. 그리고 겨울의 끝을 알리는 풀과 흙의 기척. 그런 다른 향이 잇따라 생겨나면서 서로 쫓으며 줄짓다가 뒤섞였다. 꼭 음악 같았다. 초등학생 시절 음악실에서 들은 파헬벨의 캐논을 떠올렸다. 한 가지 선율이 또 다른 하나로 이어지고, 겹치고, 깊이를 더해 더욱 퍼진다 ― 츠마가 내뿜는 건 환상적으로 피어오르는 향의 캐논이었다.’ (「바람, 레몬, 겨울의 끝」, 317~318쪽)

 무척 기묘하고 독특한 소설이다. 강렬했던 첫인상은 처연한 아름다움으로 끝을 맺는다. 문득 지금도 어딘가에서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친다. 기적이라 불릴 수 있는 일들, 그런 일들이 일어나기를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달 위를 걷는 느낌 창비청소년문학 59
김윤영 지음 / 창비 / 2014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미래를 상상하는 일은 즐겁다.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상상 속에서는 나쁜 일도 일어날 수 있기에 무섭다. 일어나지 않은 일들에 대해 즐거운 상상만 펼칠 수 있다면 아무 걱정이 없겠지만 삶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사람들은 모르는 미래가 내 눈에만 보인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분명 그 미래를 바꾸려 노력할 것이다. 공상과학 영화를 떠올리는 김윤영의 『달 위를 걷는 느낌』은 그런 미래에 대한 이야기다. 아니, 미래를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들에 대한 이야기가 맞을지도 모른다.

 

 『달 위를 걷는 느낌』은 현재가 아닌 미래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로 주인공 루나는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고 있는 소녀다. 잠이 안 올 때 주기율표를 외우며 자신의 유전자가 자신을 조롱한다고 여기는 똑똑하면서도 사랑스러운 아이다. 2039년 9월 9일  핵융합 과학자인 루나의 아빠 이필립은 지구를 떠나 달을 향해 가면서 딸에게 줄 영상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 영상 메시지를 시작으로 소설엔 루나의 일상과 아빠가 루나에게 남긴 메시지가 교차로 이어진다.

 

 달에 다녀온 아빠는 사고로 3년째 의식을 잃은 채 병원에 입원 중이다. 루나는 특수학교에 같이 다니는 노마, 유니와  함께 아빠가 입원한 병원과 천문대에서 별을 보는 게 전부다. 병원에서 만난 베드로 아저씨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베드로 아저씨는 다른 어른들과 다르게 루나를 불쌍하게 대하지 않는다. 매일 아빠를 찾아오는 루나를 아끼고 사랑한다. 루나는 한 달 전 등기로 온 편지를 친구들과 아저씨에게만 보여준다. 암호처럼 보이는 내용을 아저씨와 함께 풀어나간다. 그 과정에서 루나는 그게 아빠가 자신에게 보낸 영상 메시지라는 걸 알게 된다.

 

 아빠가 보낸 영상 메시지는 충격적인 내용이 담겨 있었다. 아빠는 달에서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을 경험한다. 미래의 모습을 본 아빠는 과학자가 아닌 환경운동가의 길을 선택한다. 또한 아빠는 미래의 어느 날 자신에게 일어날 사고와 루나의 슬픔까지 알고 있었다. 아빠가 보낸 영상 메시지는 미래에 대한 경고였고 걱정하는 루나를 위한 안부였다. 끔찍한 일이 닥치겠지만 꼭 기다리는 아빠의 메시지. 루나의 장애를 특별한 아름다움이라 말하는 아빠의 따뜻한 목소리. 그건 작가가 아빠의 목소리를 빌려 말하는 소통과 희망이었다.

 

 소설에서 마주하는 미래는 과학의 발전으로 매우 편리한 세상이 되었다. 하지만 모두가 행복한 건 아니었다. 방사능 누출 사고로 생태계는 무너졌다. 소설에서 먼 과거의 일로 나오는 1986년 소련의 체르노빌과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사고가 원인이 된 것이다.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는 기형의 아이들, 숲에서는 새의 노래가 사라졌다. 어쩌면 그것은 우리의 모습일 수도 있다. 우주인이 상상이 아닌 현실이 된 세상, 멀지 않은 미래에 우리는 지구를 떠나야 하는 삶을 선택할지도 모른다. 참신한 소재로 함께 하는 삶과 자연의 경이로움에 대해 말하는 김윤영의 소설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인간이 꿈꾸는 아름답고 황홀한 미래는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그 답은 우리에게 있을 것이다.

 

 “루나야. 우리 인간에겐 경이로움을 향한 시적인 욕망이 있단다. 과학의 원동력도 이와 다르지 않다. 과학 안에도 아름다운 시가 존재할 수 있고, 그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 게 바로 과학자의 임무란다. 인간의 존엄성은 꺾이지 않아. 우리가 우주를 탐구하는 건 평화로운 공존을 위해서라고 했지? 그러니까 우린 승리할 거야.” (프롤로그 중에서, 10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
마루야마 겐지 지음, 고재운 옮김 / 바다출판사 / 2014년 3월
평점 :
품절


누구나 낯선 곳에 대한 동경이 있기 마련이다. 현재와는 다른 삶을 꿈꾼다. 직장에서 퇴직한 후 제2의 인생을 계획하는 이들에게는 특히 그러하다. 복잡한 도시가 아니라 조용하고 한적한 시골에서 나만을 위한 삶을 살고자 한다. 흙을 밟을 수 있는 마당이 있고 무언가를 키울 수 있는 시골 말이다. 하지만 귀농, 귀촌이 모두 성공하는 삶이 되는 건 아니다. 이상과 현실이 다르듯 단순한 여행이 아닌 시골에서의 삶은 많은 어려움을 불러온다. 시골에서 살고 있는 소설가 마루야마 겐지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시골의 실체를 공개한다.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란 제목처럼 시골의 삶을 적나라하게 들려준다.

 

 ‘자연이 아름답다는 것은 뒤집어 말하면 생활 환경으로는 가혹하다는 의미입니다. 바다도 산도 숲도 강도 그것이 아름다울수록 일단 비위를 건드렸을 때에는 본색을 드러낼 가능성이 크다는 뜻입니다. 혹독하고 위험하기 때문에 그림 같은 풍경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29~30쪽

 

 겐지의 말은 진정 옳다. 한 폭의 아름다운 풍경화 같은 삶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텔레비전을 통해 마주하는 깊은 숲 속이나 외딴 오지의 삶은 가혹할 정도로 불편 투성이다. 무턱대고 구체적인 계획 없이 시골로 이주했다가는 경제적 손실뿐 아니라 삶 전반이 흔들릴 수 있다. 겐지는 시골에서 일어날 수 있는 경우의 수에 대해 구체적 사례를 들며 조언한다. 지역사회가 바라보는 이방인에 대한 시선, 모든 것을 공유하고 나누려는 시골 사람들의 마음, 안전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위험에 노출된 현실, 도시와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고독과 소음에 대해 말한다.

 

히 시골은 도시와 다르게 의료 장비가 완벽하지 않아 위험한 상황에 이르렀을 때 빠른 도움을 기대할 수 없다는 점, 시골의 소음 공해와는 다른 시골에서도 소음이 있어 오히려 그것이 더욱 고통스러울 수 있다는 점, 동네 경조사에는 빠짐없이 참석해야 하며, 시골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사건 사고들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의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아 공감이 간다. 그러니까 사람 사는 곳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 시골에서는 예외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시골에서는 내 일은 내 힘으로 한다는 강한 마음가짐과 체력이 필요합니다. 이주하고 나서 도시의 편리함과 비교하며 불평을 해 본들 소용이 없습니다. 어떤 것이든 스스로 해내는 것을 즐거워하지 않으면 굳이 불편한 곳에서 살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185쪽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겐지는 시골로 오지 말라고 적극적으로 말리는 듯하다. 시골은 평화롭지도 않고 조용하지도 않다고 말이다. 어쩌면 그의 말은 이 모든 걸 견딜 수 있다면 언제든지 시골로 오라고 말하는 게 아닐까. 어느 곳에서 살든 고충이 있다는 걸 인정한다면 시골에서의 삶을 각오해도 좋을 것이다. 단점이 있다면 분명 장점도 있으니까. 결국엔 겐지는 이 책을 통해 시골이 아닌 삶에 대한 자세에 대해 진심을 담아 조언한다.

 

 두 번째 인생을 시골에서 계획한 이들에게는 실직적인 도움을 주는 책이다. 더불어 현재에 대해 불만을 갖고 변화를 꿈꾸는 이들에게는 그 삶이 막연한 상상에 속한 게 아니냐고 질책하는 목소리로 들린다. 지금 어떤 지역에서 어떤 직업을 갖고 살든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했냐는 것이다. 때문에 얼마나 치열하게, 절실하게, 삶을 살아내는지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진정한 빛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만 빛납니다. 진정한 감동은 현실의 고단함 속에서만 만날 수 있습니다.’ 195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누비처네 (양장) - 목성균 수필전집
목성균 지음 / 연암서가 / 201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중한 것들은 사라진 후에야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존재였는지 알게 된다. 언제나 내 손에 닿을 것 같은 사물, 내 시야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 같았던 사람들, 언젠가는 모두 다 소멸되고 사라진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영원할 수 없다는 건 불변의 진리지만 때로 부정하고 싶은 순간과 마주한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인생이 주는 선물일지도 모른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저절로 사라지는 것들은 제외하고 의식적으로 떠올리지 않는 사물과 사람도 종내엔 그리움이란 틀 속에 갇히고 만다.

 

 목성균의 수필집 『누비처네』를 읽으면서 산다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비가 오면 요란한 빗소리를 들려주던 양철 지붕과 흙집을 부수기 전까지 불을 지피던 아궁이, 작은 마당 입구를 지키던 두 그루의 나무를 꺼내온다. 지나온 삶의 기억 속에 고스란히 살아 있는 엄마의 부자연스러운 미소가 함께 한다. 한때는 매초롬한 얼굴을 지녔을 엄마.

 

 글이란 이렇게 놀랍다. 형식에 구해를 받지 않고 자유롭게 쓴 글이라는 수필이라서 그렇까. 모든 수필이 다 감동적인 것은 아닐 터. 목성균의 시선으로 바라본 평범한 일상 속에 우리네 삶이 담겼기 때문일 것이다. 시골에서 나고 자란 덕분에 나는 글을 통해 내 어린 시절 속 나를 불러올 수 있었다. 「고개」란 글에서 목성균이 그랬듯 누군가를 기다리던 고개가 우리 동네에도 있었다. 읍내로 통하는 길, 시간에 맞춰 버스를 타기 위해 그 고개에 서 있던 사람들, 장에 나갔던 엄마를 기다리며 한 곳을 응시하던 아이들.

 

 목성균의 글에는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이름을 지닌 물건들이 많이 등장한다. 고백하자면 제목으로 쓰인 ‘누비처네’도 무슨 뜻인지 바로 알지 못했다. 한때 누구에게나 소중했을 물건이다. 표지의 그림처럼 아이를 업는 누비로 된 이불이다. 손자가 태어나자 객지에 나간 아들에게 아기의 누비처네 사 올 값을 보낸 아버지의 마음이 애틋하다. 어디 누비처네뿐인가.  전깃불에 반해 버렸던 등잔에선 심지를 가는 방법을 알려주던 아버지를 떠올린다. 또한 「기둥시계」란 글은 내게 할머니를 추억하게 만든다. 태엽을 감아 생명을 이어가던 촌스러운 괘종시계로 이어진다. 추억을 선물하며 삶을 반추하게 만드는 아주 아름다운 문장에 반하고 만다. 꾸미지 않은 글이 갖는 힘은 정말 위대한 것이다.

 

 ‘우리 기둥시계 바늘이 시간을 돌리는 일은 꼭 소가 연자매를 돌리는 일과 같았다. 눈을 지그시 감고 되새김질을 하면서 꾸준히 연자매의 멍에를 지고 확을 도는 소의 끝없는 노역과, 고삐를 잡고 그 노역 뒤를 따라 도는 방아 찧는 사람의 시간에 초연함 같아서 경외스러웠다. 내 선대 어른들, 아버지 · 할머니 · 증조부 등등 저 청산의 일각의 무덤 아래 드신 생전의 삶들처럼.’ <기둥시계, 149쪽>

 

 우리는 삶이 끝날 때까지 욕망을 버리지 못한다. 빈손으로 태어나 쥐었던 모든 것을 내려놓고 떠나는 게 삶이라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좀 더 좋은 것을 바라고, 좀 더 높은 자리를 원한다. 맑고 순수했던 어린아이의 마음은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나이가 들수록 넓은 아량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하는데 참 어렵다.

 

 ‘나는 하찮은 내 자리에서 꽃을 피우려 하지 않고 꽃을 피운 남의 자리만 선망한다. 사회 구성 밀도만 차지한 응집력 없는 사람에게 꽃이 필 자리가 아닌 자리에서 화사하게 핀 꽃이 시사하는 바가 가혹하다.’ <꽃이 핀 자리, 550쪽>

 

 먹고 사는 일이 참 쉽지 않은 세상이다. 비싸고 좋은 음식을 먹으려 하는 게 아닌데 그렇다. 내 몸 하나 누울 자리가 없어 비탄하며 살아간다. 그럼에도 희망을 놓지 않는 건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온다는 단순한 사실 때문은 아닐까. 오랜만에 만난 따뜻하고 편안한 글이다. 수필 읽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멸종 직전의 우리 작가정신 소설락 小說樂 4
김나정 지음 / 작가정신 / 201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죽음이 주는 가장 큰 고통은 남겨진 이들의 삶이다. 삶은 어떻게든 이어지기 때문이다. 예고되지 않은 죽음의 경우 남겨진 삶이 예전의 그것으로 회복될 수 있는 확률은 낮다. 죽음을 인정할 수 없기에 슬픔과 분노로 채워진 삶을 살기도 한다. 생각해 보면 죽음은 생과 동시에 생성되어 자란다. 우리는 죽음과 함께 사는지도 모른다. 아니다, 어떤 말로도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러니 어렵게 얻은 딸이 열두 살에 같은 반 아이가 찌른 칼에 숨졌다면 부모의 삶은 그 순간 사라진 것이다.

 

 김나정의 장편소설 『멸종 직전의 우리』는 이십 년 전에 딸 나림을 잃은 부모가 나림을 죽은 선주의 아이를 유괴하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얼핏 복수에 관한 소설로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소설은 복수에 대한 소설이 아니다. 하나의 죽음으로 연결된 삶에 대한 이야기다. 하루아침에 딸을 잃은 권희자는 울부짖는다. 열두 살 김선주는 왜 나림을 죽였는지 어떤 말도 하지 않는다. 세상은 잠시 나림의 죽음에 주목할 뿐 점점 잊힌다. 권희자의 눈에 비친 남편도 다르지 않았다. 직장에 나가고 다시 일상을 이어간다. 결국 이혼의 수순을 밟았다. 정말 남편은 자신의 궤도로 돌아간 것일까? 

 

 소설은 나림의 죽음에 관련된 사람들의 삶을 차례로 들려준다. 나림을 죽인 김선주, 나림의 엄마와 아빠, 김선주의 부모, 그리고 나림의 목소리로 이십 년 전 상황을 재현하고 현재의 삶을 보여준다. 아무리 자식이지만 어떻게 그 속을 알겠냐고 선주 엄마는 항변한다. 그러다 차갑고 날카로운 시선을 피해 해외를 선택한다. 새로운 삶을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낯선 곳에서 사만다가 된 선주는 여전히 두려웠고 외로웠다.

 

 ‘휘파람을 불면 개는 달려와 꼬리를 살랑거렸다. 사만다는 개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들여다보았다. 밤에 악몽을 꾸면 사만다는 한 손을 뻗어 개의 목덜미를 쓰다듬었다. 개는 언제나, 거기 있었다. 부드럽고 따뜻한 살덩어리, 살아 있는 것의 감촉.’ 139쪽

 

 부모도 형제도 선주의 아픔을 알려고 하지 않았다. 수차례 이름과 신분을 바꿔 김선주가 아닌 윤수인(囚人)이 삶에는 아들 안도(安堵)가 전부였다. 수인과 안도라는 이름이 주는 간절함이 느껴진다. 그런 수인에게 권희자는 이십 년 전 자신이 느꼈던 공포를 전하며 왜 나림을 죽였는지 묻는다. 선주는 나림의 피아노 소리가 좋았고 친하게 지내고 싶었을 뿐인데 나림은 친구들을 선동해 자신을 왕따시켰다. 선주의 눈에 나림은 정말 행복한 아이처럼 보였지만 엄마의 강요에 피아노를 쳐야 하는 나림은 인형 같은 생활이 싫었다. 나림은 다른 삶을 원했고 죽음이 그 길을 인도한다고 믿었는지도 모른다.

 

 ‘눈앞이 가물거렸다. 눈을 깜빡거릴 때마다 어둠 속에 밝음이, 밝음 속에 어둠이 띄엄띄엄 섞여 들어갔다. 운동장이 저편 멀리로 사라졌다. 천사들의 연주가 시작되었다. 다시 눈을 뜨면 나는 분명 다른 세상에 있을 것이다. 빰에 닿는 바닥이 차가웠다. 음표가 끝나고 긴 쉼표가 이어졌다. 꽃잎 한 장이 사뿐, 건반에 내려앉았다. 꽃잎은 소리 없이 건반 위로 굴러갔다. 악보는 다음 장으로 넘어가지 못하고 평화로운 침묵이 이어졌다.’ (195쪽)

 

 평생을 분노와 증오로 살아온 권희자와 알 수 없는 형체에 쫓기듯 살아온 김선주는 고통과 불행을 등에 진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러니까 나림의 죽음은 여전히 그들의 삶을 지배하고 있던 것이다. 자식을 잃은 어미의 슬픔과 자식을 잃을지도 몰라 절박한 어미의 마음이 전해진다. 지난 사건에 대해 용서를 구하고 화해할 수 시간은 끝내 허락되지 않는 것일까. 

 

 ‘두 사람의 머릿속에서 피아노 소리가 울렸다. 사라졌지만 사라지지 않은 것들. 한때 우리 곁에서 머물러주었던 모든 것들. 빗방울이 흔들어 놓은 꽃잎들, 젖은 흙냄새와 나무 그들에서 젖은 날개를 말리는 나비들, 구름의 틈새로 보이는 햇발. 소란한 침묵. 멀리서 가까이로, 가까이서 멀리까지. 멀리서 들리는 동물들의 울음소리는 누군가에게는 노랫소리처럼 들렸다.’ (256쪽)

 

 언제 어디서든 죽음은 발생한다. 어떤 죽음은 외롭고 쓸쓸하다. 어떤 죽음은 호상(好喪)이라 불리기도 한다. 복수, 용서, 화해가 아닌 죽음을 축복할 수 있는 몫을 지닌 자의 남겨진 삶은 평온할 것이다. 어쩌면 누군가의 죽음에 대한 가장 완벽한 복수, 혹은 애도는 그저 놓아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