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아마도 살아가는 내내 그럴 것이다. 그렇기에 더욱 예술이 궁금하다. 무엇을 말하는지 모르는 채 바라보는 그림, 웅장함에 놀라는 건축물, 어떻게 저런 이야기가 나올 수 있을까 감탄하며 보는 영화, 끌리는 자꾸만 생각나는 연주와 그림들. 그것들이 있기에 팍팍한 우리네 삶은 작은 여유로 느슨해질 수 있다. 무엇을 말하는지 알고 싶어서 작품을 통해서 예술가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일까. 닿을 수 없어 매력적이다.


예술가를 생각하면 고독한 이미지가 따라온다. 항상 예술 그 자체에 매몰되어 있는 듯한 형상이라고 할까. 조성준이 들려주는 33인의 예술가가 그러했다. 예술과 그들은 하나였고 하나이기를 간절하게 바랐다. 세상이 한눈에 알아보았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운명처럼 그들은 고난과 시련의 삶을 살았고 작품으로 인정받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록 가수 데이비드 보위를 시작으로 구스타프 말러, 조지아 오키프, 안토니 가우디, 장국영, 폐기 구겐하임, 수잔 발라동, 에드워드 호퍼, 르네 마그리트, 알베르토 자코메티 등 저자가 선택한 33인의 예술가는 잘 알려진 이들도 있었고 이름만 들었을 뿐 그에 대한 이야기는 처음 듣는 이도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이름의 예술가는 더욱 반색하며 만났다. 한 명 한 명 그들의 삶을 조명하며 그들의 작품을 해석한다. 그러니 예술의 설명서로 읽어도 좋다.


편애일지도 모르겠으나 나는 여성 예술가를 가장 먼저 읽었다. 고통으로 얼룩진 삶으로 잘 알려진 프리다 칼로, 사진으로 추측하고 증명하는 비비안 마이어의 삶, 아이를 업고 서 있는 사진으로 유명한 영화감독 박남옥, 화려한 이미지로 각인된 천경자, 묘한 온기를 전하는 수잔 발라동, 이름은 익숙하지만 생에 대해서는 잘 몰랐던 페기 구겐하임이다. 그리고 너무도 좋아하는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속 모델인 조세핀.


어쩌면 비비안 마이어는 현재를 가장 사랑하는 사진가는 아니었을까. 어떤 계획도 없이 그저 사진을 찍는 일이 가장 중요했고 그것을 가장 사랑했던 것 같다. 그러니 모든 세상이 그에게는 가장 귀한 모델이었을 것이다. 예쁘고 화려한 이미지가 아닌 삶 자체를 담고 싶었던 그녀. 그래서 그녀의 사진 속에서 모든 감정이 전해짐을 느낄 수 있다. 


비비안은 구체적인 테마를 정해놓고 이미지를 찾는 사람이 아니었다.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가 두리번거리며 무언가가 눈에 들어올 때마다 사진을 찍었다. ‘바로, 지금 이곳’의 이미지를 수집해야 하는 사명을 띤 사람처럼 셔터를 눌러댔다. 모든 풍경이 그렇듯, 비비안의 사진에는 위트, 사랑, 빈곤, 우울, 죽음의 이미지가 섞여 있다. (320쪽)


침대에 누워 그림을 그린 프리다 칼로의 생은 이제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다. 멕시코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알려진 그녀의 생. 작품을 소개할 때마다 그녀의 비참한 삶이 조명된다. 그건 좀 아프고 슬프다. 그런 아픔은 장국영도 마찬가지다. 거짓말처럼 만우절에 생을 마감한 그. 그의 영화를 볼 때마다 노래를 들을 때마다 슬픔이 천천히 쌓인다. 어디 그뿐인가. 32세에 은퇴한 글렌 굴드는 남은 생을 고독 속에서 살았다. 무엇이 그를 고독과 침묵으로 이끌었을까. 영원한 침묵 속으로 향한 그들의 마지막이 평온했을까. 부디 그랬기를 바란다.


우리는 프리다의 삶과 예술에서 숭고함을 느낀다. 이 숭고함엔 진통제 없이 하루도 버틸 수 없었던 한 인간의 고통이 덧칠돼있다. 프리다의 고통은 결고 승화되지 않는다. 아픔을 그린다고 아픔이 사라지진 않는다. 프리다는 폐렴으로 사경을 헤매다 47세에 눈을 감았다. 마지막 일기엔 이렇게 적혀 있다. “이 외출이 행복하기를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기를.” 생의 끝에서 프리다가 돌아본 세상은 다시 돌아오고 싶지 않은 곳이었다. (프리다 칼로, 134~135쪽)


예술가에게는 그들을 지지하고 후원한 이들이 존재한다. 처음 재능을 발견하고 세상에 그들을 알리는 이, 예술의 스승이 되거나 경제적 지원을 아까지 않는 이들 말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들과의 불화로 고통을 겪는 경우도 많다. 무용수 바츨라프 니진스키는 러시아 황족의 후원을 받고 예술비평가 댜길레프가 주목한다. 니진스키를 사랑한 그는 자신의 세계에 그를 가두려 했다. 그와의 이별 후 홀로서기를 시도했으나 옛 애인의 영향력은 너무도 컸다. 거리의 화가 장미셀 바스키아도 앤디 워홀이 그의 재능을 알아봤기에 1200억 원에 낙찰된 작품이 되었다. 


예술가를 알아보는 예술가, 그들 역시 대단한다. 가장 가까운 후원자는 역시 가족이다. 에드워드 호퍼의 연인 조세핀은 화가였고 자신의 전시회에 남편의 그림을 걸 수 있도록 힘을 섰다. 결혼과 동시에 조세핀은 화가가 아닌 아내가 되었다. 조세핀은 호퍼의 매니저로 그 역할과 모델이 되었다. 이 책을 읽고 다시 호퍼의 그림을 본다. 그림 속 여인에게서 눈을 뗄 수 없다.


호퍼의 그림 속 적막함에 휩싸인 금발 여성, 다시 말해 조세핀의 텅 빈 표정을 보면 그녀가 반평생 지녔을 고독의 깊이를 막연하게 가늠하게 된다. 예술가라는 꿈을 접게 만든 사람의 꿈이 차근차근 현실이 되는 과정을 지켜본 조세핀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자신을 독립적인 존재로 존중하지 않은 자와 수업이 충돌하며 끝내 체념해야 했던 이 여성의 그림자는, 아이러니하게도 호퍼의 하폭에 담겨 불후의 명작으로 불린다. 조세핀의 얼굴에 드리운 그림자는 여성, 아내라는 틀 안에서 자신을 상실하는 수많은 여성의 고독이다. (에드워드 호퍼, 315쪽)


조성준의 책을 읽으면서 심상용의 『예술, 상처를 말하다』 가 생각났다. 10명의 예술가의 삶을 들여다보는 책으로 그들의 뒷모습을 조명하며 그들의 예술 작품을 리뷰한다. 조성준의 33명과 겹치는 인물은 프리다 칼로, 장미셀 바스키아 둘 뿐이다. 세계의 유명 예술가를 선택하는 것뿐 아니라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를 소개하면 더 좋았을 아쉬움이 남는다. 심상용의 책에서 만난 이성자, 권진규 같은 예술가 말이다. 


예술은 아무것도 담보하거나 약속할 수 없음을 인식할 때만 그 고유한 정신에 다가설 수 있다. 인간을 위해 무엇인가를 할 수 있도록 만드는 진정한 에너지는 다른 곳에서 온다는 심오한 인식에 다가감으로써 말이다. 역설인가? 차라리 신비라고 해야 정확할 것이다. 자발적 무려, 선택된 비능력의 인식을 통해서만, 즉 오히려 스스로를 비우고 일체의 권력 지향을 포기할 때에만 타락한 힘과 그에 대한 복종으로 무너져 온 역사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예술이 가담해야 하는 싸움이요, 떠안아야 하는 사랑이다.’ (『예술, 상처를 말하다』 중에서)


예술은 일상을 회복시키고 일상을 치유하는 힘을 지녔다. 그것이 예술가의 궁극적인 일인지도 모른다. 내가 만난 예술의 세계는 작고 좁다. 그 안에서 존재하는 예술가는 위대하다. 시대를 뛰어 너머 역사가 되고 그 자체로 예술이 된다. 우리 곁에 그들이 있기에 세상은 더욱 아름답게 빛나는 것이다.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영혼을 위로하는 힘, 예술가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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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10-08 15: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이달의 당선 추카~~
비비안 마이어 사진들
뉴욕 갤러리에 찍어낸 카피본

제방에 걸어 놓고 있습니다 ㅎㅎ

주말, 행복하게 보내세요. ^ㅅ^

자목련 2021-10-11 10:14   좋아요 0 | URL
비비안 마이어 사진, 정말 좋아요!
스콧 님 남은 연휴 즐겁게 보내세요^^

mini74 2021-10-08 16: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예술가의 일 읽고있어요. 어둠과 상처를 수집하는 비비안 마이어~~ 축하드려요

자목련 2021-10-11 10:15   좋아요 1 | URL
지금쯤은 다 읽으셨을 것 같아요.
예술과 가까이 하는 가을날 이어가세요^^

새파랑 2021-10-08 17: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술은 어렵지만...자목련님 축하드려요 ^^

자목련 2021-10-11 10:16   좋아요 1 | URL
맞아요, 예술은 어렵습니다. ㅎ
저도 축하드리며 좋은 시간 보내세요^^

그레이스 2021-10-08 1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축하드려요 ~♡

자목련 2021-10-11 10:16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저도 축하드려요. 남은 연휴 평온하게 이어가세요^^

서니데이 2021-10-08 1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자목련 2021-10-11 10:17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 님, 감사합니다. 건강하고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어제 하지 못한 말이 있다. 어제 하려고 기억해두었고 어제 했으면 좋았을 말이다. 오늘이 아닌 어제 하루 종일 생각했는데 결국엔 다른 말만 했다. 그 사실을 어제가 아닌 오늘 깨달았다. 어제 했으면 더 좋았을 말, 하지만 오늘 해도 괜찮다. 어제란 시간이 중요할까, 하지 못한 말이 더 중요할까. 이 경우엔 시간과 말, 모두가 중요했다. 하루가 지났다고 해서 그 말이 사라지는 건 아니고 그 말은 여전히 내 안에 있으니 하면 된다. 할 것이다.


때를 맞춰야 하는 말들이 있다. 공간과 시간, 그 적절한 말을 우리는 때로 놓치고 만다. 어쩌다 보니, 하려는 말이 적당한 말인지, 나를 위한 말은 아닌지, 상대를 위한 말이어야 하는 건가. 머릿속에서 생각만 하다 놓치는 경우도 있다. 어제의 나는 어떠했나. 꼭 하고 싶었던 말인데 그 말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순간 잊어버렸다. 아무튼 그 말을 오늘은 하면 된다. 하지만 나와 같은 경우가 아니라 어제 하지 못한 말을 오늘은 하고 싶지 않다면 안 하면 된다. 어제의 말은 어제 태어나 소멸한 것이다.


매일 말을 하면서도 매일 말을 놓친다. 가족, 친구, 연인, 동료, 상사. 습관적이고 가벼운 인사와 안부부터 걱정, 조언, 보고, 허락을 구하는 말까지 말은 왜 이리 많은가. 그런데도 정작 해야 할 말을 내뱉지 못하고 겉도는 말을 하고 마는 일상들. 우리는 무슨 말을 놓치고 있을까. 문자로는 웃음과 유머를 날리는 이모티콘을 쓰면서도 말로 나누는 농담이나 유머는 점점 사라지는 것 같다.


하려고 했던 말들을 모두 할 수는 없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사는 사람이 없다고 한 것처럼. 그래도 말이 말을 부르는 소리는 정겹다. 말이 말을 부르며 화음을 만든다. 두런두런 다정한 말, 소곤소곤 비밀스러운 말, 왁자지껄 떠드는 말. AI와 나누는 말, 반려 식물, 반려동물에게 건네는 말, 혼잣말, 독백, 방백도 모두 말이지만 아름다운 말은 소중한 이와 나누는 대화일 것이다.


폭우가 쏟아지던 밤과 새벽을 지나 9월이 되었다. 9월에는 한강의 장편 『작별하지 않는다』, 시그리드 누네즈의 소설 『어떻게 지내요』, 윤고은의 장편『도서관 런웨이』를 읽는 시간이면 좋겠다. 폭우와 함께 소설 읽기 좋은 가을이 시작되었다.


어제 하지 못한 말을 오늘은 전할 것이다. 기쁘게 반갑게 들어줄 거라는 걸 알기에 담아둔 말은 더 풍성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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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9-01 17: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시그리드 누네즈가 수전 손택을 회고 한 책 , 올 한해 읽었던 책들 중 손안에 꼽는 책입니다.
윤고은 작가의 신작이 나왔네요
찜!
유머를 날리는 이모티콘
전 아주 많이 쓰고 있는데 ㅎㅎㅎㅎ

sns시대에는 말보다 이미지!
활자보다 영상이 소통의 시대가 되었죠. ^ㅅ^

자목련 2021-09-02 16:02   좋아요 1 | URL
아, 스콧 님은 작가의 다른 책을 읽으셨군요.
오랜만에 윤고은의 소설을 읽을까 싶어요.
맞아요, 영상이 주가 되었는데 익숙하지 않아요. ㅎ

읏는 오후 이어가세요^^

blanca 2021-09-01 19: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해야 하는 말은 못 하고 하지 않아도 되는 말은 너무 많이 해버린 것 같아요. 한강 신작 기대됩니다. 세 책 모두 자목련님 리뷰 기다려봅니다.

자목련 2021-09-02 16:03   좋아요 0 | URL
적절하고 적당한 말이 필요한데 그게 어려워요.
세 권 모두 읽고 좋은 느낌을 안겨줄 것 같아요.
가을이 가까운 날들, 평온하게 보내세요^^

공쟝쟝 2021-09-01 19: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오늘 하고 싶은 말, 이글 참 좋다 💕

자목련 2021-09-02 16:04   좋아요 0 | URL
저의 오늘 하고 싶은 말, 공쟝쟝 님의 댓글이 너무~~~ 좋아요!!
품위있고 우아한 냥이에게 빠져들었다는 말도 함께요^^

희선 2021-09-02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때를 맞추면 좋겠지만, 조금 늦었다 해도 그걸 듣는 사람한테 괜찮은 말이라면 늦게라도 하면 좋을 듯합니다 아주 중요하지 않다면 안 해도 되고, 그런 말은 자신이 별로 하고 싶지 않을지도 모르겠네요

자목련 님 구월 책과 잘 보내세요


희선

자목련 2021-09-02 16:05   좋아요 1 | URL
그제 하지 못한 말은 어제 했습니다. 늦지 않은 말이라서 괜찮았어요.
희선 님, 맑고 평온한 9월 보내세요^^

그레이스 2021-09-02 08: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간이라는 거리때문에 말이 닿지 않는 경우가 있죠.
그 간격때문에 지레 겁먹고 웅덩이를 뛰어넘지 못하는 것처럼, 어쩌면 늦더라도 하면 되는 말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늦었더라도 해야할 말도 있구요^^
글 너무 좋아요~♡♡♡

자목련 2021-09-02 16:06   좋아요 1 | URL
네, 정확하게 닿으면 좋을 텐데. 그렇지 않을 경우 후회와 미련으로 남은 게 말인 것 같아요.
늦더라도 해야할 말을 꼭 하면서 살고 싶어요.
그레이스 님의 하트가 제게로 쏙 들어왔어요!!

김규리 2021-09-07 2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별하지않는다˝ 책의 내용이 궁금해서 보다 (어제 하지 못한 말) 이 글이 너무 좋아서 자꾸 보게 되네요 요즘 딱 저의 오늘에, 앞으로의 저에게도 도움이 되는 글입니다 ^^ 직접 쓰신 글인가요? 너무 와 닿아서요

자목련 2021-09-08 15:16   좋아요 0 | URL
김은옥 님,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서재의 모드 글은 제가 직접 쓴 글입니다.
가을 평온하게 보내세요^^
 


어떤 경험과 기억은 인생의 반향점이 된다. 때로 많은 시간이 흐른 뒤 나타나고 힘을 발휘해 적용되기도 한다. 그건 강렬했다기보다 불편하고 난해한 기억이거나 경험이다. 어쩌면 지우고 싶은, 잊고 싶은 것들일 수도 있다. 왜? 란 질문을 반복하게 만드는 것. 그런 것들이 삶을 바꾸고 흔든다. 모두에게 다 그런 건 아니다. 누군가는 그 기억을 그냥 과거로 치부하고 기억하지 않음으로 인식한다. 그 기억은 내 것이 아니라고 기억으로부터 멀리 도망치며 살아간다. 누군가는 끊임없는 질문으로 이어간다. 기억의 실체를 찾아, 기억의 부여하는 의미를 찾는다. 『잊지 않음』이란 단호한 제목의 산문집을 쓴 작가 박민정은 후자다.


작가니까 그런 거 아니냐고 묻는 이도 있을 것이다. 소설을 쓰는 일이 문학 속에 거하는 삶이니 타인을 관찰하고 사회를 바라보는 냉철한 시선이 존재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말이다. 물론 그럴 수 있다. 그러나 그걸 주문처럼 외고 소설을 쓸 때마다 기억하고 애쓰는 작가의 고충을 독자는 알 수 없다. 섣불리 자신의 서사가 아니냐고 짐작하고 판단할 뿐.


어떤 의미에서 작가의 산문집은 그래서 더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사고, 작가가 그리는 소설에 대한 미래, 소설을 쓰면서 스스로가 다짐하는 게 무엇인지 알려주는 그런 산문집이라면 훨씬 소설을 이해하기 쉬울 것 같다. 평론가의 해설이나 서평이 아닌 작가의 목소리로 들려주는 소설의 해석이라면 더욱 소설을 풍성하게 만들 것이다. 사실 박민정의 산문집은 쉽지 않았다. 그건 작가의 개인적인 고백을 읽는 일이었고 동시대의 아픔과 폭력을 향한 태도였기 때문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박민정의 소설은 내게 어려웠다. 많은 소설을 읽지도 못했다. 겨우 단편집 한 권과 몇 편의 단편이 전부다. 그 역시 제대로 읽지 않았다. 작가가 소설을 통해 들려주려는 목소리를 나는 듣지 못했고 그 목소리가 무엇을 말하는지도 몰랐던 것이다.


작가가 주목하는 것들, 여성과 일상이 된 폭력의 삶이었다. 그 시작은 이혼한 작은 아버지가 두 딸을 해외로 입양 보냈다는 사실과 작가 스스로의 경험이다. 아들인 남동생은 키우고 딸이라는 이유로 입양을 보냈다니, 이해할 수가 없다. 그 시대 그런 이유로 선택당하지 않고 버려진 이들이 모두 여성이라는걸. 작가는 만약 그 상황이라면 자신도 버려질 수 있었다는 불안을 경험한다. 학교 안에서 자행되었던 추행과 폭언들, 수직적 관계에 대한 분노에 대항하지 모 못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작가가 다짐하듯 쓴 문장을 읽으면서 나는 매우 부끄럽다. 경험했으므로 더욱 그들을 이해하고 그 편이 되어주어야 하는데, 건너왔다는 이유로 이제 잊고 살아온 나의 시간을 반성한다.


학생 인권은 몇 번을 말해도 모자람이 없다. 머리카락 기른다고 자유롭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잊지 않기 위해 여학생들의 복숭아뼈를 끝없이 감각한다. 그것이 내 것이었다는 걸 잊고 ‘요즘 애들 편하다’라는 말을 하지 않기 위해서. (46쪽)


내가 쓰는 모든 소설이 그렇듯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항상 뒤늦게 슬퍼진다. (165쪽)


지금껏 내가 만난 소설가의 산문 가운데 가장 특별한 산문집이다. 솔직하면서도 당당한 용기가 놀랍고 고맙다고 할까. 어려워서 그렇기도 하고 작가로의 무엇을 써야 하고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고민하고 고뇌하는 모습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박민정의 산문집을 읽고 지나온 역사의 아픔을 경험하지 않았다고 그곳에 존재하지 않았고 가담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것에 대해 말할 기회가 제한되고 제외되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같은 시대를 살면서 나는 그저 타인의 일이라 여기고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 여겼던 순간에 대한 미안함과 함께.


그러므로 작가는 계속 쓸 것이다. 더 많은 여성의 이야기를, 주류가 아닌 비주류로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여전한 차별과 폭력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이제 나는 조금 더 가까이 그녀의 소설에 다가갈 수 있다. 그리하여 그녀의 소설 속 인물의 삶이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이야기라는 걸 느낄 수 있다. 제대로 만나지 못한 박민정 자각의 소설을 이 산문집과 함께 읽으면 좋을 것이다. 소설을 이해하기 보다 소설을 사랑하기 위해. 소설 속 그녀들을 더 많이 사랑하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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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1-09-10 18: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자목련 2021-09-13 12:09   좋아요 1 | URL
^^*

초딩 2021-09-11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페이퍼 당선 축하드립니다~ 자목련님 행복한 주말 되세요~

자목련 2021-09-13 12:09   좋아요 0 | URL
^^*
 

오랜만에 친구의 목소리를 들었다. 잠깐 여유가 생겨 수목원을 걷고 있다고 했다. 그 시각이 점심시간 이후였으니 나는 이 더위에라고 생각했다. 다행히 나무 그늘이 있어 덥지는 않다고, 아마도 멈추면 더울 거라고 친구는 말했다. 친구는 걸으면서 여름의 더위에 대해 부모님의 건강에 대해 말했다. 친구는 부모님 두 분은 비교적 건강한 노후를 보내신다. 주말부부인 친구가 주중에는 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살뜰하게 챙기는 모습이 참 대견하다. 오늘도 일을 시작하기 전 부모님을 모시고 병원에 다녀왔다고 한다. 처음에는 부모님의 도움을 받는 것 같았지만 지금은 친구가 부모님을 보살피는 쪽이라고 할까. 종종 부모님 곁에서 살아가는 친구들을 보면 부럽고 대단하다. 소소한 일상을 나누는 기쁨이 부럽고 간혹 의견 차이로 갈등이 생기는 걸 보면 부모 자식이 참 어려운 사이구나 싶다.


더운 여름을 잘 지내라고, 남은 하루도 고생하라고 말하며 통화를 끝냈다. 더위가 아직 많이 남았는데 하루하루 지치는 기분이 사라지지 않는다. 긴 여름은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정답일 것이다. 그런데 하루하루가 참 어렵다. 무난하게 지나가는 하루도 있지만 어떤 하루는 어딘가에 걸려 넘어지고 만다. 때로는 아주 사소하고 작은 것, 때로는 엄청난 장애물에 걸려 넘어진다.


지역에 코로나 확진자가 급격하게 늘었다. 괜한 공포가 몰려온다. 이제 안전 구역은 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구나 싶은 마음까지 든다. 세상에 안전 구역이라니. 쓰고 보니 더 무섭다. 현실을 피해 책이라는 안전 구역으로 도피해야 하는 지경이다. 여름이니까 시원한 색감을 찾는다, 어쩌다 보니 책도 그렇다. 아니, 그냥 우연이다. 가장 가까운 곳에 둔 세 권의 책이 모두 그러하다. 여름이야,라고 말하는 듯하다. 민트와 그린 사이, 그 어디쯤을 향하는 것 같다. 기다렸고 궁금했던 장혜령의 첫 시집 『발이 없는 나의 여인은 노래한다』,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 『쇼팽』, 한 권으로 만나는 헤밍웨이의 작품들 『디 에센셜 헤밍웨이』.






장혜령의 소설과 산문에 이어 시는 어떤 느낌일까. 조금 무거울 것 같기도 하고 조금 슬플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표지의 색만 보면 산뜻할 것 같지만 몇 편 읽어보니 그건 아닌 듯하다. 장문의 시가 많고 어렵다. 언제나 그렇듯 시는 왜 이리 어려운가. 헤밍웨이의 대표작과 짧은 단편과 에세이를 읽는 일은 즐겁다. 우선은 대표작보다는 처음 만나는 단편을 먼저 읽는다.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는 읽을 때마다 사람 여행이란 이런 게 아닐까 느낀다. 쇼팽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 그가 사랑한 사람들을 상상하게 된다.


여름의 바람은 민트와 그린의 색을 지녔을 것 같다. 여름이라서 드는 생각이다. 여름이라서 드는 상상이다. 여름이라서. 더위에 지쳐서 책 읽는 속도는 느리고 더디다. 여름의 특권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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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1-07-14 18:40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저도 표지색에 끌려서 헤밍웨이 샀어요^~

자목련 2021-07-16 16:42   좋아요 1 | URL
우리는 이렇게 표지색에 끌리는 독자^^

mini74 2021-07-14 18:46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진짜 표지 예뻐요. 전 쇼팽 샀어요 ㅎㅎ 민트와 그린의 바람 ㅎㅎ 자목련님이 고르신 책들과 여름의 바람색이 닮았어요 *^^*
조금 느리고 더딘 여름의 특권이란 말 참 좋아요 *^^*

자목련 2021-07-16 16:42   좋아요 1 | URL
느리고 더딘데, 너무 속도가 안 나요. ㅎㅎ

공쟝쟝 2021-07-14 19:06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어머 사진 환해라~

자목련 2021-07-16 16:41   좋아요 1 | URL
더위에 시원한 사잔이 바람처럼 다가가면 좋겠어요!

새파랑 2021-07-14 19:22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책 표지들이 모두 청량함이 가득 느껴지네요. 저 ˝디 에센셜‘ 시리즈 소장하고 싶네요 ㅜㅜ 알라딘도 판매 했으면 좋겠네요 😔

자목련 2021-07-16 16:41   좋아요 2 | URL
네, 표지가 넘 예뻐서 소장욕구가 마구 생겨요~

미미 2021-07-14 19:2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혹시 페넬로페님의 AI친구가 자목련님?ㅋㅋㅋㅋ(추리 막 던지는 중)😊

coolcat329 2021-07-14 19:43   좋아요 6 | URL
자목련님도 이 책을 사셨더라구요. 우연인가? 아님 이 분이 친구신가? 저도 추리를 ㅋㅋ

붕붕툐툐 2021-07-14 21:08   좋아요 3 | URL
명탐정 미미님!!

미미 2021-07-14 21:12   좋아요 4 | URL
흠..페넬로페님이 재야의 고수라고 언급하셨던 부분이 마음에 걸립니다ㅋㅋㅋ🤔🧐 자목련님은 활동중이시니..쩝ㅋ

페넬로페 2021-07-14 22:18   좋아요 3 | URL
미미님의 첫번째 예상은 틀린걸로~~저는 다른 지인과는 서로 선물한 책을 바꿔보기도 해요^^

미미 2021-07-14 22:25   좋아요 3 | URL
에구궁ㅋㅋㅋㅋ두손두발

자목련 2021-07-16 16:40   좋아요 3 | URL
아, 제가 그 친구였어야 하는데, ㅎㅎ

페넬로페 2021-07-16 16:49   좋아요 2 | URL
자목련님께서는 이미 제 친구이십니다 ㅎㅎ

scott 2021-07-14 21:0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도 혹쉬! 자목련님이 서재방 잠복 중이신 AI친구 ㅎㅎㅎ 에메랄드빛깔 속 헤밍웨이 표지, 자목련님의 7월 독서 무더위를 잊게 만들것 같습니다 ^ㅅ^

자목련 2021-07-16 16:40   좋아요 1 | URL
ㅎㅎ 이런 댓글, 더위를 날려주네요!

붕붕툐툐 2021-07-14 21:0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 평소 흑백 모드인데 다들 예쁘다고 해서 컬러로 봤더니! 아, 진짜 너무 예쁘잖아! 제가 좋아하는 딱 그 색감이네용~ 흐엉흐엉~~

자목련 2021-07-16 16:40   좋아요 2 | URL
네, 진짜 예뻐요. 이렇게 예뻐서 자꾸 책을 들이는 ㅠ.ㅠ
 


아담한 이층집의 창문에서 한 여자가 정원을 본다. 정원에는 갖가지 나무와 꽃들이 가득하다. 말 그대로 평화롭고 향기로운 풍경이다. 오가와 이토의 『토와의 정원』의 표지가 주는 이미지다. 그 이미지와 제목이 주는 평온함 때문에 이 소설이 궁금했다. 오가와 이토의 소설에서 전해지는 따뜻한 기운을 예감했다고 할까. 동화처럼 마냥 따뜻하고 예쁜 소설을 기대했다. 어떤 면에서는 기대에 부응한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기대에 닿기까지의 여정이 순탄치 않았다.


작고 예쁜 집에 토와가 산다. 엄마와 단둘이 산다. 눈이 보이지 않는 토와에게는 엄마가 세상의 전부다. 엄마가 들려주는 이야기, 엄마 냄새, 엄마 느낌, 엄마가 전해주는 사랑으로 토와는 너무 행복하다. 정원의 나무와 꽃들의 향기를 맡으며 지낸다. 일주일에 한 번 수요일에 아빠가 전해주는 물건으로 생활하니까 큰 문제도 없다. 토와는 그를 ‘수요일 아빠’라 부른다. 진짜 아빠인지 모르지만 그렇게 믿는다. 엄마는 다른 가족에 대해선 알려주지 않았다. 적어도 엄마가 토와를 혼자 남겨두고 일을 하러 가기 전까지는.


토와는 엄마가 준 약을 먹고 깊은 잠에 빠진다. 깨어나면 엄마가 돌아왔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날들을 보낸다. 토와는 엄마와 떨어지는 건 싫지만 엄마의 말이니 들어야 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 잠에서 깨어나도 엄마는 집에 오지 않았다. 토와는 온전히 혼자 남은 것이다. 아빠가 전해주는 물건으로 생활을 이어가지만 눈이 안 보이는 토와는 곧 세상과 단절되었다.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이 지난 후에야 사람들이 토와의 집을 ‘쓰레기 집’이라고 부르는 걸 알았고 누군가의 도움으로 토와는 세상과 만난다. 치료와 재활을 통해 조금씩 회복되면서 하나씩 일상을 배운다. 엄마에 대한 이야기도 듣게 되었다. 엄마가 토와를 버렸다는 사실을 말이다.


사람들의 도움으로 집으로 돌아온 토와는 점자를 통해 책을 읽고 안내견 ‘조이’와 생활을 시작한다. 조이와 도서관에도 가고 필요한 물건을 사고 장을 보고 요리를 한다. 집에서는 어쩔 수 없이 엄마의 기억을 더듬는다. 엄마가 읽어준 이야기 속에서 행복했던 기억, 토와에게 이야기는 하나의 피난처였다. 정원과 함께. 계절의 변하는 모습, 아침이 오고 저녁이 되는 것들을 새소리와 꽃의 냄새로 느끼는 토와. 그 안에서 토와는 치유되고 있었다. 어느 순간 나는 토와와 하나가 되어 눈을 감는다. 토와의 정원을 걷는다. 식물이 자라는 감동과 그것들이 주는 기쁨을 느낀다.


발바닥에도 얼굴과 마찬가지로 눈, 코, 입, 귀가 있어서 발바닥이 직접 지구와 대화를 나누는 듯한 기분이 든다. 사랑스러운 식물들의 가지며 잎사귀에 살포시 손바닥을 대어 말로 표현되지 않는 그들의 소리를 포착한다. 그 식물이 괜찮은 상태인지 아니면 어딘가 상태가 좋지 않은지 가만히 귀 기울이고 있으면, 이윽고 그것이 또렷하게 들려온다. 나는 나 자신이 안테나가 된 기분으로 식물이 보내는 메시지를 포착한다. 그런 다음 손바닥으로 흙을 만지며 식물들과의 대화를 즐긴다. (169쪽)


엄마와 단둘만의 세계였던 토와의 세계가 확장되었다. 사람들과 교류하고 이웃도 만났다. 힘들었던 시간을 지나고 토와에게 새로운 삶이 시작된 것이다. 동화 속 잠자는 공주가 아닌 주체적으로 삶을 살아간다. 토와의 말처럼 살아 있다는 건 정말 놀랍다.


“살아 있다는 건, 굉장한 일이구나.” (278쪽)


앞을 못 보는 나일지라도 세상이 아름답다는 건 느낄 수 있다. 이 세상에는 여전히 아름다운 거들이 잔뜩 숨어 있다. 그리고 나는, 그 하나하나를 내 작은 손바닥으로 사랑해 주고 싶다. 그러려고 태어난 것이니까. 이 몸이 살아 있는 한, 밤하늘에는 나만의 별자리가 쉼 없이 생겨난다. (282~283쪽)


소설 속 토와의 모습을 그려본다. 나는 알 수 없는 그녀의 감각, 그녀가 세상을 보는 방식에 대해서 상상한다. 맨발로 정원을 거니는 토와. 그녀가 알려주는 아름다운 세상을 말이다. 우리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생각한다. 살아 있으니 누릴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생각한다. 일상을 이어가는 일이 버겁게 여겨지는 날들, 주어진 하루의 소중함을. 그리고 기대하고 소망한다. 앞으로 우리가 만들어나갈 굉장한 이야기를, 나만의 정원에서 자라날 어떤 아름다움을. 


이처럼 오가와 이토의 소설엔 치우와 회복의 시간이 있다. 유명한 다른 소설을 다 읽은 건 아니고 겨우 『마리카의 장갑』만 읽었지만 작가의 전하고 싶은 마음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알 것 같았다. 상실 이후에도 삶은 여전히 계속된다는 자명한 사실, 그리고 그 시간을 함께 견디고 회복할 수 있도록 우리를 지켜주는 건 대단한 것들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모든 것들이 주는 즐거움과 감동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어디에 가치를 두느냐,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살고 있는지 돌아보는 시간을 안겨준다. 그 하나가 바로 자연일지도 모른다. 전쟁이라는 참혹한 현실, 사랑하는 이와의 어쩔 수 없는 이별로 감당할 수 삶과 마주하는 소설 속 마리카에게 자작나무가 주는 위안처럼. 


마당 너머로는 아름다운 자작나무 숲이 펼쳐집니다. 그 너머에 치유의 땅이 있습니다. 치유의 땅은 정령들이 사는 신성한 숲입니다. 조금 더 걸어가면 작은 강이 흐르고, 강을 따라가면 호수가 나옵니다. 가진 것은 그것이 전부입니다. 하지만 그것만 있으면 살아갈 수 있습니다. 아무것도 없지만 무엇 하나 부족한 것이 없습니다. (『마리카의 장갑』 중에서)


어떤 상실과 상처는 기약할 수 없는 시간이 지나야 조금씩 회복된다. 돌이켜보면 내겐 그 회복의 시간에 가장 많은 도움을 준 건 책, 그리고 계절마다 피어나는 꽃과 나무였다. 『토와의 정원』을 읽으면서 그 시간들이 포개어졌다. 그것들이 주는 보이지 않는 힘이 고맙고 감사하다. 묵묵히 나를 견뎌준 이들에게는 말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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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06-16 19:0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정말 예쁜 이야기네요. 순백의 자작나무는 치유와 환생을 의미하기도 한다더라고요.

자목련 2021-06-17 10:33   좋아요 2 | URL
아, 정말요?
자작나무를 더 좋아할 것 같아요^^*

scott 2021-07-07 16: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이달의 당선 축!
이책 일러스트 그리신분 책 이번 신간 주문 했놨는데
기대됩니다
이번 한주 건강하게 !

새파랑 2021-07-07 16:35   좋아요 2 | URL
자목련님 축하드려요~~!!😄👍

자목련 2021-07-09 16:10   좋아요 3 | URL
스콧 님, 즐겁게 만나시길 바라요!
저도 축하드리며 신나는 주말 보내시고요^^

자목련 2021-07-09 16:11   좋아요 2 | URL
새파랑 님, 저도 축하드리립니다.
시원한 주말 보내세요^^

서니데이 2021-07-07 16: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자목련 2021-07-09 16:09   좋아요 2 | URL
^^*

그레이스 2021-07-07 1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자목련님~~

자목련 2021-07-09 16:09   좋아요 1 | URL
그레이스 님도 축하드려요!
건강하고 시원한 주말 보내세요^^

초딩 2021-07-07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자목련 2021-07-09 16:08   좋아요 1 | UR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