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에는 H를 만났다. 내가 좋아하고 아끼는 그녀는 먼 도시에 살고 있다. 먼 도시에서 내가 있는 곳까지 나를 보러 왔다. 우리의 만남은 2016년 가을에 만난 이후로 처음이었다. 그 사이 서로에게 중요한 일들이 있었다. 삶을 이동하는 일, 삶을 다시 정비하는 일이라고 하면 맞을까. 그건 회복하는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된 시간은 너무도 짧았다. 함께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이곳에서 유명하다는 빵집에 들러 한 바구니의 빵을 사 왔다. 밤이라 그랬는지 사람도 없었고 빵도 없었다. 늦은 밤에는 술을 마셨다. 아니, 술은 나 혼자 마셨다. H가 술과 커피에 대해 민감한 편이라는 걸 이제야 알았다. 그러니까 그동안은 제대로 몰랐다. 잘 모른다는 걸 알았다는 게 좋았다. 그리고 이제 그 부분에 대해서 조금 알게 되었으니 더 좋았다. 내가 맥주를 마시는 동안 H는 사이다를 마셨다.


우리의 시간에는 말이 넘쳤다. 말이 둥둥 떠다니고 거실 바닥과 식탁 위에 말이 나뒹구는 것 같았다. 아름다운 상상이었다. 그만큼 우리의 말들은 다양했다. 하고 싶었던 말, 주저했던 말, 고민으로 뭉쳐진 말, 모든 말들이 다 그곳에 있었다. 그 말들이 다 우리의 것이었다. 우리의 것이 될 수 있다는 게 뿌듯했다. 자주 만나지 못하기에 그랬을까. 아니, 나의 말을 모두 들어주는 태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의 말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그런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투명하고 맑은 하늘과 해가 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좋다”는 말을 자주 하며 사진을 찍는 H가 편안해 보여서 다행이었다. 그에 비해 나는 감탄은 양이 적다는 걸 발견했다. 나이가 드는 탓일까. 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아픈 몸에 대해, 늙은 몸에 대해 두려움이 아닌 그냥 받아들일 수 있는 것들에 대해. 그런 대화는 책으로 이어졌다. H가 영화로 보고 나는 책으로 읽은 『밤에 우리 영혼은』에 대해 서로의 느낌을 말하면서 같은 작가의 『축복』도 좋았다고 추천했고 조남주의 소설집 『우리가 쓴 것』속 여성 서사와 황정은 소설에 대해 환호하면서 『백의 그림자』 에 대한 감상을 나눴다.


우리로 채워진 시간은 지나갔고 각자의 시간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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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6-22 11:27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밤에 우리 영혼은> 이 책 정말 좋더라구요. 마음이 따뜻해지는 책. 영화도 있군요~! 친구와 책 이야기하면 정말 즐거울거 같아요^^

자목련 2021-06-23 09:22   좋아요 2 | URL
그쵸? 참 좋아요. 저도 영화는 몰랐어요. 책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이가 있다는 건 참 행복하죠.
이곳 알라딘의 서재도 그렇고요^^

잠자냥 2021-06-22 14:17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전 요즘 자목련 님이 술 이야기 많이 하셔서(심지어 좋아하신다고 해서) 매우 놀라고 있는 중입니다. ㅎㅎ 글을 하도 정갈하게 쓰셔서 술은 입에도 안 대실 줄 알았던 1人.... ㅋ

자목련 2021-06-23 09:21   좋아요 3 | URL
술을 좋아하는 편이지요, ㅎ 이제는 저질 체력이라 술을 많이 마시지는 못하고요.
잠자냥 님의 짬뽕과(맞나 모르겠네요) 맥주 사진을 넋놓고 바라보았지요. ㅎㅎ

coolcat329 2021-06-22 14:33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하하 어쩜! 저도 이 글 읽고 이 분이 술을 드시네? 그것도 친구는 사이다마시는데 혼술을...참 의외라고 생각했습니다ㅋㅋㅋ
맞아요. 글이 참 차분 정갈하셔서...드셔도 다소곳이 사케를 드실거같은데 맥주를 ㅎㅎ
의외의 모습 발견했을 때 더 호감도가 상승되시는거 아시죠? 😅

자목련 2021-06-23 09:19   좋아요 3 | URL
음, 제가 한때는 술을 잘(?) 마시기도 했어요. ㅎㅎ
더 다양한 모습을 보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붕붕툐툐 2021-06-22 21:4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부러워요~ 전 이런 친구가 없는 거 같아요. 대화하고 나면 왠지 공허한 느낌.. 이건 제 문제겠죵?^^;;

자목련 2021-06-23 09:18   좋아요 2 | URL
너무 많을 말을 하면 공허하지요, 저도 그래요. 근데 그 순간에 충실하려고요, ㅎ
H는 동생이지만 친구처럼 지내는 사이가 되었어요.
친구가 많지는 않고 소수의 소주한 인연을 오래 지속하고 싶어요.

하늘바람 2021-06-24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는 내내 책속 한 부분 같았어요

자목련 2021-06-25 18:26   좋아요 0 | URL
ㅎ 감사해요. 하늘바람 님, 시원하고 환한 주말 보내세요^^
 


고양이보다는 강아지를 좋아한다고 여겼다. 그게 맞다. 어린 시절 부뚜막의 고양이를 미워한 적이 있으니까. 나는 시골에서 태어났고 내가 자란 집에는 일정 시간 동안 부뚜막이 있었다. 내가 예뻐하는 강아지는 올라가지 못하는 따뜻한 부뚜막에 고양이는 자리를 잡고 있었다. 고양이와 강아지가 먹는 밥의 내용도 달랐다. 고양이가 좀 더 고급(?)스러웠다고 할까. 시골에는 쥐가 많았기에 어른들은 고양이가 하는 일이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그래서 더 잘 먹여야 한다고. 정작 내 기억에는 고양이가 쥐를 잡는 광경을 본 적이 없다.


고양이에 대해 조금 더 관심을 갖게 된 건 아파트의 길고양이와 오빠네 집으로 들어온 고양이들 때문이다. 아파트 주변에는 고양이가 많다. 캣맘도 있는 걸로 안다. 그분들이 고양이를 위해 지어준 집도 있다. 그래도 사랑받지 못하고 상처가 가득한 모습으로 주차장을 배회하는 고양이를 자주 볼 수 있었다.


오빠네 집고양이들은 변화가 생겼다. 지난 5월 말에 오빠네 집에서 본 고양이는 우리가 아는 그 고양이가 아니었다. 항상 문 입구에서 우리를 반기거나 멀찍이 떨어져 우리를 관찰하던 고양이가 없었다. 그리고 다른 고양이가 우리 주변을 서성였다. 신발을 벗는 내 곁에서 호시탐탐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문이 열리는 순간 집 안으로 들어오려고 한 것이다. 어찌 된 일인가 물으니 이웃집 고양이란다. 우리 고양이, 그러니까 오빠가 ‘비실이’라고 이름을 지어준 고양이는 어디론가 사라진 것이다. 이웃집 고양이는 아주머니를 따라 우리 집에 자주 왔고 어느 순간 혼자서 우리 집에 와서 지내고 있다고 했다.


‘비실이’는 어디로 간 걸까? 이름처럼 몸이 아파서 ‘비실이’라고 했는데 잘 지내고 있는 걸까? 문득 ‘비실이’가 생각난 건 이 고양이 때문이다. 사진 속 고양이를 찾는 이에게 기쁨이 있을 것이다. 눈 밝은 이들만 고양이를 발견할지도 모른다. 처음엔 나도 고양이를 보지 못했으니까. 편안한 쉼, 그 자체다. 눈부신 햇살과 배롱나무 그늘과 고양이라니.




나는 아무래도 고양이를 좋아하는 것 같다. 집사가 될 자신은 없으니 이렇게 멀리서 고양이를 흠모한다. 그나저나 저 우아한 고양이의 이름은 뭘까? 오늘부터 나는 ‘우아한 준’(june)라고 부르고 싶다. 언제 다시 볼지 알 수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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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1-06-17 11: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아한 준, 예쁘네요. ㅎㅎ

자목련 2021-06-18 16:32   좋아요 3 | URL
냥이 집사님이 예쁘다 하시니 넘 기쁩니다. ㅎ

coolcat329 2021-06-17 11:5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 나무가 베롱나무군요. 저 찾은거 같아요. ㅋ
보도블럭 옆 나무 가장자리 잔디 밑 아닌가요? ㅎㅎ
아휴~따뜻한 햇살이 들어오는 적당한 나무그늘 밑 명당을 차지했네요.

자목련 2021-06-18 16:33   좋아요 2 | URL
뭔가 잘 아는 냥이구나 싶었어요. ㅎ

새파랑 2021-06-17 16:5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도저히 안보이네요 ㅜㅜ 스마트폰을 바꿔야할거 같아요 ㅜㅜ

잠자냥 2021-06-17 21:52   좋아요 3 | URL
책 일주일에 일곱권 넘게 읽는 사람 눈엔 안 보인대요! ㅋㅋㅋ

scott 2021-06-17 22:07   좋아요 3 | URL
잠자냥님 말씀에 동감! 합니다
이정도 크기 사진이 안보이시다니
활자에 눈을 넘 ㅎ
새파랑님 휴식이 필요 합니다.
༼ ◔ ͜ʖ ◔ ༽

새파랑 2021-06-17 22:15   좋아요 2 | URL
전 아직 2권째 읽고있는데 그럼 보여야 하는건데....제가 글자는 읽는데 사진은 좀 약한거 같아요ㅡㅡ 뭔가 하얀게 있는거 같긴 한데 ㅎㅎ

자목련 2021-06-18 16:34   좋아요 3 | URL
사진의 오른쪽에서 찾아보시면...
아마 지금쯤은 찾으셨겠지요.
새파팡 님, 책을 너무 많이 보시는 게 맞는 듯합니다. ㅎㅎ

mini74 2021-06-17 21:5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전 매직아이를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어요. 윌리를 찾아서도 영 소질이 없는데 ㅠㅠ 역시 사진 속 고양이 못 찾고 해메는 중. 우아한 준~ 어디있니. 야용야옹~~

자목련 2021-06-18 16:35   좋아요 4 | URL
못찾아도 괜찮습니다. ㅎ 저도 매직아이는 어려워요. ㅠ.ㅠ

scott 2021-06-17 22:0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찾았어요
빛에 반사 되어도
냥이 찾음요 ㅎㅎ

ค^•ﻌ•^ค

자목련 2021-06-18 16:35   좋아요 3 | URL
처음엔 저도 바로 알아보지 못했어요. ㅎ

붕붕툐툐 2021-06-18 17: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바로 딱 보이는데, 뭐죠? 이거 운명인가요? 저도 고양이 좋아해요~ 키울 엄두는 1도 안나지만... 좋아해요^^

자목련 2021-06-21 16:27   좋아요 1 | URL
집사가 된다는 건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냥이, 그냥 이렇게 바라만봐도 좋은 존재^^
 


매일 붉은 빛깔의 토마토를 두 알씩 먹고 있다. 두 개 아닌 두 알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토마토의 탄탄함이 무척 건강해 보인다. 토마토가 가득한 상자를 보고 있노라면 정말 기분이 좋아진다. 기분이 왜 좋아지는지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렇다. 아마도 토마토를 사랑하는 것 같다. 이러다 모든 것들과 사랑에 빠지는 건 아닐까. 뭐, 그래도 괜찮지 않을 이유는 없다. 보기만 해도 탐스럽지 않은가. 생명력 강한 기운이 느껴진다. 결국엔 내가 다 먹어버릴지 모르는 토마토.





사랑한다는 건 좋은 거다. 상대가 나를 사랑하느냐는 차지하고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 중요하다. 내가 사랑하는 건 내가 인정하는 것이고 내 감정에 솔직하고 충실하다는 것이니까. 그래서 무얼 사랑하느냐고? 지금은 이런 소설을 사랑한다. 아니, 사랑할 것이다. 그러니까 6월의 소설이 되겠다.


최은미의 단편집 『눈으로 만든 사람』과 윌리엄 트레버의 『펠리시아의 여정』 두 권이다. 최은미의 단편은 올 초부터 기다렸다. 이 단편집에는 이미 읽은 단편과 읽지 않은 단편으로 아마도 다시 읽는 즐거움을 안겨줄 것이다. 최은미 소설이 변화하는 어느 시점을 느낄 것 같다고 할까. 윌리엄 트레버의 소설은 아직 제대로 읽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의 소설을 애정 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애정 하는 중이라고 해야 할까. 리스트에 있으니 그렇다고 할 수 있겠다.


매일 먹는 토마토처럼 6월에는 소설을 더 많이 읽고 싶다. 조금씩 천천히 더 많은 소설을 향해 나가고 싶다. 정작 지금 읽고 있는 소설은 4월의 소설이라 할 수 있는 마쓰이에 마사시의 『우리는 모두 집으로 돌아간다』다. 두 달이나 늦은 독서다. 하지만 괜찮다. 늦더라도 읽고 있으니까.


늦더라도 뭔가를 한다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요즘 특히 그러하다. 하지 않는 것보다는 훨씬 더 의미가 있으니까. 그러다 의미가 있어야 하나, 그런 회의감도 생긴다. 의미가 없더라도 괜찮다. 무엇을 하든 하지 않든 괜찮다. 여기 내가 있다는 게 지금은 제일 소중하다. 그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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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1-06-07 10:3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너무 좋아하는 두 작가예요. 아꼈다 주문하려 합니다.

자목련 2021-06-07 10:42   좋아요 4 | URL
아꼈다 주문하는 마음, 더욱 큰 사랑이 담겼구나 생각합니다.
아끼는 마음은 사랑이니까요^^*

새파랑 2021-06-07 11:0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뭔가를 한다는게 정말 중요한거 같아요. 일단 시작해야 뭐라도 하니까. 그것보다 더 중요한건 무얼 사랑한다는 거 같아요^^ 최은미 단편집 꼭 읽어봐야 겠어요~!!

자목련 2021-06-08 08:49   좋아요 1 | URL
그게 무엇이든 사랑하는 건 좋은 거죠!
우리는 지금 책을 사랑하고 있고요. ㅎ
최은미 단편집 개인적으로 추천합니다^^

vita 2021-06-07 11:3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저도 어제 주문한 책 2권인데 반가운 마음에 ^^ 토마토 매일 먹어요 토마토 소스 만들 때 제일 많이 쓰지만 알맹이로 먹을 때도 기분 좋아요. 살아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어서 :)

자목련 2021-06-08 08:48   좋아요 0 | URL
수연 님은 요리를 위한 소스를 만드시는군요. 저는 그냥 먹기만 합니다.ㅎ
두 권의 소설, 6월의 어느 날 같은 부분을 펼칠지도 모르겠네요.

mini74 2021-06-07 13:2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천천히 음미하며 즐거운 독서 하시길 바라며*^^* 토마토가 불타오르고 있군요. 토마토엔 설탕아닌가요 ㅎ

자목련 2021-06-08 08:47   좋아요 0 | URL
토마토엔 설탕! 맞습니다. 한데 언제부턴가 그냥 토마토만 먹는다는. 나이가 들었나 봐요. ㅎㅎ

희선 2021-06-08 0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신이 좋아하는 게 있다는 건 좋은 거겠지요 토마토 지금 한창일 때던가요 토마토는 몸에 좋지요 자목련 님 소설도 즐겁게 만나세요


희선

자목련 2021-06-08 08:45   좋아요 1 | URL
아마도 하우스 토마토이겠지만 지금이 한창인 것 같아요. 희선 님, 즐겁고 행복한 6월 보내세요^^
 

조성진의 피아노 연주를 듣는다. 좋아하는 선배 언니에게 선물 받은 것이다. 나는 음악에 대해 잘 모른다. 클래식을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모르고 딱히 좋아하는 음악가의 리스트가 있지도 않다. 그래도 누군가 정성을 다해 곡을 연주하는 소리를 듣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 알고 있다. 송은혜의 에세이 『음악의 언어』를 읽으면서 내게 음악을 선물하는 언니가 더욱 고맙게 느껴졌다. 그리고 이 책을 언니가 읽으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저자에 대해 아는 게 없다. ‘음악’과 ‘언어’ 두 단어의 조합이 나를 이끌었다. 음악을 잘 몰라도 어린 시절 겨우 두 달 정도 피아노를 배운 게 전부여도 괜찮았다. 어른이 된 후에 여전히 피아노를 갈망하지만 실천은 못하고 있다.


음악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묻고 또 물으며 오랜 세월을 보내고 조금씩 음악을 나의 삶으로 품을 수 있게 되었을 때, 그 의미는 나 자신이 주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나의 좌절과 슬픔이 배어 있는 음악, 우리의 아픔을 기록한 음악은 온실에서 나와 현실을 마주한 진짜 음악이다. 서로를 음악으로 위로하고 품어줄 때 비로소 음악은 우리 안에서 살아 움직인다. (12쪽)


음악을 거창하고 대단한 게 아니라 우리 삶의 일부이며 삶을 위로하는 존재라는 걸 알려주는 게 좋았다. 그러니까 이 책은 그런 책이었다. 음악을 전공하는 이들에게는 다른 의미로 접근할 수 있겠지만 나는 동네 음악선생이라 불리는 저자가 차근차근 다정하게 들려주는 음악의 언어, 음악의 기운, 음악의 숨결, 음악의 소리가 좋았다. 음악을 선택하고 그것을 향해 나가는 삶이 얼마나 처절하고 고단하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음악 안에서 거하며 음악과 하나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음악이 주는 기쁨과 감동을 전하는 일의 즐거움에 대해서는 알 것도 같다. 피아노를 배우고 곡을 해석하고 그것을 표현하는 일, 작곡가가 원하는 연주가 무엇인지 생각하고 고민하고 결국엔 찾아냈을 때 느꼈을 희열을 조금은 상상할 수 있었다. 무대 위에서 온전히 음악과 하나가 되어 연주를 하는 일의 외로움, 그 안에 쌓이는 고독을 알지 못하지만 말이다.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수많은 감정을 끌어안는 음악의 추상성. 말도 그림도 우리의 마음을 담아낼 수 없다고 느낄 때, 한 소절의 선율로 우리를 위로하는 음악의 힘. (56쪽)


음악이 머리에서 몸으로 내려오는 동안 우리의 삶이 음표에 스밀 것이다. (80쪽)


책에서 등장하는 수많은 작곡가와 연주가에 대해 나는 잘 모른다. 챕터마다, 하나의 꼭지마다 등장하는 음악가들, 그리고 그의 작품 목록을 소개하는 수고 덕분에 독자는 조금 더 음악에 빠져들 수 있다. 저자가 알려주는 연주의 방법, 혹은 작곡가의 의도를 생각하며 듣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설령 그것이 무언인지 그 의도를 파악하거나 이해할 수 없더라도 조금 다른 느낌의 연주를 듣게 된다. 연주자와 작곡가가 원하는 건 완벽한 연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때로 완벽하지 않은 연주가 더 큰 감동을 준다. 오랜 연습으로 굳어진 손마디, 목 디스크, 긴장한 모습이 연주자가 지나온 순간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음악은 어떤 의미인가 생각하게 된다. 예술의 삶이 아니라 음악이 전하는 이야기, 음악을 통해 공감하고 연대할 수 있는 세상을 생각한다. 코로나19로 우울과 절망에 빠진 마음을 달래주었던 연주를 떠올린다. 어쩌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음악으로 연결된 하나의 웅장한 공연장인지도 모른다. 음악을 하는 이들, 악기를 연주하는 이들의 삶은 나와는 다르게 흐를 것이다. 연습으로 채워진 시간, 좀 더 완벽한 연주를 위해 매달리는 그들의 일상은 뭔가 특별할 것 같다. 그러나 그들이 음악을 선택했을 뿐 삶의 흐름은 다르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술은 그만큼 어렵고 험난하겠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삶 자체도 그러하니까. 실수하고 탐색하고 발견하고 변화하는 일이 음악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는 말이다.


내가 원하는 음악, 나의 이야기가 담긴 음악을 연주하고 싶다면 계속해서 실수하면 탐색해야 한다. 전에는 경험해보지 못한 찢어질 듯한 큰 소리와 거친 소리를, 반대로 거의 들리지 않는 의미하게 스러지는 소리를 내보아야 한다. 음의 연결을 연습할 때도 소리가 완전히 겹치도록 연주하거나 극단적으로 짧은 스타카토로 끊어서 연주해보거나 공기의 울림을 이용해 두 음을 연결하는 등 표현의 스펙트럼을 넓혀봐야 한다. (101쪽)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을 알려주듯 독주가 아닌 합주, 앙상블에 대한 부분에서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는 말에 적극 공감한다. 다른 연주자와 친하면 좋은 연주가 나올 수 없다는 사실. 박자를 맞추고 빠르기를 섬세하고 조절하고 선율에 자신의 고유한 언어를 실어 전해야 하는 일, 몇 백 년 전의 예술가가 살아온 시간을 기억하고 닮으려고 애쓰는 마음. 그 마음을 내가 듣고 있다고 생각하니 연주를 듣는 자세와 태도를 바르게 고치게 된다. 나는 특정한 곳을 연주할 때 어떻게 연주해야 하는지 설명해도 알 수 없고, 음악적 용어, 기호에 대해 알려줘도 잘 모르지만 이 책을 통해 단순하게 듣기만 했던 음악이 전하는 소리, 그 고유한 언어를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자신의 일상과 음악에 대한 담담한 사유가 아름다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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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작가와 어떤 소설을 좋아하는 일을 잠깐 생각한다. 그러다 나는 ‘좋아서 좋아하는’ 말이 떠올랐고 이 포스팅의 제목으로 쓰고 싶었다. 좋아서 좋아하는 일, 좋아서 좋아하는 책, 좋아서 좋아하는 작가. 실은 내가 지금 읽고 있는 소설에 대해 말하고 싶은 거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장편소설 『클라라와 태양』을 읽고 있는데 이 소설을 읽기 전 이 소설이 어떠냐고 물어온 이가 있었다. 읽기 전이니 정확한 대답을 하지 못했고 물어온 이는 자신은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이 어렵다고 말했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은 어려웠던가. 잘 모르겠다. 나는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을 얼마나 읽었던가. 손으로 헤아려 보니 두어 권 정도밖에 읽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현재 이 작가의 소설이 어떠냐고 하면 좋다고 말할 것이다. 무엇이 좋냐고 하면 좋아서 좋아한다고 답할 것이다.


2017년 노벨 문학상 발표가 나고 바로 그의 소설을 몇 권 구매했다. 읽었냐고 물으면 아니다. 쌓아두다가 정리했고 최근에는 정리한 책 가운데 한 권을 다시 샀다. 매번 이렇다. 아무튼 『클라라와 태양』은 좋고 그 좋음이 당분간 이어질 것 같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 후 작가는 다음 소설에 대해 부담감을 느꼈을까. 더 좋은 소설, 더 나은 소설을 써야 한다고 말이다. 하긴 수상 여부와 상관없이 작가의 고민은 항상 그렇겠지 싶다.




좋아서 좋아하는 두 번째 책은 마쓰이에 마사시의 『우리는 모두 집으로 돌아간다』. 마쓰이에 마시시와의 첫 만남이 좋았기에 더욱더 좋아하는 작가가 되었다. 이 작가의 소설은 제목이 모두 참 좋다.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에 이어 차례로 읽게 되는데 살짝 고백하면 처음 소설이 제일 좋았고, 두 번째 소설은 그보다 못했다. 그래서 이 번에 소설이 더 좋을 것 같다. 좋고, 덜 좋고, 그다음은 좋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으니까. 그냥 내 짐작이다. 좋은 소설이면 좋겠다. 좋은 소설은 무엇일까. 읽고 나서 긴 여운을 남기는 소설이다. 읽고 나서 가까운 이에게 말하고 싶은 소설이다. 읽고 나서 책장에 집을 마련해두는 소설이다. 그리고 소설을 좋아하는 이에게 권해줄 수 있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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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1-04-06 17:5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제발트의 <아우스터리츠>를 세 권
이나 샀더라구요 세상에나.

좋아서 좋아합니다. 당연합니다. 좋아하
는데 딱히 이유가... 그냥 좋아합니다.

이시구로 샘의 책들은 모두 읽을 겁니다.

자목련 2021-04-07 10:19   좋아요 0 | URL
이시구로 작가의 소설들이 더 좋아질 것 같아요. 저는 아직 읽지 못한 책들이 많아요.
좋아서 좋은 하루 보내세요!!

새파랑 2021-04-06 17:5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좋아서 좋아하는‘ 멋진 말 같아요. 정말 좋아하는건 이유를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ㅎㅎ우리는 모두 집으로 돌아간다는 장바구니로^^

자목련 2021-04-07 10:19   좋아요 1 | URL
마쓰이에 마사시의 소설, 개인적으로 기대하고 있어요. 새파랑 님께도 좋은 소설이면 좋겠어요.
파랗고 선명한 봄날 이어가세요!!

coolcat329 2021-04-06 19:5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좋아서 좋다...아~~정답이네요~~

자목련 2021-04-07 10:20   좋아요 1 | URL
쿨캣 님의 좋아서 좋다란 댓글, 좋아서 좋아요^^
꽃처럼 환한 봄날 보내세요~

scott 2021-04-06 20: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쿨캣님 말씀에 동감!
좋아서 좋아 하는
이렇게 따끈 따끈한 신간들
쓰담 ,쓰담 하는 시간들
전부 소즁함 ^.^

자목련 2021-04-07 10:21   좋아요 1 | URL
전부 소중해요, 소중해서 미루고 있어요. ㅎ
우선은 이시구로 소설부터 읽는데 마쓰이에 마사시가 자꾸 궁금해요.

blanca 2021-04-07 09: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마쓰이에 마사시 <우리는 모두 집으로 돌아간다> 저도 아껴서 아직 시작 안 했어요. 좋을지 안 좋을지...<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는 정말 좋았는데 두번째 책은 다들 반응이 전작보다 못하다고 하더라고요. 자목력님은 벌써 시작하셨을지 궁금합니다.

자목련 2021-04-07 10:22   좋아요 1 | URL
마쓰이에 마사시의 신작은 읽기도 전에 좋을지로 기울고 있어요.
지금은 클라라와 태양을 읽고 있어요. 어떤 책은 그냥 봐도 좋은데, 마쓰이에 마사시의 책도 그런 것 같아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