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면을 위해서 좋아하는 커피를 줄이고 있다. 하루에 세 잔 정도 마시는 커피를 저녁에는 마시지 않는다. 그건 힘든 일이다. 그런데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 봄에는 제법 효과를 봤다. 계속 실천하지 않아서 몸이 화를 내는 걸까. 여름에는 더 많이 마신 것 같다. 열대야로 자다가 깨는 일이 익숙해서 그랬던 걸까. 최근에 귀가 아픈 이후로 종종 깬다. 화장실에 다녀와서 잠들려고 뒤척이는 시간이 너무 길다. 스마트폰을 잡지 않으려고 해도 잠이 오지 않으니 자꾸만 손이 간다. 악순환이다.

지난주에 발표된 노벨문학상 수상자는 ‘루이즈 글릭’이란 시인이다. 나는 처음 듣는 이름의 시인다. 세상에 시인은 이렇게 많구나. 번역된 시집도 없다. 좋은 시를 엮어놓은 시집에 수록된 시가 전부인 듯하다. 그러니 올해는 노벨문학상 수상작의 작품을 읽거나 구매할 일이 없을 것 같다. 발 빠르게 준비한 출판사가 빠른 시일 내 출간한다 해도 현재는 그렇다.

읽고 싶은 책은 언제나 넘쳐나니까. 기다렸던 책의 입고 소식처럼 반가운 게 또 있을까. 김이설 작가의 신간 『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이다. 이미 밀리의 서재를 통해 전자책으로 만난 이도 있다. 그래서 종이책을 더 기다렸다. 이 계절과 잘 어울리는 제목이다. 한때 필사를 했던 적이 있다. 손글씨는 아니었지만 자판으로 옮기는 것도 노력이 필요했다. 김숨의 초기 단편이었다. 현재 김숨의 소설과는 다른 결이었다. 쓰고 나니 그 단편집이 읽고 싶다. 기대하는 동화와 에세이도 있다. 『5번 레인』, 『다큐하는 마음』를 읽는 시간도 즐겁겠다.

가을이라 냉장고 여기저기 과일이 많다. 파지 사과는 가격도 저렴하고 맛도 좋다. 엊그제 방송을 보니 우리가 선호하는 빨간 사과는 인위적으로 노력해서 생산된다고 한다. 이제는 좀 더 현명한 소비를 해야겠다. 이렇게 작고 귀여운 사과도 있다. 한 입에 쏙 넣을 수 있는 디저트 사과라고 할까.






깊은 잠에 빠져들기 위해 커피를 더 줄여야 하는 걸까. 아니면 새벽에 굳이 잠들려 하지 말고 다른 무언가를 하는 게 좋을까. 처음 맞이하는 날들도 아닌데 잠들지 못하는 건 고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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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0-10-13 13: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의 새벽을 열어주는 세가지가 자목련님 페이퍼의 제목과 같습니다. 사과, 커피, 책이요. 책 대신 인터넷이 될때도 많지만 (^^), 사과와 커피는 변함이 없는, 꼭 필요한 두가지랍니다. 파지사과 애용자예요.
김이설 작가의 소설 출간 소식, 저만 반갑게 느껴지는거 아닌가 모르겠어요. 그동안 꾸준히 출간하셨을텐데 제가 그동안 우리 소설을 너무 안읽고 있었어요.

자목련 2020-10-14 10:20   좋아요 0 | URL
괜히 입꼬리가 올라갑니다. ㅎ 파지사과 애용자라니 더 반갑고요.
김이설 작가의 장편이 무척 오랜만이라 더욱 기대가 커요. 이번 기회에 함께 읽으면 더 좋겠습니다!

stella.K 2020-10-13 1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사과는 자두만한가 봅니다.
사과의 붉은 색이 인위적으로 만든 거라니 처음들어 보네요.
그럼 사과의 본래의 책은 뭐였을까 싶네요.
초록색? 아니면 노란색?
저도 나이가 드니 커피 세 잔 마시기가 부담스럽더군요.
커피는 수면과 그다지 연관이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너무 늦게만 마시지 않는다면.
저는 오히려 아침과 저녁으로만 먹고 있습니다.
잠은 갱년기라 그런지 TV 켜놓고 잘 때가 많고, TV 끄면 말똥말똥하고
자다가도 몇 번씩 깨고. 이젠 그러려니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자목련 2020-10-14 10:22   좋아요 0 | URL
맞아요, 자두만해서 한 입에 쏙 들어가요.
방송에서 과수원을 하는 분이 나와서 말씀하시는데 소비자가 붉은 사과를 선호해서 그렇다고 합니다.
약간 파란, 덜 붉은 사과가 덜 익은 게 아니라고요.
커피가 잠과 상관이 없다면 저녁에도 마시고 싶은데, 제 몸을 길들여야 할까요. ㅠ.ㅠ
 

 

그 집은 2층 양옥집이었다. 시골에서 온 나의 시선에 그 단독주택은 양옥집이 분명했다. 1층에는 상가를 두었고 2층에는 주인집과 셋방이 있었다. 그리고 주인집 거실을 지나 계단으로 오르면 옥탑방이 나온다. 천장이 낮아서 키가 큰 사람은 제대로 서 있을 수 없었다. 그 방에서 3년 하고도 3개월 정도를 살았다. 옥탑의 특성상 여름은 덥고 겨울은 추웠다. 돌이켜보면 어떻게 그런 시절을 견뎠을까 싶기도 하다. 혼자가 아니라 가능했을지도 모르겠다. 집이라고 부를 수 없는 하나의 방. 그러나 나에겐 돌아갈 유일한 곳, 집이었다.


루시아 벌린의 『웰컴 홈』을 읽으면서 나는 그 방의 형태를 그려보았다. 친구의 책상 위에는 친구가 좋아한 연예인 사진이 있었고 언제라도 바닥으로 쓰러질 것만 같았던 작은 옷장이 있었고 문 옆에는 전기밥통이 있었다. 나의 흔적이 남은 곳, 나의 눈물과 기쁨을 지켜본 공간이 여전히 존재할까. 오래전 연락이 끊긴 그 친구는 잘 살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대학시절에는 다른 친구의 집에 잠깐 머물렀다가 대학 동기와 3년 가까이 함께 살았다. 루시아 벌린의 에세이 덕분에 접혔던 날들이 펼쳐지는 기분이다.


루시아 벌린의 에세이는 이상하게 애틋하고 아프다. 비통한 슬픔으로 가득 찼다거나 고통의 순간을 극대화한 것도 아니고 있는 그대로 들려주고 담담하게 이야기하는데 내게는 그녀가 해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서 있는 것만 같다. 자신이 살아온 삶을 기록하는 일은 쉽고도 어렵다. 혼재된 기억 때문만이 아니라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과 시대의 역할도 있기 때문이다. 루시아 벌린의 어린 시절도 그랬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순수하고 천진함을 잃지 않았다. 아마도 그녀를 지킬 수 있었던 건 이런 아빠의 편지가 아니었을까.


나중에 커서 아름답고 훌륭하고 좋은 사람이 되려면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단다. 하나는 예수님의 생애와 네가 자라면서 읽게 될 많고 훌륭한 책들이야. 네 엄마도 스승이고 아빠도 스승이지. 모두 네 옆에 있으니(아빠도 조만간 네 옆에 있게 될 거야) 곤란한 상황에 처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생기면 네가 도움을 청할 수 있어. 하지만 누구보다도 가장 큰 스승은 네 마음일 거야. 마음이 가볍고 가뿐해서 노래를 부루고 싶어지면 착하게 살고 있다는 증거란다. 마음이 어둡고 창피한 느낌이 들면 무언가 잘못 살고 있다는 뜻이지. (121쪽)


사랑하는 딸에게 아빠가 쓴 편지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최고로 아름다운 당부가 있다. 내 마음은 어떤 상태일까. 가벼운 마음과 어두운 마음 그 사이에 있다면 다행일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 인생은 열린 책』이란 단편집을 통해 그녀가 세 번의 결혼과 이혼을 했고 네 명의 아이를 키우며 살았다는 걸 알았지만 소설이 아닌 에세이로 읽으니 더욱 그 삶이 얼마나 고단했을까 생각한다. 소설의 장면과 겹쳐지는 부분을 만나는 일은 마치 내가 그녀를 더 많이 알고 있다는 기분으로 신이 나기도 했다. 두 권의 책을 나란하게 두고 한 번 더 읽는다면 가만히 그녀와 포옹하는 느낌일 것 같기도 하고.


그게 전부예요. 역설적이지만 만사가 평안해요. 그다지 긴장되지 않은 생활이죠. 사실은 행복해요. 모든 일이 잘 돌아가서 행복한 건 아니고 인생의 굴곡진 곳, 공포의 안과 밖, 그곳이 어디든 갈 데까지 다 가봤기 때문에 그래요. 명백히 난 아무래도 상관없어요. 집은 이래저래 도움이 될 테고 그건 고양이에게도 마찬가지겠죠. (147쪽)


하지만 고달픈 인생을 사는 일이 그렇듯 그런 인생을 읽는 일은 따갑고 아리다. 수많은 이사를 하고 불편을 감수하는 삶이라고 간단하게 쓸 수는 없다. 그녀가 살아온 인생이 그러하듯이. 그럼에도 그녀는 어떤 순가에도 평점 심을 잃지 않는 것 같다. 순간의 감정에 최선을 다했다고 해야 맞을까. 사랑과 결혼생활, 그리고 글쓰기까지 말이다. 내게는 그렇게 보였다. 그러나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듯 나는 그녀의 인생을 모른다. 남겨진 글, 미완의 글을 읽으면서 그녀가 지나온 집들에서 그녀가 생각하고 매만지고 완성되었을 글을 생각한다. 글에 대한 그녀의 열정, 고민을 가장 가까운 이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느낄 수 있다.


아무튼 나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고, 거의 모든 페이지에 내용을 보태고 있어요. 그나마 다행인 건 지금까지 슨 글의 대부분을 나도 좋아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슬픈 일은 예전에 내 이 빌어먹을 마음이 큰 기쁨으로 가득해서 내 이야기 속 등장인물들에 대한 마음도 말랑말랑했고, 그 때문에 다음 단락에서 그들을 어떻게 그릴지, 어떤 웃기거나 아름다운 일을 앞에 두고 그들이 어떤 생각을 갖게 할지에 대해 세심히 배려하며 집필했다는 사실이에요. 그런데 지금은 내 마음 상태가 그렇질 않은데 처음부터 다시 이 소설을 이끌어가자니 그럴 수가 없어서 슬픈 거라고요. (186쪽)


많은 편지를 썼는데 그 편지를 읽다 보면 그녀가 무척 외로웠구나 싶다. 글에 대한 조언을 구하고 있지만 자신의 현재 상태에 대해 토로하고 있다. 때로 불안하고 때로 우울하고. 몇 번의 이사가 아닌 열여덟 군데의 다른 집에서 살아온 그녀가 안착하고 싶었던 공간은 어디였을까. 세세하게 기억하고 기록한 집에 대한 글은 묘한 기분을 불러오는데, 그 기록이 그녀의 굴곡진 삶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튼 우리가 1년 전 있었던 바로 그곳에 돌아와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울증이 사라졌어요. 그 모든 상황을 가만히 생각해보면 사실 우습기도 해요. 버디의 아버님은 3년 전 우리가 눈이 맞아 달아났을 때 세월 이야기를 하셨어요. 그래도 인생은 흘러간다고요. 무슨 뜻에서 하신 건진 모르겠지만 상당히 예언적인 말씀이었어요. 인생이란 그런 거라고, 세상은 돌고 도는 법이라고. (242쪽)


슬픔, 기쁨, 즐거움, 상처, 아픔, 상실... 이 모든 것들이 순환하는 게 인생이구나. 아무리 나쁜 일이라도 끝까지 나쁜 건 아니라고. 삶이란 그런 거라고. 누군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내가 지나온 방과 집을 그려본다. 그 안에서 내가 느꼈던 감정, 내가 써 내려간 삶의 편린들.


“집에 가려고, 나는 집에 가려고 글을 썼다. 내가 안전할 수 있는 곳. 나는 현실을 교정하기 위해 글을 썼다."라는 루시아 벌린. 그녀가 들려줄 더 많은 이야기를 듣지 못한다는 게 아쉽다. 어딘가 아직 발견하지 못한 그녀의 글을 찾았다는 그런 소식을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읽으면 읽을수록 진솔하고 우아한 그녀의 인생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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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가 끝나고 있다. 수요일부터 주일인 오늘까지 꽤 길다. 그래서 어느 날에는 무슨 요일인지도 모르고 지나갔다. 목요일, 그러니까 추석 당일에는 오빠네 집에 가서 가정 예배를 드렸다. 집 안에서도 마스크를 쓰고 예배를 드렸다. 짧은 시간이지만 그래야 한다는 암묵적 동의라고 할까. 작은아버지들은 오시지 않았다.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다. 예배를 드리고 올케언니가 만드신 맛있는 음식을 먹었다. 꽃게로 만든 찌개, 양념 게장과 간장 게장, 갈비찜, 김치와 반찬. 언제나 그렇듯 모두가 맛있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꽃게를 주셔서 밤에는 꽃게를 쪄 먹었다. 단맛이 아주 좋았다. 되도록 체중계는 피하는 날들이었다.

햇살이 너무 좋아서 밖에 나와 고양이와 놀았다. 논다는 건 내 시선이고 아마도 고양이가 놀아주는 것일 터. 결국엔 내 등에 타올라서 남방에 구멍을 내고 말았다. 나를 좋아한다는 신호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오빠가 ‘비실이’라고 이름을 붙인 고양이는 몸이 약한 것 같다고 했다. 자주 토한다고 하니 위가 안 좋은 걸까, 우리는 그렇게 예상했다. 고양이가 처음 어떻게 집에 왔는지 잘 모른다. 길냥이였는데 밥을 챙겨주니 어느 날에는 대식구가 되었다. 고양이가 아가 고양이를 데리고 왔고 그러다 또 시간이 흘러 어떤 고양이는 무지개다리를 건넜다고 한다. 그래서 어느 순간 우리는 모두 고양이 안부를 묻는다. 어디서 자고 어디서 노는지 잘 모르지만 우리의 고양이가 된 것이다. ‘비실이’ 말고도 2마리가 더 있다고 한다.




길냥이를 만나는 건 쉽다. 우리 아파트에도 고양이가 많다. 따뜻한 캣맘이 있는 걸로 안다. 나는 그냥 만나면 안녕!, 인사를 할 뿐이다. 예배를 위해 나왔을 때 고양이 두 마리를 만났다. 줄무늬고양이는 자리를 잡고 저렇게 앉아 있었다. 마치 사진을 찍어도 괜찮다고 포즈를 취하는 것 마냥. 그리고 다른 한 마리가 다가왔다. 노랑 고양이는 나와 친해질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점점 더 가까이 나에게 다가왔다. 하지만 내게는 시간이 없었고 사진만 찍었다.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살았으면 한다.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은 존귀하고 소중하니까. 길었던 연휴가 끝나니 어쩔 수 없이 아쉬운 마음이 커진다. 언제나 그렇듯. 이런 시간들은 짧게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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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자리는 정리할 게 많았다. 현관문을 열자 한가득의 쓰레기부터 식탁 위에 가득한 물건들. 도대체 왜 식탁의 기능을 망각하고 물건을 쌓아두는가. 침대 위에는 도착한 나를 기다리는 택배 상자. 모두 책이다. 떠나기 전에 받은 책, 내가 없는 사이 도착한 책, 도착할 날짜에 맞춰 주문한 책들. 잠깐 다녀오는 일정이 꽤 길어졌다. 거의 두 달 가까이 다른 곳에서 보냈다. 코로나 19의 여파가 가장 컸다. 아무튼 나는 돌아왔고 돌아왔다는 문자를 보냈다. 청소기를 돌리고 대충 걸레질을 하고 세탁기를 돌리고 재활용품 분리수거를 했다. 내가 없는 사이 자주 사용하는 냄비의 뚜껑이 사라졌다. 언제 사라졌는지 아는 사람이 없다. 라면을 끓이는 용도이니 남은 가족이 알 텐데. 아무도 모른단다. 아무튼 대충 정리를 끝냈다.

이곳엔 아직 여름의 흔적이 많다. 침대 이불도 얇고 가벼운 이불이다. 그런데 신기한 건 이곳은 조금 덥다는 것. 신기하다. 정말 좁은 나라인데 몇 시간 이동 거리로 기온이 다르다니. 9월 말까지는 이대로 갈 것 같기도 하다. 급하게 내려온 것도 아닌데 그곳의 정리는 조카 몫이다. 함께 지내보니 크게 걱정할 일은 없어 보인다. 목욕탕 샤워기를 바꾸는 일, 장식장을 거실로 옮기는 일, 쓰레기를 버리는 일도 모두 만족스러웠다.


 함께 지내면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 다음에 만나면 더 잘 지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한다. 조카는 식탁에서 노트북으로, 나는 컴퓨터로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각자의 일을 했다. 길면 길고 짧으면 짧은 시간을 보내고 나니 일을 마치고 늦은 귀가를 하던 목요일에는 지금쯤 집에 왔겠구나 혼자 생각했다.









이곳으로 오던 날엔 비가 왔다. 문단속을 하면서 창밖으로 내다본 배롱나무는 분홍 기운을 품고 있었다. 꽃으로 피어날까. 나에게 올해의 배롱나무는 이런 모습으로 기억될 것이다. ‘안녕, 나의 배롱나무. 잘 지내고 있어야 해’. 나의 인사를 들었을까. 너무 작아서 못 들었더라도 그 마음은 닿았을 거다. 


나를 기다린 책을 살펴보고, 읽고 있던 책을 마저 읽는다. 그 사이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 소식도 반갑고 궁금했던 책을 먼저 읽은 이웃의 글을 읽는 일도 즐겁다. 한 권의 책으로 가는 길은 다양하고, 그 길에서 만나는 풍경은 언제나 아름답다. 먼저 읽은 이가 보여준 풍경, 읽는 중인 이가 들려주는 이야기까지. 책은 그렇게 나를 누군가와 이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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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09-18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 님의 글도 반갑네요.
:)

자목련 2020-09-19 15:37   좋아요 0 | URL
다락방 님의 댓글이 더 반갑지요.
맑은 날씨처럼 신나는 주말 보내세요^^

scott 2020-09-18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과책사이를 이어주는것도 결국엔 사람이네요 자목련님빈자리를 지켜준 가족들 모습이 따뜻하네요

자목련 2020-09-19 15:38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모든 중심에는 사람이 있는 것 같아요. 이곳 알라딘도 마찬가지고요.

희선 2020-09-19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다른 데서 지내는 거 잘 못하는데, 두달이나 다른 데서 지내다 오셨군요 조카분하고 사이가 좋고 편한 사이인가 보네요 집에 오니 여러 가지가 반겨주었겠습니다 다른 데서 편하게 지내도 집이 가장 편하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이건 저만 그럴지도... 자목련 님 주말 편안하게 보내세요


희선

자목련 2020-09-19 15:39   좋아요 1 | URL
다른 곳이라고는 하지만 큰언니가 지내던 집이라 낯설지는 않아요.
종종 다녀오는데 최장 기간 지내다 온 것 같아요. 희선 님도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처음부터 다시 반복하는, 영원히 끝나지 않는 이 고행이 사람의 일생이며 인간의 역사가 아닐까. (234쪽)

인생을 사계절에 비유하곤 한다. 예전에는 유년기와 청소년을 봄으로 청년은 여름으로 중년을 가을로 분류했겠지만 100세 시대에 살고 있는 지금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이다. 그래도 노년기에 접어든 이들에게 그들의 계절은 아마도 겨울일 것이다. 도시가 아닌 시골에 살다 보니 외지에서 이곳으로 들어오는 이들을 종종 마주한다. 퇴직을 했거나 새로운 삶을 위해 그곳을 떠나 이곳으로 온 것이다. 저마다의 사연이 있겠지만 그들이 선택한 곳은 이전보다 조용하고 한적한 곳이다. 강상중의 『만년의 집』을 읽으면서 정원을 가꾸는 일에 매진하는 한 분이 떠올랐다. 어느 해 6월에 마주한 그 집은 아름다운 꽃들로 가득했다. 꽃과 나무에 얼마나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렸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저자가 소개하는 글을 통해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을 더 많이 읽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이처럼 이름은 익숙하지만 정작 그에 대해 잘 몰랐기에 이 산문집을 통해 들려주는 생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책은 마마보이라며 자신을 소개하는 글로 어머니에 대한 애정과 함께 아들을 잃은 슬픔과 고원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일상의 기록이다. 재일교포 1세대의 삶을 우리가 어떻게 가늠할 수 있을까. 일본에 사는 한국인이 느끼는 비애, 고통, 정체성의 혼란, 사회적 차별을 견디며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까 생각하니 정말 대단하구나 싶었다.

도시를 떠나 고원에서의 일상은 하루를 여는 아침이 맞이하는 풍경으로 시작한다. 마주하는 하늘과 땅, 그리고 불어오는 바람이 주는 신선한 기쁨. 물론 나는 그저 상상할 뿐이다. 작은 텃밭에 가지, 오이, 토마토를 심는 일이 단순한 과정이 아니라 땅을 고르고 씨앗을 심고 지지대를 만들어주고 보살펴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저자와 아내가 직접 경험하고서야 알게 된 것처럼 말이다. 고원에서 홀로 골프를 치며 느꼈을 완전한 고독, 계절마다 피고 지는 꽃(복수초, 동백꽃, 개나리, 진달래, 작약, 인동초)의 의미와 그것들이 전하는 행복을 느끼는 순간마다 떠오르는 어머니와 아들에 대한 그리움. 담담하게 들려주는 아들과 백합의 사연과 먹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는 어머니를 추억하는 일, 아내와 마시는 커피 한 잔, 그리고 반려묘 이야기.

우리는 지금 죽음을 준비하기 위한 계절을 맞이하려 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산’에 살고 싶어진 것도 고독이 눈에 띄게 드러나는 도회지가 아니라, 고독을 즐기는 삶을 나누고 각자의 최후를 맞이하기 위한 절묘한 거리감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238쪽)

물론 한적한 곳에서의 유유자적한 삶이 이 책의 전부는 아니다. 하루하루 고원에서 그만의 통찰력으로 시대를 읽고 해석한다. 한국과 일본의 관계, 이념의 대립, 한반도의 분위기까지 놓치지 않는다. 부드럽고 유연한 시선을 유지하면서 완고한 태도를 잃지 않는다. 그리하여 내가 잊고 있던 역사적 순간과 우리 앞에 놓인 과제를 생각하게 만든다. 정해진 끝이 있지만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생에 생에 대해서도 말이다.

인간은 하나의 수수께끼이며 그 삶의 집적인 역사 또한 하나의 수수께끼다. 이 수수께끼에 정해진 해답은 없다. 그렇다고 ‘사람이란 결국 그런 것이다’, ‘역사란 결국 그런 것이다’라며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모든 것을 상대화하지 말 것. 그리고 그 수수께끼를 해명하려는 노력을 아끼지 말 것. 거기에 인간의 존엄이 깃들어 있다. (87쪽)

좋은 글을 읽을 때에도 기쁨을 안겨주고 그것을 생각할 때에도 미소를 짓게 만든다. 강상중의 『만년의 집』도 그런 책이 아닐까 싶다. 안개 자욱한 고원에서 먼 곳을 응시하는 노년의 신사를 떠올린다. 그가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잘 하고 있다고, 괜찮아질 거라고 다정하게 손을 흔드는 것만 같은 착각, 나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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