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인칭 단수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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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글쓴이를 동일시하지 말라는 말을 기억한다. 적절한 거리가 필요하다. 그것이 소설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래도 종종 나는 그 소설의 주인공이 소설가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직접 경험한 일을 시점을 달리해서 쓰기도 하고 주변의 일을 변주해서 소설을 쓰기도 하니까. 허구의 이야기를 구상하고 쓰는 동안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자신의 감정이 들어갈 수 있다고 믿는다. 작가는 절대 그렇게 쓰지 않으려고 하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렇다는 말이다. 하루키의 단편집 『일인칭 단수』를 읽으면서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최근에 에세이 『고양이를 버리다』를 읽은 영향일지도 모른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 기억이라는 게 항상 정확한 건 아니니까.


내게 하루키는 뭐랄까. 한때 대단한 존재였다.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모호하게 구분하는 능력, 그러니까 어떤 소설은 이게 진짜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어딘가에서는 일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버릴 수 없게 만들었다. 하지만 낯선 여자와의 관계, 음악, 재즈, 술, 이러한 이야기는 살짝 식상하다. 일흔의 나이에 끊임없이 소설을 발표하는 그가 대단하다는 걸 인정하는 것과는 별개로. 같은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이야기를 들려주는 「돌베개에」도 여지없이 비슷하게 전개된다. 이십 대 중반의 여인과 하룻밤을 보내면서 그녀가 쓴 단카집을 받아보고 그것을 담아두는 마음에 대해.


그래도 만약 행운이 따라준다면 말이지만, 때로는 약간의 말語이 우리 곁에 남는다. 그것들은 밤이 이슥할 때 언덕 위로 올라가서, 몸에 꼭 들어맞게 판 작은 구덩이에 숨어들어, 기척을 죽이고, 세차게 휘몰아치는 시간의 바람이 무사히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이윽고 동이 트고 거센 바람이 잦아들면, 살아남은 말들은 땅 위로 남몰래 얼굴을 내민다.(「돌베개에」, 24쪽)


그저 스쳐 지나가는 한 번의 만남이라는 걸 알면서도 우리는 그 만남을 거부할 수 없다. 아니, 한 번이라서 더욱 소중하게 여기는지도 모른다. 그런 느낌은 같은 피아노 학원에 다녔던 한 여자아이에 대한 기억을 다룬 「크림」으로 이어진다. 피아노를 잘 쳤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 여자아이에게 연주회 초대장을 받은 ‘나’는 그곳을 찾아간다. 많은 이들을 초대했을 거라 여겼지만 도착한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여자아이의 장난에 놀아난 것 같았다. 돌아오는 길에 잠시 쉬려고 들른 공원에서 노인을 만났고 그가 들려주는 말들이 특별하게 남는다. 마치 ‘나’에게 일어난 일들을 아는 것처럼.


우리 인생에는 가끔 그런 일이 일어나. 설명이 안 되고 이치에도 맞지 않는, 그렇지만 마음만은 지독히 흐트러지는 사건이. 그런 때는 아무 생각 말고, 고민도 하지 말고, 그저 눈을 감고 지나가게 두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커다란 파도 밑을 빠져나갈 때처럼. (「크림」, 48~49쪽)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는 게 인생이라는 걸 안다. 왜 나에게 그런 일이 생기는지 알 수 없는. 그래도 받아들이고 살아야만 하는 게 인생이라는 사실이다. 『고양이를 버리다』에서 아버지와의 추억을 떠올리는 장면에서 영화를 본 것과 야구 경기를 본 것에 대해 읽었기에 「야쿠르트 스왈로스 시집」은 친근하게 다가온다. 야구장에서 보낸 시간, 요구르트 스왈로스를 응원했던 날들. 그리고 현재를 살아가는 ‘나’에 대해서. 기발하고 기이한 상상의 서사보다는 이런 문장을 쓸 수 있는 하루키가 대단하다. 아마도 이런 게 작가의 힘일 것이다. 많은 것들을 함축한 ‘어떻게 잘 지내는가’라는 질문.


인생은 이기는 때보다 지는 때가 더 많다. 그리고 인생의 진정한 지혜는 ‘어떻게 상대를 이기는가’가 아니라 오히려 ‘어떻게 잘 지는가’하는 데서 나온다. (「야쿠르트 스왈로스 시집」, 131쪽)


8개의 단편 속 일정 부분은 하루키의 경험과 기억이 아닐까.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며 엇갈렸던 인연을 떠올리며 그들과의 시간을 복기하듯 소설을 썼을지도 모를 일 아닌가. 표제작 「일인칭 단수」는 대단한 성공은 아니더도 괜찮은 삶을 유지하는 나의 일상을 들려준다. 한 번씩 좋은 슈트를 입고 술집에 들어가 술을 주문하고 소설을 읽는 즐거움. 그리고 느닷없이 직면하는 상황에 당황하는 ‘나’. 소설을 읽으며 그런 상황와 만나면 나는 어떻게 행동할까, 잠시 마음이 주춤한다. 잃어버린 기억과 아무런 의미 없이 지나간 일들이 모두 나의 선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지금까지 내 인생에는 - 아마 대개의 인생이 그러하듯이 - 중요한 분기점이 몇 곳 있었다. 오른쪽이나 왼쪽, 어느 쪽으로든 갈 수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오른쪽을 선택하거나 왼쪽을 선택했다(한쪽을 택하는 명백한 이유가 존재한 적도 있지만, 그런 게 전혀 보이지 않았던 경우가 오히려 많았는지도 모른다. 또한 항상 스스로 선택해 온 것도 아니다. 저쪽에서 나를 선택한 적도 몇 번 있었다). 그렇게 나는 지금 여기 있다. 여기 이렇게, 일인칭 단수의 나로서 실재한다. 만약 한 번이라도 다른 방향을 선택했더라면 지금의 나는 아마 여기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거울에 비친 사람은 대체 누구일까? (「일인칭 단수」, 223~224쪽)


누구나 자신의 선택을 만족하거나 후회한다. 하지만 그 모든 선택의 결과로 지금의 내가 존재한다는 걸 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어쩌면 떠올리기조차 싫은 과거를 딛고 살아가는 게 인생은 아닐까. 하루키는 그걸 아는 작가구나, 그런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해서 이 소설집이 만족스럽다는 건 아니다. 나의 시점에서는 하루키의 소설에 대한 보편적 기대감을 생각하면 아쉽고 실망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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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0-12-24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미세먼지 최악이지만,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
자목련님 거실에 트리 한그루 놓고 가여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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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하고 행복한 메리 크리스마스 ^.~


자목련 2020-12-27 17:16   좋아요 1 | URL
이런 다정하고 귀한 인사, 감사합니다.
건강하고 따뜻한 오후 보내세요^^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 지나온 집들에 관한 기록
하재영 지음 / 라이프앤페이지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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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집은 공간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123쪽)


책상 하나와 침대만 있으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나의 공간에서 그거면 족하다고 여겼다. 방이자 거실이었던 지난 집을 떠올리면 지금 이 공간에 대해서는 불평을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하지만 곧 마음은 바뀌었다. 내 공간에 책장은 반드시 있어야만 했다. 책장을 들이고 나니 흡족했다. 진짜 내 방, 내 공간이 생겼다고 느꼈다. 책상과 책장, 정리는 엉망이지만 방 안에 들어오면 편안해진다. 집을 떠올리면 춥고 어둡던 이미지 대신 따뜻하고 환한 빛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하재영의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는 그런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러니까 집의 이야기, 정확하게 말하자면 공간에 대한 이야기다. 나의 공간, 내가 소유할 수 있는 공간에 대해서 말한다. 공간의 주인이라고 하면 맞을까. 어린 시절 형제가 많았던 내가 가장 부러웠던 건 내 방이 있는 친구와 언니의 방이었다. 그때는 방의 주인이 되면 그 공간을 책임지고 관리해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다. 어떤 공간이든 관리와 책임이 따른다. 그건 삶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대구시 중구 북성로의 옛집을 소개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3대가 함께 살아온 시절을 시작으로 집에 대한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집의 사회적 의미와 공간적 의미에 대해서 말이다. 집이 바뀌면서 달라지는 삶의 형태, 이동하는 삶의 궤적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부족함이 없이 보냈던 유년 시절, 아버지의 사업 부도로 인해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 대구를 떠나 새로운 삶을 원했던 서울, 혼자만의 공간을 위해 꾸미고 수리하던 시간을 지나 동반자를 만나 함께 공간을 채우는 이야기까지.


집이라는 소재를 통해 지나온 공간을 채운 삶을 말한다. 나와는 다른 과정을 견디고 겪어온 삶이지만 이상하게 모두 그 집을 통과한 기분이 든다. 그건 아마도 다른 공간에서 내가 그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늦은 시각 퇴근할 때마다 빠른 걸음으로 골목을 지나던 기억, 하루가 다르게 높게 오르는 아파트 공사를 보면서 허탈했던 기억, 편안하고 안락한 공간을 원했던 기억들이 겹쳐졌다. 내 몸 하나 누울 곳이 없다는 생각은 나란 존재는 무엇인가,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인가, 자괴감에 빠지게 만들었던 시간들. 나뿐이 아닐 것이다.


공간을 소유하는 것은 자리를 점유하는 일이었다. ‘나는 누구인가?’ 하는 물음만큼이나 ‘나의 자리는 어디인가?’하는 물음이 나에게 중요했다. 집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집에서의 내 자리’를 인식하는 일이었다. 사회도 물리적으로는 하나이 거대한 장소이므로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나의 위치도 자리의 문제였다. 이것은 하나의 화두가 되었다. 넓게는 이 세상에서, 좁게는 이 집에서 나의 자리는 어디인가? (130쪽)


공간에 대한 작가의 생각과 질문은 고스란히 나에게 돌아왔다. 가족 구성원에게 집은 어떤 의미일까. 각자의 방이 아닌 거실, 부엌, 화장실, 베란다에 대해서도 자신의 공간이라고 여길까. 저자의 경험처럼 나머지 공간은 집안일을 하는 엄마의 공간이라고 여기는 건 아닐까. 엄마에게는 정작 아무 공간도 없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공간의 이동은 곧 삶의 이동이다. 그래서 원하는 공간에서는 삶의 만족도가 높고 반대의 경우에는 그곳을 빨리 벗어나려 애쓴다. 공간을 누구와 보냈느냐에 따라서도 마찬가지다. 힘든 시절이었지만 소중한 이와의 기억으로 채워진 공간이라면 특별한 장소가 된다. 당연한 말이지만 공간을 점유하고 삶을 이어갈 때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하재영의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속 공간에 대한 사유는 감동을 안겨준다.


장소를 선택하는 것은 삶의 배경을 선택하는 일이다. 삶의 배경은 사회적으로든 개인적으로든 한 사람이 만들어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중략) 나는 한 존재를, 한 시절을 잃고 이 집에 왔다. 이곳에서의 시간은 슬픔과 상실을 안고 시작되었지만 그조차 이 공간에서 만들어갈 나의 일부라는 것을 안다. 이제는 여기가 내 삶의 새로운 배경이 될 것이다. (181쪽)


지극히 개인적이고 내밀한 이야기가 울림을 주는 건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한 절망, 좌절, 슬픔, 이별, 애도를 집이라는 공간이 지켜보았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나와 함께 살아가는 동안 집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생명체로 존재하는 걸 말이다. 때로는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이야기를 듣고, 감추고 싶은 표정을 바라보는 존재로 있었기에.  그러니 이 책을 읽은 이라면 자신의 공간(그곳이 어떤 형태이든, 어떤 크기이든)을 돌아보게 된다. 그건 삶을 복기하는 일이다. 어떻게 살아왔는지, 지금은 괜찮은지 자신에게 안부를 묻고 답하는 일이다.  나와 이어진 공간과 소중한 이들에게도. 


집에 대해 쓰는 것은 그 집에 다시 살아보는 일이었다. 간절히 돌아가고 싶은 곳이 있었고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곳이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돌아가고 싶거나 돌아가고 싶지 않은 것은 공간이 아니라 시절일 것이다. 과거가 되었기에 이야기로서의 자격을 부여받은 시절. 나는 집에 대해 쓰려 했으나 시절에 대해 썼다. 내가 뭔가를 알게 되는 때는 그것을 잃어버렸을 때이다. 현재의 집이 가진 의미를 깨닫는 것도 이곳을 영원히 상실한 다음일 것이다. 아직 이 집은 한 시절이 되지 않았다. (1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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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1-09 2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이책 살까 말까 망설였는데
장바구니 속으로 ~@@
주말 따스하고 행복하게 보내세요.^0^

자목련 2021-01-11 09:57   좋아요 1 | URL
앗, 감사합니다.
새로운 한 주 활기차고 따뜻하게 시작하세요^^*

서니데이 2021-01-09 2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축하드립니다.
따뜻한 주말 보내세요.^^

자목련 2021-01-11 09:57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 님, 감사해요. 포근한 월요일 보내세요^^
 
아무튼, 여름 - 내가 그리워한 건 여름이 아니라 여름의 나였다 아무튼 시리즈 30
김신회 지음 / 제철소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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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여름을 준비하는 계절부터가 여름이다. 짧기만 한 계절을 길고 풍성하게 즐기기 위해서는 늦봄부터를 여름의 도입으로 봐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여름은 덩굴장미가 피는 순간 시작된다. 5월이 되면, 올해도 전국의 덩굴장미들이 건강히 피어 주기를 바라는 일. 그게 바로 내 여름의 시작이다. (129쪽, 덩굴장미의 일부)


여름엔 빨간 원피스, 자두, 캔맥주, 바다가 전부다. 그냥 생각나는 것들이다. 빨간 원피스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그와 함께 했던 기억도 흐릿하다. 자두는 여전히 사랑하는 과일. 캔맥주와 바다는 말할 것도 없고. 이런 맥락으로 끝도 없이 이야기를 이어나갈 수 있다. 원피스엔 샌들, 바다는 수영, 캔맥주엔 치킨. 냉면도 빠트릴 수 없다. 김신회의 『아무튼, 여름』은 제목 그대로 아무튼, 여름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다. 휴가, 여행으로 압축할 수 있는 계절, 여름이다.


어디론가 떠나야만 할 것 같은 날들, 낯선 여행지에서 우연한 만남을 기대하는 달콤함, 한여름 밤의 꿈으로 끝나더라도 즐거운 상상이 가능한 날들이 여름의 특권일 것이다. 비록 방구석에서 하루 종일 영화를 보고 배달음식을 시켜 먹더라도. 여름은 왠지 신나는 계절이다. 폭염, 장마, 무더위 이런 건 잠시 접어두면 말이다. 명랑하고 유쾌한 책이다. 솔직한 마음, 있는 그대로 자신의 여름을 소환한다. 그 결과가 아름다운 추억일지, 고개를 절로 흔드는 후회일지 그건 나중으로 미뤄두고.


초당 옥수수의 맛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에서 옥수수를 좋아하지 않는 나는 그 맛을 상상할 수가 없다. 옥수수가 맛있으면 얼마나 맛있을까 싶은 거다. 아마도 내가 자두를 생각하는 것과 같겠지 싶다. 자두란 말을 들으면 입에 침이 고이고 한자리에서 열 개 이상 먹을 수 있으니까. 그래도 어린 시절 최고의 간식이었던 옥수수의 맛이 그립다. 좋아한다는 건 그런 거니까. 입꼬리가 올라가고 단숨에 기분이 맑아지는 일.


좋아하는 게 하나 생기면 세계는 그 하나보다 더 넓어진다. 그저 덜 휘청거리며 살면 다행이라고 위로하면서 지내다 불현듯 어떤 것에 마음이 가면, 그때부터 일상에 밀도가 생긴다. 납작했던 하루가 포동포동 말랑말랑 입체감을 띤다. (32~33쪽, 초당 옥수수의 일부)


여름은 성장의 계절이다. 긴 겨울을 잘 버티고 견딘 작은 씨앗들이 싹을 틔우는 봄이 지나고 여름엔 열심히 성장한다. 강렬한 햇빛과 충분한 물이 필요하다. 여름에 쑥쑥 자라는 식물을 확인하는 일은 성스럽다. 그래서 나는 이런 문장이 참 좋았다. 나의 반려 식물이 생각나서 그랬다. 어느 해 여름 나는 그 아이들을 죽일 뻔했다. 오랜 시간 집을 비워두고 돌아오니 잎은 하나도 없고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 충분히 물을 주고 겨울 살아난 식물들을 볼 때마다 미안하고 고맙다.


그렇게 제 자리에서 묵묵히 위로 향하는 식물을 볼 때마다 내 안에도 비슷한 새싹이 자라는 것 같다. 그래, 각자가 가진 속도는 다 다르지. 아끼는 누군가의 성장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바라보게 된다. (90쪽, 식물의 일부)


하루하루 조금이라고 앞을 향해 가는 발걸음, 이 한 몸 건사하기 힘든 나도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존재일 수 있다는 깨달음, 춥고 지루한 어둠 속에서도 따스한 햇살을 기다리는 마음, 그런 것들이 사람을 하루 더 살게 한다는 걸 우리 집 식물들이 내게 가르쳐주고 있다. (92쪽, 식물의 일부)


여름에 빼놓을 수 없는 건 바로 맥주다. 만 원에 네 캔인 수입 맥주, 누구라도 공감할 것이다. 어느 개그맨이 설명한 것처럼 귀가 후 샤워를 끝내고 마시는 맥주 한 캔의 맛은 여름 최고의 낙이다. 냉동실에 살짝 넣어둔 컵에 가득 맥주를 채우고 한 모금 마시는 순간의 황홀함이란. 하긴 맥주는 언제나 옳다.


겨울의 대척 점인 여름, 그 계절을 읽는 동안 겨울을 잠깐 잊는다. 자판을 두드리는 지금 살짝 손이 시리고 잔뜩 옷을 껴입었지만 나는 지금 여름을 살고 있는 듯하다. 선명했던 계절의 경계가 흐려지니 여름과 겨울만 남는 건 아닐까 두렵기도 하다. 겨울에 만난 여름은 명랑하면서도 애틋하고 안쓰럽다. 지난여름을 우리가 어떻게 보냈는지 알기에. 더위에도 마스크를 챙겨야 하는 날들, 시간이 지나 이 여름은 더욱 애틋하게 남을 것이다.


계절과 계절이 교차하는 순간, 우리의 날들은 새롭게 이어진다. 그 계절이 무슨 계절이든 즐겁게 맞이하는 시간이었으면 한다. 좋아하는 것들의 생각하고 계절을 즐기는 일상을 기다리던 시간이 그립다. 우리가 마주한 다음 여름은 어떤 풍경으로 다가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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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빌라
백수린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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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투명한 풍경화 같은 표지를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그곳이 어디든 모든 게 평온할 것 같다. 매섭게 바람이 부는 찰나의 순간을 포착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모든 게 그렇지 않은가. 순간의 장면, 순간의 기분으로 전부를 다 안다고 믿기도 하고 그로 인해 섣부른 판단으로 오해는 깊어지니까. 오해가 이해가 되는 순간은 때로 너무 멀고 때로 오지 않는다. 백수린의 단편집 『여름의 빌라』를 읽으면서 나의 오해가 단절로 이어진 관계는 없었을까 생각하니 두려워졌다. 소설집 전체가 관계나 단절을 주제로 한 건 아니지만.


표제작 「여름의 빌라」는 제목에서 기대했던 휴가지의 풍경이나 휴식과는 다른 고요한 슬픔을 안겨준다. 서로 좋았던 기억만 간직했던 ‘주아’와 ‘베레나’ 부부가 재회하면서 함께 보낸 여름의 시간들이 새로운 기억으로 남는다. 전에는 알지 못했던,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했던 상처를 마주하면서 함부로 말할 수 없는 타인의 삶을 보여준다. 누군가에게는 생의 터전인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관광지가 되는 아니러니한 일상.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아픈 역사.


긴 세월의 폭력 탓에 무너져내린 사원의 잔해 위로 거대한 뿌리를 내린 채 수백 년 동안 자라고 있다는 나무. 그 나무를 보면서 나는 결국 세계를 지속하게 하는 것은 폭력과 증오가 아니라 삶에 가까운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단다. (「여름의 빌라」 중에서)


섣부르게 짐작하고 판단하는 대신 상대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주는 일, 그 역시 이해의 시작일 것이다. 더 가까이 다가서 자세히 보고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눈 일처럼 쉬운 일도 없을 텐데. 우리는 무슨 이유로 그런 일상을 외면하는 것일까. 거대한 역사 속 진실뿐 아니라 우리의 삶에서도 마찬가지다.


잘못된 기억을 바로잡는 일, 혹은 그때 감정을 차분히 떠올려보면 서운함보다는 미안함과 아쉬움이 더 컸다는 걸 알 수 있다. 이국인 프랑스에서 이전과는 다른 삶을 꿈꿨던 ‘나’와 파리 주재원이었던 언니가 함께 보낸 시간을 그린 「시간의 궤적」에서도 그런 안타까움이 전해진다. 서로의 과거를 모르고 오직 주어진 현재만 알기에 더 빨리 친해질 수 있었다. 가까워졌기에 현재의 불안, 고민, 걱정을 보여주지만 그 모든 걸 품기엔 그들의 시간이 부족했을지도 모른다. 한 편의 영화처럼 싱그러운 추억만 남긴 채.


어쩌면 좋을지 망설이는 사이, 언니가 먼저 우산을 펼쳐 들고 빗속으로 걸어들어갔다. 우산을 써봤자 아무 소용도 없는 비였다. 언니는 이내 우산을 접더니 비를 쫄딱 맞은 채 나에게 빗속으로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그리고 우리는 폭우 속을 달렸다. 웃음을 터뜨리면서. 머지않아 거짓말같이 비가 그치고 해가 날 거라는 사실엔 관심조차 없는 사람들처럼. (시간의 궤적 중에서)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을 보냈더라도 이처럼 서로가 간직하는 감정은 다르다. 낯선 곳으로의 이사는 설레기도 하지만 적응해야 하는 불안을 떨칠 수 없다. 「고요한 사건」 에서 화자는 재개발 지역으로 이사를 왔지만 그 동네의 분위기가 낯설다. 정착이 아닌 잠깐의 거주라서 그랬을까. 혼자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차가운 겨울밤, 이런 문장을 읽노라면 마치 화자인 ‘나’와 독자인 내가 하나가 된 것 같은 묘한 기분이다. 외로움, 고독이라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창밖에는 커다란 눈송이가 떨어져내리고 있었다. 깃털처럼 부드러운 눈송이가. 역청 빛 어둠을 덧칠한 이웃집의 지붕 위에도, 옥상 위의 장독대와 비탈 아래쪽의 앙상한 나무초리 위에도, 고요하게.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그것은 정말 내가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커다란 눈송이였다. 마른 눈. 자국눈. 가랑눈. 국어사전에서 내가 발견했던 무수한 단어로도 형용하기가 충분치 않던 눈송이. 그토록 숨 막히는 광경을 나는 그전에도 그 이후에도 본 적이 없었다. (「고요한 사건」 중에서)


그런가 하면 이전의 백수린의 소설에서 만나지 못한 색다른 분위기, 응원하고 싶은 당돌함이라 말하고 싶은 단편도 실렸다. 보통의 엄마와는 다른 특별한 엄마를 바라보는 딸의 시선 「폭설」, 평범하게 두 아이를 키우며 살아가는 화자에게 찾아온 욕망을 그려낸 「아직은 집에는 가지 않을래요」, 할머니를 추억하는 방식이지만 결국엔 할머니에게 소중했을 시간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 「흑설탕 캔디」, 풋풋하고 첫사랑과 반항과 방황을 아름답게 들려주는 「아카시아 숲, 첫 입맞춤」이 그러하다.


우리의 맨 종아리를 간지럽히던 싱그러운 연초록빛의 풀들. 햇살에 투명하게 반짝이던 나비들. 유속이 느린 수면 가까이에서 천천히 날다가 순식간에 저만치 솟구치던 작은 새들. 다미의 말에 얼마만큼의 진실과 거짓이 섞여 있는지는 나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다미가 들려주는 것은 내가 상상할 수 없는 일들로 이루어진 매혹적인 서사였으니까. (「아카시아 숲, 첫 입맞춤」 중에서)


하나의 계절이 지나고 다른 계절이 왔을 때 그 계절의 선명함이 잘 보이는 것처럼 누군가의 상처, 상실, 관계도 그렇게 알게 된다. 그래서 좀 억지스럽지만 『여름의 빌라』는 여름이라는 계절보다는 오히려 차갑고 냉랭한 겨울에 더 잘 어울린다. 요동치던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지고 평온해져 어떤 기억, 어떤 감정과 조우할 수 있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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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0-12-10 2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올해의 서재의 달인과 북플마니아 축하드립니다.
따뜻하고 좋은 연말 보내시고,
항상 행복과 행운 가득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자목련 2020-12-11 10:36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 님, 감사합니다. 항상 먼저 챙겨주시고 인사를 전해주시네요.
어제보다는 조금 따뜻하네요. 건강 잘 챙기세요.
 
소설 보다 : 가을 2020 소설 보다
서장원 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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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문예의 계절이라는 걸 알고 있다. 소설을 쓰는 이들에게 이 계절은 힘겹고 고통스러울 것이다. 어떤 기대와 설렘과 동시에 절망도 맛보는 순간이 이어질 테니까. 올해 초에 나는 분명히 작가의 소설을 읽었다. 그러니까 신춘문예 당선작이었다. 이름도 기억했다. 그리고 그 소설이 좋아서 이 작가의 다른 소설도 읽고 싶다고 여겼다. 그런데 내 기억은 오래가지 않았다. 『소설 보다 : 가을 2020』을 두고 나는 서장원이란 작가의 이름을 처음 마주한 것 같았다. 그러다 소설을 읽으면서 뭔가 닮은 분위기가 생각났다. 검색을 하니 역시나 올 초에 인상 깊게 읽은 소설의 작가였다.


가족에 대해, 관계에 대해, 아니 상실에 대한 이야기라고 해야 할까. 어쩌면 그 안에서 관습처럼 행해진 차별에 대한 것일지도 모른다. 아들과 딸, 부모에게 그들은 어떻게 다른가. 물론 소설 속에서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아들이 아팠고, 우선적으로 돌봄과 정성은 아들에게 기울 수 밖에 없는 것이니까.


노영의 오빠가 3년의 투병 끝에 사망하자 노영의 어머니는 절에 발길을 끊었다. 노영의 아버지는 그전에, 병원에서 더 이상의 치료는 의미가 없다고 한 시점에 염주며 휴대용 반야심경 따위를 내다 버렸다. 두 사람은 아들이 아프기 전부터 아들만을 위해 기도했으므로 다른 자식이 남아 있다는 사실은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이 인용 게임」


노영과 함께 노영의 어머니가 입원한 병원에 가는 길, 화자인 ‘나’는 과거 노영과 사귄 사이였다. 둘은 호주에서 만났다. 이미 헤어진 연인과 친구처럼 만나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는 사이에 남은 건 무엇일까. 그러니 이 소설의 끝에 무엇이 있을까. 처음에는 조금 묘했다. 연인에 대한 이야기인가. 깊은 상처와 속내는 천천히 다가온다. 노영에게 오빠가 있었다는 것, 병에 걸려 투병을 했지만 죽었다는 사실, 아픈 오빠 때문에 부모에게 노영은 언제나 관심 밖이었다. 오빠가 아프니까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오빠가 떠난 후에도 어머니는 노영을 바라보지 않았다. 어머니의 모든 감각은 아들만 기억하고 그리워한다.


나는 눈이 오는 풍경을 보고 싶다고 했다. 호주에서는 흰 눈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노영은 그러면 언젠가 함께 눈을 보자고 내게 말했다. 그건 고백에 가까운 말이었는데, 나는 물론 받아들였다. 언젠가 함께 흰 눈이 덮인 풍경을 보자고, 어느 여름날에 우리는 그런 약속을 했었다. 「이 인용 게임」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상대가 아닌 멀리 누군가에게 전하는 듯하다. 서장원의 스타일일까. 아직은 모르겠다. 그래도 기대가 된다. 그녀의 소설을 더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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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북사랑 2020-12-07 1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느낌이 비슷해서 보니, 역시 서장원 작가의 글이었다는 말씀이시네요^^ 이런 경험, 뭔지 상상이 됩니다. 마치 저도 겪어본 것처럼. 다음에 소설 고를 때는 기억했다가 서장원 작가님을

자목련 2020-12-08 11:33   좋아요 0 | URL
네, 다음에는 이름으로도 바로 기억하려고요. ㅎ
얄랴 님, 좋은 하루 보내세요^^

blanca 2020-12-07 19: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반가우셨겠어요. 저도 신춘문예 작품 중 너무 좋아서 깜짝 놀란 작품이 있어요. 2020년 경향신문 당선작 <빨간열매>라고 정말 놀라울 정도로 좋더라고요. 자목련님도 한번 읽어보시면 좋아하시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다음에 작품집을 냈나 찾아볼 정도로 좋았어요. 아직 나이도 젊어 좋은 작가가 될 자질이 보인다 생각했어요.

자목련 2020-12-08 11:32   좋아요 0 | URL
아, 말씀하신 작품 검색해서 읽었어요. 정말 좋으네요. 이유리 작가 기억하겠습니다. 이제 며칠 후면 또 새로운 작가의 소설을 만나니 1년이라는 시간이 참 빠르다 싶어요.
블랑카 님, 따뜻하고 다정한 12월 보내세요^^

희선 2020-12-08 0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모라고 모든 자식을 다 사랑하지는 않는 듯해요 모든 자식한테 마음 쓰는 부모가 더 많다고 믿고 싶지만... 아픈 손가락에 더 마음이 간다고 하는 말이 있잖아요 그런 것도 그냥 받아들여야 하는 건지... 그게 나을지도 모르죠


희선

자목련 2020-12-08 11:30   좋아요 1 | URL
그쵸? 아픈 손가락이 있기 마련이니까요. 그래도 편애는 아니었으면 싶어요.
희선 님, 이 겨울 건강하게 잘 보내시길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