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나랑 결혼할래요?
김규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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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에 퀴어는 많아요. 동성애자가 전체 인구의 2~5% 정도라고 하는데 따지고 보면 굉장히 많은 숫자거든요. 한국에만 100만 명에서 250만 명쯤 되니까요. 그들은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고, 당연히 사회의 일부라는 걸 아셨으면 좋겠어요. 앗, 방금 지나친 그 사람! 동성애자일 수 있습니다.” (200쪽)

나와 다른 삶을 이해하는 일은 때로 간단하다. 그렇구나, 그냥 받아들이면 된다. 하지만 타인이 아닌 가족, 지인, 친구라면 좀 다르다. 이성보다는 감성이 더 가깝기 때문이다. 제3자의 시선에서는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관계의 폭이 좁아지만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식으로 변한다. 김규진의 『언니, 나랑 결혼할래요?』를 읽으면서 나도 그랬다. 아, 이들의 사랑은 존중받아야 하고 축복해야 한다. 아름다운 인생이라고 격려할 수 있을 것이다. 뉴스에 나온 장면을 봤다면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과연 무엇이 대단한가? 그녀는 그녀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뿐인데.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편견 아닌 편견의 틀에 그녀의 삶을 가두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저마다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자신의 정체성이 보통의 그것과 다르다고 해서 두려워해야 할까. 여기서, 보통의 그것은 누가 정하는가.

그렇다. 그게 중요하다. 우리 사회의 문화, 관습에 따라 살아가는 게 기준일까. 다양성을 중요시한다고 사회적 제도를 만들어가겠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고백하자면 나는 레즈비언 커플에 대해 잘 모른다. 소설에서만 만났고 다큐멘터리를 통해 그들의 삶에 대해 조금 알 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김규진의 에세이는 내가 만나지 못하고 몰랐던 다른 삶을 들려준다.


제목을 통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내용이다. 대한민국에서 법적인 결혼은 이성에 한해 가능하다. 김규진과 그녀의 와이프는 혼인신고를 하러 구청에 갔지만 접수는 반려됐다. 담당 공무원도 처음이라 어찌할 바를 몰랐고 민원인은 마냥 기다려야겠다. 예상했던 결과를 듣기 위해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솔직하고 발랄한 유머로 일상을 공개하고 있지만 부모님이 참석하지 못한 결혼식은 정말 속상했을 것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하고 응원했지만 결혼식을 하는 일에는 반대한 저자의 아버지의 태도에 조금 놀랐다. 과거 부모들도 동성동본으로 힘들었다는 말을 하면서 응원했던 아버지였기에. 처음에 관계가 나빴던 엄마는 자신의 카드로 혼수를 준비하라고 할 정도가 되었지만 결혼식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거기다 딸이 공개적으로 뉴스에 나와 인터뷰를 한다고 하니 아버지는 절연을 선택하고.

“사실 나는 너희 엄마랑 동성동본 결혼을 했어. 외할아버지 반대가 심해서 내 본관을 다르게 말하고 다니기도 했고. 그런데 30년이 지난 지금 누가 동성동본 얘기를 하냐? 동성 결혼도 30년 뒤에는 아무것도 아닐 거야.” (104쪽)

저자는 드레스를 입고 사람들의 축하를 받는 한국의 가장 기본적인 결혼식을 하고 싶었고 그래서 준비를 했다. 정보를 얻기 위해 검색을 하고 자료를 찾다가 직접 블로그를 열기로 했다. 자신이 살아오면서 경험하고 느낀 것들을 공유하는 일, 누군가에겐 절실하게 필요한 정보라 여긴 것이다. 결혼에 대한 자세한 준비과정은 그녀와 같은 상황에 놓인 이들을 위한 친절한 안내서가 된다. 어디 그뿐인가. 레즈비언으로 살아오면서 커밍아웃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이야기는 아직 커밍아웃을 하지 못한 이들에게 진정한 팁이다. 아무렇지 않게 밥을 먹으면서 그냥 전하라는 말, 공감한다. 친구가 레즈비언이라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지 않은가. 놀랄 수도 있지만 켜켜이 쌓인 우정이나 사랑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온전히 이해하는 건 어렵더라도 말이다.

어쩌다 보니 시끄럽게 일을 벌이게 되었다. 실명과 사진을 걸고 레즈비언의 삶과 결혼에 대한 얘기를 블로그에 연재하고, 회사에서 신혼여행 휴가를 받은 일 가지고 요란 벅적대게 인터뷰를 해 포털사이트 메인에 올리고, 공중파 뉴스에 출연하여 동성혼 법제화에 대한 의견을 내기도 했다. 사명감이나 성취감을 느끼지 못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이런 활동들을 이어간 동력은 대의보다는 나 개인의 편의였다. 그냥 내가 좀 편하고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175쪽)

“그냥 내가 좀 편하고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란 말이 오래 남는다. 책으로 만난 김규진은 귀여웠고 솔직했고 멋졌다. 그러니까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 당당한 사람이었다. 우리의 친구, 동료, 혹은 아는 사람, 그냥 그런 사람이었다.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이나 친구와 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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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21-01-12 00: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담배 피우는 사람을 엄청 멋있다고 생각하고 동경하는데, 내 남자는 안 피웠음 좋겠는 이중적 마음..ㅠㅠ 멀리 있는 사람을 수용하기고 응원하기란 정말 쉬운 거 같아요~

자목련 2021-01-12 11:25   좋아요 1 | URL
저도 그런 걸요. 그래서 이런 책을 읽고 조금이나마 그 간격을 줄이려고 하는 것 같아요.
여전히 추운 날이에요. 붕붕툐툐 님,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한국추리문학상 황금펜상 수상작품집 - 2007~2020 특별판
황세연 외 지음 / 나비클럽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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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은 언제나 매력적인 장르다. 드라마 <낮과 밤>의 초반에 빠져들었던 이유도 같다. 범인은 누구일까, 동기는 무엇일까. 남기고 간 흔적에서 증거는 무엇일까. 나름대로 추리를 하면서 범인을 유추하는 과정이 정말 흥미롭다. 한때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열심히 읽었던 기억이 난다. 미안하게도 한국추리문학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송시우, 도진기 정도만 생각난다. 한국추리문학상 황금펜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한국추리작가협회에서 1985년에 제정되고 35년간 지속되었다는 것도 이제야 알았다. 그러니『한국추리문학상 황금펜상 수상작품집』(2007~2020 특별판)을 만난 건 정말 행운이다.

올해의 수상작인 황세연 작가의 <흉가>를 시작으로 모두 12편의 소설을 만날 수 있다. 모두 저마다의 매력으로 독자를 유인한다. <흉가>는 제목 그대로 오랜 시간 방치된 집으로 이사하는 하는 가족의 이야기다. 아내는 전에 살던 사람들에 대해 유독 궁금해한다. 집을 계약하고 수리를 위해 찾은 집은 더욱 흉물스럽다. 마당의 수국만이 유일하게 괜찮게 보인다. 이사 후 남편은 악몽을 꾸고 아내는 감정 기복이 심해진다. 동네 사람들에게 전해 들은 이 집의 사연은 더욱 놀랍다. 부부가 감쪽같이 사라졌다고. 부부에게 관심을 갖는 노인과 아내를 아는 척 하는 사람도 나타난다. 아내는 자신이 언니와 착 가한 거라 말한다. 점점 아내가 수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내에게 숨겨진 비밀은 무엇일까. 곳곳에 숨겨진 복선과 암시를 통해 나름 추리를 하면서도 혼돈에 빠지게 만든다. 잘 짜인 구성에 놀랐다.


황세연 작가는 2011년에 이미 수상한 경력이 있었다. <스탠리 밀그램의 법칙>은 중학생의 우발적 범행으로 딸을 잃은 아빠가 복수를 결심하며 실행에 옮기기 전 준비하는 과정을 다룬다. 중학생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가족 관계를 조사한다. 재혼 가정으로 아내가 죽자 아들을 방치한 남자. 그 남자에게도 사연이 있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인과관계의 끝이 어딘 인지. 그 이야기를 따라가는 과정이 흥미롭다. 아쉬운 점은 결말을 쉽게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제목으로 예상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김유철 작가의 <국선 변호사 - 그해 여름>은 가장 기본적인 추리소설의 형태를 지닌다. 애인을 죽였다고 자백한 젊은 경찰의 변호를 맡은 주인공은 진범이 따로 있음을 직감한다. 경찰과 검사가 제대로 수사를 하지 않은 것이다. 경찰 공무원 시험을 뒷바라지하고 결혼을 결심한 연인을 죽였다니,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 경찰의 가족을 이야기를 듣고, 범행 장소를 찾아가 살펴보고 용의자를 지정하고 검거하는 과정이 뭔가 후련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소설처럼 변호사를 잘 만나서 진실이 밝혀지는 경우가 현실에서는 얼마나 될까 생각하니 마음이 답답해진다.

박하익의 <무는 남자>는 잘 알려진 드라마 <선암여고 탐정단>의 시작이다. 바바리맨의 변종으로 여학생의 팔목을 깨무는 남자를 찾아가는 여고생의 발랄하고도 신선한 탐정 이야기. 실체는 거대한 사학재단 비리라고 할까. 송시우의 <아이의 뼈>는 20년 전에 딸을 잃은 노파의 사연이다. 범인이 잡혔고 사건은 종결되었지만 노파에게는 아니었다. 범인과 거래를 하는 노파. 그 거래는 무엇일까. 자식을 잃은 부모가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가는지 생각하게 된다.

사람의 복수심이라는 게 그렇게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20년이 넘은 시간 동안 흉기처럼 날카로운 복수심을 가슴 속에 품고 살 수 있는 걸까. ( <각인>, 198쪽)

자식을 죽인 범인을 향한 분노와 증오는 결국 범죄로 이어지기도 하는데 홍성호의 <각인>이 그렇다. 할머니를 폭행하고 손녀를 납치한 범인에 대한 단서는 찾을 수 없다. 수사를 맡은 형사는 CCTV를 통해 원한에 의한 범행임을 직감한다. 범인의 흔적을 찾으려고 다방면으로 수사를 한 결과 오랜 시간 범행을 계획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의 과거 인연까지 알게 된다. 학교폭력으로 아들을 잃고 그 충격으로 아내까지 떠나고 혼자 남은 삶. 모든 걸 묻고 살아가고 있었지만 우연히 발견한 가해 가족의 행복한 모습에 분노한다. 시한부를 선고받은 그에게 남은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진정한 사죄와 용서, 죄의식에 대해 생각한다. 왕따와 학교폭력의 피해를 고스란히 감당하며 살아가는 피해자를 위한 제도가 필요하다.

언급하지 않은 다른 소설도 정말 재밌다. 공민철 작가의 <낯선 아들>과 <유일한 범인>은 모두 노인의 삶을 다룬다. 고독하고 혼자 남은 삶에 대해 돌아본다. 사회 안전망에서 제외되고 외롭고 쓸쓸한 시간을 보내는 노년. 누구에게나 다가올 수 있는 미래라는 가능성을 생각하면 무섭고도 아찔하다.

우리 사회 곳곳의 민낯과 사회문제와 부조리, 신뢰를 주지 못하는 경찰과 검찰, 다양한 시선으로 현재를 보여준다고 할까. 범인을 찾아가는 재미와 더불어 사건의 실체를 통해 마주하는 인간의 어두운 심연과 욕망을 보여준다. 추리소설을 좋아한다면, 한국형 추리문학을 기대한다면 주저하지 말고 선택해도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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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인트 (반양장) - 제12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89
이희영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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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와 자식은 천륜이라고 말한다. 하늘이 맺어준 관계. 그래서 절대로 끊을 수 없다고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옛말이 돼버렸다. 존속살인이 벌어지는 세상, 형제와 부모와 단절하고 독립적인 삶을 지향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시대가 되었다. 부모의 시각과 자식의 시각은 온전히 다를 수 있다. 자신의 피와 살로 만든 자식에 대한 부모의 입장에서 자식은 분신과 다름없다. 자식은 부모의 관심으로 가장한 간섭을 이해할 수 없다. 어린 시절 나 역시 그러했다. 다른 어른이 내 부모였다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엄마와 아빠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여긴 적도 있었으니. 부모님의 생각을 잘 몰랐다. 아니,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시대가 빠르게 변화하고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점차 어려워진다.


부모를 선택할 수 있다면, 그건 정말 자식의 입장에서는 좋은 일일까. “부모 면접을 시작하겠습니다.”란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희영의 소설 『페인트』는 묻는다. 부모와 가족이 무엇이냐고. 소설의 제목인 페인트는 부모 면접((parent’s interview)를 뜻한다. 부모를 선택할 수 있는 시대, 미래에는 정말 이런 시대가 올까. 인공지능이 부모를 대시하는 시대가 오는 건 아닐까. 순간적으로 나는 두렵고 무서워졌다.


소설은 미래의 가상 시대, 국가가 설립한 NC 센터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부모가 버린 아이들을 국가가 관리하는 것이다. 관리와 보호는 어떻게 다를까. 지금의 보육원이나 입양기관과 같은 역할이지만 그 내부를 들여다보면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NC의 아이들은 스무 살이 될 때까지 그곳에서 살 수 있으며 부모를 선택할 수 있다. 부모를 선택하지 못하면 센터를 떠나야 한다. NC 센터에서의 아이들을 입양하는 부모는 국가로부터 다양한 혜택을 받는다. 아이를 입양하는 일이 그들에게는 때로 생존의 문제가 되기도 한다. 특별한 건 현재 부모가 아이들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 반대로 아이가 부모를 선택하는 시스템이다. 부모를 선택하는 과정도 까다롭다. 누구나 아이들을 만날 수 있는 게 아니다. 부모 후보로 지정된 이들을 시뮬레이션으로 볼 수 있다. 그 후에 직접 만날지 결정한다. 아이들은 부모 후보를 거부할 수 있다. 잠깐의 만남으로 대화를 나누고 세 번째 만남으로 이어진다. 아이들의 선택과 NC 직원이 함께 결정한다.


주인공 ‘제누 301’은 아직 부모를 선택하지 않았다. 아이를 입양한 부모가 정부로부터 다양한 혜택을 받는 걸 안다. 그래서 그걸 노리는 부모들이 많다. 제누 301도 페인트를 많이 했지만 자신과 맞는 부모를 찾지 못했다. 센터에는 이미 부모를 선택해서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돌아온 아이도 있다. 페인트에는 너무 좋았는데 막상 살아보디 다른 모습이었거나 갑자기 생긴 부모와 사는 생활을 적응하지 못해 돌아온 아이들이다.


제누가 페인트를 하는 부모 후보는 관리자의 기준으로는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는 부부가 아니다. 그런데 제누는 그들에게 끌린다. 솔직하고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고 제누에게 잘 보이려고 애쓰고 노력하지도 않는다. 이제 성인에 가까운 제누를 입양하는 일은 그들에게도 모험일 것이다. 부모로서 연습을 하거나 공부한 적도 없으니까. 그런 모습이 제누는 마음에 들었다. 제누의 말처럼 우리는 모두 불안정하다. 처음부터 완벽한 부모는 없으니까. 그런데 그걸 인정하고 깨닫는 이는 얼마 없다.


세상의 모든 부모는 불안정하고 불안한 존재들 아니에요? 그들도 부모 노릇이 처음이잖아요. 누군가에게 자신의 약점을 드러 내는 건 그만큼 상대를 신뢰한다는 뜻 같아요. 많은 부모가 아이들에게 자기 약점을 감추고 치부를 드러내지 않죠. 그런 관계는 시간이 지날수록 신뢰가 무너져요. (112쪽)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누군가를 책임지는 삶이 두려운 일이 되었다. 생명의 소중함과 돌봄의 소중함을 잃어버린 건 아닐 것이다. 다만 아이를 낳고 키우는 동안 겪어야 하는 어려움을 감당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라는 걸 소설을 말한다. 부모를 선택한다는 기발하고 특이한 설정으로 시작하지만 결국엔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위해 사회적 기반이 얼마나 중요하지 생각하게 만든다. 입양이라는 제도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언급하지 않아도 최근 이슈가 된 사건을 떠올릴 수 있다. 어른의 잘못으로 벌어진 일이다.


가족이란 무엇일까. 혈연관계를 떠나 다양한 관계로 맺어진 가족이 늘고 있다. 서로를 이해하고 신뢰하는 과정을 지나야 완전한 가족으로 서로에게 속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가족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모르는 게 대부분일 것이다. 우리는 잘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노력해야 한다. 제누가 기대하는 부모와의 관계처럼.


누군가를 알아 간다는 건 그만큼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일이었다. 어쩌면 그거야말로 부모와 자녀 사이에 가장 필요한 것인지도 몰랐다. (146쪽)


점점 말이 사라지는 사춘기, 갈등을 겪는 부모와 아이가 함께 읽으면 좋을 책이다. 서로에게 어떤 부모인지, 어떤 자녀인지 조금 돌아보며 서로에 대해 질문하는 시간으로 이어진다면 뜻깊은 시간이 되지 않을까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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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얼지 않게끔 새소설 8
강민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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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도 모르는 사소한 변화를 알아봐 주는 이가 있다면 행운아다. 타인에 대해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시대가 되었기에 더욱 그렇다. 직장 동료와의 관계는 그저 사회적 활동을 위한 관계로 인식하는 이가 많으니까. 입사 동기의 경우는 서로 경쟁을 하면서도 위로를 하는 사이로 발전하기도 한다. 직장에서 동료 이상의 감정을 키우고 좋은 친구로 발전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사실 그런 경우는 많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강민영의 장편소설 『부디, 얼지 않게끔』속 인경에게 희진은 정말 고맙고 필요한 존재다.

인경과 희진의 직장은 여행사다. 인경은 고객을 인솔하여 계획을 짜고 가이드를 하고 희진은 경리 업무를 담당한다. 처음엔 서로 잘 몰랐다. 베트남 출장을 함께 가면서 인경과 희진은 서로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되었다. 그리고 희진이 인경의 몸의 변화를 알아보고 언급하면서 둘은 급격히 친해졌다. 인경의 변화는 더위를 타지 않는 것이었다. 인경도 몰랐다. 자신이 무덥고 습한 여름에 땀 한 방울을 흘리지 않고 휴대용 선풍기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래서 희진의 말을 처음엔 이해하지 못했다. 생각해 보니 정말 그랬다. 몸이 달라졌다. 에어컨 바람이 싫어서 카디건을 챙기고 선크림도 사용하지 않았다. 베트남 출장에서 인경과 희진은 변온동물처럼 변온 인간의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희진이 그런 종류의 다큐멘터리를 본 기억이 있다고 했다. 기사, 논문, 자료를 공유해 주었다.

내 몸이 나도 모르는 사이 변온동물처럼 변하고 있다면 어떨까? 인경은 자신을 알아봐 주고 이해해 주는 희진이 있기에 직장을 다닐 수 있었다. 그러면서 인경은 희진을 알지 못했더라면 자신도 동료들과 마찬가지로 희진에 대해 편견이 가졌을 거라 생각한다. 타인의 배려와 이해 대신 소문을 믿고 그대로 판단하는 실수. 인경과 희진을 통해 우리가 사는 사회의 실체를 마주한다. 더위에 강한 인경은 점점 두려워진다. 겨울이 오면 어떻게 될까. 겨울잠을 자는 동물처럼 자신에게도 그런 시기가 오는 건 아닐까. 인경은 운동을 시작하고 희진과 모든 걸 공유한다.

막바지 더위로 모두가 피하는 제주도 출장을 인경이 선택한 이유도 날씨 때문이었다. 인경에게는 최적의 날씨였다. 제주도로 희진이 휴가를 오면서 둘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이제 더위가 물러가고 서늘한 날이 시작되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걱정까지도. 인경에게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온다는 건 최악이었다. 몸은 빠르게 반응했고 추위를 막을 수 있는 제품을 사들였다. 희진이 여름을 견디기 위해 많은 선풍기를 사용했던 것처럼. 하지만 처음 맞는 몸의 변화는 인경의 외부로 나타났다. 직장 동료와 상사는 얼굴색이 좋지 않다며 걱정했고 다양한 건강식품을 추천했다. 외출을 하지 않고 집 안에서만 생활하는 일은 견딜 수 있었지만 출퇴근은 점점 힘들어졌다.


“누구나 변할 수 있는 거잖아요, 인경 씨처럼.”

나를 배웅하며 희진이 건넨 말을 떠올렸다. 정말 누구나 이렇게 순간적으로 변할 수 있는 거라면, 그리고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삶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그걸 버텨내고 있는 걸까. (중략) 누구에게나 힘든 순간이 온다면, 그 순간을 버티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차분하게 찾아보자던 희진의 말. 원인을 찾아 헤매기보다 앞으로를 대비하자는 희진의 다독거림은 확실히 효력이 있었다. 희진 같은 사람들이 있어서 나 같은 사람들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라 믿기로 했다. (80~81쪽)

인경은 휴직을 하고 동면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인경은 얼마나 두려웠을까. 아무도 모르게 찾아온 몸의 변화와 일상의 균열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어디다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으면 도움을 청할 수 있었을까. 가족과 친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고 도움을 받으려면 자신의 상태를 공개해야 하는데 그 파장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희진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깨어날 수 있을까. 불안을 간직한 채 잠에 빠져드는 인경. 모든 걸 희진에게만 의지할 수 없는 인경과 그런 인경을 격력하고 응원하는 희진이 나누는 말에 울컥해진다. 단 한 사람의 응원만으로도 힘을 낼 수 있고 살아갈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언제나 자신만 생각하며 살아온 시간들,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고통으로 힘겹게 살아온 이들의 시간에 대해서는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도 겨울은 추운 게 좋겠어요. 겨울에만 살아 있는 동물들도 있을 텐데. 나는…… 겨울에 이렇게 자도 되니까요.”

“봄이 빨리 오면 좋겠네요.”

희진의 말을 들으며 눈을 깜박였다. 다시 눈을 뜨면 정말로 봄이 와 있을까. 겨울을 버틸 수 있는 이유가 저기에 잇다. 조금만 내가 더 늦게 가 변해버렸다는 걸 알았다면, 함께 베트남에 가지 않았더라면 영영 어긋나버렸을 것이 분명한, 겨울을 이겨내야만 하는 이유는 바로 저기에 있다. (199쪽)

누구나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무조건 배척하고 선을 긋고 경계한다. 소설 속 인경처럼 변온 인간이 되는 경우가 아니더라도 말이다. 이익, 시선, 문화적 차이를 이유로 들면서 함께 할 수 없다고. 그러니 단순하게 이 소설은 변온이라는 소재만을 대입해 읽을 수 없다. 어디서나 마주할 수 있는 나와는 다른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으니까. 함께 시간을 나누고 계절을 보내는 다종다양한 삶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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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0-12-31 02: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람도 몸 온도가 바뀔 수 있을지... 이건 상상이지만... 어떤 만화에서 본 게 생각나기도 하네요 벌레(요괴에 가까운)한테 기운 같은 걸 빼앗기고 겨울 동안에는 잠들었다가 봄에 깨어나는... 그것하고 이건 조금 다르지만, 그게 생각나는군요 사람은 자신을 알아주는 단 한사람만 있어도 괜찮아요 그 한사람을 만나기가 아주 어렵지요

자목련 님 올해 마지막 날이네요 벌써 그렇게 되다니... 올해 마지막 날 잘 보내시고 새해 첫날 잘 맞이하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 잘 챙기세요 새해에도 좋아하는 거 하시기 바랍니다


희선

자목련 2020-12-31 10:06   좋아요 2 | URL
소설을 읽으면서 언제나 인간도 그렇게 변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환경에 적응하려고요.
한 해의 끝이네요. 다정한 이웃으로 계셔주셔서 감사해요. 건강한 연말 보내시고 즐거운 새해 맞으세요!!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
다나베 세이코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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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이야기할 때 마음이 따뜻해진다면 좋은 사랑을 했다는 증거다. 아픈 장면, 속상한 장면이 떠오른다 해도 사랑은 나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당시에는 진정한 사랑이라고 여겼을 테니까. 누군가를 사랑하는 순간에는 오직 그에게만 최선을 다했으니 괜찮을지도. 설령 시간이 지나 그 순간을 후회하고 삭제하고 싶더라도 말이다. 사랑은 그런 거니까. 다나베 세이코의 연애 소설을 생각하면 달콤한 아이스크림의 맛이 생각난다. 완벽한 해피엔딩이 아닐지라도.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에는 그런 사랑이 등장한다. 이를테면 부적절한 관계, 타인의 인정을 받지 못하는 관계, 이별을 예감하는 사랑. 그럼에도 이상하게 그들의 사랑을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아마도 그건 다나베 세이코라서 그런 것 같다. 아름다운 분위기를 연출하거나 달콤한 말들을 이어가는 대신 솔직한 말과 행동, 후회 없이 사랑하겠다는 다짐 같은 것들이 느껴진다. 하지만 처음에 만났던 그런 느낌은 아니다. 사랑에 대해 회의적인 나의 시선과 시대의 변화도 무시할 수 없다.


지금 우리 시대 20대 후반의 여성에게 결혼은 그저 선택이고 이른 결정이다. 「어렴풋이 알고 있었어」에 등장하는 자매의 마음은 그래서 살짝 이해하기 어렵다. 동생의 결혼에 대한 언니의 마음. 디자인을 배우고 백화점에서 일을 하는 동생의 결혼 선언에 마음이 복잡해지는 건 당연하다. 동생과 자신의 삶을 비교하며 연애에 대한 동경을 하는 언니의 마음을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으니 역시 다나베 세이코라고 해야 할까. 그런 면을 나는 좋아한다. 사소하면서도 소소한 일상의 변화를 잡아내는.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하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사랑에 빠져 행복하지만 언제나 이별을 준비하는 관계라면 더욱 그렇다. 「눈이 내릴 때까지」는 그런 이야기다. 제목에서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전해진다. 눈이 그치면 떠나야 한다는 걸 아는 것처럼. 소설 속 여자가 만나는 남자는 아내가 있는 사람이다. 그러니 그들의 관계는 영원할 수 없다. 사랑의 끝이 이별이라는 걸 알기에 매 순간 더욱 소중할지도 모른다. 지금 바로 죽는다 해도 더 바랄 게 없다는 주인공의 마음처럼. 그런 남자가 있는 줄 모르고 여자의 언니는 결혼을 위한 남자를 소개한다. 어쩌면 눈이 그치고 여자는 그 남자를 만나고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지 않을까. 다나베 세이코라면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단편집에는 다양한 사랑이 등장하지만 단연 표제작인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만이 특별하게 다가온다. 영화로도 잘 알려진 소설, 최근에 한지민과 남주혁이 주연한 한국판 리메이크도 상영 중이다. 소설을 읽지 않았어도, 영화를 보지 않았어도 제목은 한 번쯤 들어왔을 정도로 유명하다. 장애인 조제와 대학생 츠네오의 사랑 이야기. 뻔하지 않은 사랑이라서 더 아름답고 더 고결하게 남은 사랑이다. 할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는 조제에게 다가온 츠네오. 처음 츠네오에게 조제는 호기심이었을지도 모른다. 츠네오는 점점 조제에게 빠져들었고 그녀를 이해하는 사람이 되었다. 


조제가 하는 말은 거짓이 아니라 하나의 바람이며 꿈이라는 것을. 그것은 현실과는 다른 차원으로 엄연히 조제의 가슴속에 존재하는 것임을.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 51쪽)


조제가 가고 싶었던 동물원에 가고 그곳에서 호랑이를 본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호랑이를 보고 싶었다는 조제의 말은 가장 완벽하고 황홀한 고백이다. 조제와 츠네오의 사랑은 예측할 수 없다. 예측할 수 없다고 시작하는 것조차 두려워할 필요가 있을까. 때로 사랑은 세상에서 가장 큰 용기이며 이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책을 읽으면서 오래전 보았던 영화의 장면과 겹쳐진다. 한지민과 남주혁이 표현한 조제의 사랑은 어떨까. 사랑의 끝에 조제가 홀로 남더라도 행복한 조제였으면 한다. 조제는 충분히 그럴 거라 여겨진다.


물고기와 같은 츠네오와 조제의 모습에, 조제는 깊은 만족감을 느낀다. 츠네오가 언제 조제 곁을 떠날지 알 수 없지만, 곁에 있는 한 행복하고, 그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조제는 행복에 대해 생각할 때, 그것을 늘 죽음과 같은 말로 여긴다. 완전무결한 행복은 죽음 그 자체다. ‘우리는 물고기야. 죽어버린 거야.’ 그런 생각을 할 때, 조제는 행복하다.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 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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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0-12-29 0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군가를 좋아할 때는 좋아도 그 시간이 지나고 그 사이가 끝나면, 많이 다를 듯하네요 그래도 그런 시간을 좋게 여기면 좋겠습니다 잊고 싶을지 몰라도... 시간이 가면 그런 마음도 희미해지지 않을까 싶네요


희선

자목련 2020-12-29 15:29   좋아요 1 | URL
좋았던 기억만 간직하는 게 좋겠지 싶어요. 상대는 어떨지 모르지만요. ㅎ
날씨가 많이 추워지네요. 건강 챙기시고 연말 잘 보내세요^^

공쟝쟝 2020-12-31 0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오래 전 본 이 영화 인생영화라고 좋아했는 데ㅡ 책은 찾아볼 생각도 못했어요. 한지민 남주혁이라니 ㅠ 한국판 조제도 보고 싶다.. 오늘이 하루 남았어요~~ 새해복많이 받으세요 :)

자목련 2020-12-31 10:08   좋아요 1 | URL
많은 분들의 인생영화가 아닐까 싶어요. 단편도 만나보시면 좋을 듯해요.
저도 한지민의 조제가 궁금해요!
공쟝쟝 님, 건강하고 환한 새해 맞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