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일은 없고요?
이주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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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고 싶지 않은 것들이 있다. 그것이 나쁜 일에 국한된 건 아니다. 말하고 싶은 순간이 오지 않았을 뿐, 말하고 싶은 때가 오면 말하게 되는 것들이다. 누군가 그 말을 재촉한다. 누군가 그 말을 강요한다. 가깝다는 이유로, 자신이 그것에 대해 안다는 이유로, 누군가에게 들었다는 이유로 말이다. 좋은 의도라는 걸 알면서도 선뜻 말이 나오지 않을 때가 있다. 그저 말하고 싶지 않은 것, 그게 전부라는 걸 사람들은 의심한다.


이주란의 단편집 『별일은 없고요?』은 그런 마음을 안다고 말한다. 그런 마음이어도 괜찮다고, 과장된 표현을 요구하거나 속내를 보여주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이다. 이주란의 단편은 기쁨과 즐거움보다는 가라앉은 마음이나 지그시 누른 슬픔 같은 것들이 있다. 그래서 누군가는 이 소설집을 읽는 게 답답하거나 불편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이주란의 소설은 원인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가까운 이의 죽음, 사고, 이별을 암시할 뿐 자세한 내막은 들려주지 않는다. 어쩌면 그것은 말하고 싶지 않은 것들, 아직은 때가 오지 않는 말들이라서 그런 건지도 모른다.


표제작 「별일은 없고요?」를 포함한 8개의 단편 가운데 몇 편은 두 번째 읽게 되었다. 읽으면서 바로 그 사실을 알아차린 단편도 있고 중반 이상 읽고서 기억한 단편도 있다. 이주란 소설의 특징은 특별하지 않은 일상을 그리는 것, 그 안의 이야기는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는 것, 전반적으로 상실을 다루지만 지독한 슬픔을 뿜어내지는 않는다고 할까. 그래서 한편으로는 돌림노래나 도돌이표 같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생각해 보면 삶이란 반복적인 돌림노래와 비슷하지 않는가. 관계는 늘 어렵고 쉽게 오해하는 대신 오해를 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러면서 상대를 이해하는 마음, 상대를 안다고 생각한 마음이 얼마나 오만한가, 얼마나 부족한가 깨닫기도 한다.


이주란의 소설은 그런 마음을 인정하라고 괜찮다고 위로한다. 마음이 기우는 대로 말하고 싶은 때가 오면, 지금이 아니라 그때 말해도 괜찮다고 말이다. 표제작 「별일은 없고요?」에서 수연은 연인과 헤어지고 직장을 그만두고 엄마가 일하는 지방의 원룸으로 온다. 낯선 동네를 오가며 산책하고 엄마가 밥을 해주는 곳에서 일하는 외국인에게 한글을 가르친다. 두 번째 읽으면서 처음에는 발견하지 못했던 문장을 오래 바라보았다. “새집이어도, 아무튼 언젠가 그 방에서도 누군가는 죽을 수 있어.” (25쪽)


누군가는 죽을 수 있다는 건 모두가 죽을 수 있다는 것, 죽음과 상실이었다. 「별일은 없고요?」의 뒷이야기처럼 여겨지만 인물의 이름은 다른 「사람들은」에서는 얼마 전 엄마를 잃은 은영의 집에 직장 동료였던 은영이 며칠 신세를 지겠다고 연락이 온다. 집 주인인 은영이 일하러 나간 사이 은영은 혼자 시간을 보내는데, 나중에 은영의 엄마도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사람들은 상실을 겪은 이에게 잦은 안부를 묻고 괜찮냐고 묻는 게 당연하다고 여기지만 정말 그럴까. 혼자만의 방식과 애도의 기간이 있다고 생각한다. 두 은영이 그랬던 것처럼.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할머니의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방식으로 애도를 하는 「어른」 속 경아의 곁에는 아줌마가 있다. 가족이나 친척이 아닌 관계지만 시시콜콜한 일상을 나누고 시골 동네를 산책하고 두부를 사러 가고 곁에 머물러 주는 어른이다. “울고 싶은 만큼 울었어?”(103쪽)라고 물어주며 아줌마는 돌아가신 고모 이야기를 꺼내며 경아에게 “마음 놓고 울라는 거야”(104쪽)란 마음을 건넨다. 아줌마와 지내며 아줌마가 들려주는 이야기로 인해 경아는 위로를 받는다.


아줌마가 최선을 다해 살아온 삶의 모든 것을 내가 지금 나눠 받고 있다는 무자비한 따뜻함 때문이었다. ( 「어른」, 114쪽)


그런가 하면 남편을 잃고 대학 후배의 집에서 지내는 「파주에 있는」 현경은 매일 후배가 전하는 안부와 염려를 받는다. 집 밖을 나가지 않는 현경은 첫사랑이었던 재한의 메일을 받고 외출을 한다. 버스를 타고 시장에 가며 사람들의 분주함을 마주한다. 재한은 소소한 일상을 건네며 그저 곁에서 걸어준다. 그리고 헤어질 때 잘 살라고 말한다. “잘. 잘 살아야 돼.” (275쪽)라는 그 말에 담긴 진심이 내게도 전해지는 것 같다.


이주란의 소설은 밋밋하다고 할 수도 있다. 사건의 개요나 핵심 설명은 찾을 수 없다. 그러니까 폭풍이 몰아치는 순간이 아닌 그 이후의 감정들에 집중한다고 할까. 그 시간들이야말로 우리가 보내야 할 삶이고 버티고 견뎌내야 할 시간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상실의 슬픔, 부족한 애도와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걸 알려준다. 그것이 지독한 슬픔이라 할지라도. 자기만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것들은 말하고, 말하고 싶지 않은 것들은 말하지 않고.


그러고 싶으니까 그러는 것 같아.

응?

결국엔 자기가 결정하는 거지.

뭘?

행동, 태도, 반은, 그러니까…… 모든 것.

모든 것?……

거의 대부분.

마음이 어떤 쪽으로 아주 많이 기울면 어쩔 방도가 없잖아. (서울의 저녁」, 2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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낱말의 장면들 - 마음이 뒤척일 때마다 가만히 쥐어보는 다정한 낱말 조각
민바람 지음, 신혜림 사진 / 서사원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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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힘들고 지칠 때 스스로를 일으켜 세우는 사람은 대단하다. 달래는 정도가 아니라 괜찮은 상태로 돌아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 때문이다. 그것은 단순히 스트레스를 푸는 정도가 아니니까. 어떤 이는 지나간 과거에 오래 매달려있고 어떤 이는 사람들과의 부침에 힘겨워한다. 자신을 사랑하지 못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몰라서 괴롭다. 『낱말의 장면들』 의 저자도 다르지 않았다. 마음이 힘들고 관계에 지치고 아픈 몸과 함께 살아가는 게 고달팠다. 그럴 때마다 저자는 사전을 찾았다. 잘 알려지지 않고 많이 쓰지 않는 순우리말을 외우고 마음을 기댔다. 그렇게 자신만의 단어를 만들었다. 그런 단어들이 주는 힘을 일상과 함께 녹여낸 글이 모인 책이 『낱말의 장면들』이다.


이런 발상을 하다니, 색다르고 특이한 느낌이 먼저 들었다. 하지만 금세 그런 마음은 사라졌다. 차분하고 가만하게 들려주는 일상과 그에 맞는 낱말의 어울림에 스며들었다. 지친 마음을 쓰다듬고 나아갈 길을 열어주고 관계를 돌아보게 하는 낱말은 저자에게만 적용되는 게 아니어서 그랬다.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감정들, 치료하지 못하고 내버려 둔 상처들, 서로가 다른 게 당연한데도 부딪히는 마음들에 대한 조용한 고백이라고 할까.


어떤 사람은 순간 감정을 바로 다른 감정으로 바꿀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다. 혼자 삭히느라 끙끙대는 동안 감정은 더 크게 곪아간다. 자기 마음의 문지기란 저자의 표현에 공감하며 나는 문을 얼마나 열고 닫았는가 돌아보게 된다. 한 번 닫히면 끝까지 열리지 않는 마음의 문을 지닌 건 아닐까 하고 말이다.


사람은 자기 마음의 문지기다. 스스로 통과시켜주지 않으면 감정은 언제까지나 그 자리에 머문다. 제대로 느끼고, 표현하고, 일찍 보내줘야 병이 되지 않는다. 부정적 감정을 쉽게 통과시키지 않는 마음은 긍정적 감정 앞에서도 문을 활짝 열지 못했다. (31쪽)


외국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강사를 하고 대학교에서도 교수를 돕는 업무를 본 사람을 떠올리면 소심보다는 당당한 이미지가 따라온다. 하지만 저자는 자신이 정한 일상을 지키느라 힘들었다. 누구나 그렇게 산다고 말할 수 있지만 사실 그 선을 넘어도, 기준이 무너져도 큰일이 생기지도 일상이 무너지지도 않는다. 오히려 한 번쯤 그런 경험이 있어야 별일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된다. 더 좋다고 해서 반드시 행복한 것도 아니라는걸.


마음에도 흐트러진 공간을 두려 한다. 불만족을 하나하나 붙잡아 바꾸려 하지 않고 내버려 두는 땅으로 나를 들여놓는 연습을 한다. 더 좋은 것, 더 나은 것에 대한 강박에서 자유로이 멀어지기를 바란다. (63쪽)


생각해 보면 우리가 바라는 건 대단한 게 아니다. 기쁨과 감동을 느끼는 순간도 아주 작고 사소한 순간이다. 저자가 지난번에 놓친 과일 트럭 아저씨를 만나 맛있는 제철 과일을 사서 먹는 것처럼 단순하다. 성장은커녕 앞으로 나가지 못한다고 여겨질 때 뒷걸음질 치지 않고 제자리걸음이 앞으로 나갈 준비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견디는 시간만큼 곰비임비 쌓이는 게 있으니까. 그건 어떤 업무나 계획에만 해당되는 건 아닐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어떤 생각과 결정을 내릴 때도 마찬가지다. 실수나 실패란 경험이 있어야 같은 경험을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다. 살아가면서 깨단한 것들로 배우는 삶의 태도가 아닐까 싶다.


반복된 어리석음만큼 깨단한 것들이 쌓이면, 어느 순간부터는 삶의 무게중심이 되어줄 것이다. 무게가 묵직한 아픔이 되기도 하지만, 남은 삶에서 균형을 잃지 않게 도와주기도 한다. 주변에 아픔 대신 살아에 가까운 감정들을 옮길 수 있게. (128쪽)


책에서 마음 깊숙이 다가오는 부분은 부모님과의 관계에 대한 것이었다. 후각장애를 갖고 계신 아버지와의 만남에서 저자가 느끼는 마음, 본가에 갈 때마다 엄마와 다투고 돌아오는 속상함. 가장 가깝다고 여기고 적당한 거리를 찾지 못한 사이, 바로 가족이다. 적당한 거리의 맞은바라기에서 서로를 보고 있다면 더 잘 볼 수도 있다는 걸 기억해야겠다. 가까이 있어서 볼 수 없는 것들이 보일 것이다. 더 선명하고 더 환하게.


저자의 마음을 따라 읽으면서 그가 들려주는 곱고 다정한 낱말에 사로잡힌다. 얼마나 성실히 정성껏 고르고 골랐을 낱말일까 상상한다. 이전에 몰랐던 낱말이 반갑게 건넨 인사가 반갑다. 나만 아는 나의 낱말 목록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상에 지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끼는 이에게 가만한 위로를 건네준다. 복잡하고 어지러운 마음을 단순하고 편안하게 이끄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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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3-11-14 1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아주 오래 전에 낱말의 뜻을
모를 적에 아버지 책장에 있던
두터운 국어사전 찾던 기억이 나네요.

자신만의 단어로 치유를 하다니 발상
이 참신하네요.

자기 나름의 패턴을 지키는 일도 사실
일상에서 쉽지 않나 싶네요.
게다가 더 좋은 것이 행복으로 귀결되
지 않는다는 것도 새로운 깨달음이구요.

이건 뭐 거의 덤으로 책을 한 권 읽은
그런 느낌이네요. 마음은 항상 복잡하고
어지러운 그런 어딘가에...

자목련 2023-11-16 14:41   좋아요 1 | URL
제게도 국어사전을 뒤적이며 낱말의 뜻을 찾고 기억하려 애쓰던 시절이 있어요.
자신을 위로하고 달래는 방법을 안다는 것만으로 차분한 마음의 길에 접어들 수 있겠다 싶어요.

비가 오는 목요일, 매냐 님의 마음이 평온하게 머물기를 바라요.
 
작은 빛을 따라서
권여름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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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꾸준하게 무언가를 하는 일은 대단하다. 건강을 위해 걷기, 명상, 기도 등 쉬운 것 같지만 막상 해보면 쉽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누군가 간절하지 않아 그렇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맞다, 간절함이 부여되면 상황은 변한다. 간절함은 아주 작은 자극에서 시작되기도 한다. 남들은 신경 쓰지 않지만 내 안의 무언가를 건드리는 순간 발화한다.


내장산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필성슈퍼’ 를 운영하는 가족 이야기, 권여름의 장편소설 『작은 빛을 따라서』에서는 다양한 간절함이 어떻게 빛을 발하는지 보여준다. 급한 마음에 언급하자면 소설은 재미있고 따뜻하고 뭉클하다. 슈퍼로 바쁜 부모님, 집안 살림을 챙기는 할머니, 고등학생 언니, 중학교 3학년 은동, 동생 은율, 여섯 식구의 평범한 일상을 그리는 소설이다.


화자인 은동이 할머니의 비밀을 알게 되는 것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비밀은 할머니가 한글을 모른다는 것. 은동은 할머니의 한글 선생님이 되어 용돈을 받는다. 은동이 용돈을 모으는 이유는 연기 아카데미 학원에 등록하기 위해서다. 그러니까 은동의 꿈은 배우다. 은동은 할머니에게 한글을 가르치며 한 번식 슈퍼 배달을 돕는다. 은동 가족에게 변화가 생긴 건 대형마트가 오픈하면서다. 부모님은 두부 한 모도 배달을 시작했고 김장철에는 절인 배추를 팔았다.


소설은 대형마트에 대응하는 필성슈퍼의 모습과 연극을 향한 은동의 열정, 그리고 할머니의 한글 공부를 통해 실패와 그에 굴하지 않는 간절함으로 일어서는 어떤 마음을 이야기한다. 그 과정은 안쓰럽고 애틋하며 대견하다. 손님이 없어 애타는 마음을 숨기고 태연하게 하루하루 슈퍼 문을 열고 대책을 세우는 부모님, 떨린 마음으로 친구 석희와 아카데미 면접을 보지만 석희에게 연기를 권해 속상한 은동, 배움의 열정만큼 실력이 늘지 않아 속상한 할머니의 모습은 소설이 아닌 우리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손님이 찾아오지 않아도 문을 여는 마음에 대해 생각했다. 새벽 여섯시 차가운 셔터 끝을 잡아 힘차게 올리는 아빠의 뒷모습이 그려졌다. 여느 시간 여섯시, 닫는 시간 열두시는 법으로 정한 건 아니었지만, 스스로 선택한 시간이었고, 우리 슈퍼만의 신성한 약속이었다. (169~170쪽)


슈퍼가 힘들어져 트럭을 몰고 섬으로 물건을 팔러 가는 아빠, 아카데미에 다녀온 후 절친 석희와 멀어진 은동, 조금이나마 힘이 되겠다고 시위를 하듯 대형마트에 가는 할머니. 그 마음을 알 것 같고 내일처럼 여겨졌다. 간절함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외면받는다고 느낄 때 얼마나 속상할까. 하지만 은동이는 연기에 대한 꿈을 포기하지 않고 부모님을 슈퍼를 그만두는 일은 생각하지 않았다. 할머니의 한글 배움도 마찬가지다. 할머니는 문예대회에 나가 하고 싶은 말을 시로 써서 상금을 받고 은동은 연기를 배울 수 있는 곳이 그곳만 있는 게 아니라며 마음을 다잡는다.


간당간당. 엄마의 입에서 최근에 많이 나온 단어가 머릿속에서 울렸다. 이 단어는 마치 종소리 같았다. 간당간당…… 간당간당. 위태로운 시간을 버티고, 살아내는 사람들의 머리에서 울리는 종소리. 그 종소리를 들으며 확신했다. 내일도 우리 필성슈퍼는 망하지 않았다고 선언하며 문 열기를 선택할 거라고 말이다. 세상을 향해 용감하게 양팔을 벌린 것처럼 슈퍼의 양쪽 문이 활짝 열릴 것이다. (259쪽)


소설 속 은동이네 가족에게 닥친 위기처럼 우리네 일상도 마찬가지다. 하루하루 위태롭게 휘청거린다. 모두 쓰러지지 않으려고 간절함으로 버티며 살아간다. 실패하면서 배우고 그 과정에서 다른 방법을 찾는다. 단 번에 성공하거나 행운에 당첨되지 않는다는 걸 안다. 그저 묵묵히 자신의 존재를 믿고 나아간다. 간절한 마음을 저버리지 않고 자신만의 빛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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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seol 2023-12-26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이 소개해주시는 책들 리스트에 담고 갑니다.

자목련 2023-12-27 11:11   좋아요 0 | URL
biseol 님, 즐겁게 만나시면 좋겠습니다^^
 
아침 그리고 저녁
욘 포세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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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간다. 존재의 이유를 찾으며, 닿을 수 없는 목표를 좇아서, 반복된 하루를 살아간다. 아침이 오면 눈을 뜨고 저녁까지 일하고 밤이 오면 잠이 든다. 그 많은 날들이 모여 인생이 된다.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언젠가 마주할 죽음, 인생의 끝이 있다는걸. 쓰고 보니 인생이 별게 아닌 것 같다. 정말 그럴까? ‘2023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욘 포세의 장편소설 『아침 그리고 저녁』을 통해 아주 소소한 것들로 채워진 인생을 만났다. 우리의 인생도 다르지 않다는 걸 배운다.


욘 포세의 소설은 처음 읽었다. 마침표를 찾을 수 없는 쉼표로 길게 이어진 문장이 당혹스러웠다. 혼잣말로 이루어진 그런 소설처럼 느껴졌다. 사실 소설은 간단하다. 할아버지와 같은 이름을 가진 '요한네스'의 탄생으로 시작되는 소설은 그의 죽음으로 끝난다. 그러나 그의 인생이 세세하게 그려지는 건 아니다. 태어남과 동시에 죽음을 들려주고 있으니까.


평생 어부로 살아온 요한네스는 아내가 죽은 후 혼자 산다. 7명 자녀는 각자의 삶을 살고 막내 딸 싱네가 근처에 산다. 여느 때와 같은 아침을 맞는다. 하지만 이상하게 가볍다고 느낀다. 혼자 맞는 아침은 익숙하지만 가벼움은 낯설다. 평소대로 커피를 끓이고 담배를 피우고 빵을 먹는다. 산책을 할까, 낚시를 할까 생각하다 산책을 나선다. 그리고 페테르를 만났다. 고기를 잡고 서로의 머리를 잘라주던 친구다. 그런데 그는 죽었다. 이쯤 되면 독자는 요한네스의 죽음을 직감한다. 그의 영혼과 페테르의 영혼이 만났다는걸. 다만 요한네스는 그 사실을 모른다는 걸 말이다.


죽은 자의 영혼이 등장하는 뻔한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죽은 페테르가 등장하고 그를 만나 과거를 회상하고 젊은 시절 한때 좋아하고 편지를 보냈던 여자를 만나고 힘겹게 살아온 지난날을 돌아보며 삶을 소중함에 대해 전하는 소설 말이다. 그런데 이 소설은 좀 다르다. 죽음에 중심을 두었다고 할까. 아무튼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힘을 지닌 소설이다. 왜냐하면 요한네스가 자신의 죽음을 인식하는 순간 나는 울먹이고 있었으니까. 예상하지 못한 감정이었다.


요한네스의 죽음을 처음 마주한 건 싱네였다. 아버지의 죽음을 확인하고 어찌할 바를 모른다. 의사와 남편에게 소식을 전한 후 시간을 견디기가 힘들다. 죽음이란 이런 것이다. 낯설고도 당황스러운 것.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고 남겨진 이들만이 아니라 죽은 요한네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죽음이 무엇인지, 어디로 가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였으니까. 그런 요한네스에게 페테르가 모든 걸 알려준다. 그는 죽음의 선배인 셈이다.


좋은가, 그곳은? 요한네스가 묻는다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어, 하지만 거대하고 고요하고 잔잔히 떨리며 빛이 나지, 환하기도 해, 하지만 이런 말은 별로 도움이 안 될 걸세, 페테르가 말한다 (132쪽)


죽음을 맞는 순간 지난 생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고 했던가. 욘 포세는 그런 생을 하루에 비유했다. 소설의 제목처럼 아침에 태어나 저녁에 죽는 것, 그것이 우리네 인생이다. 욘 포세는 철학적인 사유로 죽음을 말하는 대신 습관처럼 하루를 맞이하는 것으로 잠을 자다 조용하고 편안하게 요한네스의 모습으로 보여준다. 어쩌면 누구나 바라는 죽음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요한네스가 느낀 것처럼 우리가 겪을 죽음이 저마다 다르지만 차이가 없고 고요한 것이라면 좋겠다.


모든 것이 하나이며 서로 다르고, 하나이면서 정확히 바로, 그 자신이기도 하다, 저마다 다르면서 차이가 없고 모든 것이 고요하다 (134쪽)


먹먹한 감정을 뒤로하고 생각한다. 나의 저녁은 어디쯤 오고 있을까. 그 저녁을 어떻게 맞이할지 내가 떠난 후 나는 무엇을 남기게 될까. ‘사람은 가고 사물은 남는다,’ (43쪽)란 문장을 떠올린다. 가장 선명하게 죽음을 표현한 문장이다. 내가 사랑한 이들이 남긴 것들, 버리지 못한 물건들, 그 안에 그들이 있기에 쉽게 정리하지 못한다. 영원히 정리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죽음은 그런 것이니까.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욘 포세의 작품이 궁금하다면 첫 시작으로 『아침 그리고 저녁』을 만나도 괜찮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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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3-11-07 18: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같은 소설을 읽고 같은 느낌을 갖는다는게 너무 좋고 가슴이 뭉클하기까지 해요.
저도 이 소설 넘 좋았어요.
별 것 아닌데 많은 것이 떠오르고
결국 저의 죽음까지도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힘!
정말 맞아요.
아름다운 리뷰입니다♡♡♡

자목련 2023-11-08 14:16   좋아요 1 | URL
처음엔 읽기 힘들었어요. 작가의 호흡을 따라가기도 어렵고요.
완독을 목표로 하자 싶었는데 어느 순간 눈이 아파와서 놀랐어요.
‘자네가 사랑하는 건 거기 다 있다네,‘ 이 문장 안에 죽음이 다 담긴 것 같고. 두려움이 조금 사라졌다고 할까요. 묘한 소설이었습니다.



새파랑 2023-11-07 19: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두분이 좋다고 하시니 저도 이책을 욘 포세의 1번으로 찜해봅니다~!!

페넬로페 2023-11-07 19:19   좋아요 1 | URL
아마 제가 새파랑님보다 나이가 많아 이 소설에 더 깊은 공감을 했는지도 모르겠어요.

자목련 2023-11-08 14:17   좋아요 2 | URL
다른 책을 읽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 소설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새파랑 님은 어떻게 읽으실지 궁금하네요^^

자목련 2023-11-08 14:18   좋아요 2 | URL
저도 페널로페 님처럼 청년 새파랑 님보다 나이가 많고 사랑하는 이들과 이별을 경험해서 더 좋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서니데이 2023-11-07 2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오늘 많이 추웠는데, 따뜻한 하루 보내셨나요.
내일이 입동이라는데, 이번주 계속 추울 것 같네요.
이번 노벨문학상 수상작가는 전에 읽어본 책이 없어서 소개 먼저 읽어보고 찾아볼 생각이예요.
리뷰 잘 읽었습니다.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자목련 2023-11-08 14:19   좋아요 1 | URL
진짜 겨울이 시작된 것 같아요. 바람도 차고 낮에 만나는 햇살이 귀합니다.
서니데이 님,도 건강 잘 챙기시길 바라요^^
 
붉은 박물관 붉은 박물관 시리즈 1
오야마 세이이치로 지음, 한수진 옮김 / 리드비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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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을 잡기 위해 활약하는 형사들의 사건 일기를 다룬 프로그램을 시청할 때마다 형사의 끈기에 놀라고 감탄한다. 반면 법망을 피해 알리바이를 만들고 증거를 조작하는 범인의 노력에는 기가 찬다. 자신의 죄를 감출 수 있다고 믿는 생각이 딱할 정도다. 지금처럼 증거를 데이터로 정리하지 않았던 시절의 사건이 최근 범죄 이력을 통해 범인을 잡게 되는 경우엔 함께 안도하고 공소시효가 끝나 범인을 잡지 못하고 미제 사건으로 남는 경우는 허탈함에 속이 상한다. 오야마 세이이치로의 『붉은 박물관』은 그런 프로그램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다행히 소설에서는 모두 범인을 찾을 수 있어 후련했다.


제목인 '붉은 박물관'은 일본 경시청 관내에서 일어나 형사사건의 수사 서류와 증거품이 일정 기간 지나면 모이는 곳이다. 일정 기간이 지났다는 말은 이미 사건이 해결되었다는 뜻과 동시에 미제라는 것이다. 박물관의 주요 업무는 사건 관련 정보를 등록된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해 사건 정보를 체계적으로 관리한다. 그러니까 보관과 관리를 담당할 뿐 사건을 해결하는 곳은 아니라는 말이다.


박물관 관장 히이로 사에코는 조수 데라다 사토시에게 사건 기록을 읽게 만든다. 붉은 박물관의 직원은 단 두 명이다. 사건 현장에서 실수를 해서 박물관으로 온 사토시는 수사를 하지 못하는 상황이 답답하다. 그런 마음을 알았는지 사에코는 사건 재수사를 지시한다. 해결이 된 사건의 재수사라니, 이게 무슨 말인가. 그게 바로 이 추리소설의 재미다. 마침표를 찍고 끝낸 사건을 다시 살펴보며 허점을 찾고 진짜 범인을 찾는 일. 독자는 스스로 형사가 되어 소설 속 기록을 읽고 범인을 추리할 수 있다. 모두 5개의 사건을 만날 수 있는데, 나는 단 한 사건도 범인을 지목하기는커녕 도대체 왜 그런지 혼란스러웠다. 재미와 동시에 허탈감을 안겨주는 추리소설이다.


“나는 이 '붉은 박물관'이 법망을 피해 도망치는 범인을 막아 내는 최후의 보루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미궁에 빠진 사건의 증거품이 여기 오면 나는 그 사건을 한 번 더 검토하지. 물론 검토해도 아무것도 안 나오는 경우가 많아. 그러나 아주 드물게도 새로운 관점을 얻게 되는 경우도 있어. 그런 관점을 바탕으로 사건을 바라보면 해결하게 될 수도 있다. 나는 그 가능성에 기대를 거는 거야.“ (51쪽)


바늘을 넣은 빵이 유통되고 사장에게 돈을 준비하라는 협박 전화가 와서 장소에 도착했는데 돈 가방만 남고 사장은 사라진 「빵의 몸값」, 헤어진 여자친구가 상담을 요청해 만나기로 한 후 시체로 발견되고 범인을 추리해 복수를 하는 「복수 일기」, 교통사고 현자에서 25년 전 교환 살인을 했다고 고백하며 죽은 남자의 진실을 파헤치는 「죽음이 공범자를 갈라놓을 때까지」, 유치원에서 1박 2일 캠프를 떠난 사이 부모님과 이모가 화재에 목숨을 잃은 「불길」, 26년 전 사건과 동일한 방법으로 일어난 살인사건 「죽음에 이르는 질문」까지 5편 모두가 기발한 트릭이 숨겨져 있다.


특히 교환 살인을 다룬 「죽음이 공범자를 갈라놓을 때까지」는 생소하면서도 놀라웠다. 살인 청부가 아니라 상대가 죽이고 싶은 사람을 죽여주는 교환 살인, 사건이 일어날 당시 완벽한 알리바이가 있다면 용의선상에서 제외될 수 있다는 치밀함까지. 그저 화재로 인한 사망 사건으로 끝날 수 있었던 「불길」의 진실은 씁쓸함을 안겨주었다.


두 차례나 드라마로 만들어졌다고 하니 이 소설의 인기를 짐작할 수 있다. OTT에서 볼 수 있다면 좋겠다. 추리에 자신이 있다면 즐겁고 신나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완벽한 범죄는 없으며 반드시 범인은 잡힌다는 범죄 심리학자의 말이 떠올랐다. 사건을 여러 관점에서 보고 다양한 가능성을 생각하는 일, 추리소설에만 필요한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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