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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치고 정치 - 김어준의 명랑시민정치교본
김어준 지음, 지승호 엮음 / 푸른숲 / 2011년 10월
평점 :
폼 잡는 이론이나 용어 빌리지 않고, 일상의 언어로 정치를 이야기해보자고. 평소 정치에 관심 없는 게 쿨한 건 줄 아는 사람들에게, 그 놈이 그 놈이라는 사람들에게, 좌우 개념 안 잡히는 사람들에게, 생활 스트레스의 근원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정당들 행태가 이해 안 가는 사람들에게, 이번 대선이 아주 막막한 사람들에게,(30쪽)
폼 잡는 이론이나 용어로 이야기하는 정치는 솔직히 어렵다. 그래서 따분하고, 뭔 소린지 모르니 관심도 덜 갖게 된다. 게다가 우리 나라 사람들 정치 얘기하다보면 꼭 싸운다. 나의 경우에도 그런 경우가 있었다. 그러다보니 정치에 대한 대화는 덜 하게 된다. 특히 결혼한 이후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 가족들이 대부분이라, 보수 운운하는 어른들과의 의견 대립으로 날선 대화가 이어지는 게 싫어 그냥 덮고 넘어가는 경우가 더 많았다. 진실이 왜곡된 편파 보도된 언론으로부터 얻은 정보가 전부인 사람들에게는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판가름하기가 쉽지가 않다. "그럼 검찰이 거짓말을 한다는 것이냐?" "텔레비전에서 거짓말을 떠들리가 없지 않냐?" "뉴스를 보고 안 믿으면 어쩔 것이냐." 하고 말하면 더 이상 말을 이어가기가 쉽지 않다.
BBK, 도곡동 땅, 삼성 관련 글을 읽으면서는 정말이지 진실이 밝혀지기만을 바라는 마음이었다. 금융사기꾼이 한 나라의 대통령이라는 폄하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만 진실이 궁금하다. 또, 이 나라의 경제의 버팀목을 자처하는 삼성, 그들의 힘은 정말 대단하다와 그들의 범죄를 막을 수가 없는 이 나라의 한심함에 울컥한다. 삼성을 비호한 그들의 진실이 궁금하다. 이 세상의 중심에 돈이 최고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씁쓸하다.
사실 김어준총수의 말투가 별로인 나는 그가 매력적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그의 사고가 얼마나 재미있는가를 발견하고는 나의 우둔한 머리로는 생각지 못할 것들에 반했다.
검찰이 공무원이라서, 직업인으로서 가질 수밖에 없는 승진 욕구, 생활 욕구를 정치가 아닌 방법으로 해소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는 거야. 일반 고위 공무원들을 생각해봐. 은퇴하면 관련 기업에 쉽게들 취직한다고. 하지만 검찰은 어디로 가. 그 진로라는 게 생각보다 제한되어 있어.(중략)
돈 많이 주고 노후 보장해주고 독립시켜놓으면 인간은 스스로 명예로운 일을 하려고 한다고. 거기서 존경을 얻고자 한다고. 검찰 개혁하면 자꾸 거대 담론을 얘기하는데, 그들이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뭘 얻고자 하는지, 그들이 스스로 뭘 빼앗겼다고 생각하는지, 뭐가 아쉬운지, 인간적으로 어떤 자괴가 있는지, 그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133쪽)
우린 섬이 아닌데도 섬처럼 사고하잖아. 그럴 수밖에 없어. 삼면이 바다이고 나머지 한 면은 벽이니까. 분명 육지로는 이어져 있는데 '프랑스에 차를 타고 대륙을 횡단해 가봐야겠다.', 이런 상상이 불가능하잖아. 그래서 항상 우린 세계를 우리와 별도의 공간으로 인지하지. 세계는 서울로, 서울은 세계로. 이런 구호, 조금만 생각해보면 웃긴 말이라고. 그럼 우린 활성인인가.(웃음) 우리도 세계 속에 있어. 그런데 자꾸 세계로 가자고 하잖아. 세계가 우리만 달랑 빼놓고 나마지들끼리 모여 따로 특설 링 만들었냐고.(웃음) 그런데 우린 그렇게 생각하거든. 섬나라 의식이지.(204쪽)
통일을 이야기하면서 우리의 섬나라 의식 극복을 이야기하는 대목에서 이 사람의 시야가 얼마나 넓은지를 알았다. 이제부터는 그의 말에 좀 더 귀를 기울이게 될 것 같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그랬다. 우린 정말 섬이 아닌데 섬처럼 사고 있었던 것이다. 섬나라 의식을 극복할 수 있다면 우리의 세계에 대한 인식은 넓어질 수밖에 없겠다 싶었다. '서울역에서 기차 타고 평양 거쳐 모스크바 지나 파리까지 가는 상상'이 이루어질 수 있다면 좋겠다.
그럼 진보 진영은 어떻게 변화해야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는 거야?(220쪽)
라는 질문에 김총수가 답한다. "자신들이 설득할 대상과 가장 먼 언어로 말하는 이들이 진보 정당 사람들이라는 거./ 진보 정당이 구사하는 언어는 이미 자기들이 설득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만 알아먹는 언어라고./ 상대가 알아먹어야 메시지인 거지, 상대는 못 알아먹는데 어떻게 메시지냐고. 혼잣말이지. 정치를 혼잣말로 하면 어떡해."라고 말하는 그의 대답은 진보 진영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처음 만난 상대 앞에 재무 계획서와 신혼방 설계도를" 꺼내 놓는 진보군으로 비유하는 그의 말이 너무 옳아서 재밌는 글이었음에도 혼자 슬퍼하고 있었다. 그의 계획서와 설계도를 집어 와서 표지만 화려하게 바꾸고 총천연색 컬러로 인쇄한 보수 군의 이야기, 거기에 넘어간 국민 양. 이 상황의 적절한 비유라 너무나 슬펐다. 우린 그렇게 속았던 거라고.
난 사실 재벌들에게 국가 경제를 위해 일하라고 요구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다고 생각해. 기업은 시장의 룰을 지키는 한도 내에서 합법적으로 열심히 일해 이윤을 남기면, 그걸로 제 소임을 다한 거라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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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은 국가를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고, 그걸 요규해서도 안 되고, 다만 그들이 시장의 룰을 지키며 각자의 욕망에 충실한 것이 결과적으로 국가에 이익이 되도록 시스템을 건강하게 만들면 되는 거라고, 난 생각해. 그러니까 특정 기업이, 그 기업의 구성원들에 위해, 자발적으로 사회적 책무를 스스로에게 부과하는 건 대단히 반가운 일이지만, 그걸 국가 단위에서 요구하는 건 그 폐해가 크다, 난 그렇게 생각하는 쪽이야.(281쪽)
나의 생각도 그렇다. 기업이 시장의 룰을 지키며 합법적으로 이윤을 남긴다면 삼성과 같은 거대 재벌이 나라가 망한다는 망언은 하지 않을 것 아닌가.
구조를 장악하는 게 기득권이야.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느냐. 민주당처럼 이명박이 흘린 거 주워 먹어야 하느냐. 진보 정당처럼 광야에서 홀로 외쳐야 하느냐. 아니라는 거지. 그 두 가지 대처 모두 그 거대한 구조에 이미 압도당한 자들의 패배적 반응이라는 거지.
구조에 저항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구조에 맞부딪쳐 깨는 방법과 새로운 구조를 만들어버리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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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담론에 매몰되면 안돼. 물리적인 구조만 구조가 아니야. 그거야말로 보수의 관점이야. 본질만 정확하게 이해하면 그런 기회는 반드시 온다.(302쪽~303쪽)
역사는 나선형으로 진보한다고 했던가. 퇴보되었던만큼 각성하고 그만큼 더 발전될 수 있다면 지금의 현재가 부정적이지만은 않을 것 같다. 이대통령의 집권으로 우리 나라의 민주주의를 다시 되돌아볼 시간을 갖게 되었고, 그런만큼 우린 더 발전된 민주주의를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일 수 있겠단 생각을 하니 희망적이다. 긍정적이다. 노무현대통령이 이루어놓은 자유민주주의를 되돌려 놓은 이대통령을 생각한다면 우린 다시는 이런 실수를 저질러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얻었다. 그러니 우리는 더 멀리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구조를 장악한 기득권을 향해 맞부딪쳐 깨는 것과 새로운 구조를 만들어 저항하면 된다는 김총수의 말이 희망적이란 생각을 한다. 작은 구멍하나가 큰 벽을 허물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작은 노력들이 쌓여 지금보다 훨씬 더 괜찮은 나라가 될거란 희망적인 생각을 한다. 꼭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