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눈물 훔치며 먼저 읽었다.
나는 읽어야지하면서 자꾸만 미루었다.
더 이상 미루지말고 읽어야 한다.
슬프다는 것, 아프다는 것, 끔찍하다는 것 그래도 그것들에 맞서야 한다.
그래야 끝까지 이길 수 있게 응원하고 힘을 보탤 수 있을테니까 말이다.

벌써부터 먹먹하다. 그래도 끝까지 읽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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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서 2017-01-20 16: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김탁환의 소설이라 읽고 싶은데 저도 같은 이유로 미루고 있습니다. 다른 책, 세월호 그날의 기록을 전자책으로 들으면서 건우 엄마 얘기에 먹먹해지더군요. 끝까지 읽어내서 힘을 보태야 한다는 마음으로 읽다가 멈추고 진정하기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

꿈꾸는섬 2017-01-20 16:05   좋아요 1 | URL
눈물없이는 도저히 읽을 수 없는 책이에요. 그래도 읽어야죠. 부지런히 읽고 울분을 토해야할 것 같아요.

단발머리 2017-01-23 09: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도서관에서 빌려와서 이 책 집에 있는데 집어 들기가 너무 힘들어요. ㅠㅠ 그래도 읽어야겠죠?

꿈꾸는섬 2017-01-24 07:54   좋아요 0 | URL
쉽게 집어 들 수 없지만, 그래도 읽어야죠. 같이 울어요. 우리.ㅠㅠ
 
나쁜 페미니스트 - 불편하고 두려워서 페미니스트라고 말하지 못하는 당신에게
록산 게이 지음, 노지양 옮김 / 사이행성 / 2016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눈오는 새벽,
금새 눈이 쌓인다.
이 새벽에도 바쁘게 하루를 시작하는 이들이 있다.
남편도 그중 한 사람, 남편 데려다주고 돌아오는데 바쁘게 길을 내려오는 아주머니는 어딜 가시는지 눈길을 종종거리며 내려오고 있었다.

록산 게이는 페미니스트가 아예 아닌 것보다는 나쁜 페미니스트가 되는 편이 훨씬 낫다고 믿는다고 했다.

페미니스트의 요건에 부합되지 않는 나같은 경우 (경제적 독립을 못하는 나, 가사노동이 주업이고, 남편은 함께한다기보다 돕는 형태이고, 주기적으로 제모를 하고, 화장품구입에 관심이 많고, 군살이 빠졌으면 싶다) 어디가서 페미니스트라고 밝히지도 못할뿐더러 조용히 침묵하는 경우가 많다.

어린시절부터 여자다움에 대한 강압적 교육을 받았었다. 기집애가, 여자가 어디 감히, 뭐 이런 얘기는 정말 많이 들어왔다. 그래서 늘 소심하고 있는듯 없는듯 존재감도 없었다. 아들로 태어나지 않았다고, 뭐하나 달고 나왔어야 했다는 소리를 끊임없이 들으며 자랐다. 누구 앞에 나서서 말하는 일이 가장 어렵고 힘들었다. 아마도 자존감도 제로였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이런 얘기를 하면 다들 안그래 보인다며 믿을 수 없다고 한다. 믿든 안 믿는 사실이다.

그래서 내 아이들에겐 특정한 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심어주지 않으려고 하는데, 아들에게 늘 여자는 보호해야해, 남자보다 약하잖아, 여동생에겐 특히 친절해야해. 하고 말한다. 나란 여자는 양성평등이 이루어져야한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보호받고 싶어하는 어쩔 수 없는 여자인 것 같다. 난 애초에 페미니스트와는 거리가 먼 것 같다.

결혼전까지 친정 오빠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늘 오빠는 우선권이 주어졌고, 심지어 독재자처럼 굴기까지 했다. 물론 내 위의 언니 둘은 오빠가 요구하는대로 다 들어주었고 그런 상황에 대해 불평하지 않았고 당연히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예를들면 이런 거다. 오빠가 배가 고프다고 말하며 라면을 끓여 오라고 하면 언니들은 그냥 끓여준다. 하지만 나는 싫어하고 거절한다. 그러면 오빠는 내게 온갖 기분 나쁜 말을 쏟아낸다. 내가 배가 고파 라면이 먹고 싶을때 나에게 라면을 끓여준적이 한번도 없고 내가 직접 끓여 먹으니 오빠도 직접하라고 한다. 몇번의 다툼 끝에 나와 단둘이 있을때는 직접 끓여 먹으며 내내 궁시렁거렸다. 나는 못되게도 못들은척 했다. 하지만 내가 볼때 오빠는 정말 못됐었다. 못되게 키운 부모님 탓이 가장 크다. 그래서 지금 새언니가 제일 고생이다.
새언니와 연애할때는 매일 아침 저녁으로 지극 정성을 다하더니 결혼이후에는 대접만 받으려고 굴어서 새언니가 많이 힘들어 했다. 그래도 그것 다 받아주고 참고 사는 언니가 정말 대단하다.

남자이기때문에, 여자이기때문에, 뭐 이런 얘기 듣는 것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결혼해서 애 낳고 살다보니 남자와 여자 서로가 존중하며 사는 게 최고인 것 같다. 둘의 생리적인 관계가 다르므로 다를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고 서로 배려하고 양보하고 챙겨주며 살았으면 좋겠다.
내가 하기 싫은 일은 상대도 싫고, 내가 받은만큼 갚아야 할 것이다. 복수말고 은혜에 대한 보답.
아이든 여자든 남자든 노인이든 모두가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 서로 존중하며 사는 것부터가 시작인 것 같다.
어쨌든 나쁜 페미니스트라도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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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7-01-20 07: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사노동을 ( 그 끊이지않는 돌봄의 일을 ) 참 보잘것 없이 만들어요 . 사람들이 말이죠 ..어디선가 돈을 벌어와야만 대접을 하니 .. 그것을.잘 지키는것도 일인데 .. 그 이상한 죄책감 때문에 주눅들고 상처받아요 . 아..누군들 꿈 섬님 말에 동의 안할까 ..싶어져요 . 이시대를 산다면 다들 , 동감하지 싶고요 . ^^ 잘 읽고 가요!

꿈꾸는섬 2017-01-20 16:08   좋아요 1 | URL
일도 하면서 가정도 잘 꾸려가시는 많은 여성분들에겐 한없이 부끄러워요.
공평한 것, 평등한 것을 생각하며 지내게 되네요.

새벽에 예뻤던 눈의 흔적이 사라졌어요.ㅜㅜ

[그장소] 2017-01-20 20:56   좋아요 0 | URL
그 부끄러워하는 것 , 안하시면 좋겠어요 . 저도 잘 못하지만 ..ㅎㅎㅎ
당당한 일로 , 그러자고..^^
생색을 넘 안내서 그런지, 당연한줄 알잖아요 .
집에만 매여사는것도 많은 포기가 있는건데 ..

마립간 2017-01-20 08: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가사 노동 중, 부엌 일의 상당 부분은 안해가 담당하지만, 육아의 상당 부분은 제가 담당합니다. 저는 나름 보람을 느끼는데, 제 주위의 상당수의 남자들은 이해를 못하더군요.

꿈꾸는섬 2017-01-20 16:10   좋아요 1 | URL
마립간님처럼 가사와 육아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남성분들이 얼마나 될진 모르지만 여튼 가정은 함께 꾸려가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자발적으로~^^

갱지 2017-01-20 10: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심한 듯 하지만 할 말을 잘 알고 하는 분 :-) 전 이 시대에 페미니스트 라고 쓰고 써먹는 자체에 좀 문제가 있지않나라고 생각하는 쪽이지만, 어쨌거나 당신의 글을 지지해요-.

꿈꾸는섬 2017-01-20 16:11   좋아요 1 | URL
갱지님 반갑습니다. 제 글을 지지해주신다니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종종 뵈어요.^^

순오기 2017-01-20 11: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남아선호와 남존여비가 투철하던 때를 거친 세대는 알게 모르게 그런 부당함에 길들여졌지요~나도 울오빠 밥차려주면서 꼭 한 숟갈 남긴 밥을 먹은 기억 때문에...애들이 남긴 밥도 안 먹는데 시할머니가 꼭 당신 밥 남겨 먹으라고 주는 게 고역이었어요.ㅠ 시할머니 마음은 알지만 도저히 견딜 수 없어 남편과 시누이에게 말하고 도움을 청해서 그 후엔 안 먹어도 됐어요. 아~ 댓글 쓰면서도 그때 일이 생각나 눈물나네...ㅠㅠ

꿈꾸는섬 2017-01-20 16:15   좋아요 1 | URL
순오기님 정말 힘드셨겠어요.ㅜㅜ
그래도 남편과 시누이의 도움으로 고역에서 벗어났으니 다행이죠.
저도 옛날 생각하면 특히 할머니 살아계셨을때 생각하면 울컥울컥해요. 그땐 정말 그렇게 사는게 너무 싫었거든요. 집 떠나는 게 소원이였어요.ㅜㅜ
그래도 지금은 잘 살고 있으니 다행이다 싶어요.

서니데이 2017-01-21 10: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분홍색 페미니스트 다이어리에 이렇게 써있어요.
˝ Good girl go to heaven
Bad girl go to everywhere˝

한 세대에 남은 선입견이 세대가 바뀐다고 금방 없어질 것 같지는 않아요. 부당한 처사에 대해 처음에 이의를 제기한 사람은 비난을 받을수도 있어요. 나중에 누군가 그러한 부당함을 겪지 않게 된다면, 그건 그보다 먼저 불이익을 감수했던 누군가가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할 것 같아요.

잘 읽었습니다.
꿈꾸는 섬님, 오늘 날씨가 추워요. 따뜻하게 입으시고 감기조심하세요.

꿈꾸는섬 2017-01-21 10:27   좋아요 1 | URL
ㅎㅎ토요 아침부터 멋진 댓글 감사해요.^^
춥지만 몸도 마음도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단발머리 2017-01-23 10: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이 책 앞부분만 읽었는데 꿈섬님 리뷰 읽다보니 다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페미니즘에 대해 말하고 생각하면서 경제력이 없는 스스로에 대해 많이 위축되기는 해요. 어느 정도 어쩔수 없다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조금 억울하기도 하고.. 조금 슬프기도 하고요...
생각할 수 있도록 해주는 좋은 글 감사해요.
참, 그 구박 속에서도 오빠 라면을 끓여주지 않으셨다니...
꿈섬님은 진정한 페미니스트!!

꿈꾸는섬 2017-01-24 07:59   좋아요 0 | URL
아, 제가 참 많이 못 됐어요.
결혼 전까지 친정에서 유별나고 못됐다고 엄청 욕 먹었어요. 어차피 먹은 욕 꿋꿋하게 견딘거죠.ㅎㅎ


이 책의 뒷부분은 영화 얘기였는데, 인종관련한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되었어요. 록산게이에게 폭넓은 사고를 배운 느낌이에요.
 

황인숙 시인의 시집 <못다 한 사랑이 너무 많아서>
읽고 또 읽어도 좋아서 다시 집어들었다.

카메라로 찰칵, 하고 북플로 쉽게 올릴 수 있어서 정말 편하고 좋다.

두편의 시를 이곳에 남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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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7 22: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17 22: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17 22: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17 22: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17-01-19 08: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좋네요.
이 시집 찜해놓았는데 (표지가 예뻐서 ㅎㅎ) 이런 분위기군요.
전 요즘에 시를 안 읽는 메마른 시기라 꿈섬님 방에서 시를 읽고 갑니다.
꿈섬님~~~ 굿모닝*^^

꿈꾸는섬 2017-01-19 09:36   좋아요 0 | URL
단발머리님 굿모닝~♡
ㅎㅎ함께 시 읽던 시간이 떠오르네요.^^
 
라요하네의 우산
김살로메 지음 / 문학의문학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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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는 밤은 그 어느 날보다 즐겁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침대 머리맡에 놓아둔 책을 읽는 습관은 꽤 오래 되었다. 물론 어느 날에는 술이 잔뜩 취해 읽지 못했던 날도 있었겠지만 그렇지 않은 날은 한편의 시든 한편의 에세이든 혹은 단편소설 한편을 읽으며 하루를 마무리 하곤 하였다.

요 며칠 밤은 <<라요하네의 우산>>을 읽는 재미에 빠져 있었다.

사실 너무 재미있어서 단숨에 읽어버릴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매일 한두편씩 읽는 재미가 솔솔하여 아껴가며 읽었다.

이 소설집의 첫번째에 실린 <알비노의 항아리>를 읽고는 '우와'하고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첫장을 펼쳐 읽는데 깔끔한 문장이 먼저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게다가 문장을 이루는 단어들은 정겹기도 한데, 지적이기까지 하였다.

 

또각또각 계단을 내려가는 여자의 발자국 소리가 퍼덕이는 활어처럼 다분히 육감적이다. 봄은 계단을 내리찍으며 걷는 여자의 하이힐 소리로부터 오는 건지도 모른다. 속수무책인 내 몸속 피톨들은 물오른 새순처럼 탈출하고 싶어한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는 게 낫겠다. 엉덩이를 가살스레 좌우로 탕탕 튕기며 단란주점으로 출근하는 앞집 여자는 나를 환장할 것 같은 상상의 쾌락 속으로 몰아넣는다.(9)

 

평소 알던 작가의 사적인 글을 생각해도 얼마나 논리정연하며 지적인 글을 써왔는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건 소설인데, 소설은 평소의 글과는 사뭇 다른데, 하며 자꾸 무언가를 더 발견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이내 한편의 소설을 읽고는 너무 재미있어서 바로 두번째 편을 읽고 세번째 네번째 편을 단숨에 읽기 시작했다.

 

예전 소설이론을 배울때 소설은 있음직한 이야기라고 했었다. 허구라는 것이지만 우리가 모르는 어느 곳에서는 분명 소설 속의 인물이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이 가상의 인물을 그려낸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하지만 김살로메 작가님의 소설 속 인물들은 정말 생생하게 살아 있다. 살아 있다 못해 내 옆집 혹은 어느 곳 가까운 곳에 이 사람들이 살고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 정도이다. 혹은 나 자신의 모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감히 생각도 못했던 인물들과 이야기 그리고 사건들은 흥미와 재미 그리고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알비노 항아리>에서 아내는 보통 사람과 다르다. 알비노증후군을 앓고 있는 아내, 그녀의 생리혈과 임신중 소변을 요구하는 시어머니, 그 중간에 끼인 남편. 미신을 믿는 시어머니는 시아버지의 결핵 치료를 위해 그녀의 생리혈과 소변을 요구하는데 내가 그녀였다면 나는 도저히 살 수 없었겠다 싶었다. 그리고 교수와 시간강사 사이에서 있을법한 사회적으로 도덕적으로 문제가 되었던 교수의 갑질 사건 등이 다른 줄기로 들어 있다. 이 소설에서 정말 대단했던 건 시어머니의 끝없는 욕정에 대한 부분이었다.

 

  "니엄마 욕심 때문에 안 그라나. 몸이 좀 좋아졌다 싶으면 나를 못살게 안 하나. 환갑 넘긴 나이에 무슨 영화를 볼 끼라꼬 그카는지 모르겠다." 

  알 만했다. 어머니는 그 나이에도 아직 욕정을 버리지 못했다. 아버지 병구완 하느라 좋은 시절 다 보내다가 아내의 피로 재미를 보는가 싶었는데 재발한 아버지 병 때문에 안달이 났던 것이다. 어머니는 아내의 신체적 특징을 정력제로 확신하고 있는 셈이었다.

  여자든 남자든 병적으로 섹스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무덤에 들어가는 순간까지 그 감정을 자제하지 못한다고 하더니 어머니가 그 짝이었다. 아버지의 오랜 지병보다 어머니의 욕정이 더 중병처럼 느껴졌다. (29~30) 

 

<암흑식당>에서는 인간의 감춰진 욕망을 보았다.

  어느 날 우연히 모니터를 보던 김은 예사롭지 않은 장면을 발견했다. 사람들은 어둠 속에서 대체로 진실했다. 음식을 빨리 먹는 사람, 특정 음식을 탐하는 사람, 아예 식사에는 관심이 없고 동행인의 몸에만 관심 있는 사람도 있었다. 동행인의 허벅지를 더듬다말고 바투 붙어 허겁지겁 섹스에 몰입하는 치들도 있었다. 어둠 속 피사체들에게서는 불허한 것을 탐하는 자의 희열 같은 게 묻어 나왔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너무 빨리 허위의 가면을 벗어던졌다. 바꾸어 말하면 빛의 세계는 인간에게 다양한 가면을 쓰게 만든다는 것을 의미했다. 김으로서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자신의 취미생활인 단편영화 작업에 이 암흑식당이 좋은 소재가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39~40)

 

타인의 시선에 자유로운 사람이 얼마나 될까,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여 행동할 수밖에 없지 않는가.

암흑식당을 찾은 사람들의 본능적인 행위를 관찰하는 김, 그 자체가 소설적 인물 그 자체이지 않은가 싶다.

 

김은 집착처럼 화면에 몰입하고, 여자는 체념처럼 숫제 남자와 뒤엉킨다. 여자의 낯빛이 돌아온다. 상대에 대한 혐오와 자기연민이 동시에 묻어나는 얼굴이다. 여자는 어떻게 하든 밀린 월급을 받아야 했다. 좀 더 다급했던 여자가 타협안으로 내놓은 것이 암흑식당이었다. 이 특이하고 흥분된 제안을 받아들인 사장은 군말 없이 여자에게 밀린 월급을 지불했다.(59)

 

<라요하네의 우산>은 패키지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공금횡령 사기죄로 교도소에 들어간 남편으로부터 면회신청을 하고 접견 거부를 받는다면 어떤 기분일까? 시메트리 증후군을 앓는 사람의 상황은 어떠할까? 그 주변에 함께 있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과연 나는 이 모든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이 많았다.

상냥함과 활발함으로 가장한 샌드리의 지나친 친절은 얼마나 부담스러울까? 모든 균형잡히지 않은 걸 견디지 못하는 누군가가 내 옆에 있다면 나는 과연 그 사람을 이해하고 잘 지낼 수 있을까?

 

라요하네 들판에 히스꽃이 만발했다. 정확히 히스인지 아닌지는 알 길이 없었다. 거칠고 푸른 잔잎 사이로 진분홍 꽃대가 몰려서 피어나고 있었다. (중략) 폭풍의 언덕을 맨발로 쏘다니던 캐서린과 히스클리프를 상징하는 곷. 지리적으로는 그곳과 먼 곳이지만, 폭풍의 언덕을 감쌌던 히스 덤불을 라요하네 들판으로 옮겨 놓은 것 같았다. 울창하게 꽃대를 밀어내는 히스꽃 무리에서 지미는 히스클리프의 채취를 맡기라도 하듯 지그시 눈을 감아 보기도 했다. 어쩐지 라요하네의 음울한 구름, 매서워진 바람마저 폭풍의 언덕을 닮아 있는 것만 같았다.(71)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에서 폭풍의 언덕을 만나다니, 어찌나 반가웠는지 모르겠다.

 

"중학교 땐가, 자기 앞의 생 있지, 에밀 아자르 소설."

콜라 속 레몬을 혀끝으로 밀어내며 샌드리가 말했다.

"읽은 적은 있어. 근데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아."

"거기에 모모의 우산이 나와. 걔 이름이 아르튀르야. 외다리로 펄럭이는 어릿광대 인형, 모모의 파트너지. 그 장면에서 많이 울었어. 엄마 생각에......"

"그 장면이라면 기억나. 아르튀르는 모모의 분신과도 같으니."(82)

게다가 자기 앞의 생의 모모와 아르튀르까지 만나다니 읽었지만 잊고 있던 책들을 다시 꺼내 읽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귀휴>는 너무 아프고 슬퍼서 읽는 동안 마음이 좀 먹먹했다. 아버지는 귀휴를 나올때 자신이 일하는 농장의 허브를 가져오지만 정작 딸은 비염으로 냄새를 못 맡는다. 어린시절 살인사건의 주범자로 교도소에 들어간 아버지의 귀휴, 어린 딸을 두고 도망간 어머니, 그들을 키운 건 할머니였고, 아버지와 동업하던 삼촌은 어린 조카들 거두기보다 자신의 몫을 챙기기 바쁘다. 어린 동생은 외로움에 굶주려 도벽이 생기고, 병적인 도벽은 사회생활을 어렵게만 만든다. 하지만 정작 가장 안쓰러운 건 아무래도 소설 속 '나'인 그녀인 것만 같다.

 

"나레이터 모델해서 밥벌이가 될 것 같애? 그것 말고도 여행 도우미로 뛰고 있어. 적성에 맞아. 쉽게 말하면 출장 가는 유한남 따라가서 비위 맞춰주는 것. 우리 회사가 따로 텔레폰 클럽이라고 만들어서 운영하고 있는데 나도 가입했어. 그만한 값어치도 없는 인간한테 빠져서 허우적대는 언니보다는 내가 더 솔직하지 않을까. 제발 좀 그 작자한테서 빠져 나올 수 없어?"(125)

 

너는 쉽게 나를 떠나지 못할 거야. 그의 눈빛이 말한다. 나는 애써 그의 눈빛을 피한다. 창밖을 내다본다. 초여름의 어스름한 바람을 타고 느티나무 잎들이 흔들린다. 맡을 수 없는 온갖 향기들이 창을 통해 들어오는 것 같다.(126) 

 

인생이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것만큼 슬픈 일이 어디 있을까.

 

 

<피의 일요일>의 시아버지와 며느리 이야기는 세상에 이런 일이 정말 있을까 싶을 정도로 끔찍하다. 며느리를 하대하는 시아버지와 적당히 자신의 할 도리를 한다는 며느리, 이 둘 사이에는 진심어린 마음이 없다. 이런 가족관계는 정말 끔찍할 수 밖에 없다.

"야, 9번 틀어 봐라. 9번!"

완전 종 대하듯 했다. 자신의 엉덩이 밑에 리모콘이 숨어 있어도 찾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다분히 의도된 며느리 괴롭히기였다. 아무리 봐도 가학 증세가 있는 영감탱이였다.(145)

 

누구편을 들어줄 수가 없다. 이 둘 모두가 잘못되지 않았나.

마지막 장면을 읽는데 안타까움보다 어찌 이리 처신하나 싶은 마음이었다.

 

 

<강 건너 데이지> 엄마의 남성편력에 지칠대로 지친 딸의 이야기라고 해도 될까. 듀란듀란의 존 테일러를 검색해서 찾아보았다. 아, 기억난다. 존 테일러.

단 한 순간이라도 개츠비의 사랑을 받는 데이지가 될 수 있다면. 강 건너 불 켜진 데이지 집을 애틋하게 바라보는 개츠비의 장면에서는 심장이 오그라들듯이 쿵쾅거렸다.(중략) 개츠비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데이지를 꿈꾸면서 잠들고 싶었다. 저 멀리 강 건너 불빛이 어른거리고, 개츠비가 바라보는 가운데 정원을 거니는 데이지라니. 상상만 해도 가슴이 저렸다.(179)

 

개츠비에게 사랑받는 데이지를 생각하면 한없이 부러운 생각이 들었었는데 사실 이 인용문 뒤의 이 이야기는 상상조차 하기 싫은 내용이라 줄인다. 궁금하다면 책을 찾아 읽어 보기를.

 

 

<누가 빈지를 잠갔나>에서 '빈지'가 무슨 말인지 몰랐다. 나에게도 '빈지'에 대한 추억이 있다. 어린시절 할아버지는 동네에서 구멍가게를 하셨다. 가게문을 닫기 위해 사용했던 것이 빈지라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기다란 널판같은 것을 가게 벽면에 한짝씩 끼워 넣어 닫는 옛날식 셔터문인 셈이다.

이 소설에서는 잊고 지내던 사람을 정보통신의 발달로 되찾은 이야기이다. 서로의 과거에 대한 기억이 저마다 다르다. 내가 생각했던 것을 타인은 다르게 기억하고 있고, 내 기억 속에 없는 일을 타인은 기억한다.

 

멋대로 그 꽃을 기억꽃이라 부르기로 한다. 음지나 습지의 기억일수록 잘 살아나고 확산된다. 처음엔 한 두 잎으로 시작했겠지. 하지만 돌봐야 할 저마다의 기억을 윤색하고 다듬는 과정에서 저토록 많은 꽃잎으로 늘어났겠지. 꽃말조차 매혹과 비난이라나. 인간사에서도 매혹과 비난은 이음동의어가 아니던가. 매혹과 비난의 꽃말이 왜 같은 자리에 있는지는 세파를 겪다 보면 절로 알게 된다. 수 겹의 잎으로 피어나는 꽃잎은 한장 한 장 각기 다른 기억의 조각보를 지닌다. 같은 상황에서 다른 조각보를 만드는 사람의 기억처럼 얇디얇은 꽃잎도 각자마다 다른 기억을 품는다. 라넌큘러스 꽃잎이 벌어진다. 잎 얇고 빛깔 많은, 수 백 개의 잎으로 번지는 저 기억의 낱 잎들. 그 잎들은 각자가 만든 틀 안에서 재편집되고 수정되고 확산된다. 그렇게 기억의 꽃잎은 피고 진다.(213)

 

<왼손엔 달강꽃> 이 소설은 결혼과 연애에 대해 되돌아보는 소설이었다.

 

P가 떠나고 결혼 적령기가 되었을 때, 먼 친척이 주선해준 열한 살 차이나는 남편을 여자는 운명처럼 받아들였다. 여자는 물질절 풍요가 보장된다면 다른 모든 것은 양보할 수 있다는 자신만의 결혼 원칙을 세웠다. 여자가 꿈꾸는 물질적 풍요는 소박하기 이를 데 없었다. 먹고 입고 자는 데 지장 없는 수준이었다. 편부모 슬하에서 가난하게 자란 여자다운 원칙이었다. 세상 모든 결손 가정이 불행한 것은 아니겠지만 그것이 가난의 밑밥 정도는 된다고 여자는 생각했다.(226~227)

 

결혼이란 자신이 세운 원칙대로 이루어지진 않는 것 같다. 막상 살아보면 행복한 일도 있겠지만 살기 힘든 다른 이유들도 무수히 생겨나기 마련이니 말이다.

결혼 전에 만났던 과거의 남자를 현재에 만난다는 것, 끊임없이 소식을 전해오고, 만나기를 청해오고, 나에게 그런 경험은 없지만 어쨌든 쉽진 않을 것 같다. 나의 경우엔 다시 만나고 싶지 않다. 현재의 삶에 만족하기 때문일 수도, 현재의 삶이 흔들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 소설 읽고 자던 날 꿈에 과거의 남자가 나타났다. 다시 만나면 친구처럼 지낼 수 없을 것 같은데 우리는 다정한 친구처럼 서로의 안부를 묻고 있었다. 그저 꿈이었는데도 간담이 서늘한 느낌이 들었다.

 

 

<아폴로를 씹었어>는 내게 신선한 이야기였다. 새터민들의 삶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 TV방송에도 많은 새터민들이 나오지만 한번도 시청해보지 않았을만큼 무지하고 관심이 없었기에 이 소설은 자체로 신선한 충격일 수 밖에 없었다. 

 

나는 미영 씨 뭐해요, 라는 그녀의 맨처음 물음에만 대답했다. 아폴로를 씹고 있다고. 순정한 시절을 되새김질하고 있다고, 라는 말은 속으로만 말했다. 오희는 아폴로가 뭐예요? 그걸 왜 씹어요? 하고 수화기 너머로 말했다. 궁금해서 미치겠으면 아폴로를 씹으러 오라고 내가 웃으면서 말했다. 물론 그 대상이 명지라도 상관없을 터였다.(272)

 

<아빠는 시인이다> 아빠는 삼류시인이다, 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아들이 시인 아버지와 그 주변 시인들에 대해 보고 들은 것들을 전달한다. 이 소설은 솔직히 좀 웃프다. 문단의 내로라하는 문인들이 아닌 이상 글을 쓰겠다고 나선 이들 모두가 삼류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내로라하는 문인들도 사실은 우리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던가.

 

나는 속으로 있는 힘껏 소리를 질렀다. 사람들아, 시집 좀 사가라. 그것은 작가 김훈을 흉내 낸 말이었다. 지금은 유명 작가가 되어버린 김훈의 '자전거 여행' 에세이집 서문에서 솔직함으로 버무린 그 글을 읽었을 때 얼마나 웃음이 나오던지. 다시 한 번 나는 그 에세이집 서문을 흉내 내며 소리쳤다. 물론 속으로. 사람들아, 빨리 와서 시집 좀 사가라! 이 세상에서 가장 소박하고도 성실한 시인의 시집을.(301)

 

글쓰기의 고된 작업을 인정받는 것은 아무래도 많은 독자들이 작품을 읽어주는 것일 것이다. 쓰고 고치고, 쓰고 고치고를 무수히 거쳤을 소설집을 받아들고, 그 노고가 느껴지고 심지어 숭고함마저 느껴졌다.

첫소설집이라고 하기에 서툰 흔적이 없는 노련하고 숙련된 소설가의 심지가 느껴지는 소설집이었다.

그동안 우리가 익히 알고 있고 배워 온 한국을 대표하는 소설들에 비춰 뒤쳐지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 그런 소설집이었다.

소설 한 권이 나오기까지 오랫동안 다듬고 또 다듬어 왔을 것을 생각하니 김살로메 작가님께 감사하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

재미있게 읽었고, 읽는 내내 감탄하고, 감동도 받았으며, 다음 소설은 언제 또 나올까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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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7-01-17 12: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지금 아껴 아껴 읽고 있습니다~ ^^

꿈꾸는섬 2017-01-17 12:39   좋아요 0 | URL
아껴 읽는 재미가 솔솔하죠.
정말 재밌고 잘 쓰여진 소설이에요.^^
나인님 즐독하세요.
나인님의 리뷰도 궁금해지네요.^^

2017-01-17 18: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17 20: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17 21: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17 21: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꿈꾸는섬 2017-01-18 0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타가 정말 많았네요.
아이들과 있으면서 얼른 써야한다는 생각에 다시 점검해볼 새도 없이 올렸더니, 어마어마하게 오타투성이었네요.
오타수정을 한다고 했는데 다 수정되었을진 모르겠지만 읽느라 고생하셨겠어요.^^

서니데이 2017-01-18 04:42   좋아요 1 | URL
리뷰 잘 읽었습니다.^^

꿈꾸는섬 2017-01-18 04:43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안 주무셔요? 아님 저처럼 일찍 일어나신걸까요?

서니데이 2017-01-18 04:56   좋아요 0 | URL
조금 더 있다 자려고요.^^
꿈꾸는섬님 이렇게 일찍 일어나시면 피곤하지는 않으세요??

꿈꾸는섬 2017-01-18 04:58   좋아요 1 | URL
오전에 운동 다녀와서 살짝 낮잠을 자요.ㅎㅎ
서니데이님 굿나잇~♡

서니데이 2017-01-18 04:59   좋아요 0 | URL
네.^^

2017-01-18 07: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18 08: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공부할 권리 - 품위 있는 삶을 위한 인문학 선언
정여울 지음 / 민음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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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이제라도 읽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넌 지독한 무식쟁이야!"하고 깨닫는게 기뻤다는 작가의 글처럼 나에게도 "넌 지독한 무식쟁이야!"하고 말하는 것 같아 자극 받아 더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정말 지독한 무식쟁이라고 느끼는 요즘이라 더 그러한 것 같다.

 

"안티고네는 늘 '행복할 권리'보다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할 권리'를 택합니다. 눈먼 아비와 천하를 떠돌며 그녀는 어떤 세상을 본 것일까요? 테베로 돌아온 후 '살아남을 권리'를 택한 동생 이스메네와 달리, 안티고네는 죽음을 불사해서라도 지켜야만 하는 그 무엇을 고민했습니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 안티고네와 같을까, 이스매네와 같을까?

나는 부끄럽게도 살아남아야 할 것 같다. 죽음을 불사할 용기가 없고 살아남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니 말이다. 

 

"저는 1차 세계대전에서 아들을 잃은 고통을 조각상으로 표현한 케테 콜비츠의 작품에서, 시공간을 뛰어남는 고통의 강렬한 메시지를 읽었습니다. 그녀가 견딘 고통을 고스란히 담아낸 조각들을 통해 한 사람의 영혼과 온전히 만난 느낌을 받습니다. 때로 고통은 존재를 파괴하는 듯하지만 존재의 진정한 내면을 되찾게 해주는 힘이 되지요."

 

아들을 잃은 고통을 표현한 케테 콜비츠의 조각상은 가슴을 저릿저릿하게 한다. 그 고통을 감히 경험하지 못한 내가 말할 수 없지만 그 느낌이 어떠할지는 알 것 같다. 세월호 유가족의 심정도 그러하겠다고 그저 느낄뿐이다.

 

"왜 진실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사람들은 오히려 더 큰 고통을 감내해야 할까요? 세상은 왜 나쁜 사람들이 늘 이기는 것처럼 보일까요? 저는 아이스킬로스의 [사슬에 묶인 프로메테우스]속에서 답을 찾았습니다. 예전에는 너무나 비장해서 불편한 이야기 혹은 주인공이 견디고 있는 참혹한 고통이 안쓰러워 차라리 외면하고 싶은 이야기로 다가옸습니다. 하지만 왜 진실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사람들은 이토록 고통받는가 하는 물음을 갖고 다시 읽으니 비로소 프로메테우스의 이야기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 것 같았지요.  이 이야기는 가장 윤리적인 존재가 가장 참혹하게 교통받는 이 세상의 은유로 다가옵니다. 진실을 먼저 깨달은 사람이 필연적으로 감내해야 할 고통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진실에 맞서는 일은 결코 흔한 용기로는 할 수 없다. 자신의 고통을 감내할 용기가 있는 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자꾸만 나를 돌아보게 만든다. 나는 그런 용기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에 부끄럽기만 하다.

 

"<타인의 고통>에서 손택은 매스미디어가 전시하는 천편일률적인 고통의 이미지에 길들어 버린 현대인의 무딘 감수성을 공격합니다.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마음으로 느끼는 공감의 기술을 잃어버린 현대인은 영화를 볼 때는 눈물을 아끼지 않으면서 정작 살아 있는 옆 사람의 고통에는 무감각해져 갑니다."

 

타인의 고통에 무딘 현대인들, 그중 하나가 나는 아니기를 바란다.

 

"추억의 시효는 이미 오래전에 지났지만, 그 아픔의 치유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그러나 이런 마음의 상처들은 자신을 돌아보기 위한 영혼의 매개체가 되어 줍니다. 상처로 얼룩진 기억이 없다면 인간은 과거를 성찰함으로써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얻을 수 없습니다."

 

상처로 얼룩진 기억, 사람들 앞에 내놓을 수는 없지만 분명 과거의 치유가 현재의 나를 만든 것은 맞는 것 같다.

 

"나무는 위로도 자라지만 아래로도 자랍니다. 아니, 아래로 자라야만 위로도 자랄 수 있습니다. 외적인 성장만을 중시하는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아래로 자라는 법, 내면으로 자라는 법, 무의식 깊숙이 영혼의 닽을 내리는 법을 망각해 버렸습니다. 위로, 더 빨리, 더 많이 자라기만 하느라 우리 내면의 뿌리가 얼마나 자라야 하는지, 미처 돌보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요."

 

아이들이 나무처럼 단단하게 자라주기를 늘 바랐다. 위로, 더 빨리, 더 많이 자라는 게 아니라 거대한 몸집을 지탱할 수 있는 튼튼한 뿌리를 가진 나무가 되어주었으면 좋겠다.

 

"학교 다닐 땐 '왜 자꾸 난 딴 생각에 빠지는 걸까?'하고 스스로 머리를 쥐어박곤 했지만, 내가 원하는 공부가 무엇인지 알게 되니 그 딴생각이야말로 나의 진짜 고민이자 인무낙의 화두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진짜 공부란 무엇인가를 20년 동안 찾아 헤맸지요. 기나긴 방황이었지만 나를 끝내 성장시키는 값진 헤맴이었습니다. '학문'이라 한다면 너무 거창합니다. 하지만 '공부'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았지요. 저에게는 공부가 가장 소중한 마음챙김의 기술이었습니다. 자격증이나 점수를 따기 위한 공부가 아니라 문학과 철학과 역사를 공부하는 것이 미치게 좋았습니다." 

 

결국 공부란 지식을 쌓기 위한 것이여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하였다. 나를 키우는 공부, 남을 도울 수 있는 공부가 필요하겠다. 나눠줄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그게 꼭 물질일 필요는 없는 것이다. 책을 읽으며 계속해서 배운다. 그렇게 배운 것들을 세상에 나눌 수 있는 작가들이 있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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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06 13: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06 13:1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