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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끼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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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찾지 않는 깊은 산속 바위에 달라붙어 살고 있는 이끼처럼 바짝 엎드려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 

이 영화를 보고나서 이 생각이 머리를 맴돈다. 

찾으려고 기를 쓰지 않고서는 찾아지지 않는 이끼처럼 산다는 것은 너무도 외롭고 힘든 일일 것만 같다.  

영화의 구성, 그 짜임새가 탄탄한 것이 마음에 든다. 도입부에서 보여준 천용덕과 유목형의 모습에서 그들의 대립을 예상하기도 하지만 그들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를 생각할 찰나 유목형의 죽음을 보여준다. 그의 죽음으로 아들 유해국이 찾아오고, 아들은 아버지의 죽음에 둘러싸인 의문을 하나하나 파헤쳐간다. 인간이 지닌 섬뜩한 내면은 정말 온몸에 소름을 돋게 만들었다. 

평소 좋아했던 배우 허준호의 연기는 정말 일품이었다. 물론 정재영과 박해일의 연기도 좋았고 나머지 조연배우들의 연기 또한 좋았다. 모자란 역을 맡은 유해진의 모자람은 연신 웃음을 유발했다. 섬찟함 속에 웃음을 빵빵 터트리는 감독의 의도가 몸서리치게 슬프게 다가왔다. 

 8명의 창녀를 불에 태워 죽인 성규, 사람을 쫓아 총을 4발이나 쏘아 죽인 석만은 그들이 행한대로 그대로 죽임을 당하게 된다. 그들의 죽음은 워낙 죄 많은 인생들이니 그러려니가 되는데 덕천의 죽음엔 정말 가슴이 너무 아팠다. 다른 이들은 빨갛고 노랗고 파랗게 이미 도화지에 그려져 있지만 덕천의 도화지는 백지여서 좋았다는 천용덕, 백지였던 덕천의 도화지에 나쁜 그림을 그려넣은 천용덕, 나는 그가 용서가 안된다. 그의 나쁜짓중 이건 아무것도 아닌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요즘 읽고 있는 책에서 '무지'도 죄라는 글이 떠올랐다.

십대에 4명의 남자아이들에게 강간을 당하고 임신을 해서 낳은 아이조차 물에 던져 죽인 그들을 용서하지 못하고 살던 영지, 그런 그녀를 늘 범하는 그들, 그들을 거부하지 못하고 받아들였던 그녀, 모든 사건의 종지부를 찍고 천용덕이 살던 집에서 목수들과 내려다보는 그녀의 모습을 올려다보던 유해국, 이 장면이 너무 낯익어 깜짝 놀랐다. 어디에서 본 듯 한데 어디에서 봤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과연 그녀의 모든 복수의 완결이었던 것일까? 감독은 관객에게 마지막 해석을 맡긴다. 그런데 왜 난 이장면을 어디서 본 것 같은지 모르겠다. 그래도 결국 그녀가 이 모든 것을 해낸 것이라면 나는 그녀에게 박수를 쳐줄 것 같다. 아이들이 뛰어노는 놀이터를 만들고, 사람들이 휴식하며 차를 마실 수 있는 공간, 공방 등 예전 천용덕이 꾸려가던 마을의 모습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남성이 이끄는 사회의 모습이 피로 얼룩지고 거짓과 폭력이 난무한다면 여성이 이끄는 사회의 모습은 아이들이 함께 하고 모든게 밝고 아름답게 꾸며져 있다. 이것이 남성과 여성의 근본적인 다름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더불어 거짓으로 세운 것들은 오래갈 수 없다는 것, 누군가를 짓밟고 세운 것들은 다시 짓밟히게 된다는 걸 생각하게 되었다.

생각할 거리가 참 많은 영화였다. 감독의 의도도 분명 그런 것이었으리라. 인간으로 살면서 인간의 내면의 진실에 대해 깊이 있는 성찰을 요구해보고 싶었으리라. 나의 작은 선택들이 어느날 커다란 앙갚음으로 되돌아 올 수도 있다는 걸 생각해야 할 것이다. 나 스스로의 정체성부터 찾아야겠단 생각을 한다. 사람의 생명, 인격, 그 어떤 것 하나 소홀히 다룰 수 있는 것은 없다는 경고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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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00721 이끼는
    from 木筆 2010-07-23 16:25 
    영지의 역할이 없다싶고 마지막으로 갈수록 밋밋하다. 드디어 끝나는가 싶더니 물음표와 느낌표가 있는 반전이다. 화면을 가득채우는 해국과 영지의 눈빛. 원작과 다른 결말인데 더 더욱 원제에 충실하다. 이끼. 붙어살다. 긴장감-완성도-연기-...등등 나무랄 곳이 없다 싶다. 이상의 탑과 현실의 탑의 문제는 무엇일까? 신과 권력은 모두 손아귀나 마음아귀에 집어넣고 싶어하는 것은 아닐까? 틀어쥔다는 점에서 구원이든 힘이든, 살아가는 이는 하나이지 않을까?
 
 
양철나무꾼 2010-07-22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 영화 보려고 해서,리뷰를 안 읽을려고 무진 애를 썼었었는데...
안 읽고는 견길 수 없는 리븁니다요~ㅠ.ㅠ

꿈꾸는섬 2010-07-22 14:58   좋아요 0 | URL
에고...정리가 잘 안되었는데 그냥 떠오르는대로 적어봤어요. 쑥쓰러워요.

여울 2010-07-23 1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먼댓글로 이을께요. 생각이 겹치는 부분이 있어서요. 그렇게 해도 되겠죠.
 
방자전
영화
평점 :
상영종료


그럴듯한 이야기를 보면 늘 감탄한다. 춘향전이 탄생하게 된 그 뒷얘기를 어쩜 이리 잘도 풀어가느냔 말이다. 

요새 심사가 어지러워 좀 웃긴 영화가 보고 싶었다. 그럭저럭 많이 웃었다. 류승범의 능청스런 연기와 변학도의 혀짧은 소리와 어리숙한 모습에 정말 엄청 웃었다. 그리고 마영감, 정말 뭐니?

역시 세월이 많이 변한걸까? 작가와 감독의 시선이 어째 조금 촌스럽단 생각을 했다. 굳이 요란한 정사신을 넣어야만 했을까 싶다. 오히려 영화의 질이 좀 떨어져 보였다. 물론 조조임에도 거의 극장안을 가득 채운 원동력이 되었을지도 모르지만 영화의 흐름이나 질을 생각했을때 너무 거칠었던게 아니었나 싶다. 

전번달에 보았던 하녀에서도 느꼈던 것인데, 남성 위주의 시각에서 본 정사신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불쾌하다. 남자 주인이 찾아와 무리한 관계를 요구하는데 거침없이 달려들던 하녀의 모습은 남자들의(감독의) 절대적인 편견이 아니었나 싶다. 이 영화를 보면서 역시 불편했다. 춘향과의 만남을 성사시키기 위해 마영감으로부터 기술을 전수받는 방자, 그 기술이라는 것도 내게는 불편했다. 여성에 대한 성적 비하로 느껴졌다면 내가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일까? 여하튼 남성의 성적 해석은 늘 오해로 얼룩져 있는 것 같다. 아쉽다. 

매화꽃 핀 뒤뜰에 하얀 눈이 내리고 춘향이 넋을 놓고 앉아 있다. 그녀를 업고 사랑가를 불러주는 방자, 아름답고 애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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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06-27 2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자전 보고픈데,, 혼자 보러 가기는 좀 그래요.
아무래도 톰 크루즈 영화나 보러가야할 듯.

꿈꾸는섬 2010-06-27 23:44   좋아요 0 | URL
저도 혼자가기 뭐해서 쬐금 친한 동생 보여준다고 불러서 다녀왔어요.
마녀고양이님이랑 같이 볼걸 그랬나봐요.ㅎㅎ(너무 멀어서 번개도 힘들지요.)

무스탕 2010-06-28 08:37   좋아요 0 | URL
전 맨날 혼자보러 다니니 이젠 어떤 영화건 혼자보는게 아무렇지도 않아요 ^^
한번 해보세요. 맛들이면 이것도 꽤 편해요 :)

꿈꾸는섬 2010-06-28 13:11   좋아요 0 | URL
저도 혼자보러 잘 다니긴 하는데 좀 야하다는 건 혼자가기가 좀 그렇더라구요. 저도 원래 혼자 잘 놀아요.ㅋㅋ

마녀고양이 2010-06-28 17:06   좋아요 0 | URL
저두 방자전은 야하다는 소문에 혼자 보기가.
오늘 <맨발의 꿈> 혼자 보고 왔습니다. 저 역시 혼자놀기 진수입니다~ ㅋ

꿈꾸는섬 2010-06-28 23:30   좋아요 0 | URL
님 서재에 금방 다녀왔어요. 별을 6개나 준다기에 한국 최고의 영화로 꼽으신다기에 너무 궁금해요. 보고싶어요.

세실 2010-06-27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 저도 하녀에서 그렇게 느꼈어요. 전도연이 기다렸다는 듯이 적극적으로 대쉬하는 모습이 억지스러웠습니다.
담주엔 방자전 보러 가려구요. 옆지기를 또 어떻게 꼬시나 고민. ㅎㅎ
요즘은 그냥 옆지기랑 보러 가는게 편하네요. 나이가 들었나봐.

꿈꾸는섬 2010-06-27 23:56   좋아요 0 | URL
좋으시겠어요. 옆지기님이랑 보러가시고...연애할때 영화도 참 많이 보러다녔는데 남편이랑 영화보러가는게 쉽지가 않네요. 오늘도 즐거우셨던가봐요.^^

2010-06-28 07: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꿈꾸는섬 2010-06-28 13:13   좋아요 0 | URL
^^장마가 시작되었나보군요.^^
울 집 아그들은 둘다 구협염, 수족구 걸려서 이번주내내 저랑 집에서 지지고 볶고 그래야해요. 큰아이는 먹는 걸 잘 못먹어서 불쌍해요.ㅠ.ㅠ

전호인 2010-06-28 1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울하고 의기소침해 있는 지금의 상황에서 에로틱한 영화한번 봐주는 것도 괜찮을 듯 싶네요. 적당히 말초신경도 자극될 듯........ㅜ

꿈꾸는섬 2010-06-28 23:29   좋아요 0 | URL
에로틱이라고 하기에는 좀....하지만 우울하고 의기소침하실때 보심 즐겁긴 하실 것 같아요.^^

2010-06-29 19: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꿈꾸는섬 2010-06-29 23:39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저도 그렇더라구요.^^

같은하늘 2010-07-01 0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지난 4월부터 네명이 모여서 한달에 한번씩 영화보러 가거든요.
제목은 다수결로 정하지요. 6월에는 저도 방자전 보았네요.
마지막 장면이 안타깝더군요.
 
하녀 - The housemaid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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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상영


10분정도 지각을 했다. 앞부분을 못 본채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전도연, 참 좋아하는 배우다. <하녀>에서 백치미가 넘치는 그녀는 정말 사랑스럽다. 얼마전 아이를 낳았다는 그녀의 몸매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군살하나 없는 아름다운 몸매, 역시 여배우구나. 

서우의 쌍둥이 분장은 정말 깜짝 놀랐다. 어쩜 그리 티가 나지 않게 배가 불렀을까? 서우의 부른 배도 참 예뻤다. 

이정재, 몸매 정말 죽인다. 벗은 몸보다 피아노 앞에 앉아 피아노치는 뒷모습을 볼때 더 멋졌다. 그의 뒤로 가서 허리를 꼭 안아주고 싶단 생각을 잠시 했다. 

윤여정의 대사가 가슴에 콕 박혔다. 뼛속까지 하녀라는 그녀의 말은 정말 가슴 아팠다. 주인을 위해 기꺼이 개가 될 수도 있다는 말처럼 들렸다. 서글프다. 

그들과 우리는 너무도 다르다. 

그들은 우아하고 아름답다. 하지만 우린 그들을 위해 봉사하고 돈을 받는다. 돈을 위해 모든 서슴치 않는다. 대한민국의 검사 엄마라는 조병식 여사도 돈을 받으며 모든 일을 해낸다. 그래서 더 서글펐다. 

누군가 우리를 짓밟았을때 우린 찍소리를 낼 수 있으려나. "찍 소리라도 내야"겠다는 은이, 그것조차 나의 모두를 담보로해야 한다니 정말 서글프다. 

함께 영화를 보고 나오며 한 언니가 참 이상한 가족일 수밖에 없지. 어째 매일 와인을 마셔. 그런다. 

우리 모두 웃으며 맞아. 라고 호응해주었는데 그 비싼 와인을 매일 마실 수 없는 우리의 현실 또한 서글프게 들렸다. 

이제 가끔 생각하게 될 것 같다. 나는 뼛속까지 어떤 근성이 베어 있을까? 나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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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5-21 0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셨군요 ^^..

저도 며칠 전 보았습니다~ 이 영화에 대해 여럿 리뷰가 있던데 각양각색이네요 ㅎ

꿈꾸는섬 2010-05-22 22:14   좋아요 0 | URL
바람결님은 어떠셨는지 궁금하네요.^^

세실 2010-05-21 0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일요일에 옆지기와 보러 가려는데 음 기대되는 걸요.
제 뼛속에는 어떤 근성이 베어 있을까요???

꿈꾸는섬 2010-05-22 22:14   좋아요 0 | URL
세실님의 평도 기대되요.^^

마녀고양이 2010-05-21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보고 싶당. 담주에는 보고야 말겠어요!

꿈꾸는섬 2010-05-22 22:15   좋아요 0 | URL
네, 꼭 보세요.^^

2010-05-21 15: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꿈꾸는섬 2010-05-22 22:16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영화 초반부가 얼마나 중요한데요.ㅠ.ㅠ
정말 궁금해요.ㅠ.ㅠ
저도 이런 저런 생각은 많았는데 글로 다 쓰질 못했네요.
현수가 아파서 황금연휴도 방콕하고 있지요.ㅠ.ㅠ
님의 평이 궁금해요. 다음에 놀러가서 볼게요.ㅎㅎ

같은하늘 2010-05-25 0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지난 목요일에 봤는데...^^

꿈꾸는섬 2010-05-25 16:17   좋아요 0 | URL
같은하늘님은 어떠셨나 궁금하네요.ㅎㅎ
 
친정엄마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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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상영


아이들 보내놓고 첫회 상영되는 영화를 보기위해 서둘러 극장으로 갔다. 아침부터 눈물 흘리는 영화는 보지 말자고 일주일전에 다짐했건만, 또 눈물 많은 나를 내내 울게 만드는 영화를 보았다. 

오래된 은행나무가 자라고 있는 집의 풍경이 따사롭고 아름다웠다.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의 이미지에 맞는 이야기의 흐름이 좋아서 영화 속에 흠뻑 빠져 들었다. 

얼마전 시골에 다녀오는 차안의 라디오에서 '친정엄마'에 대한 평을 들었고 자세한 내용은 몰라도 친정엄마하면 떠오르는 애달프고 가슴 아픈 이야기일거라고 예상은 했다. 그래도 어떤 모녀의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 궁금한 마음에 영화를 보게 되었다. 

나는 영화의 초반부터 울기 시작해서 영화가 끝나갈 무렵까지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서서히 부어오른 눈은 여전히 붉게 충혈되어있다.) 

봄, 어린 딸 아이의 모습과 어울리는 파릇파릇한 영상이 너무 예뻤다. 다리를 절지만 버스 기사인 아버지, 동네 사람들의 농도 상처가 되고 그 상처에 대한 분노를 엄마에게 푼다. 시골 아낙인 엄마는 가난하고 배우지 못했지만 딸에 대한 사랑이 남다르다. 첫딸을 보내고 둘째딸에 대한 애틋함이 엄마의 딸을 향한 맹목적인 사랑이 느껴진다.  

여름, 청소년기의 딸아이. 공부도 잘하고 똑똑한 딸은 엄마의 자랑이며 삶의 이유이고 힘의 원천이다. 하지만 무지랭이 엄마의 모습이 부끄러운 딸은 학부모 참여 수업에 엄마가 오는 것을 싫어하고 엄마가 창피하다고 말한다. 가위로 듬성듬성 자른 머리에 초라한 행색의 엄마 모습이 싫었던 것이다. 엄마에 대한 폭력이 잦은 아버지와 이혼하라고 하는 딸에게 딸을 위해서 떠나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엄마, 우리 엄마의 모습과 겹쳐졌다. 어머니가 떠난 자리에 딸이 대신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아버지 시중을 들어야한다면 딸의 공부는 어찌될 것이며 딸 아이가 제대로 자라지 못할 것 같아 떠나지 못한다고 말하는 엄마의 말에 그때부터 엄마를 조금씩 이해하려고 한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기전까지 부모 마음을 어찌 다 알겠는가.   

서울예전에 합격한 딸은 서울로 떠나고 엄마는 딸을 위해 바리바리 짐을 싸고 그녀가 좋아하는 황도캔과 라면봉지 가득한 동전들, 콩나물 500원어치는 400원어치만 사는 등 악착같이 돈들을 모아 딸의 서울길에 보내고 딸은 그 동전들을 가지고 서울 생활을 한다. 비닐봉지조차 귀했던 그 시절의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라면봉지.

가을, 딸의 상견례, 가난한 며느리 얻는게 싫은 시어머니를 향해 자기 딸을 위해 무릎을 꿇고 사정하는 친정엄마의 모습은 또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고 아이를 낳고나서야 비로소 엄마가 된다는게 어떤 것이 알게된 딸은 엄마에게 잘 하겠다고 미안하다고 고맙다고 한다. 마치 나의 모습처럼 첫아이를 낳으며 비로소 엄마가 얼마나 힘들게 나를 낳았을까를 깨달았고 왜 나를 낳았냐는 원망 섞인 말을 했던 것을 후회했었던게 생각났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되었어도 엄마에게 딸은 마냥 어린 딸처럼 안타깝고 불안하고 걱정의 대상이다.  

엄마와 딸의 연속되는 말다툼, 하지만 금새 살가운 사이가 되고 서로가 서로를 향해 던지는 비수들이 상처가 되었다고해도 쉽게 아물고, 이제는 그 면역까지 생기지 않았을까 싶다. 

겨울, 모든 것들이 소멸해가듯 딸아이는 사진 한장 남겨두고 그들의 곁을 떠난다. 하루가 지나니 죽을 날이 하루 앞당겨졌다고, 하루라도 빨리 딸의 곁으로 가겠다는 엄마, 무식해서 딸을 못 찾아갈까 그게 걱정이라던 엄마의 넋두리가 또 가슴 아프게 했다.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도 좋았지만 사계절의 아름다운 영상도 좋았지만 그래도 좋았던 건 엄마와 딸의 애틋함, 애달픔, 속을 후벼대는 상처들이 좋았다. 눈물을 흘리면서 나와 엄마의 관계를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사실 친정엄마 모시고 보려고 했는데 오히려 엄마와 함께 보지 않았던게 더 나았던 것 같다. 엄마를 향한 고마움, 미안함을 전할 수도 있었겠지만 영화속 대사 하나하나 내 모습이 담겨 있어서 엄마와 내가 함께 부둥켜 안고 울었을 것만 같다. 

또한 친정아버지의 죽음에서 딸은 아버지에 대한 애틋한 추억하나 없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나 또한 아버지에 대한 원망도 많았지만 아이들 키우는 부모가 되고나니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함께 영화를 보러 간 옆집 친구는 나만큼 울지는 않았다. 그녀는 많이 배우고 잘 사는 집의 딸로 태어나서 어려움이라는 걸 모르고 자란 친구이기에 엄마와 딸의 애증관계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도 그녀도 잠깐씩 눈물을 흘리긴 했는데 딸이 췌장암에 걸려 결국 죽게 되었고, 딸의 장례식을 치르는 친정엄마의 모습을 보고 너무 가슴 아팠단다. 그리고 남겨진 딸과 남편. 같은 영화를 보았지만 우리의 삶이 달랐듯이 영화를 받아들이는 정도도 많이 달랐다. 

부모 가슴에 못 박는 말을 했었다는 내 얘기를 그녀는 이해하지 못한다. 가난하고 많이 배우지 못한 친정엄마가 겪었던 설움에 더 많이 가슴이 아팠다. 우리 엄마가 영화 속 엄마처럼 살갑게 대해주진 못했지만 그래도 엄마의 마음은 늘 같았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 또 눈물이 난다. 

미리 준비해간 손수건이 축축하게 젖었고 영화가 끝난 뒤 화장실에서 본 내 얼굴이 끔찍했고 여전히 따끔거리는 눈도 불편하긴 하지만, 오늘 또 부모님을 생각하게 되었다. 얼마 뒤면 있을 어버이날만이 아니라 평소에도 부모님을 생각하며 살아야겠단 생각을 또 한다.  

그래도 간간이 웃음을 주었던 장면들도 있었고, 김해숙의 멋드러진 노래가 인상적이었다. 어쩜 그리도 맛나게 부르시던지......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이 영화를 보러갈땐 꼭 손수건을 챙겨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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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04-29 2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뤄뒀던 엄마와의 여행을 감행한 딸에게 뭔가 비밀이 있겠구나 예상했는데, 이렇게 친절하게 다 알려주시네요. 이 영화는 그냥 안 봐야 할 거 같아요.ㅜㅜ

꿈꾸는섬 2010-04-30 13:33   좋아요 0 | URL
앗, 제가 이리 글을 못 써요. 그냥 생각나는대로 줄줄이 써내려가다보니 모든 걸 다 알려드린 셈이군요. 슬프긴 하지만 영상이 너무 아름다웠어요.

후애(厚愛) 2010-04-30 0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슬픈 영화군요.ㅜ.ㅜ

꿈꾸는섬 2010-04-30 13:33   좋아요 0 | URL
네, 엄청 울었어요. 아직도 눈이 부어 있어요.ㅜ.ㅜ

마녀고양이 2010-04-30 0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만 봐도 울게 되는데,, 아이고.
전 이 영화 일찌감치 포기입니다.

꿈꾸는섬 2010-04-30 13:34   좋아요 0 | URL
죄송해서 어쩌죠. 제가 이렇게 글 감이 떨어져요.ㅠ.ㅠ
보심 좋겠는데 모두들 포기라니 더 슬퍼요.ㅠ.ㅠ

마녀고양이 2010-04-30 13:40   좋아요 0 | URL
글감이 떨어져서 그런게 절대 아닌데요....
글을 너무 아름답게 쓰셔서 그렇답니다.
가슴이 많이 아프고 저민 영화일거 같아요.
오래오래 맘에 남는 영화...... 그게 두려워여~ ^^

비로그인 2010-04-30 2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공감할 수 있을까.. 모르지만 꼭 보아두렵니다. ..

꿈꾸는섬 2010-05-01 19:56   좋아요 0 | URL
바람결님 다시 돌아오셨군요. 반가워요.^^

후애(厚愛) 2010-05-01 0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족들과 함께 즐겁고 행복한 주말 되세요.^^

꿈꾸는섬 2010-05-01 19:56   좋아요 0 | URL
후애님도 즐겁고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세실 2010-05-04 0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친정엄마 모시고 가야 겠습니다. 지난번 하모니 보여드렸더니 참 좋아하셨거든요~~
뭐 엄마랑 엉엉 울죠 뭐. ㅎㅎ

꿈꾸는섬 2010-05-04 00:37   좋아요 0 | URL
세실님과 친정엄마의 다정한 영화관 나들이가 되겠어요.^^

같은하늘 2010-05-04 1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눈물이 많이 이 영화는 안보는게 좋을것 같아요. ㅠㅠ

꿈꾸는섬 2010-05-05 17:14   좋아요 0 | URL
우리 모두 눈물이 많군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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