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의 서 1 문학동네 청소년문학 원더북스 14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은모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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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길을 떠난다.
 
아이들만 길을 떠나는 것은 아니지만 어른들은 길을 떠나는 일이 쉽지 않다. 지켜야 할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지켜야 할 것들이 많지 않기에 떠나는 용기를 낼 수 있다. 길을 떠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돈을 벌기 위해, 집을 떠난 어머니를 찾기 위해, 자신의 존재조차 모르는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사랑하는 이를 만나기 위해,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줄 보물을 찾기 위해. [영웅의 서]의 여자아이 유리코는 친구를 찔러 상처를 입히고 사라진 오빠 모리사키 히로키를 찾아 길을 떠난다. 

홀로 떠나는 여행은 외롭고 두렵다. 다행인 것은 떠나는 자들에겐 동반자가 있다는 것이다. 유리코는 유리가 되어 소년 무명승(소라)과 사전(아쥬)과 현실의 세계를, 소라, 아쥬, 〈영웅의 서〉의 또 다른 사본인 늑대인 재의 남자(애시)와 함께 〈헤이틀랜드연대기〉의 세계로 떠난다.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세계

 

아이들은 보이는 것만 믿고, 보이지 않는 세상은 이해하지 못한다. 책을 읽고 TV를 보며 다른 세상이 존재한다는 걸 어렴풋이 상상하지만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세계가 있음을, 진실은 보이지 않는 세계에 있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세계로 인해 힘들고 아픈 시간을 견뎌야 함을 알게 되는 것이다.   

유리코는 낡은 사전의 정령으로부터 오빠가 ‘그것’에 홀렸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리고 작은 할아버지의 서재에서 책들을 만나고 현실에선 존재하지 않는, 그러나 책에선 존재하는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여행을 통해 유리코는 보지 못했던, 알지 못했던 오빠의 세상과 만나게 된다. 좋아했지만 알지 못했던, 그래서 진심으로 오빠의 편이 되지 못했음을 알게 된다. 사람들은 한평생 한 사람의 마음이라도 온전히 알 수 있을까?  

책속의 〈영웅의 서〉의 세계엔 ‘황의를 입은 왕’이 봉인을 깨고 ‘최후의 그릇’의 몸을 빌려 세계로 나온다. 히로키는 바로 최후의 그릇으로 소환된 자이다. 현실세계의 유리코는 인(印)을 받은 자이다. 남매는 각각 존재의 의미를 지닌 개인이지만 가족의 테두리에서 보면 하나이다. 유리코가, 유리코의 부모가 히로키가 없는 세상을 슬퍼하는 것은, 찾으려하는 것은 그가 여전히 가족의 테두리 안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죽음 혹은 이별은 지금 나의 현실에선 존재하지 않음을 의미하지만 기억 속에서 그들은 영원히 산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자신을 알아주는 대상을 만났을 때 빛을 낸다. 책은 사람이 읽어주었을 때 비로소 책이 된다. 읽지 않은 책, 낡은 창고에 버려져 먼지 쌓이고 곰팡이 쓴 책은 형태는 존재할지라도 책은 아니다.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며 보인다고 해서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역설이 성립한다.

영웅의 부활, 책의 복원
  

영화의 세계에선 사람들이 위기에 처하면, 부당함과 불의를 겪으면 가면을 쓴 영웅들이 망토를 휘날리고 나타나 도와준다. 현실을 살아가기에도 버거운 인간들은 약한 자신들을 대신해 누군가가 악의 무리로부터 자신을 구해주길 바란다. 영웅을 염원하는 인간들의 심리가 영웅을, 영웅이야기를 만든 것이다.  

돈과 힘으로 세상을 가지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스스로가 영웅이라는 환상에 빠져 있는 ‘가짜영웅들’이다. 그들은 변질된 영웅, 인간의 혼을 잃어버린 영웅들이다. 이 책에선 그들을 ‘황의를 입은 왕’이라고 부른다.  

아이들의 세계는 더 이상 순수하지 않다. 아이들의 세계는 어른들 세계의 축소판이다. 아이들이 정의의 신이라고 믿었던 부모와 교사들은 폭력으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지 못한다. 이노이 미치루의 어머니처럼 자신을 지키기도 버겁다. 보호받지 못한(보호받을 수 없는) 아이들은 침묵하거나 스스로 해결하려한다. 아이들은 판단능력과 해결능력이 없지만 그들에겐 ‘보호자’가 있지만 ‘보호자’가 없다.  

억울한 일을 해결해주기 위해 경찰과 법인 존재한다는 말은 더 이상 정답이 아니다. 정의의 여신 디케가 눈을 감고 저울과 칼을 들고 있는 이유는 ‘지위 여하에 관계없이 만인에게 공정하고 엄격하게 적용하라’는 뜻이지만 현실은 ‘돈’과 ‘권력’의 유무에 따라 불공정하게 적용된다. 무죄무벌 유죄유벌의 세상은 요원하다.  

인간은 악에 쉽게 굴복하는 본성이 있다. 게다가 쉽게 전염되기까지 한다. 영웅은 존재해야 한다. ‘황의를 입은 왕’을 봉인시켜야하고 나쁜 이야기를 자아낸 자는 이름이 없는 무명승이 되어 죄업의 수레바퀴를 돌릴지라도. 오래된 이야기의 잘못된 복원, 아집에 사로잡힌 오독, 겪지 않은 세상을 예측하는 이야기는 ‘황의를 입은 왕’의 복원을 의미하지만 이야기를 만들지 않는 것, 책을 읽지 않는 것 또한 ‘영웅’을 봉인시키고 ‘황의를 입은 왕’의 복원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야기는 계속된다.

 

영웅은 세계를 움직이지만 여성은 세계를 존속시키는 원천이다. 죽은 자를 깨우는 마법을 찾은 엘름은 여성이었다. 그것이 ‘호국의 마법’이 아님을 깨닫고 목숨을 다해 방법을 찾은 것 또한 엘름이었다. 유리의 세계에서 유리코의 세계를 돌아온 유리코는 목적을 이룬 것도 이루지 않은 것도 아니다. 오빠는 마음속에 존재하지만 현실에선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처음 길을 떠났을 땐 유리는 오빠를 그리워하는 연약한 여자아이였지만 집으로 돌아왔을 땐 오빠의 부재를 받아들일 만큼 성숙해졌다. 

“그러니까 이야기는 인간이 가는 걸음 뒤에서 따라와야 하는 거야.
인간이 지나간 뒤에 길이 생기도록.” (2권, 332쪽) 

사람들이 ‘영웅’을 숭상하고
‘황의를 입은 왕’에게 매료되는 싸움 속에 있어도
결코 목소리를 잃지 마.
뭐가 옳고, 뭐가 있어야할 것인지 가려낼 수 있는 눈을 감아버리지 마.(2권, 339쪽)

모험을 떠난 아이들의 이야기는 현재, 미래의 아이들에게 이어진다. 아이들은 이야기를 듣고 책을 읽으며 영웅을 기다리고 새로운 꿈을 꾼다. 모험에서 돌아왔을 때 애초의 목적을 이루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실패한 것은 아니다. 떠나기 전보다 훌쩍 자란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책과 노니는 집]에서 장이의 아버지는 책(이야기) 때문에 고초를 겪었지만 책(이야기) 때문에 꿈을 꾸었다. 장이의 아버지는 비록 꿈을 이루지 못했지만 아들 장이가 그 꿈을 이어갔다. 어떤 이야기와 책은 죄를 짓지만 과거를 경험삼아 현실을 견디며 미래를 향해 걸어가는데 필요한 동반자이기도 하다. 떠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역사는 수많은 이들의 모험을 통해 이루어졌다. 이것이 바로 아이들이 모험을 떠나야하는 이유, 작가들이 이야기를 자아내야하는 이유, 책이 존재해야하는 이유이다. [영웅의 서]로 떠난 모험의 세계는 독특했고 즐거웠다. 

“지리서도 읽으십니까?”
“책이 없어서 못 읽지, 가려 읽지는 않는다. 좋으면 좋은 대로, 나쁘면 나쁜 대로 모두 공부가 되는 것이 책이지. 당장 필요치 않은 지식 같아도 뜻밖에 유용하게 쓰일 때도 많고.”

- [책과 노니는 집] 장이와 홍 교리의 대화 中에서, 1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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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고준
고종석 지음 / 새움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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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열 살 전후였던 걸로 기억한다. 어머니의 일기를 몰래 읽은 적이 있다. 대부분의 일기엔 행복보단 아픔을 적기 마련이듯 어머니의 일기에는 고단했던 시집살이와 직업상 지방으로 돌았던 아버지로 인한 외로움이 적혀 있었다.
내가 [독고준]에 관심이 갔던 것은 이름은 익히 들었지만 아직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작가 고종석에 대한 관심, 최인훈의 [회색인]·[서유기]에 이은 ‘독고준 3부작 완결판’이라는 기사 때문이기도 했지만 남성작가가 쓰는 딸과 아버지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2.

[독고준]은 전임 대통령이 자살한 같은 날 일흔네 해의 삶을 마감한 소설가 독고준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딸 독고원은 아버지 독고준의 죽음 후 어머니로부터 아버지의 일기를 건네받는다. [독고준]은 다른 작가의 작품에 대한 비평, 정치사에 대한 견해, 아내에 대한 연민, 딸들에 대한 사랑, 삶에 대한 기록 등이 담긴 일기를 바탕으로 한 독고준의 이야기와 아버지의 독서일기를 읽는 문학비평가 독고원이 부딪힌 현실 이야기가 동시에 전개된다.
프루스트는 노란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했다. 나는 오랫동안 왼쪽 길 아니면 오른 쪽 길을 두 가지만 있는 줄 알았고 둘 중 하나만 선택해야한다고 생각했다. 둘 중 하나만 선택하는 일은 늘 힘든 고통을 수반했다. 몇 가지 일을 겪으며 선택의 기준을 ‘가족’으로 삼았다. 하지만 살면서 내가 ‘가족’을 방패삼아 비겁한 선택을 한 것은 아닐까 혼란스러웠다. '가족'이란 방패는 결국 자기변명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에 괴로웠다. 나는 때론 두 가지의 길을 다 가고 싶었고 때론 두 가지의 길을 모두 이탈하고 싶었다.
흰색과 검정이 합쳐져 회색이 된다. 그런데 원래 흰색과 검정 중간에 회색이 있는 것이 아닐까, 반대되는 두 색이 만나 두 색 모두에 속할 수 없는 색이 된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그 자리에 회색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 독고준의 소설과 삶은 대한민국 반세기 역사와 연결되어 있지만 나쁜 의미든, 좋은 의미든 ‘회색인’이었고 딸 독고원은 현대를 살고 있지만 ‘소수자’의 삶을 살고 있다. 그들은 밖의 세상에선 자유롭지 못했지만 자신들의 세상에선 자유로웠다.
현대는 자유가 존중되는 세상인 듯 보이지만 보이는 차별과 보이지 않는 차별이 존재한다. 다행이 그들은 꿋꿋한(어쩌면 외로운) 자유주의자였다. 독고원은 아버지를 존경했고 독고준은 딸의 선택을 존중했다. 문득 궁금해진다. 내 아버지가 소설가였다면 어땠을까? 아, 나의 아버지가 소설가라는 건 상상조차 되질 않는다.
독고준의 일기는 1960년 4월혁명 즈음에 시작하여 2007년 12월 19일 대통령 선거일에 멈춰 있다. 독고원이 일기를 읽는 순서는 독고준이 일기를 쓴 순서가 아니다. 독고원은 1962년 4월의 일기를 읽고 1962년 5월의 일기를 읽는 것이 아니라 1963년 4월의 일기를 읽었다. 4월의 잔인한 봄에 시작한 일기는 3월의 봄에 끝이 난다. 그러니까 독고준의 일기는 27년간의 일기가 아니라 일 년 사계절의 일기다. 분명 해가 바뀌었는데 이전에 겪은 일과 비슷한 일을 자주 만난다. 해가 바뀌는 것은 우리의 착각이다. 우린 같은 해를 반복해서 살고 있다, 지겹게도.
독고준은 일기에 많은 역사적 인물들의 죽음을 기록했다. 그것도 단 한 줄로. 그들 중엔 자살로 생을 마감한 사람들도 많다. 작년 전임 대통령의 자살은 충격이었다. 우리나라는 OECD국가 중 자살률 1위라고 한다. 사람들이 절망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엔 사회도 책임이 있다. 반복되는 역사, 아니 퇴보하는 역사를 보면 밝은 미래란 없는 게 아닐까하는 회의적인 생각이 종종 든다. 독고준의 삶을 보면 자유의지가 아닌 이미 결정된 삶을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그는 더 살아야할 이유를 찾지 못했으리라. 
 

 

3.

[독고준]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사건들은 실재하고 내가 알고 있는 이야기들도 많다. 각인된 기억은 잘 지워지지 않는다. 소설은 허구지만 진실이라고 저장된 기억들 탓에 자꾸 혼동이 된다. [독고준]은 3부로 이루어져 있는데 3부는 독고원이 쓰는 짧은 ‘독고준론’이다. 독고준의 독서일기가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어 소설 보단 에세이나 비평을 읽는 느낌이 든다. 극적 전개의 스토리를 원하거나 감춰진 이야기 속에서 진실을 찾는 것을 좋아하는 독자들은 실망할 수도 있는 책이다.
나의 아버지는 독고준처럼 지식인이 아니다. 독고준과 내 아버지의 공통점은 딸들을 사랑하는 것 외엔 없다(물론 사랑의 방식은 다르다). 그래서 나는 독고준이 내 아버지가 아닌 남의 아버지 얘기 같았다. 그래서 일정 부분 공감하면서도 독고준의 마지막 선택엔 의문이 들었다. 역설적으로 그로 인해 아버지가 더 이해되었다. 아버지에게도 삶의 기준이 있었을 것이다. 현실과 부딪히면서 그 기준이 좌초하는 경험도 하셨을 것이다. 그래도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그 기준에 충실하며 살아오셨으리라.
박완서는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에서 김훈의 표현을 빌려 ‘나는 아무 편도 아니다. 다만 바퀴 없는 자들의 편이다.’라고 말했다. 나의 좌표는 어디쯤 있을까? 나이를 먹으면서 길이 두 개밖에 없으면 다른 길을 내면 된다는 것을, 처음은 많이 힘들지만 자꾸 반복해서 걸으면 길이 생긴다는 것을, 모든 길은 그렇게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쨌거나 최인훈의 [서유기]와 [회색인]을 읽어야할 듯싶다. 그래야 진짜 아버지에 대해, 아버지의 세대에 대해 알 수 있을 것 같다. 우리가 겪었던, 겪고 있는 현실에 대해 제대로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나면 나의 좌표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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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다
파울로 코엘료 지음, 권미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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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나의 저울은 행복보단 불행 쪽에 더 기울어 있었다. 나는 빨리 스무 살이 되고 싶었다. 스무 살 이후가 되면 다른 세상이 열릴 줄 알았다. 스무 살, 스물한 살...... 점점 나이를 먹었으나 세상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꿈이 있었기에 삶을 버틸 수 있었다.

 

파울로 코엘료의 신작 [브리다]를 읽었다. 오랜 망설임 끝에 선택했다. 몇 편의 독서 경험을 통해 파울로 코엘료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모두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은 것은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그녀의 뒷모습 때문이었다. 내가 뒷모습에 좀 약하다. 저 들판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 알 수 없으나 설렘 반 두려움 반 천천히 발을 내딛는 그녀가 있었다. 나는 궁금했다. 그녀는 길 위에서 어떤 사랑을 하게 될까? 어떤 인연들을 만날까? 들판 너머에 도착할 수 있을까? 그곳에서 그녀는 무엇을 만나게 될까?

 

스물한 살의 그녀는 마법을 배우려고 마법사를 찾아간다. 마법을 배우고 싶은 이유는 살면서 부딪히는 몇 가지 삶의 질문들의 답을 찾고 싶어서다. 마법은 ‘눈에 보이는 세계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로 건너게 하는 다리’였다. 그녀의 이름은 ‘bridge, 다리’를 응용해서 작명한 것으로 짐작되는 ‘브리다’이다. 청춘의 시간이야말로 마법의 시간이 아닐까싶다. 미래에 대한 설렘과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공존하는 시간이지만 그 시간을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미래의 시간들이 달라진다.

 

다리를 건너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태양 전승과 달 전승. 어떤 길이든 자신이 선택해야 하고, 길을 선택했을 땐 믿음과 용기를 가지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 길은 어둠이 지속될 수도 있고 한없이 고독할 수도 있다. 태양 전승과 달 전승은 삶의 두 가지 방식을 표현한다. 보이는 삶, 성취하는 삶과 보이지 않는 삶, 보호하는 삶. 브리다는 마법사에게 태양 전승을, 위카에게 달 전승을 배운다. 마법사에겐 그녀가 갖고 있지 않은 남성성을, 위카에겐 부족했던 여성성을 배운다. 배움을 통해 자신의 재능을 찾아간다.

 

살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누군가에겐 상처받았고 누군가에겐 위로를 받았다. 누군가는 내 의지로 만남을 끊었고 누군가는 내 의지와 무관하게 연락이 끊겼고 누군가는 지금도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 청춘의 다리를 지나 생각해보니 내게 상처를 주었던 사람도, 내게 위로를 주었던 사람도 모두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들을 통해 해야 하는 것과 하지 말아야할 것을 배웠다. 분명 그들 중엔 내 소울메이트도 있었을 것이다.

 

브리다의 아버지는 어린 시절의 브리다에게 ‘뭔가를 알고 싶으면 그 안에 푹 빠져보라’고 말했다. 사랑도, 일도 푹 빠지지 않으면 미련이 남는다. 뭔가에 대해 푹 빠졌던 때가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이미 다 경험해서 안다고 자신만만하게 말했지만 사실은 겁이 났다. 청춘의 시절엔 푹 빠져보고 아니다 싶으면 나와서 다시 시작할 수 있지만 어른이 되면 나오는 일은 많이 버겁고 다시 시작할 시간도 많지 않다. 그래서 나 역시 청춘들에게 말하고 싶다. 뭔가를 알고 싶으면 그 안에 푹 빠져보라고.

 

브리다는 여름, 가을, 겨울을 지나 봄의 시간을 맞이했다. 소울메이트인 마법사를 만났고 헤어졌다. 시간을 흘렀고 그녀의 내면은 변화했다. 청춘의 다리를 건너도 삶의 질문들은 계속된다. 하지만 부딪히며 배워다보면 조금씩 답들을 찾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처음 [브리다]를 선택했을 땐 신작인줄 알았는데 [연금술사] 직후에 쓴 소설이라고 한다. 파울로 코엘료다운 소설이었지만 그게 또 아쉽기도 했다. 익숙함 속에서 편하게 나를 돌아보고 인연들을 떠올리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 좋았지만 이미 다른 작품들을 읽은 탓에 새로움과 변화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연금술사] 직후에 발간되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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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 -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
한창훈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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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먹는 것에 대한 집착은 곧 삶에 대한 애착이 아닐까?

생각해보면 산다는 게 허기를 채우는 것과 다를 게 뭐냐 싶다.

여행을 하는 것도, 글을 쓰는 것도, 관계를 맺는 것도

결국은 서로 다른 종류의 허기를 채우는 일이 아니겠는가.

- 윤미나, [굴라쉬브런치] 中에서

 
지난 봄, 윤미나의 [굴라쉬 브런치]를 읽으며 인생이 허기질 땐 동유럽에 가야한다고 생각했다. 인생이 허기졌으나 동유럽으로 갈 수 없던 나는 차가운 맥주를 마셨다. 폭염과 폭우가 지나가고 가을이 왔다. 나는 여전히 허기졌다. 그리고 이 가을 나는 한창훈의 [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를 만났다. 

 


[바다가 아름다운 이유]로 처음 만난 한창훈은 여수시 거문도에서 태어나 먼 항해를 마치고 다시 거문도에 살고 있다. [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의 부제는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이다. [자산어보]는 정약전이 쓴 한국 최고의 어류학서인데 ‘자산’은 ‘흑산도’를 말한다. [자산어보]는 손암 정약전이 흑산도에서 유배생활을 하는 동안 바다동식물을 조사하고 채집한 기록이다. [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에선 [자산어보]의 일부를 도입부에 옮겨 놓았다. 이 책은 생계형 낚시꾼이자 소설가인 한창훈이 거문도에서 만난 바다동식물과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는 책이다. 

 

손암선생은 갈치를 무린어, 비늘 없는 생선이라고 했지만 갈치의 은색 가루가 바로 비늘이라고 한다. 은색가루는 구아닌이라는 색소의 일종으로 소화가 안 되지만 모조진주나 매니큐어에 쓰이고 지혈작용을 하는 장점도 있다고 한다. ‘키스’라는 단어는 갈치 비늘을 주고받는 행위를 일컫는다고 한다. 내게 필요하지 않아고 해서 존재하는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내게 불필요한 것이 타인에겐 이로운 것이 될 수 있다. 함께 나누고 사는 일은 사랑의 행위만큼 아름답다.

 

갈치는 구이나 조림으로만 먹는 줄 알았다. 갈칫국이 있다는 말을 들었지만 맛에는 신뢰가 가지 않았다. 그러나 제주도 여행에서 청양고추와 단호박이 들어간 갈칫국을 먹었는데 무척 맛이 있었다. 거문고엔 항각구국이란 엉겅퀴와 된장이 들어 간 갈칫국이 있다는데 맛이 궁금하다. “갈치 뱃진데기(내장)을 못 잊어서 육지로 시집 못 가겄네.”라는 말은 허사가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회를 좋아하지만 바다생물들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 이 책에는 그림과 사진과 설명이 실려 있어 바다생물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이 책에는 회를 잘 뜨는 방법과 회를 맛있게 먹는 법을 소개하고 있다. 금방 죽는 고등어는 얼음에 보관해서 회를 떠야 하고, 보관이 용이치 않아 내륙에서 먹기 어려운 삼치는 포를 떠 랩으로 싸서 얼음에 얼린 후 먹어야한다. 병어회는 양념된장과 먹어야 제 맛이고 꾸덕꾸덕 말린, 소금 간이 밴 볼락은 삶아서 양념 없이 수저로 파먹으면 맛있다고 한다. 삶아서 먹는 거북손은 그 자체로 완벽한 맛을 가지고 있어 어떤 양념도 필요치 않다고 한다. 낚시를 해본 적이 없는데 이 책을 읽다보니 직접 낚시를 해서 회를 떠먹고 싶은 강렬한 충동이 인다. 이론과 실제는 차이가 있으니 책만 보고 낚시를 잘 할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손암이 굴명충이라고 했던 군소는 이 책을 통해 처음 만났다. 한창훈은 군소의 맛에 대해 ‘가르쳐주지 않고 혼자 먹는 맛’이라고 적어놓았다. 제대로 먹을 것이 없었던 시대, 아이들에게 간식은 사치였다. 군소를 먹기 위해선 바위에 벅벅 거품이 날 때까지 밀어 피를 뺀 후 삶아서 먹어야 한다. 배를 부르게 해주는 좋은 먹을거리지만 어느 정도의 수고를 해야 먹을 수 있는, 너무 많이 먹으면 배앓이를 하는 군소는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는, 과욕은 금물이라는 세상 이치를 다시금 가르쳐주었다.

   



책을 읽는 내내 입 안에서 침이 고였다. 뭔가 먹으면 허기는 채워진다. 먹는다는 것은 뭘까? 지금은 건강식으로 먹지만 예전에 톳은 살아남기 위해 먹었다. 먹는다는 것은 삶을 지속시키는 행위다. 그런데 왜 하필 바다일까? 바다에 먹을거리가 많아서이기도 하지만 그곳엔 가족, 사랑, 우정, 그리움, 기다림과 꿈이 있기 때문이다. 한창훈은 노래미에 대해 ‘헤어진 사랑보다 더 생각나는 맛’이라고 했지만 은미엄마에게 헤어진 사랑이 없었다면 은미엄마는 노래미의 맛을 기억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현이아빠에게 붕장어는 결혼을 하고도 자신을 못마땅하게 여긴 장모의 마음을 움직인 맛이다. 바다생물들을 보면 인간의 삶을 보는 듯하다. 성게는 수백 개의 다리로 바닷속 바닥을 걸으며 비상하는 꿈을 꿨고 날치들은 경계너머의 세상을 꿈꿨다. 꿈을 꾸는 일은 아름다운 일이다. 그것이 이루어지고 이루어지지 않고는 다음 문제다. 

 


사람들은 나에게 묻는다. 당신에게 바다는 무엇인가. 아직도 나는 그 답을 찾고 있는 중이다.

 

책을 읽고 나니 더 허기가 졌다. 바다에 가고 싶은 마음이 보태졌기 때문이다. 가을이 가기 전엔 바다에 꼭 가야겠다. 몸과 마음의 허기를 채우고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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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잘라 2010-10-04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읽고 나니 더 허기지더란 말씀에 공감하며, ThanksTo^^
(이 책, 서점에서 서서 한참 봤는데 정말이지 책고프고, 사람고프고, 배고파지더라구요. ㅎㅎ)

빨간바나나 2010-10-04 15:18   좋아요 0 | URL
기대를 많이 하진 않던 책이었어요. 제가 바다생물들은 먹는 것만 친한 편이라.. 다양한 바다생물들의 특성을 알게 되면 족하다 생각했는데.. 기대 이상의 책이었습니다. 재미있었고.. 네.. 정말 많이 배가 고팠던 책이었습니다^^
 
1Q84 3 - 10月-12月 1Q8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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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말을 배우면서 처음 했던 게임은 반대말 게임이었다. ‘시작’의 반대말은 ‘끝’, ‘작다’의 반대말은 ‘크다’, ‘있다’의 반대말은 ‘없다’, ‘남자’의 반대말은 ‘여자’, ‘진짜’의 반대말은 ‘가짜’, ‘어린이’의 반대말은 ‘어른’, ‘왼쪽’의 반대말은 ‘오른쪽’, ‘낮’의 반대말은 ‘밤’, ‘춥다’의 반대말은 ‘덥다’, ‘살다’의 반대말은 ‘죽다’ 등등. 반대말 게임을 하면서 세상은 모두 이분법으로 명확하게 구분되는 줄 알았다.


반대말 게임을 하고 난 다음에 한 게임은 스무고개 게임이었다. 스무 번의 질문을 통해 답을 찾아가는 것은 꽤나 재미있는 놀이였다. 하지만


조금씩 어른들의 세계에 가까워지면서 답을 찾는 일은 어려워졌다. 나는 이젠 숨바꼭질을 해야 할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답을 찾기 위해 이곳저곳 헤매고 다녔다. 어렵게 찾은 것을 답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답인지 확신이 가질 않았다. 자꾸 의문(question)은 느는데 답은 보이지 않았다. 다른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는 답을 오직 나만 모르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불안하고 외로웠다.


작년 [1Q84 1], [1Q84 2]에 이어 올해 [1Q84 3]을 읽었다. 아버지가 살아계시지만 고립된 생활을 했던 덴고나 열한 살 때 스스로 가족과 인연을 끊은 아오마메는 각각 두 개의 달이 뜨는, 리틀 피플의 공기 번데기가 존재하는 세상 속으로 들어간다. 덴고와 아오마메는 어둠 속에서 외롭게 빛나던 각각의 달이었다.


그들이 함께 1Q84의 세상으로 들어가고 서로를 찾아 헤매는 것은 우연일까? 필연일까? 우연과 필연은 서로 반대어가 아니라 동의어이다. 덴고는 아오마메를 찾기 위해 바닷가 마을로 가고, 종교집단의 리더를 죽인 탓에 다른 곳으로 떠나야했던 아오마메는 덴고를 만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남는다. 그리고 우시카와는 리더를 죽인 아오마메를 찾기 위해 덴고를 조사하다 하늘에 달이 두 개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들은 왜 1Q84의 세상 속으로 가게 된 것일까? 왜, 라는 의문자체가 무의미한 애초 모든 것은 신이 계획했고 그들은 그저 시스템의 일부로 움직였을 뿐일까?


사람이 누군가의 보호를 필요로 하는 건 어머니의 자궁에 있을 때부터 예정되어 있던 일인지도 모르겠다. 사람이 외로운 건 어머니에게서 탯줄이 잘리는 순간부터 예정되어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각기 다른 삶의 패턴을 살던 남자와 여자가 서로의 짝을 찾아 헤매는 건 단 한 사람에게라도 보호받고 싶다는 심리가 내재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어린 시절 나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어른이 되고 싶은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나를 가두고 있는 집(혹은 부모)에게서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오래도록 출구를 찾아 헤맸다.


막상 어른이 되었을 때 덜컥 겁이 났다. 나는 알게 되었다. 나를 가두고 있던 벽은 나를 지켜주는 보호막이기도 했다는 것을. 지금은 다른 장례의 방법도 있지만 한동안 사람은 죽으면 관으로 들어가고 다시 땅 속에 묻힌다. 자궁도, 관도, 집도(부모도) 존재하는 이유가 있었었다. 출구를 찾았다가 생각한 순간 나는 새로운 입구를 만났다. 
 

 

                                                                       [ 영화로 만나는 치유의 심리학 ] 中에서


프로스트는 “그곳을 빠져나가는 최선의 방법은 그곳을 거쳐 가는 것”이라고 했다. 삶은 덴고와 아오마메처럼 내가 세운 계획처럼 흐르지 않을 것이다. 뜻하지 않는 일들에 휩싸여 상실과 위험을 겪을 것이다. 그리고 우린 점점 더 많은 의문을 갖게 될 것이다.


서른 살의 덴고와 아오마메는 출구를 찾고 1Q84의 세상에서 나온다. 이제 그들에게 해피엔딩만 있을까? 아마도 그렇지 않을 것이다.


이곳이 어떤 세계인지, 아직 판명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구조를 가진 세계이건 나는 이곳에 머물 것이다. 아오마메는 그렇게 생각한다. 우리는 이곳에 머물 것이다. 이 세계에는 아마도 이 세계 나름의 위협이 있고, 위험이 숨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세계 나름의 수많은 수수께끼와 모순으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는 수많은 어둠의 길을 우리는 앞으로 수없이 더듬어가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좋다. 괜찮다. 기꺼이 받아들이자. 나는 이곳에서 이제 어디로도 가지 않는다. 어떤 일이 있어도, 우리는 단 하나뿐인 달을 가진 이 세계에 발을 딛고 머무는 것이다. 덴고와 나와 이 작은 것, 셋이서 (p.740)


드라마 [성균관스캔들]에서 성균관 박사 정약용은 “지혜는 답이 아니라 질문에 있다.”고 유생들에게 가르쳤다. 계속 의문을 갖다보면 언젠가 답을 찾게 될 것이다. 확실한 것은 우리들 역시 덴고와 아오마메처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덴고는 학원의 수학선생이자 [공기 번데기] 고스트라이터였다. 고학년이 될수록 수학은 어렵다. 사람들은 목숨이 붙어 있는 것을 살아있는 것으로 착각하지만 그건 살아있는 것이 아니다. 사는 일은 풀기 어려운 수학문제만큼이나 복잡하다. 다행인 것은 우린 혼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혼자라면 답을 찾는 일이 오래 걸리겠지만 둘이라면, 함께라면 조금은 빨리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성균관의 유생들과 덴고와 아오마메 그들처럼. 1Q84의 세상에서 일어날 법한 일들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해서 불안해하지도 외면하지도 말자. 1Q84는 우리가 겪어야 할 통과의례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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