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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의 묘지 1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1월
평점 :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이 있다. 패자의 기록이 일방적으로 배제된 역사는 사실의 기록이 아닌 힘을 가진 자들이 남기고 싶은 이야기일 뿐이다. 이름 자체에서 묵직한 울림이 전해지는 작가 움베르토 에코! 그의 책 중엔 『장미의 이름』만 읽었다. 정확히 말하면 페이지를 넘긴 기억은 있는데 마지막 페이지를 읽은 기억은 없다. 시간의 경과에 따른 기억의 상실일까. 이러저러한 상황들로 애초 끝까지 읽지 못한 것일까. 에코의 다른 책들은 아직 인연이 없다. 북카트에 담았다 꺼냈다를 반복했지만 선뜻 구매하지 못했다. 사상가의 소설은 어렵다고 생각해 지레 겁부터 냈던 것 같다. 그러니까 『프라하의 묘지1·2』는 제대로 읽는 에코의 첫 번째 소설인 셈이다.
『프라하의 묘지1·2』의 시모니니 대위와 피콜라 신부는 한쪽이 존재하지 않을 때만 존재하는 기이한 관계였다. 어떤 사연으로 두 사람은 번갈아 일기를 썼는데 그들이 일기를 썼던 것은 사라진 기억을 복원해 자신의 존재를 찾고 스스로 치유하고 싶기 때문이었다. 소설은 두 사람 외에 또 다른 화자가 등장한다. 화자는 두 사람의 일기를 재구성해 그들에게 벌어진 10여 년 동안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소설은 각 나라 정보당국과 정보원 ‘시모니니’ 들에 의해 가짜 역사가 만들어지는 이야기이자 자의 반 타의 반 자신을 버리고 가짜의 생을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시모니니는 할아버지에게 유대인은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할아버지가 시모니니에게 들려준 음모론은 사실이라기보단 유대인을 싫어하는 이들에 의해 만들어진 이야기일 수 있다. 현재의 이야기를 믿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야기의 근원을 찾아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일은 무의미한 일이다. 할아버지는 바뤼엘 신부에게 보낸 편지는 시모니니를 비롯한 여러 사람의 상상과 위조, 윤색의 단계를 거치면서 이른바 ‘프라하 묘지’ 문서로 완성되어 간다.
‘완성된다’가 아닌 ‘완성되어 간다’로 쓴 이유는 시대에 따라, 더 많은 이들의 입맛에 맞춰 허구의 이야기가 개입하기 때문이다. 가짜 문서가 진짜 문서가 되어 전파되는 시간 동안 공증인이었던 시모니니는 개인의 삶을 살지 못하고 이탈리아, 프로이센, 프랑스, 러시아 정보원 노릇을 하며 신문 특파원, 공증인 푸르니에, 달라 피콜라 신부로 살아간다. 변장하며 살아간다는 것, 가짜 생을 산다는 것은 언젠가 소리소문없이 죽을 운명임을 뜻했다. 한때 중요했던 정보가 권력이 바뀜에 따라 무의미한 정보가 되어 소멸하는 것처럼.
실제 역사적 사건들이 등장하지만 알고 있는 것은 적다. 유럽의 역사를 많이 알았더라면 더 재미있게 읽었을 것 같은 생각도 든다. 이 책은 가짜 역사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통해 정치인들과 종교인들의 위선과 허상을 고발하는 소설이기도 하다. 힘에 따라 가짜는 진짜가 되고 진짜는 가짜가 되는, 아무것도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정치인들과 종교인들이 행하는 위선과 허상은 19세기 이탈리아, 프랑스, 러시아에서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기에 공감하며 읽었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어떤 사실 혹은 정보가 궁금하면 몇 번의 클릭의 과정만 거치면 된다. 아니 이 글은 틀렸다. 우리가 몇 번의 클릭으로 알게 된 것은 ‘중대한 사실’이 아닌 ‘진위는 중요하지 않은,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이야기’이다. 그 이야기들은 더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이야기로 지워진다. 사실보다, 진실보다 중요한 것은 더 강력한 이야기이다.
문득 이 사회에서 정보가 범람하는 이유는 높으신 분들이 정보원을 활용해 수시로 가짜 정보들을 흘리기 때문이 아닐까, 사람들로 하여금 넘치는 가짜 정보들 사이에서 진짜를 찾으려고 헤매다 스스로 포기하게 하려는 높으신 분들의 음모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프라하의 묘지1·2』는 실존 인물들의 실제 역사적 사건을 바탕으로 거짓의 이야기가 어떻게 진짜 역사로 둔갑하는가를 들려주는 소설이자 허구의 이야기임에도 진짜 이야기로 착각하게 하는, 그럼에도 수시로 소설임을 환기하게 해주는 독특한 소설이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