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수꾼들]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밀수꾼들
발따사르 뽀르셀 지음, 조구호 옮김 / 책으로보는세상(책보세) / 201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일은…(선장은 생각했다) 좋은 날이 올 거야.’(381쪽)

 

불행한 현재를 견딜 수 있는 것은 내일에 대한 희망 때문이다. 내일에 대한 희망은 인생이란 거친 바다를 헤쳐나가는 힘이 된다. 우린 그 힘으로 비루하고 남루한 현재를 견딘다.

 

에스파냐의 대표작가이자 기자인 발따사르 뽀르셀의 『밀수꾼들』은 변화무쌍한 지중해를 배경으로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욕망을 파헤친 작품이다. 발따사르 뽀르셀은 다양한 장르에서 많은 작품을 출간한 작가지만 국내에선 이번에 출간된 『밀수꾼들』이 처음이다. 역자의 글에 따르면 발따사르 뽀르셀은 지중해의 마요르까 섬 안드락스에서 선원의 아들로 태어나 평생 ‘지중해의 삶’에 관심을 기울였다고 한다.

 

『밀수꾼들』은 뻬레 마르꼬가 선장으로 있는 보따폭 호가 밀수품을 싣고 ‘지중해의 입’이라 불리는 지브롤터 해협을 떠나 마요르까 섬에 도착하기까지의 험난한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지중해에 가본 적이 없는 나는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간직한 바다로 상상하지만 밀수꾼들에겐 정지된 삶을 재생시키는 공간이었다. 그들은 수시로 변하는 바다 날씨와 싸워야 했고 경비정에게 쫓기는 두려움과 싸워야했고 서로에 대한 불신과 싸워야 했고 과거의 아픈 기억들과 싸워야 했다.

 

레오나르는 전쟁으로 무너진 삶을 복원하기 위해, 아내에게 진 마음의 빚을 갚기 위해 돈이 필요했다. 조리사 뻬나는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에게 ‘산다는 것은 매일 한 조각의 빵이라고 꼭 무슨 대가를 치르고서야 입에 가져갈 수 있는 비참함이나 실의 같은 거였다(95쪽)’. 요렝 까브레가 가장 원했던 것은 아내 또니아와 함께 사는 삶이었다. 그가 배를 탄 것은 죽은 아내와 함께 죽어버린 자신의 삶을 재생하고 싶은 열망이었다.

 

『밀수꾼들』은 선원들의 현재와 과거, 그들의 가족, 특히 아버지의 이야기가 교차로 펼쳐진다. 갑판장 요렝 까브레를 처음 밀수에 참여시킨 사람은 아버지였다. 뻬나의 아버지는 1874년 까를로스파 전쟁으로 한쪽 팔을 잃었고 구걸하기 싫어 도둑질하다 총에 맞아 개울에 빠져 죽었다. 기관사 비센 바랄의 아버지는 목매달아 자살했다. 그들이 밀수꾼으로 사는 것은 패배의 삶, 비극의 삶을 반복하고 싶지 않다는 의지의 표현일지도 모른다.

 

레오나르가 삶을 사는 동안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경주에서 우승한 기념으로 바르바라와 춤을 추고 데이트를 했던 순간이었다. 비센 바랄에게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돈을 벌어 자식을 공부시킨 순간이었다. 그의 꿈은 자식들을 사회에서 강한 인간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비센 바랄은 죽어가면서도 배를 탈 수밖에 없었다. 두려움과 위험을 무릅쓰고 그들이 배를 탄 이유는 그것만이 무너진 삶을 복원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선장 명의를 빌려 준 뿌익-사발이 술에 절면서도 배를 타는 이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밀수꾼들』은 삶의 비극 앞에 무너지지 않고 다시 일어서려는 자들의 간절함이 담긴 소설이었다. 그들은 곧 현대를 사는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했다. 삶을 포기하지 않는 이들의 모습은 숭고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눈의 아이]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눈의 아이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욱 옮김 / 북스피어 / 201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본다.

보는 것은 자기 마음의 내면뿐이다.

좋은 것도, 좋지 않은 것도, 아름다운 것도, 추한 것도.

- 「돌베개」, 123쪽

 

4월은 분명 눈의 계절이 아니다. 그럼에도 강원도 어디쯤에선 폭설이 내렸다. 그들에게 눈은 달갑지 않은 손님일 것이다. 이번에 출간된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집 제목은 『눈의 아이』다. ‘눈’과 ‘아이’ 하면 공통으로 ‘순수’라는 단어가 떠오르지만 ‘눈의 아이’ 하니 쓸쓸한 이미지가 떠오른다. 사는 삶이 아닌 견디는 삶 속에서 더는 존재하지 않는 순수에 관한 이야기일까, 상상해 본다.

 

시간이 흐르면 삶이 많이 달라질 거라 믿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더 추락하지 않은 게 다행이라 여겨지기도 한다. 책 제목이기도 한 단편「눈의 아이」의 ‘나’는 지루하게 반복되는 삶을 살았다. 초등학교가 폐교를 앞두고 있다는 말과 함께 술 한잔하자는 야마노 야스시의 연락을 받는다. 20여 년의 시간은 친구들의 삶을 바꾸어 놓았지만 ‘나’의 삶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 이유는..... 이십 년 전 친구 히시다 유키코는 누군가에게 목에 졸려 눈 속에서 죽었다. 그 시절, 눈 속에서 죽은 건 히시다 유키코뿐이 아니었다. 「눈의 아이」엔 자신이 본 것만 믿고 자신이 행한 일은 정당하다고 생각하며 죄악감을 감추고 사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자화상이 담겨 있었다.

 

「장난감」은 쉽게 단절되는 현대 가족의 연약한 속성과 사람의 죽음조차 장난감으로 치부하는 사람들의 이기적 심리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사람들은 누군가의 죽음 앞에 애도보단 흥밋거리를 찾고 변명거리를 만드는 일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눈의 아이」와 「장난감」의 유령은 순수함 혹은 본성을 잃지 않은 사람들에게만 나타나는 존재였다.

 

전망 없는 삶을 살기는 「눈의 아이」의 ‘나’나 「지요코」의 ‘나’나 다르지 않다. 인형탈을 쓰고 풍선을 나눠주는 아르바이트를 했던 ‘나’는 일종의 유령 혹은 환상을 본다. 「지요코」는 바쁜 현대를 살아간다는 이유로 잊고 살았던 그 시절의 ‘친구’를 떠올리게 한 작품이었다.

 

「돌베개」에 따르면 ‘돌베개’ 이야기는 에도 시대의 민간전승으로 인과응보, 나쁜 짓을 하면 돌고 돌아서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교훈의 구비전승이라고 한다. 어떤 사람이 나쁜 일을 당하면 우리는 마땅히 그 사람을 위로해야 하지만 위로보단 잘못된 행동을 했기 때문에 그런 일을 당했다고 수군댄다. 피해자가 피해를 보는 아이러니 앞에 피해자는 침묵할 수밖에 없다. 불안한 사회는 우리로 하여금 타인을 위로하지도 애도하지도 못하게 만들었다. 「장난감」엔 소문을 퍼뜨리는 사람들의 심리가 담겨 있었는데 「돌베개」는 소문의 진실을 밝혀 피해자의 억울함을 풀어주려는 소녀 아사코의 선의가 담겨 있는 작품이다. 아사코가 밝혀낸 진실은 아사코의 처음 생각과는 달랐지만 소녀의 선의는 억울한 피해자 한 사람을 구제했다.

 

「장난감」처럼 「성흔」 역시 더 이상 끈끈하지 않은 현대 가족의 연약한 속성이 드러난 작품이다. 소년A가 ‘정상’적인 부모 아래 자랐다면 참혹한 일을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다. 「성흔」의 조사원 ‘나’는 가해자가 제재받지 않고 구원받아야 할 사람들이 구원받지 못하는 현실은 정의롭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신 혹은 신의 예언자가 되어 피해자들이 가해자를 향해 정의를 실천하도록 이끌었다. 정의의 실천이 누군가의 제대로 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박탈한다면 그것은 정당한 것일까?

 

『눈의 아이』의 사람들은 모두 유령을 봤다. 유령은 죄악감을 잃어버린 자신, 순수함을 잃어버린 자신이자 우리가 살면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을 대변하는 상징이었다. 『눈의 아이』는 바쁜 현대를 살아가느라 추억에 멀어진, 가족에게 멀어진, 선한 마음을 잃어버린 우리 이야기였다. 생각해 본다. 나는 ‘눈’의 시절에서 얼마나 멀리 왔을까.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끝까지 연기하라]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끝까지 연기하라
로버트 고다드 지음, 김송현정 옮김 / 검은숲 / 2013년 1월
평점 :
절판


무대 위의 남자가 보인다. 마리오네트 인형처럼 남자의 손엔 끈이 연결되어 있다. 비밀을 품은 눈으로 누군가를 응시하는 남자가 그 남자를 조정하고 있다. 이 내용은 『끝까지 연기하라』의 표지 설명이다. 무대 위 배우들은 자신을 감추고 작가의 대본과 감독의 연출대로 연기한다. 뛰어난 배우라면 철저히 극 중 인물이 되어야 한다. 연극배우만 연극을 하는 건 아니다. 연극배우처럼 자신을 감추고 타인으로 하루를 살고 돌아와 거울 속 낯선 모습에 당황하던 날이 부지기수 아니던가. ‘나’를 타인으로 만든 건 ‘나’일까, 다른 사람들일까.

 

로버트 고다드는 현재 영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범죄소설, 역사소설 작가라고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처음 만난 작가이다. ‘나’ 토비는 한물간 배우로 작고한 저명한 극작가 조 오턴의 미발표 희곡<목구멍에 세 든 남자>의 순회공연 마지막 한 주를 남겨두고 있다. 토비는 이 연극이 장밋빛 시간으로 되돌려주길 바라지만 가망은 없어 보인다. 공연 하루 앞두고 도착한 브라이턴에서 그곳에 머물고 있는, 이혼 가판결 기간이 아직 한 달가량 남아 아직 혼인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별거 중으로 다른 남자와 동거중인 아내 제니의 전화를 받는다. 제니는 한 남자가 자꾸 자신의 주변을 어슬렁거린다며 자신과 관계가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조 오턴은 실존했던 극작가로 소설에 등장하는 비극적인 삶은 실제 있었던 일이다.『끝까지 연기하라』는 역사소설 작가답게 현실에 상상력을 접목한 작품이다.

 

토비는 제니가 말한 문제의 남자, 데릭 오스윈을 만나게 된다. 토비는 제니, 그리고 데릭 오스윈과의 만남으로 예상에 없던 삶으로 들어간다. 팬이 자신을 만나기 위해 벌인 해프닝인 줄 알았던 사건은 공연에 서지 못하는 상황으로 번지고 급기에 자신 대신 공연을 한 동료 배우 데니스를 곤경에 처하게 하는 일로 번진다. 토비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새 연극에서 사건을 해결하는 주인공이 된 것이다. 관객이 있는 연극은 아니지만 토비는 이 무대에서 맘대로 내려올 수도 없다. 그것은 이 연극이 이혼을 앞두고 있지만 여전히 사랑하는 아내 제니와 깊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토비에겐 마리오네트 인형처럼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데릭 오스윈이 쓴 책의 제목은 『플라스틱 인간들』이었다. 『플라스틱 인간들』은 플라스틱 제품이라면 뭐든지 만들었던, 지금은 사라진 콜보나이트라는 회사의 비리와 직원들의 피해를 적은 책이다. 데릭 오스윈이 쓴 뜻과는 다른 개념이지만 소설 속 인물들은 플라스틱 인간, 영혼이 없는 인간들이었다. 토비와 제니는 다시 시작하고 싶어 하면서도 용기를 내지 못했고 오스윈은 정작 원하는 것은 따로 있었지만 『플라스틱 인간들』이란 책 뒤에 숨었다. 기업가였던 로저의 아버지는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 부정했다. 로저 가족에게 비극이 일어난 것은 그들의 영혼이 제자리에 있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로버트 고다드는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은 작가임과 동시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작가인 것 같다. 소설은 이혼의 위기를 맞은 부부와 삶의 위기를 맞은 중년의 모습, 기업의 횡포와 비리로 직장을 잃고 병을 얻은 사람들의 이야기, 돈보다는 가족을 찾고 싶은 이야기 등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살짝 막장 드라마의 향기가 나기도 했다.

 

과거는 과거고, 현재는 현재다. 늦었다. 너무 늦었다.(464쪽, 473쪽)

 

소설 속에서 반복적으로 나오는 문장이다. 한물간 배우에게, 중년의 가장에게 무대에 오를 시간도, 삶의 시간도 많지 않다. 데릭 오스윈이 토비를 선택한 것은 로저가 제니와 연결되어 있고 제니는 다시 토비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더 늦기 전에 자신은 이루지 못한 가족을 자신이 좋아하는 배우 토비는 이루고 살기 바랐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요즘 즐겨보는 드라마의 제목은 <그 겨울, 바람이 분다>이다. 토비는 범죄사건에 휩쓸리면서 궤도 이탈한 자신의 삶을 바로잡을 시간을 얻었다. 그것은 삶의 끝에서 부는 바람이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라하의 묘지 1,2]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프라하의 묘지 1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이 있다. 패자의 기록이 일방적으로 배제된 역사는 사실의 기록이 아닌 힘을 가진 자들이 남기고 싶은 이야기일 뿐이다. 이름 자체에서 묵직한 울림이 전해지는 작가 움베르토 에코! 그의 책 중엔 『장미의 이름』만 읽었다. 정확히 말하면 페이지를 넘긴 기억은 있는데 마지막 페이지를 읽은 기억은 없다. 시간의 경과에 따른 기억의 상실일까. 이러저러한 상황들로 애초 끝까지 읽지 못한 것일까. 에코의 다른 책들은 아직 인연이 없다. 북카트에 담았다 꺼냈다를 반복했지만 선뜻 구매하지 못했다. 사상가의 소설은 어렵다고 생각해 지레 겁부터 냈던 것 같다. 그러니까 『프라하의 묘지1·2』는 제대로 읽는 에코의 첫 번째 소설인 셈이다.

 

『프라하의 묘지1·2』의 시모니니 대위와 피콜라 신부는 한쪽이 존재하지 않을 때만 존재하는 기이한 관계였다. 어떤 사연으로 두 사람은 번갈아 일기를 썼는데 그들이 일기를 썼던 것은 사라진 기억을 복원해 자신의 존재를 찾고 스스로 치유하고 싶기 때문이었다. 소설은 두 사람 외에 또 다른 화자가 등장한다. 화자는 두 사람의 일기를 재구성해 그들에게 벌어진 10여 년 동안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소설은 각 나라 정보당국과 정보원 ‘시모니니’ 들에 의해 가짜 역사가 만들어지는 이야기이자 자의 반 타의 반 자신을 버리고 가짜의 생을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시모니니는 할아버지에게 유대인은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할아버지가 시모니니에게 들려준 음모론은 사실이라기보단 유대인을 싫어하는 이들에 의해 만들어진 이야기일 수 있다. 현재의 이야기를 믿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야기의 근원을 찾아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일은 무의미한 일이다. 할아버지는 바뤼엘 신부에게 보낸 편지는 시모니니를 비롯한 여러 사람의 상상과 위조, 윤색의 단계를 거치면서 이른바 ‘프라하 묘지’ 문서로 완성되어 간다.

 

‘완성된다’가 아닌 ‘완성되어 간다’로 쓴 이유는 시대에 따라, 더 많은 이들의 입맛에 맞춰 허구의 이야기가 개입하기 때문이다. 가짜 문서가 진짜 문서가 되어 전파되는 시간 동안 공증인이었던 시모니니는 개인의 삶을 살지 못하고 이탈리아, 프로이센, 프랑스, 러시아 정보원 노릇을 하며 신문 특파원, 공증인 푸르니에, 달라 피콜라 신부로 살아간다. 변장하며 살아간다는 것, 가짜 생을 산다는 것은 언젠가 소리소문없이 죽을 운명임을 뜻했다. 한때 중요했던 정보가 권력이 바뀜에 따라 무의미한 정보가 되어 소멸하는 것처럼.

 

실제 역사적 사건들이 등장하지만 알고 있는 것은 적다. 유럽의 역사를 많이 알았더라면 더 재미있게 읽었을 것 같은 생각도 든다. 이 책은 가짜 역사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통해 정치인들과 종교인들의 위선과 허상을 고발하는 소설이기도 하다. 힘에 따라 가짜는 진짜가 되고 진짜는 가짜가 되는, 아무것도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정치인들과 종교인들이 행하는 위선과 허상은 19세기 이탈리아, 프랑스, 러시아에서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기에 공감하며 읽었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어떤 사실 혹은 정보가 궁금하면 몇 번의 클릭의 과정만 거치면 된다. 아니 이 글은 틀렸다. 우리가 몇 번의 클릭으로 알게 된 것은 ‘중대한 사실’이 아닌 ‘진위는 중요하지 않은,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이야기’이다. 그 이야기들은 더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이야기로 지워진다. 사실보다, 진실보다 중요한 것은 더 강력한 이야기이다.

 

문득 이 사회에서 정보가 범람하는 이유는 높으신 분들이 정보원을 활용해 수시로 가짜 정보들을 흘리기 때문이 아닐까, 사람들로 하여금 넘치는 가짜 정보들 사이에서 진짜를 찾으려고 헤매다 스스로 포기하게 하려는 높으신 분들의 음모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프라하의 묘지1·2』는 실존 인물들의 실제 역사적 사건을 바탕으로 거짓의 이야기가 어떻게 진짜 역사로 둔갑하는가를 들려주는 소설이자 허구의 이야기임에도 진짜 이야기로 착각하게 하는, 그럼에도 수시로 소설임을 환기하게 해주는 독특한 소설이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원숭이와 게의 전쟁]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원숭이와 게의 전쟁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12월
평점 :
절판


에이타, 오늘은 뭔 얘기를 혀 줄까?”라고 사와가 물었다.

“글씨.”

부모는 아키타 사투리를 전혀 못 하는데, 에이타는 벌써부터 사투리를 쓰는 게 재미있었다.

“그람, 아무거나 좋으냐?”

“글씨, 으음, 원숭이랑 게 나오는 얘기 있잖여? 그거 해줘.”

“에이타, 그 얘기 좋아허냐?”

“응, 좋아혀.”

“어떤 점이 좋은디?”

“글씨, ……후련하잖여?”

“후련허다고?”

에이타의 대답에 운전대를 잡은 마코토 선생까지 웃음을 떠트렸다.

사와가 손을 뻗어 에이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후련한 얘기에는 독도 들어 있는디.”

“난 이제 아가가 아녀!”라며 에이타가 머리를 쓰다듬는 사외의 손을 뿌리쳤다.

“그려, 그려, 에이타는 이제 아가가 아니지.”(544-545쪽)

 

약자가 강자와 싸워 이기는 이야기는 언제나 통쾌하다. 내가 약자라는 사고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위 인용문은 요시다 쇼이치의 『원숭이와 게의 전쟁』의 나오는 문장이다. 옮긴 이의 말을 참조한다면 ‘원숭이와 게 나오는 얘기’는 ‘어미 게를 속이고 죽인 교활한 원숭이에게 새끼 게들이 앙갚음을 하는 내용의 전래동화’라고 한다. 사회적 약자들이 힘을 합쳐 강자들과 싸우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강자라고 해서 모두 적은 아닐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강자는 비열한 방법으로 약자들의 것을 빼앗고 죽음으로 밀어 넣는 이들을 말한다.

 

『원숭이와 게의 전쟁』은 전래동화처럼 사회적 약자들이 힘을 합쳐 복수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전래동화에선 복수의 대상이 분명하지만 『원숭이와 게의 전쟁』에선 포괄적이다. 약자들을 속여 재산을 빼앗고 죽음으로 내몰고선 겉으로는 친절한 척 가면을 쓴 이들이 모두 대상이다.

 

“……준페이 같은 사람이 정말로 국회의원이 된다면 왠지 가슴이 뻥 뚫릴 것 같지 않아? 딱히 누구에게 괴롭힘을 당하면서 살아온 것도 아니고, 누구에게 보복하고 싶은 것도 아니지만, 누구에게나 자잘하게 속상한 일쯤은 있게 마련이고, 그게 자잘한 일이라면 참고 살아가야 하는 거잖아. 물론 준페이가 국회의원이 된다고 해서 뭐가 크게 달라지지 않겠지만, 왠지 그런 자잘한 인내 같은 게 시원하게 날아가 버릴 것 같거든. 모두 그런 마음으로 준페이를 응원하는 게 아닐까. 오랜 세월 품고 살아온 짜증을 하나씩 지워 나갈 기력은 이미 없더라도 말이지.”(496-497쪽)

 

『원숭이와 게의 전쟁』은 최근에 읽은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처럼 관계없어 보였던 인물들이 서로 연결되어 기적을 실현한 이야기였다. 그들의 기적이 영원하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지만 말이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 판타지를 띄고 있기 때문인지 인물들이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당연하다 생각했는데 『원숭이와 게의 전쟁』은 현실이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인물들이 모두 연결된 설정은 부자연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인간관계가 6단계(소셜 네트워크로는 4.7단계)만 거치면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이론이 있지만 말이다.

 

준페이는 아기를 안고 남편 도모카를 찾아온 미쓰키를 외면하지 않았다. 소노 요코가 오쿠노 미쓰하루(미나토 게이지)의 상처에 공감하지 않았더라면, 준페이와 도모카가 마음이 선하지 않았더라면 기적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도모카와 준페이처럼 잠시 악한 마음을 갖기도 했지만 그들은 근본적으로 독한 마음이 없었다.

 

사와는 에이타에게 말했다. 후련한 얘기에는 독도 들어 있다고. 나는 이들의 기적에 대해 열렬히 박수 칠 수 없다. 이들의 ‘복수극’에 나는 후련함과 동시에 찜찜함을 느꼈다. 점술가 우메키는 소노 요코에게 준페이를 국회의원으로 만들 운명이라고 했다. 사람이 늘 목적의식을 갖고 사는 건 아니고 어떤 일이 계기가 되어 삶이 바뀌기도 하지만 인간의 삶이 운명적으로 예정되어 있다는 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것이 믿고 실천한 자에게만 주어진 선물일지라도. 더 마음에 안 드는 건 적과 싸우려면 그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맞서야 한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가장 적절한 답임을 알지만.

 

많은 이들이 준페이를 국회의원으로 만들면서 실로 오랜만에 열정을 느꼈다. 그것은 그들의 삶을 좀 더 낫게 만드는 불씨가 될 것이다. 당장 세상이 많이 바뀌진 않을지라도. 요시다 슈이치는 “지금 보이는 게 아니라 지금 보고 싶은 것을 썼습니다.”라고 했다. 누군가 이 책을 읽고 포기밖에 남지 않은 생, 다시 힘을 내어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면 이 책의 목적은 다 했으리라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